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35.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Hebrew 2023. 5. 20. 22:21


산상수훈 35번 말씀
제목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본문 : 마 6: 8-9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멘.




이제 우리는 그 유명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당도했습니다. 한 팔 년 전쯤에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라는 그 책에서 그 주기도문 부분을 강해를 한 적이 있는데 조금 더 깊게 이 부분을 다뤄보도록 할겁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의 그 구체적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서 왜 뜬금없이 이 주기도문이 산상수훈 가운데 이렇게 떡하니 기록돼 되어 있어야 하는지 먼저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이라는 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설교를 하신 거거든요. 제자들에게. 근데 거기에 왜 이 기도의 내용이 이렇게 가운데 딱 들어가 있어야 하는지 한번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5장에서 살인과 간음과 거짓증거라는 그 계명의 진의를 설명해주신 주님께서 그 세 가지를 잘 이해해서 마음으로 간직하게 되면 그것이 곧 십계명의 그 상위 다섯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며 그것을 이웃에게 잘 설명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웃사랑이다, 라고 정의해주셨죠? 그러니까 이웃사랑, 그 위의 다섯 계명은 사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뭔지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죠. 그분이 누굴 줄 알아야 그분 말고 다른 신이 뭔지를 알아 우상을 안 섬기죠. 그런데 그분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위의 그 다섯 개는 이렇게 너희들이 살인하지 마, 간음하지 마, 거짓증거 하지 마 이걸 잘 알아서 그게 무엇인지 잘 깨달아 마음으로 갖고 그걸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설명해 줄줄 알면 그게 바로 하나님 사랑인 거야. 이렇게 인제 말씀해 주시는 거죠? 그래서 바로 그 마지막 항목, 즉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넷 중에, 그 넷을 완성하는 마지막 하나 라고 했죠? 고드란트 가 거기거 나오는 거죠.


그 사랑까지가 이렇게 성취가 되면 그 상태를 뭐라고 그런다? 온전이라고 그런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이 하나님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렇게 끝나는 거죠. 그거는 하지 못 할 것들을 우리에게 요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주눅 들게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너희들 수준에서의 온전이 그거야. 하나님의 어떤 도덕적 윤리적 측면을 열심히 쫓아가도록 노력해야 돼, 가 아니라 온전해라! 라니까요. 그거는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우리 수준에 맞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런 온전의 수준을 제시하신 거죠?


그리고는 6장으로 들어와서 맨 앞의 단어가 프로세코 라고 했죠? 주의해라! 그렇게 너희들이 계명을 사랑으로 완성을 해서 너희들이 이제 흘려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이제는 주의할 것이 있는데 프로세코, 이렇게 시작을 하는 거죠. 그 주의할 것들이 뭐냐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 사랑을 마음으로 갖고 이웃에게 흘려줄 때 주의해야 하는 건 이거야. 그러면서 주님은 그 사랑 흘림의 그 행위를 사랑 전파의 그 행위를 엘레모수네, 구제라는 단어와 프로슈코마이, 기도라는 항목으로 바꾸어서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해서 우리의 종교행위와 그 선행이라는 그것들의 뿌리가 반드시 그 사랑에 근거를 두는 것이어야 함을 피력하시는 거예요.
그게 대표적인 거잖아요. 종교행위의 대표적인 게 기도고 또 우리가 내놓는 선행의 대표적인 게 구제니까 그 둘은 바로 이 사랑이 내용이어야 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너무너무 하고 싶어 하고 또 너무너무 잘 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구제 그런 종류의 기도 그런 거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구제와 기도는 바로 너희들이 그 계명을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가져, 진리를 마음으로 가져 그것을 사랑으로 너희들이 이해했을 때 그걸 흘려주는 거 그걸 근거로 하지 않으면 다 헛 거라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기도와 구제라는 항목 그것으로 다시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사랑을 할 때는 이런 걸 조심해야지. 프로세코, 이렇게 설명해주는 거죠.


