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34.골방, 닫힌 문, 중언부언

Hebrew 2023. 5. 20. 22:20

산상수훈 34번 말씀

제목 골방닫힌 문중언부언

본문 마 6:6-8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리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 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지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신다그러니까 구하라는 거예요말라는 거예요그런 말 아니겠죠그죠그 중언부언이란 말이 여기에 나오는데 그 중언부언(重言復言)이란 한자어를 직역을 하면 무거울 중이게 인제 짐을 지우다이런 뜻도 있으니까무거운 짐을 지우는 언말씀 언이니까그런 말을 그 부자가 회복하다부활할 때 쓰는 말이잖아요그러니까 회복의 말로 하는 것무거운 짐을 지우는 말을 회복의 말로 하는 것이걸 중언부언이라고 해요직역을 하면그럼 그건 해야 되는 거죠중언부언은물론 사전적 의미는 한 말을 계속해서 이제 반복하는 거 그런 걸 가리킵니다만그냥 한자의 의미 값만으로 풀어보면 그러하더라는 거예요중언부언.

 

우리가 어떤 안경을 쓰고 문자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해석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제가 말씀을 드리는 거죠중언부언이라는 건 한 말 또 하고한 말 또 하고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그런 말이 아니에요 사실은여러분 기도할 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러지 뭐 한 말은 절대로 안 합니까통성 기도할 때 이렇게 잘 들어보면 은 뒤에 있는 사람들 보면 그냥 한 말 또 하고한 말 또 하고 밤새도록 말이죠잠깐 졸다가 또 깨가지고 깜짝 놀라서 또 똑같은 말 하고 보통 그렇게 하잖아요새벽기도 같은데 가서 보면은특히 목사님들 제일 늦게 나가야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목사님들은 대부분 주무세요요 앞에서그리고 누가 나갔나안 나갔나이렇게 보고 다 나갔으면 이제 일어나갖고 집에 가서 푹 자죠그렇게 한 말 또 하고한 말 또 하고그런 거 하지 말아라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깃 중언부언이라고 해석이 된 그 단어 바톨로게오’ 라는 단언데 스트롱 사전을 보시면 말을 더듬다지루하게 재잘거리다 공연히 반복하다 이렇게 사용되는 단어가 맞아요그러나 그 단어의 원의를 이렇게 하나하나 추적해 올라가보면 그 말도 역시 진리로 해석되지 못한 비 진리의 그 엉뚱한 말그게 바톨로게오에요사실은요그걸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린 지난주에 우리가 기도할 때프로슈코마이기도할 때 하나님의 원함을 내 원함으로 깨달아 내 그것이 내 원함이 되고 또 그 내용을 이렇게 흘려주는 그 전체를 푸로슈코마이라고 한다그랬죠이렇게 우리가 기도할 때 그런 엉터리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을 주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어떻게 들었죠그것은 성전 귀퉁이큰길가모퉁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성전 마당 귀퉁이라고 했죠성전 마당 귀퉁이에서 그 눈에 보이는 것 안에 갇힌 그런 내용을 주절거리는 그런 저급한 자리에서 벗어나서 그 은밀한 하나님의 비밀이 숨어있는 성전의 골방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서 그 문을 닫는 거였죠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라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한자 용어로 표현해보면 이 보이는 현상계와 그 현상계 수준에서 이해되어지고 해석 되어진 그 말씀여러분말씀 그러니까 그냥 성경만을 생각하지 마시고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 전체가 다 그냥 말씀이에요그리고 이것이 성경이에요이거 전체를 그냥 성경이 이렇게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냥 말씀이에요성경인데 그것이 그냥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여 지고 이해되어지면 그걸 차안(此岸)의 세계라 그러죠그리고 그걸 진리로 깨달아 그 내면을 보게 되면 그걸 피안(彼岸)의 세계라 그래요.그러죠그 보이는 현상계를 차안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보이지 않는 그 내용을 피안이라고 그래요그래서 우리는 피안의 세계를 바라봐야 되는 거잖아요근데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 뿐만이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를 그 차안의 차원그 수준에서 그냥 봐버리면 그냥 그걸 죄라 그래요그러니까 여러분이 죄에 대한 그런 개념이나 관념부터 다시 정의를 하여야 돼요.

 

성경이 말하는 죄는 진짜 죽은 죄 멸망할 되는 그 하나님의 진의를 못 알아보고 인간들이 이 보이는 현상계 속에서 자기들을 에너지 삼아자기의 몸을 불태워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고 그리고 그냥 그렇게 이해해버리고 거기에 머물러버리는 거그게 하마르티아과녁에서 벗어난 거란 말에요그러니까 하마르티아라는 게 메로스에다가 하 라는 부정어가 붙은 거라 그랬잖아요메로스가 아니라 그게 뭐죠부분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하여튼 그거 있잖아요자칼과 레케바그 히브리어의 그 한 부분.

 

그게 뭐냐면 하나님과 인간은 연합이 되어 하나가 될 때 그걸 온전이라 그래요인간은 영하나님과 연합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되도록 지어졌어요그걸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라고 그래요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다뭐 이런 수준의 얘기가 아니라존재라는 거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것으로 흡수되어지고 함몰되어지지 않으면 그건 존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네요그건그 자체를 그냥 악이라고 해요그런데요하나님이 어디까지 자기를 낮추셨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도 우리와 하나 되어 그렇게 우리와 연합된 어떤 존재가 되었을 때 하나님도 온전하시기로 하는 게 하나님의 작정이에요.

여러분 그걸 하나님의 성육신이라 그래요엄밀히 말하면은그것 자체를.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어 존재가 된다는 건 하나님은 저 밖에 그냥 따로 계시고 어떤 하나님의 어떤 기운을 받아서 연합한다는 것이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연합이 된다니까요그건 하나님의 자해사건이란 말에요그것이그걸 십자가로 이렇게 모형으로 보여준 거란 말입니다그런데 그렇게 그 하나님과 연합된 내가 바로 존재가 되는 거군요그 말은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은 그 반쪽인 나는 이건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 자각그게 있어야 되잖아요그죠?

 

근데 하 마르티아 라는 게 뭐냐면 과녁을 벗어났다는 그 말이 뭐냐면 그렇게 되어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내가 비로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그걸 부인해버리고 그 반쪽인 자기의 주체성을 주장해버리면 그걸 죄라고 그런다니까요성경이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사회법적인 어떤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들을 죄라고 그러지 않아요성경이그건 죄의 증상일 뿐이에요이 지구상에 역사와 인생이 내놓는 것 중에 죄 아닌 게 어딨어요근데 그것으로 진리를 알면 하나님이 그것을 그거라고 이야기를 해요그래그거 알게 해주려고 너희에게 그걸눈에 보이는 그걸 준 거야그러니까 우리는 이 차안의 세상 속에서 그 피안을 반드시 찾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죽음이에요여러분.

