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6.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

Hebrew 2022. 11. 14. 11:28

산상수훈 6번 말씀

제목 긍휼히 여기는 자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

본문 마 5 :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아멘.

 

복이 있도다긍휼히 여기는 자여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정확하게 직역을 하면 그렇게 되죠감탄문이에요복이 있도다복이 있는 자여그렇게 시작하는 거긍휼히 여기는 자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이게 우리가 오늘 공부할 내용인데요.기독교 성화론은 이러한 구절들이 나올 때마다 아주 단순하게 그것을 인간들의 행위와 결부시켜서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촉구하는 데에 사용하곤 합니다구원받은 성도는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거죠그래야 그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겁니다기독교 역사는 그러한 주장을 알미니언 주의라고 그래요만일 그렇다면 로마서의 이런 구절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됩니까?

 

롬 9: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어떠세요긍휼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을 해도 받을 수 없는 선물이라는 거죠오늘 본문의 예수님 말씀이 문자 그대로 긍휼히 여기는 자만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라는 내용이라면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하고 있는 거죠?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바라면 지금 사도는 달음박질을 하는 것으로도 안 되고 원하는 것으로도 안 되고 그냥 하나님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다고 이야기하잖아요그럼 예수님 말과 정확하게 지금 상반이 되는 내용이잖아요그러나 이 둘은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이게 어떻게 화해가 되는지 잘 보세요.

 

오늘 본문에서 긍휼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엘레에모네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함과 헤쎌이에요그 단어들이 70인 역에서 헬라오 엘레오스’ 로 번역이 되는데 그 단어들은 원래 슬픔 애통 자비 은혜이런 것들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에요그러니까 긍휼이라는 건 자신이나 타자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를 하고 그 상태를 함께 슬퍼해주며 애통해하고 자비와 은혜의 필연성을 공감하는 것이게 긍휼이에요아브라힘 카이퍼는 그 엘레오스’, 긍휼이라는 게 하나님의 가장 요소적인 성격, Essential character 라 그랬어요.근데 그 긍휼이 단순히 우리가 국어사전에 갖고 있는 그런 불쌍히 여김이런 의미만 갖고 있는 단어가 아니에요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구절이 구약에 여러 곳에 등장을 합니다만 한 곳만 찾아보고 가죠

 

시 62:12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 이니이다

 

여기서 인자함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가 헤쎄드에요긍휼이에요자비긍휼은혜 이게 70인 역에서 엘레오스긍휼로 번역이 된단 말에요근게 그것이 주께 속하였다그러죠그 어구를 직역을 하면 주님주님은 긍휼이십니다.’에요이게요. ‘주님주님은

긍휼이십니다주님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긍휼이라는 뜻이에요근데 긍흉이신 하나님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라는 게 조금 앞뒤가 안 맞잖아요앞에서는 주님긍휼주님은 긍휼이십니다.’ 그래놓고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 이니 이다.이게 뭐예요앞뒤가 안 맞죠이 말은 하나님이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인 공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거기에 가입하지 않을 시에는 살아날 수 있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라는 뜻이에요.

 

차치하고긍휼은 인간 측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자연적이며 필연적인 반응인 거예요긍휼은요긍휼은 인간들이 생산해내어서 발휘하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보여지는 거예요인간들이 만들어내는노력해서 생산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발휘되는 거다른 거예요그러니까 성도에게서 나와야 하는 긍휼은 인간이 칭찬을 받는 그런 종류의 긍휼이어서는 안 돼요.

저 사람 참 긍휼한 사람이다긍휼을 베푸는 사람이다이렇게 사람이 칭찬 받는 긍휼이 아니에요긍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그 긍휼이 나왔을 때 하나님이 찬송 되어야 돼요그게 긍휼이에요성도에게서 나와야 하는 긍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인간은 무력자로 폭로가 되는 그런 긍휼이어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는 자다그가 복 받은 자다‘.

인간들이 정의하고 합의한 그런 종류의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란 말입니다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성도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고 성도가 되어서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만 나오게 되는 자연적이며 필연적인 반응을 설명해주시는 거예요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긍휼은 타 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어야 되는 거예요그래야 하늘의 복을 받은 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긍휼이니까.근데 우리가 이 구절을 남을 불쌍히 여기고 잘 도우라는 식의 도덕이나 윤리의 행함으로 보게 되면 이 구절은 다른 이들도 행할 수 있는 선행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죠.

