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산상수훈 30번 말씀
제목 :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본문 : 마 5: 47- 6 ;4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아멘.
우리는 지난주에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그 율법의 진의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수렴이 되고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가 이제 마지막 넷 중에 하나라 그랬죠? 그게 하나가 딱 채워지게 되면 이제 정사각형의 성전이 되는 그런 그림을 그리시면 됩니다. 그렇게 모든 율법은 사랑으로 수렴이 되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흘러서 거룩한 사랑의 계보를 이렇게 잇고 있는 거라 그랬습니다.
그 하늘의 사랑은 그렇게 진리를 가진 자들에 의해서 역사 내내 흘러내리고 있는 거고 이렇게 지금도 흐르고 있는 거죠. 그 사랑이. 그건 사랑이 된 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요 역할이기도 해요. 하나님은 당신의 발과 손이 되는 자들을 통해서 그 사랑을 흘려보낸다, 라고 스스로 약속을 하셨어요. 하나님의 오른 팔로 구원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 이게 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오른 팔이 있으면 왼팔도 있단 얘기에요? 영이라면서요 하나님은? 그런 말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자기들끼리만 진리를 논하고 있으면 그건 안 된다, 가 47절의 내용이에요. 거기에 형제, 라고 이제 개역성경에 번역하고 있는데 그 단어가 필로스에요. ‘데오 빌로’에서 테오 필로스 그러죠? 하나님의 친구. 친구에요, 친구. 그러니까 진리가 된 자들 이야기하는 거죠? 그 친구끼리만 문안을 하면 사랑이 흐를 수 없잖아? 에요.
자, 지금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라고 이야기해놓고 이건 흘러야 된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너희끼리 문안하고 있으면 그러면 사랑이 흐를 수 없잖아? 그래요. 그리고는 뭐 이방인도 이같이 아니한다, 그러는데 그 단어가 그냥 세리에요. 위의 절에서 공부한 세리. 세리는 이같이 하지 않아, 그런다고요. 세리는 이같이 하지 않아. 그런데 그 세리 텔로레스가 뭐라 그랬죠? 세리. 성전의 세를 거두는 자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게 세리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성전 세는 뭐예요? 그거 받아서 성전을 완성하고 성전을 유지하는 게 성전 세였잖아요? 그죠? 그 성전 세를 거둔 거란 말이죠. 그 성전 세를 거두어서, 그러니까 그 성전을 완성하고 유지하는 게 뭐예요? 우리에요, 성도. 그래서 구약에 보면은 성도를 성전 세라 그런단 말에요. 사람을. 그렇게 성전 세를 거두는 너희들 그 텔로레스, 세리들은 그 같이 하면 안 돼, 그래요. 왜? 거두어들여야 되니까. 그 말이란 말에요.
그리고 ‘문안’, 그 아스파조마이라는 말은 안녕을 묻다, 라는 말이라고 했죠? 안녕을 묻다. 안녕은 뭐예요? 여러분. 안식이 완성되어 자유가 된 상태를 안녕이라 그래요. 그래서 안녕하세요? 그러면 그건 그냥 피상교에요. 우리가 서로 바라보면서 안녕하세요? 그러죠? 그 안녕하세요? 는 내가 그 사람이 안녕을 할 수 있는 어떤 걸 전해주고 그걸 확인할 때 하는 인사에요. 내가 안식에 관한 말을 전해주고 안녕하세요? 그거 잘 지키고 있으세요? 그래서 당신은 지금 안녕의 상태에 있으십니까를 묻는 게 안녕하세요에요. 그러니까 아무에게나 안녕하세요, 하면 안 돼요. 미국사람들이 그냥 아무나 만나면 굿모닝 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아무 의미 없는 피상교죠? 그거는요?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 항상 이 단어를 써요. 내가 문안한다, 그러죠? 내가 너희에게 안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줬잖아? 안녕해? 라고 묻는 거예요. 그 단어들을 꼭 쓴단 말이죠. 그 문안은 이제 자꾸 아래로 그렇게 흘러가야 되는 것이지 자기들끼리, 필로스끼리 문안하고 있으면은 그게 흐를 수가 없잖아? 세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텔로레스, 성전 세를 거두는 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가 47절이에요.
그렇게 안녕에 관한 말을 전해주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진리, 진리 하는 자들 있죠? 그러한 피상교에 불과한 문안을 야고보사도가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여러분 진리를 아셔야 돼요. 복음을 아셔야 돼요. 예수를 믿으셔야 돼요. 천국 가셔야 돼요. 근데 내용을 얘기 안 해줘. 그렇잖아요? 그런 얘긴 다 한다니까요. 천국 가세요, 예수 믿으세요. 안식에 도달하세요. 자유하세요. 그러는데 내용을 안 줘. 그걸 야고보가 이렇게 얘기해요.
약 2:14-18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겉옷이 없고 먹을 하늘의 양식이 없다, 란 뜻이에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게 그 말이에요. 예수 믿으세요, 천국 가세요, 구원받으세요, 이야기는 하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지 내용을 안 주는 거예요. 그래놓고 나는 믿음이 있다, 라고 얘기하는 거. 그리고 지 할 얘기만 하는 거 있잖아요, 왜? 그런데 그 사람이 다 들었는데 아직도 추워. 옷이 없어요. 그가 나에게 겉옷을 안 건네 줬어. 하늘의 양식도 안 줬어요. 그리고는 예수 믿으세요. 천국가세요. 평안하세요. 그런단 말이죠.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17 이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기서 행함은 뭐죠? 진리를 전해주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구원 받으세요. 자유하세요. 안식하세요. 하면서 그가 진짜 겉옷을 입고 그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일을 해주는 거. 이걸 행함이라 그래요. 근데 그것도 없이 그냥 말로만 하는 건 뭐예요? 그게 행함이 없는 믿음이에요. 그거는 귀신들도 갖고 있는 거라고 그랬죠? 여기서 귀신이 뭐라 그랬습니까? 푸뉴마 다이모니온, 악한 말. 그게 거짓말이란 뜻이에요. 귀신이라는 건. 악한 말.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미음이 있는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 내게 보이리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일게. 내가 믿음이 있다는 거 나는 말로만 하지 않을 거야. 내가 믿음이 있다, 라는 건 내가 너희들에게 진리를 전해줬을 때 그 때 보여지게 될 거야. 이 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상교하지 마. 함부로 안녕하세요? 묻지 마. 또 인사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함부로 그런 거 이야기하지 마. 이야기하려면 내용을 얘기해줘. 이런 말이에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뭐 성품도 변화도 없고 착한 일도 안 하고 그거는 귀신들도 갖는 믿음이야! 이런 말이 아니에요. 정말 그렇게 헐벗은 이들, 푸토코스한 자들 만나면 겉옷을 전해주라는 거예요. 진리의 겉옷. 그리고 하늘의 그 양식. 그 말씀을 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을 진짜 배부르게 만들어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거 없으면 너희들 믿음 없는 거야. 그렇게 전해주는 걸 사랑이라 그래요. 산상수훈에서.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그게 사랑이야, 그렇게 흘려주는 거. 그게 진짜 사랑이야.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렇게 모든 계명, 모든 말씀을 사랑으로 깨달아서 그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로 깨달아서 그 사랑을 전해주는 이들을 온전하다, 라고 선언을 해주는 거예요. 5장 마지막 절이 바로 그 말이에요. 우리는 이런 구절을 대할 때 너무 섣불리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너희들도 도달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돼. 라고 그냥 그렇게 이해를 해버려요. 그럼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뭐예요? 여러분? 창조의 권능까지 가지라는 거예요? 그게 온전함이잖아요? 