 

그러니까진리 복음 이야기하니까 뭐 거창하게 생각하고 자꾸 어렵게들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여러분성경이라는 것 자체가요이 차안의 이 세계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면 이 세상에서 자꾸 벗어나야 된다고 그러죠성경도 마찬가지에요여러분이 전부 그걸 여러분의 머릿속에 넣어서 꾹 누르면 그냥 할렐루야 아멘이 튀어나오는 게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것으로 진리를 알게 되었으면 여러분은 성경을 자꾸 잊어먹어야 돼요거기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니까요그건 아주 초보자의 수준이에요그걸 자기에게 자꾸 쌓아서 이걸로 어떤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고 구원을 설명하려고 하는 그 수준은 아주 유아기의 수준이에요여러분은 진짜 진리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오히려 성경에 대해서 자꾸 잊어버리고 하는 게 맞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이 세상 속에서 이 차안의 세상 속에서 피안을 자꾸 바라보게 되면 여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기에 대한 기대치가 자꾸 높아지고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욱더 깊이 보이기 때문에 내가 참 불가능한 존재로 자꾸 나에게 보이기 때문에 내가 실망스럽고 절망스러워 보이는 거지 실지로 여러분은 많이 변해가고 있어요그렇게요그러나 자기의 자인식은 하나도 변하는 거 같지가 않아오히려 더 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거예요그렇지만 이내그거 아니지라고 돌아가잖아요그게 여러분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증거라니까요그러니까 너무 조바심내지 마세요.

 

내가 진리진리진리복음복음복음구원구원여러분이 자꾸 그러다보면 그게 또 여러분의 올무가 된다니까요.

 

그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않도록 은밀한 진리의 골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될 게 무엇인가?

뭐겠어요문을 찾아야죠골방으로 들어가려면 골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아야 될 거 아네요성경에서는 그 문을 열린 문이라고도 하고 천국 문이라고도 하고요 양의 문이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해요우리가 은밀한 지성소의 골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양의 문을우리가 양이니까양들이 들어가는 그 문을 먼저 찾아야 돼요근데 그 문은 죽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거든요.

양들이 양의 문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그 문중에 양의 문이 있었잖아요그 문은 양들이 잡혀 죽으러 들어가는 문이거든요그런데 양들을 그리로 집어넣어서 살려요하나님은요그러니까 그 양의 문은 여러분이 죽으러 들어가는 문이거든요근데 그 문을 여러분이 찾아야 돼요오늘 본문 바로 뒷장으로 가면 그 문이 나오는데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을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성전 마당에서 율법적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반드시 골방으로 들어가서 그 성전마당에 그 희생 제사가 무엇인지무엇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된다고 그랬죠그래서 그 골방이란 단어가 조제실약방이런 뜻이라고 그랬잖아요성전에서 쓰이는 떡 만드는 거무슨 기명 만드는 거향단에 향 만드는 거기름 준비하는 거 이런 걸 다 골방에서 했단 말에요조제를 했단 말에요그렇게 그 골방으로 들어가서 그 내용을 알아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성전 마당에서 눈에 보이는 차원의 것들로 아무리 열심을 부려봐야 그렇게 열심을 부린 만큼 멸망에 가까워질 뿐이죠.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 감추어져 있는 은밀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 골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고 협착하다그래요여러분은 좁고 협착한 문과 크고 넓은 문이 이렇게 있을 때 어떤 문을 선택하시겠어요인지상정으로크고 넓은 거 선택하죠누가 또 좁고 협착한 문이라고 그래변태도 아니고솔직해지시라니까.

누가 거기를 기어들어가려고 그래요카타콤이나 갑바도개 같은 데에 들어가려면 여러분 진짜 이렇게 엉금엉금 기어뚱뚱한 사람은 가다가 끼어요그러니까 웬만하면 거기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아요크고 넓은 문을 사람들은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모르게 되면은크고 넓은 문이라는 건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문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야저지로 가는 게 맞는 거구나라고 이렇게 인식이 되는 그 문을 크고 넓은 문이라고 그래요사람들은 그 문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요여기서 좁고 협착한 문이라고 쓰인 그 단어가 뭐냐면 사전 갖고 오신 분들 찾아보세요헬라어사전. ‘좁은’ 이라는 단어가 왜 좁은‘ 인지를 설명해놔요사전이그 스테노스라는 단어는 원래는 좁은 것이 아닌데 장애가 그 앞에 놓여있어 좁아지게 된 문을 이야기해요그러니까 원래는 큰 문이에요그런데 그 앞에 장애가 놓여져 있어 그게 좁아져버린 거예요그러면 그 문에 그 장애물을 누가 놓았을까요마귀가 와서 놓았을까요하나님이 놓으셨을까요?

 

선악과 패러다임 속에 완전히 장악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이 그 장애물을 놓는 거예요스스로양의 문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은 누구나 다 라는 그 대상을 향한 그 진리라는 내용을 가진 열린 문이에요원래 넓은 문이란 말에요그것이그리로 들어가야 하는 문이란 뜻이에요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이런 거 까지는 설명 안 해도 되는데 요새 게시판 보면 고런 것들을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그렇게 까지 설명을 해주고 가야 되는지 말이요.

 

그런데 선악체계 속의 아담들은 그 진리의 문 앞에 율법이라는 장애물을 스스로 놔요자기들이요그 짐을 스스로 자기들이 그 문 앞에다가 부려놓는다니까요그리고는 스스로 못 들어가는 거예요.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이 장애물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세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육체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에요하나도 없다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뜻이에요인간들이 율법으로 장애물을 쌓아버리면 아무도 못 들어가는 그런 문이 진리의 문이에요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율법의 두 마음으로 가진 이들에게 있어서 진리의 문은 생각하기도 싫은 문인 거예요하나님처럼의 그 삶을 추구하고 있는모든 인간이 그 삶을 추구해요하나님처럼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그런 자신에게는 영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거든요.

 

아니엄밀히 말해서 율법의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문이에요.

 

마 23: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의 상징입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율법은 그 문을 닫아요뭐로율법으로 닫아버려요장애물을 놔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못 들어가요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아무도 못 들어간다아무도 못 들어간다이렇게 율법의 장애물에 막혀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문이 천국 문이에요좁은 문이에요성경은 이렇게 선악체계 속의 아담들이 진짜 크고 넓은 진리의 문을 자기들 안에 율법의 두 마음으로 좁고 협착하게 만들어버렸다라고 이렇게 진술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아무도 못 들어가는 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그게 하나님이 보시는 이 세상 속 진리의 문의 현실이에요그런데 선악과 패러다임 하의 인간들은요 그게 구미에 맞아요.

