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창세기 강해

10. 창세기 1:24-31 하나님의 형상

Hebrew 2023. 3. 24. 21:32

창세기 1:24-31

하나님의 형상

 

본문을 가지고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이른바 ‘문화명령’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에 충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교파의 한 부류는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피임하는 것을 죄악시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설교들이 많다.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될 수 있는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신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사람 수가 많아지는 것이 번성이나 충만이 아니며 흔히 말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29절)라고 하신 말씀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30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먹을거리를 구분하셨다는 것은 이것을 통해 나타내실 뜻이 있다는 것이다. 즉 씨가 없는 풀을 먹는 생물이 땅적 존재인 짐승이다. 그러나 사람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신 말씀을 기록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절). 여기서 “우리”란 누구인가? 흔히들 말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기에는 본문 속에서 너무 뜬금없는 해석이 된다. 교회 역사를 이어오면서 성경 내용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교회는 이단들에 대처하느라 성경에 없는 용어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예컨대 ‘삼위일체’라든지 ‘자유의지’, ‘구원의 서정’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신학적인 정의한 그 개념 안에 갇혀 고정된 의미로 생각하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로 표현하였다고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형상이 지향하고 있는 바 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우리”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1:1 강론에서 하나님을 ‘엘로힘’이라는 복수로 표현한 것을 이미 상고했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들과 하나 되는 의미에서 복수로 표현하였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이루실 자기 백성들과 하나를 이루실 것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27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라고 단수로 표현하고 있다. ‘엘로힘 하나님’을 복수로 말씀하셨다가 여기서 “자기”라는 단수로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표현하심으로 어떤 지향점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암시받는다. “형상”이란 히브리어로 ‘첼렘’이라는 말인데 ‘그림자, 닮음’이라는 뜻으로 비유적으로는 ‘허상’을 의미한다. “모양”이란 히브리어로 ‘데무트’라는 말인데 ‘닮음,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형상”이라는 것을 통해 “모양”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된다는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형상을 창조하심으로 모양으로 완성하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이다. 그렇다면 일차 독자의 입장에서 형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보자.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이 말씀은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형상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하시는 것으로 형상을 거론한다. 왜 이 땅에서 어떤 형상이든지 만드는 것을 하나님께서 거부하실까? 그 해답을 5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담이 선악의 나무를 취한 이후 후손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의 자기 모양,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제 흙에 속한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표현이다. 선악의 나무를 취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형상은 자기 모양이고 자기 형상이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방향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참고, 롬 1:21-23). 자기 형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상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기에 진짜 형상이 와서 모양, 즉 하나님과 닮은 존재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에서는 형상과 모양을 결합된 의미로 표현한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3-17)

 

이 땅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었다. 그러기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셔야 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 진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 안에서 함께 세워졌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모양”을 지향하였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양으로 완성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 성경에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같은 모양, 같은 형상’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9-11)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26절)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우리가 아담을 만들고’라는 말이다. 단수, 즉 한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뒤에는 “그들로”라고 복수로 표현한다. 그것을 설명해 주는 구절은 그다음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이다. “남자”란 히브리어로 ‘자칼’인데 ‘씨 가진 존재’를 뜻하고, “여자”란 히브리어로 ‘네케바’인데 ‘씨가 없는 존재’를 뜻한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씨 가진 존재로 여자로 창조하시고’라는 말이다. 즉 씨 가진 존재가 오시면 그들이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씨 가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여자가 그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씨 없는 여자라는 측면에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하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아들로 만드시는 이 일을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일이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4-6)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우리 성경에 “중매”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하르모조’는 ‘결혼하다, 결합하다, 하나되게 하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남녀를 소개한 후 둘이 잘 맞추어서 사귀도록 하라는 그런 중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네케바인 정결한 처녀를 자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져 하나 되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 11:7-10)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8절).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신 ‘문화명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진리로 땅을 충만하게 하심으로 그분께서 다스리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 왕국, 아들의 나라를 말씀한 것이다(요 17:2).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짐승과 같은 존재에게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씨 가진 열매 맺는 양식으로 주셨으나 ‘나’라고 하는 짐승의 존재에게 먹혀 십자가 죽음을 이루심으로 참된 양식으로 넘겨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 참된 양식으로 먹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도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양으로 만드신 십자가의 은혜가 성도에게 입혀져 왕 노릇 하게 하신다(202208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