무소부재의 기능을 획득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주석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런 건 다 못하는 거니까 하나님의 도덕적 윤리적인 그 면만 목적삼아 그 온전에 도달하려고 노력해! 이 말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에게 도덕 윤리가 있어요? 그건 누가 만든 거예요? 인간이 만든 거예요. 근데 하나님의 도덕윤리를 논하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다니까요. 그리곤 거기에 도달하려고 노력해. 이런단 말에요. 성경 어디에 그런 제한을, 구분을 해준 데가 있어요? 그냥 온전해! 이런다니까요. 그것처럼 온전해, 에요. 그럼 창조의 능력, 무소부재의 기능 이런 것도 못 가져 하나님의 도덕적 윤리적 그런 온전함 그건 감히 우리가 이야기할 것도 아니야. 무슨 말이에요? 어떻게 온전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가 온전에 이르는 수준을 정해놨다, 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 하면 온전하다고 너희들을 하늘의 것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이야기에요.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학에 들어갈 때 여러분, 대학에서 공부할 그것을 공부하여 대학에 갑니까? 여러분은 대학에 갈 때 고등학교 수준의 것을 가지고 대학에 가요. 대학엘 가는데 그 대학과는 아무상관 없는 고등학교의 수준의 어떤 것을 해내면 그래, 너는 대학에 넣어줄게. ‘너 대학생’ 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하늘의 온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땅의 수준의 온전을 제시해주고 그거에 도달하면 하늘의 것이라고 이야기해줄 게 이런 말이에요. 그럼 그 온전이 뭐냔 말에요.
롬 13: 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사랑의 빚이 뭐라 그랬어요? 아이테오. 빚 갚아! 하나님께 뭘 구하라는 전부 빚 갚으세요, 라는 말이라 그랬죠? 그 단어 자체가. 하나님이 먼저 언약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줘야할 게 있단 말에요. 그분이 먼저 언약했기 때문에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그걸 성경이 빚이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구하라, 찾으라 이 단어가 전부 아이테오, 제테오가 뭐냐면 빚 갚으세요, 감추어진 거 빨리 주세요. 이런 말이에요. 그거 알고 달라는 이에게 누가 안 주겠니? 다 줘. 이 말이에요.구하라,에서 그 구하라는. 다른 구하라가 아니란 말에요. 왜 구하면 뭐 다 준다고 해놓고 나는 하나도 안 줘? 안 줘요, 그런 거는요. 그 구하라가 아니라니까요. 빚, 사랑의 빚. 그 사랑, 그 진리 흘려주는 그 빚. 그거 이외에는 다른 빚 없다, 라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다른 거 요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대요, 뭐예요? 온전이에요. 이게)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당연히 악을 행치 않죠. 악이 뭐에요? 거짓말을 주어서 그들에게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우는 거예요. 그게 악을 행하는 거예요. 해코지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 당연한 거죠)
-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온전이네요?)
율법이 뭐예요?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어 하늘의 것, 하나님을 알게 해주기 위해 주어진 외적으로 주어진 호 코스모스. 이게 율법이잖아요? 그것으로 하늘을 알면 복이고 그걸 문자로만 보게 되면 그게 바로 저주에요. 그걸 죄라고 그런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과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 그 율법을 사랑으로 깨달아서 안 그 사람, 그 사람이 무얼 안거예요? 그 율법이 이거였구나! 하나님을 안거 아니에요? 온전한 그분을 안거네요? 그 사람을 온전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마음이 되어 내 안에 들어오잖아요? 그럼 그 온전한 하나님이, 물론 우리의 수준에 맞게 주신 그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지만 그게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온전한 게. 그럼 그게 온전이다, 라고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물론 그게 ‘그 하나님’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알 수 있는 최대한의 그거. 그게 네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게 온전이야 얘기해요. 그래서 사랑의 이야기로 끝낸 다음에 하나님이 온전한 것처럼 그 온전을 너희에게 담아 너희도 온전해,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슨 뭐 대단한 인격적 성숙을 이루라, 이런 말 아니란 말입니다.
자, 그렇게 그 말씀의 진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깨닫고 그것을 흘려주는 이가 온전한 자라면 그가 그 사랑의 행위, 그 말씀을 이제 흘려주는 그 행위를 할 때에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 다른 말로, 그걸 전해줄 때 어떠한 자세와 방법으로 전해주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게 6장 1절 이하의 이야기예요. 그걸 구제의 이야기로 이제 풀어내는 거예요. 원문성경을 보면 6장 1절의 처음 시작이
‘프로세코’ 주의하라, 로 시작돼요. 헬라어나 히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맨 처음에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뭐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예요? 6장 1절 이하의 구제 이야기가? 주의하라! 구제할 때 너희들이 말씀을 전할 때 사랑을 흘려 줄 때 이거 주의해야 돼. 이렇게 하면 안 돼. 그리고 이렇게 해야 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세코’, 주의하라! 라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어지는 단어가 ‘호 엘레모수네’ 에요. 자 ‘구제’ 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그건 일반적 구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영적구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말씀을 제대로 전해주어서 그 대상을 그 영적 빈곤함 영적 추위. 영적 어두움에서 건져내는 걸 ‘엘레모수네’,구제라 그래요.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거 주고 입을 옷 주고 그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의에 겉옷 주고 하늘생명 양식을 주어서 하늘 적 존재로 살려내는 일. 그거 하라는 거예요. 그걸 구제라 그래요. 그 엘레모수네의 그 구제에 의해서 그 대상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와 요렇게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합일이 될 때 그걸 에이레네, 라 그래요. 같은 어근이에요. 에이레네가 뭐예요? 평강. 평화라 그래요. 엘레모수네와 에이레네 이게 이렇게 연관이 되는 단어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히브리사람들은 그 지고스라는 그 멍에 아래에 항상 두 마리의 소를 묶어요. 멍에를 꼭 두 소위에다가 얹어요. 그리고는 이 두 소가 같이 밭을 갈고 같이 짐을 나르게 한단 말에요. 히브리사람들의 멍에는 그 멍에에요. 근데 하늘의 소가 자기 멍에,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내 멍에 있다, 그러죠? 멍에를 짊어지고 내려왔는데 같이 멍에를 질 놈이 하나도 없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내 멍에 져라. 내 멍에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왜? 그건 쉽고 가볍다, 그랬어요. 왜 쉽고 가벼워요? 이분이 주도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근데 니들이 율법 지킨다고 그런 어떤 행위로 니들이 나서면 그건 무거워. 어려워,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멍에 안으로 들어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 멍에 져라, 그러는 거죠.
