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로마서

102. 표적이냐 실체냐

Hebrew 2023. 6. 5. 17:41

(롬9:4-5(롬9:4-5)

4.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저희것이요 육신으로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느니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9장 4절에서 5절까지 말씀, 우리 함께 봉독합니다.

 

(롬9:4-5)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아 다음 주까지, 공부를 해야, 오늘 설교가 이제 완벽하게 이해가 가실 텐데, 그래두 이번 주에 잘 들어두셔야, 다음 주에 제대루된, 그런 결론을 내리실 수가 있습니다. 아 바울은, 계속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어 그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열심히 피력합니다.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막 주고, 읽어서 깨달아라 라고 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당연히 이 이야기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는 말이예요. 저 민족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됨과, 아들이죠? 영광과, 언약, 율법, 예배, 약속,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 이 있죠? 조상들이 있고, 

또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예수님도 유다지파의 사람이니깐요? 그러나,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시며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가 너희에게서 났지만, 그 예수는? 그리스도가 났는데, 육적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5절이.

 

그럼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지금 바울이 나열한 그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죠? 

그렇잖아요? 아들됨, 언약, 약속, 율법, 조상, 조상 이라는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씨, 아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죠? 근데 그 씨가, 그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니, 우리가 못 알아 먹으니까, 그걸 문자로 펼쳐준게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면, 그 율법은 그냥 풀리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건 좋은 거란 말예요.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겁니까? 그것들을 가지고만 있으면 구원이 돼요?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바울은, 율법이라는 거짓말에 빠져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이스라엘에게, 그 참 말의 진리를 전파해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 말을 한다 그러죠? 그 참 말이 진리라는 말이예요? 거짓말을 하고, 하지 않고, 내가 참말을 하는데, 나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수,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라고 자기의 그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게,지금 로마서 9장이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예를 들고 있는 이 민족적 이스라엘은, 그러한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어떤 자들로 지금 예되고 있는 거잖아요? 모형 되고 있는 거잖아요? 아 그렇다면, 단지 이러한 것들을 열심히 행하고, 이러한 배경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서 육신의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육신의 예수가, 탄생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그 예수를 육신으로 낳았다라고 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지금, 바울이요. 쉽게 말해서 지금, 바울이 나열하고 있는 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 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거라는 거예요, 쎄 메이온, 표적. 양자됨, 언약, 율법, 약속, 예배, 조상, 예수 이렇게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영광, 영광, 독사라는게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걸, 드러난 걸, 독사, 영광이라고 한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 눈에 보이게 나타난 그 영광, 그것이,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이 땅에 세워진 것들이잖아요?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것, 그래서 우리의 눈에 이렇게 보이는 것, 케이마이, 보이는걸, 표적, 쎄메이온, 그래요. 싸인, 씨그널, 어디를? 가리키는거죠? 쎄메이온 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것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이정표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 쎄메이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 보세요.

 

(눅2: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가 구유로 오신 것이, 표적이다 그래요. 

그 예수 안에,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조상 등의 개념들이, 모두 함유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는 예수가, 표적으로 주어진거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닌깐요. 

여기서 구유라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히브리 말로 구유라는 단어가, 에부스 라는 말이거든요? 

에부스 가 요렇게 쓰는데, 요 싸멕이 위에서 이렇게 기둥을 내려다보는 거거든요? 고걸 형상화해서 문자로 만든거예요. 

기둥은 언약이죠? 눈에 보이는 언약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부스, 구유라는 것은 이사야서 1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 구유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시면 그걸 구유라 그래요. 근데 요거를 모음은 뭐 필요 없는거니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지워버리면, 아바스라고 읽어버리면, 요걸 먹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구유라는건 뭐냐하면, 그래서인제 구유라는 말로 쓰는거예요. 먹이통이니까, 

구유라는건, 하나님께서,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어서, 먹이기 위해 준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구유라 그래요? 그게 뭡니까? 

우리에게 양식으로주어 먹이게 하기 위해, 먹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언약, 약속으로 준게 뭐예요? 히브리서에 나오잖아요? 예수라니깐요? 

그 예수라는 아기가, 구유에, 구유에도 아니예요, 구유로, 케이마이, 이렇게 돼 있어요, 제시되어 있어요, 보라구 제시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표적이다 그러는거예요 성경이. 그러면, 

구유로 오신 예수가 그 하늘의 양식, 진짜 양식으로 보여져야, 그게 진리죠? 그런데 그게 그냥 표적으로 보면 그게 엉뚱한 양식이 된다 말이예요.

 

자 예수는, 표적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건 지금, 그 구유와 아기 예수가 하나가 되어 있는 고런 형국을 그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그게 보이지 않는 그 하늘의 영광, 독사, 나타난거야, 하나님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그 하늘이 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나타낸게 독사잖아요? 그래서 그걸, 하늘에는, 하늘의 영광이라고 하고, 그게 땅에, 에이레네, 평화를 가져다 주는거 아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구유와, 구유로 온 그 예수를 보고, 하늘에는 영광,땅에 평화 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근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그분의 행한 일이나, 말 등을 그냥 표피적으로 받아버리면,

'야 예수님이 중풍병자도 살렸대, 혈루증 환자도 응? 살려냈대. 죽은자도, 나사로도 무덤에서 끄집어냈대. 물 위를 걸으셨대. '이런거.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대, 심지어 이거까지. 

그게 무슨 여러분을 구원해주냐구요?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까? 

진짜? 그게 여러분을 용서하나요? 정말? 

그걸 그냥 표피적으로 받으면, 그건 성경이 악 이라그래요, 악. 

마태복음 16장 1절 보세요

(마16: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이 천기가, 프로소포모 우라노스 예요. 하늘의 그 나타난것, 프로소폰, 파님, 

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나타난걸 프로소폰이라 한다 그랬죠? 그걸 천기 라고 이렇게 번역해 논거예요? 

그 하늘의 외적인 그 모습, 나타난 그거, 율법이죠? 그거 당연히. 

그거는 분, 분별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시대의 표적은 부별할 수가 없냐? 이렇게 말씀하세요.

야 저녁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니? 아침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야? 

그렇게 어떻게 껍데기는 잘보고, 너희들이 편한대로 다 해석해서 가지면서, 왜 그 시대의 표적으로 그걸 못보냐? 이런 말이예요. 

그래놓고 나에게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구?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게 전부 그걸 내용으로 담아준건데, 또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 그러냐? 이러는거죠?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이게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걸 표적으로 보고, 표적으로만 보고, 

그리고 주님께 와서, 아 그거 되게 배불르든데요? 굉장히 맛나던데요? 

그때당시에 일용직 노동자는요, 하루에 열심히 노동을 하며는, 한 데나리온 받았어요. 이게 하루 빵값이예요. 

근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쫓는 이들을 무상으로 계속 먹여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쫓아오죠. 하루 죙일 나가서 일해봐야, 떡 하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주니까 당연히 와가, 오더니, 그거 참 멋진 능력이다 이거예요. 그런 기능을 가진 당신 우리의 왕이 돼 달래는 거죠. 

그리고 그런류의 표적을 자꾸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이 뭐라 그러시냐 하면, 

너희는 표적을 호라오 하지 못하고, 그냥 표적을 옵타노마이 에이도 하고는, 

나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 달라고 찾아오는구나. 너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 내용으로 봐야지, 어떻게 너희는 그것을 그냥 표적으로만 보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이 그러죠? 떡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그 표적은, 진짜 하늘의 양식은 그 떡 이야기를 하는 거그덩? 

근데 너희들도 또 세상의 떡 이야기를 하고 앉었니? 내가 언제 그 떡 가져오라 그랬니? 

왜 떡 가져왔냐 안가져왔냐 그거갖고 왜 싸우고 있어? 

그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이라는거야 라고 이야기하는거죠.

누룩은 뭐예요? 섞임과 혼합, 변질, 왜곡의 대명사죠? 누루과 꿀이. 

그래서 주님이 만나 주셨을 때, 이스라엘이, 꿀섞인 과자네? 그러는거예요.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여버린 거에요. 

주님은 진주로 줬는데. 

그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예요. 그렇게 표적으로만 봐버리면, 모든걸, 껍데기로만 봐버리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육적 이스라엘의 그모습이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율법, 성전, 제사 이걸 표적으로만 보고, 그것만 열심히 행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황하게 나열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구요.

바울은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 자들은, 

8장에서 바울이, 피조물들이,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좀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탄식하며 기다린다 그랬잖아요? 

그렇게, 아들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어질 수 없다 라고 단언을 해버리죠? 

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되어, 선이 되니까, 라고 설명까지 해줘요. 

그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구원이 필요한 어떤 이들을 지금 등장시키고 있는 거예요. 

이런 자들은 끊어진다는 거에요. 아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여전히 이런 자들은 아들 아니다? 이런 이야기 하는거에요 지금.

그들이 바로 율법과 희생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 아닙니까? 

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그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율법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은, 

그 , 이 유한 존재들의 절망적 실존, 한계, 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그 옛 모습이며, 진리를 알기 전에 옛 모습이며, 

여전히 그들 알게, 안에 남아있는,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 안에 남아있는, 

그 율법이라는 배설물, 찌꺼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그 이스라엘 아닙니까? 

율법으로 의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반드시 끊어진다 라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던지고 있는 거에요. 니들이 무슨 아들이냐는 거에요.

바울이 율법주의에 빠져있던, 갈라디아 교회에게, 보다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적이 있어요? 

서신서는 대부분, 그 복음, 넷 으로 주어진 그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로 자꾸 회귀할려고 하는, 

그렇게 그냥 퇴보할려고 하는, 그 초대교회들에게 사도들이 절절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낸 편지들 아닙니까? 

갈라디아서 5장 4절

(갈5: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갈라디아 교회는)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게 카탈게오 아뽀호 크리스토스 거든요? 카달게오 는 끊어져서 완전히 멸망하다, 부정적 끊어짐이죠. 로마서 9장에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서, 여기에서 나온거는 그냥 아뽀호 크리스토스 거든요? 그냥 프롬 이예요. 그리스도 로부터. 

근데 앞에 카탈게오 가 이렇게 붙어 버리면, 이거는 진짜 완전히 끊어져서 망하는 부정적인 끊어짐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근데 어떤 자들이 끊어진다 그래요? 율법 안에서 의롭게,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다 라는 거에요. 

그들은 은혜로부터도, 떨어진 자라는거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 다시 말해서, 육적 예수,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이런거 다, 예수 안에 포함된 겁니다? 

그 육적 예수를 표적으로 보고, 땅에 음식, 땅에 먹이, 나의 이 육적 자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리고 이 육적 자아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렇게 표적으로 예수를 봐버리면,

그리고 그예수를, 당연히 그예수가 나에게 그런걸 주었다고 하니까, 섬기고, 숭앙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바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망하는 자들이라는 거에요. 그들은 진리가 아닌거니까.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는거에요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 약속, 언약, 율법, 그 육신의 예수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제가 지난주에, 야곱의 그 얍복강 이후의 삶, 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 요셉의 삶을 유다라는 안경으로 봐야하는 것이라 그랬죠?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는 요셉의 이야기를 풀잖아요? 

이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 삶을 요셉으로 설명해 준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건, 그 율법, 그 자기를 헌신하여, 자기가,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마련할려고 하는 그 열심, 

그게 율법이잖아요? 야곱이잖아요 그것이? 실족시키는 자잖아요? 강도잖아요 그것이? 

그가 하나님에게 환도 뼈를 가격당하여, 그 율법을, 말씀을, 마음으로 갖게 되었을 때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하죠? 

그 삶을 요셉이 설명해주기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밖에서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단 한 줄도 없어요.

이미 그하나님 말씀은 마음으로 가진 자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그 역할로 살고 있는 거란 말에요, 지금 요셉이. 근데 그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고 사이에, 유다의 이야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끼어 넣는건, 바로 이 유다라는 안경을 갖고 요셉을 보라는 거죠? 

그럼 요셉은 이스라엘이고, 유다도 이스라엘이네요. 유대인, 이스라엘 다 똑같은 말 아닙니까?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유대나.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이땅에서 아나데마 의 삶을 살다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 요셉의 삶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성경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거에요. 

그들은 뭘 갖고 있어야 된다? 표적을 갖고 있어야 된다 그래요. 

보증, 표를 갖고 있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말입니다.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남북으로 이렇게 갈라졌을 때, 이름을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이렇게 지은 거는, 

그냥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다 이렇게, 그런 말이예요. 유다가 둘로 갈라졌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유대인, 이스라엘인, 유대, 이스라엘, 막 혼용해서 쓴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메시야가 오셔야 되는 거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이, 르우벤으로 시작하여, 벤 야민으로 끝나는 거에요. 벤이 아들이니까. 

르우벤, 아들이 여기 있다 보라, 아들이다, 아들의 시작. 벤 야민, 오른 손의 아들, 완성된 아들. 이런 뜻인 거에요. 

그리고 열 둘을 아들로, 성경에서 계속 쓰잖아요? 열둘, 아들. 

그러니까 유다도, 아들을 낳아야 하고, 씨를 가져야 되고, 이스라엘도? 아들을 가져야 돼요. 그래야 그 아들에 의해 그들이 살아나요. 

근데 그 아들은, 표적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되고, 진리로 해석된 표적이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유다가 표적을 갖고 있는거고, 그 이야기가, 요셉이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양식을 관장하잖아요?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표를, 인을 갖고 있는 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같은 거니까. 

그 개념을 끌어들여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10장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영적 이스라엘, 씨를 가진 어떤 이들을 설명하는 거에요.

어떤 이들은 그걸 엉터리 씨로 갖고 있더라는거. 

그래서 그들이 갖고있던 수많은 표적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게 그거냐? 그건 내용으로 이해되어져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끊어짐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 이건 우리의 이야기라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은 우리니까.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요셉이라는 아들로 축약이 되어서, 그자손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유다는 메시야를 낳아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죠?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실로가 온다 그랬는데, 창세기 49장에서, 그 실로가 메시야거든요. 유다의 씨로 실로가 온다, 그래야 유다가 살아난다 말입니다. 

근데 유다는 그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그래서 그 세째에게, 며느리를 주질 않아요.

며느리를 세째에게 줘야 자손이 생긴다 말이예요. 그자손이 없으면 자기도 죽습니다? 멸망이란 말예요.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주님이, 땅에, 음란한 여자, 성경에서 간음하는 여자는 항상 뭘 의미한다 그랬죠? 

내 남편을 그리스도, 진리로 갖지 않고, 율법으로 가져, 나와 연합시키면 그걸 간음한다 라 그러잖아요? 성경이. 

간음하는, 율법과 간음하는 자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율법으로 오셨다는건 뭐예요? 그분이 간음하는 여자, 창녀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는 거에요. 

오시더니, 그 씨와, 그 씨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어떤 이에게, 그래서 죽어야하는 어떤 이에게 가서, 

그에게 인과 지팡이를 받아내고는, 씨를 만들어 버리는 거에요. 

그 여자가. 이 유다는, 죽어야하는 이 유다는, 뭔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가 지난주에는, 이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죽어야할 부정한 다말이, 나중에 그 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그 씨의 주인에게,

그 씨의 주인의 인과 지팡이를, 내놓아야 산다 그랬죠? 그 이야기나, 

지금 제가 지금 다말을, 우리를 살리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는 거나 똑같은 이야기예요.

그 여자에게 유다는 뭘 내놓아야 되냐 하면, 염소를 주면 안돼요. 근데, 유다가 자기가 뭘 알아서 염소를 안 준게 아니라, 

이쪽에서 안받아버리는 거래니깐요, 희생제물을, 희생제사는, 율법은, 안받아버리고, 인과 지팡이만 뺏어버리는 거예요. 넌 내꺼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씨가 생기자, 유다에게 어떤 일이 생기냐면, 그가 어떤 존재인지가 폭로가 돼요. 

그 씨가 생기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싹 감추고 있었는데, 씨가 생기자, 어떤 일이 폭로가 되냐면, 

마누라가 죽은 지 메칠 되지도 않아서 창녀와 잠을 잔 유다가 폭로되는 거에요. 그거는 그때 당시의 율법으로도 맞아 죽어야 되는 거에요, 돌에 맞아. 다말이 입만 뻥끗하면 유다는 죽는 겁니다 거기에서, 다말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야할 그가, 씨를 가진 그 여자가, 자기가 그 모든, 그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평가를 다 자기가 뒤집어 써버리고, 

입 뻥끗하지 않고, 유다에게만 인과 지팡이, 이게 당신꺼죠? 라고 이야기 한 다음에,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에요. 

그때 유다가, 그게 의다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니가 의롭다라고 이야기 한다니까요? 성경이 말하고 싶은건 그거란 말입니다. 

중요한건, 유다는, 그리고 다말, 살아야 하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반드시 그표, 그 인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라는 이야기예요. 

그게 요셉의 이야기였고. 그러면 사는 거예요.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라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모면하죠? 

요셉이라는 아들은 무죄한 아들이었어요. 다른 형제들의 그 죄와 어두움을 고발하는 아들이었죠? 

고자질을 잘하는 고런 얍삽한 인간이었다 라는 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다른 이들의 어두움이 드러나버려. 그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게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떨어지면, 어두움과 그 죄가 막 드러난다구, 폭로된다구요. 그게 요셉의 역할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그 형제는, 죽여야죠. 

그래서 형제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넣었는데, 유다가 팔자, 죽이지는 말자 

그래서 팔아요. 어디로 갑니까?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이 어딥니까? 무죄한 자가, 애굽으로 가, 애굽의 감옥으로 들어가요. 

요한계시록에서 그 애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 율법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로, 죄인이 되어 간다니깐요. 무죄한 아들이.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살아, 그 땅에 식량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 그 안에 양식을 가진 자, 로 그 아비를,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거에요. 

야곱이 이스라엘이니까.

 

그러이까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반드시 그 씨를, 갖고 있어야 돼요. 뭘루? 표루. 보증으로. 꼭 갖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내용으로 갖고 있어야 돼요. 그냥 껍데기 표로 갖고 있으면 안되고. 고게 나를 살리는, 씨란 말예요. 

나를 살리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 아들을 씨로 가져야 살 수 있어요. 

그 아들은?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죠? 그러면 반드시 그 영을 담는 그릇이 필요해요. 

그 진리를 담은, 담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 영의 그릇이 육신적 예수였어요. 

제가 지난주에,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랬죠? 

다말이 유다고, 유다가 다말이니까. 중요한건 그 표라닌깐요. 

그 표라는건, 쟈칼 이고, 쟈칼 이란 단어도 표 예요.

쟈칼 은 반드시 네케바 라는 여자, 그릇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돼야 된다 그랬죠? 

그런데 그 쟈칼 이란 단어가 무슨 뜻도 있냐면, 남자가 되다, 아들이 되라 라는 뜻도 있어요.

그 표가 여자 안으로 들어가면, 그 여자가 아들이 됩니다. 그게 구원의 메카니즘인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하 아담, 사람, 이라 그래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쟈칼과 네케바 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입니다. 

그래놓고 그거를 사람 그래요. 근데 어떻게 불르냐 하면, 하 아담 그래요.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죠 여러분? 땅에서. 그죠? 

자 땅이 아다맙니다? 근데 이 아다마 가 뭐냐하면, 요거만 지워버리면 아담이죠? 

자 아담을 어떻게 만드냐 하면, 요 말로 만들어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는거, 이게 문자의 의미거든요?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면 그걸 아다마 라 그래요. 이걸 

성경이 그냥 땅 이렇게 번역을 해놨는데, 뭐 오케이 괜찮아요. 자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 그 말씀으로 

하나님은 하 아담, 사람,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거에요.

 

그럼 이 땅에서, 뭐가 만들어지냐 하면, 아담이 만들어지죠? 아담이. 그럼 아담은 뭐예요 이게?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린데, 

이 아담만 되면 됩니까? 아담이 어디서는 굉장히 저주받을 인물로도 나타나고, 

어디서는, 우리는 그 아담이 되어야지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말이에요. 

그러면 한번 보잔 말이에요. 모든 인간들이 아담이에요.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을 담아 창조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어느것도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게 없다 그랬습니다? 

그러이까 모든 것은 말씀을 담고 있어요. 그 말씀은 진리란 말입니다. 

그걸 모르고 말하는걸 거짓말이라 그러지, 모든 인간들은 다 진리를 살고, 진리를 행하고, 진리를 먹고, 이렇게 살아요. 

그걸 우리가 진리로 못보아서 그러는거지. 왜? 하나님은 다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으니까. 근데, 보세요, 

이 하나님이 구별하신 그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아 그거지 라고 내 안에 말로 갖고 있으면, 그 양이 아담이면 안 되는 거죠? 

그걸 하 아담 이라 그래요. 

그럼 요걸 요 뒤로 갖다 붙이면, 그게 아다마 네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요 성경에는, 

그냥 이 사람이 아니라, 하 아담의 하 벤. 그 사람의 그 아들. 이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에요. 

신약 성경에도,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그 사람의 그 아들 이라 그래요. 항상 관사를 붙인다 말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요렇게 그 말을 진리로 가진, 그 자들의 라인, 제가 여기서 이렇게 설명했더니, 

어떤 이들이 또 그 말을 가졌어, 그러면 그렇게 아들 아들 아들 아들 아들들이 되는 거에요. 

아담의 아들은? 셋이 되는거고, 셋의 아들은? 노아, 노아의 아들은? 셈. 이렇게 아르박삿. 이렇게 나아, 나아가는 거죠? 

그 아들 아들 아들. 그걸 인자 라 그래요. 

그,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진리를 설명하는, 그, 그, 그건, 이땅에 그냥, 그 실체로 내려올 수는 없으니까, 

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말로, 소리로, 혹은 형태로, 이렇게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주신단 말에요. 그

걸 뭐라 그러냐면, 아파르 라 그런단 말에요. 

그런데 아파르 가 뭐냐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는 하나님이란 뜻이에요. 

그러며는, 그리고는 이걸 티끌이라 그런다구요 티끌. 

그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뭘, 줬어요? 성전, 율법, 예수, 세상,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뭐를 만들기 위하는 거라구요? 이진리를 가진 고 아담, 하 아담. 그, 그걸 만들기 위함이란 말예요. 

그래서 준 게 이거란 말예요. 그런데 이거를, 눈에 보이는걸, 그냥 표적으로 봐버리면, 그걸 뭐라 그래, 이걸, 티끌, 모래, 이렇게,성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티끌로 내릴꺼야, 모래로 내릴꺼야, 너희를 바다에 모래로 만들어 버릴꺼야. 이때 쓰이는게 이 아파르 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하겠냐구요. 그래서, 땅에서, 티끌을 모아, 사람을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우리는 그걸 내용으로 알아야지, 땅에서 티끌을 이렇게 모아서, 물을 부어서 반죽을 해, 구워서 요렇게 만들어냈단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이런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말 하지 마시란 말에요.

 

자 그래서, 그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씨, 그걸 진리로, 아들로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이, 그 진리가 나를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의 그 중심, 광야는 뭐에요? 스데반이 그 광야를 교회라고 하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중심이 누구였어요? 어느 지파? 민수기 2장, 유다 지파였단 말예요. 

그리고 유다 지파가 깃발을 들고 있죠? 그 깃발을 중심으로, 남, 동, 서, 북, 쭉 이렇게 다른 지파들이 포진을 하고, 거기에 성막이 세워지는 거에요. 

움직여, 그러면 또 고대로 움직이는 거에요.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되어서. 

그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데, 그 깃발이라는 단어가, 표적이예요, 표적. 표에요. 이걸 들고, 

이게 뭔지, 이 표적이 뭔지를 알면 사는거고, 모르면 죽는 거에요. 누가? 유다가. 이스라엘이. 그게 이 열두 지파의 대표 란 말에요. 

근데 유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냐면, 성전을, 펼치다, 뻗다. 이런 뜻이에요. 

성전을 설명하고, 뻗쳐 내는거, 그게 유다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되죠? 

유다 지파, 유다라는 말 자체가 성전을 내뻗다, 펼치다 이런 뜻이니까. 

그리고, 그 예수가 성전, 그 성전의 완성이었어요? 아니잖아요.

말못하는 성전을 하나님이 보이는 걸로 줬더니, 말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해서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말하는 성전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주님이 '내가 성전이다 '라고 이야기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어야할 성전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내가 세번째 걸로 세운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걸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너희가 성령을 품고 있느니 너희가 세번째 성전이 아니니?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우리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완성 성전이에요. 내 안에 그 예수 있느니까. 파괴되어 새것으로 살아난 그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성전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다시, 반드시, 그 유다 지파는, 그 깃발을 갖고, 바로 그 씨, 살아난 그 아들이 되어야 되는 거란 말에요. 

그 유다는, 아들은, 이스라엘은. 그러기 위해서는 그 표적은 반드시 깨져야죠.

쉽게 말할께요. 유다는, 표를, 깃발을 갖고, 진리로 보면 살고, 표적으로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라는, 표/적/이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그 표적을 가진 유다가, 그 예수를 표적으로 보면 죽는거고, 그것을 진리로 깨달아 알면,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거란 말입니다. 

자 표적이라는 그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찾으면, 오트 라는 단언데요,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세요. 

출애굽기 12장 13절

(출12: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뭐가? 피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될꺼래요. 

자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유다가 가진 표적이 뭐에요? 피에요 피. 

그 표적을 진리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모면한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 피는 뭐? 물. 물은 뭐? 성령. 요한일서 5장. 그 셋은 하나다. 이야기 하죠? 

그러이까 그 피를, 진리로, 성령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을, 내가 너머가 살려 버리겠다는 거죠? 이게 약속이란 말에요, 약속. 

출애굽기 13장 15절

(출13:15-16)

15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이게 표적이에요. 근데 뭘 표적으로 삼아요? 

죽어야할 장자가, 하나님이 죽인 장자에 의해, 살아난다 라는걸 니들의 표적으로 갖고 있으래요. 그게 복음 아닙니까? 

자, 그것이 유다가 갖고 있는 깃발이에요. 

이렇게 유다, 즉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이 돼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과, 지팡이가 같이 등장하는 거에요. 

항상 가르침을 의미하니까. 우리에게 가르친다 잖아요? 그 우리에게 보증으로 오신 그 파라 클레토스, 그 보혜사 성령이, 

보증으로 와서 우리를 가르치겠다 그래요. 그렇죠? 

자 그런데, 그 표, 표적을 갖고 있는 유다가 몇 번째 아들이죠? 네 번째 아들이에요.

네 번째, 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넷이라는 아들 이란 뜻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뭐 생선 장수한테 가서 네 마리 주세요 라고 할 때도 매듭을 네 개 이렇게 만들어서 '이거 ' 이랬는데,

무슨 네 번째가 뭐고 다섯 번째가 뭐겠어요? 

넷 이라는 아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도 없었구. 

그래서 표적이라는 단어가요,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냐 하면, 

창세기 1장에 넷이라는 날이예요. 네 번째 날. 창세기 1장 14절 보세요.

 

(창1:14)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이게 네 번째 날이거든요? 레비, 레비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랫것으로 보여준다는 뜻이에요. 

그것을 갖다가, 이루어야 돼. 완성을 해야된다 뜻이에요.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라고 돼있죠? 이게 완성돼야 된다라는 거에요. 

넷이라는게, 눈에 보여준 그것이, 완성이 되어야 돼. 무엇에 의해 ? 광명에 의해.

마오르 가 그래서, 네 번째 날에 나오는 거에요. 

이 마오르 라는 이 단어는, 우리가 지난 수요일에 배웠는데, 오르 라는 말이, 빛 이잖아요? 요게.

요게 빛이면, 히브리어는 맴 이 붙어버리면 이게, 장소나 어떤 기명이나 기구가 된다 그랬죠? 

그럼 빛이 비추는 장소, 빛이 비추는 어떤 것이란 말에요. 

이게 마오르 그래서 이걸 성경이 그냥 광명 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이런 걸로 이거를 이해하고 있는거죠? 

근데 이거는 그게 아니라, 오르, 창세기 1장 첫째 날에 그 빛, 그것이 비추어지는 어떤 것, 어떤 곳, 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 왜? 창세기 넷째 날은 첫째 날과 짝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 빛이 어디에서 비춰지는지가 등장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빛에, 비춰지는 빛에 의해서,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징조 사시 일자 연한이 성취된다 라는거야, 이게 넷이죠, 지금? 

징조 사시 일자 연한 이렇게 넷이잖아요? 고게 성취된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빛이라는 거, 마오르 라는 게 뭐냐 하면, 요 맴이 진리잖아요? 

빛을 진리로 주게 되면, 그 넷이라는게 이렇게 성취가 되는데, 

그게 뭔지를 시작을 하는데, 첫 단어가 오트, 표적 이란 뜻이에요. 표적.

자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다가, 광명을 두신다 그러죠? 궁창은 라키야 라는 단어라 그랬습니다? 