 

그런 식으로 본다면 자기는 월세에 살면서 100억이 넘는 돈을 기부를 하는 어떤 가수가 진짜 긍휼의 왕초죠여러분 그런데 그런 건 불교인들도 열심히 하는 거거든요게다가 그건 예수님을 때려죽였던 바리새인들의 특기 였어요그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했던 사람들이거든요그럼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 하신 그 긍휼을 행한 사람들이란 말에요그들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일부러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했던 사람들이에요정 자기가 도와줄 능력이 없으면 밥을 굶어서 남을 도왔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그럼 그게 긍휼이냔 말에요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엄청난 긍휼의 행위를 쓰레기라고 하셨어요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구제를 하고 약자들을 위해서 자기 몸을 불사른분신을 하는 그런 긍휼을 베푼다할지라도 예수의 사랑을 근거로 하여 나오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 그러죠낫띵 (Nothing)이래요낫띵그거보다 더 큰 긍휼이 어딨어요재산을 다 팔아서 남을 돕고 자기 몸을 불살라서 남을 위해서 내어주는 그런 긍휼보다 더 큰 긍휼이 어디있냐고요근데 하나님이 낫띵이래요헛거래요헛거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모든 게 죄다그러죠죄라는 거예요아무리 착해 보이는 일도 그게 믿음에서 나온 게 아니면 다 죄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단순히 긍휼이라는 선한 행위를 독려하는 차원의 말씀이 아닌 거란 말입니다구약성경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긍휼을 집중적으로 설명해놓은 책이 있는데 그게 호세아서예요거기에 이 긍휼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역할을 맡은 호세아라는 배우와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을 맡은 고멜이라는 창녀의 이야기예요호세아의 헬라식 이름은 예숩니다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 고멜과 결혼을 하라그러죠그리고 자식을 낳는데 그 자식들에게 하나같이 하나님의 저주가 떨어져요.

 

호 1:6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창녀 고멜과 호세아 사이에서 딸이 출생이 됐는데 그 이름이 로루하마예요이 단어는요 아니다‘ 라는 뜻의 불변사그리고 긍휼이라는 의미의아까 뭐라 그랬어요? ’라함‘, 히브리어그 라함이 불변사와 붙어서 조합하여 생겨진 단어에요이게요그러니까 내가 절대 너희는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야이걸 호세아와 고멜의 아이의 이름에다가 붙여버린 거예요난 절대 너희를 긍휼히 여기지 않을 거야니들 꼴을 봐라그게 긍휼히 여김을 받을 모습이냐이거예요창녀 고멜의 자손이 하나 같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요그건 곧 창녀의그 창녀의고멜의 운명이기도 한 거예요심지어 아들의 이름은요 로암미에요그건 역시 아니다라는 부정사 와 백성이라는 뜻의 암미‘ 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죠내 백성 아니야그런 뜻이에요니네는 내 백성 아냐내 백성일 수가 없어호세아서 2장으로 가면 그러한 하나님의 저주가 조금 더 확실하게 그려져 있어요.

 

호 2:2-5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것이며

4.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또 긍휼이라는 단어가 나오죠?)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여기 지금 고멜의 이야기인데 저희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세요누구란 얘기예요이게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거예요하나님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그분이 허락하신 모든 은혜를 그 더러운 정부의 것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이 준 걸 내 정부가 준 거야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우상이 준 거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그런 패역한 창녀와 그의 자손그게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거예요그들은 절대 내 긍휼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는 존재다라고 지금 이야기하시는 거거든요그게 바로 죽은 흙의 상태인 우리의 처음 자리의 현실인 거예요도저히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그게 흙이니까더스트,(Dust). 죽은 흙이니까요그것이요도저히 선을 행할 수 없는 상태존재일 수도 없는 상태당장 이혼을 하고 죽여 버려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음탕한 신부.

그게 바로 이스라엘우리의 처음 자리라는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이 그 창녀에게 임해서 그 용서받을 수 없는 창녀가 하나님의 신부가 되는 걸 구원이라고 하고 거기에 부어진 게 라함’, 긍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저주의 말씀을 퍼부으신 후에 이러한 회복의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호 2:23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며 이 하나님의 긍휼이 호세아서의 대주제예요호세아서 11장으로 가면 그러한 하나님의 그 Essential Character 로서의 그 긍휼이 아주 잘 묘사가 되어 있어요호세아서 11장 7절 보세요.