 

그 문은 인간의 열심과 노력과 희생과 헌신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거든요그리고 자존심도 지킬 수 있는 그런 문이에요좁은 문넓은 문 그러니까 그래예수 믿는 건 이렇게 고생고생 하면서 가는 거야이렇게 그냥 가난하게 가는 거야이렇게 어렵게 가는 거야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떵떵거리면서 사는 거야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좁은 문이라는 건그리고 넓은 문이라는 건 모든 인간들의 구미에 맞아서 모든 인간들이 찾는 그 문을 넓은 문이라고 하고 좁은 문이라는 건 인간들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문인 거예요.

 

인간들이 만들어 놓아 인간들이 그렇게 장애물을 쌓아놓아서 인간들이 저 문으로는 절대 못 들어간다고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그 문이 좁은 문이란 말입니다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여러분대한민국에 기독교인이 뭐 천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전체 인구의 25%잖아요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어요근데 그 중에 얼마 안 되는 소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다니까요그러면 넓은 문은 뭐겠어요율법주의와 인본주의라니까요사람을 위한 기독교좁은 문은하나님 중심인 기독교에요사람들은 그거 탐탁지 않게 여긴단 말입니다근데 넓은 문은 하나님과 굳이 상관없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택할 수 있는 그런 문이에요모든 종교인들이 다 그 문을 택해요굉장히 포용력있는 문으로 보이죠그래서 넓은 문이에요그래서 아담들은 그 율법의 문으로 몰려들어요어차피 주어진 육신과 세상의 자원으로 열심을 부리기만 하면 되거든요진리 같은 건 몰라도 되고 복음 같은 거 사모하지 않아도 돼요그냥 내가 가진 자원 열심히 불살라서 노력하면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에요.

 

중요한 건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성도들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차안의 세상눈에 보이는 현상계의 세상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거예요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그대로 율법으로 받을 수밖에 없어요아니그래야 돼요여러분은 선악과부터 거치고 가야 된다니까요생명나무부터 덥석 못 잡는다는 말입니다당연히 율법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그들도 골방으로 들어가는 그 진리라는 문 앞에 엄청난 율법의 장애물을 쌓게 되어 있어요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모든 인간이 다.

 

근데 오직 그들만이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그 율법이라는 그 죄자신의 그 죄 때문에 그 열린 문그 천국의 문이 내 죄로 막혀 절대 나에게는 열릴 수 없는 문이라는 걸 알게 돼요모든 인간이 그 문 앞에 자기의 율법자기의 행위선악과 먹은 아담의 행사로 그 문 앞에 장애물을 쌓아놓고 못 들어가거든요근데 하나님의 백성만 맞아내 죄로 저 문은 저렇게 막히는 게 맞아라고 인식을 하게 된다는 뜻이에요그래서 그들에게만 그게 좁은 문이에요그걸 모르는 이들은그게 넓은 문이라니까요아냐이렇게 하면 들어가는 거야하고 가고 있다니까요근데 성도는 아냐그것으로 내가 저 문 앞에 장애물을 놓은 거야그게 죄니까요나는 그 죄 때문에내가 죄인 중의 괴수니까 나는 그 죄 때문에 저기 못 들어가라고 그들만 인식을 하게 된단 말에요.

 

내가 죄인 중의 괴수고 내가 하나님 살해한 자고 내가 불가능한 흙이다라는 걸 분명하게 깨닫고 인식하게 돼요그리고 고백하게 됩니다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자신들의 율법적 죄로 꽉 막혀버렸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 거예요그런데 주님은 그래그거 봤어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그러는 거예요고생고생하는 그 길을 택해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좁은 길좁은 문산동네의 그 좁은 길 그런데서 살아야 천국 가는 거예요그게 아니라너희들이 선악과 따먹고 선악의 죄 속에 뒹굴면서 그 안에서 생산해낸 세상의 열매들로 그 진리의 문천국의 문을 너희들이 막았다라는 것을 알았으면 그게 문이야이런 말이에요그게 문이야.

아니알면 그게 들어간 거예요예수 그리스도라는 좁은 문으로 그게 들어간 거란 말입니다그래서 예수가 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좁은 문은 은혜의 문인 거예요우리가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에 막혀버린 그 스테노스의 좁은 문그것이 바로 우리의 작품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고 자기자신에 대해서 처절하게 절망할 때 그 좁은 문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그 길을 내주는 거예요.

 

요 10:7-9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예수님보다 먼저 온 게 뭐예요율법이지 뭐예요다 절도요 강도니 [율법은 절도요 강도죠이거는 구약에서 계속 반복하여 나오는 거니까양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율법을 설교한 사람들이 없었나요그 때많았어요그리고 들었습니다그런데 양들이 듣지 못했다는 건 무슨 말에요그 안에서 진리를 끄집어내지 못했다는 뜻이에요예수 보다 먼저 온 자들의 그 말 속에서는 사람들이 못 알아먹더라는 거예요진리를못 꺼내내더라는 것입니다.

8-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들락날락 하면서 밥 준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들어가서 나오게 된다이런 뜻이에요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자는 그렇게 들어가 나오게 된다는 뜻이에요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가지고 그러죠내가 양의 우리에서 그들을 끌어내러 왔다그래요불러내러 왔다고근데 원래 그 성전 안에 성전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그 성벽 밖에 있는 존재들을 외인혹은 하나님이 백성들 밖의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죠그리고 그 성 안에 있는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이렇게 구별된 자라고 구약 성경이 이야기하잖아요그건 하나의 모형이고 그림자였습니다그죠원래 이렇게 성체를 두르고 성벽을 두른다는 것 자체가 거룩하게 하다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성경이 이야기해요그래서 성을 두루는 거예요그래서 성전 안의 모든 기명을 밥상도 떡 상도 그렇고 뭐 그릇도 그렇고 다 성체를 만드는 걸 아세요거기에다가왜 그런지 아세요이거 거룩한 거야이거 깨끗한 거야성 안에 들어있는 거야란 뜻이에요그래서 그런 기명에 전부 성체를 만든다니까요.

 

그런데 그 성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백성이에요그죠근데 얘네들이 그 성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밖에 있으면 다 죽는다,를 가르쳐주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줬더니 그 안에서 그 성벽 밖에 외인처럼 율법적으로 그냥 살아버리는 거죠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여야 돼요이리로 넣어야 사는 건데 그들이 그 안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일단 넣는 것으로 하나 설명을 해줘야 되고 그 넣음으로 빼내야 되죠거기에서그래서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그래요성전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안으로 들어가야지그런다니까요성전 안에 있는 이들에게너희들은 여전히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 놓고 거기를 애굽처럼 살고 있구나라고 누누이 말씀하시죠그런 거예요그래서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이들은 들어가서 나와 참꼴을 먹을 거야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들어가서 나와서.

