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창세기 강해

14. 창세기 2:10-14 네 강의 근원

Hebrew 2023. 4. 17. 21:17

창세기 2:10-14

네 강의 근원

 

 

창세기 2:4에서 첫 번째 톨레도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실행하실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다시 말해서 땅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이 ‘톨레도트’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2:5)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땅을 섬길 온전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땅을 섬길 온전한 사람을 설명하고 보여주시기 위하여 땅에서 티끌을 취하여 사람을 지으셨다. 첫째 아담을 통해 둘째 아담을 보여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땅에서 취한 육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생령이 되어 살아 있다고 하지만 그 상태는 죽은 상태라고 성경은 선언하였다. 결국 둘째 아담이시고, 마지막 아담이신 진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오셔야만 살려주는 영이 되신다는 것이다.

 

지난 강론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본문은 2:7-9에서 나무를 말씀하였고 또한 15-17에서 나무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그 사이에 10-14절에서 강에 대한 말씀을 한다. 이 구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강조하고자 하신 것은 나무를 중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강으로 설명하고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라고 말씀한 후 갑자기 뜬금없이 강에 대한 말씀이 나오니 우리는 당황스럽다. 그러니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으며 그 아름다운 전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본문에 나오는 지명이나 표현을 통해 지금 에덴동산의 위치가 어디일까를 생각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성경은 에덴동산의 위치를 알려주고 다 알지 못하는 이름들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0절)라고 하였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에덴 안에 있는 뜰(정원)에서 강이 흘러 나와’라는 말이다. “적시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카’인데 주로 사람이나 동물에게 마실 것을 준다(마시운다)는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는 의미로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시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13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 14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 104:13-15)

 

 

에덴 안에 있는 정원에서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2:5에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셨다는 것에 대조된 표현이다. 즉 온전한 사람이 없었기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지만 이제 7절에서 땅에서 티끌을 취하여 사람을 지으셨고 그 사람은 첫 번째 아담으로 둘째 아담을 보여주는 상태가 되었기에 비를 내리심으로 말씀의 은혜를 입히실 내용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둘째 아담을 통해 온전히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고 주어지는가를 설명하고 보여주시는 말씀이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원”이란 단순히 강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로쉬’인데 ‘머리, 꼭대기,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다. 즉 비를 내려 강물을 생수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머리가 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생수의 근원이 되신다고 선언하였고 스가랴 선지자는 그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동쪽과 서쪽으로 흐를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13)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4-8)

 

 

생수의 근원이신 분이 이 땅에 오시면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만 국한된 구원이 아니라 동쪽이든 서쪽이든 그 생수가 공급되어 흐를 것이다. 여름이나 겨울이라는 계절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여기서 “배”(헬, 코일리아)란 ‘배, 몸의 속이 빈 부분, 내장, 창자, 위’ 드물게는 ‘자궁, 남성의 성기’을 뜻한다. 빌립보서 3:19에서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원수에 대하여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자신의 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배가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근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성령님의 오심으로 해결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함으로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것이 에덴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넷 혹은 4’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네 방위를 보여줌으로 땅, 세상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렇다면 넷의 근원,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셔서 땅에 생명을 허락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네 강이 흐르고 그 땅에 금이 둘러쳐진 것으로 설명하고 보여주시는 것이다.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11절). 여기서도 “첫째”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하드’인데 첫째 날에서 보았듯이 기수로 ‘하나’를 뜻하는 말이다. 즉 네 강이 이 하나에 다 속하고 하나와 같다는 의미이다.

 

“비손”이란 ‘분산, 퍼지다, 자라다, 넘쳐흐르는 물’이라는 뜻이고, “둘렀으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싸바브’인데 ‘주위를 돌다, 둘러싸다’라는 뜻이다. 언약궤를 만들 때 조각목에다 금으로 둘러쌌고 속죄소는 순금으로 만들었다(출 25:10-22). “하윌라”란 ‘모래땅’을 의미한다. 우리 성경에 “순금”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로는 ‘토브’(좋은, 선한, 즐거운)이다.

“베델리엄”이란 히브리어로 ‘베도라흐’인데 민수기 11:7에서는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라고 “진주”로 번역하였다. “호마노”란 히브리어로 ‘쇼함’인데 ‘흰돌’이라는 뜻이다. 제사장의 에봇을 만들 때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출 28:9)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이기는 자에게 이스라엘의 이름이 기록된 베델리엄과 호마노를 준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주신다는 뜻이다. 즉 십자가로 온전히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에 의해 내려진 비가 넘쳐흐르는 강이 되어 그 생수가 모래땅을 적셔 금이 있는 땅으로 만드시겠다는 생명의 풍성함을 나타낸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이 성막을 만들 때 지성소의 언약궤와 속죄소를 금으로 만든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어 메시아가 온전히 드러나는 땅으로 만드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것이 선이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13절). “기혼”이란 ‘터져 나오다, 넘쳐난다’라는 뜻이다. “구스”란 ‘검다’라는 뜻이다(참고, 렘 13:23). 함의 아들이 “구스”이며(창 10:6),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의 첫 용사”(창 10:8)라고 하였다. 이사야 20:3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라고 한 말씀을 보면 애굽 땅과 연관되어 있다. 즉 애굽 땅과 같은 곳에도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날 것이라는 언약이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14절). “힛데겔”이란 ‘급속히 빠르게 흐른다’라는 뜻이다. “앗수르”, “동쪽”은 심판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 11:11)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14절). “유브라데”는 히브리어로 ‘후 페라트’인데 ‘그 열매’라는 뜻이다. 생명의 강이 흘러 생명 안에 풍성하게 되는 열매를 반드시 맺게 하실 것이라는 언약이다. 그 언약을 이루신 분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37-39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네 강의 근원(머리)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땅을 섬길 사람이 없어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셨지만 이제 땅에서 티끌을 취하여 첫째 아담을 통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을 섬겨 자기 백성들을 불러 하나 되게 하시는 이 은혜를 비로소 이루셨다. 결국 생명의 강이 흘러넘쳐 생명 안에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는 성령께서 십자가에 근거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은혜를 완성하신 것을 말씀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여기서 “가운데에”(히, ‘케레브’)라는 단어는 ‘내부의 중앙, 한 가운데’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전능자”라는 표현은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언약을 완성하셔서 자기 백성 마음에 자리 잡고 계신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너”가 누군가?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구원을 이루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는 이스라엘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이스라엘을 통해 이 땅에 보내실 메시아를 의미하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는 것이다. 그 기쁨, 즐거움의 상태를 창세기의 표현으로 하자면 ‘에덴’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어 회복된 에덴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씀이다(2022090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