모든 종교행위와 선행 등은 전부 사랑에서 발출이 되어 사랑으로 수렴이 되는 사랑의 열매여야 아가페적인 것이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는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아가페와 상관없는, 불교신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내놓는 그런 구제, 그런 종류의 구제나 그들도 하는 그런 기도 그건 성경이 요구하는 구제, 기도 아냐,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죠? 그래서 구제를 말씀하시면서 말씀으로 구제를 할 때에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선 안 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가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 아니라 그랬어요. 바리새인들은 그 정도의 유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목숨 걸고 하나님 섬겼던 사람들이란 말에요 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라는 그 어구를 직역하면 나타난, 그 표피적인 것으로, 그러니까 표피적 율법해석으로 말씀을 이해하여 그것으로 넘겨주려고 하는 거 그건 구제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따라서 그 구제, 그 사랑의 흘림의 내용은 왼편은 모르는 오른편의 것이어야 돼, 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그 식의 구제,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거긴 손이라는 단어도 없다고 그랬어요. 오른편의 것이 왼편이 모르는 거. 왼편의 것들은 모르죠. 왜? 비밀이니까. 무스테리온이니까 모르죠. 그래서 오른편의 사람들만 안다니까요. 그 진리는. 그걸로 해. 그걸로 엘레모수네, 구제 해. 그러는 거죠.


주님은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그렇게 나타난 것 안에, 그 내용은 있잖아요? 그 내용, 그걸 은밀한 것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 은밀한 것으로 이렇게 구제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밀한 것 안에, 엔 호 크로푸토스 그래요. 엔, 그 은밀한 것 안에 있는 내용이라는 게 있죠? 그죠? 그 안에 있는 하네이로스, 분명한 것으로 디도미, 넘겨주신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에요. 넘겨주신다. 파라디도미.
마찬가지로 기도할 때도 프로슈코마이, 기도할 때도 회당적인 것이나, 회당에서 큰길가 모퉁이에서, 이게 큰길가가 뭐라 그랬어요? 성전마당 그랬죠? 성전마당 모퉁이의 것으로 역시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타난 표피적인 것으로, 성전마당 적인 것으로. 희생 제사만 열심히 드리고 있는 그 성전마당 적인 것으로 기도를 하면 그건 상에서 차단이 되는 가짜기도가 되는 거야. 라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그랬죠?
상은 이미 받았느니라, 라는 그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건 상에서 차단되는 것이다.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다, 라는 그런 말이라고 했어요.


따라서 기도를 할 때도 어떻게 하라고요? 진리의 골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안에 그 은밀한 것으로 기도하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란 말에요.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기도해라. 그렇게 되면 뭘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중언부언 안 할 수 있단 말에요, 그러면. 그러니까 중언부언한다, 라는 건 골방 안에 안 들어가고 성전마당의 모퉁이 적인 것으로 그렇게 그 말씀을 전해주고 그것으로 소통하게 되면 그것이 중언부언이라고 그랬습니다.


자, 그렇게 구제라는 것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구제는 그들을 정말 그 멸망에서 네크로스의 그 죽음에서 건져내는 게 구제잖아요? 잠시 이 세상 속에서 뭐 밥 몇 숟가락 더 먹게 해주고 이 세상의 그 가난에서 건져내는 거 그거는 진짜 구제 아니란 말에요, 그건. 그런 것도 필요하죠, 해야죠. 그러나 진짜 구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페네스 정도의 가난이 아닌 푸토코스의 그 가난에서 그거 없으면 진짜 죽는 거. 그게 푸토코스라고 그랬잖아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에서의 그 가난. 그 푸토코스의 가난에서 그 사랑으로 건져내는 걸 구제라고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 이웃을 그 푸토코스에서 건져내는 그 진리 흘림의 행위에 초점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구제도.


그리고 기도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서 그 뜻이 무엇인지를 잘 구하고 찾고 구하는 자에게 찾게 해주신단 말에요. 잘 구하고 찾고 그걸 하나님께 고백하고 흘러내고 이 전체가 다 프로슈코마이에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고백하고 흘려내고. 이 전체가 다 프로슈코마이 기도란 말입니다. 흘려내면 그것이 참 기도야, 라고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엉뚱한 것들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짜 소중한 걸 구해. 그건 다 준다. 그러는 거예요, 그건 다 준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고 싶어 안달이 난거지 니들이 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냐. 근데 니들이 그걸 깨달음을 얻어 요구를 한다고 한다면 내가 왜 안 주겠니? 이런 말이에요. 다 준다, 라는 거죠.