그렇게 소가 둘이 짝이 되어서 멍에를 지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 한 곳으로 가면서 일을 할 때 이걸 형상화시켜 만들어놓은 글자가 에이레네에요. 그것이 평강이에요. 그 일을 하게 하는 걸 엘레모수네, 구제라 그래요. 단순히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에게 빵 나눠주고 뭐 이런 거 하라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거 하세요. 열심히 하세요. 불쌍한 사람들 잘 도와주세요. 근데 성경은 그런 거 하라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냥 인지상정으로 하세요. 사람이면 하는 거.
따라서 6장 본문의 이야기는 진리를 받아서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주의해야 할 이야기. 그게 확실해진 거죠? 엘레모수네, 라는 그 단어 하나로. 그 구제에 관한 단어를 몇 개 찾아보고 넘어가죠.
눅11: 37-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7)앉으셨더니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식사를 하시면서 손을 안 씻으셨던 모양이에요. 그랬더니 바리새인이 깜짝 놀랐어요. ‘다우마조’, 이상히 여겼다고 되어 있는데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뭐 저런 게 다 있어? 이런 말이에요.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뜻이에요.그게 정결예식이거든요. 근데 손을 안 씻어? 그리고 밥을 먹네? 그런 거죠?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세요. 율법지킴의 그러한 일은 겉의 일이야. 그런 말이에요. 겉을 깨끗케 하는 일이다, 그게 겉의 일이야. 근데 겉을 깨끗케 한다고 속까지 깨끗해지지는 않아, 그래요. 그러면서 속을 깨끗케 해야지, 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면 겉은 뭐고 속은 뭐예요?
겉은 지금 율법이에요, 보시다시피. 율법의 그 행위,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속이라는 내용을 갖고 있단 얘기죠? 근데 이 속이라는 내용에 이르지 못하고 겉의 것만 할 때에 이 속, 하나님은 속만 보신다고 했는데 중심을 보신다고 했는데 그게 속이잖아요? 근데 겉의 것만 아무리 깨끗케 하면 하나님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 란 뜻이에요. 먼저 속을 깨끗이 하면 그 겉의 거는 어떤 모양이던지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쳐주신단 얘기에요. 근데 겉만 깨끗하게 하면?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평토장한 무덤이라 그래요, 그거를, 주님이 그건 무덤이야. 썩은 물만 나오는 무덤이야. 라고 이야기를 해요.
겉은 만드신 이가 속을 만드시지 아니하셨겠느냐? 그러죠? 야, 겉을 만드신 이가 당연히 그 내용인 속을 같이 만들어놓으셨는데 그 속은 모르고 왜 겉의 것만 갖고 난리야?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전혀 너희들 깨끗하다고 안 쳐줘. 거기에 예를 하나 더 하시는 게 십일조 이야기에요. 왜 갑자기 여기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지 궁금하셨죠?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채소, 채소는 배추 파 마늘, 이런 게 아니라 허브에요. 이게 다 뭐냐면 분향 단에서 향을 피울 때 쓰는 것들이에요. 근데 왜 일부러 이것 말고 많은 십일조를 갖고 왔어요. 그런데 왜 요런 것만, 이렇게 성전 안에서 사용되는 고런 것만 예로 들으셨느냐면 율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래요. 겉의 것. 지금 겉의 것, 속의 것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겉의 거 이야기하기 위해서 박하, 운향, 채소라는 이 이야기를 해요.
근데 그 내용이 있다, 그러죠? 내용은 뭐라 그래요? 의! 디카이오수네, 사다크, 그리고 사랑이라 그래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으로 그 율법을 알게 됐을 때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의죠?
그러니까 십일조라는 것의 내용은 의와 사랑이다. 근데 너희는 그거를 ‘버렸다’ 라고 하는데 소멸시키다, 라는 뜻이에요. 겉의 것을, 십일조, 율법적, 겉으로 보이는 십의 하나를 드리는 그걸 하기 위해 진짜 그 내용을 소멸시켰다, 라는 말이에요. 그걸 하느라고. 소멸시켰다.
자, 그런데 그 때는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이잖아요? 그럼 구약이에요. 율법의 시대거든요. 그 땐 어떻게 해야 돼요? 속옷, 율법으로 겉옷을 깨달아야 하는 시대에요. 그죠?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의와 사랑을 배워, 그래서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구절을 근거 구절로 해서 오늘날도 십일조 해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정말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속옷을 갖고 겉옷을 덧입으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라. 그러는 거예요. 당연해요.
원래 십일조라는 말이 십의 대표라는 말이에요. 십의 대표. 그걸 그냥 한국말로 십일조 그러니까 십 중의 하나는 하나님 거. 반드시 드려야 할 거. 우리가 알고 있는 거지 원어는 십의 대표, 십의 대표성. 십의 그거. 그 내용이란 뜻이에요. 당연히 십은 십계명을 가리키는 거예요. 십계명. 근데 십계명이라는 그 단어도 원어는 ‘그 계명의 그 십’ 이라는 거예요. 열 가지 계명이 아니에요. 그 계명의 그 십. 십이라는 건 영부터 구까지의 열 개를 이야기해요. 그걸 조합하면 수없이 많은 율법이 나와요. 그 계명들의 그 십. 그 말은 그 수없이 많은 걸 내가 이 열 개로 설명해줄게. 다른 말로, 이 열 개가 바로 그것들. 그것들을 다 함축하면 이 열 개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열 개는 바로 이 하나야, 가 십의 대표. 십일조라는 단어에요, 그 단어가. 그냥 한국교회에서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삥을 뜯기 위해 만들어낸 게 지금 우리가 하는 십일조고 성경이 말하는 십일조는 그 십의 대표라는 말이에요. 그 십의 대표성. 그 십이 하나야. 그게 뭔줄 알아? 뭐라 그래요? 예수님이. 의와 사랑이야, 그게. 의와 사랑은 누구?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그 계명을 말씀을 성경을 말씀을 예수를 그것, 그 사랑과 의로 내가 깨달아 알아서 내 안에 갖게 되면? 내가 십일조에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제물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우리, 그 우리가 드려져야 할 그 자리에 속전으로 드려진 거예요. 그러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 장자를 하나님이 다 죽여야 되는데 하나님이 살려줬잖아요? 내가 살렸으니까 레위지파, 그들을 장자가 할 일을 시키고 그들에게 네 장자의 속전으로 줘! 가 십일조였잖아요?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바쳐져야 할 그 자리에 바쳐지고 속전으로 드려진 십일조가 되셨잖아요? 그 말이 그 말이에요. 우리가 바로 그걸, 그 율법을 완성하여 내 안에 사랑으로 가지면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는 십일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는 십일조가 되라, 그래요. 바쳐라가 아니라니까요. 되어라,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말 3: 8-10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거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에요. 그리고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이에요.하나님을 도둑질하고 나를 하나님이죠, 하나님을 도둑질 했어. 그래놓고 우리가 언제 도둑질했습니까, 라고 한다고요. 근데 그게 도둑질인데 그 도둑질이 뭔줄 알어? 너희들이 말하는 십일조와 헌물이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 (성전)에 들여 나의 집에 (성전에) 양식이 (진짜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걸 내 안에 갖게 되면 내 안이 복으로 꽉 차는 거죠?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십의 일조를 한 푼도 빠짐없이. 록펠러처럼. 록펠런가? 누구예요? 그 인간. 하여튼 회사까지 만들었다잖아요, 십일조 계산하느라고. 왜? 그 회사 유지할라구요. 혹시 한 푼이라도 빼먹으면 하나님이 그걸 칠까봐. 그걸 십일조라고 합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복을 계속해서 부어줄 거야, 이 말이 아니란 말에요, 이 말은.