라키야 가 뭐라 그랬어요? 금을 얇게 펴서, 펼쳐서 덮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게 라키야 인데,

이걸 우리 말로 궁창 이라고 그냥 번역을 해놨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걸 어디다 만들으라 그러냐 하면, 가운데, 우엣 물과 아랫물,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다가, 궁창을 만들으라 그래요.

근데, 가운데 라는 단어가 타베크 라 그랬죠? 완성과 

아래의 것이 와우 라는 그 문자가, 노를 저어서 서로 이렇게 가는 거에요. 

그러이까 타베크, 가운데 라는 뜻이 뭐냐 하면, 이렇게 아래것과 우에것, 좌에 것과 우에 것이 요렇게 요렇게 노를 저어 가서, 

가운데서 이렇게 만나는 고지점 있죠?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 요걸 타베크 라 그래요.

그럼 그게 뭐에요?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으로 우리 에게 주어서, 아래것으로 우에것을 알게 만드는 그게, 

율법, 성전, 예수, 세상 이런 것들이잖아요? 거기에 라키야 를 만들으라는건, 성전을 그런 용도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는 뜻이잖아,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거기에 마오르를, 하나님이 광명을 두시겠다는 거에요. 근데,

이 마오르 가 나중에, 율법서에서는 뭐라고 쓰이냐 하면, 성소 안에 등대 있죠? 이게 전~부 마오르란 말에요. 

성소를 비추어서, 성전이 무언지를 설명해주는 그 역할을 하는 그거를, 그 등대를, 그게 또 일/곱/ 등대죠? 우리 수요일날 배웠어요? 

그건 일곱 말, 일곱 영, 일곱 눈, 다 똑같은 말이잖아요? 그것이, 성전이 뭔지를 이렇게 설명해주면, 그거를 마오르 라 그래요

. 그러면 그 마오르 에 의해서 무엇이 이루어 지냐하면, 표적, 징조, 사시, 모예뜨, 일자, 욤, 연한, 샤네 가 완성이 된다라는 거에요. 

그럼, 요게 뭔지를 알면, 그 넷, 유다라는 넷, 넷이라는 유다가 가지고 있는 그 표가 어떻게 완성이 돼야 

그를 살리는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알 꺼 아닙니까?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하는데도?

 

그러니까 성경은 광명, 그 마오르라는걸, 하늘의 태양이나 달 정도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성전과 연결을 시켜서, 지금 우리에게 그, 그 진리를 설명해기, 해 주기 위해서 

마오르라고 지금 기록을 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자 여기에서, 징조 라고 번역이 된 그 오트 라는 단어가, 표적, 이적, 표, 깃발, 증거, 표징 이런 의미의 단어라 그랬죠?

그러이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전이나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이나 율법이나 성경이나 예수나 그리고 행하신 기적이나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전~부 뭐라는 거에요? 

표적이라는 거에요. 그 자체로는 그릇이라는 거에요.

그건 반드시 내용으로 우리에게 들려지고 읽혀져, 내 마음이 돼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복음을 넷으로 설명해준 다음에, 내려가셔서 기적, 행하시죠? 그게 뭐에요? 내가 조금아까 이야기해준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너희들이 그걸 못 알아먹으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주께 이걸 봐 라고 준거란 말에요.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니었대니깐요? 

귀신쫓아내고 병고치고 무덤에서 사람 살려내고 이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 놔봐야 또 병들고 또 죽, 죽어요. 아니 이 세상에서 쪼끔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그게 무슨 복이겠습니까 여러분? 

그러구 그게 진짜 목적이었다면 그냥 하나님이 무얼 하나하나 쫓아다니면서 만져서 구하구 그래, 그냥 말하지. 다 나아라. 

그리구 다시는 병아 없어라. 그러면 돼지. 그게 목적이 아니래니깐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런 표적들을, 그냥 표적으로 봐버리고 그걸 목적으루 삼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는데 쫓아다니고, 병 고치는데 쫓아다니고, 이러구들 앉아 있는 거에요. 

한국에 내로라 하는 그 대형교회 장로들이 그러구 돌아다니고 있다니까요 지금? 거기 가갖구 전~부 머리 디밀고 앉아 있는거에요 지금. 

그걸 묵인하고 있는 한국교회, 이 자체가, 가망이 있습니까? 

큰 교회 장로들이고, 그리고, 뭐 사회적으로 굉장히 후, 성공한 사람들이라 그냥 쫄아서 아무말도 못하는거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장소를 빌려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고? 그건 전~부 표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걸 통하여 주님이 그 죄의 증상, 사망의 그 증상들을 어떻게, 완전하게,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를, 

우리가 배우는거지,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란 말에요. 

그걸 표적으로, 껍데기로 보면, 그걸 성경이, 어/두/움/ 이라 그래요. 어두움.

 

지금, 이 넷쨋 날이, 창세기 첫쨋 날과 짝이라는건 여러분이 다 아실 꺼예요? 첫쨋 날은 넷쨋 날과 짝, 둘쨋날은 다섯쨋날과 짝,셋쨋날을 여섯째 날과 짝, 이게 완료가 되며는, 일곱이라는게 되고, 그 일곱을 마음으로 가지면, 팔 이라고 해요. 여덟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덟의 날에 살아나시는 거에요.

 

자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그래요. 그건 빛과 어두움을, 하나님이, 이거는 검게, 이거는 환하게,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앞에서 어두움이 뭔지를 2절에서 설명해주고 시작하세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말이 무슨 말이야 하면, 깊음의 파님, 깊음이라는 것의 이름을 어두움 푸쉐크, 흑암이라 하자, 그러구 시작하신다니까요 하나님이. 그리고 밑에서 이 깊음이, 모인 물이고, 그것을 바다, 얌, 이라고 할께, 이야기 한다구요. 그러면, 이 아래에, 

그 위에 샴마임, 하늘, 그게 뭐라 그랬어요? 거기 에 물이 있다 라 그랬죠? 쉠이 명사로 쓰면 이름이지만, 형용부사로 쓰면 거기란 뜻이니, 

거기에 물이 있는 곳을 하늘이라 그래요. 

그 물이 진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물론 상징적이지만, 아래의 물로 우리에게 준거를, 눈에 보이게 준걸 바다 라고 하고,

아래에 물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걸 우리가 잠시 이름을 호쉐크, 어두움이라고 하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닌깐요. 

그러니까 어두움이 나쁜거에요? 그게 없이 어떻게 그 위에 물을 아냐구요? 그걸 직접 줄 수 없어서, 우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유한 존재의 절망적 한계란 말에요.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래의 물이라는 것을 주어 우에 물을 설명하, 하, 하기위, 할려구 하시는데, 그렇게 우리에게 준 아래의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는데, 그게 나쁜거냐구요? 

그걸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래의 것으로 그냥 봐버리면 이게 어두움이고 이게 죄요 이게 악이지만, 이 어두움으로 그 위의 것을 알아버리면, 

이 어두움은 즉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게 되는 것이고, 그것 그건 내눈에 보이는 똑같은 그것이지만 나에게는 빛이라 말입니다.

 

그때 그죄가 그악이 그율법이 나에게,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그걸 용/서/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그 어두움이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을 올바로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빛, 오르 인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이름을 뭐라 그래요? 뭐라 그랬어요 ? 빛을 낮이라 이름하시고, 낮이라 칭하시고 이렇게 되어있는데, 낮이 날 입니다? 욤. 

그 빛을 욤 이라고 하자. 근데 욤 이라는 단어가 뜻이 뭐냐 하면, 진리를 주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아래의 것, 그 어두움 이것들을 갖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죠? 하고 알게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낮' 이렇게 이야기해요. '날' 이렇게 이야기한다닌깐요? 

어두움은? '밤' 그래요. 그런데 '밤' 이라는 단어 자체도, '라일' 이란 단어 자체도, 가르치다 가르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밤, 어두움을 우리에게 뭔갈 가르치기 위해 주었어요. 그러면 배우면 돼요. 그러면 그걸 낯, 날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라는 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에요?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해 이렇게 흐르고 있는 거에요. 이 날들이. 날이라는 의미가 그런거라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이세상에서, 바로 그 진리를 알고 가면 되는거에요. 그게 날들의 역사의 목적이라니까요.

 

주님은 어두움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율법으로 오셨으니까, 어두움으로 오신거죠? 그분은? 

그러나 빛이라는 내용을 담고 왔어요. 그리고는 내가 진리다 라고 이야기했단 말에요. 내 안에 있는 그 빛이 진리다 라고 이야기했다 말입니다. 

근데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빛을 깨달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유한자의 한계인거예요. 그렇게 깨달아 알면 그게 '낮'이거든요? 

근데 주님이 이땅에 왔을 때 전부 어두움이었다 그래요 요한복음 1장에. 아무도 못봤다는 거에요. 그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어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눈이 멀어, 그냥 어두움, 을 살고 있었다 말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래서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그냥 표적으로 인식이 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렸어요. 그 표적 안에 담겨 있는 빛을 봐야 되는데. 

주님이 그러는거에요. '내가 빛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있는 동안이 낮이다' 그래요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그랬죠? 내가 있는 그 시간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엄밀히 보면. 이 시간 동안, 내가 있는 기간 동안 너희들은 열 둘 이 돼야지. 낮의 사람이 돼야지. 아들이 되어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러나, 너희들은 이제 나를 못볼꺼야. 

그러면 이 어두움인 세상에 빛이 잠깐 왔다가 사라졌네? 그럼 빛은 있어요 없어요? 사라진 거에요. 여긴 그대로 또 어두움이라닌깐요. 

근데 그때 주님이 뭐라 그러냐 하면, 내가 사라지면, 이제 심판이 오는데, 어떤 자들이 심판을 받, 받을 것인지 아니? 

그 빛이 너희 안에 없으면, 너희는 심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아무도 못 알아 봤어요. 다 어두움이니까. 그러니까 

그 빛이 너희 안으로 뚫고 들어가 버리겠대요. 그거 없는 자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빛을 갖고 있는 이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자들이에요 그게.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라고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죽어버린 그 표적을 '쟈칼' 로, '인과 지팡이'로 '가르침'으로 '보증'으로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들 안으로 인트루젼, 뚤고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 거에요. 

심어버리는 거에요. 은혜로. 선물로. 그게 성령이에요.

그렇게 표적은 반드시 진리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빛, 오르로 시작한 그 빛은 '오트'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가 이게... 빛이 있으라 에서 빛이 오르 잖아요? 

그리고 표적이 뭐냐 하면, 오트 예요. 똑같은 단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가 빛이라면, 표적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완성하신다 는 거에요. 어떻게? 

그 표적에 내용을 이제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들을 완성하실꺼라는 거에요. 

근데 뭘루 시작하냐 하면 인제 표적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징조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그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요 율법이요 예수요 성전이요 세상이요 인간이요 이런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징조부터 이제 시작이 되는 거에요.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이 되지 못하면, 멸망시키는 양식이 됩니다. 

그 구유의 아기가 먹이다, 양식, 이런 말이라 그랬잖아요 구유가? 주님은 우리에게 양식으로 왔다 그랬잖아요? 내가 하늘의 양식이다, 하늘의 떡이야 그랬으니까. 그것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고 표적으로 보아져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면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는 양식이 되는 거에요. 

보세요 요한복음 6장 26절 역시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죠

(요6:26-27)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이게 호라오 예요. 표적을 너희가 호라오 하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으로 먹고, 배만 불리고, 그것으로 '야 우리의 배를 이렇게 부르게 해주는 이가 있어?' 하고 나를 찾아 왔다라는 거에요.

나의 육적 가치나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섬김의 대상 이게 가짜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27절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이 호 불러시스 아폴루미 가 뭐냐 하면, 이게 멸망시키는 양식 이라는 거에요. 자 그렇게 너희가 내가 하는 어떤 기적이나 말이나 심지어 나까지도 

이런 것을 그냥 표피로만 봐버리면,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을 해. '

너희들을 멸망시키는 양식은 열심히 너희들이 율법 행하고 제사 지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 일 아니니?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인데, 그런일 하지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해. 근데 그양식은 누가 준대요? 

인자. 하 아담, 하 벤.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인자, 그사람의 그아들이 그거 준대요.

말씀으로 주는거죠? 이거는.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이 뭐라 그랬어요? 성령 이라 그랬잖아요? 보증 이라 그랬잖아요? 

그들이 너희에게 줘.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다음에는? 수많은 그하나님의 그아들들, 

그사람의 그 아들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역할들을 이렇게 하는거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삭을 주시면서,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죠? 

그리고는 이것이 표적이다 그랬습니다?

창세기 17장 11절 보세요

(창17: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양피를 베는게 할례죠? 그거는 인간의 생명의 근원, 생명의 씨를 아예 차단해 버리는 거에요. 죽음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할례를 표적이라 그래요. 그런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래요. 

언약의 표적이다? 어떤 언약입니까? 약속의 자손이, 낳은지 팔일 만에 할례 하죠? 아들만 합니다? 

아들은, 아들은 팔의 날에, 그의 육, 육의 그생명을, 완전하게 부정당하는 자다. 이런 말이에요. 그걸 할례라 그래요. 언약의 표적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팔의 날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고건제가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너무 기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후에도 표적을 주세요? 

보세요 창세기 9장 13절

(창9: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죠? 칠입니다. 일곱을 너희에게 언약으로 준다. 이게 뭐냐 하면,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라고 돼 있는데, 이게 표적이예요. 역시. 이게 표적이다라고 일곱을 줘요. 그리고는 그 일곱을 안 자들을 방주에서 나온 자들이죠? 그들이? 여덟 이라 그래요 베드로전서에 보며는. 

여덟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 그렇게 일곱을 알아, 그 언약의 내용이 뭔지를 알아, 여덟이 되는 게 뭔지도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제가.

 

그렇게 표적이라는건, 하나님의 그 언약, 그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오트라는 거 다음에 사시, 모예드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어지는 거에요. 이건 순서에요.

하나님이 마오르라는걸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비추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표적, 오트, 그 표적을, 반드시 어떤 것으로 완성을 해 내실 꺼예요. 

그런데 오트 를 주고서는,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걸로?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모예드 라는걸 주시는데 그게 뭐냐면, 여기는 사시 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이, 모 라는 단어도 역시 맴이라는 그 문자와, 야드 라는 단어의 조합이에요. 

야드 라는 단어가 에덴 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하는 단어거든요? 이게 정하다, 정한 때, 

모예드가? 그러니까 정한 때 약속하다, 언약, 약혼하다 이런 말이에요 이게. 

한번 보세요 여러분. 절기 , 정한때, 약혼하다, 언약하다, 정하다, 자 이런 의미의, 의미를 품고있는 

그 사시라는, 모예드 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그 언약의 마지막 그 목적이 뭡니까? 쟈칼이신 하나님과, 말씀이신 그분과, 네케브에 불과한 우리가 혼인의 완성이잖아요? 그게 연합이죠? 

이게 목적이죠? 언약의 목적이.

그래서 약혼하다, 그 약혼은 반드시 이루어질 약혼이에요. 혼인으로 완성되는 약혼. 그건 하나님이 정하신 거란 말예요. 

그리고 그 단어는 기쁨이란 뜻도 있어요 또 ㅎ. 그게 기쁨이고 그런 거에요.

그 ...... 하나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그 사시, 모예드, 라는 약속을 , 언약을, 절기라는 걸로 주세요. 

절기는 사계절이라고 해도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넷이죠?,

이스라엘의 절기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초막절? 이렇게 넷으로 우리가 ,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뭐에요?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하얗게, 아주 순결하게 깨끗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거에요. 

그걸 보라고 사계절 준거에요. 

봄되면 우울증걸리고, 그러라고 준게 아니라. (ㅎㅎㅎㅎㅎ)난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여름에두, 아니 겨울에두 거기는, 낮에는 반팔입고 다니거든요? 얼마나 따듯해요? 근데 하두 흐리멍텅하니까, 날씨가. 그렇게 오리진하다보니까 겨울이 너무 그리워. 

그래가지구 진짜 온전한 겨울을 20년만에 처음 제가 요번에 맛보는건데요? 세상에 겨울이 육개월이야. (ㅎㅎㅎ) 웬 겨울이 이렇게 길어요 ㅎ ?

아니 3월인데, 아직구 이렇게 추워요. 질릴라그래 인제 ㅎ (ㅎㅎㅎ). 그러니까 계절은, 절기는, 모예드는, 그러라고 준 게 아니라닌깐요? 

 

마찬가지예요. 유월절날, 로마서 7장에, 죽어야할 첫 남편이 죽죠? 그게 어린양이잖아요? 

그리구 무교절에 교회, 광야에, 누룩 들어가지 않는 떡이, 하늘 양식으로 쏟아집니다? 그게 교회예요. 말씀이 떨어지는거죠.

오순절날, 새 남편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거죠? 그러며는 추수가 된 알곡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장. 영원히 사는거죠. 

이게 절기가 가진 의미잖아요?

자 언약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진리를, 표적으로 주세요, 오트로 주시는데, 뭔지 몰라? 그래? 

그러면 내가 그걸 절기로 풀어서, 그 언약, 혼인이 뭔지를, 풀어서 줄께 라고 모예드로 줘버려요. 

그러나 그 절기나, 그 표적, 모든 건 아직도 다 이 아래꺼잖아요? 어두움의 것이란 말에요 그거는.

근데 그걸로, 그게 뭔지를 알아버렸으면 그게 뭐예요? 징조, 사시, 그담에 뭐예요? 일자 죠? 

그 일자가 욤이예요 욤. 진리를 주다. 그게, 그 표적이, 어두움, 그 아래의 것이, 그 오트와 모예드가 나에게 어두움으로 주어졌지만, 

그게 뭔지를 내가 이제 알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았을 때, 그걸 욤, 

진리를 받은 자가 그진리를 넘겨줄 수 있으면 그걸 일자 라 그래요. 일자가 뭐예요? 난, 하여튼 일자. 욤이에요 그게. 순서라닌깐요? 

그렇게 되면, 어두움과, 오트와 모예드 그거는, 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그거에서 살아야 되니까, 이 땅에서 발 들고 살 수 있는 사람 어디 있어요? 

아래 것으로, 이 어두움을 입고 산다구요. 그러이까 이게 크로노스의 삶을 우리가 사는 거죠? 

그런데 그걸 알아서, 이렇게 진리로 내가 갖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크로노스의 삶을 살면서 카이로스를 같이 사는 거에요. 

고렇게 양자를 같이 살 때 요게 짝으로 사는 거, 그것두 살고, 이것도 사는거. 

어두움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빛을 가지고 사는 그 걸, 소ㅑ네, 라 그래요. 그게 연한이라고 번역돼 있어요.

연한은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또. 국어사전 찾어두 안나와. 연한이라 그래요.

 

그러이까 이거는 표적부터 시작해서, 연한, 소ㅑ네로 이렇게 완성이 되어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게 넷 이라는 거에요. 

유다라는 넷 의 아들이, 그렇게 표적을 갖고 시작하여, 소ㅑ네로 완성을 하면, 그게 영적 이스라엘이다라는 걸 확실히 알고, 

바울은 그것들을, 표적들을, 전부 이렇게 나열한 다음에, 이걸 니들이 그냥 갖고 있는 다고? 너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8장에서 말하는 끊어지지 않음이라는 건, 이런 걸 가졌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다 를 설명해주는거란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이거를 육적 이스라엘, 민족적 이스라엘 이야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냐구요? 창세기부터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 성경은. 그럼 요즘 뭐 세대주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자꾸 저에게 메일을 그냥 수십 통씩 보내가지고 외국 학자들의 무슨 뭐 논문도 보내주구 이메일로 말이죠. 그거 아니라구 세대주의가 맞다고. 민족적 이스라엘이 곧 다 구원받을 거라구? 가르칠라 그래요. 주변사람들에 전해주세요. 그거다 스팸메일 처리해놨으까, 보내두 안 읽는다구. 그런 시간두 없어요. 뭘 그걸 읽고 앉아있어? 신학교때, 다 공부한거.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이야기만해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만 한다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절기, 그것을, 그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혼인에 이야기를 

이 크로노스의 역사를 통하여 그 혼인의 이야기,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 동안에 그 하나님과 잘 화해하여, 결혼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바울이 중매쟁이 라고 부르는 거죠. 내가 너희를 하나님 앞에 훌륭한 아내로 중매한다 결혼시키겠다는거죠. 

근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의 스펙이 영 말이 아녜요 지금. 

이사야서 53장 보세요.

보기에 연한 순같고, 볼품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아. 툭치면 넘어질것 같애. 얼마나 못생겼으면 보자마자 얼굴을 돌린다 그래요.

그 흔한 대학도 안나왔어. 예루살렘에 정규대학, 4년제 정규대학이 두개나 있었습니다. 전문대는 뭐 수도 없이 많았고. 근데 무학이야. 

머리 둘 곳도 없어. 아부지가 누군지도 몰라. 동생들은 또 왜 이렇게 맣어? 

거기다가 그를 남편으로 맞는 즉시 나의 육이 그 앞에서 부정이 돼야 돼. 누가 이런 남편을 택합니까? 

근데 어떤 정신나간 이들이 그이를 내 신랑으로 받아 들이드라는 것입니다. 

그 신랑 앞에서 나의 그 원함, 육적 원함과 내 육신이 그렇게 부정 당하는게 맞지 라고 하며 

그 남편을 신랑으로 꼭 붙들드라는 거에요.

그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신 거에요.

하나님 나라는 있지도 않는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 결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그거 배우라고 허락한 거라니깐요. 

여기서 여러분끼리 마음 맞춰서 행복한, 뭐 하, 천국의 작은 모형을 이루라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 게 아니에요.

그게 목적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 인간의 이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찾습니까? 

이 청년들, 배우자 기도, 기도 제목들 한번 다 꺼내 보세요. 예수와 정 반대의 스펙들을 다 원하고 있어요. 웬만하면 많이 배워야돼. 그러니까 그냥 목사들도 전부 디민, 뭐 닥털 오브 미니스트리, 미니스트, 목회학박사가 왜 필요해요? 나는 그거 받은 사람의90프로 이상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봐. 

(ㅎㅎㅎㅎ) 돈 디밀면 다 주는 거. 많이 배워야 돼, 돈 많아야 돼, 잘 생겨야 돼, 키 커야 돼, 

될 수 있으면 시댁식구는 적어야 돼, (ㅎㅎㅎㅎㅎ) ㅎㅎㅎ. 

그 앞에서 내가 부정되는 게 아니라, 그이가 나의 앞에서 부정돼야 돼 ㅎ. (ㅎㅎ) 전부 반대야. 

그래놓고, 나는 진리를 알아요 이러고 앉아 있대니까요.

예수를, 예수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다매요? 그런데 이 역사속에서의 배우자는 왜 정 반대의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냐구요?

자 아무튼 고대의 혼인은, 아이가 태어나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혼인의 절차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장인 장모가 있는 장가로 와야 돼요. 그래서 장가 간다 그러는 거에요. 남편이 혼자 와요.언제 오냐하면, 밤에 와요. 그리고 칠일 동안, 칠의 날 동안, 밤에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집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장가에서 살아야 돼요. 언제까지? 아이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첫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있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사는 거에요. 이게 혼인의 완성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여러분은 이 역사, '날' 이라는 이 시간을 통하여, 바로 그 혼인을 완성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아들을 가져야, 씨를 가져야 돼요, 내안에.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가져야 사는 거에요. 

그래야 혼인이 완성되는 거에요. 그게 '모에드'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진리로 그렇게 씨로 왔을 때 이게 날이고 욤이고, 

그렇게 해서 위에 삶과 아래에 삶을 동시에 사는, 이 세상의, 세상의 빛이 된 이들의 삶을 솨네, 완성이라고 하는 거에요. 

양자를 다 사는 이들의 삶.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그 열의, 그 율법, 열의 율법을 넷으로 주는 거에요. 

그리고는,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넷의 마지막을 반드시 완성해, 

그러면 정사각형이 되겠죠?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그성전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을 정사각형 정육면체로 묘사를 하잖아요? 그게 넷이예요. 넷의 의미가 그거래니깐요?

자 그렇게 해서, 그 말씀을, 그 오트 를 갖고, 그 하나님의 완성, 그걸로 우리가 이제 진리로 완성해버려, 그러면 그게 무트가 돼죠? 그게 죽음이예요. 오트 표적을, 우리가 무트, 진리로 완성을 해버리면, 그걸 육의 죽음, 이라고 한다니까요?

인간 육신의 모든 가능성이 부정돼 버리는 거에요. 그걸 완성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근데 그 표적의 총화가 바로 예수라 그랬죠? 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조상들을 통하여 설명이 된, 아들이예요.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됐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됐어요. 그래서 “이 성전이 나다“라고 이야기 하신 거고,

그 “성경에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거예요. 예수란 말이에요. 

그렇게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 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깨져야할 표적들만 붙들고는,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걸 지적하는 거에요. 그건 우리의 이야기잖아요 우리의 이야기. 

오늘날에도 그렇게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저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저마다 찬송을 하고, 저마다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합니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언약을 이야기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해요. 

뭐 요즘은 그것도 힘들다고 그런 어려운 조직신학적 얘기는 하지말자 그래서 그런 얘기도 안해요. 그냥 신문 얘기만 해. 

근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섬기고, 표적으로서의 예수를 섬기고, 

그 예수가 하신 일만 칭송하고 있는 거에요.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아논 다음에, 열심히 그 예수만 섬기고 있어요. 

그게 죽은 것 같았으나 다시 산 짐승으로서의 예수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 임금으로 죽을꺼야 그게 십자가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이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그이가 세상 임금이지 뭐예요? 

우리는 그냥 국어사전 개념으로 이해를 하니까 자꾸 나의 상식으로만 이해를 하니까 세상 임금, 사탄 이렇게 알고 있는 거에요.뱀? 마귀. 이렇게.

그분이 세상 임금으로 죽어야 세상에서 임금 되고 싶어 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거 아닙니까? 

근데 주님은 뭐라 그랬냐 하면, “세상 임금으로 내가 죽을 건데, 곧 또다시세상 임금이 올 것이다” 무슨 말이에요 이게요? 

내가 죽으면 이제 마귀가 다시 활개를 치고 온다는 뜻입니까? 아니오.

어떤 이들이 세상 임금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자기들의 유익에 써먹을 거라는 거에요. 열심히 섬기면서.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 

“그는 나와 아무 상관없느니라.”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예수를, 그 표적으로서의 예수, 그걸 율법으로, 성전으로, 여전히 섬기고 있다닌깐요.

 

아니 여러분, 옛날에는 요, 죽은 시체는 부정하다 해서 절대 못 만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사를 아리마데 요셉이 하는 거에요. 

왜? 아니 예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까? 아니 살면서 속망 썩여갖고 다 도망간건가요 그냥?

아유 저거 그냥 장례도 치르기 싫어 이렇게? 왜 가족들은 어디가고 아리마데 요셉이 장사를 시켜요? 

요셉이라는 이름은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이예요. 

사람이 죽은 예수를 만지면 안되기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장사해야 된다라는 의미에서 

그가 굴에다가 갖다 쳐 넣는 겁니다. 그 굴이 어떤 굴이냐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묻혔던 

그리고 그 이후에 인자의 라인이 다 묻혔던 막벨라 굴 이라는 의미란 말예요. 

그게 뭐에요? 양 우리, 양 우리는 늘 성전이에요. 성전에, 율법의 성전에 예수가 율법으로 묻혔으면, 

다시는 만져도 안되고, 가도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평토장, 무덤을 봉분을 세우지 않고 평토장을 해놨어요. 부정한 거니까. 

근데 혹시 자기들이 그거 밟을지도 몰라서 고자리에 이렇게 회를 칠해 놨다구. 안 밟을라구

. 그런 율법적 노력과 시도를 주님이 회칠한 무덤 이라고 한 거에요. 그런 걸로 하나님이 기뻐할 거 같냐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 죽은 예수를 살려놓고 열심히 거기 가갖구 그, 이, 예배당을 성전화 시켜놓고 

여기서 희생제사 를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분은 그리스도로 살아서 내 안에 생명으로 들어왔는데, 내 밖에 걸어놓고 내 소원을, 나의 인간으로서의 이 욕망 성취를,

나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 열심히 빌고 있는 거라닌깐요.

그러이까 전부 이 예배던 뭐던 주인공은 나여야 돼. 

내가 은혜 안 받으면 안 되고, 나를 감동시켜주지 못하는 찬양팀은 찬양팀두 아냐.

오늘 예배 분위기가 왜이래? 뭘 왜그래 당신 땜에 그래요.

