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요한계시록 강해

04. 요한계시록 1:6-8 알파와 오메가

Hebrew 2022. 11. 9. 11:13

요한계시록 1:6-8

알파와 오메가

 

 

사람들이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과거를 아는 것으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역사를 사유화하고 싶어 한다. 이는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으려는 모든 행위인데 한마디로 이름 남기기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그 이름에 자신의 인격과 공로가 다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인생으로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인간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흔적을 남기는 역사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존재라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고 묵시를 사는 자이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부정하고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하는 일로 귀착되지 않는다면 역사를 산다는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요한 사도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하였다. 그 출처가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혔지만 이는 단순히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교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오직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언약으로 완성된 일곱 교회요 성도가 “우리”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절)이라고 하였다. 우리 성경에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의미는 ‘아버지 하나님께’ 혹은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은 지난 강론에서 살펴본 것처럼 ‘왕국이 곧 제사장’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왕국이요 곧 제사장이다. 5:10에도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라고 말씀한다.

제사장이란 ‘중보자’이다. 중보자란 단순히 양쪽을 소개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이어야 하고, 하나님이 보실 때 완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합류된 자는 그분의 나라요 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땅에서 “왕 노릇” 한다고 하였고, 베드로 사도도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 2:9)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찬양한다. “영광”(헬, ‘독사’)이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십자가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다.

“능력”(헬, ‘크라토스’)이란 인간의 힘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는 힘(골 1:11), 마귀를 대적하는 힘(엡 6:10)인데 한마디로 구원과 심판을 이루시는 왕의 권세를 의미한다. 결국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시고 그 십자가에 근거해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이 있다는 찬양을 통해 “아멘”으로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

 

 

6절 말씀을 지난 강론에서 언급하였지만 오늘 다시 6절에서 8절까지의 본문으로 보는 이유는 요한 사도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이 영원히 있다고 찬양하는 그 감격을 “아멘”, “아멘”으로 7절에 이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아멘, 아멘”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진리를 드러내셨다(요 1:51, 3:3,5, 5:19,24-26, 6:32,47,53, 8:34,51,58 등).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7절). 이 구절을 직역하면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지금 오고 계신다. 그리고 모든 눈 곧 그를 찌른 모든 자들이 그를 볼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나라가 그를 인하여 애통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구름”(헬, 네펠레)은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심판과 관련된 단어로 사용되는데(출 13:21, 16:10 등) 단수와 복수로 구분된다. 그 사용된 예를 보면 물리적인 구름을 표현할 때는 단수로 사용되고(마 17:5, 막 9:7, 눅 9:34-35, 12:54, 행 1:9, 고전 10:1-2, 히 12:1, 계 10:1, 14:14-16 등),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과 연관될 때는 복수로 쓰였다(마 24:30, 26:64, 막 13:26, 14:62, 눅 21:27, 살전 4:17 등).

그러면 우리 성경에 “타고”라고 번역한 말을 잘 이해하여야 하는데 헬라어 ‘메타’라는 단어는 ‘~와 함께, ~가운데에’ 또는 ‘~후에’라는 뜻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곁에서 같이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됨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다음 본문들을 보면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 참고 요 8:29, 14:17 등)

 

 

“구름”이 복수로 되어 있으니까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구름들과 함께’라는 말이다. 이 표현은 구약의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한 말씀이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히, ‘아난’/복수)을 타고(히, ‘임’)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이 말씀과 관련하여 다니엘서 7:18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인자 같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 내용이다. “인자 같은 이”란 고난과 죽음을 겪은 인자라는 메시아가 하늘 구름을 타고 땅으로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권세를 받는 것을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으로 말씀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왕권을 받는 예언을 요한은 왕권을 받아서 오시는 것으로 그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였다. 결국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오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그 나라가 새로운 이스라엘로 임한다는 의미로 말씀한 것이다.

또한 “오시리라”라는 우리 성경의 표현은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에서는 시제가 현재형이다. 즉 ‘지금 오고 계신다’, 또는 ‘지금 계속 임하신다’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표현을 마가복음 13:26에서는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16:27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라고 하였다(참고 마 25:31).

앞의 강론에서 말씀드렸듯이 천사를 어떤 특별한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메시지를 전하는 사자(使者)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본다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큰 권능과 영광으로 임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요 성도들과 함께 하는 상태를 말씀한 것이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라는 말씀은 구약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스가랴 선지자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찔렀다고 폭로한 말씀을 가지고 요한 사도는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19:34에 보면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하였고 이어서 19:37에서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렇게 하여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찔렀다는 것을 요한 사도는 예수님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찌른 자들”이란 “각 사람의 눈”(모든 눈) “땅에 있는 모든 족속”(땅의 모든 나라)이며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면 누가 “애곡”(애통)하는가?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은혜)이 주어진 자가 애통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 회개하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에 굴복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도 이렇게 말씀한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29-30)

 

 

요한 사도는 8절에 와서 다소 뜬금없는 것 같은 말씀으로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8절)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계속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 오고 있는 전능자인 알파와 오메가라’라는 말씀이다. 알파(Α,α)와 오메가(Ω,ω)는 헬라어의 알파벳 처음과 마지막 글자이다. 이사야 선지서의 말씀을 배경으로 한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참고 사 43:10).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표현한 것은 22:13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는 뜻이다(계 1:17, 2:8, 21:6). 여기서 요한 사도는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이요 또한 마침이라는 의미로 그 안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모든 것의 전능한 주인이시라는 뜻이다(참고 롬 11:36).

“전능한 자”란 불가능한 것이 없는 무엇이든지 무조건 다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완벽하게 이루신다는 뜻이다. 결국 요한 사도는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여 찌른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입히심으로 애통하여 자신과 하나 되게 하신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분께 굴복된 자들이 언약의 완성 안에 있는 일곱 교회요 성도이다(202208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