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1. 신약의 산이 구약의 산을 부수다

Hebrew 2022. 11. 12. 17:27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부터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산상수훈을 공부하겠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이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보편적인 게 꼭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됩니다여러분이 산상수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리는 거죠제가 이 산상수훈을 강해하기 위해서 사전작업으로 어제까지 한 삼십 여권의 논문들과 강해서 들과 주석서들을 샅샅이 읽어봤는데 정확히 스물일곱 권인데세권은 안 읽었어요지겨워가지고그 속에서 산상수훈의 보편적 흐름을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이 산상수훈을 구원받은 자들의 행동강령에 무게를 두어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특히 청교도 신앙의 전승자라고 자처하는 여러 사람들 있죠존 로인이나 리차드 백스터 같은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특히 그런 경향을 아주 짙게 담고 있어요그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았거든요근데 과연 그럴까요심지어 헤르만 리델보스를 비롯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이르기까지 이 산상수훈을 구약과 연결을 해서 명쾌하게 예수로 연결을 해내는 데에 있어서는 좀 미흡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게 오늘 날 보편적 산상수훈의 이해인데 저는 제 방식대로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이 산상수훈을 강해를 해볼 작정입니다우리가 공부할 이 산상수훈은 타 종교인들까지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 할 정도로 아주 보편적이며 인기가 있는 보편적 윤리강령이죠물론 그들의 평가입니다윤리강령이라고 하죠?
 
그리고 서두의 팔복 강화의 부분에 마치 후렴구처럼 따라 나오는 복이라는 단어가 아주 매력적이잖아요그죠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복그래서 타 종교인들까지도 광분하면서 이 산상수훈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거예요그러면 복 받을까봐.
마하트마 간디가 죽는 날까지 제일 열심히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산상수훈이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근데 불교의 법화경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는 걸아십니까아주 비슷해요노자의 도덕경에도 거의 흡사한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만일 우리가 이 산상수훈을 도덕과 윤리혹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강령 정도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과 타 종교인들의 경전과 다른 게 뭐예요?
과연 산상수훈과 타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경전이 목적하고 있는 바가 같은 걸까요그럼 뭐 하러 우리가 꼭 성경을 공부합니까불경도 같이 공부할까요정말 이 산상수훈이 인간들의 자존심과 가치와 유익을 챙겨주는 윤리강령의 나열이나 그러한 윤리강령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선언에 불과한 것이겠습니까아닙디다.
 
여러분이 앞으로 저와 함께 공부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히려오히려 그러한 인간들의 자기 의 쌓기를 부수는 강화에요구약의 의가 신약의 새 언약에 의해서 박살이 나는 것이 바로 이 산상수훈의 현장입니다완전히 반대 이야기예요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을 신약의 산이 (이 산상수훈이 강화되는 산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신약의 산이 구약의 산을 부수다라고 붙인 거예요신약의 산은 바로 이 산상수훈이 부려진 곳을 말하는 거고 구약의 산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율법의 산시내 산을 가리키는 거죠성경은 전체가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율법을 부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늘의 의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내시는 지를 보여주는 게 성경이란 말에요다 이 얘기예요.
 
이 산상수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강화가 어느 에피소드 뒤에 이어지는 지를 눈 여겨 봐야 돼요이 산상수훈이 5장이죠고 앞에 뭐가 있어요? 4. 4장 말미에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부분이 나오죠고기에 붙어 있는 거예요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어떤 오해가 발생하고 예수님이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 붙여주는 게 산상수훈이란 말입니다예수님의 공생애는 병자들이 치유되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화려하게 시작이 돼요그야말로 화려하게그건 단순한 기적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선포였죠?선악과 따 먹은 아담 군상들이 배태하고 출산해 놓은 이런 역사의 실체는 병들고 썩어지고 귀신 들리고 왜곡된 상태지금 이 상태가 바로 그 상탭니다그건 무도 사망이란 것의 가시적 증상이라 그랬어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메시아로 보내셔서 그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병들고 썩어지고 귀신들리고 왜곡된 것들을 새롭게 완성해내시겠다는 완벽한 설계도를 작성하셨어요그게 바로 창세전 언약이죠그 설계도에 의해서 옛 성전즉 구약이 무너지고 은혜를 재료로 한 새로운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 구원인 거고 하나님 나라 건설인 거예요그래서 주님이 당신의 공생애를 사망의 증상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하신 거예요내가 이 일 하러 왔다,를 보여주는 거예요단순히 거기에 목적이 있던 게 아니란 말입니다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란 걸 모형으로 보여주신 거예요예수님이 성취하실 하나님 나라의 본질.
 
그 부분을 (공생애 시작산상수훈 시작 바로 전의 장면한번 보고 가겠습니다.
마 4:23-25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귀신 들린 자간질하는 자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이거 경사난 거 아니에요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쫓아왔는데 다 물리치고 제자 열두 명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사실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거란다하고 다시 설명하신단 말입니다그게 산상수훈이란 말에요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천국복음’ 이란 단어에요천국복음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병과 약한 것을 고쳤다그러죠그러니까 병과 약한 것을 고친 그런 모든 기적 행함이 모두 천국복음에 관한 일이란 말에요.
천국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기 위해 행한 기적이 그건데 뭔가 거기에 모인 허다한 무리들이 오해를 하고 있은 거죠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천국복음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몰려든 거라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기뻐하셔야 돼요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천국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거란 말에요그게 산상수훈이에요. 5장부터 7장 마지막까지. 8장 1절에서 산에서 내려오니까 5장부터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 그래요산에서 내려온 그 이후부턴 산상수훈 아니에요.
 
그런 그 때 예수님께 나아온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과 그분이 가져오신 그 천국하나님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말인 거예요여러분은 어떠세요여러분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고 게세요천국이 왔다면서요하나님 나라가 이미 역사 속에 침노해 들어왔다면서요언제십자가에서그럼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고 계시잖아요행복하시냐구요평안하십니까보세요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오해되고 있는 거예요여러분은 분명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다니까요근데 하나님 나라가 뭔지 모르니까 내가 지금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 거야아냐아닐 거야이리로 자꾸 가는 거예요.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사는 거냐고 물어요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사는 거냐고 물어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침노해 들어와서 그냥 아예 그 자를 장악해버리는 거예요그게 하나님 나라를 사는 거거든요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게 뭔지 분명히 아실 거예요.
 
