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신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시하시고 설명하시지만, 특별히 삶을 통해 깨달아 알게 하시는 부분이 제일 큰 것 같습니다.
아니, 절대적인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을 통해 배워도 그것이 삶에서 살아져야 이해가 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그 지식은 단지 썩은 볏짚을 쌓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 복음을 가리켜 삶을 해석하는 말씀이라고도 하잖아요?
지식만 잔뜩 쌓아 놓고 자랑하는 건 창고를 늘릴 생각만 하고 있는 부자와 같아요.
곳간에 무엇을 들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 자기가 쌓아 둔 곡식만 보며 즐거워하는 부자요.
말씀을 배울 때에는 그 깨달음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아하! 그렇구나!'
'아하! 다나토스의 죽음이 그런 거구나!'
신나게 무릎을 치며 기뻐합니다.
입에 얼마나 단지 몰라요.
정말 꿀처럼 달고, 막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그게 곳간에 쌓는 거예요.
그런데 그 복음이 내 삶에서 살아질 때에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만 나오지요?
배에서 얼마나 쓴지 몰라요.
뱉어버리고 싶지만 뱉어지지도 않아요.
억지로 삼켜야 합니다.
"먹어버리라!" 고 명령하고 계시니까 그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아니, 먹는다기 보다는 말씀이 들어오셔서 나를 장악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자처럼 죽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말씀을 먹는 사람은 많지요?
그런데 그 말씀에 장악 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주 소수의 어떤 무리만이 말씀에 의해 장악 당해요.
묵시 속에서 이미 완료된 아들들이요.
그렇게 말씀에 장악 당한 자가 다나토스의 죽음을 죽고 '말씀' 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그 말씀은 그들의 입을 통해 예언으로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걸 성경이 요한계시록 10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어요.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예언이란 '장래 일을 미리 알아 말하는 것' 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진리로 해석되어진 말씀' 을 가리키지요?
해석되어진 그 말씀이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예언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
지식으로 배워서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그 말씀은 예언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배를 불리는 떡이며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나 스스로 '살아' 낼 수 있나요?
그게 불가능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살아주시는 것이고 그래서 성도의 삶은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입니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힘이 든데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아직도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육체가 천 년을 산다고 그 마음을 이해하겠습니까?
날을 감해주셨기 망정이지 이해할 때까지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해"
주신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징글징글 하기만 하던 삶이,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버리고 싶었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것이 나의 삶임을 이제 알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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