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창세기 강해 13

14. 창세기 2:10-14 네 강의 근원

창세기 2:10-14 네 강의 근원 창세기 2:4에서 첫 번째 톨레도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실행하실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다시 말해서 땅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이 ‘톨레도트’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2:5)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땅을 섬길 온전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땅을 섬길 온전한 사람을 설명하고 보여주시기 위하여 땅에서 티끌을 취하여 사람을 지으셨다. 첫째 아담을 통해 둘째 아담을 보여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땅에서 취한 육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생령이 되어 살아 있다고 하지만 그 상태는 죽은 상태라고 성경은 선언하였다. 결국 둘째 아담이시고, 마지막..

13. 창세기 2:7-9 사람과 에덴

창세기 2:7-9 사람과 에덴 에덴 동산은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거나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관심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에덴 동산의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한다. 비손강과 기혼강은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유브라데(유프라테스)강의 위치는 아니까 티그리스강을 힛데겔강으로 추측하여 지금의 이라크나 터키 근처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아직도 찾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지금 그 위치를 찾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그 위치를 안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흔적을 찾아 위치를 안다면 성경의 내용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더 분명히 믿을 수 있는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창조를 말씀하신 것이 ..

11. 창세기 2:1-3 하나님의 안식

창세기 2:1-3 하나님의 안식 여섯 날까지의 창조가 다 이루어지고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내용이 오늘 본문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안식에 대해 말씀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 자체를 복 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니 날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장로교회가 표준 문서로 인정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보면 이렇게 언급한다. 21-7.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하여 적당한 분량의 시간을 구별해 바치는 것은 자연 법칙에 합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적극적이고 도덕적인 영구한 명령으로 요구하신 것이 있으니, 곧 모든 시대의 인류로 하여금 이레 중 한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히 지키도록 하신 것이..

10. 창세기 1:24-31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24-31 하나님의 형상 본문을 가지고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이른바 ‘문화명령’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에 충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교파의 한 부류는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피임하는 것을 죄악시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설교들이 많다.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될 수 있는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신 것들이 아니다...

09. 창세기 1:24-31 땅이 내는 생물

창세기 1:24-31 땅이 내는 생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4-25절). “가축”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베헤마’라는 말인데 ‘(네발 가진) 짐승’을 뜻하고, “기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움직이는 것, 기는 생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땅의 짐승”이란 ‘땅의 살아 있는 존재’를 말한다. “그 종류대로”라는 말은 땅의 살아 있는 존재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생물”이라는 표현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네페쉬 하야’, 즉 ‘살아 있는 생물체’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모..

8.창세기 1:20-23 바다 짐승들과 하늘 날개

창세기 1:20-23 바다 짐승들과 하늘 날개 넷째 날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두 광명으로 빛을 담는 그릇(등잔대) 또는 빛이 비춰지는 장소(성소)을 나타내주셨다. 중요한 광명으로는 귀하게 여기시는 빛을 담는 그릇으로, 중요하지 않은 광명으로는 하찮게 여기시는 빛을 담는 그릇으로 나누어져 있다. 큰 광명은 낮을 통치하는 영역에 속하고, 작은 광명은 밤을 통치하는 영역에 속하도록 각각 구별되어 땅을 비추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신 창조의 뜻은 두 광명을 통해 빛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역할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 별을 지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별은 낮과 밤을 주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즉 빛의 세력이든지 어둠의 세력이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음..

7.창세기 1:14-19두 광명체와 별

창세기 1:14-19 두 광명체와 별 처음 창조하신 땅은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에 있는 깊은 물과는 대조되어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고 생수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과 구별을 하신 후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칭하신 것이 첫째 날이었다.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드셔서 아래의 물과 위의 물로 나누시면서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궁창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마른 땅이 드러나도록 하신 후 마른 곳을 땅,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시고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게 하신 것이 셋째 날이었다. 이렇게 셋째 날까지의 창조를 통해 혼돈, 즉 형태가 없는 상태에서 형태를 이루신 것이고 그다음 세 날은 공허, ..

6. 창세기 1:9-13바다와 땅

창세기 1:9-13 바다와 땅 창세기 1-2장이 창조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지만 오늘 본문의 셋째 날 내용을 보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창조를 하신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을 나누시고 땅이 식물을 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창조가 없다는 점에서 셋째 날은 창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꼭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드신 것만 창조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있는 것을 나누고 조성하시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실 창조를 보여주신다는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셋째 날에는 식물들을 만드셨는데 식물이란 태양에 의한 광합성 작용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넷째 날에 태양을 만드시기 전까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

5.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본문은 둘째 날에 대한 말씀이다. 창조에 대한 본문을 읽어가면 갈수록 많은 논란이나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모든 주장은 창세기 1-2장을 창조에 집중하여 창조 자체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구절부터 일차 독자, 즉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창조에 쓰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계속 확인해 왔다. 그런 점에서 본문도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독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살펴본 앞의 구절들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6절)라고 하였다. 본문을 직역..

4.창세기 1:3~5 빛과 어둠

창세기 1:3-5 빛과 어둠 성경이 창조에 대한 기록을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성경 전체의 비중에 비하면 창조의 기록은 창세기 1-2장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창조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창조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정형, 법칙, 원리로 만들어 그 속에 넣어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간격설이라든지 점진적 창조설 등 오늘 본문부터 나오는 계속 반복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용어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한다든지 “날”(히, 욤)에 대한 정의를 신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어떻게 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