예수님께서 천국의하나님 나라의 기초와 근간을 다시 설명해주시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이 산상수훈의 맨 마지막이 모래위에 지은 집반석위에 지은 집의 비유 그 기초의 문제로 끝나는 거예요산상수훈의 끝이에요그게그 비유를 끝으로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세요구약을 기초로 한 집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나면 완전히 무너지는 거니까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잘 새겨보라는 거예요근데 누구에게만 가르쳐주세요열두 제자열두 제자는 요한계시록에서 무엇을 상징하는 거지요교회교회에게만 가르쳐주시는 거예요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이나 천국관은 구약 적 패러다임 속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그런 거였어요민족메시아 사상구약 적 민속 메시아사상 속에서의 그리스도는 힘 있고 강하며 일상에 유익하게 관계하고 종말 적 낙원까지 한꺼번에 들고 와야 하는 그런 분이었죠인간들이 원하고 그리는 건 다 갖고 와야 되는 게 메시아였어요그리고 구약 적 패러다임 속의 천국은 자신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그거 우리가 원하는 거 아녜요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원하던 걸 우리가 똑같이 원하고 있다니까요그러면서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심지어 거기에 자기들의 율법적 행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구약의 천국관이요 구원관이었잖아요구원도 인간들이 그려놓은 그림대로 와야 하고 천국도 인간들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져야 돼요이게 민속메시아사상 이었어요.
 
근데 실제로 어떤 분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일으키고 약한 자들의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셔요사람들은 그런 기적 같은 일의 진의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엄청난 힘을 소유한 예수님에게 엉뚱한 천국을 기대하며 몰려들었던 거예요.
나중에는 예수님이 오병이어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도망가시죠똑같이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것을 힘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쫓게 되어 있어요그러나 그거는 잘 못된 메시아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그들의 그런 잘 못된 천국 관과 메시아 관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산상수훈이에요따라서 산상수훈은 도덕적 윤리적 처세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복 받는 비결 또한 더더욱 아닌 거예요인간들의 행위와 자격에 상관없이 이미 완료가 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 백성들을 치고 들어오는 지에 관한 설명이 산상수훈이에요이렇게 산상수훈은 모형과 예표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줬던 그 구약의 산시내 산을 부수는 신약의 산인 거예요이건 제가 추론하는 게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구조와 흐름을 잘 보시면 이 산상수훈이 위치하는 자리가 구약의 어떤 산과 같은 자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예수님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죠그리고는 헤롯의 칼을 피해서 애굽으로 피신하세요성경은 그 사건이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고 하는 구약의 예언 성취라고 합니다마태복음 2장에 나오죠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삶을 그대로 사실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임과 동시에 율법주의와 유대주의로 자신들의 힘과 가치를 숭앙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힘의 세상인 애굽으로 선언해버리는 거예요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가셨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그런단 말에요졸지에 유대주의의 이스라엘에 애굽이 되어버리는 거예요하나님이 그걸 부수는 거예요근데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이 모두 도륙을 당하는 일이 발생해요지금 제가 여기서 끌고 산상수훈까지 갈 거예요그러니까 그 흐름을 보시란 말에요이 산상수훈이 어떤 부분의 모형인지를.
 
2:15-18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으세요하나님이 분명 요셉에게 그 자리를 피하라고 전언을 하셨죠그러면 그 때에 다른 어미들에게도 전달을 보내서 그 자리를 피하게 할 순 없었을까요왜 다른 애들은 다 죽게 놔두세요예수님만 살짝 들어서 애굽으로 보내신단 말입니다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하나님은 성경의 독자들에게 뭔가를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다 죽여 버린 거예요그래서 그 하늘에 뜬 별이 동방박사들을 일부러 헤롯에게 데리고 간 거예요죽이라고아니그 별이 미쳤지바로 그냥 예수님 태어나신 구유로 가시면 될 걸 왜 헤롯에게로 동방박사들을 데리고 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게 하냐고요죽이라는 겁니다여러분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하는 호세아의 예언이 인용된 곳에 라헬의 통곡이라는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주의하여 보셔야 돼요지금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그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 애굽으로 규정해버리시고 그래서 거기서 빼내는 거예요예수님이 첫 번째 엑소더스 (탈출)를 한 다음에 그 뒤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엑소더스를 하는 거예요그런데 그게 정작 뭐였냐면 이스라엘의 유대주의 율법주의였어요그래서 예수님이 거기 와서 죽으시는 거예요애굽은 바로 교회 안에 그러한 율법주의 유대주의의 모형으로 등장했던 거지 애굽이 쳐 죽일 놈들이 아니라니까요그게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옛 자아그 모습이란 말에요.
 
그렇게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애굽으로 규정해버리고 그곳에 사는 모든 자들은 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임을 어린 아이의 죽음으로어린 아이들의 죽음으로 주지시키는 거예요다 죽어야 되는 거라는 거예요애굽이니까두 살 미만의 아이들은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자의에 의해서 내어놓기도 전에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거예요이걸 원죄라고 하는 거예요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할 존재에요죽은 흙이니까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자들이 자라면서는 오죽하겠어요?그러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건 거기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선언이란 말입니다마태는 그걸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이 예레미아의 예언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의 멸망과 관계있는 예언이죠?
라마라는 곳은 남 유대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집결된 곳이에요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죠여호수아 18장에 보면 나오죠그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세사 부근이에요예레미아 선지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했고.남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라헬이 그 무덤 속에서 자기자식들이 끌려가는 걸 보고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는 거예요라헬의 두 아들이 누구죠요셉과 베냐민요셉의 큰 아들은에브라임북 이스라엘의 대표지파가에브라임이죠망했잖아요남 유대는베냐민라마가 또 베냐민의 땅이고요셉과 베냐민두 아들을 다 잃은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라헬을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하는 거예요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다 멸망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모든 인간은 다 죽어야 된다는 뜻이에요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해진 그 자들도 원래 다 죽어야 된단 그런 뜻이에요그렇게 다 죽어야 되는데그래서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죠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밖에 없어요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 이외에 다른 건 절대 위로가 안 돼요근데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예수가 바로 그 죽은 아들을 살리러 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거란 말입니다.
 