그러이까 그 진리를 설명해 주는 게 못내 다 불편한 거에요. 하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제가 어저께 기독교 티비를 우연히 보게 되어서, 설교를 한편 들었는데, 한국에선 뭐 내로라하는 유명한 목사님이예요. 한국교회의 뭐 사상가를 자처하는 분이죠. 개혁의 리더? 뭐 이러면서. 30분간 딱 깔끔하게 설교를 끝내시두만요. 근데, 성경 한 구절 읽어 놓구, 성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꼴을 못 봤어요. 아니, 제가, 끝날 때 까지, 딱 한번만, 어디든 좋으니까 성경을, 인용해서 그걸 설명 좀 해줬으면. 나중에는 그냥, 예화도, 예화로라도, 한절만 좀 얘기해줬으면 했는데, 끝까지 성경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집회를 다니면서 너무너무 피곤하고 고단한데, 죽을것 같앴는데 하나님이, 잠을 허락하셔서, 잠을 자다, 자고 일어났더니 피로가 다 풀렸대.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잠이라는 걸 마련해서,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회복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그러구는 끝났어. 다 듣구 나갖구, 그러니까 피곤할땐 자라는거야? 뭐. (ㅎㅎㅎㅎㅎ)교회에 와서 그 얘길 들어야 되냐구요?

회복의 하나님? 이게 피상교회지 뭐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대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대요. 그러니까 회복하세요. 

더웁게 가세요. 배부르게 가세요. 야고보가 말한 그거 피상교와 뭐가 달라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성경으로 설명을 해줘야죠.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설명을 해줘야죠. 잠만 자면 되는 거에요? 

그냥 하나님이 잠이라는 걸 만들어주셔서 그렇게 감사해요? 그걸 깨달아야 되냐구 우리가요? 근데 수천 명 수만 명이 앉아 갖구 아니 한국교회 지성들은 거기 다 가 있다매? 근데 아멘 아멘 하고 앉았어요 거기서. 날 회복시켜 준다 그러니까. 그러이까 얼마나 형식적이예요 이게? 하나님이 회복시키기를 원하세요. 그런다고 내가 회복이 돼요? 아무 의미도 없이 굿모닝? 굿에프터눈 이거나 뭐가 달라요? 뭘 굿모닝이야 언제봤다구. (ㅎㅎㅎ) 아무나 보고 안녕하세요? 

안녕이 뭐에요? 평안 에이레네 뜻이에요. 진리를 모르는 이는 절대 그 평안 못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 못하죠? 내가 그 안녕이 뭔지 설명해 줄까요? 안녕하게 해드릴까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 되는 거 아니예요 원래? 

근데 아무나보고 안녕하세요? 진리를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안녕 하겠냐구요? 

아무나 만나면 뭐 기도하고 있어요. 아 나 노회 같은데 왜 안가냐 하면, 무조건 만나면 할렐루야 이러더니, (ㅎㅎㅎㅎㅎㅎㅎ) 아 그게 무슨 인사예요? 하나님 을 찬송하라. 내 삶이 지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데 할레루야 시작해서 지금 말이죠, 목사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어요. 뭘? 왜 날 위해 기도해? ㅎㅎ 잘살고 있는데 ㅎ. 그거랑 뭐가 달라요? 

그냥 버릇이 되갖구. 여기서도 구원 받으세요 회복 하세요 안심 하세요 평안 하세요 그리고 성경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해. 

근데 그게 편한가봐 서로. 너무 화기애애해요. 어우 부러워 ㅎ. 그런 분위기.

 

그렇게 표적으로서의 예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질 가짜 이스라엘인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게 이삭 그 아들이었습니까? 

아니예요. 그럼 여기서 애 못난 사람들은 다 기도해서 애 받아야죠. 그 애 허락한게 아니라, 

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표적에 담고 있는 그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이해를 못하니까, 아들주겠다는 얘긴가? 그랬더니 

그 아들에게 그 씨를 진리로 담아서 아버지잖아요 그건? 아버지를 담아서 아들 안에 담아, 이걸로 아버지, 그 씨를 깨달아 알아라 라구 준거잖아요? 아브라함이 그 이삭, 약속의 후손, 그 씨를 통하여 그진리가 뭔지를 깨닫고 브엘셰바를 팍 찍은 다음에 진리를 알아요.

이게 일곱 우물이지. 이것이 진리지 라고 알자, 하나님이, 그러며는 이제 이건 필요없잖아, 이건 갖다가 파괴해라 그러는거에요. 

내가 너에게 준 아버지를 담은 그 아들은 파괴해라 그래야 그게 니 안에 아버지로 들어갈게 아니냐는거죠. 

이삭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모형으로만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어떤 거냐면, 

이렇게 준비된 어린양이, 내가 준비한 양이, 죽어야할 자 대신에 대신 죽는 게 그이야기 였으니까, 

이제는 그 이삭이 이야기하고 있는 모형으로서의 그 그릇은 필요 없잖아 라고 이야기 한거잖아요?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내아들로 주었잖아요? 

그러면 이제 더이상 백세에 주신 그냥 후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나의 섬김의 대상이 된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담고 있는 더 귀한 그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얘는 나에게 섬김의 대상이 안되는 거에요 이제는. 

그 아버질 내가 알았으니까. 마찬가지요.

우리에게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버지를, 진리를 담아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땅에. 

누구예요? 예수. 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라고 얘기한거에요. 

내가 그아들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예수를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았잖아요? 진리를, 복음을, 알아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예수는? 역할을 다한것 아닙니까? 

다시 살아나서 여기에 매달려 있으면 안된다닌깐요? 그러면 그거는 파괴돼야 되는거에요. 어디서? 모리아산에서. 

거기가 예루살렘 아닙니까? 왜? 이제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그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 안에 담아 나에게 허락하신 내아들이 되는거에요. 

내아들이 되면, 그아들은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거죠? 누가 아들을 섬깁니까? 

하 요즘같이 그냥 뭣 땜에 사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전부 그 자식에 묶여 가지구 꽁꽁 묶여 갖구

그게 자기 생명이야 다들 보면.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모르는 거에요. 그게생명이지? 

 

이렇게. 아이 검을 주러 왔다 라고 하신 주님이, 제일 먼저 끊어낸게 그관계라닌깐요? 

그걸 내가 너에게, 니가 그렇게 우상으로 삼으라고 너에게 허락한거냐? 하나님이 그런 거라 말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배 아들이 중학교 때 사고로 죽었는데, 이선배가요, 소파에 앉아 갖구 일어나질 않는데, 똥오줌을 거기다가 다 싸면서, 너무 낙망이 돼갖구, 놔두면 그냥 죽겠더라구요 거기서. 그게 내 생명이었으니까. 하나님은 그러라고 아들 준거 아니예요. 

거기에서 그거 안에 담겨있는 더 귀한 그 아버지를 깨달으라구. 그러면, 그 아버지를 이제 깨달았으면, 

그 예수는 이제 내 마음 안으로 빛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이제 나는 그걸 아다마, 하 아담의 소리로 전해줘야 하는 자란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그냥 열심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나의 육신적인 어떤 것을 채우고, 편안하게,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고, 

잠을 주어서 피곤을 회복시켜주고,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당연히, 그예수는 우리의 섬김의 대상으로 남아있으면 안되는거에요. 

그러면 여전히 표적 이란말입니다. 그 표적은 멸망의 양식이란 말에요. 

이렇게 예수를 포함한 모든 표적들은 진리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어서, 마음 속으로 들어와야 되는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소리도 없고 언어도 없어. 그러나 뜻은 통해. 그게 진리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제가 지금 말로. 언어로,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복음이 전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뜻으로 통하는 거에요. 그걸 이심전심이라 그래요. 

진짜 이심전심은 그거에요. 

그러이까 이렇게 말로, 언어로 전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이 이 마음을 자기가 가지가면? 

그게 성령이 계시다는 유일한 증거지 뭐예요? 

여기서 찬송이 터지는거지, 무슨 뭐 내가 뭐 대단한 경험을 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은이빨이 금이빨로 바뀌고, 부러졌던 팔이 붙구, 

그게 나를 살립니까? 

시편 19편 1절 보세요

(시19:1-4)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날이 욤입니다. 낮, 날. 빛은? 날은 날에게, 레마.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해줘요 ㅎ. 전부 그냥 지식만 이렇게 (ㅎㅎㅎ) 

날은 날에게 말을 해준다는게, 그걸 말로 듣는이가 별로 없으니까, 다 지식으로 갖구 잘난척들 하는거죠.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이게 진리예요. 그래서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 자는, 거듭남을 설명하면서, 성령으로 난 자는, 소리는 듣는데, 

그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근데 흔적이 남는단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 한 거에요. 제가 말을 잘해서 여러분이 잘 알아듣는게 아니라닌깐요.

날 때부터 소경인자, 하 누가 나를 고쳤는지 난 모르겠어요. 본적이 없는데. 거 중요한건 내가 보인다는 거에요. 

그렇게 통하는 거에요 그냥. 그게 진리라니까요? 

그러이까 반드시 표적은 깨지고 내용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생, 하늘의, 그, 생명수, 그 진리의 물이 이렇게 흘러가게 통하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근데, 주님은 그 성령을 배, 코일리아가 성전이거든요? 배에서 흐르는, 생수라고 하죠? 

성경의 어디에, 넷으로 흐르는, 생수 이야기가 나오는 데가 있어요. 근데 거기에 이름이 또? 모예드의 그 에덴 입니다? 

그러면 에덴에서 발원하여 넷으로 흐르는 강 이야기도 그이야기겠죠?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많은 아래의 표적들을 주시고 그것으로 진리를 깨달아 알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그 표적에 머물며 하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른 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진리를 알게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터져버리는 그 자유가 우리 서머나교회를 가득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로마서102-표적이냐 실체냐(김성수목사) / 온땅교회 한성민목사|작성자 온땅의 단비

 

다음주까지 해야 오늘 설교가 완벽하게 이해가 가실텐데..

이 번주에 잘 들어 주셔야 다음주에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예를 들어서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열심히 피력합니다.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불특정다수에게 막주고 읽어서 깨달으라고 준게 아닙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고 싶은 애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는 말입니다

저 민족적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됨과 아들,영광,언약,율법,예배,약속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들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라고 애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예수님도 유다지파의 사람이니까요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바울이 나열한 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상이란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씨들을, 그 아들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습니다.

그 씨들이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못 알아 먹으니까 그걸 문자로 펼쳐준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조상들을 알면 그 율법은 풀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좋은 겁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 겁니까

바울은 율법이라는 거짓말에 빠져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참말의 진리를 전파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자신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게 로마서 9장입니다

지금 바울이 예를들고 있는 이 민족적 이스라엘은 이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어떤자들로 이해되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이러한 것을 열심히 행하고 이러한 배경을 생내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육신의 예수가 탄생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애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육신으로 낳았다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애기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바울이 지금 나열하고 있는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 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것들이라는 겁니다.

세메이온σημειονG4592(표적)-양자됨과 아들,영광,언약,율법,예배,약속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들 육신의 예수 눈에 보이게 나타난 (독사) 영광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그 것을 독사(δόζαG1391)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그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영광 그 모든 것들은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이 땅에 세워진 것들입니다.그릇입니다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그 것... 그걸 표적이라고 합니다.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래서 우리눈에 보이는 것(케이마이κειμαιG2749-보이는것)이

표적 , 사인, 시그널, -어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거 자체가 가치는 있는게 아닙니다.이정표 자체가 가치 있는게 아닙니다.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에 불과한 것입니다.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가 구유로 오신것이 표적이다

그 예수안에 아들,양자 언약 약속 율법 조상 등의 개념들이 모두 함유되어 있습니다

모두 함유되어 있는 예수가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로 구유라는 단어가 에브쓰(אבוּס)라는 단어입니다.

싸멕ס -위에서 기둥을 내려보는 것을 형상해서 문자로 만든 것입니다

기둥은 언약입니다 눈에 보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א) 성전을(ב) 눈에보이는(וּ)약속으로 주시면(ס) 그것을 구유라 합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에부쓰(אבוּסH18)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모음은 필요없으니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아바스(אבסH75)라고 읽어버리면 -먹이다.라고 애기합니다.

그래서 구유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먹이통이니까

그 구유라는 건 하나님께서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셔서 먹이기 위해 주시는

어떤 것을 애기합니다.구유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어 먹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준 언약 이 예수입니다.(히브리서에 나옴)

그 예수라는 아기가 구유로 제시되어(케이마이κειμαιG2749-보라고) 있습니다

그게 표적이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러면 구유로 오신 예수가 그 하늘의 양식 진짜 양식으로 보여져야 그게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표적으로 보이면 엉뚱한 양식이 되는 겁니다.

예수는 표적입니다. 잘 기역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그 구유와 예수가 하나가 되어있는 그런 형국을 그려놓고 있는 겁니다.

그게 그 보이지 않는 그 하늘의 영광 독사가 나타난거야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나타나는게 독사,영광입니다.

하늘에는 하늘의 영광이라고 하고

땅에는 평화 에이레네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구유로 온 예수를 보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애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행한 일이나

그의 말등을 표피적으로 받아 들어 버리면 그것이 표적으로 예수를 받는 것이고 그 걸 성경이 악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와 예수님이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혈루병환자도 살리셨데, 죽은 나사로도 무덤에 끄집어 내어 살리셨데,물위를 걸으셨데...

이런걸로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해 내셨데..심지어 이것까지...

그게 여러분을 구원합니까.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데가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그게 여러분을 용서하나요.정말

그걸 표피적으로 받으면 그걸 성경이 악이라고 합니다.

 

(마16:1-6)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겟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프로소폰 호 오라노스;πρόσωπον ὁ ούρανος)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늘의 그 나타난것 (프로소폰πρόσωπον-보이지 않는것이 나타난 것을 말함)

그 하늘의 외적인 그 모습 나타난 그것 ,당연히 율법입니다.

그것은 분별한다 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 시대, 카이로스가 담고 있는 그 내용으로서의 그 표적은 너희들이 모르는 구나!

저녁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애기하려 하는 거냐

아침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애기하려 하는 거야

껍데기는 잘보고 너희들이 편안데로 다 해석해서 가지면서 왜 그 시대의 표적으로 그 걸 못 보느냐.

그래 놓고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게 내용으로 담아 준건데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고 그러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 이게 오병이어 기적이후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 걸 표적으로만 보고

그러고는 예수님께 와서 그거 배부르던데요,그거 맛나던데요..

그때 당시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에 열심히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게 하루 빵값이였습니다.근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계속 먹여 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쫓아오죠 하루 종일 일 해바야 떡 하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이 당연히 주시니 오더니 그 것 참 멋진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그런류의 표적을 자꾸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이 너희는 표적을 호라호 하지 못하고 옵타노마이 에이도 하고는 나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달라고 찾아오는 구나

너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 구나.말씀하십니다.

그걸 내용으로 바야지 어떻게 너희는 그걸 표적으로만 보느냐

그러면서 주님이 떡 애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그 표적은

진짜 하늘의 양식은 그 떡 애기를 하는 거야.너희들도 또

세상의 떡 애기를 하고 있느냐 내가 언제 그떡 가져오라고 그랬니.

왜 떡 가져왔냐 안가왔냐 그거 가지고 싸우고 있어.

그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하는 거야.애기하시는 겁니다

누룩은 썩임과 혼합,변질 왜곡의 대명사 누룩과 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맛나를 주셨을때 이스라엘이 꿀 썩인 과자네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여버린 겁니다

주님은 진주를 줬는데...

그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모든 걸 표적으로만 봐 버리면 껍데기로만 봐 버리면 모든 것을..

그게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육적 이스라엘의 그 모습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율법 성전 제사를 표적으로만 보고 그것만 열심히 행하고 있잖냐 그런 애기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것인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자들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애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어 질 수 없다 단언을 해 버립니다 .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협력해서 선이 되니까...설명까지 해줍니다.

그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구원이 필요한 어떤 이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런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다 라는 겁니다.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여전히 이런 자들은 아들 아니다 이런애기 하는 겁니다.

그들이 율법과 희생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입니다.

 

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그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율법주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개념은

유한 존재들의 절망적 실존,한계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옛 모습인, 진리를 알게 되기 전 옛 모습이며

여전히 그들안에 남아있는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안에 남아있는

그 율법이라는 배설물들 찌거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바로 그 이스라엘 아닙니까

율법으로 의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반드시 끊어진다라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들어서 애기하고 있는 겁니다.너희들이 무슨 아들이냐 라는 겁니다.

바울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갈리디아 교회에게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것이 있습니다.

(서신서는 대부분 그 복음, 넷으로 주어진 그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로

자꾸 회개하려하는, 퇴보하려고 하는 그 초대교회들에게 사도들이 절절하게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낸 편지입니다)

(갈5:4)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카탈게오καταργέωG2673)

- 끊어져서 완전히 멸망하다.부정적 끊어짐

-로마서 9장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서는..

아포 호 크리스토스입니다-그리스도로부터(FROM)입니다.

여기에 카탈게오가 붙어버리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부정적 애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자들이 끊어진다고 그래요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서 끊어진 자다라고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진(에크핍토έκπίπτωG1601) 자로다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자들

다시말해서 육적예수,(아들,언약,약속,율법모두..포함한)

그 육적예수를 표적으로 보고 땅의 음식 땅의 먹이 나의 육적자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 육적자아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렇게 표적으로 예수를 바 버리면

그리고 그 예수를 당연히 그 예수가 당연히 주었다 하니까 섬기고 숭앙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바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망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아닌 거니까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언약,약속,율법,그 육신의 예수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난 주 야곱의 얍복강이후의 삶,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 요셉의 삶을 그 유다라는 안경으로 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는 요셉의 이야기로 풉니다.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습니다.그 이스라엘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삶을 요셉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그 율법,그 자신을 헌신하여 자기가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마련하려고 하는

그 열심,율법이잖아요,야곱이잖아요.실족시키는자,강도 잖아요.

그가 하나님께 환돌뼈를 가격당하여 그 율법을 그 말씀을 마음으로 갖게 되었을때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 삶을 요셉이 설명해주기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밖에서 나타나 애기하는 장면이 성경에는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이미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가진 자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 겁니다.그렇게 그 역할로 살고 있는 겁니다.

요셉이 그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사이에 유다와 다말의 애기를 끼워넣습니다.

그 유다라는 안경으로 요셉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도 이스라엘이고 유다도 이스라엘이네요.유대인 이스라엘,이스라엘이나 유대나 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아나데마의 삶을 살다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그 요셉의 삶을 하나로 묶어서 성경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표적,보증,표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라고 합니다.

남유다나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그들이 남북으로 갈라졌을때 이름을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지은 건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유대인 이스라엘인,유대 이스라엘,막 혼용해서 쓰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메시아가 오셔야 되는 거고,이스라엘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루우벤으로 시작하여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완성된 아들)으로 끝나는 겁니다.

-벤이 아들이니까.보라 아들이 여기있다 ,아들의 시작 그리고 열둘을 성경에서 계속 아들로 씁니다.열둘,아들

그래서 유다도 아들을 낳아하고 씨를 가져야 하고 이스라엘도 아들을 가져야 하고

그 아들에 의해서 그들이 살아나고 그 아들을 표적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진리로 해석된 표적이야 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표적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그 이야기가 요셉(양식관장,말씀을 갖고 있는자로,인과표를 갖고 있는자로 )

이 양식을 가지고 있는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 같은 거니까 그 개념을 끌어다가 사도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영적이스라엘 씨를 가진 어떤이들을 설명하는 겁니다.

 

어떤이들은 그걸 엉터리 씨로 갖고 있더라는 걸..그래서

그들을 갖고 수많은 표적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게

그거냐 그건 내용으로 이해 되어져야지 이렇게 피력하고 있는 겁니다.끊어짐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 이건 우리의 애기입니다.영적이스라엘은 우리입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요셉이라는 아들로 축약이 되어서

그 자손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녀내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유다는 메시아를 낳아야 되는 역할을 부여 받은 자입니다.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실로가 온다고 그랬는데 그 실로가 메시아입니다.

유다의 씨로 실로가 온다.그래야 유다가 살아난다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그래서 그 셋째에게 며느리를 주지 않습니다.

며느리를 셋째에게 줘야 자손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 자손이 없으면 자기도 죽습니다.멸망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주님이 땅에 음란한 여자,성경에서 간음하는 여자는 항상 내 남편을 그리스도

진리로 갖지않고 율법으로 가져 나와 연합시키면 그걸 간음한다 성경이 애기합니다,율법과 간음하는자

예수님이 율법으로 오셨다는 것은 간음하는자 창녀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 씨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던 이에게 그래서 죽어야 하는 어떤이에게 가서 그에게 인과 지팡이를

받아내고는 씨를 만들어버리는 겁니다.그 여자가...

이 죽어야 할 유다는 먼지도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가 지난주에는 이 유다와 다말이야기를 죽어야 할 부정한 다말이 나중에 그 씨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는 그 씨의 주인에게 그 씨의 인과지팡이를 내어 놓아야 산다고 그랬 습니다.

그 이야기나 지금 제가 다말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는 예수그리스도로 설명하는 거나

똑같은 애기입니다.

 

그 여자에게 유다는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하냐면 염소를 주면 안되요.유다가 멀 알아서 염소를 안 준게

아니라 이쪽에서 희생제물,율법을 안받아 버리는 겁니다.

인과 지팡이만 뺏어버리는 겁니다. 넌 내꺼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씨가 생기자 유다에게 어떤일이 생기냐면 그가 어떤 존재인지 폭로가 됩니다.

그 씨가 생기지 않았을때는 몰랐는데.싹 감추고 있었는데 마누라 죽은지 ? 일 안되서 창녀와 잠을 잔

유다가 폭로되는 겁니다.그때 당시는 율법으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였습니다.

다말이 입만 열면 유다는 죽는 겁니다.다말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야 할 그가 씨를 가진 여자가 자기가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평가를 다 뛰집어 써버리고

그 죄를 애기하지 않고 유다에게만 인과지팡이만 이게 당신꺼죠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에요.

유다가 그때 그게 ‘의’라고 애기하는 겁니다.니가 의롭다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거란 말입니다.

중요한 건 유다는 다말 사랑하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그 표 인과 지팡이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요셉의 이야기 였고...그러면 사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라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모면합니다.

요셉이라는 아들은 무죄한 아들이였어요.다른 형제들의 죄와 어두움을 고발하는 아들이였습니다.

고자질 잘하는 약쌉 빠른 인간이였다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다른이들의 어두움이 들어나 버립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그게 말씀입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그 어두움과 죄가 막 폭로가 됩니다.그게 요셉의 역할이였습니다.

그 자기가 어떤존재인지 드러나게 하는 이는 죽여야죠 그래서 형제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넣었는데

유다가 팔자 죽이지는 말자 그리고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이 어디입니까

무죄한 자가 애굽으로 가 애굽의 감옥으로 들어가요 (계시록에 애굽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 이야기 함니다)

예루살렘 율법을 애기하는 겁니다.무죄한 아들이 죄인이 되어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살아 그 땅에서 식량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 그 안에 양식을 가진자로 그 아비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겁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니까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반드시 그씨를 갖고 있어야 됩니다.표로 보증으로 꼭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용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그냥 껍데기 표로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게 나를 살리는 씨란 말입니다.나를 살리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 아들은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죠 그러면 반드시 그 영을 담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 진리를 담은 담고 이땅에 오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영의 그릇이 육신적 예수였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다말이고 다말이 유다이니까..중요한 건 그 표입니다

그 표라는 건 자칼이고 자칼이라는 단어도 표입니다.자칼은 네케바라는 그릇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칼은 남자가 되다,아들이 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그 표가 여자 안으로 들어가면 여자가 아들이 됩니다.

이게 구원의 메카니즘이라는 겁니다.그것을 하 아담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자칼과 네케바로 만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 아담입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죠 여러분...... 땅에서 나옵니다...

땅이 아다마(אךםה)에서 (ה)를 지워버리면 (אךם)아담입니다.

문자의 의미: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를(ם) 말하는 것(ה) =이걸 성경이 땅이라고 번역을 해놨습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사람 하 아담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אךם)아담은 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ם)인데...

아담만 되면 되는 겁니까? 어디서는 저주받을 인물로도 나타나고 어디서는 우리는 그 아담이

되어야지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임니다.

모든 인간들이 아담이에요.왜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을 담아 창조했다 하셨죠.

그 어떤 것도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게 없다 했습니다.

모든 것은 말씀을 담고 있어요. 모든 것은 진리입니다.

그 걸 모르고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모든 인간들은 진리를 삶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먹고 이렇게 삽니다.우리가 진리로 못보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다 말씀으로 창조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ם)를 제대로 깨닫고 ‘아 그거지’내안에 말로 가지고 있으면

하(ה) 아담(אךם)입니다.그냥 이 (אךם)아담이면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ה) 아담(אךם) 하(ה) 벤(בּן) 그 사람에 그 아들”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신약성경에도 “호 휘오스 호 안드로포스 그 사람에 그 아들” 이라고 합니다.

항상 관사를 붙입니다. 이 말은 그 진리를 가진 그 사람의 라인...

내가 이렇게 내 진리를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 어떤이가 그 진리를 가졌어.

그러면 그렇게 아들,아들,아들이 되는겁니다.

아담의 아들은 셋이 되는 거고 셋의 아들은 노아,노아의 아들은 셈..아르박삿..이렇게 아들을

낳아가는겁니다.그들이 바로 인자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참조---------------------------------------------------------------

17-2.하(ה) 아담(אךם ),아담(אךם)...

- 산상수훈 48 너희가 바로 보물이다 말씀중에서...

(אךמהH128, 아다마 / 땅) + 아파르(/עפרH6083/티끌.먼지)

=> 아담(אךם/H120/사람)

“땅에서 먼지(티끌)들을 모아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다음에 사람을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아담은

ךם(담H1818) + א(알레프) =אךם(아담) = 하나님의 피로 만들어진 존재

;피,blood ;하나님

 

(אךמהH128, 아다마 / 땅)에서 아파르( עפר/H6083/티끌.먼지)가 나오고

아파르( עפר/H6083/티끌.먼지)에서 아담 (אךם/H120/사람)이 나옵니다.

*(אךמהH128 아다마 / 땅)을 파자하면?

א 하나님께서

ך 분석(구별)하신

מ 그 진리가(를)

ה 말(소리)로 주면 (אךמהH128, 아다마 / 땅)입니다.

- 그 말씀에 의해서 아파르(עפר/H6083/티끌.먼지)가 주어지는데

아파르(עפר;/H6083/H6083/티끌. 먼지)가 율법 입니다.

나중에 보면

“너희 들에게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티끌이나 모래로 내리면 다 죽는다”라는

말에 나오는 그 티끌이 아파르(עפר /H6083/티끌.먼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אךמהH128 아다마 / 땅)=진리가 아파르(עפר /H6083)=율법으로

주어지는데

그것을 진리로 깨달으면 그것이 아담( אךם/H120/사람)이라는 존재 입니다.

그런데 아담( אךם/H120)=소리(진리)”가 없네요?

* 창세기에 보면은 관사 ה(하)가 붙어서 (אךמה128, 아다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אךמה (H128, 아다마 에서 “인자”라는 개념이 나오고 여기에서 계속해서

후손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 아담의 아들… 또 그 아담의 아들… 그 사람의 그 아들 = “인자”라고 하는 것)

그래서 אךמה(128, 아다마)= 하나님의 말씀"를 가지고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로 받아버리면

아담(אךם/H120)이 되기는 되요 그냥

“붉은 아담(죄)=성전의 아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를 진리로 깨달으면

(하ה 아담אךם )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ה 아담אךם )이라는 관사가 붙은 사람과

그냥 사람(;אךם/H120/아담)과 완전히 다릅니다.(성경)

이러한 내용을 숙지하고 계시면 성경을 읽는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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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진리를 설명하는 그 건 이 땅에 시체로 올 수 없잖아요.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말로 소리로 또는 형태로 이렇게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걸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라고 합니다.

- 눈에 보이는 것,성전으로(ע)말하기(פ)시작하는(ר)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 이 걸 티끌이라고 합니다.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율법,예수,세상...이런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것들은 그 진리를 가진 하(ה) 아담(אךם)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것이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입니다.

이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적으로 바 버리면 이걸‘티끌,모래”라 합니다

성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티끌,모래로 내릴거야.내가 너희를 바다의 모래로 만들어 버릴꺼야

이때 쓰이는 단어가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입니다.

그래서 이 걸 설명하기 위해서‘땅에서 티끌을 모아 사람을 만들었다’ 하십니다.

우리는 그걸 내용으로 알아야 합니다.

“땅에서 먼지(티끌)들을 모아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다음에 사람을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게 맞다’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말 하지도 마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 이스라엘은 그 씨,진리를 반드시 아들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아들 그 진리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광야는 스테반이 광야를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의 그 중심이 유다지파입니다(민수기2장)

그리고 유다지파가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깃발을 중심으로 남동서북으로 다른 지파들이

포진을 하고 거기에 성막이 세워지는 겁니다.

움직이면 또 유다지파의 중심이 되어서 그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데 그 깃발(데겔דּגלH1714-다갈에서유래)이라는 단어가 표적입니다.

유다가,이스라엘이 이 표가 무엇인지 알면 사는 것이고 모르면 죽는 겁니다.

그게 이 열두지파의 대표란 말입니다.

유다(예후다יהוּךהH3063)라는 말이 성전을 설명하고 뻗쳐내는 것,

- 야다יךהH3034에서 유래했으며,‘성전을 펼치다’‘성전을 뻗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와야합니다.