그래서 주님은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너희가 구하기 전에 이미 너희 구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게 직역하면 하나님은 너희의 결핍을 아신다, 라는 말이라고 했죠? 우리는 이 육적 세상 속에서 이 육적 욕망, 에피뚜미아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구하는데 그걸 우리의 결핍이라고 착각 하는 거예요. 그것만 메워지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만 메워지면 나는 이 상황에서 구원될 수 있어, 라고 믿는 거. 그거 아니고 너희들의 결핍은 그분이 아신다, 그러는 거예요. 그분이 아신다. 그러면 그 결핍을 구해야 그분이 응답하시겠네요? 그러니까 그거 알아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니까 기도는 이렇게 해! 라고 하며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시는 거란 말에요. 그럼 기도가 뭐냐고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딱 고만큼 기도가 뭐예요?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그 뜻이 그 기도의 내용이어야 되는 거란 말에요. 우리가 원하는 걸 무조건 그냥 자해를 하면서까지 간청하고 강청하는 게 아니라.


요 16: 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묻지 아니하리라, 라는 이 말은 ‘에로타오’ 인데요 구하지 아니하리라 기도하지 아니하리라, 이런 말이에요. 어떤 때가 오면 너희는 절대 에로타오, 육적 기도를, 프로슈코마이나 아이테오의 그 기도 진짜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것을 구하는 그 기도가 아닌 우리 인간들이 육적 욕망으로 구하는 그 기도를 에로타오라고 하거든요. 기도라는 단어가 몇 개 있어요, 헬라어에도. 그래서 그게 에로타오라는 단어가 여기에 나온다고요. 너희들은 그 날이 되면, 진리를 알게 되면 나에게 이제 더 이상 그런 기도는 안 할 거야. 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는지 보세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진리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무슨 말일까요? 이게? 그 날이 되면 진리가 너희들에게 주어지면 너희들은 나에게 그런 식의 에로타오, 그 기도는 안 할 거야. 이제. 런데 어떤 것은 구하게 될 거라는 거예요. 이 단어는 또 아이테오에요. 너희들은 그 날이 되면 에로타오, 나에게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그 기도는 안 하게 될 건데 어떤 기도는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 기도는 아버지가]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쉠, 이름이 뭐라 그랬어요? 쉠. 쉰하고 멤이니까, 분석된 말씀. 진리란 말에요. 그래서 나중에 이름은 말씀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그러니까 이름이란 단어가 나오면 그냥 진리, 말씀이라 바꿔서 읽으시면 돼요. 여러분들은. 내 말씀 안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전한 그 말씀 안에서 다 들어줄 거야 그러는 거예요. 그 구하는 거. 너희가 진리를 알고 구하게 되는 그거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는 ]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안 구하긴 왜 안 구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문을 외웠던 사람들이라니까요. 근데 주님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 너희들이 그렇게 구한 기도는 하나님이 구라하고 한 그 기도 아냐. 그런 말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너희 지금까지 나에게 기도 한 번이라도 했니?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은 다른 종교인들도 하는 그런 우리의 이 보편적 인간, 아담의 자존심을 챙기고 이 보편적 아담의 유익과 안식과 기쁨과 행복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하나도 안 듣는다는 것이에요. 너희는 나에게 한 번도 기도한 적 없어, 그러는 거예요. 한 번도 기도한 적 없어. 그러나 너희들에게 진리가 가게 되면 너희들은 구할 거야. 아이테오, 나에게 구할 거야. 기도할 거야. 그러면 그건 다 받을 거다. 그러는 거예요. 다 받을 거다.


자, 그러니까 보세요.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구해야 할바를 아는 게 먼저에요. 그리고는 그거 없으면 나 죽어요,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돼요. 그거 달라고. 그러니까 에로타오의 기도는 이제 영에 속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점점 없어져야 하는 기도이고 아이테오의 그 기도, 프로슈코마이는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서 나와야 하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기도인 거예요.