한 아기가 와서 죽음에 던져져야 할 하나님의 아이들을 선택하여 살려내는 거예요그걸 구원이라 그래요그렇게 예수는 죽어야 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이 죄악의 세상에서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기 위해 오신 게 아니란 말에요인간들이 원하는 그런 복을 주어서 인간들의 역사 속에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그 예수 이름의 뜻이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백성모든 백성이 아니에요자기백성만 어디에서죄에서그게 메시아란 말에요그렇게 구약 적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폭로한 성경은 역사적 애굽에서 예수님을 다시 불러내시죠예수님께서 출애굽 이스라엘의 여정을 그대로 밟고 계시는 거예요예수님은 애굽에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이게 지금 마태복음의 흐름이에요.
 
근데 실제로 어떤 분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일으키고 약한 자들의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셔요사람들은 그런 기적 같은 일의 진의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엄청난 힘을 소유한 예수님에게 엉뚱한 천국을 기대하며 몰려들었던 거예요.
나중에는 예수님이 오병이어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도망가시죠똑같이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것을 힘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쫓게 되어 있어요그러나 그거는 잘 못된 메시아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그들의 그런 잘 못된 천국 관과 메시아 관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산상수훈이에요따라서 산상수훈은 도덕적 윤리적 처세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복 받는 비결 또한 더더욱 아닌 거예요인간들의 행위와 자격에 상관없이 이미 완료가 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 백성들을 치고 들어오는 지에 관한 설명이 산상수훈이에요이렇게 산상수훈은 모형과 예표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줬던 그 구약의 산시내 산을 부수는 신약의 산인 거예요이건 제가 추론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 산상수훈을 구약의 시내 산이 어떻게 신약에서 회복되고 성취되는가의 측면에서 보아야 되는 거죠신약에서 구약의 시내 산을 다시 그려내고 있는 산이 두 군데 나오는데 그 하나가 이 산상수훈의 산이고 나머지 하나다 변화 산의 산이에요사실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이 산상수훈은 새로운 하늘의 법이 공포가 되고 수여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는 거고 변화 산은그러한 새로운 법이 통치하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모형으로 그려지고 있음과 동시에 두 산에 산상수훈의 산에는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제자가 올라가 있고 변화 산에는 두 증인으로 모형 됐던 교회그 두 증인이 누구예요모세와 엘리야였죠계시록에서 봤잖아요우리가그 모세와 엘리야교회가 예수님과 또 함께 있는 거예요그러나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 거란 말입니다두 증인과 열두 사도는 똑같은 거예요교회란 말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엘리야와 모세로 대표되는 두 증인즉 교회가 그 변화 산 위에 나타나는 건데 이 모세와 엘이야가 어떤 산에 올라갔던 사람이에요모세는 시내 산 엘리야는호렙 산두 산은 같은 산입니다그래서 변화 산 위에 바로 그 시내 산에 올라갔던 두 사람이 올라가는 거예요그러니까 변화 산과 이 산상수훈의 그 산은 구약의 시내 산의 신약 적 성취는 보여주는 그런 산이란 말에요.
 
눅 9: 30-31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
 
여기서 이 별세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엑소더스에요엑소더는 출애굽기의 제목이죠예수님의 엑소더스가 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한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그래서 시내 산에 올라갔던 세분이 그 예수님의 엑소더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그걸 별세라고 하는 거예요그러니까 산상수훈이 전해진 그 산이나 변화 산의 그 산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부수어진 구약의 율법과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하나님 나라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자명한 거예요그래서 변화 산 아래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 드러나는마치 금송아지 사건 같은 그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구약의 시내 산이 갖고 메시지를 잘 정리를 해야 신약의 시내 산인 이 산상수훈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50일 째 되는 날 시내 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시죠그리고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출 19: 5-12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이게 구약의 율법이에요잘 지키면 복 준다이게 시내 산입니다 구약의 시내 산)
7.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8.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
1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11.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이게 셋째 달셋째 달의 이야기예요이스라엘이 유월절 아빕월이죠이스라엘엔 달력이 세 개가 있어요애굽에서 쓰던 민간력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스라엘그 히브리력이 있어요성력이라고 그래요그거를그리고 그들이 로마에 들어가서 썼던 양력이 아빕월첫째 달그 아빕월 유월절이 있는 그 아빕월을 첫째 달로 하라 그러죠그 아빕월 14일이 유월절이잖아요그날 애굽의 장자가 사그리 다 죽고 그날 나온 거죠그러면 한 달을 삼십 일로 쳤을 때 첫째 달에 십칠 일 남죠둘째 달 한 달삼십 일이에요셋째 달 세 번째 날 까지 기다리라 그러죠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시내 산에 임하는 그 날이 며칠 째오십 일째이 때 하나님이 임해서 그들에게 법을 줬더니 삼천 명이 죽죠근데 신약에 그 똑같은 오순절 날에는 똑같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데 베드로가 설교를 했더니 삼천 명이 똑같이 살아나요그 가운데에 뭐가 있었던 거죠십자가가 있었던 거예요그 이야기하는 거예요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취될 신약의 산신약의 새 언약의 성취가 구약의 이 시내 산을 부수는 거란 말입니다요게 산상수훈의 이야기란 말에요.)
 
