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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잃었다가 되찾음"의 사랑

Hebrew 2022. 11. 6. 14:10

옴베르토 에코의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배우자의 기억에서 ‘나’라는 존재가 삭제되었을 때의 기분이 어떠할까?

실제로 미국 뉴멕시코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사랑했던 부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아내의 기억에서 남편이 지워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아내의 기억에는 남편을 만나기 이전과 병실에서 깨어난 이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아내는 자신의 침상을 지키고 있던 남편에게 “누구세요?”라고 질문합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극진한 사랑을 퍼부어 다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번째 결혼하게 되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있는 와중에 아내는 전에 만나서 결혼까지 할 뻔했던 다른 남자와 만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을 쏟아부어 다시 혼인하고 맙니다.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뉴멕시코의 킴 카펜터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옴베르토 에코의 소설이나 킴 카펜터 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참 신랑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생각했습니다.

한 몸이었던 신부가 세상으로 내려가 신랑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세상과 열심히 간음하며 살지요. 그런데 신랑은 집요하리만치 신부에게 집착합니다.

결국, 신랑은 신부를 돌이켜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두 사람이 보낸 시간과 사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감각적인 어떤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에 존재했던 시간과 사건들이 쑥 빠져 버리게 되면 둘은 서먹한 타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남편이나 아내를 한 번 바라보세요.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과 사건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처음 본 그 사람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아니, 첫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이런 질문을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누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자기 탐심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내가 나의 욕심으로 그리고 있던 어떤 그림과 싱크로율이 높은 어떤 이를 만났을 때 우리는 첫눈에 반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와 첫눈에 반한 사람과의 사이에 시간과 사건이 채워지면서 그 첫 감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의 사랑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아가페의 사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 신랑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이미 영원 전부터 우리에게 쏟아 부어지고 있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랑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창조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랑의 지체입니다.

없음이었던 자들이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버린 말도 안 되는 사랑의 사건이 이미 묵시 속에 일어나버린 것입니다.

사랑은 이미 완료의 상태로 묵시 속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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