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창세기 강해

7.창세기 1:14-19두 광명체와 별

Hebrew 2022. 12. 8. 21:53

창세기 1:14-19

두 광명체와 별

 

 

처음 창조하신 땅은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에 있는 깊은 물과는 대조되어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고 생수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과 구별을 하신 후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칭하신 것이 첫째 날이었다.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드셔서 아래의 물과 위의 물로 나누시면서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궁창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마른 땅이 드러나도록 하신 후 마른 곳을 땅,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시고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게 하신 것이 셋째 날이었다.

이렇게 셋째 날까지의 창조를 통해 혼돈, 즉 형태가 없는 상태에서 형태를 이루신 것이고 그다음 세 날은 공허, 즉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내용을 채워 넣으신 창조를 하셨다. 이렇게 하여 흑암, 즉 생명이 없는 상태의 땅에 형태를 갖추고 내용을 채우심으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으로 이루실 생명을 이루실 창조이다. 이것은 창조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언약이다.

오늘 본문은 넷째 날에 대한 언약의 말씀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넷째 날은 해, 달, 별을 창조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별이란 말은 나오지만 해, 달이라는 표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해, 달, 별을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일단 접어두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14-16a절)라고 말씀하는데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을 창조하셔서 “낮”과 “밤”을 나누셨다. 이는 이미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5절)라고 하신 것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역할을 하도록 구별하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라고 하였는데 이 번역은 마치 징조, 계절, 날, 해 이렇게 네 가지를 이루라고 하신 것처럼 이해되나 실제는 광명체를 통해 낮과 밤을 구별한 것을 통해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적을 이루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새번역에는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공동번역에는 “절기와 나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라고 잘 번역하였다.

또한 개정성경에서 “광명체들”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개역한글에서는 ‘광명’,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빛나는 것들’, 바른성경에서는 ‘광체’라고 번역하였다. 이 말의 히브리어 ‘마오르’는 ‘마’(접두어)와 ‘오르’(빛)의 합성어이다. 접두어 ‘마’는 히브리어 알파벳 ‘멤’인데 그릇을 뜻하는 철자이다. 즉 빛을 담은 그릇 또는 빛이 비춰지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면 이 말이 일차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마오르)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니르)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0-21)

 

 

성막의 성소에 ‘등, 등잔대 혹은 불’(출 35:14,28,37, 레 24:2, 민 4:9)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마오르’는 단순히 빛을 담는 그릇이나 장소가 아니라 불을 밝혀 성소가 늘 밝게 유지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등잔대는 7개의 가지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 일체형 기물로 빛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동시에 성소 자체가 그 하나님을 품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출 32:31-40).

이스라엘은 성소를 통해 보여주신 제사장 나라이다. 그러나 성막을 통해 드러내시고자 하신 언약의 뜻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하였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모세는 시편에서 우리의 죄악상을 언젠가 철저히 하나님의 얼굴 빛 앞에 드러내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늘의 모든 밝은(마오르) 빛(오르)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2:8)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마오르)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 90:8-9)

 

 

“큰”(히, 가돌)이라는 말은 ‘위대한, 존귀한, 장성한, 충만한, 온전한’이라는 뜻이고 “작은”이(히, 카탄)라는 말은 ‘작은, 어린, 하찮은, 중요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큰 광명체”란 귀하게 여기시는 빛을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이고 “작은 광명체”란 하찮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빛을 담는 그릇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큰 광명체는 낮을 주관한다고 하였는데 “주관”이란 ‘통치, 지배, 관할, 영역’이라는 뜻이다. 큰 광명은 낮의 통치를 받는 영역에 속하고, 작은 광명은 밤의 통치를 받는 영역에 속하여 있다는 나타낸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롬 9:21-24)

 

 

긍휼의 그릇으로 하나님의 긍휼이 입혀진 자는 빛을 소중하게 여겨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그 다스림을 받은 자이나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하신 진노의 그릇으로 내버려 두신 자는 어둠의 권세, 곧 마귀의 권세에 속해 그 지배를 받는 상태로 구별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한다.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6-7)

 

 

그리고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16b-19절)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생각에 별은 밤을 주관하는 것인데 “낮과 밤을 주관하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별을 창조하셨다는 이 말씀도 단순히 하늘의 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기보다 별이라는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일차독자의 입장에서 별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씨”에 집중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실 후손이 있다는 뜻이다. 그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면 복이란 단순히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명하신 복이 영생이라고 하였다(시 133:3).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한 별이 나오는데 그를 통해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 24:17)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이스라엘의 포로기 때 이 말씀에 근거하여 왕이 오실 것이라는 말이 바벨론에 많이 전해졌을 것이다. “규”란 왕의 ‘홀’(지팡이)을 말한다. “옳은 데”라는 말은 히브리어 ‘차다크’로 ‘하나님의 의’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헤롯 궁으로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2)라고 하였다.

결국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씨”(후손)는 예수 그리스도를 겨냥한 것이었다(갈 3:16). 아브라함, 다윗에게 말씀하신 언약의 후손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왕의 오심이고 그 왕을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는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6-28)

 

 

새벽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다고 하였다. 자신을 주신다는 의미는 26절에서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는 말씀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즉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동일시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왕적 통치에 참여되었음 의미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초두에서 일곱 별을 자신의 몸된 교회로 나타내신 것이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

 

 

결국 창세기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보자면 “땅을 비추라”(15절), “땅을 비추게 하라”(17절)라는 말씀은 단순히 광명체가 땅을 향해 빛을 비춘다는 말이 아니라 빛을 담은 긍휼의 그릇은 긍휼의 그릇대로, 빛을 담지 못한 진노의 그릇은 진노의 그릇대로 동일하게 이 땅에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도록 지으셨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별이 “낮과 밤을 주관”한다는 것은 빛의 세력이든지 어둠의 세력이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2022062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