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요한계시록 강해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Hebrew 2022. 11. 9. 11:14

요한계시록 강론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요한계시록 첫 번째 강론을 시작할 즈음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요한계시록을 풀어 놓은 책인데 그 내용을 대충 보니 태양계가 움직이는 것, 세계정세와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오늘날 유행하는 코로나까지 연결시켜 종말이 왔고 하나님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기 구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요한계시록을 소위 말해서 기발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또 최근에 저의 블로그에 댓글을 자꾸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아이디로 하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영상을 좀 봤더니 요한계시록 4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앞에 이십사 장로가 있고 또 네 생물이 있는 것을 세상적 관점과 서열로 생각하고 요한계시록 내용을 아주 만화같이 설명하였는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도 이런 식으로 요한계시록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물질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도 세상적 관점으로 물질화하여 이해하고자 한다면 아주 우스운 만화 같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현상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1:1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분명히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묵시의 관점에서 하늘의 세계를 드러내 주신 것이기에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알게 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성경에서 정의하는 개념으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논리 속으로 들어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강론에서 살펴본 말씀은 9-10절이었다. 주의 날에 밧모 섬에서 요한 사도가 계시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요한 사도가 유배당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머물게 하신 것이었다. 한마디로 요한과 일곱 교회가 성령 안에서 주님의 심판에 참여한 자로 말씀 안에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세상에 머물게 하시는 동안은 환난과 인내로 그 나라의 다스림을 받고 있음을 늘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11절)라고 말씀하셨다. “보는 것”을 기록하라고 하셨는데 단순히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을 본다는 뜻이 아니라 ‘보여주신 것을 보고 인식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당시 소아시아의 인근에 있는 일곱 교회가 어떤 근거로 선정되었는가 하는 문제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어떤 근거로 선택하여 이렇게 서신을 보내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을 보여주는 일곱 교회라는 것이고 그 교회는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두루마리”란 ‘책’이다.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라고 하였는데 ‘기록하라’라는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 12번이나 나온다. 2-3장에서 7번 “편지하라”라는 말로 번역되었고 그 외에는 “쓰라, 기록하라”라는 표현으로 5번 나온다(1:11,19, 14:13, 19:9, 21:5). 기록된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셨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는 정황을 요한이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책으로 기록하여 증거를 주셨음을 같은 차원에서 강조한 것이다(참고 사 30:8, 렘 30:2, 합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2-13절). “몸을 돌이켜”, “돌이킬 때”(헬, 에피스트레포)라고 같은 표현을 두 번 썼는데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다’(히, 슈브)의 역어로 쓰이는 단어이다. 단순히 요한이 몸을 돌렸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한을 묵시의 세계로 끌어들이셨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 성경에 “알아보려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보기 위해’라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음성은 듣는 것인데 본다고 표현하였다. 이는 구약을 배경으로 한 표현인데 출애굽기 20:18을 직역하면 ‘백성이 그 음성을 보았다’라는 말이고, 신명기 4:12을 직역하면 ‘형체를 본 것이 아니라 음성을 보았다’라는 말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 1:23), 즉 보이는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즉 구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보았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는 뜻이고, 요한 사도는 음성을 인격으로 표현하여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증거하였다.

“일곱 금 촛대”(헬, 뤼크니아)라고 번역하였는데 ‘등잔대’이고, “사이”라(헬, 메소스)라고 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중앙,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등잔대에 대해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출 25:31-40)

 

 

창세기에서 광명체(히, 마오르)는 ‘빛을 담는 그릇, 빛이 비치는 장소’를 의미하고 그것을 성막에서 ‘등잔대’로 표현하였었다. 등잔대는 각각의 부품을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금 한 달란트(약 34kg)를 하나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촛대 사이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만화 같은 그림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일곱 등잔대 한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에 중심이 되셔서 머리로써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라고 말씀한다.

“인자 같은 이”라고 하였는데 헬라어 ‘호모이오스’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 같은’을 의미한다. ‘인자’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하신 표현으로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인자로서 고난을 받으며 말씀을 선포한 것에 기인한다(겔 3:25, 단 7:13 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제시되고 있는 인자상은 고난받는 메시아였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인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14에 보면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라고 하여 왕권을 가지신 인자로 나타낸다. 또한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라고 하여 자신의 몸 된 교회와 함께 빛이 되어 왕 노릇 하시는 것을 말씀한다. 결국 “인자 같은 이”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 된 교회로 한몸된 상태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발에 끌리는 옷”이라는 말은 ‘발에 닿는 옷’으로 제사장의 옷과 같은 것(출 28:1-4, 레 16:4)으로 에봇이나 띠에 해당하는 금띠를 띤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지상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성취하여 왕권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낸다(참고 단 10:5).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14-15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는 이 말씀 역시 구약의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한 말씀이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단 7:9)

 

 

레위기 19:32에서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라는 말씀과 잠언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보자면 흰 머리는 존경과 영광을 상징하고 그 노인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말씀하였다. 또한 이사야 1:11에서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라는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흠 없고 정결함으로 영광스런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라고 하였는데 ‘그의 눈은 불의 화염 같다’라는 말이다. 또한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고 하였는데 ‘빛나는 청동 같은 발’이라는 말이다.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단 10:6)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큰 신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의 얼마는 쇠였지만 얼마는 진흙이었다(단 2:32-33). 그러나 신상은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해 부숴지고 그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단 2:34). 느부갓네살의 발이 흙과 쇠로 되어 있는데 이는 융합될 수 없는 재료이다. 이러한 세상 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발은 청동같이 그 어떤 돌로도 파괴될 수 없는 강한 나라로 기초가 튼튼한 영원한 왕국이라는 뜻이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 역시 구약을 배경으로 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겔 43:2)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6절). “오른손”이란 ‘권세,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시 110:1, 마 26:64). 이사야 11:4에서는 “그의 입의 막대기”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49:2에서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라고 하였다. 막대기, 칼이라는 표현을 통해 심판을 강조한 것인데 결국 심판은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참고 마 10:34, 엡 6:17 등).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시 75:2)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라고 하였는데 이 표현 역시 다니엘서 10:6에서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라고 한 인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말씀한 것이다. 보통 얼굴은 ‘프로소폰’이라는 단어가 사용 되는데 여기서는 ‘옵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즉 단순히 얼굴을 말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용모, 외모’를 의미한다. 요한 사도는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씀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시킨다. 교회는 인간의 조직체가 아니라 구약에서 언약하신 하나님이 친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초이시고 중심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란 지금 십자가에 근거하여 성전으로 세우시고 친히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된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2022091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