율법이라는 건 그 안에 하나님을 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하나님을 버리고, 의와 사랑을 버리고 그 율법의 행위만 하면 진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전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게 하나님을 도적질하는 거예요, 이것이. 그런 자들은 죽어요. 마땅히 죽어요. 그들에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뭐냐면 ‘마세르 테르마’ 십일조와 헌물, 십이라는 것의 대표로 하나님의 제물이 드려지는 거예요. 여기서 ‘마세르’가 남성 단수고 그 제물이라고 번역이 된 테르마가 여성 단수에요. 그러니까 십이, 그 십이, 계명의 십이 하나의 제물로 드려지게 되면, 율법의 완성으로 드려지게 되면 니들은 살아. 그런데 니들은 그걸 십일조와 제물로 지금도 율법으로 드리고 있으니 너희들이 어떻게 복을 받니? 이런 말이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도적질 하는 자들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십일조에요.
십이 하나의 제물에서 완성되다. 이게 십일조와 헌물, 마세르 테르마에요. 근데 그걸 껍데기로 그냥 제물로 계속 드리고 희생 제사 드리고 십일조로만 십의 하나로만 계속 드려버리면 그럼 니들이 복 없는 자들이야, 이런 말이에요.
십의 이조 하세요. ㅎㅎ. 재정집사님들한테 혼날 거 같애. ㅎㅎㅎ. 제가 십일조 하지 말랬다고 해서 십일조를 안 한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그러니 제가 이야기할게요. 십의 이조씩 하세요! 그럼 할 거예요? 꼭 자기들이 하기 싫어서 안 하면서 내 핑계를 대. 그리고 목사님이 인간은 절대 인격이 변하지 않는대 그러니까 난 그냥 지금 이대로 살 거야. 그러면서 꼭 제 핑계를 대갖고 항의메일이 오게 만들어요, 꼭. 제가 언제 그렇게 막 살으라고 했어요?
그걸, 그걸 주님이 의와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십일조가 나올 때마다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죠? 멜기세덱. 말라크 세데크 합성어거든요. 말라크가 뭐예요? 말라기. 하나님의 사자, 선지자. 세데크는? 의, 평강. 평강의 선지자, 평강의 사자, 평강의 왕. 그렇게 여러분이 의를 알아 의의 선지자, 의를 전하는 이들이 되면 여러분이 멜기세덱이라니까요. 근데 그걸 모르니까 히브리서에서 그러는 거예요. 너희들이 아직 미성숙해서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 못해주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게 되면 멜기세덱, 말라크 사다크가 되면 여러분이 십일조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제물. 그 십의 그 대표, 그거! 그렇게 되는 거예요. 계명의 완성. 사랑이에요, 그것이요. 너희들이 그 온전한 십일조를 내 창고에 한번 들여봐. 그래서 내 집에 진짜 그 하늘 양식이 꽉 차게 만들어봐. 내 집이 어디에요? 여기잖아요. 성전, 나. 여기에 그 진리를 양식으로 채워봐. 그게 복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게 말라기 이야기에요.
그렇게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제대로 온전하게 넘겨주는 걸 구제 엘레모수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예수님이 뭐라 그러죠? 너희 안의 것으로 구제해 그러잖아요. 그게 엘에모수네에요. 왜 밖의 것 갖고 난리야? 너희 안의 것. 그 속으로 구제해 그러잖아요. 그거 전해, 그러는 거예요. 그거 전해! 십일조? 그래 그거 닦달해갖고 돈 삥 뜯는 거 그런 거에 착념하지 말고 그 속, 그 내용을 얘기해줘. 이게 안의 것. 속의 것으로 전해줘, 이 말이에요. 구제해. 엘레모수네 해. 이런 말이에요.
이렇게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제대로 온전하게 넘겨주는 걸 구제, 엘레모수네라고 하고 그걸 다른 말로 이웃을 사랑한다고 그러는 거죠. 그 때 주의해! 그러는 거예요. 그 때 주의해!
근데 주의도 문제죠. 주의하라고 한다 그래서 주의 할 수 있어요? 모르는데?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여기 삼가, 라고 번역이 돼있는데 이 삼가가 무슨 뜻이에요? 삼가라는 뜻이에요? 아니면 뭐? 이게 ‘호라호’거든요. 제대로 깨달아, 이런 뜻이에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제대로 깨달아, 호라호 하고)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럼 주의 할라면은 뭘 먼저 해야 돼요? 그 율법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호라호 해야 돼요. 본다, 라는 단어는 네 가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헬라어에. 옾타노마이, 에이돈, 블렛보, 호라호 라 그랬죠? 옾타노마이는 그냥 눈으로 보는 거. 옾티컬, 안경점에 써 있는 거. 에이돈은 뭐예요? 하나님이 어떤 목적으로 보여주고, 성전이 저기에 서 있어. 하나님이 보라고 준 거죠? 그걸 보는 거예요. 근데 그걸 어떻게 보느냐? 불렛보, 먹어 보다, 입어 보다, 씹어 보다 이렇게 시험하는 거예요, 자꾸. 보는 훈련하는 거, 블렛보. 그래서 아, 이게 그거에요? 안거. 그 보는 걸 호라호라 그래요. 그러니까 호라호를 먼저 너희들이 계명으로 하면 너희들이 율법을, 말씀이 뭔지를 알면 너희들은 주의할 수 있어. 뭐를? 바리새인의 누룩을)
16:11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깨달아야 주의할 수 있죠?)