 

호 11:7-8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이게 이스라엘이에요이게 고멜이에요이게 창녀의 모습이에요그런데 하나님이 그 상태에서 긍휼을 부으시는 거예요그들이 뭘 잘해서가 아니라 이 상태에서)

8.에브라임이여 (이게 이스라엘이죠에브라임이여)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게 하나님의 긍휼이에요평생 창녀 짓만 하던 고멜에게 값없이 부어지는 거 이게 긍휼이에요이걸 성경이 사랑이라고도 하고 인자 자비 자애 인애여러 가지 말로 번역을 하는데 그게 다 라함 헤세드예요그게 다 긍휼이에요근데 그건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일차적으로고멜이 뭘 잘해서 호세아예수의 신부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고멜은 끝까지 창녀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단물 다 빨리고 노예시장에 팔렸어요죽는 거예요이제는고기 덩어리처럼 돼지 시체처럼푸줏간에 돼지 시체처럼 노예시장에 매달려 있었어요그런데 호세아예수가 은 열다섯과 보리 한 호멜 반은 삼십을 갖고 가서 기어코 그걸 사오는 거예요이걸 긍휼이라고 그래요그 푸줏간의 돼지고기가 무슨 긍휼을 베풀어요근데 그 돼지고기에게ㅎㅎ자꾸 돼지고기라고,, 소고기에게,, 그것도 이상한데그 시체에게 긍휼이 그냥 거저 부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긍휼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긍휼히 행하지 않으면 너는 긍휼히 여김 못 받는다이 얘길 하겠냐고요?

하박국 3장 2절 보세요하박국에도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이 잘 나와 있어요.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진노가 가시는 일을 하는 어떤 자들에게 긍휼이 부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진노하고 계신데 그 진노가 돌아 긍휼로 바뀌는 거예요여기에 부흥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완전하게 살려내다라는 의미라 그랬죠근데 어떻게 그들이 살아요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만한 일만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부어져서 그들이 부흥케 되는 거예요그래서 부흥이라는 건 여러분이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 때 그것과 함께 탈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역사 속에서 잘라져나가는 걸 부흥이라고 해요.그러니까 부흥케 해주세요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나 죽여주세요., 란 뜻이에요그러니까 부흥회 이런 거 함부로 하면 안 돼요제가 부흥회 강사로 간 교회는 다 깨졌어요잘 한 거예요그건요부흥된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들이 기특한 일을 행해서 부어지는 게 아니라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부어지게 되는 게 긍휼인 거예요미가 선지자는 그 긍휼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세요.

 

미 7:18-20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여기서 인애가 긍휼이에요)

19.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인애 긍휼이게 다 같은 뜻이에요그러니까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의 죄를 발로 밟고 은혜로 부으시는 거지 인간 측에서 무엇을 해서 반대급부로 부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닌 거예요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의 조건으로 인간 측에서 내어놓아야 하는 긍휼의 행위를 제자들에게 요구하신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그러니까 성화론은 이 대목을 그렇게 가르친단 말입니다긍휼을 내놓아라오늘 본문에 긍휼히 여기다라는 말은 긍휼을 베풀다라는 의미 보다는 긍휼이 있는 자긍휼을 아는 자라는 그런 의미의 형용사로 구성된 어구예요그러니까 이런 뜻이에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여 그대들은 긍휼을 알고 긍휼이 있는 자들이다그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들이므로.“

이렇게 번역하시면 돼요.

 

그렇다면 긍휼을 안다는 건 뭐고 긍휼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인지 한 번 공부해보잔 말에요.

오늘 본문의 이 긍휼이란 단어가 복음서에서 그대로 쓰인 곳이 있어요가볼까요?

 

마 9:27-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이 단어에요이게 똑같은 단어에요.)

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이 에피소드를 보시면 두 소경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긍휼히 여기소서그러죠그런데 그들에게 긍휼이 부어졌어요안 부어졌어요부어졌잖아요그런데 무얼 근거로 부어졌어요이 사람들이 뭘 했다고여전히 소경이었어요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단 말입니다그런데 이들에게 믿음이 있었어요그죠뭐라고 하면서 긍휼을 베푸시느냐면 너희 믿음대로 되라그러잖아요요게 전제에요한 군데 더 볼게요마태복음 15장으로 가보세요.

 

마 15:21-28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이것도 똑같은 단어에요불쌍히 여기소서긍휼을 베풀어주소서란 뜻이에요)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너 개다란 뜻이에요)

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맞습니다저 갭니다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긍휼이 베풀어지고 있죠주여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그랬는데 마지막에 긍휼이 부어지잖아요그런데 무엇을 근거로믿음을 근거로 부어진단 말입니다이스라엘 사람의 입장에서 이방여인이이 여자 가나안 여자예요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의 긍휼을 입을 가능성은 제로예요제로 %. 그런데 그녀가 긍휼을 입는단 말입니다. ‘여자야네 믿음이 크도다!’ 이걸 근거로 긍휼이 부어져요이렇게 하나님의 긍휼은 믿음을 전제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어지는 거예요엄밀히 말하면 믿음이 전제 되었을 때 긍휼이 부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에게서 이러한 믿음이 나오는 거예요믿음이라는 것의 주체도 하나님이니까요.