12.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찌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내면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거라는 약속을 주세요그리고는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그래요아직까지 이스라엘은 언약을 지켜내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 부정함이 거룩에 닿으면 하나님의 돌격으로 죽게 돼요그러니까 못 올라오게 하는 거예요그런데 이스라엘이 이구동성으로 다 지킬 게요지킬 게요그랬다니까요다 지킬 게요걱정하지 마세요그랬어요이게 구약의 시내 산이에요다 지킬 게요걱정하지 마세요상이나 준비해두세요그랬단 말에요.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확인 도장을 딱 찍으세요분명히 니네 그렇게 말했어!
출 24: 6-8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 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라는 게 뭐냐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피를 뿌렸다는 건 너희들 그 약속 안 지키면 다 죽인다다 죽인다지키면 복 주고 하나님 백성 되는 거지만 못 지키면 다 죽어라는 뜻이에요그래서 피를 뿌리는 거예요언약이에요피의 언약근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죠모세가 그 법을 받는 그 시간에 금송아지 만들고 있었어요뒤 돌아서서 바로피 닦기도 전에인감도장에 인주 마르기도 전에 계약을 위반한 거예요어떻게 해야 돼요죽어야 돼요그래서 삼천 명이 거기서 죽습니다다 죽어야 돼요근데 모세가 그 앞을 가로막죠하나님 저 사람들 다 죽이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겁니까?하나님 차라리 내 생명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그래요이게 누구의 모형이에요예수님의 모형이에요그리고는 두 번째 돌 판이 주어지는 거예요그죠그 돌 판이 법궤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두 번째 돌 판이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그 돌 판을 볼 때마다 뭘 생각해야 돼요우리는 벌써 그때 죽었어야 되는데 모세의 중보로 덤으로 산거구나라고 모세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교회도 하나님의 법을 대할 때 이걸 지켜야지하면 구약 사람 되는 거예요나는 벌써 죽었어야 될 잔데이건 못 지키니까벌써 죽었어야 될 잔데 예수님이 가로막고 아버지 차라리 날 죽이세요그래서 내가 산거야이렇게 은혜를 붙들어야 되는 거거든요그런데 오늘 날 그 산상수훈을 가지고 지키겠다그래요그리고 지켜야 하나님 백성다운 사람이라고 그러고 그걸 지켜야 복 받는다 그래요지켜야 하나님 나라 들어간다그래요여러분 이게 청교도 신앙이었어요조심하세요산상수훈은 그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엄밀히 말해서 구약의 옛 성전은 그 자체 안에 자체 부정과 자체 충돌을 내포하고 있는 거예요.
 
성전이라는 것 자체가 율법의 표상이죠물론 그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다 못 지켰을 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준 거예요그러나 그 안에서 율법의 규례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그 제사는 무효예요그러니까 그것 또한 율법이란 말에요그런데 그 율법의 표상인 성전 안에 지성소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인간들의 그 죄가 십계명 돌 판으로 들어가 있고 그것이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염소 피로 덮임으로 말미암아 용서가 되는 은혜의 현실이 그 안에 숨어 있단 말에요그러니까 이그 지성소가 나중에는 이 성전 전체를 먹어버리는 거예요그래서 나중에 그 요한계시록에 가면은 이 성전을 측량하는데 정사각형이 되는 거예요성전 안에서 정사각형은 지성소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구약의 성전은 그 자체로 어떤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어요지성소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한 거에요그 지성소가 뭐냐면 신약의 새 언약이라니까요.
 
예수의 피제물의 피에 의해 인간들의 죄가 그냥 거저 덮이는 것그 은혜가 바로 이 율법의 성전을 부술 것이다이것이 구약의 성전이 담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실제로 신약에 와서 그 성전은 부서지는 거란 말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그 두 번째 돌 판을 볼 때마다 나는 벌써 죽어야 할 사람인데 모세의 중보로 살아난 자라는 자기부인의 고백을 해야 됐어요.
따라서 우리도 성경의 법을 대할 때하라하지 마라의 그런 명령을 대할 때 먼저 머리 싸매고 지켜야지로 가기보다 지키지 말라는 거 아녜요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그걸 지켜야 되겠다라는 지향성을 갖게 만들어요그러나 이걸 먼저 지켜야 되겠다는 그 의지를 발동하는 게 아니라 나는 벌써 이 법 때문에 죽었어야 할 자인데 예수 때문에 산자라는 그 은혜의 현실을 먼저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성전의 의미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또 다시 출애굽기 19장의 그 허탄한 맹세를 하고 있었던 게 구약의 이스라엘이었어요다 지킬 게요다 지킬 게요그러다가 다 죽을 뻔했잖아요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어땠어요다 지키고 있어요그랬다구요.
지금은 어때요그거 잘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이에요또 이러고 있잖아요계속해서 에덴의 아담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그러니까 뭐 언행일치니 뭐니 이런 소리들 하고 있는 거죠왜 훌륭한 신앙인이 언행일치가 안 돼그게 돼야 되는데그게 된다고 우기는 게 바리새인이었다니까요그래놓고 굉장히 건강한 신앙인이라고 착각 하는 거예요.
 
이 역사는 그러한 아담들의 하나님처럼의 그 행위가 즉 구약이 부인되고 깨지는 곳이에요그래서 미가서에 보면요 한 산이 부수어지고 다른 산이 새롭게 서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미가서 3장 9절 보세요.
 
미 3:9-12
 
9.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10.시온을 피로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여기가 성전이 있는 곳이에요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성전율법의 모형인 성전이 서있는 그곳을 산이라고 그러죠이 시내 산이란 말에요그거 다 부수어질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래서 시온과 예루살렘이 등장하는 거거든요구약의 산율법의 산은 부수어질 거래요그런데 똑같이 그런 산이 다시 등장할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 다음 장으로 가보세요.
 
4: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옛날엔 어땠어요그리로 몰려가면 다 죽어요그런데 민족들이 새로 세워지는 그 산에는 올라간대요예전의 그 시온 산이 무너진 그곳에 선 그 산이에요근데그 산에는 몰려 올라간다는 거예요그래서 오늘 산상수훈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는 열두 사도가 그 예수가 이끄는 산으로 올라가는 거예요아무런 제지 없이이 마가서의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거라니까요)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보세요이스라엘 정도가 아니라 많은 이방이 함께 산에 올라간대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산과 성전을 같은 것으로 보죠동격으로 묘사를 한다고요)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도를 전하고 있잖아요산상수훈에서이 이야기하는 거예요구약의 율법은 그들을 죽이는 율법이었는데 지금 새로 선 그 산에서 나온 율법이 이들을 지금 살려내고 있는 거죠새로운 법이에요그건요)
3.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이 내용은 이사야서 2장 1-4까지 똑같이 기록돼 있어요두 선지자가 똑같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이 부분은얼마나 중요한지잘 보시면 여호와의 전과 여호와의 산이 다른 산들의 꼭대기에 선다그래요다른 산들이 부정되고 이 새로운 산이 그들을 점령하는 거예요그리고 이스라엘도 아닌 많은 이방이 그 산즉 성전에 올라가서새 성전이죠하나님이 주시는 도를 받아 그 길로 행하게 되는 거예요산상수훈에서는 어떤 성전이 있었어요예수라는 성전사흘 만에 내가 다시 지을 거야그건 예수님의 성전 됨을 이야기하는 거라 그랬잖아요똑같은 이야기잖아요그런데 이미 부수어진 그 불법의 산여호와의 말씀의 산시내 산이 다시 나타나서 또 다시 율법과 여호와의 말씀이 전해지게 된다는 거예요물론 그 율법과 말씀은 이미 부수어진 구약의 산옛 성전에서 전해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 되겠죠그게 바로 산상수훈의 내용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에는 근처에만 가도 다 돌격해 죽이시던 하나님이 그 말일의 산그 말일의 성전에서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도를 가르치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거예요옛날 구약 시대 같으면 지금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떨어지면 여러분은 다 죽어야 돼요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어요제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말게 해주오모세에게 부탁했잖아요그런데 여러분은 듣고 있다니까요바로 이 현실을 열두 제가가 예수님과 함께 표현해내고 있는 거예요.
 