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깨달으니까 주의하게 되는 거죠? 그럼 먼저 어떻게 해야 돼요? 여러분이 먼저 알아들으셔야 돼요. 그래야 주의하여 전해줄 수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주의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부주의하게 전하다가 같이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어 멸망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주의가 안 되니까요.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구제할 때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세요. 본문 1절을 다시 보세요.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 하느니라
아버지에게 상 받으려면 사람 안 보는데서 착한 일 해. 이런 말로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갖고 진짜 행하는 사람들 있죠? 상 받으려고. 근데 못내 아쉽죠? 누가 안 알아주면? 하나라도 어떻게 힌트라도 주고 와야 돼. 네? ㅎㅎ. 근데 끝까지 몰라주면? 삐져요. 이게 그런 말일까요? 진짜 상 받으려면 니들 남 안 보는데서 착한 일 해. 그런 말 아닙니다. 여기서 보이다, 라고 번역이 된 ‘데아오마이’는 밖의 것으로만 보는 거예요. 표피적으로 피상적으로만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성전을 보면서 그 성전의 내용인 진리를 보지 못하고 그 성전의 표피적 의미인 율법만 보는 거를 데아오마이라 그래요. 그냥 보는 거. 보이는 거요. 보이는 것만 보는 거. 그 안의 것, 속의 것을 못 보는 거죠. 그걸 데아오마이라 그래요.
요일 4: 12-14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이게 데아오마이에요. 그 어느 때에도 하나님을 그렇게 나타난 형상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아담 모세 다윗 바울 그 누구도 그 하나님을 그렇게 나타난 것으로 못 봤어요. 그 말이에요. 아니 옛날에는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에게 잠깐 보여줬다가 신약시대에는 안 보여주는, 이런 게 아니에요. 어느 때에고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그렇게 데아오마이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런 뜻이에요. 말씀으로 보고 성령을 통하여 보고 그걸 봤다, 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이. 그리고 그 진리를 가진 자가 그 진리를 전할 때 내가 그 진리를 깨달아 알아 아, 내가 하나님을, 온전하신 하나님을 보았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지 ‘그 하나님’을 본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그 세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 ‘그 하나님’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은, 영은 인간의 눈과 인식 속에 포착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못 본다는 거예요. 데아오마이한 자는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진리를 이야기하면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는 거예요. 그걸 봤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못 보니까 육신을 입혀서 아버지인 진리를 넣어 보낸 거 그 예수는 봤다는 거예요. 세상이. 그러나 하나님은 못 봤다,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보는 거. 근데 그 예수 봤다고 구원받은 사람 있어요? 그 예수 보고 구원받은 사람 있냐고요?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온 예수를 보고는 아무도 구원 못 받은 거예요. 그렇게 의를 전할 때 사랑을 전할 때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성경을 그냥 보이는 대로 전하고 보이는 어떤 신비적인 기적이나 이런 걸로 전하고 착한 어떤 사람을 롤 모델로 제시해서 전하고 의를 전할 때 그렇게 데아오마이로 주지 마! 이런 뜻, 이런 말이에요. 그 안에 들어있는 진리를 이야기 해줘. 이런 말이에요. 사람 보는데서 이야기하지 마라는 게 아니라니까요. 사람 보는 데서 착한 일 하지 마, 이런 말이 아니란 말에요.
껍데기로만 전해주지 마. 이런 뜻이에요, 그냥 보이는 것으로만 가르치지 마, 이런 말이에요. 의를 전할 때.
그러니까 성경이 하나님을 본 자는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 하나님 보면 그냥 무슨 드라큐라가 햇빛에 녹듯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봤다고 하는 자는 그게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는 죽은 자라는 뜻이에요. 산자라면 그렇게 얘기 못한다는 거예요. 못 보니까요.그렇게 표피적으로 보는 거. 내용을 모르고 나타나는 것으로만 보는 걸 데아오마이라는 거예요. 진리를 전하여 구제할 때 그 겉의 것만 보여주려고 하지 마. 겉의 것밖에 모르는데 그렇게 밖에 못 전해주겠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너희들은 알잖아? 그러면 그 속의 것을 전해줘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 뭐 신사도 운동이니 신비주의니 이런 것들은 전부 가짜에요. 그들은 보여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하루에도 몇 명씩 일어나야 돼요. 금가루 떨어져야 된다니까요. 주님은 정작 데아오마이 하지 마 이러신다니까요.보이는 것으로 전해주지 마. 그 사람들 이외에는 괜찮냐? 아니에요. 대부분의 교회가 전부 눈에 보이는 것을 가르치고 눈에 보이는 행위를 강조해요. 그리고는 이게 신앙이다, 라고 이야기한다니까요. 주님은 데아오마이 하지 마, 그랬는데.
하나님은 진리를 주시고 이걸 마음으로 가지라고 그래요. 그래야 모든 것이 다 진리가 돼요. 하나님이 그러죠? 내가 천지에 충만하다, 그러죠. 천지에 충만하다는 건 뭐예요? 모든 게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라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뭡니까? 그 진리이신 하나님을 이 사람의 몸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세포를 연구하면 우주가 보여요. 형식과 그 원리가 똑같다고요. 그럼 뭐예요? 천지가 하나님을, 진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그 모든 게 다 진리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거예요. 외모가 비슷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건 다 벗고 갈 거라니까요. 그 진리, 그게 다 충만 이에요. 모든 게 다 진리라고. 모든 게 다 하나님이란 말에요.
근데 내가 그 마음을 진리로 갖게 되면 그 모든, 그 충만 이신 진리, 하나님을 내가 볼 수 있는 거죠? 물론 내 수준이지만. 그 때 내가 충만하다! 그래요. 내가 그 때 충만하다, 그래요. 마음으로 가지라는데 마음으로 갖지 못하고 이걸 표피적인 것으로 계속 행하는 거예요.인류가, 역사가. 그리고 그걸 칭찬해줘요. 이게 옳다, 다르다, 깨끗하다, 라고 자기들끼리 박수쳐준다고요. 그런 교회는 일간지에서도 다 칭찬해요. 모든 걸 다 버리고 농촌에 가서, 해야죠, 물론. 근데 그건 진리 안에서 칭찬할 일이 아니라 그냥 인간세상에서 칭찬받을 일이에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들 그래요. 마음에 진리가 없으니까 자꾸 눈에 보이는 어떤 걸 보려고 하고 그걸 행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마음이 조금 편해지거든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 전하고 행하는 자들은 상이 없대요. 상이 뭐라고 그랬어요?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상. 내가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고 거짓 없이 전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게 내 상이다, 그랬잖아요. 그거는 나와 아무상관 없는 거였는데 어떻게 그 진리를 내가 알게 되어 이 사랑을 흘려주어 사람들을 용서하고 있냐고요? 어떻게 하나님이 하신 ‘그 일’에 내가 동참하여 하고 있냐고요? 그걸 상이라 그래요. 근데 껍데기만 주면? 상없는 거잖아요. 그거 하는 일을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상이 없다, 그러는 거예요. 다른 말이 아니라.