결론부터 서둘러 말씀드리면 성도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긍휼히 여김이라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만을 의지하는 그 믿음인 거예요그래서 위의 두 경우 다 그들의 믿음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입니다그러니까 긍휼을 좀 베풀어주세요로 그려지고 있는 거예요그걸 믿음이라 그래요예수님이.

 

생각해보세요소경이 스스로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죠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라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마찬가지에요이방의 가나안 여인이 이스라엘의 선생에게 긍휼을 입을 방법은 전혀 없어요그래서 예수님도 그 여인을 개라고 부르시는 거예요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그런데 그 여인이 자기가 개라는 걸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어요주인에게서 무엇을 얻어먹을 만한 자격이 요만큼도 없는 개라는 걸 자기가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단 말입니다그랬더니 하나님이 그걸 믿음이라고 하시더니 그에게 긍휼이 부어지는 거예요그러니까 긍휼을 베풀다라는 건 아나는그러니까 긍휼히 여긴다라는 건 나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면 그냥 죽은 개에 불과한 거군요요게 전제가 되는 거예요고걸 믿음이라고 하잖아요고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성도에게서 나오는 긍휼히 여김은 바로 그거란 말입니다.

 

그 긍휼히 여김의 대상은 나를 포함한 전 세계거든요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라는 것을 아는 게 나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으면 큰 일 날 존재인 것처럼 저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으면 큰 일 날 존재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그렇게 대해주는 걸 긍휼히 여기다라고 하는 거예요집 팔아서 불쌍한 사람들 돕고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그런데 전부 그런 걸 억지로 해내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지이러고 앉아 있는 거죠.

 

그러니까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서 발휘되어야 하는 긍휼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이 되는 거고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존재일 수 없다는 자기부인의 고백을 함의하는 거예요그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

나부터 긍휼히 여겨야 돼요그게 뭐냐면 나는 하나님의 긍휼히 없으면 큰 일 날 존재였구나이게 나를 긍휼히 여기는 거잖아요.

이렇게 남을 대해주는 거그래야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단 말에요.

그러한 긍휼의 실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잘 설명해놓으신 곳이 누가복음 10장이에요가보죠.

 

눅 10:33-37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게 긍휼이에요)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요 단어가 똑같은 단어에요긍휼을 베풀다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

 

뭐 하라는 거예요자비를 베풀어너 지금 네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긍휼을 베푼 자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입니다그래 그럼 가서 너 긍휼을 베풀어그랬어요근데 여러분이 사마리아인의 비유 배워서 아시지만 그가 그 말대로 행할 수 있었어요없었어요그는 오히려 강도 만나 자였죠그가그래서 그가 긍휼을 베푸는 게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부터 긍휼을 받아야 할 자였잖아요그러니까 너는 네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네가 누구를 사랑해서이걸 나중에 자비긍휼이라고 바꾼단 말에요니가 누구를 사랑하거나 인애를 베풀거나 긍휼을 베풀어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니라 너는 강도 만나 거반 죽은 자이기 때문에 선한 사마리아인그러니까 이 세상에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 땅에 가면 죽을 사람이에요죽는 사람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개 취급했거든요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와서 바로 그 취급 받았잖아요진짜 죽였잖아요개처럼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아 영생에 이르는 거야그러니까 가서 이와 같이 해라고 하는 거예요긍휼히 여김을 받아라는 뜻이에요긍휼을 베풀어라가 아니라.

 

그러니까 긍휼은 우리가 강도 만난 자그래서 죄와 허물로 거반 죽은 자라는 걸 깨닫고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요 자리에 내려간 자들에게 부어지는 거예요아니정확히 말하면 긍휼이 베풀어진 자에게서 바로 그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나는 강도만나 죽은 자니까선한 사마리아인이여 나를 도우소서요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나부터 긍휼히 여기고 그러한 자처럼 댁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그러니까 나는 당신들의 외모를 갖고 당신들이 선하다악하다 이렇게 판단을 할 수가 없네요아무리 당신들이 많은 가치를 그리고 행위를 쌓고 가지고 사유하고 있다할지라도 당신들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었으면 그냥 푸줏간의 돼지고기일 뿐이니까 나는 당신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아요이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

 

성경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자가 없다그랬어요.

 

롬 3: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런데 율법사가 와서 나는 율법 다 지킵니다이야기 한 거예요왜냐면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니까그래그럼 너 지금 나에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는데 그럼 가서 율법 다 지켜율법이 뭐라고 이야기하대그랬더니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율법사가주 너의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게 율법의 진의입니다라고 율법사가 알고 있다니까요그러니까 지식은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613가지의 그 율법의 조항이 사실은 주 너의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수렴된다는 걸 율법사가 알고 있더라니 까요예수님에게 대답을 하더란 말입니다그렇게.

