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18강.다윗언약(2)

Hebrew 2022. 11. 10. 12:26

18강.

 

다윗언약(2)

 

 

지난 시간에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는 말씀은,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천성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그런 왕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예측과

전혀 빚나가는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사무엘조차 이새의 장남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자인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을 펼쳐내시는 일에 다윗이 합당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랜 결혼생활동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부부를 통하여 열국의 아비를 만들어 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방식입니다.

 

오늘은 다윗이 언약궤를 메고 오려다가 실패한 사건을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실패한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 이삭을 주시는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자신이 마련한 장막으로 언약궤를 옮기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6:1-3절입니다.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30,000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모으고 언약궤를 메어 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오다가 소가 뜀으로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분노합니다.

 


사무엘하 6:8-10절입니다.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여기서 다윗이 분하였다고 합니다.

왜 분노하였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언약궤를 아무 곳에나 방치하여 두지 않고

자신이 특별히 마련한 장막에 모셔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라고 여기져 분하였습니다.

나의 정성을 몰라주시다니!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다윗이 언약궤를 모셔 가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장들이 메고 가야하는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에 비추인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내면적인 진짜 이유는 다윗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호위하여 가려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하 6:1절 보시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30,000명을 동원하였습니다.

새 번역과 공동번역을 보면 ‘정병’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으로는 ‘best soldiers’입니다.

즉 정예 병사 삼만 명을 동원하여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다윗 자신은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모셔가려고 하였겠지만

그 모양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호위를 받아야 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마음에 한번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정예병사 삼만 명이 호위하여 가는 어마 어마한 행렬입니다.

그 군인을 지휘하는 다윗 왕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겠습니까?

언약궤가 마치 다윗의 전리품처럼 수레에 실려 가는 모양입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모습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모양으로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가장 여호와의 일을 멋있게 하겠다고 나섭니다.

내가 한국에서 최고의 성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합니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래서 꿈과 비전을 크게 가지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옮기면서 실패한 다윗의 모습을 간과해 버린 결과입니다.


그러면 언약궤는 어떻게 움직입니까? 사사시대 때 언약궤를 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에서 진 이유를 언약궤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부적과 같이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이 언약궤를 메고 왔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진영은 사기가 충천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언약궤 곁에서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마저

불레셋에게  빼앗겨 버리게 됩니다.

블레셋 땅으로 옮겨진 언약궤는 그들의 신상을 파괴하며 언약궤가 가는 곳 마다 재앙이 일으켰습니다.

두려워진 블레셋 사람들이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 언약궤 까닭인지 알기 위하여

멍에를 한 번도 메지 아니하고

아직 새끼에게 젖을 떼지 아니한 암소 두 마리를 골라서 언약궤를 싣게 한 다음 이스라엘 쪽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그 소가 울면서 똑바로 벧세메스로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소가 본능을 억제당하며 가는 모습입니다.

이방인들은 언약궤 운반방법을 몰랐지만 언약궤를 실은 소가 바르게 가는 것으로

여호와의 언약궤 까닭에 재앙이 내린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율법도 알고,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언약궤를 호위하여 가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궤를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들여놓게 합니다.

가드 사람이라면 블레셋 사람인데 이스라엘로 귀화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다윗이 화가 나서 그 사람의 집에 언약궤를 들여놓게 하였는데 후에

이 사람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언약궤를 메어 가려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제사장들이 에봇을 입고 제대로 메고 갑니다.

 

사무엘하 6:13-15절입니다.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언약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이 제사를 드리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속옷이 보일 정도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알았습니다.

자신이 언약궤를 호위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호위하여 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처럼 기뻐 뛰며 찬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던 미갈이 다윗을 보고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낸 것처럼

계집종들에게 채신머리없이 행동하여 계집종들에게 몸을 드러내었다고 비웃습니다.

이때 다윗이 하는 말입니다.


사무엘하 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뛰놀겠으며 계집종에게는 오히려 높임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윗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미갈은 다윗의 아이를 가져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압살롬이 반역합니다.

이때 사독이 언약궤를 메고나와 다윗을 따르려고 합니다.

언약궤가 가는 곳에 민심이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다윗은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중심임을 알았습니다.

정예병사 삼만 명을 동원하여 여호와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반역하여

쫓겨 가도 마땅한 죄인에게 언약이 함께 하면 복인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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