이건 바벨탑이라는 옛 성전을 부수시고 그 자리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지으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도 나타난 거고 똑같은 이야기에요느브갓네살의 그 금 신상이게 힘의 원리 속에서의 그 용사들을 상징하는 거죠세상의 용사들그 금 신상이 다른 산에서 뜨인 돌뜨인 돌이 둥둥 떠 있는 돌이 아니라 산에서 삽으로 이렇게 뜨여진 돌이라는 뜻이에요다른 산에서 뜨여진 어떤 돌에 의해 박살이 나는 거죠그 이야기예요요 산상수훈의 그 산 위에 있는 뜨인 예수라는 돌이 구약의 그 시내 산그 산을 박살을 내버리는 거예요그 이야기란 말입니다산상수훈은바로 이 새로운 산 율법의 산이 무너진 곳에 새로운 산새로 선 산새로 선 새 성전의 모습이 산상수훈의 산 인거예요그리고 그 새로운 산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하늘의 법과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산상수훈의 내용인 거고요물론 그런 구약의 산과 신약의 산 사이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거예요그죠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바로 요 산상수훈의 요 현실을 구약의 시내 산과 비료해서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한번 보세요.
 
히 12:18-24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19.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여기가 어느 산이에요시내 산이잖아요첫 번째 율법이 전해졌던근데 지금 교회에게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 그래요너희는 그 산에 당도한 거 아니다그러죠율법 지킬 게요해서 다 맞아 죽는 그런 산 아니란 말입니다어떤 산?)
20.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그 보이는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지금 미가서의 그 산이에요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미가서의 그 단어들이 그대로 다 등장하죠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바로 이 산 인거예요근데 그 산을 가리켜서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그리고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라 그러잖아요그러니까 산상수훈의 이 산은 예수에 의해 성취된 새 언약의 산이며 어린 양 예수의 뿌린 피로 말미암게 된 은혜의 산 인거예요그래서 너희들은 이제 그곳에서 율법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돌격으로부터 해방이 된 자들이 된 거야이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선포되어지는 곳이 산상수훈의 산이란 말이에요시내 산그 율법의 산은 모세도 못 들어가던 산이에요여기 나오잖아요모세도 두려워했다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서 많은 이방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산이 섰단 말에요그게 산상수훈이란 말입니다그 입구에 뭐가 서있다고요예수의 십자가가 서있는 거예요그런데 그런 산상수훈을 지금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이나 윤이라 행동강령으로 해석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완전히 거꾸로 구약으로 돌아가자는 거죠근데 여러분이 존경하는 그분들이 그렇게 해석을 했다니까요그리고 그게 옳다 그래요이 설교가 나가면 또 아마 난리들 칠거예요그건 성경 전체의 맥을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상수훈은 다른 종교인들까지 쫓기를 원하는 기독교 윤리나 실천 강령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하나님 나라가 이 역사 속에서 성도를 어떻게 구별하여 드러내시고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명쾌한 선포인 거예요본문 2절을 보면 입을 열어 가라사대라는 어구가 나오죠이거 마태가 일부러 끼워 넣은 거예요그럼 입을 열어 가라사대지 뭐 코를 열어 가라사댑니까그럼 왜 굳이 이 단어를 썼을까요구약에서 하나님의 법이 떨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입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오죠여기서 마태가 지금 예수를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거예요그런데 구약에서는 그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죄인들이 죽었어요벌벌 떨었다니까요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데 제자들이 턱을 궤고 이렇게 듣고 있는 거예요재미나게요게 신약인 겁니다어떻게 그렇게 됐다고요어린 양의 피 때문에고게 중점이라니까요산상수훈의 핵심은 어린 양의 피란 말입니다우리가 지켜내야 할 행동강령이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지금 그 자체가 뭔가 해결되어 있는 모습이잖아요하나님이 입을 열어 가라사대 뭔가 말씀을 하시고 하늘의 도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 아무런 제지나 방해 없이 그걸 듣고 있어요즐겁게그게 지금 뭔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그게 어린 양의 피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산상수훈은 예수님에 의해 이미 완료가 된 하나님 나라의 기초와 근간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 그건 너희들의 행위가 아니라는 거예요그래서 마지막에 기초로 끝나는 거라 그랬어요. 7장 마지막이모래위에 세운 집반석 위에 세운 집그렇게 기초와 근간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 구약의 율법을 부수며 새 언약의 성취를 확고하게 세우는 그런 내용이란 말입니다산상수훈의 맨 앞부분과 맨 뒤 부분을 샌드위치 빵처럼 감싸고 있는 게 뭔지 아세요감싸고 있는 단어천국이에요하나님 나라바로 그 앞에서는 천국복음을 전했는데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고 그랬다,하고 천국이 나오는데 그 천국이 오해되니까 하나님이 천국을 다시 설명해주는 거예요그래서 시작이 천국이고 마지막이 천국이에요.
 