그거 다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랬어요그래가서 그럼 해그랬어요그랬더니 율법사가 뭐라 그러는 거예요나는 율법사니까그리고 선민이니까이스라엘 사람이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거는 따놓은아니 이미 하고 있는 거고 그러면 누가 내 이웃인지를 가르쳐주세요내가 가서 확 사랑해버릴게요이런 거죠그 때 예수님이 이 비유 주신 거란 말에요율법사가 지식으로는 율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진짜 그 진의는 몰랐던 거죠율법사는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은 거예요아니라는 겁니다그래서 자기는 긍휼을 베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은 거예요그러니까 내 이웃을 가르쳐 주세요그런 거예요예수님한테가르쳐 주세요내가 가서 사랑할 테니까긍휼을 베풀게요그랬어요그런데 예수님은 너는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네가 강도 만난 자라니까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모든 인간은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자인애를 베풀 수 있는 자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라는 걸 폭로하시는 거예요니네들은 강도 만난 자이기 때문에 그 죽은 몸으로는 누구를 사랑하거나 긍휼을 베풀거나 섬겨줄 수가 없어왜냐면 강도 만나서 죽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 그게 바로 너희의 실체인데 니들이 누구를 긍휼히 여기니그 몸으로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몸으로 누구를 긍휼히 여겨그러니까 긍휼히 여김을 먼저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근데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서 중요하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사랑과 긍휼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는 거예요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부어져야 나는 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지 내가 그런 것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절대 못 된다그걸 배우시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긍휼을 입어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 자들인 거예요.

성도가 내어놓아야 하는 긍휼은 이렇게 나는 강도 만나서 거반 죽은 잡니다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긍휼이 없으면 그대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라는 자기부인의 고백이에요그러한 자기부인의 과정 속에서 다른 이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되는 진짜 긍휼이 나오는 거죠이거는 과정이며 지향성이지 여러분이 시간이 흘러감으로 해서 이렇게 쌓아서 가질 수 있는 사유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에요이 긍휼이라는 단어히브리어 라함은 원래 내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요내장.갑자기 곱창이 먹고 싶어지는데..ㅎㅎ히브리사람들은 사람의 내장에서 긍휼이나 사랑 같은 좋은 심정이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어요그래서 내장이라는 단어를 긍휼은혜자비사랑 이런 단어로 쓰는 거예요내장이란 단어를그래서 그 단어가 그렇게 여러 가지 좋은 감정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로 쓰인 거죠.

히브리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장부 안에서는내장 안에서는 좋은 것만 나온다고 믿었던 거예요그래서 그 내장우리의 내장을 가리키는 단어를 그렇게 좋은 단어들을 지칭하는아우르는 단어로 쓴 거죠.

근데 성경은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12:10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 이니라

 

말이 좀 이상하죠긍휼과 잔인이 어떻게 조합이에요악인에게 긍휼이 있어요여기서 이 단어가 라함이거든요여기서는 내장이라고 번역을 해야 맞는 거예요. ‘악인의 장부는 잔인 이니라’ 니들은 지금 여기서 긍휼이 나온다고 이 단어를 긍휼로 쓰고 있는데 악인의 내장장부는 잔인이다하고 하나님이 확실하게 그냥 확인 도장을 찍어버리는 거예요악인들이 긍휼이라고 내놓는 실체는 다 잔인 인거예요근데 이 긍휼이라는 단어는 내장 중에서도 여자의 자궁을 가리키는 단어에요성경이 여자의 자궁에서 뭐가 해산되어 나온다고 그러죠아주 반복해서 나오죠죄가.

 

시 7: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이렇게 인간의 자궁에서는 죄만 나와요인간 안에서는 죄만 나온다는 뜻이에요그래서 다윗도 자기가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악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인간의 긍휼은 잔인인 거예요그런데 하나님의 자궁에서는 진짜 긍휼이 나와요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아기는 어머니의 탯줄이 연결되지 못하면 그냥 죽은 거예요죽은 고깃덩어리죠그런데 어머니의 탯줄이 그에게 연결이 되어 그가 산자가 되는 거죠요걸 긍휼이라 그래요어머니의 생명선이 끊어지면 그 태아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근데 그러한 자들에게 긍휼히 여겨 안 그럼 죽일 거야이게 말이 되냐고요안 된단 말입니다바울은 그러한 긍휼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이에요.