그건 양의 문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죽어서 나온다는 뜻이에요그러니까 차안의 세계 속에서 이 차안의 몸뚱이를 갖고 있는 이들은 그 속에서 죽어 피안의 존재로 나오게 되는 거예요그래서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반드시 그 진리를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성경암송 대회 이런 거는 하면 안 되는 거예요그런걸 뭐 하러 하냐고요그거를.

 

저는 요즘에 인제 한글 성경의 그예전에 수백구절 외웠던 걸 거의 다 잊어먹었어요그러니까 이제 원어성경을 보다보니까 그게 틀렸다는 것이 이렇게 하나하나 발견이 되니까 그걸 자꾸 버리게 되고 안 보게 되니까 그건 다 잊어먹었어요그래갖고 요즘은 어디서 찾을 수가 없네ㅎㅎ근데 괜찮아요.

옛날에는 진짜 제가 그 LP 판이 한 삼천 개 있었는데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이렇게 뒤로 앉아서 손으로 탁 찍으면 그거였어요이렇게그것처럼 성경도 설명할 때 아무데나 펴서 그걸로 성경 공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요ㅎㅎ못 찾겠어요이제그리고 또 찾아봐야 그게 그거가 아니라 근데 상관없어요우리는 그 말씀그 수많은 말씀수만 절의 그 말씀을 통해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그 아가페의 그 사랑을 알면 되는 거예요그 은혜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들어가서 죽고 나오며 사는 거예요율법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대해 죽고 자유한 자로 살아나오는 거예요.

 

요 10: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가 뭡니까부활영생의 생명이죠그걸 얻기 위해서 뭐 어떻게 해야 된대요목숨을 버려야 된다고 그래요근데 그게 아버지가 기뻐하는 거고 아버지의 사랑이 내 삶 속에서 그렇게 과정으로 나타난다는 뜻이에요여러분이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이 반드시 끊어지게 돼 있어요여러분이 양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니까요근데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래요근데 그 예수라는 문으로 누가 들어갔습니까아무도 못 들어갔습니다예수라는 문으로 아무도 못 들어갔어요예수님이 오셔서 내가 문이야이리로 들어와내가 지금 진리의 말을 전해주고 있잖아라고 얘기했는데 아무도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요아니들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예수는 말은 하셨지만 여전히 그 역할이 성전이요 율법이었기 때문에 그래요그러니까 양들이 또 그 소리를 못 듣는 거예요.

예수님 이전에 온 절도요 강도의 소리를 양들이 못 들었다고 그랬잖아요근데 이 예수의 말도 못 알아들어요알아들으면 안 돼요.

못 들어갑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그들에게문제는 그들의 두 마음이니까새 마음을 주어새 마음을 주어 그 새 마음으로 듣게 해야 돼요그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그랬죠근데 그 성령은 예수의 그 육적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만 오실 수 있어요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육신이 그렇게 이 차안의 세상에 대하여 죽고 이 세상 안에서 죽고 그래야 영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모형으로 그림자로 보여준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게 되면 양의 문이 아그게 좁은 문이구나나 때문에 장애물이 놓여진 그런내가 못 들어갈 문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문으로 들어가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그래서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그래그 좁은 문 거기로 들어가거리고 들어가면목 없지만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거예요그렇게 그 은혜의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안이 진리의 골방인 것입니다그 골방 속에서 진리의 내용들이 풍성하게 그 은밀함을 드러내 주죠그 진리의 내용이 꽉차있는 곳이 지성소그 골방이에요성도는 그것을 꼴로 먹는 거예요하늘양식으로 먹는 겁니다그렇게 양의 문그리스도의 은밀한 진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절대 그 진리의 내용을 알 수가 없어요그래서 성경에 그렇게 어디로 들어가라들어라가. ‘에이셀코마이,에이셀코마이이런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그렇게 예수님이 제일 많이 하셨어요그 말을들어가들어가제발 들어가어디 안으로 들어가밖으로 내쳐지면 안 돼밖으로 끌어내어 이를 갈게 하면 안 되는 거예요들어가야 돼요밖으로 내쳐지면 안 돼요.

 

마 25:10-12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기름 사러 간 거예요기름은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그것이 바로 장사치들의 굴혈입니다그것이장사하는 소굴이에요그게기름은 절대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우리의 봉사우리의 헌신 우리의 돈우리의 열심 이런 걸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에이셀코마이들어가고 어떻게 됐대요문이 닫혔다고 그러죠오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나오죠들어갔더니 문이 닫히네요?] 문을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이제 밖에 있는 처녀들이 있어요.]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진리로 말한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처음부터 알지 못하였노라에요알지 못하노라가 아니라처음부터 알지 못하였노라 내 눈에는 너희들이 안 보이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너희들은 내 눈에내 안중에도 없어처음부터 나는 너희들을 몰랐어그러니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는 자들은 반드시 그리로 끌고 들어간다는 말이에요그 좁은 문으로죽여서죽이러 데리고 들어간다는 뜻이죠.

 

근데 여기서 어리석은 처녀밖의 미련한 처녀밖에 놓여있는 미련한 처녀라고 번역이 된 모로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7장의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는 말 나오죠그 어리석은 자와 똑같은 단어에요근데 모래는 뭐죠하늘에서 비가 모래처럼 내리면 그게 저줍니다심판입니다비가 내리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에요그죠은혜의 비말씀의 비진리의 비라고 이야기하니까.

근데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비 진리위에 지은 집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렇다고 해서 그게 뭐 바람만 불면 이리저리 휘청휘청안 그래요.

 

건축하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진짜 단단한 건물은요 모래위에 짓는대요스핑크스피라미드 이거 다 모래 위에 지은 거거든요그 어떤 천재지변에도 꿈쩍 안 하는 건 그거밖에 없어요그러니까 그런 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비 진리위에 세워 놓으면은 하나님은 그거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에요아무리 견고하고 든든하게 세워놔 봐야그러니까 율법의 옛 성전율법위에 모래 같은 율법위에 율법의 옛 성전 그걸 지어놓으면 그게 어리석은 자인 거고 그들이 문 밖에 있는 어리석은 처녀인 거예요.

