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칼럼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

Hebrew 2022. 11. 9. 17:20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 (김영대 목사)

 

성경을 볼 때에 우리는 편을 가르고 보는 습성이 있다. 성경을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하나님 편이고 예수님 편이다.

“예수님과 바리새인”하면 나는 언제나 예수님 편이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에 의해 정죄 되었고 나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에 대한 지적도 늘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출애굽기를 읽어도 나는 언제나 모세 편이고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원망하는 백성들의 편에서 성경을 보지 않는다. 그러니 성경을 보아도 나의 죄는 보이지 않는다.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만 죽어 마땅한 자들이고, 바리새인들이 저주받을 자들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금 홍해의 이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을 원망할까?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모세 편에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에 가서는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 모세조차도 하나님 편에 서 있었던 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분만 진정한 하나님 편에 서신 분이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이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나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나의 죄를 들추어내고 주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0:1-7).

 

모세는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말씀을 받고 있었다. 모세가 산에서 빨리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불안하였다. 그래서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기를 요구한다. 모든 식구들의 금귀고리를 가지고 오게 해서 그것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론은 그 앞에 단을 쌓고 그 다음 날을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선포하니 백성들이 그 다음 날 일찍이 일어나서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놀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출 32:1)고 했다. 뿐만 아니라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앞에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출 32:5)이라고 선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부하지 않았다. 저들은 하나님을 원했다. 자신들을 출애굽시켜준 하나님을 버리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들이 원했던 하나님 상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는 언약의 하나님과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시내산에서 계명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의 형상을 거부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 20:4, 신 4:23,24).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은 종교놀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왜 이런 종교놀이가 생기게 되었는가?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여기 시내산까지 인도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알았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이 생각한 하나님이었다. 애굽 백성들이 섬기던 신들 중의 하나가 송아지였기 때문에 송아지를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재앙들은 애굽 백성들이 섬기는 신, 즉 우상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출애굽기 12:12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 것은 그 재앙들을 통해서 여호와만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보았던 우상을 자기들의 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을 철저히 응징함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신을 찾고 있었다.

이것이 모든 인간들의 종교적 심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신(神)을 원하고 있다. 불의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눈감아 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꿈으로라도 암시를 주어서 모면하거나 해결해 주는 신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는 신이어야 신으로 제대로 대접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정말 매력없는 신임에 틀림이 없다. 도무지 섬길만한 가치가 없는 신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갖가지 능력을 다 행하면서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그런 신이 아니라 한낱 유대 땅에서 나약한 인간들에 의해 처참하게 십자가에 죽는 그런 신이었다. 그렇다면 그분이 신의 자격이 있는가? 이것이 예수님 당시 십자가 밑에 서 있었던 유대인들의 생각이었고 오늘날 역시 모든 인간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나님 그분이 직접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방법만이 죄의 값을 치르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제대로 드러나는 일이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이 길만이 구원의 길이다.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란 있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제대로 된 하나님을 보여주고 드러내시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인간이 찾는 하나님은 항상 가짜라는 것이다. 곧 그것은 마귀를 아비로 섬기는 마귀가 낳은 자식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2-44).

예수님은 성령님을 받기 전의 인간에게 공격받는 분이고 배척받는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세상 신인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2:2-3에 보면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진 결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섬기는 분은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고전 1: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는 종교놀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말씀 안에서 십자가의 주님으로 늘 확인되어져야 한다.

교인라고 해서 다 성도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성경에서 밝혀주고 있는 하나님과 일치하고 있는가? 혹은 너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과 같은가? 하는 확인이 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 관념, 내 철학에 의한, 내 편의에 의해 도출되어진 하나님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것이기에 천국과도 관계없는 것이다. 기도를, 헌금을, 봉사를, 예배를, 전도를 미친 듯이 하면 감동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의를 다 이루신 것을 믿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성도의 삶이란 세상 사람들에게 백지와 같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주는 것이 아니다. 서슬 퍼런 마귀가 왕 노릇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외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만 구원의 길이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주인을 바꾸어야 된다고 건의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멸망이라고 강력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점검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예수사회64호/20090828/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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