 

롬 11:30-32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잘 들어보세요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아서 끊어졌어요끊어졌어요그리고 이방인들이로마교회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교회로 들어왔다고요그런데그들이 여전히 순종치 않는데 그들도 저희처럼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끌어들일 거라는 거예요교회로그러니까 지금 여기서는 이방인이고 이스라엘인이고 다 순종치 않은 거예요근데 하나님이 긍휼로 교회로 끌어들인 거란 말입니다.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여기 모든 사람’ 이 인제 이스라엘과 이방인로마인 다 아우르는 모든 사람이죠그들을 순종치 아니함에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에요)

 

니들이 순종을 해서 내가 베푸는 게 아니에요그러면 인간들의 의가 드러나게 되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순종치 않는데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자로 그대로 남아 있는데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게 되면 하나님의 긍휼이 드러나고 나타나잖아요그 이야기하는 거예요이 말은 순종치 않아야 긍휼이 부어진다는 그 말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께 자발적 순종을 내어놓을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다라는 말이에요근데 순종하여 긍휼을 입자라는 게 오늘날 개혁주의의 주장 아닙니까아니에요.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의 인정 위로 부어지는 거예요간단히 말해서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서 긍휼하심을 입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난 누구를 긍휼히 여길 능력이 없는 잡니다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자기부인의 고백을 하는 자가 긍휼하심을 입는 거예요아주 중요한 겁니다여러분거꾸로 알고 계시잖아요그래서 야고보사도도 그러한 긍휼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하는 거예요.

 

약 2:12-13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 구절을 보시면 마치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는 다 심판받아 지옥 가니까 반드시 긍휼은 행하도록 하라는 그런 말로 보이죠그러나 이 구절이 어떠한 문맥 속에 있는지를 잘 보시면 이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바로 윗 구절을 보세요.

 

약 2:8-11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이게 지금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다른 말로 표현그려지고 있는 것같지 않으세요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말을율법을 네가 다 지키면 아주 잘 하는 것인데)

9.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그래놓고 뭐라 그래요?)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거 지킬 수 있다는 말이에요없다는 말이에요네 이웃을 사랑하기를네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기를요 말 다음에 긍휼이 나오는 거예요그러니까 사랑과 긍휼이 막 혼용되어 쓰이는 거죠 지금네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라라는 그걸 네가 제대로 잘 지키면 너는 잘 하는 거야그게 최고의 법이니까잘 하는 거야근데 얘들아 잘 지키다가 하나만 어기면 다 어긴 게 되는 거란다근데 그거 할 수 있겠어물으시는 거예요.)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부연설명까지 해주죠그리고는 이어지는 게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해야 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이게 무슨 말인지를 잘 풀어야 그 다음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라는 말을 이애할 수 있는 거예요여러분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뭐에요율법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겁니까구속하는 거죠그럼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 뭐에요야고보사도가 1장에서 요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요렇게 설명합니다한 번 봤었는데 거기 한 번 가보세요.

 

1:22-25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나오죠여러분이 야고보서를 그냥 표피적으로만 읽으면 이렇게 도를 행하는 자가 돼야 돼듣기만 하면 안 돼율법을 행하는 자가 돼야 돼행함이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인 거야행함이 없는 믿음은 가짜야이렇게 표피적으로만 읽으시면 여러분은 야고보서를 완전히 거꾸로 읽는 거예요야고보서는 로마서하고 똑같은 내용이에요.

 

여기에 자유하게 하는 율법 야고보사도가 뭐라 그래요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 그러죠이 온전한 율법이란 말은 완전하게 된 율법이란 뜻이에요그 말은 누군가가 완전히 지켜서 이제 더 이상 참소의 근거로 쓰여질 수 없는 율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근데 그 율법을 누가 완전하게 했어요예수가.

 

마 5:17 (이거 산상수훈의 일부분이에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의 하나라도 어기면 다 어기는 게 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걸 완전히 지켜야 되는데 내가 그거 완전하게 하러 왔다라는 뜻이에요내가 완전하게 하러 왔다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바로 위에서오늘 본문이 5장 7절이고 이게 지금 5장 17절이잖아요바로 위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이렇게 얘기해놓고 그 율법은 내가 다 지키러 왔다이거말이 안 되잖아요그러니까 거기에서 긍휼이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눈치를 챌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그러니까 온전하게 된자유하게 된 율법이라는 건 예수께서 그걸 완전하게 했다는 것을 아는 복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그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에요복음이에요.