 

기름말씀진리를 준비하지 못한 자라는 뜻이에요그것이그러니까 당연히 혼인잔치 안으로 못 들어가는 거예요그게 된 이들만 들어가요아니하나님이 그렇게 부른 이들만 들어가서그 안에 들어가서 비로소 그 내용들을 들어요에스겔서 37장에서도 그러잖아요.내가 너희들을 일단 살려놓을게 그러면 너희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그래요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살아나는 게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일단 살려놓을게 그리고 문 안으로 들여보내는 거예요그리고는 거기서 그 골방에서 가르치는 겁니다여러분이 갖고 있는 진리의 그 골방은밀한 그 골방여러분 내부세계의 그거거기에서 여러분은 평생 그 진리를 배우는 거예요.

 

그렇게 한번 진리의 문이 닫히면 그 문은 절대 열려지지 않아요그리고 달음박질 하는 자원하는 자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얘기하죠거기 뭐 달음박질 한다고 들어갈 줄 알아아무리 두들겨 봐 못 들어가요인간의 원함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그리고 문을 닫아버린다는 건 뒤를 못 돌아보게 하는 거거든요그러니까 여러분이 들어가서 뒤돌아보면 어떻게 돼요?

 

언약이 네크로스로 성취가 돼버려요그럼 소금언약이죠그 소금언약이 여러분 안에서 그 여러분 안의 그 진리로 성취가 되면 그 안에 성취된 그것이 여러분에게서 흘러나올 때 그걸 빛이라고 하거든요성경이그래서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야너희들은 세상의 빛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소금언약이말씀이 우리 안에서 성취가 되면 그것을 내가 반드시 이렇게 증인으로 흘리게 되고 그걸 빛이라 그래요성경이요그런데 이 소금이 엉뚱하게 성취가 돼버리면 어떻게 돼요소금기둥 되는 거예요그래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자 소금기둥이 되는데 언약이 저주로 완료가 되고 성취가 돼버리면 큰일 나는 거예요.

 

모든 인간들 안에서 그 언약은 성취가 돼요근데 소금 기둥으로 성취되면 안 된다니까요그렇다고 롯이 뭐가 달랐어요다른 거 하나도 없어요하나님이 손목 잡고 끌고 가는 자에요돌아보려고 하면 다시 모가지를 꺾어서라도 앞만 보게 만드는 거예요그래서 그 문은 하나님이 닫는다고 하는 거예요닫아버리는 거예요롯이 그랬잖아요하나님이 가서 사자를 보내서 너희들 여기서 나가야 돼그리고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빨리 나가그랬을 때 롯이 사위들에게 얘기했습니다얘들아 하나님이 그러는데 여기 빨리 나가란다사위들이 어떻게 여겼다고 그래요농담으로 여겼다그러죠롯은농담으로 여겼어요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겨서 안 나갔으면 지라도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갔어야 되는데 끝까지 안 나간 건 뭐예요자기도 농담으로 여긴 거예요그래서 하도 안 나가니까 어떻게 해요하나님이 손목 잡더니 끌고 나갔다니까요끌려 나가면서도 더럽게 말도 많아저기로 가라니까 아니이리로 가면 안 돼요뭐 이러면서 말이죠그게 우리의 실체에요여러분그러나 하나님이 절대 뒤 못 돌아보게 만들어요문을 아주 닫아버리는 거죠그렇게 문이 닫히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그들에게 주어져요.

 

그 열 처녀의 비유가 끝나고 다른 비유가 나오는데 그 두 비유를 호스페리’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어요그 단어는 위의 것과 똑같이이런 말이에요그 밑에 나오는 비유가 달란트의 비유거든요그럼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는 똑같은 거겠네요? ‘호스펠로 연결되어 있으니까그것과 똑같이이렇게 연결이 된다니까요그럼 그 비유는 뭡니까다섯을 줬더니 다섯을 남기고 둘을 줬더니 둘을 남기고 하나를 줬더니 하나 남겼어요맞아요아니죠하나 줬더니 묻었잖아요.ㅎㅎㅎ.

 

다섯은 뭐겠어요? ‘펜타툭’. 모세오경을 펜타툭이라고 그러죠그 율법 전체십계명의 다른 말이에요 그냥다섯 계명이라는 건.

그래서 십계명도 다섯다섯으로 나누어서 다섯은 구약다섯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설명해주는 거고그러니까 다섯이에요.

모세오경이에요오 (5), 펜타툭자 율법을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줬더니 다섯으로 남겼다고 그러죠거기서 다섯으로 남겼다라는 말은 알라다른 다섯으로 포이에오 되게 만들었다이런 말이에요다섯을 줬더니 착하고 충성된 종이 다른 다섯으로 되게 만들었어요.율법을 줬더니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로 성취하신 주님의 사역을 이야기하는 거예요이 세상에 착하고 충성된 종은 종의 형태로 오신 주님밖에 없어요.

 

다섯을 줬더니 다른 다섯으로 그것을 되게 만든성취하게 만든완성하신 그런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있어요하나님이 칭찬하셨어요.

둘을 줬어요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다섯을 둘로 줄여주잖아요하나님 사랑이웃 사랑그것도 우리가 한 게 아니죠?

우리가 이룬 거 아니잖아요그것도 그분이 다른 둘로 포이에오되게 하셨다그래요그러면 그 율법의 완성 자는 주님이에요.

하나님입니다그러면 그걸 다섯둘을 주님이 성취한 것으로 우리가 받죠성령 안에서 우리가 받아요무엇으로 받아요?

하나로 받아요모노게네스하나로 받아요사랑으로 받아요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은혜의 사랑으로 우리가 받아요그러면,

우리가 그걸 받으면 그럼 우리는 아내가 여기에 뭔가를 보탤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주님이 다 이루셔서 내가 이걸 하나로

거저 받은 거구나라고 하면 내가 거기서 부인되는 거고내가 부인된다고 그러니까 내가나를 부인해야 돼이렇게 허벅지를 찔러가며 부인하는 게 아니라나는 십자가에서 그렇게 부정될 수밖에 없는 죽은 흙이구나,를 깨닫는 걸 내 부인이라 그래요자기부인.

내가 자기부인을 해야지그러면 그거 또 율법이라니까요.

 

그렇게 그걸 받으면 내가 부인이 되는 것이고 그건그걸 은혜로 사랑으로 내가 이제 누리면 되는 거예요그걸 자유라 그래요.

하나님이 다 하셨고 내가 하나님의 그 일에 보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군요라고 그 하나를 받아 누리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하나로 다른 하나를 내가포이에오되게 만드는 자가 되는 거예요근데 조금 아까 다섯은 밖에 있었잖아요다섯은 안에 들어왔죠그러면 이거와 똑같이’ 라고 했으면 지금 어떤 이들은 안에 들어와 있고 어떤 이들은 밖에 있는 자의 모형으로 지금 설명되고 있을 거 아니에요그 밖에 있는 어리석은 율법의 모래위에 율법의 성전을 지은 자의 모형으로 하나를 받은 자그자가

지금 등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나를 어떻게 오해하는지를 보여줘요어떻게 오해합니까우리 주인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르는 자라그래요그러면무슨 말이에요 그건우리 주인은 지가 일해서 자기의 소득을 얻어내는 그런 주인이 아니라 나에게 일 시켜먹어서 내가 내놓는 어떤 것으로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 자이게 율법주의죠?

