Hebrew 2022. 11. 10. 12:23
13강.


모세언약(1)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때가 되어 출애굽하게 됩니다.
출애굽 사건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독립운동해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셨기에 그들을 출애굽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등 따시고 배부르면 좋다고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지속되지 못하도록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셔서 고된 노역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고통속에 놓여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서야 부르짖게 되고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자기 맹세를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3-25절입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결국 10가지 재앙과 어린 양의 피를 통과하고 홍해를 건넙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출애굽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처소를 삼기 위하여 구속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이해할 때에 자기중심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힘들고 고생스러우니 이런 고생이 없는 천국에 가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곳에 가도 자신이 주인노릇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천국은 없습니다.


이런 천국을 꿈꾸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원망만 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심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24:1-11절에 언약체결장면이 나옵니다.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에는 일방적인 언약임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홀로 지나가면서
언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언약은 분명하게 상호의사를 물어서 쌍방 간의 동의하에 언약을 체결합니다.
모세가 언약 중재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백성들의 뜻을 하나님께 전하여
서로 언약을 체결합니다.
모세 언약도 피의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주니 그 언약에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언약서를 낭독하고 소를 잡고 피를 받아서 뿌립니다.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피로 체결한 언약이기에 생명을 건 언약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체결하고 나서 잔치를 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돌 판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올라간지 40일 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깁니다.
40일도 기다리지 못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냅니다.

출애굽기 32:1절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백성들이 아론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특징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이 자기 처소를 삼기 위함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언약이 체결되었다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며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어 놉니다.


출애굽기 20:1-5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상숭배금지의 말씀인데 무엇이 우상입니까?
형상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즉 나를 위하여 만들어내면 그것이 형상이든지 아니든지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5절에서는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탐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탐심을 가지고 교회를 만들어 낸다면 이것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과 피로 맺은 언약을 40일도 되지 않아서 배반하고 자기들을 인도한 신을 만들어 낸 것이

황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소를 신으로 섬기는 것은 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이방의 우상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를 황금으로 만들었으니 오늘날의 황금만능주의와 꼭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그런 황금송아지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번영신학이라는 것이 꼭 이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세상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인데도
예수 믿고 부자가 되었다고 세상에서 높아졌다고 성공하였다는 간증들을 합니다.
이런 설교와 간증들을 좋아하고 따라는 것과 황금송아지를 섬기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불러도 그것은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모세가 보고서 어떻게 합니까?

손에 들고 있던 언약의 돌 판을 깨뜨려버립니다.
만약에 그 돌 판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다 진멸당해야 합니다.
그 돌 판에 기록된 십계명의 내용을 배반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이 담긴 돌 판의 깨어짐은 곧 말씀의 깨어짐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깨어짐으로
자기 백성들의 죄가 용서 받는 것임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예표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도 우리의 죄를 율법으로 살피시면 누가 감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신 그 십자가만이
우리의 구원의 소식이 됨을 깨달아야 하며 또 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