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Q&A

어느 목사님의 예정론에 대한 답변.

Hebrew 2023. 4. 7. 19:59

반갑습니다, 오랫동안 카페에서 자주 뵌 것 같은데 처음으로 글을 올려주셨네요.

 

예정론에 관한 정모 목사님의 글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김재동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적 부패한 죄인 위에 덮으신 피의 은혜가 아니면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 마땅한 우리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오직 성령의 조명과 도우심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기구원을 위한 구원론으로 읽게 되면 정모 목사처럼 신학교에서 배운 예정론의 범주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본인은 칼빈의 예정론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그 비판부터 인본적 구원론에 갇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 구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신 창조주의 선택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정론을 구원의 관점이 아닌 창조론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이해됩니다) 다시 말하면 선택이란 창조주이신 그분의 영역이지 피조물이 요구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 목사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런 무지함으로 인해 인간에게 남아있는 구원의 가능성, 선택의 가능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지요.(하나님의 형상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단절된 아담에게도 일부 남아있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듯 보입니다) 그렇게 인간 편에서 이천년간 교회가 생산한 신학으로 인해 답이 없는 논쟁만 이어온 것이 본인이 열거한 예정론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3-7)

 

위의 짧은 본문에만 예수 그리스도가 6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통한 은혜의 영광의 찬송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창세전, 곧 우리가 있기도 전에 우리 죄의 속량을 위한 아들의 피 흘림이 있었다는 사실은 죄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는 성자 예수님이었으며 그 아들을 위한 아들들의 창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아니라도 어떤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니면 스스로 충만치 않기로 하신 것을 에베소서에선 ‘사랑’이라고 하기에 (엡1:23) 자신의 구원문제로 인해 선택받지 못한 자가 왜 나는 아닌데요? 라고 하거나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자들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유기할 수가 없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모 목사처럼 인간 개인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바로 그런 항변에 바탕한 주장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라고 완료형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심지어 바르트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선택하시고 유기하셨다고 한 것입니다)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다보니 나와 하나님과의 구원의 관계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예정론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창조가 전제된 첫창조라는 것을 가리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뜻의 비밀을 우리에게는 알게 하시고(엡1:9)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아나 케 팔라이오)되게 하려하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엡1:10) 여기서 재 통일이라 함은 이미 창세전의 완성을 전제한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정이 아닌 (그렇다면 하나님의 첫창조부터 오류가 발생합니다) 아들들의 찬송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정 목사의 개인구원에 대한 부정이나 칼빈의 5대교리에 대한 비판 역시 출발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인용한 에베소서에 대한 해석이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분은 칼빈을 비판하기 위한 비판을 위해 에베소서의 예정론을 이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침례교나 감리교에서 신학을 하신 분 같은데 성경을 보는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인본적 구원론에 갇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의 영광을 가리는 종교인으로 자기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려진 수건을 걷어내는 것 또한 주의 영이 하실 것이니 신자는 다만 예 아니요에 대한 증언을 할 뿐이겠지요.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첫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은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짐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정목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을 변호하겠다고 캘빈의 전적 타락 교리를 비판하면서 구원은 회개와 복음을 믿음이라는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주장하는데 죄인은 스스로 회개 자체가 불가능하고(눅15장) 성령의 도움이나 복음의 깨달음 역시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음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사람은 인간의 가치와 가능성에 매몰되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부터가 성경 언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 믿고 회개할 때에 구원받는 것이다(요3:16, 막16:16, 행2:38)”

 

이분이 무지하다는 것은 복음을 듣는 것부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면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에 의한 새창조입니다) 다시 말해 새창조 안에 있는 성도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리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믿는 것과 회개하는 것에 죄인에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것입니다. 이처럼 성도, 곧 피로사신 교회와 세상은 십자가로 서로 못박혀 있는 현실을 목사라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어찌하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신관은 인간들이 만든 모든 종교에 다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종교의 산물이 아닙니다.

 

목사라는 이분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즉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만으로 충분치 않고 인간의 믿음과 회개가 더해져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지극히 인본적 신학에 매몰된 알미니안주의자로 볼 수 있는데 앞서 말한 에베소서의 내용들이 전부 완료형이라는 것을 모르는데서 그런 무지의 항변이 나오게되는 것입니다. (참 죄송하지만 이분은 십자가 은혜의 필연성을 한번도 체휼한 적이 없어 보입니다 이말은 전적 죄인됨의 부정에서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람의 문제는 예수 믿음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부터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선물이지 인간이 개발해서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인용한 요3:16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본문인데 요한은 이 말씀을 그런 뜻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독생자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심판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심판이 함께 등장하는 것입니다(요3:18) 그러니까 이 본문은 만인구원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원과 심판은 인간의 선택이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3:21)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요1:10-13) 그분을 살해해버린 악한 세상에 회개와 믿음을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하나님(성령)의 선택과 창조에 대한 무지인 것입니다 (고전12:1-3)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뜻과 계획 작정 자체가 완성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말씀의 시제가 전부 부정과거 시제로 씌어진 것입니다.

묵시 안에 이미 완료되었고 세상 역사 속에서 반드시 목적대로 완성되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나 능력이 개입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처럼'의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인들에게는 몹시 자존심이 상할테지만 사랑 안에서, 또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고후4:4)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성될 성도에게는 그보다 기쁘고 감사한 현실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첫창조와 새창조를 시간의 흐름이나 과정의 인간적 시간론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말씀에 모순과 오류만 발생시키게 되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 부분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서신서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골1:15, 고후4:4)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되는 아담이며 그 일이 이미 창세전에 묵시의 세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언약이란 관점에서 성경이 통전적으로 이해되어 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는 그 언약의 확증을 위해 죄와 사망을 한사람 아담을 통해 세상에 들여보냈다고까지 증언하고 있지요(롬5:12-14) 선악과 따먹은 아담과 십자가 지신 예수가 하나님의 언약을 함께 이루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은 한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책이지 인간 구원을 위한 경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이 목사의 가르침대로 성경을 구원론으로 읽다보니 예정론에서부터 정목사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도들이 증언한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무시간적으로 완료된 약속이며(엡1:20)(골1:13,3:3)(계21:1-2) 인간들의 어떤 협조 없이도 하나님의 창조는 차질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평강이며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육체로 살아야 하는 우리인지라 성령께서 무시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자기 사람들을 책망하심으로 세상 종교인들처럼 자기증명 자기 영광을 위해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악행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에정론(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선 많은 분량의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간추려서 대강 설명을 드렸습니다. 굳이 정모 목사가 아니라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예정론이라서 앞으로 대전 강의에서도 오해 시리즈로 다루어 볼 생각입니다. 좋은 질문 올려 주셔서 감사드리고 부족한 분분은 다시 질문하시면 아는 만큼 답변드리겠습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댓글입니다.
회개와 믿음 모두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회개에 대해 가르치신 예수님의 비유에도 보면 길 잃은 양이나 잃어버린 드라크마 그리고 가출한 탕자 모두 스스로 주인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회개란 주님에 의해 찾아짐인 것입니다. 또한 믿음 역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선물이란 것을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으로 구원이란 말은 니들이 소유할 수 없는 구원이란 뜻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래서 믿음이란 말은 니들의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 믿음에 대해 못을 박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믿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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