그 예수가 성전의 완성이였습니까 이니였습니다.

말 못하는 성전을 하나님이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말을 못하니 오해해서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고 있는 겁니다.그래서 말하는 성전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주님이 내가 성전이다 말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어야 할 성전이라고 했습니다.그러면 내가 세 번째 걸로 세운다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너희가 성령을 품고 있으니 너희가 세 번째 성전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하는 애기입니다,이게 완성 성전입니다.

내 안에 그 예수 있으니까 파괴되어 새 것으로 살아난 그 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성전이란 말입니다.

반드시 유다지파는 그 깃발을 갖고 바로 그 씨 살아난 그 아들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 유다는 그 아들은 그 이스라엘은...그러기 위해서는 그 표적은 반드시 깨져야 합니다.

 

쉽게 말할게요...

유다는 표를 깃발을 갖고 진리로 보면 살고 표적으로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라는 표적이 나오는 겁니다.

그 표적을 가진 유다가 그 예수를 표적으로 보면 죽는 거고 그것을 진리로 깨달으면 그들이

영적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 표적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찾으면 오트라는 단어입니다.(단어의 쓰임 예)

(출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오트אוֹתH226)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유다가 가진 표적이 피입니다(어린양의 피)

그 표적을 진리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모면한다 합니다.

그 피는 물,물은 성령(요한일서 5장)입니다.그 셋은 하나다 애기합니다.

그 피를 진리로 성령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을 내가 넘어가 살려 버리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출13:15-16)

15.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 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 이게 표적입니다. 표적은 죽어야할 장자가 하나님이 죽인 장자에 의해 살아난 다는 것을 표적으로 가지고

있어라 하십니다 이게 복음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그것이 유다가 가지고 있던 깃발입니다.

즉 유다,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과 지팡이가 같이 등장하는 겁니다.

지팡이는 항상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 보증으로 오신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G3875)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 표를 가지고 있는 유다가 네 번째 아들입니다.

(네 번째는 의미가 없습니다,아라비아 숫자도 없었습니다,즉 넷이라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표적이라는 단어가 맨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냐면 창세기 1장에 넷이라는 날입니다.

(창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 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하야היהH1961)

-눈에 보이는 넷이라는 그것이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넷번째 날입니다.

레비이(רביעיH7243)라는 단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래것으로 보여준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루어야 됩니다.완성을 해야 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에 의해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네 번째 날에 ‘광명’‘마오르’가 나오는 겁니다.

- 지난 수요일에도 배웠습니다.

‘마오르H3974’= מאוֹר 라는 단어는

빛 오르, מ + אוֹר(멤이 붙어서 어떤장소나 기명이나 기구가 됩니다)

= 빛이 비취는 장소,빛이 비취는 어떤 것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걸 ‘광명’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걸 태양,달,별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기 첫째날에 그 빛이 그것이 비후어지는 어떤 것,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창세기 첫째날은 넷째날과 짝입니다.당연히 그 빛이 어디에서 비취어 지는지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비취어지는 그 빛에 의해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성취된다라는 겁니다.

이게 넷입니다.

빛을(אוֹר) 진리로(מ) 주게되면 넷이라는 것이 성취가 되는데 그게 먼지를 시작하는데

첫단어가 (오트אוֹתH226) 표적,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다가 광명을 주신다 하십니다.

궁창 라키아는 금을 얇게 펼쳐서 덮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궁창을 완성과 아래것의 가운데에다 만들라고 합니다.

바브,와우(ו)라는 단어는 서로 마주보며 노를 저어 가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타베크(가운데)는

완성된 성전(위에것)과 아래것이 서로 마주보며 노를 젓어 만나는 그 지점을

가운데 타베크(위엣것과 아랫것의 교집합)라고 합니다.

위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이 주어져서 우리에게 위에것을 알기 위해 준것이(율법,성전,예수,성경,세상..) 이런 것들입니다.

거기에 라키아를 만들라는 건 성전을 내가 그런 용도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광명 마오르를 두시겠다는 겁니다.

나중에 마오르가 율법서에서 어떻게 쓰이냐면 성소안에 등대가 모두 마오르입니다.

성소를 비취어서 성전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그 역할을 하는 그 것을 그것도 일곱등대를

(일곱 말,일곱영,일곱눈모두 같습니다) 그것이 성전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면 ‘광명’‘마오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마오르에 의해서 무엇이 이루어 지냐면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완성이 된다라는 겁니다.

이게 먼지를 알면 유다라는 넷,넷이라는 유다가 가지고 있는 그 표가 어떻게 완성이 되야 그를

살리게 되는 건지 알수 있겠죠.

 

성경에서 광명이라는 것을 태양 달정도로 설명하는 것으로 용도로 쓰여진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을 담은 성전과 연결을 시켜서 우리에게 그 진리를 설명하기위해 마오르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겁니다.

 

1.징조,오트라는 단어가 표적,이적,표,깃발,증거,표징..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전,세상,율법,성경,예수,행하신 기적,십자가의 죽음 까지도

전부 표적이라는 것입니다.그자체로는 그릇이라는 겁니다.이 것은 반드시 내용으로 들려지고 읽혀져서 내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복음으로 넷으로 설명해 주신 다음에 내려 가셔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내가 아까 조금전에 애기 해 주었던 것들을 그것이 너희가 못 알아 들으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 줄게 " 이 걸 바"라고 주신거란 말입니다

그 것이 목적이 아니였다라는 것입니다.귀신 쫓아 내고 병 고치고 무덤에서 사람 살려 내고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나 바야 또 병들고 죽어요.

아니 이 세상에서 조금 건강하게 산다고 무슨 복이겠습니까 여러분!

그게 진짜 복이였다면 하나님이 하나 하나 쫓아 다니면서 만져서 구하고 그럽니까. 말로 행하시면 되는 것을...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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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전부 표적이란 말입니다.

그것들을 통하여 죄의 증상,사망의 증상등을 어떻게 완전하게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우리가 배우는 거지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걸 표적 껍데기로 보면 성경이 ‘어두움’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첫째날과 넷째날이 짝,둘째날과 다섯째날이 짝,셋째날과 여섯째날과 짝 이게 완료가 되면

일곱이라는 것이 되고 그 일곱을 마음으로 가지면 팔(여덟)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덟의 날에 살아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첫째날에 빛과 어두음을 나누셨다 합니다.하나님이 환하게 어둠게 나누었다는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어두움이라는 것을 2절에서 설명하시고 시작하십니다.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란 무슨 말이냐면

깊음이란 것의 이름을 어두움이라고 하자 하고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그 밑에서 이 깊음이 모인 물이고 그것을 바다 얌(יםH3220)이라고 할게...

하늘, 솨마임(שׂמיםH8064)이 ‘거기에 물이 있다’

-쉠שׂמ 명사로 쓰이면 물이지만 형용부사로 쓰면 ‘거기’라는

뜻입니다.그 물이 진리입니다.그걸 설명하기 위해 물론 상징적이지만...

아래에 물로 우리에게 준 것을, 눈에 보이게 준 것을 바다라고 하고 아래에 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잠시 우리가 어두움이라고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이 나쁜거에요. 그게 없이 그 위에 물을 알 수 있습니까?

그걸 직접 줄 수 없어서 우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유한적 존재의 절망적 한계입니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래에 물이라는 것을 주어 위에물을 설명하실려고 하시는데

눈에 보이는 아래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는데 이게 나쁜거냐구요.

그걸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래의 것으로 그냥 바 버리면 어두움이고 죄고 악입니다.

그 어두움으로 아래것을 알아 버리면 즉시 이 어두움과 나와는 아무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눈에 보이기는 똑같은 그 것이지만 나에게는 빛이란 말입니다.

그때 그 어두움이 그 죄가 그 악이 그 율법이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그걸 용서라고 하는 겁니다

그 어두움이 담고 있는 내용을 올바로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빛 오르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이름을 ‘낮’이라 이름하시고,낮이 날입니다.

욤יום(H3117)(진리를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아래것 어두움을 갖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복임을 알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낮’이라고

합니다.‘날’이라고 애기 하십니다.어두움은 ‘밤’이라 합니다.

‘밤’‘라일(לילH3915)은 ‘가르치다 가르치다’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얼 가르치기위해 어두움,밤을 주셨습니다.그러면 배우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날.낮’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가 이 역사라는 날들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해서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겁니다.이게 날들입니다.

날이란 의미가 그런말입니다.우리는 이세상에서 그 진리를 알고 가면 되는 겁니다.

그게 날들의 역사들의 목적입니다.

주님은 어두움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율법으로 오셨으니까 그런데 빛이라는 내용을

담고 오셨습니다.그리고 "내가 진리다" "내안에 있는 그 빛이 진리다" 애기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빛을 깨달을 수 가 없었습니다.그게 유한자의 한계입니다.

그 것을 깨달아 알면 낮입니다.그런데 주님이 이땅에 오셨는데 모두 어두움이였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아무도 못?다라는 겁니다.그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속에서 눈이 멀어 그냥 어두움을 살고 있었단 말입니다.모든 존재가...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표적으로 인식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렸어요.

그 표적안에 담겨 있는 빛을 봐야 되는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빛이잖아 내가 있는 동안이 낮이다’라고 하십니다

‘낮이 12시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원문을 보면‘내가 있는 그 시간이 12시간이 아니냐’입니다.

이 시간동안 내가 있는 시간동안에 너희는 열둘이 되야지.낮의 사람이 되야지,아들이 되어야지

이런 말입니다.그러나 너희들이 곧 나를 못 볼거야 그러면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 잠깐 왔다가

사라?네요.빛은 사라지고 그대로 이 세상은 또 어두움입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시길‘내가 사라지면 이제 심판이 오는데 어떤 자들이 심판을 받는지 아니

그 빛이 너희 안에 없으면 너희는 심판이다’그러십니다.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아무도 못알아 ?습니다.다 어두움이니까.

그러니까 그 빛이 너희 안으로 뚫고 들어가 버리겠다 하십니다.그거 없는 자는 이 어두운 세상속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그 자체가 죽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빛을 갖고 있는 이는 어두운 세상속에서 빛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죽어버린 표적을 자칼로 인과 지팡이로 보증으로 성령으로 당신들 백성들 안으로

뚫고 들어오게 만들어 버리십니다.심어 버리십니다.은혜로...선물로...그게 성령입니다.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반드시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르 ,빛으로 시작한 그 빛은 오트로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빛(אוֹר오르) → 표적(오트אוֹת)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 하나님이 완성하신다.(그 표적에 내용을 담아서,주어서)

그리고 표적(징조)부터 시작하십니다.

 

표적(징조)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로 주어진 성경,율법,성전,예수,세상,인간...이러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되지 못하면 멸망시키는 양식이 됩니다.

그 구유의 아기가 먹이다.

(구유가 양식이니까 주님이 내가 양식으로 왔다 했으니까,내가 하늘의 양식이야 하늘의 떡이야)

그것이 진리로 깨달아 지지 못하고 표적으로 보아져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면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는 양식이 되는 겁니다.

 

--역시 오병이어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요 6:26-27)

26.예수께서 대압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표적을 호라오하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으로 먹고 배만 불리고 그 것으로 나를 찾아 왔다라는 겁니다;나의 육적가치나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러한 섬김의 대상 이게 가짜 하나님입니다)

27.썩은 양식을(멸망시키는 양식이라는 뜻;너희가 내가 하는 기적이나 말이나 심지어 나까지도 이런 것들 표피로만

바버리면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이다,그러니까 이제 영생을 하도록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해,멸망시키는 양식이

너희들히 열심히 율법행하고 제사지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것이다.그런일 하지마 )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 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양식은 인 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말씀으로 주신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은 성령,보증입니다,그들이 너희에게 주어,그당시에는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그 다음에는 수많은 그 하나님의

그 아들들이 그사람의 그 아들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역할들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삭을 주시면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명하셨죠.

그리고 이것이 표적이다 하셨습니다.

(창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할례입니다}

이것이 나와 너희사이의 언약의 표징 이니라.

(할례입니다;인간의 생명의 근원,생명의 씨를 아에 차단해 버리는 겁니다.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할례를 표적이라합니다.그런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라고 합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약속의 자손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하죠 아들만 합니다.

아들은 팔의 날에 그에 그의 육의 생명을 완전히 부정당하는 자다.이런 말입니다.

그걸 할례라고 합니다.언약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그 건 제가 다음주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홍수 후에도 표적을 주십니다.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표적입니다)

- 무지개(케쉐트קשׂתH7198)는 일곱색깔입니다.칠입니다.

일곱을 너희에게 언약을 준다,이게 언약의 표적이다.하시고 일곱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곱을 안자들이 방주에서 그들이 나온자입니다.여덟입니다(베드로서에서)

그렇게 일곱을 알아 그 언약의 내용이 먼지를 알아 여덟이 되는게 무엇인지도 다음주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표적이라는 건 하나님의 언약,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오트라는 다음에 사시(모에드)라는 단어가 이여지는 겁니다.이건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마오르H3974’= מאוֹר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비취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표적 오트를 반드시 그 어떤 것으로 완성해 내실거에요 그런데 오트를 주고서는

그 건 만으로는 우리가 알수가 없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이 모에드라는 것을 주십니다.

 

2.사시(모에드מוֹעֵד)-정한때 약속하다,언약,약혼하다 이런 뜻입니다.

-사시(모에드<מוֹעֵד>); 야드<יָעַד연합하다>와 멤<ㅁ존재>의 조합입니다.

-에덴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단어입니다.

;절기 정한때 약혼하다,언약하다,정하다,이런 의미를 품고 있는 사시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그 언약의 마지막 목적이 멉니까.

자칼이신 말씀이신 하나님과 네케바에 불가한 우리의 혼인의 완성입니다.연합입니다.

이게 언약의 목적입니다.그래서 약혼하다,이 것은 반드시 혼인으로 이루어질 약혼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기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그사시 그 언약을 절기라는 것으로 주십니다.

절기는 사계절이라고 해도 되고 넷이죠,이스라엘의 절기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초막절)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봄여름가을겨울이 멉니까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하얗게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는 거에요.이걸 보라고 사계절을 주신겁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그 것으로 보라고 계절 절기 모에드를 주신게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유월절날 에 죽어야 할 첫 남편이 죽습니다.어린양입니다.-로마서7장

그리고 무교절에 교회 광야에 누룩들어가지 않은 하늘의 양식인 떡이 쏟아집니다.

그게 교회에요 말씀이 떨어지는 거죠

오순절날 새 남편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겁니다.그러면 추수가 된 알곡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장,영원히 사는 겁니다.이게 절기가 가진 의미입니다.

언약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진리를 표적으로 주십니다.먼지 몰라 그럼 내가 그 언약 혼인이 먼지를

풀어서 줄게 하시고 사시 모에드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 절기나 표적 모든 건 아직도 이 아래것입니다.

어두움의 것입니다.그 오트와 모에드가 어두움으로 주어졌지만 그게 먼지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아 버렸을때 ‘일자’욤(יוֹם진리를 받은자가 그 진리를 넘겨줄수 있으면 그걸)‘날’이라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두움과 오트와 모에드 그 것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이 아래에서 살아야 되니까 이 땅에 발들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랫것으로 이 어두움을 입고 삽니다.

우리가 크로노스의 삶을 사는 겁니다.그런데 그 걸 알아서 내가 진리로 가지고 있어요

그럼 난 크로노스를 살면서 카이노스를 같이 사는 겁니다

이렇게 양자를 같이 살 때 짝으로 사는 것 ,그것도 살고 이것도 사는거 ,어두움을 살 수 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빛을 가지고 사는 것을 솨네(שָׁנֶה연한)이라고 합니다.

-연한은 국어사전 찾아도 안나옵니다..^^

 

그러니까 표적부터 시작해서 연한으로 완성되어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게 넷이라는 겁니다.

유다라는 넷의 아들이 그렇게 표적을 갖고 시작하여 솨네로 완성을 하면 그게 영적이스라엘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바울은 그 표적들을 전부 나열한 다음에 이걸 너희들이 그냥 갖고 있는다고

너희들이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내가 로마서 8장에서 끊어짐이 아니라는 건

이런 걸 가졌다고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민족적 이스라엘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부터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성경은...

그러니까 요즘 세대주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자꾸 저에게 메일을 그냥 수십통씩 보내 가지고

외국학자들의 논문도 보내주고 ..이메일로... 세대주의 맞다고...

저 민족적 이스라엘이 곧 구원 받을거라고...가르칠라고 그래요..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그거 다 스팸멜 처리 해 놨으니까 보내도 안읽는다고...

그럴 시간도 없어요.멀 그걸 읽고 앉아있어 신학교때 다 공부한거...

천만의 말씀입니다.성경은 성도의 이야기만 합니다.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만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절기 그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혼인의 이야기를 이 크로노스

이 역사를 통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인생동안에 그 하나님과 잘 화해하여(연합되어) 결혼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사도바울은 중매쟁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앞에 휼룽한 아내로 중매한다.결혼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의 스팩은 영 말이 아니죠.(이사야 53장)

(사53:1-3)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 게 나타났느뇨

2.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보기에 연한 순 같고 볼품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아 뚝치면 넘어질 것 같애 얼마나 못생겼으면

얼굴을 돌린다고 그래,그 흔한 대학도 안 나왔어 무학이야,

(그당시 예루살렘에 4년재 정규대학이 2개나 있었고 전문대학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머리둘 곳도 없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 동생들은 왜 이렇게 많어 그리고 그를 남편으로

맞는 즉시 나의 육이 그 앞에서 부정이 되어야 돼 누가 이런 남편을 택합니까

그런데 정신나간 이들이 그 이를 내 신랑으로 받아 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치 그 신랑앞에서 나의 육적 원함과 내 육신이 부정 당하는 것이 맞지 라고 하며

그 남편을 신랑으로 꼭 붙들드라는 겁니다.

그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있지도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결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그거 배우라고 허락하신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끼리 마음 맞쳐서 행복한 천국의 원형을 이루라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렇게

결혼이란 제도를 준게 아닙니다.그게 목적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 인간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찾습니까

청년들 배우자들 기도제목좀 꺼내보세요....

왜 이 역사속에서 예수와 정반대의 스펙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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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대의 혼인은 아이가 태어나야 비로서 완성이 됩니다.

혼인의 절차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장인 장모가 있는 장가로 와야 됩니다.

그래서 장가간다 하는 겁니다

남편이 혼자 밤에 와요 그리고 칠에 날 동안 밤에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 장가에서 살아야 합니다. 첫 아이를 날 때까지..

첫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계시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영혼이 사는 겁니다. 이게 혼인의 완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역사 날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바로 그 혼인을 완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아들 씨를 내안에 가져야 합니다.

그 진리를 내안에 가져야 사는 겁니다.그래야 혼인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게 모에드고 그것이 진리의 씨로 왔을때 날이고 그래서 위에 삶과 아래의 삶을 동시에 사는

이 세상의 빛이,세상의 빛이 된 자들의 삶을 솨네 라고 하는 겁니다.

양자를 다 사는 이들의 삶...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열의 율법을 넷으로 준거에요

에스카톨러스 코드란테스 넷의 마지막을 반드시 완성해 그러면 정사각형이 되겠죠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입니다.계시록에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성을 정사각형 정육면체로 묘사를 합니다.

그 넷의 의미가 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말씀을 그 오트를 갖고 그 하나님의 완성 그 걸로 진리로 완성해 버려

그러면 그게 무트가 되며 그게 죽음입니다.

우리가 오트 표적을 진리로 완성해 버리면 그걸 육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부정당해 버리는 겁니다.그걸 완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적의 평화가 바로 예수입니다.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조상등을 통해서 설명이된 아들입니다.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되었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이 나다라고 애기 하신거고 그 성경이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라고 애기하신 겁니다.

그렇게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였다.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깨져야 할 표적들만을 붙들고서는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걸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건 우리의 애기입니다.

오늘날에도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저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저마다 찬송을 하고 저마다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합니다.

약속을 이야기 하고 언약을 이야기 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요즈음은 이것도 힘들다고 그 어려운 조직 신학적 애기는 하지 말고 신문만 애기해요

그런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표적으로 섬기고 ,표적으로서의 예수를 섬기고 그 예수가 하고 있는 일만

칭송하고 잇는 겁니다.

죽은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려 놓은 다음에 열심히 그 예수만 섬기고 있어요

그게 죽은 것 같았으나 다시 산 짐승으로서의 예수입니다.

내가 세상임금으로 죽을 거야 그게 십자가란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그이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그이가 세상임금입니다.

내가 국어사전 상식으로만 이해하니까 세상임금 사탄 이렇게 알고 있는 거에요. 뱀 마귀 이렇게

그분이 세상임금으로 죽어야 세상임금 되고자 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거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이 내가 세상임금으로 죽을건데 곧 세상임금이 또 다시 온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이들이 세상임금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자기들의 유익에 써 먹을거라는 겁니다.

열심히 섬기면서...

주님이 그는 나와 아무상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그리스도와 아무상관 없는 예수를 표적으로써의 예수

그걸 율법으로 성전으로 여전히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죽은시체는 부정하다 하여 절대 못 만지게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의 장사를

아리마대 요셉에게 했습니다.왜 예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까?

왜 가족들은 나두고 왜 아리마대 요셉에게 장사를 시켰습니까?

요셉이라는 이름은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사람이 죽은 예수를 만지면 안되기에 그의 아버지가

장사지내야 된다는 의미에서 그가 굴에다가 갖다 쳐 넣는 겁니다.

그 굴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묻혔던 그 이후에 인자의 라인 묻혔던 막벨라 굴이라는 의미입니다.

양 우리는 늘 성전을 애기합니다.율법의 성전에 예수가 율법으로 묻혔으면 다시는 만져도 안되고

가도 안되는 겁니다.옛날에는 무덤을 무덤에 본봉을 세우지 않고 평토장을 했습니다.부정하니까

혹시 자기들이 밝을지 몰라서 그 자리에 회를 칠해놨습니다.안 밝을려고 그런 율법적 노력과

시도를 주님이 회치라 무덤이라고 했습니다.그런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냐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 죽은 예수를 살려놓고 열심히 거기 가서 가지고 이 예배당을 성전화 시켜놓고 거기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로 살아서 내안에 생명으로 들어왔는데 내 박에다 걸어놓고 내 소원을 내 인간 의로서의 욕망 성취를

나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 열심히 빌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부 예배든 모든 주인공은 나여야 됩니다.

내가 은혜 안 받으면 안되고 나를 감동시켜주지 못하는 찬양팀은 찬양팀도 아니야

오늘 예배 분위기가 왜이래요 당신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그 진리를 설명해주는게 못내 다 불편한 거에요 하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어느 목회자를 예를들어서

 

회복의 하나님 이게 피상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데요.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데요.

회복하세요.배부르게 가세요 야고보가 애기한 피상교와 뭐가 다릅니까

어떻게 되는지를 성경으로 설명해 줘야죠

어떻게 회복이 되는 지 설명을 해 줘야죠

잠만자면 회복이 됩니까.하나님이 잠이란 걸 만들어 줘서 감사행요

그걸 깨달아야 되냐고요 우리가 그런데 수천명 수만명이 앉아가지고 한국교회 지성들은 거기 다 가 있다던데

근데 거기 앉아서 아멘아멘하고 있어요.날 회복시켜준다니까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형식적입니까

하나님께 내가 회복이 되길 원함니다 하면 내가 회복이 됩니까

아무 의미없이 굳 모닝 굳 애프터 눈 이거랑 머가 달라요 같죠

멀 굳 모닝이야 언제 봤다고 아무한테나 안녕하세요...

안녕이 평안 에이레네요.진리를 모르는 이는 그 평안 절대 못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못하죠,안녕하게 해드릴까요.안녕할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릴까요..

이렇게 원래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에게 안녕하세요 진리를 모른 이들이 어떻게 안녕하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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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표적으로서 예수에 머물려 있는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가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들이삭이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이곳에 아직 애가지 못한 이들은 다 기도해서 다 애를 가져야죠..애 허락한것이 아니라

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표적이 담고 있는 그 씨를 주겟다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이해를 못하니까

아들 주겠다는 애기인가 그 아들에게 그 씨를 진리를 담아서 아버지를 담아 아들안에 담아

이 걸로 아버지 그 씨를 ?달아 알라고 준거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후손 이삭 그 씨를 통하여 그 진리를 깨닫고 브웰쉐바를 팍 찍은다음에

진리를 알아요 이게 일곱우물이지 이것이 진리이지 알자

하나님께서 그럼 이건 필요없잖아 이걸 갖다 파괴해라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준 아버지를 담아준 그 아들은 파괴해라

그래야 그 내안에 그게 아버지로 들어갈거 아니냐.이삭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형으로만 보여주는 겁니다.그게 어떤거냐면

이렇게 준비된 어린양이 내가 준비한 양이 죽어야 할 자 대신에 죽는게 그 이야기 였으니까

이제는 그 이삭이 이야기 하고 잇는 것은 모형으로서의 그릇은 필요 없잖아라고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이삭이라는 아들을 나에게 주셨잖아요

이제 그 아들은 백세에 주신 후 불면 날아 버릴까 금이야 옥이야 나의 섬김의 대상의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담고 있는 더 귀한 그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섬김의 대상이 안되는 겁니다.

이제는 그 아버지를 알았으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버지를 진리를 담아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 땅에 얘수를 보내셨어요.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와아들은 하나다 라고 하신 겁니다.내가 그아들로

왓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분은 그 예수를 통하여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았잖아요

그 진리를 그 복음을 알았으면 그러면 그 예수는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예수는 다 살아서 여기에 매달려 살아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파괴되어야 하는 겁니다.모리아산에서..거기가 예루살렘 아닙니까

이젠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안에 담아 나에게 허락하신

내 아들이 되는 겁니다.내 아들이 되면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누가 아들을 섬김니까 요즘같이 무엇 때문에 산지 모르는 인간들이 그 자식에 꽁꽁 묵여가지고..

그게 다들 생명이야 그러니까 설명을 해도 모르는 겁니다.

주님이 내가 검을 주러 왔다라는 말씀이 제일 먼저 끊어냈던 것이 바로 그 관계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섬기라고 내가 너에게 허락한거냐 하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 아들안에 담겨 있는 아버지를 깨달아라고 하는 겁니다.그러면 그 아버지를 깨달았으면

그 예수는 내 안으로 빛으로 들어와야 되는 겁니다.나는 그걸 아다마 하 아담의 소리를 전해주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예수는 섬김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전히 표적이라는 겁니다.표적은 멸망의 양식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를 포함한 모든 표적들은 모두 진리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어서 마음속으로 들어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소리도 없고 언어도 없어 그러나 그것은 뜻은 통해...

그게 진리다 이렇게 애기 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말로 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 뜻으로 통하는 겁니다. 이걸 이심전심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말로 소리로 전하고 있는데 이 마음을 가져가면 그게 성령이 계시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찬송이 터지는 거지

무슨 내가 대단한 경험을 하고 기적을 행하고 은이빨이 금이빨이 되고 부러졌던 팔이 붙고..

그게 나를 살립니까

(시편19:1-4)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일을 나타내는 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주님이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자는 소리는 듣는데 그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근데 흔적이 남는단다.성령을 안자들은 다 그래...

날때부터 소경인자..누가 나를 고쳤는지 몰라요 (본적이 없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통하는 겁니다.그게 진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표적이 깨지고 내용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생명수 진리의 물이 이렇게 통하여 흘러가게 하는 일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성령을 배 (코일리아κοιλίαG2836;성전)에서 흐르는 생수라고 합니다.

창세기 2장에 넷으로 흐르는 생수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이 모에드의 에덴입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넷으로 흐르는 강이야기도 그이야기입니다.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표적들을 주시고 그것들로 진리로 깨달아 알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그 표적에 머물며 하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른

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하나님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터져버린 자유가 우리서머나 교회를 가득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4.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조상들도 저희것이요 육신으로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느니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9장 4절에서 5절까지 말씀, 우리 함께 봉독합니다.

 

(롬9:4-5)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아 다음 주까지, 공부를 해야, 오늘 설교가 이제 완벽하게 이해가 가실 텐데, 그래두 이번 주에 잘 들어두셔야, 다음 주에 제대루된, 그런 결론을 내리실 수가 있습니다. 아 바울은, 계속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어 그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열심히 피력합니다.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막 주고, 읽어서 깨달아라 라고 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당연히 이 이야기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는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는 말이예요. 저 민족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됨과, 아들이죠? 영광과, 언약, 율법, 예배, 약속,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 이 있죠? 조상들이 있고, 

또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예수님도 유다지파의 사람이니깐요? 그러나,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시며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가 너희에게서 났지만, 그 예수는? 그리스도가 났는데, 육적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5절이.

 

그럼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지금 바울이 나열한 그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죠? 