요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당연히 못 믿어야 돼요, 보이는 걸 주었을 때 못 믿어야 돼요)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사야서, 라는 말씀이에요, 이게. 이사야서에서 이미 이렇게 이야기했어)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는 것은 안 되게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란 뜻이에요)
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서에서 이렇게 얘기 해놨다는 거예요. 이사야가 갔다와갖고 아이, 하나님 사람들이 알아먹을 이야기를 좀 주세요!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요! 그랬더니 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냥 그 말만 해. 하나님이 그랬어요. 그래놓고 이사야서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가 원리를 하나 세울게 눈으로 보고 그걸 믿어서 고침을 받는 이는 없어. 근데 자꾸 데아오마이만 해주는 거예요. 이게 데아오마이거든요, 이 단어가. 근데 데아오마이만 해줘요. 율법주의도 마찬가지, 인본주의 마찬가지 개혁주의 진영도 마찬가지. 그래놓곤 서로 막 쑤시고 있다니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원리를 세워놓지 않았다고 그러는데.
그렇다면 그 진리를 못 전해주고 엉뚱한 표피적 율법만 전하는 이들은 상이 없는 거죠? 그게 1절이고. 2절 보세요, 같은 말이에요.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기상이라는 건 하나님이 주는 상 아니에요. 인간들의 상. 그 상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한 대요?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나팔을 분다고 그래요. 어떻게 나팔을 불어요? 회당, 시나고그, 교회에서 외식하는 자처럼 나팔을 분대요. 외식하는 자는 뭐라 그랬습니까? 그게 배우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인척 하는 거예요. 그 내용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면서 대사만 읊조리는. 그걸 외식이라 그래요. 그렇게 나팔 불지 마. 그렇게 나팔 불지 마. 왜 그렇게 나팔을 불까요? 사람들에게 영광 얻으려고요. 그들은 상 받은 자 아니야. 못 전하니까. 내 일 하는 거 아니니까 그건 상 아냐.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을 칭찬해줄 수는 있어. 그게 사람이 주는 상이야. 그 상 받은 거야. 사람들 앞에서 착한 일 하면 하늘에선 상 없어! 이런 말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도 하세요. 텔레비전, 이왕이면 방송국 다 불러놓고 쾌척! 하고 수재의연금 이런 거.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린 상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좀 뽀대나게 하세요, 할려면. 괜찮다니까요. 뭐 그냥 억지로 숨어서 하고 나중에 삐져가지고 왜 아무도 안 알아 줘? 이러지 말고 차라리 기분 좋게 하세요. 할라면.
자, 영광.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라는 이 말. 영광이라는 게 뭐라 그랬어요? 독사(Doxa) ?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면 그게 영광이라 그랬죠? 그래서 그 영광을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돌린다고 했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아버지가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거야. 내가 내게 영광 못 돌려 그랬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로 영광을 주세요. 그럼 이 영광을, 아, 이게 그거군요? 하고 내 말로 내 삶으로 그 영광이 이제 그 진리가 나타나면 내가 그 반사적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지 영광은 엄연히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돌리는 거란 말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사실 영광을 돌리 수가 없어요.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먼저 주셔서 아, 그거군요? 했을 때 그걸 (Doxa)영광이라 그러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못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말도 아니에요. 영광을 돌린다, 라는 건 그 분을 영광스럽게 한다? 그건 빅토리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은. Glorious 이거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걸 영광이라 그래요. 따라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영광을 취하지 않아요.
요 5: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올바로 깨달아져서 그로부터 진리가 선포되어지고 살아질 때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고 이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면 사람의 영광은 뭐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 보이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사람의 영광은 뭘까요? 사람의 대표적인 속성이 뭐라 그랬습니까? 탐심, 에피뚜미아라고 그랬잖아요? 로마서에서 배웠잖아요. 그 탐심이 드러나는 거겠죠? 그 탐심은 뭐예요? 선악구조 속에서 내가 하나님처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영광은 뭐예요? 서로 칭찬해주고 칭찬 받고 하는 거죠. 그러면 이 영광이 서로에게 돌려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말씀 전하는 사람은 이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줘야 되고 이 사람들은 그게 너무 좋아 열광하는 거예요. 이게 서로 영광 돌리는 거예요. 이게 사람의 영광이에요. 예수님이 그 말씀 하시는 거예요.
요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더라. 자, 주깨서 그러한 자들처럼 나팔 불지 마, 그랬어요. 나팔 불지 마. 그 나팔의 의미를 몇 군데 찾아드릴 게요.
사 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말씀 전하는 거. 진리를 전하는 걸 나팔을 불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고전 14:8-9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설교할 때 쉬운 말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이야기하라는 말이에요. 그러지 않으면 헛된 나팔이라는 거예요. 헛된 나팔을 불면 사람들이 귀가 먹습니다.
민 10: 1-2,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 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나팔을 불라, 그런데 소리를 울려 불지 말아라? 이거 불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네? 나팔을 부는데 소리를 울려 불지 말아라? 그 ‘르와’ 라는 말은 소리로 귀를 먹게 하다, 란 뜻이에요. 히브리어 사전 있는 사람 스트롱 코드 7321번 찾아보세요. 소리로 귀를 먹게 하다, 라고 써있죠? 나팔을 불어라, 말을 전해라, 내 말을 전해라! 그러나 그들이 귀 먹게 하는 그 말은 제발 전하지 마. 그거에요. ‘그 나팔’ 좀 불지 마. 근데 예수님이 와 보니까 전부 귀가 먹어있어. 그래서 예수님이 그 표적으로 귀먹은 자를 침을 발라 뚫어주신 거예요. 니들은 지금 귀먹은 바리새인들의 율법, 그것만 듣고 귀가 다 먹어있어. 그러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있잖아. 내가 그 귀 뚫어 줄게. 나팔이에요.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그 나팔 불 때 외식하는 자처럼 나팔 불지 마. 그럼 그들 귀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 나팔을 분다면 너는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사람들을 기분 좋게, 사람들에게 그들의 어떤 자존심 인간보편의 자존심을 독려해주고 그들을 선동해주면 사람들은 굉장히 짜릿해합니다, 여러분.