그래서 그러니까 다시 야고보서 1장으로 한 번 가보세요야고보는 그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는 자는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해하는 자라 그래요개역성경이 조금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을 해놔가지고 여러분이 이런 거는 꼭 배우셔야 되는 거예요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는 바로 윗 구절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약 1:23-24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여기에서 라고 번역된 말이 로고스예요이 단어는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 그 말씀이게 로고스거든요고 단어에요똑같은 단언데 요 때에는 동양사상을 열심히 공부했던 그런 분들이 이걸 번역을 했기 때문에 유가나 도가에 나오는 그 도라는 단어를 써서 이렇게 번역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그래요근데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뭐냐면보고 금방 돌아서서 자기가 본 자기 얼굴을 잊어버리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그게 도를 듣고 행하지 않는 거예요이게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에요 요것이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건 로고스를 듣고 행하지 않는다라는 건 말씀에 적혀있는 대로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말씀로고스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가 뭐예요니들은 다 죽은 흙이기 때문에 내가 내려가서 너희들을 살리는 수밖에 없어.

내가 십자가를 져서 너희들을 살리는 수밖에 없어이게 로고스잖아요말씀이잖아요근데 그 말씀을 듣고 우리가 아그렇군요라고 인정을 한다는 건 예저는 죄인 중의 괴수고 저는 죽은 자입니다라는 걸 인정한다는 거죠그런데 말씀을 듣고서 그 때 당시에는 인정을 하는데 금방 돌아서서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죄인이야이렇게 잊어버리는 거요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오히려조금 제가 과하게 설명을 해드리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건 말씀에서 하라’ 라고 한 것들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씀에서 너는 죄인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돌아서서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죄인이야라고 오히려 자기의 의를 쌓는 거이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거예요이걸 누가 이해하겠어요?

자세히 보세요성경을요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지금도를 듣고 행하지 않는 게 뭐냐면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은 건데 왜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느냐면 사람들은 거울로 지 얼굴 보고 가서 금방 지 모습을 잊어버린다고 이야기하잖아요그게 1장 23, 24절이잖아요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건 나는 저주 받아 죽어야 할 죄인이 맞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죄인 중의 괴수답게 사는 걸 말하는 거예요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잊지 않고 사는 거죄 막 지으라는 게 아니라저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존재일 수도 없는 사람이에요영생은 무슨 영생입니까지금 하나님이 지옥 보내도 아무 할 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요거 잊지 않고 사는 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거다라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말씀이 떨어지는 곳에 계속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세요또 들려주세요돌아서면 잊잖아요우리는요돌아서면 잊어버리잖아요그 내용이 25절로 이어지는 거예요.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요게 로고스죠이게말씀복음이잖아요그게자유하게 하는 율법 고걸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보세요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그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보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그가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자란 뜻이에요그게실행하는 자니 그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는 뜻이에요복 받은 자는 바로 그러한 실행을 한다는 거예요말씀 속에서 계시된아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산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구나요걸 아는 게 행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이게 야고보서에서 나오는 행함행함행함 그 단어에요이게.

그렇게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자라는 걸 잊지 않는 것이 ’ 복음의 말씀을 실행하는 거예요이 내용을 2장과 연결을 시켜보란 말에요다시 2장 12절로 갑니다.

 

약 2:12-14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2절의 자유의 율법은 뭐라 그랬어요복음입니다그럼 심판 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하고 하는 건 뭐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즉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 존재일 수도 없을뿐더러 심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말하며 행동하라는 거예요그게 너희는 자유의 율법에 의해서자유의 율법을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저희는 그 복음에 명시된 대로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 긍휼이 없으면 심판 받아 마땅한 자네요이렇게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하라는 뜻이에요그래서 13절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엄중히 경고를 하는 거예요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는 게 정상인데 바로 고 위에 뭐라고 써있었어요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라도 어기면 다 어긴 거다그랬잖아요너희는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다 어긴 게 되는 그런 엄격한 하늘의 율법 아래에 있는 거야근데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그게 율법의 전부인데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너희는 긍휼을 받을 수 없어그래서 긍휼 없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거야알았어묻는 거죠맞죠그건요그거 인정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보면 여기에 그러나’ 가 들어있어요대반전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은 바로 그 심판을 이긴단다라는 이야기에요그 위에서부터 지금 야고보서 2장 1절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하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라’ 너희들도 거저 얻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거 아냐그런데 너희들이 어떻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니거기서부터 이어지는 거예요너희들도 니들이 긍휼을 입어 구원을 받은 자라는 걸 안다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다 긍휼을 입어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것을 알거 아냐그런데 어떻게 니들이 남을 외모로 판단할 수가 있어그런데 봐라그 긍휼이 어떻게 주어지게 된 거니?

하나님의 긍휼이 긍휼은 하나님의 Essential Character 고 우리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다 함의하고 있는 단어다그게근데 율법은 하나만 어겨도 다 어긴 게 되는 거니까 너희들은 이걸 도저히 지켜낼 수 없잖아그럼 어떻게 해야 돼긍휼 없는 심판으로 들어가야지그러나하나님의 긍휼은 그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단다이거예요긍휼 베풀지 않으면 다 심판해버릴 거야이 얘기 아니란 말입니다그럼 우리가 얼마나 표피적으로 보고 믿고 있냐는 말입니다여러분.