그렇잖아요? 아들됨, 언약, 약속, 율법, 조상, 조상 이라는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씨, 아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죠? 근데 그 씨가, 그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니, 우리가 못 알아 먹으니까, 그걸 문자로 펼쳐준게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면, 그 율법은 그냥 풀리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건 좋은 거란 말예요.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겁니까? 그것들을 가지고만 있으면 구원이 돼요?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내용에 따르면, 바울은, 율법이라는 거짓말에 빠져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이스라엘에게, 그 참 말의 진리를 전파해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 말을 한다 그러죠? 그 참 말이 진리라는 말이예요? 거짓말을 하고, 하지 않고, 내가 참말을 하는데, 나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수,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라고 자기의 그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게,지금 로마서 9장이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예를 들고 있는 이 민족적 이스라엘은, 그러한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어떤 자들로 지금 예되고 있는 거잖아요? 모형 되고 있는 거잖아요? 아 그렇다면, 단지 이러한 것들을 열심히 행하고, 이러한 배경을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서 육신의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육신의 예수가, 탄생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얘기예요. 여러분들이 그 예수를 육신으로 낳았다라고 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지금, 바울이요. 쉽게 말해서 지금, 바울이 나열하고 있는 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 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거라는 거예요, 쎄 메이온, 표적. 양자됨, 언약, 율법, 약속, 예배, 조상, 예수 이렇게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영광, 영광, 독사라는게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걸, 드러난 걸, 독사, 영광이라고 한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 눈에 보이게 나타난 그 영광, 그것이,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이 땅에 세워진 것들이잖아요?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것, 그래서 우리의 눈에 이렇게 보이는 것, 케이마이, 보이는걸, 표적, 쎄메이온, 그래요. 싸인, 씨그널, 어디를? 가리키는거죠? 쎄메이온 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것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이정표 자체가 가치있는게 아니잖아요?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 쎄메이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 보세요.

 

(눅2: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가 구유로 오신 것이, 표적이다 그래요. 

그 예수 안에,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조상 등의 개념들이, 모두 함유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는 예수가, 표적으로 주어진거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닌깐요. 

여기서 구유라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히브리 말로 구유라는 단어가, 에부스 라는 말이거든요? 

에부스 가 요렇게 쓰는데, 요 싸멕이 위에서 이렇게 기둥을 내려다보는 거거든요? 고걸 형상화해서 문자로 만든거예요. 

기둥은 언약이죠? 눈에 보이는 언약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부스, 구유라는 것은 이사야서 1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 구유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시면 그걸 구유라 그래요. 근데 요거를 모음은 뭐 필요 없는거니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지워버리면, 아바스라고 읽어버리면, 요걸 먹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구유라는건 뭐냐하면, 그래서인제 구유라는 말로 쓰는거예요. 먹이통이니까, 

구유라는건, 하나님께서,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어서, 먹이기 위해 준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구유라 그래요? 그게 뭡니까? 

우리에게 양식으로주어 먹이게 하기 위해, 먹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언약, 약속으로 준게 뭐예요? 히브리서에 나오잖아요? 예수라니깐요? 

그 예수라는 아기가, 구유에, 구유에도 아니예요, 구유로, 케이마이, 이렇게 돼 있어요, 제시되어 있어요, 보라구 제시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표적이다 그러는거예요 성경이. 그러면, 

구유로 오신 예수가 그 하늘의 양식, 진짜 양식으로 보여져야, 그게 진리죠? 그런데 그게 그냥 표적으로 보면 그게 엉뚱한 양식이 된다 말이예요.

 

자 예수는, 표적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건 지금, 그 구유와 아기 예수가 하나가 되어 있는 고런 형국을 그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그게 보이지 않는 그 하늘의 영광, 독사, 나타난거야, 하나님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그 하늘이 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나타낸게 독사잖아요? 그래서 그걸, 하늘에는, 하늘의 영광이라고 하고, 그게 땅에, 에이레네, 평화를 가져다 주는거 아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구유와, 구유로 온 그 예수를 보고, 하늘에는 영광,땅에 평화 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근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그분의 행한 일이나, 말 등을 그냥 표피적으로 받아버리면,

'야 예수님이 중풍병자도 살렸대, 혈루증 환자도 응? 살려냈대. 죽은자도, 나사로도 무덤에서 끄집어냈대. 물 위를 걸으셨대. '이런거.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대, 심지어 이거까지. 

그게 무슨 여러분을 구원해주냐구요?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까? 

진짜? 그게 여러분을 용서하나요? 정말? 

그걸 그냥 표피적으로 받으면, 그건 성경이 악 이라그래요, 악. 

마태복음 16장 1절 보세요

(마16: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이 천기가, 프로소포모 우라노스 예요. 하늘의 그 나타난것, 프로소폰, 파님, 

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 이렇게 나타난걸 프로소폰이라 한다 그랬죠? 그걸 천기 라고 이렇게 번역해 논거예요? 

그 하늘의 외적인 그 모습, 나타난 그거, 율법이죠? 그거 당연히. 

그거는 분, 분별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시대의 표적은 부별할 수가 없냐? 이렇게 말씀하세요.

야 저녁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니? 아침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얘기할라구 하는거야? 

그렇게 어떻게 껍데기는 잘보고, 너희들이 편한대로 다 해석해서 가지면서, 왜 그 시대의 표적으로 그걸 못보냐? 이런 말이예요. 

그래놓고 나에게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구?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게 전부 그걸 내용으로 담아준건데, 또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 그러냐? 이러는거죠?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이게 지금,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걸 표적으로 보고, 표적으로만 보고, 

그리고 주님께 와서, 아 그거 되게 배불르든데요? 굉장히 맛나던데요? 

그때당시에 일용직 노동자는요, 하루에 열심히 노동을 하며는, 한 데나리온 받았어요. 이게 하루 빵값이예요. 

근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쫓는 이들을 무상으로 계속 먹여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쫓아오죠. 하루 죙일 나가서 일해봐야, 떡 하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주니까 당연히 와가, 오더니, 그거 참 멋진 능력이다 이거예요. 그런 기능을 가진 당신 우리의 왕이 돼 달래는 거죠. 

그리고 그런류의 표적을 자꾸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이 뭐라 그러시냐 하면, 

너희는 표적을 호라오 하지 못하고, 그냥 표적을 옵타노마이 에이도 하고는, 

나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 달라고 찾아오는구나. 너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 내용으로 봐야지, 어떻게 너희는 그것을 그냥 표적으로만 보냐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이 그러죠? 떡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그 표적은, 진짜 하늘의 양식은 그 떡 이야기를 하는 거그덩? 

근데 너희들도 또 세상의 떡 이야기를 하고 앉었니? 내가 언제 그 떡 가져오라 그랬니? 

왜 떡 가져왔냐 안가져왔냐 그거갖고 왜 싸우고 있어? 

그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이라는거야 라고 이야기하는거죠.

누룩은 뭐예요? 섞임과 혼합, 변질, 왜곡의 대명사죠? 누루과 꿀이. 

그래서 주님이 만나 주셨을 때, 이스라엘이, 꿀섞인 과자네? 그러는거예요.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여버린 거에요. 

주님은 진주로 줬는데. 

그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예요. 그렇게 표적으로만 봐버리면, 모든걸, 껍데기로만 봐버리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과 끊어져있는 육적 이스라엘의 그모습이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율법, 성전, 제사 이걸 표적으로만 보고, 그것만 열심히 행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황하게 나열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구요.

바울은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 자들은, 

8장에서 바울이, 피조물들이,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좀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탄식하며 기다린다 그랬잖아요? 

그렇게, 아들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어질 수 없다 라고 단언을 해버리죠? 

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되어, 선이 되니까, 라고 설명까지 해줘요. 

그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구원이 필요한 어떤 이들을 지금 등장시키고 있는 거예요. 

이런 자들은 끊어진다는 거에요. 아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여전히 이런 자들은 아들 아니다? 이런 이야기 하는거에요 지금.

그들이 바로 율법과 희생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 아닙니까? 

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그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율법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은, 

그 , 이 유한 존재들의 절망적 실존, 한계, 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그 옛 모습이며, 진리를 알기 전에 옛 모습이며, 

여전히 그들 알게, 안에 남아있는,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 안에 남아있는, 

그 율법이라는 배설물, 찌꺼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그 이스라엘 아닙니까? 

율법으로 의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반드시 끊어진다 라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던지고 있는 거에요. 니들이 무슨 아들이냐는 거에요.

바울이 율법주의에 빠져있던, 갈라디아 교회에게, 보다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적이 있어요? 

서신서는 대부분, 그 복음, 넷 으로 주어진 그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로 자꾸 회귀할려고 하는, 

그렇게 그냥 퇴보할려고 하는, 그 초대교회들에게 사도들이 절절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낸 편지들 아닙니까? 

갈라디아서 5장 4절

(갈5: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갈라디아 교회는)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게 카탈게오 아뽀호 크리스토스 거든요? 카달게오 는 끊어져서 완전히 멸망하다, 부정적 끊어짐이죠. 로마서 9장에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서, 여기에서 나온거는 그냥 아뽀호 크리스토스 거든요? 그냥 프롬 이예요. 그리스도 로부터. 

근데 앞에 카탈게오 가 이렇게 붙어 버리면, 이거는 진짜 완전히 끊어져서 망하는 부정적인 끊어짐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근데 어떤 자들이 끊어진다 그래요? 율법 안에서 의롭게,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다 라는 거에요. 

그들은 은혜로부터도, 떨어진 자라는거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 다시 말해서, 육적 예수, 

아들, 언약, 약속, 율법 이런거 다, 예수 안에 포함된 겁니다? 

그 육적 예수를 표적으로 보고, 땅에 음식, 땅에 먹이, 나의 이 육적 자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리고 이 육적 자아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렇게 표적으로 예수를 봐버리면,

그리고 그예수를, 당연히 그예수가 나에게 그런걸 주었다고 하니까, 섬기고, 숭앙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바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망하는 자들이라는 거에요. 그들은 진리가 아닌거니까.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는거에요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 약속, 언약, 율법, 그 육신의 예수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제가 지난주에, 야곱의 그 얍복강 이후의 삶, 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 요셉의 삶을 유다라는 안경으로 봐야하는 것이라 그랬죠?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는 요셉의 이야기를 풀잖아요? 

이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 삶을 요셉으로 설명해 준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건, 그 율법, 그 자기를 헌신하여, 자기가,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마련할려고 하는 그 열심, 

그게 율법이잖아요? 야곱이잖아요 그것이? 실족시키는 자잖아요? 강도잖아요 그것이? 

그가 하나님에게 환도 뼈를 가격당하여, 그 율법을, 말씀을, 마음으로 갖게 되었을 때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하죠? 

그 삶을 요셉이 설명해주기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밖에서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단 한 줄도 없어요.

이미 그하나님 말씀은 마음으로 가진 자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지금 살고 있는, 그 역할로 살고 있는 거란 말에요, 지금 요셉이. 근데 그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고 사이에, 유다의 이야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끼어 넣는건, 바로 이 유다라는 안경을 갖고 요셉을 보라는 거죠? 

그럼 요셉은 이스라엘이고, 유다도 이스라엘이네요. 유대인, 이스라엘 다 똑같은 말 아닙니까?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유대나.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이땅에서 아나데마 의 삶을 살다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 요셉의 삶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성경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거에요. 

그들은 뭘 갖고 있어야 된다? 표적을 갖고 있어야 된다 그래요. 

보증, 표를 갖고 있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말입니다.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남북으로 이렇게 갈라졌을 때, 이름을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이렇게 지은 거는, 

그냥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다 이렇게, 그런 말이예요. 유다가 둘로 갈라졌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유대인, 이스라엘인, 유대, 이스라엘, 막 혼용해서 쓴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메시야가 오셔야 되는 거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이, 르우벤으로 시작하여, 벤 야민으로 끝나는 거에요. 벤이 아들이니까. 

르우벤, 아들이 여기 있다 보라, 아들이다, 아들의 시작. 벤 야민, 오른 손의 아들, 완성된 아들. 이런 뜻인 거에요. 

그리고 열 둘을 아들로, 성경에서 계속 쓰잖아요? 열둘, 아들. 

그러니까 유다도, 아들을 낳아야 하고, 씨를 가져야 되고, 이스라엘도? 아들을 가져야 돼요. 그래야 그 아들에 의해 그들이 살아나요. 

근데 그 아들은, 표적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되고, 진리로 해석된 표적이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유다가 표적을 갖고 있는거고, 그 이야기가, 요셉이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양식을 관장하잖아요?

말씀을 갖고 있는 자로, 표를, 인을 갖고 있는 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같은 거니까. 

그 개념을 끌어들여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10장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영적 이스라엘, 씨를 가진 어떤 이들을 설명하는 거에요.

어떤 이들은 그걸 엉터리 씨로 갖고 있더라는거. 

그래서 그들이 갖고있던 수많은 표적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게 그거냐? 그건 내용으로 이해되어져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끊어짐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 이건 우리의 이야기라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은 우리니까.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요셉이라는 아들로 축약이 되어서, 그자손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유다는 메시야를 낳아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죠?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실로가 온다 그랬는데, 창세기 49장에서, 그 실로가 메시야거든요. 유다의 씨로 실로가 온다, 그래야 유다가 살아난다 말입니다. 

근데 유다는 그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그래서 그 세째에게, 며느리를 주질 않아요.

며느리를 세째에게 줘야 자손이 생긴다 말이예요. 그자손이 없으면 자기도 죽습니다? 멸망이란 말예요.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주님이, 땅에, 음란한 여자, 성경에서 간음하는 여자는 항상 뭘 의미한다 그랬죠? 

내 남편을 그리스도, 진리로 갖지 않고, 율법으로 가져, 나와 연합시키면 그걸 간음한다 라 그러잖아요? 성경이. 

간음하는, 율법과 간음하는 자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율법으로 오셨다는건 뭐예요? 그분이 간음하는 여자, 창녀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는 거에요. 

오시더니, 그 씨와, 그 씨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어떤 이에게, 그래서 죽어야하는 어떤 이에게 가서, 

그에게 인과 지팡이를 받아내고는, 씨를 만들어 버리는 거에요. 

그 여자가. 이 유다는, 죽어야하는 이 유다는, 뭔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가 지난주에는, 이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죽어야할 부정한 다말이, 나중에 그 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그 씨의 주인에게,

그 씨의 주인의 인과 지팡이를, 내놓아야 산다 그랬죠? 그 이야기나, 

지금 제가 지금 다말을, 우리를 살리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는 거나 똑같은 이야기예요.

그 여자에게 유다는 뭘 내놓아야 되냐 하면, 염소를 주면 안돼요. 근데, 유다가 자기가 뭘 알아서 염소를 안 준게 아니라, 

이쪽에서 안받아버리는 거래니깐요, 희생제물을, 희생제사는, 율법은, 안받아버리고, 인과 지팡이만 뺏어버리는 거예요. 넌 내꺼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씨가 생기자, 유다에게 어떤 일이 생기냐면, 그가 어떤 존재인지가 폭로가 돼요. 

그 씨가 생기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싹 감추고 있었는데, 씨가 생기자, 어떤 일이 폭로가 되냐면, 

마누라가 죽은 지 메칠 되지도 않아서 창녀와 잠을 잔 유다가 폭로되는 거에요. 그거는 그때 당시의 율법으로도 맞아 죽어야 되는 거에요, 돌에 맞아. 다말이 입만 뻥끗하면 유다는 죽는 겁니다 거기에서, 다말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야할 그가, 씨를 가진 그 여자가, 자기가 그 모든, 그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평가를 다 자기가 뒤집어 써버리고, 

입 뻥끗하지 않고, 유다에게만 인과 지팡이, 이게 당신꺼죠? 라고 이야기 한 다음에,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에요. 

그때 유다가, 그게 의다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니가 의롭다라고 이야기 한다니까요? 성경이 말하고 싶은건 그거란 말입니다. 

중요한건, 유다는, 그리고 다말, 살아야 하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반드시 그표, 그 인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라는 이야기예요. 

그게 요셉의 이야기였고. 그러면 사는 거예요.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라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모면하죠? 

요셉이라는 아들은 무죄한 아들이었어요. 다른 형제들의 그 죄와 어두움을 고발하는 아들이었죠? 

고자질을 잘하는 고런 얍삽한 인간이었다 라는 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다른 이들의 어두움이 드러나버려. 그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게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떨어지면, 어두움과 그 죄가 막 드러난다구, 폭로된다구요. 그게 요셉의 역할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는 그 형제는, 죽여야죠. 

그래서 형제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넣었는데, 유다가 팔자, 죽이지는 말자 

그래서 팔아요. 어디로 갑니까?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이 어딥니까? 무죄한 자가, 애굽으로 가, 애굽의 감옥으로 들어가요. 

요한계시록에서 그 애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 율법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로, 죄인이 되어 간다니깐요. 무죄한 아들이.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살아, 그 땅에 식량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 그 안에 양식을 가진 자, 로 그 아비를,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거에요. 

야곱이 이스라엘이니까.

 

그러이까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반드시 그 씨를, 갖고 있어야 돼요. 뭘루? 표루. 보증으로. 꼭 갖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내용으로 갖고 있어야 돼요. 그냥 껍데기 표로 갖고 있으면 안되고. 고게 나를 살리는, 씨란 말예요. 

나를 살리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 아들을 씨로 가져야 살 수 있어요. 

그 아들은?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죠? 그러면 반드시 그 영을 담는 그릇이 필요해요. 

그 진리를 담은, 담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 영의 그릇이 육신적 예수였어요. 

제가 지난주에,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랬죠? 

다말이 유다고, 유다가 다말이니까. 중요한건 그 표라닌깐요. 

그 표라는건, 쟈칼 이고, 쟈칼 이란 단어도 표 예요.

쟈칼 은 반드시 네케바 라는 여자, 그릇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돼야 된다 그랬죠? 

그런데 그 쟈칼 이란 단어가 무슨 뜻도 있냐면, 남자가 되다, 아들이 되라 라는 뜻도 있어요.

그 표가 여자 안으로 들어가면, 그 여자가 아들이 됩니다. 그게 구원의 메카니즘인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하 아담, 사람, 이라 그래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쟈칼과 네케바 로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입니다. 

그래놓고 그거를 사람 그래요. 근데 어떻게 불르냐 하면, 하 아담 그래요.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죠 여러분? 땅에서. 그죠? 

자 땅이 아다맙니다? 근데 이 아다마 가 뭐냐하면, 요거만 지워버리면 아담이죠? 

자 아담을 어떻게 만드냐 하면, 요 말로 만들어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는거, 이게 문자의 의미거든요?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를 말하면 그걸 아다마 라 그래요. 이걸 

성경이 그냥 땅 이렇게 번역을 해놨는데, 뭐 오케이 괜찮아요. 자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리, 그 말씀으로 

하나님은 하 아담, 사람,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거에요.

 

그럼 이 땅에서, 뭐가 만들어지냐 하면, 아담이 만들어지죠? 아담이. 그럼 아담은 뭐예요 이게? 하나님이 구별하신 진린데, 

이 아담만 되면 됩니까? 아담이 어디서는 굉장히 저주받을 인물로도 나타나고, 

어디서는, 우리는 그 아담이 되어야지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말이에요. 

그러면 한번 보잔 말이에요. 모든 인간들이 아담이에요.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을 담아 창조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어느것도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게 없다 그랬습니다? 

그러이까 모든 것은 말씀을 담고 있어요. 그 말씀은 진리란 말입니다. 

그걸 모르고 말하는걸 거짓말이라 그러지, 모든 인간들은 다 진리를 살고, 진리를 행하고, 진리를 먹고, 이렇게 살아요. 

그걸 우리가 진리로 못보아서 그러는거지. 왜? 하나님은 다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으니까. 근데, 보세요, 

이 하나님이 구별하신 그 진리를, 제대로 깨닫고, 아 그거지 라고 내 안에 말로 갖고 있으면, 그 양이 아담이면 안 되는 거죠? 

그걸 하 아담 이라 그래요. 

그럼 요걸 요 뒤로 갖다 붙이면, 그게 아다마 네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요 성경에는, 

그냥 이 사람이 아니라, 하 아담의 하 벤. 그 사람의 그 아들. 이라는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에요. 

신약 성경에도,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그 사람의 그 아들 이라 그래요. 항상 관사를 붙인다 말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요렇게 그 말을 진리로 가진, 그 자들의 라인, 제가 여기서 이렇게 설명했더니, 

어떤 이들이 또 그 말을 가졌어, 그러면 그렇게 아들 아들 아들 아들 아들들이 되는 거에요. 

아담의 아들은? 셋이 되는거고, 셋의 아들은? 노아, 노아의 아들은? 셈. 이렇게 아르박삿. 이렇게 나아, 나아가는 거죠? 

그 아들 아들 아들. 그걸 인자 라 그래요. 

그,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진리를 설명하는, 그, 그, 그건, 이땅에 그냥, 그 실체로 내려올 수는 없으니까, 

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말로, 소리로, 혹은 형태로, 이렇게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주신단 말에요. 그

걸 뭐라 그러냐면, 아파르 라 그런단 말에요. 

그런데 아파르 가 뭐냐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는 하나님이란 뜻이에요. 

그러며는, 그리고는 이걸 티끌이라 그런다구요 티끌. 

그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을 말하기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뭘, 줬어요? 성전, 율법, 예수, 세상,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뭐를 만들기 위하는 거라구요? 이진리를 가진 고 아담, 하 아담. 그, 그걸 만들기 위함이란 말예요. 

그래서 준 게 이거란 말예요. 그런데 이거를, 눈에 보이는걸, 그냥 표적으로 봐버리면, 그걸 뭐라 그래, 이걸, 티끌, 모래, 이렇게,성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티끌로 내릴꺼야, 모래로 내릴꺼야, 너희를 바다에 모래로 만들어 버릴꺼야. 이때 쓰이는게 이 아파르 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하겠냐구요. 그래서, 땅에서, 티끌을 모아, 사람을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에요. 

우리는 그걸 내용으로 알아야지, 땅에서 티끌을 이렇게 모아서, 물을 부어서 반죽을 해, 구워서 요렇게 만들어냈단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이런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말 하지 마시란 말에요.

 

자 그래서, 그 유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씨, 그걸 진리로, 아들로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이, 그 진리가 나를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의 그 중심, 광야는 뭐에요? 스데반이 그 광야를 교회라고 하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중심이 누구였어요? 어느 지파? 민수기 2장, 유다 지파였단 말예요. 

그리고 유다 지파가 깃발을 들고 있죠? 그 깃발을 중심으로, 남, 동, 서, 북, 쭉 이렇게 다른 지파들이 포진을 하고, 거기에 성막이 세워지는 거에요. 

움직여, 그러면 또 고대로 움직이는 거에요.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되어서. 

그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데, 그 깃발이라는 단어가, 표적이예요, 표적. 표에요. 이걸 들고, 

이게 뭔지, 이 표적이 뭔지를 알면 사는거고, 모르면 죽는 거에요. 누가? 유다가. 이스라엘이. 그게 이 열두 지파의 대표 란 말에요. 

근데 유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냐면, 성전을, 펼치다, 뻗다. 이런 뜻이에요. 

성전을 설명하고, 뻗쳐 내는거, 그게 유다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되죠? 

유다 지파, 유다라는 말 자체가 성전을 내뻗다, 펼치다 이런 뜻이니까. 

그리고, 그 예수가 성전, 그 성전의 완성이었어요? 아니잖아요.

말못하는 성전을 하나님이 보이는 걸로 줬더니, 말을 못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해서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말하는 성전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주님이 '내가 성전이다 '라고 이야기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어야할 성전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내가 세번째 걸로 세운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걸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너희가 성령을 품고 있느니 너희가 세번째 성전이 아니니?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우리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완성 성전이에요. 내 안에 그 예수 있느니까. 파괴되어 새것으로 살아난 그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성전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다시, 반드시, 그 유다 지파는, 그 깃발을 갖고, 바로 그 씨, 살아난 그 아들이 되어야 되는 거란 말에요. 

그 유다는, 아들은, 이스라엘은. 그러기 위해서는 그 표적은 반드시 깨져야죠.

쉽게 말할께요. 유다는, 표를, 깃발을 갖고, 진리로 보면 살고, 표적으로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라는, 표/적/이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그 표적을 가진 유다가, 그 예수를 표적으로 보면 죽는거고, 그것을 진리로 깨달아 알면,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거란 말입니다. 

자 표적이라는 그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찾으면, 오트 라는 단언데요,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세요. 

출애굽기 12장 13절

(출12: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뭐가? 피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될꺼래요. 

자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유다가 가진 표적이 뭐에요? 피에요 피. 

그 표적을 진리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모면한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 피는 뭐? 물. 물은 뭐? 성령. 요한일서 5장. 그 셋은 하나다. 이야기 하죠? 

그러이까 그 피를, 진리로, 성령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을, 내가 너머가 살려 버리겠다는 거죠? 이게 약속이란 말에요, 약속. 

출애굽기 13장 15절

(출13:15-16)

15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이게 표적이에요. 근데 뭘 표적으로 삼아요? 

죽어야할 장자가, 하나님이 죽인 장자에 의해, 살아난다 라는걸 니들의 표적으로 갖고 있으래요. 그게 복음 아닙니까? 

자, 그것이 유다가 갖고 있는 깃발이에요. 

이렇게 유다, 즉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이 돼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과, 지팡이가 같이 등장하는 거에요. 

항상 가르침을 의미하니까. 우리에게 가르친다 잖아요? 그 우리에게 보증으로 오신 그 파라 클레토스, 그 보혜사 성령이, 

보증으로 와서 우리를 가르치겠다 그래요. 그렇죠? 

자 그런데, 그 표, 표적을 갖고 있는 유다가 몇 번째 아들이죠? 네 번째 아들이에요.

네 번째, 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넷이라는 아들 이란 뜻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뭐 생선 장수한테 가서 네 마리 주세요 라고 할 때도 매듭을 네 개 이렇게 만들어서 '이거 ' 이랬는데,

무슨 네 번째가 뭐고 다섯 번째가 뭐겠어요? 

넷 이라는 아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도 없었구. 

그래서 표적이라는 단어가요,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냐 하면, 

창세기 1장에 넷이라는 날이예요. 네 번째 날. 창세기 1장 14절 보세요.

 

(창1:14)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이게 네 번째 날이거든요? 레비, 레비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랫것으로 보여준다는 뜻이에요. 

그것을 갖다가, 이루어야 돼. 완성을 해야된다 뜻이에요.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라고 돼있죠? 이게 완성돼야 된다라는 거에요. 

넷이라는게, 눈에 보여준 그것이, 완성이 되어야 돼. 무엇에 의해 ? 광명에 의해.

마오르 가 그래서, 네 번째 날에 나오는 거에요. 

이 마오르 라는 이 단어는, 우리가 지난 수요일에 배웠는데, 오르 라는 말이, 빛 이잖아요? 요게.

요게 빛이면, 히브리어는 맴 이 붙어버리면 이게, 장소나 어떤 기명이나 기구가 된다 그랬죠? 

그럼 빛이 비추는 장소, 빛이 비추는 어떤 것이란 말에요. 

이게 마오르 그래서 이걸 성경이 그냥 광명 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이런 걸로 이거를 이해하고 있는거죠? 

근데 이거는 그게 아니라, 오르, 창세기 1장 첫째 날에 그 빛, 그것이 비추어지는 어떤 것, 어떤 곳, 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 왜? 창세기 넷째 날은 첫째 날과 짝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 빛이 어디에서 비춰지는지가 등장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빛에, 비춰지는 빛에 의해서,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징조 사시 일자 연한이 성취된다 라는거야, 이게 넷이죠, 지금? 

징조 사시 일자 연한 이렇게 넷이잖아요? 고게 성취된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빛이라는 거, 마오르 라는 게 뭐냐 하면, 요 맴이 진리잖아요? 

빛을 진리로 주게 되면, 그 넷이라는게 이렇게 성취가 되는데, 

그게 뭔지를 시작을 하는데, 첫 단어가 오트, 표적 이란 뜻이에요. 표적.

자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다가, 광명을 두신다 그러죠? 궁창은 라키야 라는 단어라 그랬습니다? 

라키야 가 뭐라 그랬어요? 금을 얇게 펴서, 펼쳐서 덮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게 라키야 인데,

이걸 우리 말로 궁창 이라고 그냥 번역을 해놨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걸 어디다 만들으라 그러냐 하면, 가운데, 우엣 물과 아랫물,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다가, 궁창을 만들으라 그래요.

근데, 가운데 라는 단어가 타베크 라 그랬죠? 완성과 

아래의 것이 와우 라는 그 문자가, 노를 저어서 서로 이렇게 가는 거에요. 

그러이까 타베크, 가운데 라는 뜻이 뭐냐 하면, 이렇게 아래것과 우에것, 좌에 것과 우에 것이 요렇게 요렇게 노를 저어 가서, 

가운데서 이렇게 만나는 고지점 있죠?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 요걸 타베크 라 그래요.