5:3, 7:21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북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7: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니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잖아요이건 하나의 질문이에요그건 제가 풀어드릴게요조금 이따가천국은 대접을 받고자 해서 먼저 남을 대접한 예수에 의해 완료가 되어서 이미 교회에게 주어진 곳이라는 거예요그게 7장 서두에 나오죠너희들이 대접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해주라여러분 이건 불경에도 나오는 얘기예요니들이 대접받으려면 먼저 남 대접해줘라여러분 이건 도덕책에도 나올 걸요아마그 이야기겠어요아니요예수님이 대접받기 위해 우리를 먼저 대접한 게 십자가거든요그런데 어떤 대접 받기 원했어요예수님이 왕이네요당신이 구원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네요라는 그 대접믿음그 대접 받기 위해 예수가 대접하여 이룬 게 하나님 나라다,를 설명해주는 거란 말에요.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아닌 인간들의 선악구조로 행하는 자들은 절대 못 들어간다이게 산상수훈의 요지란 말에요. 7장의 결론 부분을 보시면 인간의 선악구조의 판단에 의해서 열심을 부린 사람들이 지옥 문 앞에 서서 막 항의하는 장면이 나오죠볼게요.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이거 나쁜 일입니까주의 이름으로 목사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주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는데 왜 예수님이 나는 니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그러냐고요지금 이게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인데 산상수훈이 붙어 있는 부분이 똑같은 부분이었죠예수님이 병고치고 예수님이 귀신 쫓아내고 그런 일 했잖아요근데 거기에는 진의가 숨어 있던 건데 사람들이 그걸 이게 진짜 하나님 나라로구나 하고 표피적으로 이해를 했잖아요오해죠그걸 그대로 갖고 와서 이게 하나님 나라겠거니 하고 이 세상에서 그대로 행한 거란 말입니다착하게 산거예요귀신 쫓아내주면서 다른 사람들 위해서 이 한 몸 불살라 산거라니까요그런데 그렇게 하여 하나님 나라 들어간다고 생각한 그게 죄란 말입니다그 행위가 잘 못된 게 아니라 이걸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이게 바로 지옥 갈 일이라고 보여준 거란 말입니다이게요그래서 앞뒤가 이렇게 인클루지오 구조로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고 이렇게 붙어 있는 거예요샌드위치 빵처럼그러니까 산상수훈은 적어도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니까요구약 식으로표피적으로만문자적으로만.)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중에서도 팔복은오늘 우리가 읽은 팔복은 완료된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은 이들의 이 역사 속 현실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팔복은요 전부 마카리오의 호이로 시작이 돼요그건 감탄문의 형식이거든요. ‘복 있는 자여!’ 라고 선언하는 거예요뭐 뭐 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니가 아니라 복 있는 자여복 받은 자여 너희는 이렇게 될 꺼야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너희의 현실은 이거야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에베소서 1장에선 뭐라 그래요하나님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너희들에게 복 주셨다그러죠복 주시되과거시제거든요복을 이미 받았단 말에요그러면 복을 받기 위해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게 옳아요아니면 복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게 될 것이다이렇게 보는 게 옳아요복을 받았다면서요그런데 무슨 복을 또 받아요뭘 해서 복을 또 받냐고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우리에게 신령한 복으로 복 다 주셨다는데산상수훈은 지켜서 복 받는 비결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떠한 모양으로 만들어 가실 것인지에 대해서 선포해주시는 거예요그게 팔복이에요안 그러면 탈락한다아니요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라니까요안 그러면 탈락한다가 아니라.
 
그런데 복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죠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의 개념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구약 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요부자 되는 게 복이고 애통이 없는 삶을 사는 게 복이고 핍박을 할지언정 핍박을 당하는 자리에는 서지 않는 게 복이야우리가 원하는 복 아니에요그런데 여기서는 복 있는 자여 너희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될 거고 긍휼히 여기게 될 거고 마음이 청결하게 될 거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될 거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예수로 인해 욕먹고 핍박을 당하고 거짓으로 모함을 당하는 자이게 너희의 복이다복의 현실이다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완전히 다르잖아요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그러면부자는 복이 있나니 이 세상이 저희 것임이요죠바꾸어 말하면그럼 뭐예요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부자라는 건 단순히 돈이 많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와 영광을 챙겨서 인간의 자존심을 챙겨갖는 그 부자그들의 영역은 세상이다라는 거예요지옥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인거예요그러니까 구약의 복의 개념과 신약의 복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요구약의 복음 실제로 그런 거였어요왜냐하면 복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가장 좋은 거라고 여기는 것으로 복을 설명했단 말입니다그러나 복의 실체가 온 이후에 신약 어디에 복 받은 자는 이렇게 부자로 살 거고 자식들 많이 낳을 거고 땅이 많이 생길 거고 이런 얘기가 어딨어요오히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본이다이렇게 초를 치잖아요근데 그게 복이라잖아요그건 안 사랑하게 되는 게 복이라잖아요그러면 여러분이 친구나 사랑하는 이웃의 개업식에 갈 때 뭘 들고 가야 돼요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이걸 들고 가야 돼요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본이니이걸 들고 가야 돼요후자를 들고 가야 되잖아요그런데 왜 이걸 안 들고 가냐고요여러분도 그게 복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삶을 일차적으로 누가 살다 가셨어요예수님이 그렇게 살다 가셨죠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이 역사 속에서 누구의 삶에 연합이 된단 말이죠예수의 삶에 연합이 된단 뜻이에요예수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여 살게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예수의 삶이 어떤 삶이었어요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이었잖아요그 자기부인과 십자가로 밀고 내려갈 때 남들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고 아무리 남들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내가 워낙 그런 존잰데 뭐나중에 소금 멕인 배추처럼 흐물흐물 해져가지고 온유해지는 거죠.
 
여기에서 동사의 시제를 보면 3절과 10절에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는 현재형이에요그런데 나머지는 전부 미래시젭니다그러니까 천국은 누구죠하나님 나라죠천국은 하나님 나란데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라고 그러잖아요새 성전성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까그러니까 천국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천국이 임한 거죠지금천국은 너희 것이다라고 지금 현재로 이야기하는데 이 천국에 의해 관계를 맺게 되는천국에 의해 침공당한 그 자는 이렇게 살게 될 거야이거는 어느 시점에 이렇게 완료가 되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미래의 어떤 점을 향하여 지향되어지는 거라는 뜻이에요그래서 죽는 날까지 이렇게 밀려간단 뜻이에요여러분이요근데 이 삶이 쉽냐고요어렵죠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여러분이 이렇게 힘든 거예요내가 무슨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어요이렇게 불행한데이렇게 늘 우울한데외로운데그게 하나님 나라예요.내가 지금 부정되고 있고 부인되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힘이 드는 거예요그래서 마치 내가 기대하고 내가 그려놓은 그 하나님이 나한테 안 왔는줄 아는 거예요그거 하나님 나라 아니거든요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역사 속에서는 그 하나님 나라를 절대 경험할 수 없어요여러분이 그려놓은 그 하나님 나라는그건 불교의 극락이라니까요.
 