자, 올 여름에 우리 자비량으로 휴가 갈 돈 다 아껴서 저 중국 어디에 선교 갑시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거 할 때 여러분, 굉장히 짜릿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허름한 월세 방에 사시는데 에어콘도 잘 안 나오는. 우리는 그 에어콘 나오는 집에서 살면 됩니까? 건축헌금 합시다. 그래서 지읍시다, 좀. ㅎ. 여러분 그러면 사람들이 굉장히 불쾌해할 거 같죠? 땡 빚 내갖고 그거 내잖아요! 사람들이. 왜 그런지 아세요? 아이 그리고 그것도 돈만 걷어가는 게 아니라 지하실도 파게 삽 주고. ㅎ 우리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 된다고 포크레인 하나 부르면 될 걸. 아이 일하는 청년들 말에요, 교대로 돌아가면서 순번을 정해서. 이게 무슨 천리마운동도 아니고. 그걸 교회에서 시키더라니 까요. 근데 그걸 또 해요, 인력동원을. 그렇게 돌리면요 사람들이 그거 하면서 굉장히 좋아해요. 사람의 영광 부추겨주는 거예요. 너희들은 할 수 있어! 하고 있잖아? 멋지다, 어떻게 사십일 금식기도를 3회씩 실시할 수 있니? 평생? 야, 어떻게 특별새벽기도회를 저 교회는 한 달씩 일 년에 여섯 차례를 하네? 그거 어디에다가 무슨 이름 새겨준다고 올리고, 그냥 나가서 일도 못하면서 그것도 나가요. 부추겨주는 거죠. 멋진 인간들이야, 너희들이야 말로 참신한 인간이야, 딴 놈들 봐! 다 자고 있잖아? 그리고 그렇게 자기의 숨어있던 신앙심을 격발시켜준 그분을 찬송하죠. 당신 때문에 내 신앙이 이렇게 좋아졌답니다. 나는 근데 요즘 반대의 이야기를, 너 때문에 이렇게 게을러졌다고 자꾸. 아, 내가 언제 게을러지라고 그랬어요? 난 정말 너무 억울해. ㅎ. 아, 목사는 두시에 일어나는데 왜 내 말을 들은 이들은 게을러지냐고요? 난 이상해요. 엉뚱한 나팔 소리 들으면 귀가 먹어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그런 분들은 좀 삼가주셨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도 듣고 이게 전혀 아니다, 라고 공인된 어떤 데 가서 또 듣고 있어. 여기서 귀 먹고 와서 여기서 또 듣고 또 가서 귀 먹고. 그게 가능한가! 나는 좀 이해가 안가요. 지금. ㅎㅎㅎ.
그리고 이어서 본문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여러분,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나요? 정 그렇게 할려면 왼손을 어디에다가 잠깐 두고 와야 돼요, 그죠? 그런데 이건 붙어 있어요. 어떻게 하냐고 이거를? 여기에서 오른 손, 그리고 왼손이라고 번역이 된 ‘덱시오스’ 와 ‘아이스테로스’는 그냥 오른편, 왼편이에요. 성경에서 그거는 좌편 우편이라는 말이 아니라 옳은 편,Right side, wrong side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잘못 오해를 해갖고 우리 선조들도 왼손잡이는 그냥 패갖고 꼭 오른 손 잡이를 만들었잖아요? 의의 오른 손으로 뭐 이래갖고. 그게 성경을 다 곡해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 말 아니에요. 옳은 편, 그른 편. 하나님에게는 옳은 편밖에 없어요. 왼편 같은 거 없다니까요. 하나님의 왼편,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항상 그른 어떤 것을 이야기할 때 왼쪽이라는 단어를 쓴단 말이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가서 하나는 왼편,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했죠? 그 때 그게 오른 편, 그른 편이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가 지금 나에게 뭘 요구하는지 니가 모르고 있어. 둘 중의 하나는 죽여 달라는 건데 그거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야, 그랬다니까요. 니가 지금 나에게 뭘 요구하는지 너도 모르고 있다! 이 얘기라고요.
그러니까, 보세요. 요셉이 야곱에게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므낫세가 장남이고 에브라임이 차남이기 때문에 므낫세를 오른 손 앞에다가 놓고 에브라임을 왼손 앞에다가 놨어요. 근데 야곱이 어긋 맡겨서 왼손을 므낫세 위에 얹어 버리죠? 그게 뭐냐면 옳은 손, 옳은 편 이거는 그 하나님의 그 언약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그 진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왼편은 항상 삭제되어야 할 비진리를 이야기해요. 비 진리 그러니까 뭐 나쁜 거 이런 얘기가 아니라 껍데기로서의 호 코스모스. 세상, 그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므낫세가 뭐예요? 제거하다, 없어지다, 소멸되다, 므낫세. 그리고, 장남인데, 장자가 그렇게 되고 차자는? 에브라임 많은 열매를 맺다, 에요.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는다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야기에요. 그게 예수잖아요? 그래서 그 아비가 요셉인 거예요.그게 오른 편, 왼편의 이야기란 말에요.
마 25:32-34. 41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 이게 덱세오스에요, 오늘 본문에선 오른 손이라고 했죠?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뭐 어떻게?ㅎㅎ. 덱시오스, 오른 편, 양들이 있는 편. 그편, 진리의 편 그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옳은 편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죠 그런 면에서 뭐 오른 손, 그래도 무방해요)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4 그 때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에 있는 자들은 내가 언제 안했습니까? 그러죠? 내가 언제 안했습니까?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에요?
율법주의자들이에요. 기독교 밖에, 예수와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은 긴가민가해서 내가 뭐 했다, 라고 예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없어요. 근데 예수를 믿노라 하고 뭔가를 한 율법주의자들은 ‘내가 한 게’ 있거든. 그것밖에 몰랐거든요. 그렇게 배웠고 성경도 그렇게 봤기 때문에 나는 했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 그 사람들밖에 없어요. 그 사람들의 편이 ‘그른 편’ 이라는 거예요. 그럼 옳은 편은 뭐예요? 모든 게 은혜입니다. 내가 한 게 뭐 있습니까? 그걸 양이라고 그러잖아요? 마태복음 25장에서.
그래서 예수님 옆에도 왼편, 오른편이 갈리는 거예요. 그 구원받은 강도가 옳은 편이에요. 성경에 안 나왔다고요? 옳은 편이에요. 보세요,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있고 양편이 갈라져있어요.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썼다, 라는 건 율법, 가시와 엉겅퀴의 대장, 율법의 왕으로 지금 매달린 거예요. 십자가에 요렇게, 십자가에 매달리는데 이 율법으로 죽으시는 이 예수님을 이편으로 보는 자가 있고 이편으로 보는 자가 있는 거예요. 오른 편으로 보는 자는 우리가 이렇게 죽는 게 마땅합니다. 내가 강돕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왼편으로 보는 자들은 내가 왜 죽어야 돼? 니가 그리스도라며? 나를 구원해야지,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오른편, 왼편이에요. 그러면 진리가 된 옳은 편, 덱시오스들이 하는 일을 그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흘리는 그 일을 왼편들이 알 수 있어요? 없어요? 못 알아요. 못 알아먹어요. 그 말 하는 거예요. 그거 해! 라고. 왼편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거 하지 마.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합시다. 목사의 정년을 3년으로 합시다, (우리도 그렇게 해주세요, 제발. ㅎ)무슨 뭐 조직은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저건 본받아야 할 교회라고 진리와 상관없는 자들도 칭찬해줘요. 참 잘한다, 참 잘한다. 그래, 그런 거 해, 하는데, 진리를 전한다고 하고 그 수준의 그거 전하지 마. 이런 뜻이에요. 왼손이 모르는, 왼쪽이 모르는 그거 먼저 해. 그거 해. 그게 진리가 하는 일이야. 고작 다른 종교인들도 다 하는 그런 거, 그런 거 갖고 저게 훌륭한 신앙인이야, 저게 올바른 교회야 그 따위 거 하지 마. 그게 오른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예요. 지금 그 이야기하잖아요. 구제의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 구제 하는데, 엘레모수네 그거 하는데 그 엘레모수네, 왼손도 아는 거 그거 하지 말고 그 왼편은 모르는, 율법주의는 모르는, 세상은 모르는 그 진리 전해. 이 말이에요.그게 덱시오스에요. 양들만 아는 그거 해.