그럼 그게 뭐에요? 우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으로 우리 에게 주어서, 아래것으로 우에것을 알게 만드는 그게, 

율법, 성전, 예수, 세상 이런 것들이잖아요? 거기에 라키야 를 만들으라는건, 성전을 그런 용도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는 뜻이잖아,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거기에 마오르를, 하나님이 광명을 두시겠다는 거에요. 근데,

이 마오르 가 나중에, 율법서에서는 뭐라고 쓰이냐 하면, 성소 안에 등대 있죠? 이게 전~부 마오르란 말에요. 

성소를 비추어서, 성전이 무언지를 설명해주는 그 역할을 하는 그거를, 그 등대를, 그게 또 일/곱/ 등대죠? 우리 수요일날 배웠어요? 

그건 일곱 말, 일곱 영, 일곱 눈, 다 똑같은 말이잖아요? 그것이, 성전이 뭔지를 이렇게 설명해주면, 그거를 마오르 라 그래요

. 그러면 그 마오르 에 의해서 무엇이 이루어 지냐하면, 표적, 징조, 사시, 모예뜨, 일자, 욤, 연한, 샤네 가 완성이 된다라는 거에요. 

그럼, 요게 뭔지를 알면, 그 넷, 유다라는 넷, 넷이라는 유다가 가지고 있는 그 표가 어떻게 완성이 돼야 

그를 살리는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알 꺼 아닙니까?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하는데도?

 

그러니까 성경은 광명, 그 마오르라는걸, 하늘의 태양이나 달 정도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성전과 연결을 시켜서, 지금 우리에게 그, 그 진리를 설명해기, 해 주기 위해서 

마오르라고 지금 기록을 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자 여기에서, 징조 라고 번역이 된 그 오트 라는 단어가, 표적, 이적, 표, 깃발, 증거, 표징 이런 의미의 단어라 그랬죠?

그러이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전이나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이나 율법이나 성경이나 예수나 그리고 행하신 기적이나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전~부 뭐라는 거에요? 

표적이라는 거에요. 그 자체로는 그릇이라는 거에요.

그건 반드시 내용으로 우리에게 들려지고 읽혀져, 내 마음이 돼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복음을 넷으로 설명해준 다음에, 내려가셔서 기적, 행하시죠? 그게 뭐에요? 내가 조금아까 이야기해준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너희들이 그걸 못 알아먹으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주께 이걸 봐 라고 준거란 말에요.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니었대니깐요? 

귀신쫓아내고 병고치고 무덤에서 사람 살려내고 이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 놔봐야 또 병들고 또 죽, 죽어요. 아니 이 세상에서 쪼끔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그게 무슨 복이겠습니까 여러분? 

그러구 그게 진짜 목적이었다면 그냥 하나님이 무얼 하나하나 쫓아다니면서 만져서 구하구 그래, 그냥 말하지. 다 나아라. 

그리구 다시는 병아 없어라. 그러면 돼지. 그게 목적이 아니래니깐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런 표적들을, 그냥 표적으로 봐버리고 그걸 목적으루 삼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는데 쫓아다니고, 병 고치는데 쫓아다니고, 이러구들 앉아 있는 거에요. 

한국에 내로라 하는 그 대형교회 장로들이 그러구 돌아다니고 있다니까요 지금? 거기 가갖구 전~부 머리 디밀고 앉아 있는거에요 지금. 

그걸 묵인하고 있는 한국교회, 이 자체가, 가망이 있습니까? 

큰 교회 장로들이고, 그리고, 뭐 사회적으로 굉장히 후, 성공한 사람들이라 그냥 쫄아서 아무말도 못하는거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장소를 빌려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고? 그건 전~부 표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걸 통하여 주님이 그 죄의 증상, 사망의 그 증상들을 어떻게, 완전하게,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를, 

우리가 배우는거지,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란 말에요. 

그걸 표적으로, 껍데기로 보면, 그걸 성경이, 어/두/움/ 이라 그래요. 어두움.

 

지금, 이 넷쨋 날이, 창세기 첫쨋 날과 짝이라는건 여러분이 다 아실 꺼예요? 첫쨋 날은 넷쨋 날과 짝, 둘쨋날은 다섯쨋날과 짝,셋쨋날을 여섯째 날과 짝, 이게 완료가 되며는, 일곱이라는게 되고, 그 일곱을 마음으로 가지면, 팔 이라고 해요. 여덟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덟의 날에 살아나시는 거에요.

 

자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그래요. 그건 빛과 어두움을, 하나님이, 이거는 검게, 이거는 환하게,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앞에서 어두움이 뭔지를 2절에서 설명해주고 시작하세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말이 무슨 말이야 하면, 깊음의 파님, 깊음이라는 것의 이름을 어두움 푸쉐크, 흑암이라 하자, 그러구 시작하신다니까요 하나님이. 그리고 밑에서 이 깊음이, 모인 물이고, 그것을 바다, 얌, 이라고 할께, 이야기 한다구요. 그러면, 이 아래에, 

그 위에 샴마임, 하늘, 그게 뭐라 그랬어요? 거기 에 물이 있다 라 그랬죠? 쉠이 명사로 쓰면 이름이지만, 형용부사로 쓰면 거기란 뜻이니, 

거기에 물이 있는 곳을 하늘이라 그래요. 

그 물이 진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물론 상징적이지만, 아래의 물로 우리에게 준거를, 눈에 보이게 준걸 바다 라고 하고,

아래에 물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걸 우리가 잠시 이름을 호쉐크, 어두움이라고 하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닌깐요. 

그러니까 어두움이 나쁜거에요? 그게 없이 어떻게 그 위에 물을 아냐구요? 그걸 직접 줄 수 없어서, 우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유한 존재의 절망적 한계란 말에요.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래의 물이라는 것을 주어 우에 물을 설명하, 하, 하기위, 할려구 하시는데, 그렇게 우리에게 준 아래의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는데, 그게 나쁜거냐구요? 

그걸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래의 것으로 그냥 봐버리면 이게 어두움이고 이게 죄요 이게 악이지만, 이 어두움으로 그 위의 것을 알아버리면, 

이 어두움은 즉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게 되는 것이고, 그것 그건 내눈에 보이는 똑같은 그것이지만 나에게는 빛이라 말입니다.

 

그때 그죄가 그악이 그율법이 나에게,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그걸 용/서/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그 어두움이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을 올바로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빛, 오르 인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이름을 뭐라 그래요? 뭐라 그랬어요 ? 빛을 낮이라 이름하시고, 낮이라 칭하시고 이렇게 되어있는데, 낮이 날 입니다? 욤. 

그 빛을 욤 이라고 하자. 근데 욤 이라는 단어가 뜻이 뭐냐 하면, 진리를 주다 라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아래의 것, 그 어두움 이것들을 갖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죠? 하고 알게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낮' 이렇게 이야기해요. '날' 이렇게 이야기한다닌깐요? 

어두움은? '밤' 그래요. 그런데 '밤' 이라는 단어 자체도, '라일' 이란 단어 자체도, 가르치다 가르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밤, 어두움을 우리에게 뭔갈 가르치기 위해 주었어요. 그러면 배우면 돼요. 그러면 그걸 낯, 날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라는 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에요?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해 이렇게 흐르고 있는 거에요. 이 날들이. 날이라는 의미가 그런거라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이세상에서, 바로 그 진리를 알고 가면 되는거에요. 그게 날들의 역사의 목적이라니까요.

 

주님은 어두움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율법으로 오셨으니까, 어두움으로 오신거죠? 그분은? 

그러나 빛이라는 내용을 담고 왔어요. 그리고는 내가 진리다 라고 이야기했단 말에요. 내 안에 있는 그 빛이 진리다 라고 이야기했다 말입니다. 

근데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빛을 깨달을 수가 없었어요. 그게 유한자의 한계인거예요. 그렇게 깨달아 알면 그게 '낮'이거든요? 

근데 주님이 이땅에 왔을 때 전부 어두움이었다 그래요 요한복음 1장에. 아무도 못봤다는 거에요. 그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어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눈이 멀어, 그냥 어두움, 을 살고 있었다 말입니다. 모든 존재가. 

그래서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그냥 표적으로 인식이 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렸어요. 그 표적 안에 담겨 있는 빛을 봐야 되는데. 

주님이 그러는거에요. '내가 빛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있는 동안이 낮이다' 그래요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그랬죠? 내가 있는 그 시간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이런 말이에요,

엄밀히 보면. 이 시간 동안, 내가 있는 기간 동안 너희들은 열 둘 이 돼야지. 낮의 사람이 돼야지. 아들이 되어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러나, 너희들은 이제 나를 못볼꺼야. 

그러면 이 어두움인 세상에 빛이 잠깐 왔다가 사라졌네? 그럼 빛은 있어요 없어요? 사라진 거에요. 여긴 그대로 또 어두움이라닌깐요. 

근데 그때 주님이 뭐라 그러냐 하면, 내가 사라지면, 이제 심판이 오는데, 어떤 자들이 심판을 받, 받을 것인지 아니? 

그 빛이 너희 안에 없으면, 너희는 심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아무도 못 알아 봤어요. 다 어두움이니까. 그러니까 

그 빛이 너희 안으로 뚫고 들어가 버리겠대요. 그거 없는 자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빛을 갖고 있는 이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자들이에요 그게.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라고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죽어버린 그 표적을 '쟈칼' 로, '인과 지팡이'로 '가르침'으로 '보증'으로 '성령'으로 

당신의 백성들 안으로 인트루젼, 뚤고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 거에요. 

심어버리는 거에요. 은혜로. 선물로. 그게 성령이에요.

그렇게 표적은 반드시 진리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빛, 오르로 시작한 그 빛은 '오트'로 완성이 돼야 돼요. 오르 가 이게... 빛이 있으라 에서 빛이 오르 잖아요? 

그리고 표적이 뭐냐 하면, 오트 예요. 똑같은 단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가 빛이라면, 표적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완성하신다 는 거에요. 어떻게? 

그 표적에 내용을 이제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들을 완성하실꺼라는 거에요. 

근데 뭘루 시작하냐 하면 인제 표적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징조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그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요 율법이요 예수요 성전이요 세상이요 인간이요 이런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징조부터 이제 시작이 되는 거에요.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이 되지 못하면, 멸망시키는 양식이 됩니다. 

그 구유의 아기가 먹이다, 양식, 이런 말이라 그랬잖아요 구유가? 주님은 우리에게 양식으로 왔다 그랬잖아요? 내가 하늘의 양식이다, 하늘의 떡이야 그랬으니까. 그것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고 표적으로 보아져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면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는 양식이 되는 거에요. 

보세요 요한복음 6장 26절 역시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죠

(요6:26-27)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이게 호라오 예요. 표적을 너희가 호라오 하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으로 먹고, 배만 불리고, 그것으로 '야 우리의 배를 이렇게 부르게 해주는 이가 있어?' 하고 나를 찾아 왔다라는 거에요.

나의 육적 가치나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섬김의 대상 이게 가짜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27절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이 호 불러시스 아폴루미 가 뭐냐 하면, 이게 멸망시키는 양식 이라는 거에요. 자 그렇게 너희가 내가 하는 어떤 기적이나 말이나 심지어 나까지도 

이런 것을 그냥 표피로만 봐버리면,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을 해. '

너희들을 멸망시키는 양식은 열심히 너희들이 율법 행하고 제사 지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 일 아니니?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인데, 그런일 하지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해. 근데 그양식은 누가 준대요? 

인자. 하 아담, 하 벤. 호 휘어스, 호 안트로포스. 인자, 그사람의 그아들이 그거 준대요.

말씀으로 주는거죠? 이거는.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이 뭐라 그랬어요? 성령 이라 그랬잖아요? 보증 이라 그랬잖아요? 

그들이 너희에게 줘.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다음에는? 수많은 그하나님의 그아들들, 

그사람의 그 아들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역할들을 이렇게 하는거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삭을 주시면서,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죠? 

그리고는 이것이 표적이다 그랬습니다?

창세기 17장 11절 보세요

(창17: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양피를 베는게 할례죠? 그거는 인간의 생명의 근원, 생명의 씨를 아예 차단해 버리는 거에요. 죽음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할례를 표적이라 그래요. 그런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래요. 

언약의 표적이다? 어떤 언약입니까? 약속의 자손이, 낳은지 팔일 만에 할례 하죠? 아들만 합니다? 

아들은, 아들은 팔의 날에, 그의 육, 육의 그생명을, 완전하게 부정당하는 자다. 이런 말이에요. 그걸 할례라 그래요. 언약의 표적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팔의 날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고건제가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너무 기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후에도 표적을 주세요? 

보세요 창세기 9장 13절

(창9: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죠? 칠입니다. 일곱을 너희에게 언약으로 준다. 이게 뭐냐 하면,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라고 돼 있는데, 이게 표적이예요. 역시. 이게 표적이다라고 일곱을 줘요. 그리고는 그 일곱을 안 자들을 방주에서 나온 자들이죠? 그들이? 여덟 이라 그래요 베드로전서에 보며는. 

여덟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 그렇게 일곱을 알아, 그 언약의 내용이 뭔지를 알아, 여덟이 되는 게 뭔지도 다음주에 설명해 드릴께요 제가.

 

그렇게 표적이라는건, 하나님의 그 언약, 그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오트라는 거 다음에 사시, 모예드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어지는 거에요. 이건 순서에요.

하나님이 마오르라는걸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비추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표적, 오트, 그 표적을, 반드시 어떤 것으로 완성을 해 내실 꺼예요. 

그런데 오트 를 주고서는,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걸로?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모예드 라는걸 주시는데 그게 뭐냐면, 여기는 사시 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이, 모 라는 단어도 역시 맴이라는 그 문자와, 야드 라는 단어의 조합이에요. 

야드 라는 단어가 에덴 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하는 단어거든요? 이게 정하다, 정한 때, 

모예드가? 그러니까 정한 때 약속하다, 언약, 약혼하다 이런 말이에요 이게. 

한번 보세요 여러분. 절기 , 정한때, 약혼하다, 언약하다, 정하다, 자 이런 의미의, 의미를 품고있는 

그 사시라는, 모예드 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그 언약의 마지막 그 목적이 뭡니까? 쟈칼이신 하나님과, 말씀이신 그분과, 네케브에 불과한 우리가 혼인의 완성이잖아요? 그게 연합이죠? 

이게 목적이죠? 언약의 목적이.

그래서 약혼하다, 그 약혼은 반드시 이루어질 약혼이에요. 혼인으로 완성되는 약혼. 그건 하나님이 정하신 거란 말예요. 

그리고 그 단어는 기쁨이란 뜻도 있어요 또 ㅎ. 그게 기쁨이고 그런 거에요.

그 ...... 하나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그 사시, 모예드, 라는 약속을 , 언약을, 절기라는 걸로 주세요. 

절기는 사계절이라고 해도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넷이죠?,

이스라엘의 절기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초막절? 이렇게 넷으로 우리가 ,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뭐에요?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하얗게, 아주 순결하게 깨끗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거에요. 

그걸 보라고 사계절 준거에요. 

봄되면 우울증걸리고, 그러라고 준게 아니라. (ㅎㅎㅎㅎㅎ)난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여름에두, 아니 겨울에두 거기는, 낮에는 반팔입고 다니거든요? 얼마나 따듯해요? 근데 하두 흐리멍텅하니까, 날씨가. 그렇게 오리진하다보니까 겨울이 너무 그리워. 

그래가지구 진짜 온전한 겨울을 20년만에 처음 제가 요번에 맛보는건데요? 세상에 겨울이 육개월이야. (ㅎㅎㅎ) 웬 겨울이 이렇게 길어요 ㅎ ?

아니 3월인데, 아직구 이렇게 추워요. 질릴라그래 인제 ㅎ (ㅎㅎㅎ). 그러니까 계절은, 절기는, 모예드는, 그러라고 준 게 아니라닌깐요? 

 

마찬가지예요. 유월절날, 로마서 7장에, 죽어야할 첫 남편이 죽죠? 그게 어린양이잖아요? 

그리구 무교절에 교회, 광야에, 누룩 들어가지 않는 떡이, 하늘 양식으로 쏟아집니다? 그게 교회예요. 말씀이 떨어지는거죠.

오순절날, 새 남편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거죠? 그러며는 추수가 된 알곡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장. 영원히 사는거죠. 

이게 절기가 가진 의미잖아요?

자 언약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진리를, 표적으로 주세요, 오트로 주시는데, 뭔지 몰라? 그래? 

그러면 내가 그걸 절기로 풀어서, 그 언약, 혼인이 뭔지를, 풀어서 줄께 라고 모예드로 줘버려요. 

그러나 그 절기나, 그 표적, 모든 건 아직도 다 이 아래꺼잖아요? 어두움의 것이란 말에요 그거는.

근데 그걸로, 그게 뭔지를 알아버렸으면 그게 뭐예요? 징조, 사시, 그담에 뭐예요? 일자 죠? 

그 일자가 욤이예요 욤. 진리를 주다. 그게, 그 표적이, 어두움, 그 아래의 것이, 그 오트와 모예드가 나에게 어두움으로 주어졌지만, 

그게 뭔지를 내가 이제 알았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았을 때, 그걸 욤, 

진리를 받은 자가 그진리를 넘겨줄 수 있으면 그걸 일자 라 그래요. 일자가 뭐예요? 난, 하여튼 일자. 욤이에요 그게. 순서라닌깐요? 

그렇게 되면, 어두움과, 오트와 모예드 그거는, 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그거에서 살아야 되니까, 이 땅에서 발 들고 살 수 있는 사람 어디 있어요? 

아래 것으로, 이 어두움을 입고 산다구요. 그러이까 이게 크로노스의 삶을 우리가 사는 거죠? 

그런데 그걸 알아서, 이렇게 진리로 내가 갖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크로노스의 삶을 살면서 카이로스를 같이 사는 거에요. 

고렇게 양자를 같이 살 때 요게 짝으로 사는 거, 그것두 살고, 이것도 사는거. 

어두움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빛을 가지고 사는 그 걸, 소ㅑ네, 라 그래요. 그게 연한이라고 번역돼 있어요.

연한은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또. 국어사전 찾어두 안나와. 연한이라 그래요.

 

그러이까 이거는 표적부터 시작해서, 연한, 소ㅑ네로 이렇게 완성이 되어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게 넷 이라는 거에요. 

유다라는 넷 의 아들이, 그렇게 표적을 갖고 시작하여, 소ㅑ네로 완성을 하면, 그게 영적 이스라엘이다라는 걸 확실히 알고, 

바울은 그것들을, 표적들을, 전부 이렇게 나열한 다음에, 이걸 니들이 그냥 갖고 있는 다고? 너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8장에서 말하는 끊어지지 않음이라는 건, 이런 걸 가졌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다 를 설명해주는거란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이거를 육적 이스라엘, 민족적 이스라엘 이야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냐구요? 창세기부터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 성경은. 그럼 요즘 뭐 세대주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자꾸 저에게 메일을 그냥 수십 통씩 보내가지고 외국 학자들의 무슨 뭐 논문도 보내주구 이메일로 말이죠. 그거 아니라구 세대주의가 맞다고. 민족적 이스라엘이 곧 다 구원받을 거라구? 가르칠라 그래요. 주변사람들에 전해주세요. 그거다 스팸메일 처리해놨으까, 보내두 안 읽는다구. 그런 시간두 없어요. 뭘 그걸 읽고 앉아있어? 신학교때, 다 공부한거.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이야기만해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만 한다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절기, 그것을, 그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혼인에 이야기를 

이 크로노스의 역사를 통하여 그 혼인의 이야기,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 동안에 그 하나님과 잘 화해하여, 결혼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바울이 중매쟁이 라고 부르는 거죠. 내가 너희를 하나님 앞에 훌륭한 아내로 중매한다 결혼시키겠다는거죠. 

근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의 스펙이 영 말이 아녜요 지금. 

이사야서 53장 보세요.

보기에 연한 순같고, 볼품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아. 툭치면 넘어질것 같애. 얼마나 못생겼으면 보자마자 얼굴을 돌린다 그래요.

그 흔한 대학도 안나왔어. 예루살렘에 정규대학, 4년제 정규대학이 두개나 있었습니다. 전문대는 뭐 수도 없이 많았고. 근데 무학이야. 

머리 둘 곳도 없어. 아부지가 누군지도 몰라. 동생들은 또 왜 이렇게 맣어? 

거기다가 그를 남편으로 맞는 즉시 나의 육이 그 앞에서 부정이 돼야 돼. 누가 이런 남편을 택합니까? 

근데 어떤 정신나간 이들이 그이를 내 신랑으로 받아 들이드라는 것입니다. 

그 신랑 앞에서 나의 그 원함, 육적 원함과 내 육신이 그렇게 부정 당하는게 맞지 라고 하며 

그 남편을 신랑으로 꼭 붙들드라는 거에요.

그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신 거에요.

하나님 나라는 있지도 않는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 결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그거 배우라고 허락한 거라니깐요. 

여기서 여러분끼리 마음 맞춰서 행복한, 뭐 하, 천국의 작은 모형을 이루라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 게 아니에요.

그게 목적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 인간의 이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찾습니까? 

이 청년들, 배우자 기도, 기도 제목들 한번 다 꺼내 보세요. 예수와 정 반대의 스펙들을 다 원하고 있어요. 웬만하면 많이 배워야돼. 그러니까 그냥 목사들도 전부 디민, 뭐 닥털 오브 미니스트리, 미니스트, 목회학박사가 왜 필요해요? 나는 그거 받은 사람의90프로 이상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봐. 

(ㅎㅎㅎㅎ) 돈 디밀면 다 주는 거. 많이 배워야 돼, 돈 많아야 돼, 잘 생겨야 돼, 키 커야 돼, 

될 수 있으면 시댁식구는 적어야 돼, (ㅎㅎㅎㅎㅎ) ㅎㅎㅎ. 

그 앞에서 내가 부정되는 게 아니라, 그이가 나의 앞에서 부정돼야 돼 ㅎ. (ㅎㅎ) 전부 반대야. 

그래놓고, 나는 진리를 알아요 이러고 앉아 있대니까요.

예수를, 예수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다매요? 그런데 이 역사속에서의 배우자는 왜 정 반대의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냐구요?

자 아무튼 고대의 혼인은, 아이가 태어나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혼인의 절차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장인 장모가 있는 장가로 와야 돼요. 그래서 장가 간다 그러는 거에요. 남편이 혼자 와요.언제 오냐하면, 밤에 와요. 그리고 칠일 동안, 칠의 날 동안, 밤에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집으로 가는게 아니라 그 장가에서 살아야 돼요. 언제까지? 아이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첫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있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사는 거에요. 이게 혼인의 완성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여러분은 이 역사, '날' 이라는 이 시간을 통하여, 바로 그 혼인을 완성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아들을 가져야, 씨를 가져야 돼요, 내안에.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가져야 사는 거에요. 

그래야 혼인이 완성되는 거에요. 그게 '모에드'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진리로 그렇게 씨로 왔을 때 이게 날이고 욤이고, 

그렇게 해서 위에 삶과 아래에 삶을 동시에 사는, 이 세상의, 세상의 빛이 된 이들의 삶을 솨네, 완성이라고 하는 거에요. 

양자를 다 사는 이들의 삶.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그 열의, 그 율법, 열의 율법을 넷으로 주는 거에요. 

그리고는,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넷의 마지막을 반드시 완성해, 

그러면 정사각형이 되겠죠?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그성전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을 정사각형 정육면체로 묘사를 하잖아요? 그게 넷이예요. 넷의 의미가 그거래니깐요?

자 그렇게 해서, 그 말씀을, 그 오트 를 갖고, 그 하나님의 완성, 그걸로 우리가 이제 진리로 완성해버려, 그러면 그게 무트가 돼죠? 그게 죽음이예요. 오트 표적을, 우리가 무트, 진리로 완성을 해버리면, 그걸 육의 죽음, 이라고 한다니까요?

인간 육신의 모든 가능성이 부정돼 버리는 거에요. 그걸 완성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근데 그 표적의 총화가 바로 예수라 그랬죠? 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조상들을 통하여 설명이 된, 아들이예요.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됐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됐어요. 그래서 “이 성전이 나다“라고 이야기 하신 거고,

그 “성경에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거예요. 예수란 말이에요. 

그렇게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 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깨져야할 표적들만 붙들고는,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걸 지적하는 거에요. 그건 우리의 이야기잖아요 우리의 이야기. 

오늘날에도 그렇게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저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저마다 찬송을 하고, 저마다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합니다. 약속을 이야기하고 언약을 이야기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해요. 

뭐 요즘은 그것도 힘들다고 그런 어려운 조직신학적 얘기는 하지말자 그래서 그런 얘기도 안해요. 그냥 신문 얘기만 해. 

근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섬기고, 표적으로서의 예수를 섬기고, 

그 예수가 하신 일만 칭송하고 있는 거에요.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아논 다음에, 열심히 그 예수만 섬기고 있어요. 

그게 죽은 것 같았으나 다시 산 짐승으로서의 예수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 임금으로 죽을꺼야 그게 십자가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이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그이가 세상 임금이지 뭐예요? 

우리는 그냥 국어사전 개념으로 이해를 하니까 자꾸 나의 상식으로만 이해를 하니까 세상 임금, 사탄 이렇게 알고 있는 거에요.뱀? 마귀. 이렇게.

그분이 세상 임금으로 죽어야 세상에서 임금 되고 싶어 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거 아닙니까? 

근데 주님은 뭐라 그랬냐 하면, “세상 임금으로 내가 죽을 건데, 곧 또다시세상 임금이 올 것이다” 무슨 말이에요 이게요? 

내가 죽으면 이제 마귀가 다시 활개를 치고 온다는 뜻입니까? 아니오.

어떤 이들이 세상 임금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자기들의 유익에 써먹을 거라는 거에요. 열심히 섬기면서.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 

“그는 나와 아무 상관없느니라.”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예수를, 그 표적으로서의 예수, 그걸 율법으로, 성전으로, 여전히 섬기고 있다닌깐요.

 

아니 여러분, 옛날에는 요, 죽은 시체는 부정하다 해서 절대 못 만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사를 아리마데 요셉이 하는 거에요. 

왜? 아니 예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까? 아니 살면서 속망 썩여갖고 다 도망간건가요 그냥?

아유 저거 그냥 장례도 치르기 싫어 이렇게? 왜 가족들은 어디가고 아리마데 요셉이 장사를 시켜요? 

요셉이라는 이름은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이예요. 

사람이 죽은 예수를 만지면 안되기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장사해야 된다라는 의미에서 

그가 굴에다가 갖다 쳐 넣는 겁니다. 그 굴이 어떤 굴이냐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묻혔던 

그리고 그 이후에 인자의 라인이 다 묻혔던 막벨라 굴 이라는 의미란 말예요. 

그게 뭐에요? 양 우리, 양 우리는 늘 성전이에요. 성전에, 율법의 성전에 예수가 율법으로 묻혔으면, 

다시는 만져도 안되고, 가도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옛날에는 평토장, 무덤을 봉분을 세우지 않고 평토장을 해놨어요. 부정한 거니까. 

근데 혹시 자기들이 그거 밟을지도 몰라서 고자리에 이렇게 회를 칠해 놨다구. 안 밟을라구

. 그런 율법적 노력과 시도를 주님이 회칠한 무덤 이라고 한 거에요. 그런 걸로 하나님이 기뻐할 거 같냐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 죽은 예수를 살려놓고 열심히 거기 가갖구 그, 이, 예배당을 성전화 시켜놓고 

여기서 희생제사 를 드리고 있는 거에요. 

그분은 그리스도로 살아서 내 안에 생명으로 들어왔는데, 내 밖에 걸어놓고 내 소원을, 나의 인간으로서의 이 욕망 성취를,

나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 열심히 빌고 있는 거라닌깐요.

그러이까 전부 이 예배던 뭐던 주인공은 나여야 돼. 

내가 은혜 안 받으면 안 되고, 나를 감동시켜주지 못하는 찬양팀은 찬양팀두 아냐.

오늘 예배 분위기가 왜이래? 뭘 왜그래 당신 땜에 그래요.

그러이까 그 진리를 설명해 주는 게 못내 다 불편한 거에요. 하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제가 어저께 기독교 티비를 우연히 보게 되어서, 설교를 한편 들었는데, 한국에선 뭐 내로라하는 유명한 목사님이예요. 한국교회의 뭐 사상가를 자처하는 분이죠. 개혁의 리더? 뭐 이러면서. 30분간 딱 깔끔하게 설교를 끝내시두만요. 근데, 성경 한 구절 읽어 놓구, 성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꼴을 못 봤어요. 아니, 제가, 끝날 때 까지, 딱 한번만, 어디든 좋으니까 성경을, 인용해서 그걸 설명 좀 해줬으면. 나중에는 그냥, 예화도, 예화로라도, 한절만 좀 얘기해줬으면 했는데, 끝까지 성경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집회를 다니면서 너무너무 피곤하고 고단한데, 죽을것 같앴는데 하나님이, 잠을 허락하셔서, 잠을 자다, 자고 일어났더니 피로가 다 풀렸대.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잠이라는 걸 마련해서,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회복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그러구는 끝났어. 다 듣구 나갖구, 그러니까 피곤할땐 자라는거야? 뭐. (ㅎㅎㅎㅎㅎ)교회에 와서 그 얘길 들어야 되냐구요?