하나님 나라가 뭐예요바실레이아통치죠그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행되어지는 곳이 하나님 나라예요예수님의 삶이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다스린 삶이었죠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 나라라고 한 거예요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의 현실모든 존재의 현실 어떻게 되어야 돼요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없음이라는 존재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그게 하나님 나라란 말입니다따라서 이 역사 속에서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처럼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가통치가 임해버리면 그건 항상 반드시 충돌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나는 하나님처럼 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나를 죽여 버리려고하나님 나라가 왔으니까그래서 힘든 거예요어려운 거란 말입니다.
 
겸손이라는 게 뭔지 아세요여러분많이 가진 자가뭐 멋지게 성화된 자가 그리고 많이 배운 자가 마치 없는 사람처럼못 배운 사람처럼 이렇게 겸양을 떠는 게 겸손이 아니라겸손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의 원뜻은 하나님 앞에 서다란 뜻이에요그게 겸손이에요그러니까 엉뚱한 겸손 떨려고 하지 마세요겸손은 모든 존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엄청난 권세와 그 영광 앞에서 깨갱하고 나는 죽은 자네요이 상태가 된 걸 겸손이라고 해요그게 하나님 나라의 존재양식이란 말입니다그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에게 이 역사 속에 임했을 때 지금 여러분이 그 자리로 밀려가야 되잖아요고게 지금 팔복에서 나오는 내용들이란 말입니다그걸 행해야 복받는다가 아니라니까요여러분은 그리로 밀려내려 가는 거예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팔복의 내용은 전부 인간의 육적 자아가존재성과 주체성이 점점 부인되어지고 부정되었을 때에만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에요그것 말고 더 좋은 인간의 덕목들 많잖아요왜 그거만 해야 돼요인간의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그런 대표적인 것들 몇 개만 적어놓은 거예요이거만 하고 딴 건 안 해도 된다이건 아니라니까요.
 
사도바울이 그러한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의 침공으로 인한 이 자체 충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어요.
 
롬 7: 21-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근데 어떻게 된 게 이 구약의 법이 자꾸 이겨요그 때에 신자에게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구나나는 죽은 자구나 절대로 내 힘으로 뭔가 이루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구나내가 어떻게 법을 지켜그랬을 때에 어디로 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 그러잖아요그리로 가는 거예요요 이야기하는 거예요여러분은 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가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미 이 법 때문에 죽어야 할 잔데 예수님이 중보자로 서서 내가 산거야이리로 가야 돼요그 때에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이 요만큼씩요만큼씩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무슨 언행일치는 얼어 죽을 언행일치에요됩니까그게그래서 내가 말을 안 하는 거예요행동이 따라주질 않아요.
여러분 한번 솔직하게 얘기해보자구요정말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그런 천국이 여러분이 원하시는 천국 맞습니까오른 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즐겁게 대 주는 것이 천국이라는데 여러분 그런 데에 가고 싶으세요진짜로오른 손 잡이가 오른 편 뺨을 때리려면 손 등으로 때리는 거거든요그건 모욕이에요아프라고 때리는 게 아니라근데 그 상태에서 왼편 뺨 한 대 더 때려서 마음을 더 풀어이게 돼요ㅎㅎㅎ.
그런 천국 가고 싶으세요가끔은 할 수 있죠그러면 내가 상 줄게그러면 이를 악물어서천국이 그렇게 벼르는 곳입니까오리를 가자 그랬을 때 십리를 함께 가줘야 되는 그런 천국에 가고 싶으세요이거 뭐예요이건 우리가 원하는 천국 아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곳이에요하나님 나라의 존재 양식 자체가 나를 비우고 털어서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가 천국 맞아요근데 우리는 솔직히 안 가고 싶잖아요저도 안 가고 싶어요여기요왜 이렇게 바보 같이 살아야 되냐고요이건 우리가 원하는 천국이 아니라니까요그러니까 우리는 도저히 이 법을 지켜낼 수가 없어요이 육신을 갖고 있는 이상하나님처럼을 지향하고 있는 이 육신을 갖고 있는 이상 도저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지켜내야 할 그 법을 다 지켜낼 수 없다니까요안 가고 싶단 말입니다그 때 어떻게 돼야 돼요천국이 나를 뚫고 들어와야 돼요장악해야 돼요그래서 역사 속에서 죽여야 된다니까요그게 신앙생활이란 말입니다그걸 설명하는 게 산상수훈의 팔복이에요.
 
여러분 이 세상 속에서 여러분이 기대하는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그러니까 자꾸 우울해지는 거예요그런 하나님 나라는 없어요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환한 빛이 나를 비추며 비둘기 다섯 마리가 저기서 푸득 거리면서 내려와서 아침 식사를 대령해주고 그런 천국 없어요이 땅에서 그런 천국이 체감되어질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접촉점을 형성한 그 잠깐 동안에 그 순간에 소망으로 내가 잠깐 당겨서 얻을 수 있는 그 기쁨 밖에 없어요나머지는 전부 이 육이 그 하나님의 법과 충돌을 하여 내 속에서 전쟁밖에 안 일어나요그러니까 수시로 내가 구원받은 자 맞나이런 고민에 휩싸이게 돼요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에이삶이 그러니까 자꾸 그런 의심이 들지언행일치를 해봐라 왜 그런 마음이 드나고것들이 마귀예요여러분은 그런 고민을 하셔야 돼요그래서 저는 가끔 우리 교인들이 그런 질문 하면서 눈물지을 때 아주 기특해요그리고 참잘 가고 있구나정말이에요여러분은 그런 고민 하여야 돼요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도덕과 윤리를 실천해서 다른 종교인들 보다 더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요그래서 언행일치니 뭐니 하면서 인간들의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의 영적 성숙도를 진단하곤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설 자리가 어딥니까인간들이 자신들의 선악 구조로 판단하고 정의한 착함과 악함이 정말 모두 참인 명제가 맞아요여러분 성탄절 날 크리스마스 때 선물 못 받는 애들은 누구죠다른 건 다 몰라도 우는 애들은 못 받는대요그죠울면 안 돼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거기에서 우는 건 악 이죠그러니까 선물 안 준다잖아요상 안 준다잖아요울지 않는 게 선이죠근데 아이들이 우는 게 진짜 악입니까그건 아이들의 의사표현이에요의사전달 방법인데 내 의사전달 능력이 미력할 때 처절하게 절규하는 게 울음이라고요근데 우는 애들에게 선물 안 준다는 건 누가 결정한 거죠어른들이 아이가 울면 귀찮거든싫다고요그러니까 이 이기적인 어른들의 선악구조가 우는 건 악 이라고 요렇게 해놓은 거죠그래서 울면 선물 못 받는 걸로 알아요이 노래를 부르고 자란 아이들은인간의 도덕과 윤리와 사회법이라는 건 전부 그렇게 인간들의 자기정당화를 위한 합리와의 수단일 뿐이에요근데 그거 몇 가지를 정해놓고 그걸 잘 하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건 아직 유치원 수준도 못 올라간 거예요막대사탕 쪽쪽 빨면서 울면 안 돼’. 이러고 앉아 있는 거예요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지금 도덕이나 윤리나 사회법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그걸 잘 지키고 수행하는 게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그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것일 뿐입니다그건 아니잖아요주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 이라는 건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그랬죠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도 하고 뭐 여러 가지 능력 행했는데 왜 날 모른다고 하십니까그랬더니 날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그러죠그걸 예수님이 나중에 진짜 성전을 박살내시면서 똑같이 이야기를 하셨어요거기서그게 뭔지지금 여기서 모형 적으로 구약의 성전이구약의 산이 신약의 성전예수에 의해 신약의 산에 의해 박살나는 것으로 그려진 게 산상수훈이라면 진짜 옛 성전이 박살이 나면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이야기해주신다니까요보세요.
 