여러분맞아요우리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르시는 분이에요그게 창조의 원리에요그러나 그건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고 그렇게 창조를 완료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그 창조의 우리라는 인간이 뭔가 보탤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신다고 그러는 거지창조의 원리를 잘 아는 거예요그러나 껍데기표피적으로 안 거예요그건요.

 

하나님은 일을 안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를 한 알의 밀알로 땅에 심어 자기를 죽이는 그 일로 열매를 맺으시고 모으시는 분이라니까요하나님은 당신을 심어한 알의 밀알로 심어 우리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는 분이란 말에요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은 나에게 뭔가를 시켜서 내가 행하는 만큼 당신의 유익으로 챙겨 갖는 분이다라고 우리가 알게 되면 그게 바로 율법주의이며 그것이 밖에 있는 어리석은 자라는 거예요.

그 종이 뭐라 그래요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악한 자라고 그래요그래서 묻어두는 거예요.

 

여러분 보십쇼이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종교인들의 모습이에요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님의 그 능력의 장중 밖에서 생산될 수 있는 게 있어요없어요아무것도 없어요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고 성취하고 발전시키고 번영시키는 모든 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다른 말로 하나님이 이루셔서 우리에게 준 거예요근데 그걸 갖고 하나님에게 다시 돌려 드려봐야 그건 하나님이 준 걸 묻었다가 주는 격밖에 안 된다니까요그래놓고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냐면 당신은 나에게

내 열심과 노력과 내 자원을 바탕으로 뭘 만들어내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악한 분이야라고 갖고 있어요생각을그분에 대한 생각을그래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Burn out 되고 심지어 나중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악악대며 손가락질 하는 게 뭐냐면 그 하나님이 무서워서 억지로들 하고 있는 거예요율법주의라는 게 그런 거라니까요무서워서 하는 거예요천국 갈려고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천국 갈려고 나는 그거 해라고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이거 안 하면 그 양반이 나 천국 안 보낼 거야라는 그 말이라니까요.

그게 그 하나님을 악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여러분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다섯은 다른 다섯으로 성취하시고 둘을 다른 둘로 성취하시고 그걸 다 성취하셔서 하나로 우리에게 준 거 그걸 우리가 누리라고 그 사랑 누리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그러면 그걸 하나로 남기면 되는 건데 그걸 그냥 묻어뒀다가 이거 원했던 거였죠라고 이렇게 줘버리는 거망해도 상관없다니까요 하나님은아니장사를 했다는 그거 자체가 우리 주인은 내가 이거 장사해서 다 날려먹어도 나를 용서하실 분이야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장사를 하는 거죠그거 없으면 묻어두게 된다니까요아냐이거 장사하다 날리면 나 죽일 거야.

 

그리고는 그 비유가 그대로 어디로 이어지느냐 하면 그래그렇게 밖에 있는 자안에 있는 자가 이렇게 율법주의와 은혜 안에 있는 자로 요렇게 나눠지게 되면 이제 밖에 있는 자는 저놈 끌어내다가 밖에서 이를 갈게 하라그러잖아요그 주인이그 하나를 누리지 못하고 오해한 그 자를그럼 밖에 있는 자안에 있는 자가 나눠질 거 아네요지금예수 안에 있는 자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안에 있는 거고 그걸 율법으로 곡해를 해서 지 열심으로 하나님께 내놓은 자는 지금 밖에서 이를 가는 자란 말에요.

이를 간다는 거 자체가 히브리사람들의 개념은 헛것을 씹는다는 뜻이에요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먹지 못하고 헛것으로 씹으면 이만 가는 거예요씹는 게 없어서그게 이를 간다는 뜻이거든요지옥에서 이를 간다는 건 먹을 거 없는 곳에서 자기들은 뭘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씹는 게 이를 가는 거예요.

 

그럼 그들은 이제 심판대 앞으로 가겠네요그래서 그 비유에 딱 붙어있는 게 양과 염소의 심판이에요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은 양밖에 있는 자들은 염소네요그죠근데 양들은 뭐라 그래요내가 뭘 했습니까그러죠염소는내가 뭘 안했다고 그래요그런다니까요그러면 골방 안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어디로 간다하나님 제가 한 게 뭐있습니까이 구원에이 하나님 나라 완성에 내가 기여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라는 내 육의 죽음으로 간다는 뜻이에요우리는 거기서 그거 배우는 거라니까요.

여러분 안에 진리가 있으면 여러분은 그리로 가요근데 이게 무슨 방종이나 이런 것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자유로 가는 거예요하나님이 그렇게 다 이루시고 하나님이 그렇게 나에게 선물로 주시는 거라면 내가 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히 가치 있는 어떤 업적과 성숙과 이런 것을 이루어냈다 할지라도 그게 내 자랑이 될까요안 되죠.

 

바꾸어 말해서뒤집어서 내가 사람들이 보기에종교인들이 보기에 별반 대단하지 못한 그런 뭐 지지부진한 열매를 좀 맺었다고 해서 내가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니까요그걸 자유라고 그래요그런데 죄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죠진짜 성숙이 뭔지를 모르면 그런 거 이해하지 못한단 말입니다그러니까 그렇게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인간들은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그 천국에 그 하나님은 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다 갖고 있어요솔직히 하나님이 좋아서 천국가고 싶은 거예요아니면 거기 좋다니까내가 원하는 게 거기에 다 구비되어 있다니까 가고 싶은 거예요솔직히 그 사사건건 간섭하는 그 영감은 없었으면 좋겠죠그게 악한 주인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자들의 삶입니다.

 

그럼 골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이 닫히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다른 곳으로 가서 한번 설명해드리죠요한복음 20장 19절 보세요.

 

요 20:19,26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고

 

 

[이걸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꼭 잠그고 숨어있었다라고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돼요여기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라고 이렇게 번역이 된 이 말은 호 포보스 호 유다이오스’ 거든요그러니까 유대의유대적인 것의 두려움 이런 뜻이에요그러니까 율법주의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공포그러니까 유대주의가 생산해낼 수밖에 없는 그 두려움그것그 팔의 날에안식의 날에진짜 안식의 날이죠그 날에 제자들이 골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어요문이 이미 닫혔습니다그런데 그 율법주의 유대주의의 푹 젖어서 예수마저도 죽여 버린그 진리마저도 떠나버렸던 그 제자들이 아직도아직도 그 유대적인 것호 유다이오스유대적인 것의 공포에서 못 벗어나고 있더라는 거예요.