회복의 하나님? 이게 피상교회지 뭐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대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대요. 그러니까 회복하세요. 

더웁게 가세요. 배부르게 가세요. 야고보가 말한 그거 피상교와 뭐가 달라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성경으로 설명을 해줘야죠.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설명을 해줘야죠. 잠만 자면 되는 거에요? 

그냥 하나님이 잠이라는 걸 만들어주셔서 그렇게 감사해요? 그걸 깨달아야 되냐구 우리가요? 근데 수천 명 수만 명이 앉아 갖구 아니 한국교회 지성들은 거기 다 가 있다매? 근데 아멘 아멘 하고 앉았어요 거기서. 날 회복시켜 준다 그러니까. 그러이까 얼마나 형식적이예요 이게? 하나님이 회복시키기를 원하세요. 그런다고 내가 회복이 돼요? 아무 의미도 없이 굿모닝? 굿에프터눈 이거나 뭐가 달라요? 뭘 굿모닝이야 언제봤다구. (ㅎㅎㅎ) 아무나 보고 안녕하세요? 

안녕이 뭐에요? 평안 에이레네 뜻이에요. 진리를 모르는 이는 절대 그 평안 못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 못하죠? 내가 그 안녕이 뭔지 설명해 줄까요? 안녕하게 해드릴까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 되는 거 아니예요 원래? 

근데 아무나보고 안녕하세요? 진리를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안녕 하겠냐구요? 

아무나 만나면 뭐 기도하고 있어요. 아 나 노회 같은데 왜 안가냐 하면, 무조건 만나면 할렐루야 이러더니, (ㅎㅎㅎㅎㅎㅎㅎ) 아 그게 무슨 인사예요? 하나님 을 찬송하라. 내 삶이 지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데 할레루야 시작해서 지금 말이죠, 목사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어요. 뭘? 왜 날 위해 기도해? ㅎㅎ 잘살고 있는데 ㅎ. 그거랑 뭐가 달라요? 

그냥 버릇이 되갖구. 여기서도 구원 받으세요 회복 하세요 안심 하세요 평안 하세요 그리고 성경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해. 

근데 그게 편한가봐 서로. 너무 화기애애해요. 어우 부러워 ㅎ. 그런 분위기.

 

그렇게 표적으로서의 예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질 가짜 이스라엘인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게 이삭 그 아들이었습니까? 

아니예요. 그럼 여기서 애 못난 사람들은 다 기도해서 애 받아야죠. 그 애 허락한게 아니라, 

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표적에 담고 있는 그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이해를 못하니까, 아들주겠다는 얘긴가? 그랬더니 

그 아들에게 그 씨를 진리로 담아서 아버지잖아요 그건? 아버지를 담아서 아들 안에 담아, 이걸로 아버지, 그 씨를 깨달아 알아라 라구 준거잖아요? 아브라함이 그 이삭, 약속의 후손, 그 씨를 통하여 그진리가 뭔지를 깨닫고 브엘셰바를 팍 찍은 다음에 진리를 알아요.

이게 일곱 우물이지. 이것이 진리지 라고 알자, 하나님이, 그러며는 이제 이건 필요없잖아, 이건 갖다가 파괴해라 그러는거에요. 

내가 너에게 준 아버지를 담은 그 아들은 파괴해라 그래야 그게 니 안에 아버지로 들어갈게 아니냐는거죠. 

이삭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모형으로만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어떤 거냐면, 

이렇게 준비된 어린양이, 내가 준비한 양이, 죽어야할 자 대신에 대신 죽는 게 그이야기 였으니까, 

이제는 그 이삭이 이야기하고 있는 모형으로서의 그 그릇은 필요 없잖아 라고 이야기 한거잖아요?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내아들로 주었잖아요? 

그러면 이제 더이상 백세에 주신 그냥 후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나의 섬김의 대상이 된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담고 있는 더 귀한 그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얘는 나에게 섬김의 대상이 안되는 거에요 이제는. 

그 아버질 내가 알았으니까. 마찬가지요.

우리에게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버지를, 진리를 담아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땅에. 

누구예요? 예수. 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라고 얘기한거에요. 

내가 그아들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예수를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았잖아요? 진리를, 복음을, 알아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예수는? 역할을 다한것 아닙니까? 

다시 살아나서 여기에 매달려 있으면 안된다닌깐요? 그러면 그거는 파괴돼야 되는거에요. 어디서? 모리아산에서. 

거기가 예루살렘 아닙니까? 왜? 이제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그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 안에 담아 나에게 허락하신 내아들이 되는거에요. 

내아들이 되면, 그아들은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거죠? 누가 아들을 섬깁니까? 

하 요즘같이 그냥 뭣 땜에 사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전부 그 자식에 묶여 가지구 꽁꽁 묶여 갖구

그게 자기 생명이야 다들 보면.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모르는 거에요. 그게생명이지? 

 

이렇게. 아이 검을 주러 왔다 라고 하신 주님이, 제일 먼저 끊어낸게 그관계라닌깐요? 

그걸 내가 너에게, 니가 그렇게 우상으로 삼으라고 너에게 허락한거냐? 하나님이 그런 거라 말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배 아들이 중학교 때 사고로 죽었는데, 이선배가요, 소파에 앉아 갖구 일어나질 않는데, 똥오줌을 거기다가 다 싸면서, 너무 낙망이 돼갖구, 놔두면 그냥 죽겠더라구요 거기서. 그게 내 생명이었으니까. 하나님은 그러라고 아들 준거 아니예요. 

거기에서 그거 안에 담겨있는 더 귀한 그 아버지를 깨달으라구. 그러면, 그 아버지를 이제 깨달았으면, 

그 예수는 이제 내 마음 안으로 빛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이제 나는 그걸 아다마, 하 아담의 소리로 전해줘야 하는 자란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그냥 열심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나의 육신적인 어떤 것을 채우고, 편안하게,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고, 

잠을 주어서 피곤을 회복시켜주고,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당연히, 그예수는 우리의 섬김의 대상으로 남아있으면 안되는거에요. 

그러면 여전히 표적 이란말입니다. 그 표적은 멸망의 양식이란 말에요. 

이렇게 예수를 포함한 모든 표적들은 진리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어서, 마음 속으로 들어와야 되는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소리도 없고 언어도 없어. 그러나 뜻은 통해. 그게 진리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제가 지금 말로. 언어로,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복음이 전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뜻으로 통하는 거에요. 그걸 이심전심이라 그래요. 

진짜 이심전심은 그거에요. 

그러이까 이렇게 말로, 언어로 전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이 이 마음을 자기가 가지가면? 

그게 성령이 계시다는 유일한 증거지 뭐예요? 

여기서 찬송이 터지는거지, 무슨 뭐 내가 뭐 대단한 경험을 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은이빨이 금이빨로 바뀌고, 부러졌던 팔이 붙구, 

그게 나를 살립니까? 

시편 19편 1절 보세요

(시19:1-4)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날이 욤입니다. 낮, 날. 빛은? 날은 날에게, 레마.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해줘요 ㅎ. 전부 그냥 지식만 이렇게 (ㅎㅎㅎ) 

날은 날에게 말을 해준다는게, 그걸 말로 듣는이가 별로 없으니까, 다 지식으로 갖구 잘난척들 하는거죠.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이게 진리예요. 그래서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 자는, 거듭남을 설명하면서, 성령으로 난 자는, 소리는 듣는데, 

그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근데 흔적이 남는단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 한 거에요. 제가 말을 잘해서 여러분이 잘 알아듣는게 아니라닌깐요.

날 때부터 소경인자, 하 누가 나를 고쳤는지 난 모르겠어요. 본적이 없는데. 거 중요한건 내가 보인다는 거에요. 

그렇게 통하는 거에요 그냥. 그게 진리라니까요? 

그러이까 반드시 표적은 깨지고 내용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생, 하늘의, 그, 생명수, 그 진리의 물이 이렇게 흘러가게 통하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근데, 주님은 그 성령을 배, 코일리아가 성전이거든요? 배에서 흐르는, 생수라고 하죠? 

성경의 어디에, 넷으로 흐르는, 생수 이야기가 나오는 데가 있어요. 근데 거기에 이름이 또? 모예드의 그 에덴 입니다? 

그러면 에덴에서 발원하여 넷으로 흐르는 강 이야기도 그이야기겠죠?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많은 아래의 표적들을 주시고 그것으로 진리를 깨달아 알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그 표적에 머물며 하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른 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진리를 알게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터져버리는 그 자유가 우리 서머나교회를 가득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로마서102-표적이냐 실체냐(김성수목사) / 온땅교회 한성민목사|작성자 온땅의 단비

 

다음주까지 해야 오늘 설교가 완벽하게 이해가 가실텐데..

이 번주에 잘 들어 주셔야 다음주에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예를 들어서 영적 이스라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열심히 피력합니다.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불특정다수에게 막주고 읽어서 깨달으라고 준게 아닙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도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고 싶은 애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는 말입니다

저 민족적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됨과 아들,영광,언약,율법,예배,약속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들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라고 애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예수님도 유다지파의 사람이니까요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바울이 나열한 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상이란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그 씨들을, 그 아들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습니다.

그 씨들이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못 알아 먹으니까 그걸 문자로 펼쳐준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조상들을 알면 그 율법은 풀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좋은 겁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 겁니까

바울은 율법이라는 거짓말에 빠져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참말의 진리를 전파합니다

나는 너희들이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 자신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게 로마서 9장입니다

지금 바울이 예를들고 있는 이 민족적 이스라엘은 이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한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어떤자들로 이해되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이러한 것을 열심히 행하고 이러한 배경을 생내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육신의 예수가 탄생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애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육신으로 낳았다해도)

그런 것으로 구원이 되는 건 아니다 애기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바울이 지금 나열하고 있는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 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것들이라는 겁니다.

세메이온σημειονG4592(표적)-양자됨과 아들,영광,언약,율법,예배,약속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들 육신의 예수 눈에 보이게 나타난 (독사) 영광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그 것을 독사(δόζαG1391)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그 눈에 보이게 나타난 영광 그 모든 것들은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이 땅에 세워진 것들입니다.그릇입니다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그 것... 그걸 표적이라고 합니다.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래서 우리눈에 보이는 것(케이마이κειμαιG2749-보이는것)이

표적 , 사인, 시그널, -어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거 자체가 가치는 있는게 아닙니다.이정표 자체가 가치 있는게 아닙니다.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에 불과한 것입니다.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예수가 구유로 오신것이 표적이다

그 예수안에 아들,양자 언약 약속 율법 조상 등의 개념들이 모두 함유되어 있습니다

모두 함유되어 있는 예수가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로 구유라는 단어가 에브쓰(אבוּס)라는 단어입니다.

싸멕ס -위에서 기둥을 내려보는 것을 형상해서 문자로 만든 것입니다

기둥은 언약입니다 눈에 보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א) 성전을(ב) 눈에보이는(וּ)약속으로 주시면(ס) 그것을 구유라 합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에부쓰(אבוּסH18)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모음은 필요없으니까,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아바스(אבסH75)라고 읽어버리면 -먹이다.라고 애기합니다.

그래서 구유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먹이통이니까

그 구유라는 건 하나님께서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셔서 먹이기 위해 주시는

어떤 것을 애기합니다.구유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어 먹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준 언약 이 예수입니다.(히브리서에 나옴)

그 예수라는 아기가 구유로 제시되어(케이마이κειμαιG2749-보라고) 있습니다

그게 표적이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러면 구유로 오신 예수가 그 하늘의 양식 진짜 양식으로 보여져야 그게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표적으로 보이면 엉뚱한 양식이 되는 겁니다.

예수는 표적입니다. 잘 기역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그 구유와 예수가 하나가 되어있는 그런 형국을 그려놓고 있는 겁니다.

그게 그 보이지 않는 그 하늘의 영광 독사가 나타난거야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나타나는게 독사,영광입니다.

하늘에는 하늘의 영광이라고 하고

땅에는 평화 에이레네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구유로 온 예수를 보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애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행한 일이나

그의 말등을 표피적으로 받아 들어 버리면 그것이 표적으로 예수를 받는 것이고 그 걸 성경이 악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와 예수님이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혈루병환자도 살리셨데, 죽은 나사로도 무덤에 끄집어 내어 살리셨데,물위를 걸으셨데...

이런걸로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해 내셨데..심지어 이것까지...

그게 여러분을 구원합니까.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데가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그게 여러분을 용서하나요.정말

그걸 표피적으로 받으면 그걸 성경이 악이라고 합니다.

 

(마16:1-6)

1.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보이기를 청하니

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하고

3.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겟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프로소폰 호 오라노스;πρόσωπον ὁ ούρανος)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늘의 그 나타난것 (프로소폰πρόσωπον-보이지 않는것이 나타난 것을 말함)

그 하늘의 외적인 그 모습 나타난 그것 ,당연히 율법입니다.

그것은 분별한다 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 시대, 카이로스가 담고 있는 그 내용으로서의 그 표적은 너희들이 모르는 구나!

저녁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애기하려 하는 거냐

아침에 하늘이 붉은게 그거 애기하려 하는 거야

껍데기는 잘보고 너희들이 편안데로 다 해석해서 가지면서 왜 그 시대의 표적으로 그 걸 못 보느냐.

그래 놓고 하늘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내가 지금까지 보여준게 내용으로 담아 준건데

무슨 표적을 보여달라고 그러느냐

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5.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 이게 오병이어 기적이후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 걸 표적으로만 보고

그러고는 예수님께 와서 그거 배부르던데요,그거 맛나던데요..

그때 당시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에 열심히 일하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게 하루 빵값이였습니다.근데 예수님이 예수님을 ?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계속 먹여 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쫓아오죠 하루 종일 일 해바야 떡 하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이 당연히 주시니 오더니 그 것 참 멋진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그런류의 표적을 자꾸 보여 달라고 하니까

주님이 너희는 표적을 호라호 하지 못하고 옵타노마이 에이도 하고는 나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달라고 찾아오는 구나

너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 구나.말씀하십니다.

그걸 내용으로 바야지 어떻게 너희는 그걸 표적으로만 보느냐

그러면서 주님이 떡 애기를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그 표적은

진짜 하늘의 양식은 그 떡 애기를 하는 거야.너희들도 또

세상의 떡 애기를 하고 있느냐 내가 언제 그떡 가져오라고 그랬니.

왜 떡 가져왔냐 안가왔냐 그거 가지고 싸우고 있어.

그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하는 거야.애기하시는 겁니다

누룩은 썩임과 혼합,변질 왜곡의 대명사 누룩과 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맛나를 주셨을때 이스라엘이 꿀 썩인 과자네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여버린 겁니다

주님은 진주를 줬는데...

그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모든 걸 표적으로만 봐 버리면 껍데기로만 봐 버리면 모든 것을..

그게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육적 이스라엘의 그 모습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율법 성전 제사를 표적으로만 보고 그것만 열심히 행하고 있잖냐 그런 애기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것인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자들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빨리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애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으로도 끊어 질 수 없다 단언을 해 버립니다 .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협력해서 선이 되니까...설명까지 해줍니다.

그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구원이 필요한 어떤 이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런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다 라는 겁니다.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여전히 이런 자들은 아들 아니다 이런애기 하는 겁니다.

그들이 율법과 희생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입니다.

 

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그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율법주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개념은

유한 존재들의 절망적 실존,한계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옛 모습인, 진리를 알게 되기 전 옛 모습이며

여전히 그들안에 남아있는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안에 남아있는

그 율법이라는 배설물들 찌거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바로 그 이스라엘 아닙니까

율법으로 의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반드시 끊어진다라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들어서 애기하고 있는 겁니다.너희들이 무슨 아들이냐 라는 겁니다.

바울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갈리디아 교회에게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것이 있습니다.

(서신서는 대부분 그 복음, 넷으로 주어진 그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로

자꾸 회개하려하는, 퇴보하려고 하는 그 초대교회들에게 사도들이 절절하게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낸 편지입니다)

(갈5:4)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카탈게오καταργέωG2673)

- 끊어져서 완전히 멸망하다.부정적 끊어짐

-로마서 9장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서는..

아포 호 크리스토스입니다-그리스도로부터(FROM)입니다.

여기에 카탈게오가 붙어버리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부정적 애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자들이 끊어진다고 그래요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서 끊어진 자다라고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진(에크핍토έκπίπτωG1601) 자로다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자들

다시말해서 육적예수,(아들,언약,약속,율법모두..포함한)

그 육적예수를 표적으로 보고 땅의 음식 땅의 먹이 나의 육적자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 육적자아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렇게 표적으로 예수를 바 버리면

그리고 그 예수를 당연히 그 예수가 당연히 주었다 하니까 섬기고 숭앙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그들이 바로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망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아닌 거니까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아들,언약,약속,율법,그 육신의 예수를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난 주 야곱의 얍복강이후의 삶,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 요셉의 삶을 그 유다라는 안경으로 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는 요셉의 이야기로 풉니다.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습니다.그 이스라엘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삶을 요셉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그 율법,그 자신을 헌신하여 자기가 자기의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마련하려고 하는

그 열심,율법이잖아요,야곱이잖아요.실족시키는자,강도 잖아요.

그가 하나님께 환돌뼈를 가격당하여 그 율법을 그 말씀을 마음으로 갖게 되었을때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 삶을 요셉이 설명해주기에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밖에서 나타나 애기하는 장면이 성경에는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이미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가진 자의 삶을 연기하고 있는 겁니다.그렇게 그 역할로 살고 있는 겁니다.

요셉이 그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사이에 유다와 다말의 애기를 끼워넣습니다.

그 유다라는 안경으로 요셉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도 이스라엘이고 유다도 이스라엘이네요.유대인 이스라엘,이스라엘이나 유대나 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아나데마의 삶을 살다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 유다와 이스라엘,그 요셉의 삶을 하나로 묶어서 성경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표적,보증,표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라고 합니다.

남유다나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그들이 남북으로 갈라졌을때 이름을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지은 건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유대인 이스라엘인,유대 이스라엘,막 혼용해서 쓰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메시아가 오셔야 되는 거고,이스라엘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루우벤으로 시작하여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완성된 아들)으로 끝나는 겁니다.

-벤이 아들이니까.보라 아들이 여기있다 ,아들의 시작 그리고 열둘을 성경에서 계속 아들로 씁니다.열둘,아들

그래서 유다도 아들을 낳아하고 씨를 가져야 하고 이스라엘도 아들을 가져야 하고

그 아들에 의해서 그들이 살아나고 그 아들을 표적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진리로 해석된 표적이야 합니다.

그래서 유다가 표적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그 이야기가 요셉(양식관장,말씀을 갖고 있는자로,인과표를 갖고 있는자로 )

이 양식을 가지고 있는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 같은 거니까 그 개념을 끌어다가 사도바울이 9장과 10장에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영적이스라엘 씨를 가진 어떤이들을 설명하는 겁니다.

 

어떤이들은 그걸 엉터리 씨로 갖고 있더라는 걸..그래서

그들을 갖고 수많은 표적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게

그거냐 그건 내용으로 이해 되어져야지 이렇게 피력하고 있는 겁니다.끊어짐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 이건 우리의 애기입니다.영적이스라엘은 우리입니다.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요셉이라는 아들로 축약이 되어서

그 자손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건녀내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유다는 메시아를 낳아야 되는 역할을 부여 받은 자입니다.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실로가 온다고 그랬는데 그 실로가 메시아입니다.

유다의 씨로 실로가 온다.그래야 유다가 살아난다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그래서 그 셋째에게 며느리를 주지 않습니다.

며느리를 셋째에게 줘야 자손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 자손이 없으면 자기도 죽습니다.멸망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주님이 땅에 음란한 여자,성경에서 간음하는 여자는 항상 내 남편을 그리스도

진리로 갖지않고 율법으로 가져 나와 연합시키면 그걸 간음한다 성경이 애기합니다,율법과 간음하는자

예수님이 율법으로 오셨다는 것은 간음하는자 창녀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 씨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던 이에게 그래서 죽어야 하는 어떤이에게 가서 그에게 인과 지팡이를

받아내고는 씨를 만들어버리는 겁니다.그 여자가...

이 죽어야 할 유다는 먼지도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가 지난주에는 이 유다와 다말이야기를 죽어야 할 부정한 다말이 나중에 그 씨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는 그 씨의 주인에게 그 씨의 인과지팡이를 내어 놓아야 산다고 그랬 습니다.

그 이야기나 지금 제가 다말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는 예수그리스도로 설명하는 거나

똑같은 애기입니다.

 

그 여자에게 유다는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하냐면 염소를 주면 안되요.유다가 멀 알아서 염소를 안 준게

아니라 이쪽에서 희생제물,율법을 안받아 버리는 겁니다.

인과 지팡이만 뺏어버리는 겁니다. 넌 내꺼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씨가 생기자 유다에게 어떤일이 생기냐면 그가 어떤 존재인지 폭로가 됩니다.

그 씨가 생기지 않았을때는 몰랐는데.싹 감추고 있었는데 마누라 죽은지 ? 일 안되서 창녀와 잠을 잔

유다가 폭로되는 겁니다.그때 당시는 율법으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였습니다.

다말이 입만 열면 유다는 죽는 겁니다.다말이 문제가 아니라

죽어야 할 그가 씨를 가진 여자가 자기가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평가를 다 뛰집어 써버리고

그 죄를 애기하지 않고 유다에게만 인과지팡이만 이게 당신꺼죠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에요.

유다가 그때 그게 ‘의’라고 애기하는 겁니다.니가 의롭다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거란 말입니다.

중요한 건 유다는 다말 사랑하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그 표 인과 지팡이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요셉의 이야기 였고...그러면 사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라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모면합니다.

요셉이라는 아들은 무죄한 아들이였어요.다른 형제들의 죄와 어두움을 고발하는 아들이였습니다.

고자질 잘하는 약쌉 빠른 인간이였다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다른이들의 어두움이 들어나 버립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그게 말씀입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그 어두움과 죄가 막 폭로가 됩니다.그게 요셉의 역할이였습니다.

그 자기가 어떤존재인지 드러나게 하는 이는 죽여야죠 그래서 형제들이 죽일려고 구덩이에 넣었는데

유다가 팔자 죽이지는 말자 그리고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이 어디입니까

무죄한 자가 애굽으로 가 애굽의 감옥으로 들어가요 (계시록에 애굽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 이야기 함니다)

예루살렘 율법을 애기하는 겁니다.무죄한 아들이 죄인이 되어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살아 그 땅에서 식량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 그 안에 양식을 가진자로 그 아비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겁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니까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반드시 그씨를 갖고 있어야 됩니다.표로 보증으로 꼭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용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그냥 껍데기 표로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게 나를 살리는 씨란 말입니다.나를 살리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 아들은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죠 그러면 반드시 그 영을 담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 진리를 담은 담고 이땅에 오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영의 그릇이 육신적 예수였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다가 다말이고 다말이 유다이니까..중요한 건 그 표입니다

그 표라는 건 자칼이고 자칼이라는 단어도 표입니다.자칼은 네케바라는 그릇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칼은 남자가 되다,아들이 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그 표가 여자 안으로 들어가면 여자가 아들이 됩니다.

이게 구원의 메카니즘이라는 겁니다.그것을 하 아담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데 자칼과 네케바로 만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 아담입니다.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죠 여러분...... 땅에서 나옵니다...

땅이 아다마(אךםה)에서 (ה)를 지워버리면 (אךם)아담입니다.

문자의 의미: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를(ם) 말하는 것(ה) =이걸 성경이 땅이라고 번역을 해놨습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사람 하 아담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אךם)아담은 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ם)인데...

아담만 되면 되는 겁니까? 어디서는 저주받을 인물로도 나타나고 어디서는 우리는 그 아담이

되어야지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임니다.

모든 인간들이 아담이에요.왜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을 담아 창조했다 하셨죠.

그 어떤 것도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게 없다 했습니다.

모든 것은 말씀을 담고 있어요. 모든 것은 진리입니다.

그 걸 모르고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모든 인간들은 진리를 삶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먹고 이렇게 삽니다.우리가 진리로 못보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다 말씀으로 창조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이(א) 구별하신(ך) 진리(ם)를 제대로 깨닫고 ‘아 그거지’내안에 말로 가지고 있으면

하(ה) 아담(אךם)입니다.그냥 이 (אךם)아담이면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ה) 아담(אךם) 하(ה) 벤(בּן) 그 사람에 그 아들”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신약성경에도 “호 휘오스 호 안드로포스 그 사람에 그 아들” 이라고 합니다.

항상 관사를 붙입니다. 이 말은 그 진리를 가진 그 사람의 라인...

내가 이렇게 내 진리를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 어떤이가 그 진리를 가졌어.

그러면 그렇게 아들,아들,아들이 되는겁니다.

아담의 아들은 셋이 되는 거고 셋의 아들은 노아,노아의 아들은 셈..아르박삿..이렇게 아들을

낳아가는겁니다.그들이 바로 인자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참조---------------------------------------------------------------

17-2.하(ה) 아담(אךם ),아담(אךם)...

- 산상수훈 48 너희가 바로 보물이다 말씀중에서...

(אךמהH128, 아다마 / 땅) + 아파르(/עפרH6083/티끌.먼지)

=> 아담(אךם/H120/사람)

“땅에서 먼지(티끌)들을 모아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다음에 사람을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아담은

ךם(담H1818) + א(알레프) =אךם(아담) = 하나님의 피로 만들어진 존재

;피,blood ;하나님

 

(אךמהH128, 아다마 / 땅)에서 아파르( עפר/H6083/티끌.먼지)가 나오고

아파르( עפר/H6083/티끌.먼지)에서 아담 (אךם/H120/사람)이 나옵니다.

*(אךמהH128 아다마 / 땅)을 파자하면?

א 하나님께서

ך 분석(구별)하신

מ 그 진리가(를)

ה 말(소리)로 주면 (אךמהH128, 아다마 / 땅)입니다.

- 그 말씀에 의해서 아파르(עפר/H6083/티끌.먼지)가 주어지는데

아파르(עפר;/H6083/H6083/티끌. 먼지)가 율법 입니다.

나중에 보면

“너희 들에게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티끌이나 모래로 내리면 다 죽는다”라는

말에 나오는 그 티끌이 아파르(עפר /H6083/티끌.먼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אךמהH128 아다마 / 땅)=진리가 아파르(עפר /H6083)=율법으로

주어지는데

그것을 진리로 깨달으면 그것이 아담( אךם/H120/사람)이라는 존재 입니다.

그런데 아담( אךם/H120)=소리(진리)”가 없네요?

* 창세기에 보면은 관사 ה(하)가 붙어서 (אךמה128, 아다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אךמה (H128, 아다마 에서 “인자”라는 개념이 나오고 여기에서 계속해서

후손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 아담의 아들… 또 그 아담의 아들… 그 사람의 그 아들 = “인자”라고 하는 것)

그래서 אךמה(128, 아다마)= 하나님의 말씀"를 가지고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로 받아버리면

아담(אךם/H120)이 되기는 되요 그냥

“붉은 아담(죄)=성전의 아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를 진리로 깨달으면

(하ה 아담אךם )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ה 아담אךם )이라는 관사가 붙은 사람과

그냥 사람(;אךם/H120/아담)과 완전히 다릅니다.(성경)

이러한 내용을 숙지하고 계시면 성경을 읽는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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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진리를 설명하는 그 건 이 땅에 시체로 올 수 없잖아요.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말로 소리로 또는 형태로 이렇게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걸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라고 합니다.

- 눈에 보이는 것,성전으로(ע)말하기(פ)시작하는(ר)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 이 걸 티끌이라고 합니다.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전,율법,예수,세상...이런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것들은 그 진리를 가진 하(ה) 아담(אךם)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것이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입니다.

이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적으로 바 버리면 이걸‘티끌,모래”라 합니다

성경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티끌,모래로 내릴거야.내가 너희를 바다의 모래로 만들어 버릴꺼야

이때 쓰이는 단어가 “아파르(/עפר/H6083)=먼지.티끌”입니다.

그래서 이 걸 설명하기 위해서‘땅에서 티끌을 모아 사람을 만들었다’ 하십니다.

우리는 그걸 내용으로 알아야 합니다.

“땅에서 먼지(티끌)들을 모아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다음에 사람을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게 맞다’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말 하지도 마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다 이스라엘은 그 씨,진리를 반드시 아들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아들 그 진리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광야는 스테반이 광야를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의 그 중심이 유다지파입니다(민수기2장)

그리고 유다지파가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깃발을 중심으로 남동서북으로 다른 지파들이

포진을 하고 거기에 성막이 세워지는 겁니다.

움직이면 또 유다지파의 중심이 되어서 그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데 그 깃발(데겔דּגלH1714-다갈에서유래)이라는 단어가 표적입니다.

유다가,이스라엘이 이 표가 무엇인지 알면 사는 것이고 모르면 죽는 겁니다.