마 21:28-32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성전을 막 뒤집어엎으시자 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갖고 당신 무슨 권세로 그런 일 하냐고 막 따졌어요그 때 예수님이 대답을 안 해주세요너희는 세례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건지땅으로부터 온 건지 아니대답 좀 해봐대답 안 하죠그럼 나도 대답 안 할 거야그리고선 이 이야기해주시는 거예요첫째 아들은 바리새인들이에요그죠하겠습니다라고 한 자들은 결국 아무것도 안 하더라는 거예요안 한 게 된 거라는 거예요되더라는 거예요아버지 앞에서그런데 안 하겠습니다세리 창녀처럼 그랬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더니 그들이 뭘 한 게 아니라 예수를 믿었다고요그랬더니 그들을 둘째 아들에게 확 집어넣어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다그래요그죠그래놓고는 그들이 세리와 창기이고 그들이 예수를 믿었다라고 한다고요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거지 그 주여주여 했던 그 사람들처럼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왜 나를 천국에 안 넣어주세요이는 아니다하고 설명해주는 거란 말입니다그래서 주의 뜻대로 행한 자가 누구냐그러는 거예요둘째다 그러는 거죠뉘우치고 갔다라는 게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뜻이란 말입니다그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거예요.
 
여러분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주시면서 금지명령을 내렸는지 아세요선악과 먹지 말라가 율법이죠구약의 산이죠이게요그리고 생명과는허용이죠먹어도 돼그러니까 금지명령과 허용명령이 떨어지는 거예요율법과 은혜가 선악과와 생명나무로 제시가 되는 거죠그런데요 존재라는 건 금지명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이런 존재는 금지명령을 받게 되면 명령한 자와 명령을 받은 자를 구별해내고요 별도의 주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품게 돼요나는 명령을 받았고 저 존재는 나에게 명령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구별이 일어나죠그리고는 내 존재성을 챙기려고 하는 그 욕구가 어떻게 표출이 되죠위반으로 표출이 되는 거예요내 존재성을 챙기기 위해서는 내가 저에게 굴복하면 안 되잖아요그죠그 위반이에요근데 그렇게 위반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벌이 떨어지는데 그 벌이 뭐냐면 정녕 죽으리라에요 사망이란 말입니다.
 
재밌는 거는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가장 보기 쉬운 곳에 배치를 했고 아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만들어 놨어요뭐하라는 거예요따먹으라는 거예요먹고 정녕 죽음이 뭔지를 경험하라는 거예요그게 여러분의 인생이에요 계속 매일같이 열두 개씩 따먹고 있잖아요선악과그거 먹으면서 여러분이 고통스러워야 된다니까요이런 식으로 이렇게 살아야 되나진짜이렇게 살려면 확 죽고 싶다일이 안 돼서가 아니라 이 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게 되면 고통스러운 거예요그게 정녕 죽음이에요한번 니가 내 앞에서 별도의 나를 한번 챙겨봐별도의 너를 한번 챙겨 가져봐라그 때 정녕 죽음이 뭔지를 알게 될 거야.
 
그때 너에게 허용되었던은혜로 허용되었던너라는 존재를 별도로 챙겨가지지 않을 수 있는 그 허용되었던 생명나무 실과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그건 그냥 덥석 먹으면 되는 거예요은혜로뭘 해서뭘 해갖고 그 다리를 놓아가는 게 아니라근데 이것들이 그 자기의 존재의 그 주체성을 챙기려고 하다보니까 나라는 존재를 별도로 확립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이 위반이라는 걸 통해서 나를나의 가치를 챙기려고 하는 거예요이게 죽음이라니까요이 나의 가치를 챙기려고 하는 시도를 얼른 버리고 쪽 팔리더라도 주는 걸 그냥 먹는 거예요그걸 구원이라고 한단 말입니다그 때에 어나는 이거 내가 내 존재를 별도로 구축하여 챙겨가지려고 하면 죽는 거구나라고 했을 때 그 때 생명나무 실과에 그 위대함이 나에게 자각이 되고 그들에게 생명나무 실과가 뚫고 들어가는 거예요부수고구약을 부수고 들어가는 거란 말입니다생명나무가.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생명나무만 있는 거예요선악과는 없고구약은 부수어지는 거니까그게 산상수훈이에요그런데 산상수훈을 이거 지켜라저거 지켜라그럼 복 줄게안 되도 오른편 뺨 때리면 왼편 뺨 대줘그렇게 연습하면은 나중엔 된단다되긴 뭐가 돼요어금니 다 빠져요그렇게 벼르고 벼르다가 막 꿈속에서 그냥 난도질하고그게 뭐냐고요하나님이 그 정도의 선을 우리에게 원하시겠어요복음은 그게 아니에요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게된 자들이 이 세상에서 별도의 자아를 주체로 확보하려고 하는 한은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를 공격당해서 결국 자기부인의 자리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애통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로 끌려 내려가게 되는 거예요그게 산상수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