 

일례로 베드로가 자기가 성령을 체험하고 한참 지난 후인데도 주님이 고넬료에게 가서 너 복음 전해라했을 때 아니 어떻게 이방인에게 부정한 것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까라고 했다니까요그건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에요팔의 날에 제자들이 골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그러면 이제 거기에서는 진리가 쏟아져 나와야 돼요그리고 자유가 있어야 되는데

유대적인 것의 공포로 말미암아 그들이 덜덜덜덜 떨고 있었어요그 때 주님이 들어오셨다그러는데 들어오신 게 아니라 이게 문이 다 닫혔는데 벽으로 쑥 들어왔다는 뜻이 아니라ㅎㅎ그 골방의 주인이 예수님이란 뜻이에요그 골방의 주인이 예수님이죠.

 

그러니까 그들이 그 골방 안에서 문을 닫고 유대적인 것으로 두려워하자 그 주인인 예수님께서 성전마당 귀퉁이가 아닌 가운데이스테미 굳게 서서 그러니까 예수의 그 수식어가 뭐냐면 19, 26절 다 가운데 굳게 서신 예수’ 에요그럼 뭐예요그리스도란 뜻이에요그게가운데 것으로 굳게 서신 예수가 그들에게 말을 하세요그 유대적인 것의 공포에 여전히 떨고 있는 그들에게뭐라고평강평강이 뭐라 그랬어요샤람살롬샤람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라고 했습니까그 뜻이분석하여 가르친 진리이것이 샤람이에요그러니까 평강이라는 건 그 하나님의 그 일하심그 열심그 은혜그것을 한 마디로 축약하라그러면은 그러니까 복음 전체를 그냥 한 마디로 축약해그러면 평강샤롬샬롬그래서 그 복음 전체를 이렇게 가리키는 거그게 뭐였어요야라가리키다 샤롬예루살렘이란 말에요그것이근데 그 예루살렘으로 복음샤람샬롬을 알라고 가리켰더니 그것으로 열심히 율법을 행하는 거죠그걸 알아먹지 못하고그러니까 그 골방 안에 들어가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바로 그 진리그 복음인 거예요.

가운데 것으로지성소의 것으로 우리가 알아먹어야 할 거.

 

보세요여러분하나님이 돌비에 써서 당신의 계명을 주신 다음에 그 돌비 돌려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습니까건드리지도 못하게 했어요법궤 속에서상자 속에 넣어놓고 보지도 말라 그랬다니까요너희들 그거 껍데기로 문자로 그렇게 보면 니들 죽어란 뜻이에요그게요그게 담고 있는 그 내용으로 너희들이 산다란 뜻이란 말입니다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꾸 여러분이 행할 자를 찾으시면 안 돼요그럼 그 법궤 뚜껑 열고 자꾸 읽는 거랑 마찬가지에요그럼 그 즉시 즉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그 은밀한 것 그 평강의 그 내용을 전해 받은 그 이들이 어떻게 중언부언하겠느냐이런 말이에요오늘 분문은그 중언부언바톨로게오라는 말은요 듣지 못해서 올바로 말을 못하는 자라는 뜻이에요우리가 말을 좀 이렇게 어눌하게 하고벙어리들벙어리라는 병은 없습니다여러분귀가 먹으면 말을 못하게 되는 거뿐이에요뭐 사고로 뭐 혀가 잘렸다든지 이런 게 아니면 그런 병은 없어요귀가 망가지면듣지 못하면 말을 못하는이걸 바톨로게라고 해요중언부언이란 뜻은 그 뜻이에요바톨로게오는이게 바토스하고 로고스의 합성어에요로고스말씀바토스는 올바른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말을 더듬다이런 뜻이에요바토스그런 말이게 바톨로게오란 말에요그런데 그 바토스는 가시덤불 찔레 이런 뜻도 있어요.

구약에서 가시덤불 찔레는 항상 뭘 상징한다율법.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들어 율법으로 말하면 그게 듣지 못하고 말을 중얼중얼 더듬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중언부언이에요바톨로게오에요그것이그 바톨로게오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가바로 그 바톨로게오 위엣 단어가 있어요사전에 보면 그게 바트라코스에요개구리입니다개구리가 여름밤에 떼로 와글와글 와글와글 하면 그럼 어떤 기도원 생각나죠?

개구리소리 같아요와글와글와글와글무슨 소리인지도 몰라근데 그 개구리가 부정한 짐승입니다성경에 율법에 보면그리고 애굽의 열 재앙 중에 개구리 재앙 있죠그게 애굽사람들의 신이었어요다산 신개구리가 알 무지하게 많이 낳죠그죠다산의 신이에요.생육과 번성은 제가 예전에도 한 번 설명해드렸지만 예수가 하시는 일인데 거기에서부터 비롯되는 게 생육과 번성이거든요.

 

하나님의 씨에 의해 번식되는 게근데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에서 인간들이 육신으로 생육번성 하게 되면 그게 곧 저주에요여러분그걸 죄라고 해요그래서 난 태생으로 알을 낳으면 그게 부정하다고 그런다고요그런데 그 중에 알을 제일 많이 낳는 게 개구리에요.다산의 신그러한 인간들아담들의 속성을 가진 그런 자들이 내놓는 그 마이 바톨로게오에요와글와글와글와글.

목적이 거기인 자들의 말바톨로게오그 단어가 신약에 여기 딱 한 번 등장하거든요그런데 구약에도 그와 똑같은 히브리어가 있는데 구약에도 딱 한 번 등장해요이사야서 32장 1절 보세요. ‘이레그’ 라는 단언데,

 

사 32: 1-4

보라 장자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물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들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이게 바톨로게오이레그라는 뜻이에요어눌한 자그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그리스도가 오시면그 중언부언이 그리스도를 만나면 분명한 말이 된다는 거예요귀도 뚫리고 눈도 열리고 말도 분명해진대요떠듬거리지 않고중얼거리지 않고분명하게 된다고 그래요그 바톨로게오를 그냥 헬라어로 풀어버리면 코포스모기달로스인데요 우리말로 바꾸면 귀가 먹어 말을 더듬는이런 뜻이에요근데 그 말이 성경에 또 한 번 나와요볼까요?

