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요한계시록 강해 11

11.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을 잘 보면 19절만 칭찬이고 26절 이하에서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을 제외하고 20-25절까지 여섯 절이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할 때도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하였길래 책망과 경고를 이토록 많이 받았는가 하는 관점이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과 교회 아닌 모습이 어떤가를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네게 반대할 (일, 어떤 것..

10.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10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 요한 사도를 통해 계속해서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절)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사는 곳의 지리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씀한 것으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 즉 사탄의 보좌이고 곧 “사탄이 사는 곳”으로 ‘사탄이 왕으로 군림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버가모 교회에 대한 말씀에서 십일조를 얼마나 하였는가? 주일성수를 잘하였..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우리는 땅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의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를 안다고 떠벌린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것이 끝없이 허상을 좇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라고 하였다.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위의 것은 영원하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고 하늘의 것이 실상..

08.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08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 교회 일곱 교회에 대한 본문의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일곱 교회를 시대적으로 나누어서 보는 것이다. 일곱 교회는 일곱 시대를 나타낸 역사적 교회의 모습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서머나, 버가모로 해서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이른다고 본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시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이런 식으로 시대적 상징성의 교회로 나누어서 이해하고자 한다. 또 교회를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서 보는 이들도 있다. 세상의 교회들을 일곱 가지로 분류하여 각 특징들이 나타나는 에베소형 교회, 혹은 서머나형 교회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 어떤 교회든지 이 일곱 가지 유형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해석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모든 해석들의 가장 큰 오류는 지금..

07. 요한계시록 1:17-20 살아 있는 자

요한계시록 1:17-20 살아 있는 자 영생이란 단순히 내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는 뜻이고 그분의 십자가에 내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나 그분과 연합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머리였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리로 바뀌어 그분의 몸, 즉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내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요한계시록의 표현대로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도들과 함께 지금도 늘 오고 계신 상태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2,000여년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이해하여 십자가를 세워놓고 그 앞에 모여보라고 요구하시는 표시가 아니다. 완전한 새 생명으로의 창조이다. 그러므로 현실..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요한계시록 강론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요한계시록 첫 번째 강론을 시작할 즈음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요한계시록을 풀어 놓은 책인데 그 내용을 대충 보니 태양계가 움직이는 것, 세계정세와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오늘날 유행하는 코로나까지 연결시켜 종말이 왔고 하나님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기 구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요한계시록을 소위 말해서 기발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또 최근에 저의 블로그에 댓글을 자꾸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아이디로 하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영상을 좀 봤더니 요한계시록 4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05. 요한계시록 1:9-10 주의 날 밧모 섬에서

요한계시록 1:9-10 주의 날 밧모 섬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어떤 글을 대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심지어 번역이라는 것도 해석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책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도 지은이의 의도를 완전하게 다 드러내서 번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번역을 하면서 어떤 용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해석이 가미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본다고 할지라도 이미 내 안에서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해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기록된 말씀으로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를 죄인의 상태 그대로 두시지 않고 주의 영이..

04. 요한계시록 1:6-8 알파와 오메가

요한계시록 1:6-8 알파와 오메가 사람들이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과거를 아는 것으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역사를 사유화하고 싶어 한다. 이는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으려는 모든 행위인데 한마디로 이름 남기기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그 이름에 자신의 인격과 공로가 다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인생으로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인간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흔적을 남기는 역사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존재라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고 묵시를 사는 자이다. 세..

03. 요한계시록 1:4-6 그의 피로

요한계시록 1:4-6 그의 피로 성도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서가 아니라 없는 상태에서 불러내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롬 4:17).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함께 죽고 살리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죽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산 자로 만드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산 자는 날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 이것을 3절에서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하였다. 헬라어 ‘엥귀스’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근처에 서로 가까이 있다거나 시간적으로 가까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아..

02. 요한계시록 1:1-3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1-3 때가 가까움이라 인간은 생래적으로 자기 행위를 기준으로 성경을 본다. 무엇을 하며 어떤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갈까를 생각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나와서 성경이 무엇이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 이전에 소위 말하는 교회의 경전이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는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들은 교회에 목사를 성경 해석하는 전문가로 세워 놓았으니 그에게 의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여 전하는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목사의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