 

그래야 야고보서 2장 1절부터의 네러티브가 매끈하게 연결이 되죠안 그러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어니네 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거야그래놓고 나중에 니네 긍휼 안 베풀면 다 죽일 거야이게이 네러티브가 매끄럽게 연결이 돼요야고보서 2장 1절부터 쭉 하나의 일관성을 갖고 지금 가는 거예요끝까지그래서 주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게 진정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와 함께 그의 집에서 식사하는 걸 보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렸죠왜 죄인과 함께 밥 먹느냐는 거예요그 때는 죄인과 함께 밥 먹으면 안 됐어요율법이에요그거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메시아는 자신이 병든 자임을 아는 자에게만 메시아가 될 수 있는 거야이야기하는 거예요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절대 의원을 찾지 않듯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 를 사해주러 온 메시아를 찾을 리가 없다는 뜻이에요그리고는 호세아서 6장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내가 제사를 원치 않고 긍휼을 원한다는 걸 배우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여러분 제사는 율법이죠그럼 긍휼은사랑은 뭐예요그 율법의 총화잖아요율법을 함축하고 있는 거그런데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율법을 원치 않고 율법의 총화인 긍휼을 원한다.이게 이해가 가세요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세요그 율법사가 자기가 강도 만난 잔데 마치 자기가 강도 만난 자를 도울 수 있는 자로 착각하고 있었죠그럼 강도 만난 자를부정한 자를 율법사가 만지면 안 되거든요그럼 율법을 어기는 거예요그런데 율법은 사랑하라그랬죠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어겨야 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선 사랑을 하지 말아야 돼요그건 인간은 율법과 관계없는 자란 뜻이에요그건 하나님 거란 뜻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에요나는 제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니들이 그렇게 행위를 가지고 그런 뭐 긍휼히 여김이라든지 제사를 하는 그런 행위를 갖고 나에게 와서 자꾸 나 잘했죠라고 하는데 나는 그거 원하지 않아나는 긍휼을 원해그게 뭔줄 알아너희들은 긍휼을 받아야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드러내며 살아라라는 뜻이에요제사를 원치 않는다나는 율법 지키는 거 원치 않아그래놓고 니네 율법 지켜긍휼 행해이런 말 할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서 나와야 하는 긍휼은 자신의 처음자리 인식과 인정그리고 그러한 자신에게 부어져야 할 하나님의 긍휼의 필연성을 아는 것이며 그렇게 구원을 받아야 할 자신처럼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자라는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그러한 삶의 지향성니나 내나 다 똑같이 죄인이지 뭘나도 잘 난 거 없고 너도 별로 대단치 않아그러니까 우리 그냥 하나님의 십자가만 꼭 붙들자이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나부터 긍휼히 여기는 거자신부터 긍휼히 여기세요.그러면 다른 이들이 긍휼을 받아야 할 자로 보이게 되어 있어요우리 신앙생활은 그 일로 점철되는 거예요.

그래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부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까지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가 뭐라 그랬어요내 안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재료나 요소가 요만큼도 없다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채워주셔야 나는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다이게 심령이 가난한 거라고 그랬잖아요그래서 그렇게 나는 죄인이네요내 안에는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요소가 요만큼도 없네요거기서 애통이 나오는 거고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구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내놓는 거고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심령이 가난한 자가 긍휼히 여기는뭔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다이런 말이 연결이 돼요이게아니죠.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키고 있고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부각시키고 있고 인간 측의 무력함을 폭로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다 죽일 거야이거 안 되잖아요역시 너희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거야이리로 가야 맞는 거죠그러니까 그건 조금 잘 못 해석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보는 게 되는 거예요.

 

긍휼히 여긴다는 건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긍휼은 손톱만큼도 없으므로 아버지의 긍휼이 제게 필요합니다그리고 저들에게도 아버지의 긍휼이 필요합니다이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내가 뭘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저들을 긍휼히 여겨주세요이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내가 뭘 주는 건 긍휼히 여기는 거 아니에요내 자랑 하는 거예요그렇다고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구제나 자선 선행이건 믿지 않는 자들도 하는 거니까 그냥 인간의 예의 차원에서 하세요사람이면 하는 거니까 하시라고요.

그러나 그걸 갖고 하나님 앞에 자랑으로 갖고 갈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마세요우리는 그러한 자기부인의 고백 속에서 진짜 하늘의 긍휼을 드러내는 자로 사는 거예요그게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이긍휼을 입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드러내야 하는 하나님의 긍휼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