그리고 마지막 4절이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구제의 이야기 마지막 절이죠?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어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보세요, 개역성경은 전부 그 뉘앙스로 번역을 해놨죠? 한 마디 했으면 됐지 뭘 또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그 하나님이 꼭 갚아준다. 다 이런 뜻으로 돼 있잖아요!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긍휼을 전할 때 그 은밀한 것, 그 ‘크루프토스’는 외적인 것과 대조되는 내적인 것이란 뜻이에요. 그 내적인 것으로 해. 안의 것으로 해, 이런 말이에요. 표피가 율법이라면 그 내용인 진리가 크루프토스에요. 내적인 것을 흘려주어.
여기 ‘보시는’ 이라고 번역이 된 블렛보도, 이 블렛보가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봄이라고 했잖아요? 니 구제함을 그 속의 것, 은밀한 것으로 해. 너의 아버지가 보게 해주신 그 은밀한 것으로 해. 이런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 은밀한 걸 못 봐요. 근데 너희 아버지가 블렛보, 보게 해주신 그 은밀함으로 구제해.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러면 그 아버지가 뭘 넘겨준다고 해요. 개역성경에는 번역이 안 된 말이 거기에 붙어있는데 ‘스엔호파네이오스’ 네 안에 외적인 것을 분명한 것으로 넘겨줄 거야. 이런 말이에요, 파네이오스, 그건 외적인 거거든요. 지금 우리가 크루프토스 은밀한 것을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 은밀한 것을 싸고 있는 그릇, 그게 파니이오스에요. 그걸 하나님이 네 안에 내적인 것으로 분명히 넘겨주신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그 은밀한 것을 보게해주시는 그 아버지의 은밀한 것으로 구제해. 이런 말이에요, 4절이. 안의 것으로 구제해, 진짜로 구제해, 이 말이에요. 그 단어가 여기서 쓰였어요.
롬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하례가 아니라
(이 표면적 유대인이 파네이오스거든요. 그러니까 표면적, 껍데기, 유대인, 여기서 유대인이라고 번역이 된 유다이오스는 유대적인 것, 유다에 속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 표면적인 그 유다에 속한 게 뭐예요? 율법이에요, 옛성전. 옛 이스라엘. 그 표면적, 껍데기인 유다이오스 그건 진짜가 아니야, 안의 게 있어. 그렇다고 표면적 그게 나쁜 거예요? 아니에요, 그거로 내용을 알면 되는 거죠.)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이게 크루프토스에요, 이면적. 그 은밀한, 감추어져 있는 그 유대적인 것, 감추어져 있는 유대적인 것이 뭐예요? 율법, 성전, 그 은밀한 그것. 그것이 진짜 유다이오스야. 유대적인 것이야. 유대에 속한 것이야. 그러면서 )
-할례는 마음에 해야지,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의문은 Gramma 율법이에요)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말씀을 열심히 지켜서 사람에게 칭찬 받는 거 그건 진짜 은밀한 것으로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말씀을 법으로 전하면 안 된다, 라는 그런 말이에요. 그 분명한 것, 그 외적인 것을 니들 안에서 보여지게, 보이게 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밀한 그것으로 구제해. 그것을 흘려줘. 그게 엘레모수네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야 진짜 평강이 오는 거야, 그런 거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위무위(爲無爲) 라는 건 우리가 무(無)자를 자꾸 오해해서 그런데 무(無)라는 건 없음이 아니에요. 진짜 있는 것, 그런데 피조세계가 감지하지 못하는 걸 무(無)라 그래요. 그럼 무위라는 건 뭐예요? 없을 무, 할 위. 그 하늘의 것을 하라는 거예요. 위무위라는 건. 노자의 위무위도 그 말이라니까요. 그거 진리를 해, 이런 말이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마, 목사님이 그냥 막 살아도 된대. 난 지금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앞으로, 난 변화 없어. 기대하지 마. 거기에서 제 이름은 빼주세요, 제발. 그래서 제가 욕을 먹는 거예요, 자꾸. 저는 그런 의도로 얘기한 적 없어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위무위하시라니까요. 진리를 행하시란 말에요.
자, 구제할 때에 하늘의 사랑을 깨달아서 그 사랑을 흘려줄 때 그걸 온전함이라고 하고 그 온전함을 전해줄 때 온전함의 행위를 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잘 아시겠죠?
자, 율법, 세 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그걸 사랑으로 완성시켜주죠? 희생 제사 드리지 마. 이게 살인하지 마, 라 그랬죠? 희생 제사 드리지 마. 성부 하나님과 관계를 잘못 맺으면 희생 제사를 자꾸 드리게 되죠. 그럼 성자 하나님과 관계를 잘못 맺게 되면 남편이신 그분과 관계를 잘못 맺는 거니까 간음을 계속 하게 되죠? 그럼 성령 하나님과, 진리의 성령과 관계를 잘못 맺게 되면? 거짓증거를 계속 하게 되죠? 그러면 이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이 되게 되면 이 세 개가 다 해결이 되겠네요? 그걸 온전함이라고 그러고 그걸 사랑의 상태라고 그러고 그걸 아는 걸 전해주는 걸 사랑한다, 라고 그러고 그걸 올바로, 그 내용을, 표피적인, 뭐 살인, 간음 거짓 증거, 이것이 아닌 그 내용을 사랑으로 전해주는 그걸 올바른 구제라고 하는 거예요. 그 은밀한 거. 그 오른 손의 것. 그거 해. 그런 말이에요. 구제할 때 무슨 뭐 은밀하게 숨어서 해야지, 그런 것으로부터도 이제 자유하세요. 숨어서 하고 싶으면 숨어서 하고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하고. 그러세요. 그러고 회개하고 그럼 되는 거지 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그렇게 진리가 되어 남을 구제할 수 있는 그런 상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게 복이라고 하나님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그 상으로서의 그 일, 그 위대하고 엄청난 그일,
입으로 삶으로 열심히 살아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