 

막 7:32-35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이게 코포스모기달로스 에요한 단어로 바꾸면 바톨로게오]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귀가 먹어 말이 안 되는 자들이란 뜻이에요이게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여기서 안수라는 말은 단순히 이렇게 손을 얹다가 아니라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오른 손권능의 손이거는 말 그대로 권능능력을 의미하는 거예요그 능력을 내 위에 두어주세요이런 뜻이에요손 얹어주세요이런 게 아니라능력을 나에게 두어 그 능력을 나에게 두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거예요듣고 말하는 문제를.]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 하더라

 

손가락을 귀에다가 대셨어요그 성경에서 손가락구약성경에서 에스바’ 손가락이라는 단어는 항상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 가리키는 것그래서 악인에게도 그 손가락은 그런 의미로 쓰이고 하나님에게도 그 손가락은 그런 의미로 쓰여요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돌판에다가 친히’ 쓰셨다라고 할 때 그게 손가락이라는 뜻이에요손가락으로 쓰셨다율법이 뭔지 가르쳐주기 위해서그러죠그러니까 손가락예루살렘그 샬롬을 가르치기 위해 가리키는 것그게 손가락이란 말에요그러니까 주님의 손가락이라니까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능력 이런 뜻이죠그것이 막힌 귀에 가면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면 어떻게 된다그게 뚫린다는 거예요그게 뚫리고 그분의 침이 혀에 붙어버린다라는 의미로 써요여기에아교로 꽉 붙여버리다이런 뜻이라고 했죠?

 

침이 뭡니까율법에 의하면요 부정한 이가 침을 뱉아 그 침을 맞으면 그 사람이 부정해져요근데 정한 이의 침이 상대방에게 가면 어떻게 돼요정해져요그게 뭐냐면 나쁜 말인간이 갖고 있는 물 있죠입으로 나오는 물술 먹고 토하는 거 말고침밖에 더 있어요?입으로 나오는 그 물에 의해 어떤 이는 부정해지고 어떤 이는 정해지는데 우리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침그것이 그의 어눌한 혀바톨로게오그 혀에 붙어버린다고 그러는데 그 혀가 글로사에요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이라고 번역된 그 말.

 

제가 방언이 뭐라 그랬어요다른 거 다 잊어버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진의가 아닌 표피적이며 문자적인 것으로 그냥 전해지면 그게 내용 없는 방언이라고 그랬죠피리소리거문고소리생명 없는 소리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그걸 글로사라고 하잖아요?고린도전서에서그 글로사에요그 텅 [tongue].혀의 방언에 예수님의 그 침그 진리의 말씀이물이 짝 붙어버리자 그의 혀가 풀렸다그러죠그게 그의 혀가 구속되었던 것에서 풀려났다이런 뜻이에요.

 

그리스도가 귀먹고 말 어눌한 바톨로게오그러한 자에게 가서 그 진리로 뚫고 들어가면 먼저 그 귀가 열리고 그 귀가 열리면 그 혀가방언[tongue]을 말하던 그 혀가중언부언하던 그 혀가 풀려 분명한 말을 한다이런 뜻이에요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사람들은 중언부언하지 말라그랬어요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한다고요말을 많이 하여야 들을 줄 아는지라이렇게 이야기를 하세요주님께서그래서 뭐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으실 줄 알고이런 식으로 이제 번역이 돼 있는데 거기서 듣는 것의 주체는 그 중언부언하는 자들이에요원어로 보면하나님에게 들려주기 위한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여기서 말을 많이그러니까 폴로로기야’ 라고 쓰는 그 단어를 번역한 건데 그 폴로로기야는 많은대부분 이런 뜻의 폴로수와 로고스의 합성어에요그러니까 대부분의 그 말중언부언하는 자들의 말이 대부분의 말이거든요그런데 주님이 그거 말하지 마,라고 하시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대부분의 폴로로기야그 말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그 말율법적인 그 말문자적이고 표피적인 그 말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그 말그 말 안에 들을 것이 있다라고 생각해이런 말이에요진짜 들을 건 골방 안에 은밀한 곳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주님이 그래요중언부언하지 마그거 외식하는 자야근데 사람들은 그 중언부언하는 그 많은 말대부분의 말이라는 거예요 그게그 말 안에 들을 것이 있다고 생각해이런 말이에요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을 줄 알고 많이 반복해서 하는데 그거 아냐그냥 한 마디만 해도 돼이런 말이 아니란 말에요.

한 마디를 해도 진리의 그 말을 해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너희가 간구하기 전에구하지 전에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그래요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너희가 구하기 전에이게 아이테오빚 갚으세요라는 말이라고 했죠우리가 하나님께 뭔가를 구한다는 건 하나님당신이 나에게 주기로 한 그거 주세요그걸 우리가 하나님한테 구한다라고 해요성경이요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건 나의 결핍을 채우시기 위한 어떤 것인데 우리는 이 현상계 속에서 그 나의 결핍을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그거 없으면 나는 죽어요라고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결핍이라고 생각하는 거와 아무 관계가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가 아이테오구하기 전에 너희들은 엉뚱한 거 구하고 있다는 거죠그 하나님은 너희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아신다그래요우리의 결핍이 뭡니까생명이에요하나님의 은혜그 사랑그 호흡그거 주시겠다고 하는 거예요하나님은.

 

근데 우리는 아니요그거 말고요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산자로 살 수 있는 어떤 자원이나 에너지 달라는 거예요우린 자꾸.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거기에 사용해버리는 거죠그게 중언부언이라는 거예요바톨로게오개구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개구리들의 말바톨로게오그런 말 하지 말라는 겁니다우리의 결핍그것으로 기도하라는 건데 여러분이 그 결핍이 정말 여러분의 결핍이에요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이 가난한 자에요푸토코스에요근데 그 결핍이 아닌 다른 결핍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푸토코스한 자가 아니에요패네스 한 자죠육신에 필요한 것들 그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 있는 거.

 

그러니까 이거는 사활을 걸만큼 중요한 거예요이 구분은그러면서 주님이 그래요너희들에게 내가 기도를 가르쳐줄게너희들의 기도는 요만큼이야고걸 주기도문이라고 해요고만큼 줬어요니들의 기도의 내용은 다 요기에 들어가 있어야 돼그 요만큼.

그래서 주기도문으로 마칩시다그러는 거예요장로나 목사한테 기도시키면 길게 하니까 짧게ㅎㅎ다른 의미 없어요짧게 끝내자그게 기도에요근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세요일용할 양식 이외에 그것도 그 이야기는 아니지만우리가 이 세상에서 산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것을 구하는 내용이 단 한 줄이라도 있습니까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님의 일하심 그 하나님의 사랑 그 복음의 내용이에요그걸 프로슈모카이기도라고 한다니까요.

그 기도를 열심히 하시면 돼요다음 주에는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죠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참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정말 우리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일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존재에게 그저 뿌려대는바람에 날리는 겨 같은 그런 말은 아닌지

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가르쳐주신 바로 그 기도 그리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그 내용 마음에 잘 새겨서

우리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짜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