그게 이 열두지파의 대표란 말입니다.

유다(예후다יהוּךהH3063)라는 말이 성전을 설명하고 뻗쳐내는 것,

- 야다יךהH3034에서 유래했으며,‘성전을 펼치다’‘성전을 뻗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와야합니다.

그 예수가 성전의 완성이였습니까 이니였습니다.

말 못하는 성전을 하나님이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말을 못하니 오해해서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고 있는 겁니다.그래서 말하는 성전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주님이 내가 성전이다 말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어야 할 성전이라고 했습니다.그러면 내가 세 번째 걸로 세운다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너희가 성령을 품고 있으니 너희가 세 번째 성전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하는 애기입니다,이게 완성 성전입니다.

내 안에 그 예수 있으니까 파괴되어 새 것으로 살아난 그 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성전이란 말입니다.

반드시 유다지파는 그 깃발을 갖고 바로 그 씨 살아난 그 아들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 유다는 그 아들은 그 이스라엘은...그러기 위해서는 그 표적은 반드시 깨져야 합니다.

 

쉽게 말할게요...

유다는 표를 깃발을 갖고 진리로 보면 살고 표적으로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라는 표적이 나오는 겁니다.

그 표적을 가진 유다가 그 예수를 표적으로 보면 죽는 거고 그것을 진리로 깨달으면 그들이

영적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 표적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찾으면 오트라는 단어입니다.(단어의 쓰임 예)

(출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오트אוֹתH226)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유다가 가진 표적이 피입니다(어린양의 피)

그 표적을 진리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모면한다 합니다.

그 피는 물,물은 성령(요한일서 5장)입니다.그 셋은 하나다 애기합니다.

그 피를 진리로 성령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을 내가 넘어가 살려 버리겠다라는 약속입니다.

(출13:15-16)

15.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 고로 초 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16.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 이게 표적입니다. 표적은 죽어야할 장자가 하나님이 죽인 장자에 의해 살아난 다는 것을 표적으로 가지고

있어라 하십니다 이게 복음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그것이 유다가 가지고 있던 깃발입니다.

즉 유다,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과 지팡이가 같이 등장하는 겁니다.

지팡이는 항상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 보증으로 오신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G3875)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 표를 가지고 있는 유다가 네 번째 아들입니다.

(네 번째는 의미가 없습니다,아라비아 숫자도 없었습니다,즉 넷이라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표적이라는 단어가 맨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냐면 창세기 1장에 넷이라는 날입니다.

(창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 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하야היהH1961)

-눈에 보이는 넷이라는 그것이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넷번째 날입니다.

레비이(רביעיH7243)라는 단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래것으로 보여준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루어야 됩니다.완성을 해야 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에 의해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네 번째 날에 ‘광명’‘마오르’가 나오는 겁니다.

- 지난 수요일에도 배웠습니다.

‘마오르H3974’= מאוֹר 라는 단어는

빛 오르, מ + אוֹר(멤이 붙어서 어떤장소나 기명이나 기구가 됩니다)

= 빛이 비취는 장소,빛이 비취는 어떤 것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걸 ‘광명’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걸 태양,달,별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기 첫째날에 그 빛이 그것이 비후어지는 어떤 것,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창세기 첫째날은 넷째날과 짝입니다.당연히 그 빛이 어디에서 비취어 지는지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비취어지는 그 빛에 의해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성취된다라는 겁니다.

이게 넷입니다.

빛을(אוֹר) 진리로(מ) 주게되면 넷이라는 것이 성취가 되는데 그게 먼지를 시작하는데

첫단어가 (오트אוֹתH226) 표적,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궁창에다가 광명을 주신다 하십니다.

궁창 라키아는 금을 얇게 펼쳐서 덮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궁창을 완성과 아래것의 가운데에다 만들라고 합니다.

바브,와우(ו)라는 단어는 서로 마주보며 노를 저어 가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타베크(가운데)는

완성된 성전(위에것)과 아래것이 서로 마주보며 노를 젓어 만나는 그 지점을

가운데 타베크(위엣것과 아랫것의 교집합)라고 합니다.

위에것과 아래것의 교집합이 주어져서 우리에게 위에것을 알기 위해 준것이(율법,성전,예수,성경,세상..) 이런 것들입니다.

거기에 라키아를 만들라는 건 성전을 내가 그런 용도로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광명 마오르를 두시겠다는 겁니다.

나중에 마오르가 율법서에서 어떻게 쓰이냐면 성소안에 등대가 모두 마오르입니다.

성소를 비취어서 성전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그 역할을 하는 그 것을 그것도 일곱등대를

(일곱 말,일곱영,일곱눈모두 같습니다) 그것이 성전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면 ‘광명’‘마오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마오르에 의해서 무엇이 이루어 지냐면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완성이 된다라는 겁니다.

이게 먼지를 알면 유다라는 넷,넷이라는 유다가 가지고 있는 그 표가 어떻게 완성이 되야 그를

살리게 되는 건지 알수 있겠죠.

 

성경에서 광명이라는 것을 태양 달정도로 설명하는 것으로 용도로 쓰여진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을 담은 성전과 연결을 시켜서 우리에게 그 진리를 설명하기위해 마오르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겁니다.

 

1.징조,오트라는 단어가 표적,이적,표,깃발,증거,표징..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전,세상,율법,성경,예수,행하신 기적,십자가의 죽음 까지도

전부 표적이라는 것입니다.그자체로는 그릇이라는 겁니다.이 것은 반드시 내용으로 들려지고 읽혀져서 내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복음으로 넷으로 설명해 주신 다음에 내려 가셔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내가 아까 조금전에 애기 해 주었던 것들을 그것이 너희가 못 알아 들으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 줄게 " 이 걸 바"라고 주신거란 말입니다

그 것이 목적이 아니였다라는 것입니다.귀신 쫓아 내고 병 고치고 무덤에서 사람 살려 내고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나 바야 또 병들고 죽어요.

아니 이 세상에서 조금 건강하게 산다고 무슨 복이겠습니까 여러분!

그게 진짜 복이였다면 하나님이 하나 하나 쫓아 다니면서 만져서 구하고 그럽니까. 말로 행하시면 되는 것을...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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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전부 표적이란 말입니다.

그것들을 통하여 죄의 증상,사망의 증상등을 어떻게 완전하게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우리가 배우는 거지 그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걸 표적 껍데기로 보면 성경이 ‘어두움’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서 첫째날과 넷째날이 짝,둘째날과 다섯째날이 짝,셋째날과 여섯째날과 짝 이게 완료가 되면

일곱이라는 것이 되고 그 일곱을 마음으로 가지면 팔(여덟)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덟의 날에 살아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첫째날에 빛과 어두음을 나누셨다 합니다.하나님이 환하게 어둠게 나누었다는 이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어두움이라는 것을 2절에서 설명하시고 시작하십니다.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란 무슨 말이냐면

깊음이란 것의 이름을 어두움이라고 하자 하고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그 밑에서 이 깊음이 모인 물이고 그것을 바다 얌(יםH3220)이라고 할게...

하늘, 솨마임(שׂמיםH8064)이 ‘거기에 물이 있다’

-쉠שׂמ 명사로 쓰이면 물이지만 형용부사로 쓰면 ‘거기’라는

뜻입니다.그 물이 진리입니다.그걸 설명하기 위해 물론 상징적이지만...

아래에 물로 우리에게 준 것을, 눈에 보이게 준 것을 바다라고 하고 아래에 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잠시 우리가 어두움이라고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이 나쁜거에요. 그게 없이 그 위에 물을 알 수 있습니까?

그걸 직접 줄 수 없어서 우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게 유한적 존재의 절망적 한계입니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아래에 물이라는 것을 주어 위에물을 설명하실려고 하시는데

눈에 보이는 아래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는데 이게 나쁜거냐구요.

그걸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래의 것으로 그냥 바 버리면 어두움이고 죄고 악입니다.

그 어두움으로 아래것을 알아 버리면 즉시 이 어두움과 나와는 아무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눈에 보이기는 똑같은 그 것이지만 나에게는 빛이란 말입니다.

그때 그 어두움이 그 죄가 그 악이 그 율법이 나와 무관한 것이 되고 그걸 용서라고 하는 겁니다

그 어두움이 담고 있는 내용을 올바로 깨달아 알면 그것이 바로 빛 오르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이름을 ‘낮’이라 이름하시고,낮이 날입니다.

욤יום(H3117)(진리를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아래것 어두움을 갖고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복임을 알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이 ‘낮’이라고

합니다.‘날’이라고 애기 하십니다.어두움은 ‘밤’이라 합니다.

‘밤’‘라일(לילH3915)은 ‘가르치다 가르치다’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얼 가르치기위해 어두움,밤을 주셨습니다.그러면 배우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날.낮’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가 이 역사라는 날들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해서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겁니다.이게 날들입니다.

날이란 의미가 그런말입니다.우리는 이세상에서 그 진리를 알고 가면 되는 겁니다.

그게 날들의 역사들의 목적입니다.

주님은 어두움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율법으로 오셨으니까 그런데 빛이라는 내용을

담고 오셨습니다.그리고 "내가 진리다" "내안에 있는 그 빛이 진리다" 애기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빛을 깨달을 수 가 없었습니다.그게 유한자의 한계입니다.

그 것을 깨달아 알면 낮입니다.그런데 주님이 이땅에 오셨는데 모두 어두움이였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아무도 못?다라는 겁니다.그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속에서 눈이 멀어 그냥 어두움을 살고 있었단 말입니다.모든 존재가...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표적으로 인식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렸어요.

그 표적안에 담겨 있는 빛을 봐야 되는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빛이잖아 내가 있는 동안이 낮이다’라고 하십니다

‘낮이 12시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원문을 보면‘내가 있는 그 시간이 12시간이 아니냐’입니다.

이 시간동안 내가 있는 시간동안에 너희는 열둘이 되야지.낮의 사람이 되야지,아들이 되어야지

이런 말입니다.그러나 너희들이 곧 나를 못 볼거야 그러면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 잠깐 왔다가

사라?네요.빛은 사라지고 그대로 이 세상은 또 어두움입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시길‘내가 사라지면 이제 심판이 오는데 어떤 자들이 심판을 받는지 아니

그 빛이 너희 안에 없으면 너희는 심판이다’그러십니다.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아무도 못알아 ?습니다.다 어두움이니까.

그러니까 그 빛이 너희 안으로 뚫고 들어가 버리겠다 하십니다.그거 없는 자는 이 어두운 세상속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그 자체가 죽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빛을 갖고 있는 이는 어두운 세상속에서 빛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죽어버린 표적을 자칼로 인과 지팡이로 보증으로 성령으로 당신들 백성들 안으로

뚫고 들어오게 만들어 버리십니다.심어 버리십니다.은혜로...선물로...그게 성령입니다.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반드시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르 ,빛으로 시작한 그 빛은 오트로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빛(אוֹר오르) → 표적(오트אוֹת)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 하나님이 완성하신다.(그 표적에 내용을 담아서,주어서)

그리고 표적(징조)부터 시작하십니다.

 

표적(징조)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들로 주어진 성경,율법,성전,예수,세상,인간...이러한 것들입니다.

이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되지 못하면 멸망시키는 양식이 됩니다.

그 구유의 아기가 먹이다.

(구유가 양식이니까 주님이 내가 양식으로 왔다 했으니까,내가 하늘의 양식이야 하늘의 떡이야)

그것이 진리로 깨달아 지지 못하고 표적으로 보아져서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면

그게 우리를 멸망시키는 양식이 되는 겁니다.

 

--역시 오병이어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요 6:26-27)

26.예수께서 대압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표적을 호라오하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으로 먹고 배만 불리고 그 것으로 나를 찾아 왔다라는 겁니다;나의 육적가치나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러한 섬김의 대상 이게 가짜 하나님입니다)

27.썩은 양식을(멸망시키는 양식이라는 뜻;너희가 내가 하는 기적이나 말이나 심지어 나까지도 이런 것들 표피로만

바버리면 그게 멸망시키는 양식이다,그러니까 이제 영생을 하도록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해,멸망시키는 양식이

너희들히 열심히 율법행하고 제사지내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것이다.그런일 하지마 )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 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양식은 인 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말씀으로 주신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은 성령,보증입니다,그들이 너희에게 주어,그당시에는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그 다음에는 수많은 그 하나님의

그 아들들이 그사람의 그 아들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역할들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삭을 주시면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명하셨죠.

그리고 이것이 표적이다 하셨습니다.

(창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할례입니다}

이것이 나와 너희사이의 언약의 표징 이니라.

(할례입니다;인간의 생명의 근원,생명의 씨를 아에 차단해 버리는 겁니다.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할례를 표적이라합니다.그런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라고 합니다.)

어떤 언약입니까

약속의 자손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하죠 아들만 합니다.

아들은 팔의 날에 그에 그의 육의 생명을 완전히 부정당하는 자다.이런 말입니다.

그걸 할례라고 합니다.언약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그 건 제가 다음주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홍수 후에도 표적을 주십니다.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표적입니다)

- 무지개(케쉐트קשׂתH7198)는 일곱색깔입니다.칠입니다.

일곱을 너희에게 언약을 준다,이게 언약의 표적이다.하시고 일곱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곱을 안자들이 방주에서 그들이 나온자입니다.여덟입니다(베드로서에서)

그렇게 일곱을 알아 그 언약의 내용이 먼지를 알아 여덟이 되는게 무엇인지도 다음주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표적이라는 건 하나님의 언약,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오트라는 다음에 사시(모에드)라는 단어가 이여지는 겁니다.이건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마오르H3974’= מאוֹר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비취는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표적 오트를 반드시 그 어떤 것으로 완성해 내실거에요 그런데 오트를 주고서는

그 건 만으로는 우리가 알수가 없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이 모에드라는 것을 주십니다.

 

2.사시(모에드מוֹעֵד)-정한때 약속하다,언약,약혼하다 이런 뜻입니다.

-사시(모에드<מוֹעֵד>); 야드<יָעַד연합하다>와 멤<ㅁ존재>의 조합입니다.

-에덴이라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하는 단어입니다.

;절기 정한때 약혼하다,언약하다,정하다,이런 의미를 품고 있는 사시라는 단어가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그 언약의 마지막 목적이 멉니까.

자칼이신 말씀이신 하나님과 네케바에 불가한 우리의 혼인의 완성입니다.연합입니다.

이게 언약의 목적입니다.그래서 약혼하다,이 것은 반드시 혼인으로 이루어질 약혼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기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그사시 그 언약을 절기라는 것으로 주십니다.

절기는 사계절이라고 해도 되고 넷이죠,이스라엘의 절기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초막절)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봄여름가을겨울이 멉니까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고 거두고 하얗게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는 거에요.이걸 보라고 사계절을 주신겁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그 것으로 보라고 계절 절기 모에드를 주신게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유월절날 에 죽어야 할 첫 남편이 죽습니다.어린양입니다.-로마서7장

그리고 무교절에 교회 광야에 누룩들어가지 않은 하늘의 양식인 떡이 쏟아집니다.

그게 교회에요 말씀이 떨어지는 거죠

오순절날 새 남편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겁니다.그러면 추수가 된 알곡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장,영원히 사는 겁니다.이게 절기가 가진 의미입니다.

언약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진리를 표적으로 주십니다.먼지 몰라 그럼 내가 그 언약 혼인이 먼지를

풀어서 줄게 하시고 사시 모에드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 절기나 표적 모든 건 아직도 이 아래것입니다.

어두움의 것입니다.그 오트와 모에드가 어두움으로 주어졌지만 그게 먼지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아 버렸을때 ‘일자’욤(יוֹם진리를 받은자가 그 진리를 넘겨줄수 있으면 그걸)‘날’이라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두움과 오트와 모에드 그 것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이 아래에서 살아야 되니까 이 땅에 발들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랫것으로 이 어두움을 입고 삽니다.

우리가 크로노스의 삶을 사는 겁니다.그런데 그 걸 알아서 내가 진리로 가지고 있어요

그럼 난 크로노스를 살면서 카이노스를 같이 사는 겁니다

이렇게 양자를 같이 살 때 짝으로 사는 것 ,그것도 살고 이것도 사는거 ,어두움을 살 수 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빛을 가지고 사는 것을 솨네(שָׁנֶה연한)이라고 합니다.

-연한은 국어사전 찾아도 안나옵니다..^^

 

그러니까 표적부터 시작해서 연한으로 완성되어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게 넷이라는 겁니다.

유다라는 넷의 아들이 그렇게 표적을 갖고 시작하여 솨네로 완성을 하면 그게 영적이스라엘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바울은 그 표적들을 전부 나열한 다음에 이걸 너희들이 그냥 갖고 있는다고

너희들이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내가 로마서 8장에서 끊어짐이 아니라는 건

이런 걸 가졌다고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민족적 이스라엘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창세기부터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성경은...

그러니까 요즘 세대주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자꾸 저에게 메일을 그냥 수십통씩 보내 가지고

외국학자들의 논문도 보내주고 ..이메일로... 세대주의 맞다고...

저 민족적 이스라엘이 곧 구원 받을거라고...가르칠라고 그래요..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세요 그거 다 스팸멜 처리 해 놨으니까 보내도 안읽는다고...

그럴 시간도 없어요.멀 그걸 읽고 앉아있어 신학교때 다 공부한거...

천만의 말씀입니다.성경은 성도의 이야기만 합니다.하나님의 아들들의 이야기만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그 절기 그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혼인의 이야기를 이 크로노스

이 역사를 통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인생동안에 그 하나님과 잘 화해하여(연합되어) 결혼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사도바울은 중매쟁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앞에 휼룽한 아내로 중매한다.결혼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의 스팩은 영 말이 아니죠.(이사야 53장)

(사53:1-3)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 게 나타났느뇨

2.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보기에 연한 순 같고 볼품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아 뚝치면 넘어질 것 같애 얼마나 못생겼으면

얼굴을 돌린다고 그래,그 흔한 대학도 안 나왔어 무학이야,

(그당시 예루살렘에 4년재 정규대학이 2개나 있었고 전문대학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머리둘 곳도 없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 동생들은 왜 이렇게 많어 그리고 그를 남편으로

맞는 즉시 나의 육이 그 앞에서 부정이 되어야 돼 누가 이런 남편을 택합니까

그런데 정신나간 이들이 그 이를 내 신랑으로 받아 들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치 그 신랑앞에서 나의 육적 원함과 내 육신이 부정 당하는 것이 맞지 라고 하며

그 남편을 신랑으로 꼭 붙들드라는 겁니다.

그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있지도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결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그거 배우라고 허락하신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끼리 마음 맞쳐서 행복한 천국의 원형을 이루라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그렇게

결혼이란 제도를 준게 아닙니다.그게 목적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 인간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배우자를 찾습니까

청년들 배우자들 기도제목좀 꺼내보세요....

왜 이 역사속에서 예수와 정반대의 스펙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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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대의 혼인은 아이가 태어나야 비로서 완성이 됩니다.

혼인의 절차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장인 장모가 있는 장가로 와야 됩니다.

그래서 장가간다 하는 겁니다

남편이 혼자 밤에 와요 그리고 칠에 날 동안 밤에 잔치를 합니다.

그리고 장가에서 살아야 합니다. 첫 아이를 날 때까지..

첫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계시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영혼이 사는 겁니다. 이게 혼인의 완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역사 날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바로 그 혼인을 완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아들 씨를 내안에 가져야 합니다.

그 진리를 내안에 가져야 사는 겁니다.그래야 혼인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게 모에드고 그것이 진리의 씨로 왔을때 날이고 그래서 위에 삶과 아래의 삶을 동시에 사는

이 세상의 빛이,세상의 빛이 된 자들의 삶을 솨네 라고 하는 겁니다.

양자를 다 사는 이들의 삶...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열의 율법을 넷으로 준거에요

에스카톨러스 코드란테스 넷의 마지막을 반드시 완성해 그러면 정사각형이 되겠죠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입니다.계시록에 거룩한성 새 예루살렘성을 정사각형 정육면체로 묘사를 합니다.

그 넷의 의미가 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말씀을 그 오트를 갖고 그 하나님의 완성 그 걸로 진리로 완성해 버려

그러면 그게 무트가 되며 그게 죽음입니다.

우리가 오트 표적을 진리로 완성해 버리면 그걸 육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부정당해 버리는 겁니다.그걸 완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적의 평화가 바로 예수입니다.언약이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조상등을 통해서 설명이된 아들입니다.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되었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이 나다라고 애기 하신거고 그 성경이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라고 애기하신 겁니다.

그렇게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였다.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깨져야 할 표적들만을 붙들고서는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드라는 것입니다.

그걸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건 우리의 애기입니다.

오늘날에도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저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저마다 찬송을 하고 저마다 봉사를 하고 헌신을 합니다.

약속을 이야기 하고 언약을 이야기 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요즈음은 이것도 힘들다고 그 어려운 조직 신학적 애기는 하지 말고 신문만 애기해요

그런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표적으로 섬기고 ,표적으로서의 예수를 섬기고 그 예수가 하고 있는 일만

칭송하고 잇는 겁니다.

죽은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십자가에 매달려 놓은 다음에 열심히 그 예수만 섬기고 있어요

그게 죽은 것 같았으나 다시 산 짐승으로서의 예수입니다.

내가 세상임금으로 죽을 거야 그게 십자가란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그이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그이가 세상임금입니다.

내가 국어사전 상식으로만 이해하니까 세상임금 사탄 이렇게 알고 있는 거에요. 뱀 마귀 이렇게

그분이 세상임금으로 죽어야 세상임금 되고자 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죽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거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이 내가 세상임금으로 죽을건데 곧 세상임금이 또 다시 온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이들이 세상임금으로 죽은 나를 다시 살려 자기들의 유익에 써 먹을거라는 겁니다.

열심히 섬기면서...

주님이 그는 나와 아무상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그리스도와 아무상관 없는 예수를 표적으로써의 예수

그걸 율법으로 성전으로 여전히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죽은시체는 부정하다 하여 절대 못 만지게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의 장사를

아리마대 요셉에게 했습니다.왜 예수님의 식구가 없었습니까?

왜 가족들은 나두고 왜 아리마대 요셉에게 장사를 시켰습니까?

요셉이라는 이름은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사람이 죽은 예수를 만지면 안되기에 그의 아버지가

장사지내야 된다는 의미에서 그가 굴에다가 갖다 쳐 넣는 겁니다.

그 굴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묻혔던 그 이후에 인자의 라인 묻혔던 막벨라 굴이라는 의미입니다.

양 우리는 늘 성전을 애기합니다.율법의 성전에 예수가 율법으로 묻혔으면 다시는 만져도 안되고

가도 안되는 겁니다.옛날에는 무덤을 무덤에 본봉을 세우지 않고 평토장을 했습니다.부정하니까

혹시 자기들이 밝을지 몰라서 그 자리에 회를 칠해놨습니다.안 밝을려고 그런 율법적 노력과

시도를 주님이 회치라 무덤이라고 했습니다.그런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냐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 죽은 예수를 살려놓고 열심히 거기 가서 가지고 이 예배당을 성전화 시켜놓고 거기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로 살아서 내안에 생명으로 들어왔는데 내 박에다 걸어놓고 내 소원을 내 인간 의로서의 욕망 성취를

나의 가치 상승을 위해서 열심히 빌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부 예배든 모든 주인공은 나여야 됩니다.

내가 은혜 안 받으면 안되고 나를 감동시켜주지 못하는 찬양팀은 찬양팀도 아니야

오늘 예배 분위기가 왜이래요 당신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그 진리를 설명해주는게 못내 다 불편한 거에요 하는 사람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어느 목회자를 예를들어서

 

회복의 하나님 이게 피상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데요.하나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데요.

회복하세요.배부르게 가세요 야고보가 애기한 피상교와 뭐가 다릅니까

어떻게 되는지를 성경으로 설명해 줘야죠

어떻게 회복이 되는 지 설명을 해 줘야죠

잠만자면 회복이 됩니까.하나님이 잠이란 걸 만들어 줘서 감사행요

그걸 깨달아야 되냐고요 우리가 그런데 수천명 수만명이 앉아가지고 한국교회 지성들은 거기 다 가 있다던데

근데 거기 앉아서 아멘아멘하고 있어요.날 회복시켜준다니까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형식적입니까

하나님께 내가 회복이 되길 원함니다 하면 내가 회복이 됩니까

아무 의미없이 굳 모닝 굳 애프터 눈 이거랑 머가 달라요 같죠

멀 굳 모닝이야 언제 봤다고 아무한테나 안녕하세요...

안녕이 평안 에이레네요.진리를 모르는 이는 그 평안 절대 못 갖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녕못하죠,안녕하게 해드릴까요.안녕할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릴까요..

이렇게 원래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에게 안녕하세요 진리를 모른 이들이 어떻게 안녕하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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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표적으로서 예수에 머물려 있는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가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들이삭이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이곳에 아직 애가지 못한 이들은 다 기도해서 다 애를 가져야죠..애 허락한것이 아니라

씨를 주겠다고 했더니 표적이 담고 있는 그 씨를 주겟다고 했더니 아브라함이 이해를 못하니까

아들 주겠다는 애기인가 그 아들에게 그 씨를 진리를 담아서 아버지를 담아 아들안에 담아

이 걸로 아버지 그 씨를 ?달아 알라고 준거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후손 이삭 그 씨를 통하여 그 진리를 깨닫고 브웰쉐바를 팍 찍은다음에

진리를 알아요 이게 일곱우물이지 이것이 진리이지 알자

하나님께서 그럼 이건 필요없잖아 이걸 갖다 파괴해라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준 아버지를 담아준 그 아들은 파괴해라

그래야 그 내안에 그게 아버지로 들어갈거 아니냐.이삭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형으로만 보여주는 겁니다.그게 어떤거냐면

이렇게 준비된 어린양이 내가 준비한 양이 죽어야 할 자 대신에 죽는게 그 이야기 였으니까

이제는 그 이삭이 이야기 하고 잇는 것은 모형으로서의 그릇은 필요 없잖아라고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이삭이라는 아들을 나에게 주셨잖아요

이제 그 아들은 백세에 주신 후 불면 날아 버릴까 금이야 옥이야 나의 섬김의 대상의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이 담고 있는 더 귀한 그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섬김의 대상이 안되는 겁니다.

이제는 그 아버지를 알았으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버지를 진리를 담아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 땅에 얘수를 보내셨어요.그래서 예수가 아버지와아들은 하나다 라고 하신 겁니다.내가 그아들로

왓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분은 그 예수를 통하여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았잖아요

그 진리를 그 복음을 알았으면 그러면 그 예수는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예수는 다 살아서 여기에 매달려 살아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파괴되어야 하는 겁니다.모리아산에서..거기가 예루살렘 아닙니까

이젠 그건 하나님이 나에게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안에 담아 나에게 허락하신

내 아들이 되는 겁니다.내 아들이 되면 섬김의 대상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누가 아들을 섬김니까 요즘같이 무엇 때문에 산지 모르는 인간들이 그 자식에 꽁꽁 묵여가지고..

그게 다들 생명이야 그러니까 설명을 해도 모르는 겁니다.

주님이 내가 검을 주러 왔다라는 말씀이 제일 먼저 끊어냈던 것이 바로 그 관계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섬기라고 내가 너에게 허락한거냐 하나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 아들안에 담겨 있는 아버지를 깨달아라고 하는 겁니다.그러면 그 아버지를 깨달았으면

그 예수는 내 안으로 빛으로 들어와야 되는 겁니다.나는 그걸 아다마 하 아담의 소리를 전해주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예수는 섬김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전히 표적이라는 겁니다.표적은 멸망의 양식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를 포함한 모든 표적들은 모두 진리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어서 마음속으로 들어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소리도 없고 언어도 없어 그러나 그것은 뜻은 통해...

그게 진리다 이렇게 애기 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말로 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 뜻으로 통하는 겁니다. 이걸 이심전심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말로 소리로 전하고 있는데 이 마음을 가져가면 그게 성령이 계시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찬송이 터지는 거지

무슨 내가 대단한 경험을 하고 기적을 행하고 은이빨이 금이빨이 되고 부러졌던 팔이 붙고..

그게 나를 살립니까

(시편19:1-4)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일을 나타내는 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주님이 거듭남을 말씀하시면서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자는 소리는 듣는데 그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근데 흔적이 남는단다.성령을 안자들은 다 그래...

날때부터 소경인자..누가 나를 고쳤는지 몰라요 (본적이 없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통하는 겁니다.그게 진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표적이 깨지고 내용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생명수 진리의 물이 이렇게 통하여 흘러가게 하는 일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성령을 배 (코일리아κοιλίαG2836;성전)에서 흐르는 생수라고 합니다.

창세기 2장에 넷으로 흐르는 생수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이 모에드의 에덴입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넷으로 흐르는 강이야기도 그이야기입니다.

다음주에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표적들을 주시고 그것들로 진리로 깨달아 알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그 표적에 머물며 하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른

그들처럼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하나님 진리를 알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터져버린 자유가 우리서머나 교회를 가득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