그래서 기도의 내용이 이제 점점 바뀌게 되는 거죠? 많은 분들이 뭐 이런 기도는 해야 됩니까? 이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됩니까? 자꾸 물으시는데 다 하세요, 다 하세요. 괜찮아요. 그런 기도의 그 형식에서도 자유로워져요, 나중에는. 어떻게? 어차피 진리를 알게 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은 모든 걸 합력시켜 그걸 진리로, 선으로 완성시키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기도의 내용에서도 나중엔 자유로워져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가르치는 건 이런 기도의 내용은 아니잖아요? 이걸 알아야 ‘그’ 기도에서도 자유로워진다니까요.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그냥 들어만 두세요. 나중에는 그 기도의 내용에서도 자유러워지게 돼 있어요. 뭐 이런 기도는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그런 말도 안 나와요, 나중에는. 나중에는 그분이 내 아버진데 못 할 말이 뭐가 있어요?


그러나 지금 워낙 기도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분리해서 나누어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24절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힙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의 행위를 하던 제자들에게 너희의 기도는 다 꽝이야, 라고 이야기하세요. 너희들은 기도를 한 번도 안 한 자들이다, 그래요. 그렇게 너희의 결핍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먼저 알고 계신다, 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너희들은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기도해, 라고 이야기한단 말에요. 이렇게 기도해. 당연히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분의 작정 안에서, 그 울타리 안에서 드려져야 하는 거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와 인생을 창조하신 건 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육적 아담들의 육적 소원을 이루어주어서 그들이 원하는 세상과 인생을 이렇게 공여해주기 위함이 아니잖아요? 이 역사를 인생들아 니들이 잘 발전시키고 번영시켜봐. 그리고 살기 좋은 곳으로 공평한 곳으로 만들어봐, 라고 준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걸 훌륭하게 해낸 인간들을 칭찬해주기 위해 인생들을 만든 것도 아니고요. 근데 기독교의 목표지점이 그렇게 정해져버렸다니까요. 교회는 이 사회에 기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지는 데에 반드시 공여해야 되는.그런 곳이 되어버렸단 말에요. 그 세상에서 나와야 되는 게 교횐데. 따라서 하나님은 인생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어떠한 길로 내달리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당신의 뜻만 이루어가세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뜻 안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뿐이란 말입니다.


인생과 역사의 창조 목적과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그분을 드러내고 그분의 뜻을 밝히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걸 해야 하는데 인간들이 엉뚱한 것들을 구하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 인간들의 그 기도에 휘둘리는 분이냐고요? 그분이? 그럼 나중에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고 천국을 지옥으로 확 만들어버리면 그럼 어떡할 거예요? 그 변덕이? 그러시면 안 되는 분이잖아요? 그분은? 그러니까 보좌를 흔드는 기도니 뭐니 이딴 소리 하는 건 그건 무식한 소리인 거예요.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를 흔듭니까? 인간들이요? 그런 보좌는 있지도 않지만. 영이신 하나님이 뭐 어느 의자에 앉아 있어요? 보좌? 보좌를 흔드는 기도, 아주 베스트셀러드만요? 그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거예요.


자, 그렇게 그 뜻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작정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뜻이 자기의 인생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 기특한 자리로 내려가서 그걸 구하고 그걸 흘리는 삶을 사는 거, 이게 신앙생활이에요. 그 속에서 드리는 올바른 기도인 거고. 그걸 사랑이라고 그러고 그걸 구제라고 하고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쓰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주님 말씀 중에 너희가 구하기 전에, 라는 그 어구에 아이테오, 라는 단어가 쓰인 거예요. 그 단어는 뭐라 그랬어요? 채무변제를 요구할 때 빚 갚으세요!
이렇게 쓰는 단어라고 그랬죠?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을 빚이 있다, 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로 쓰는 단어란 말에요. 왜 그걸 빚이라고 굳이 그렇게 표현을 할까요? 우리가 원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주시마, 라고 약속 한 거. 작정하신 거, 그걸 창세전 언약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건 그분이 나에게 갚아야 할 빚이라는 거죠. 그걸 사랑이라고 그래요. 그 아가페, 그거 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당연하게. 그거 주세요! 나중에 우리가 조금 이따가 살펴보겠지만 당연하게, 마치 당연하게 친구 집에 가서 문 두들기면서, 새벽에 빵 내놔! 그러는 거. 빵 내놔! 그게 아이테요에요. 네가 빵 맡겨놨냐? 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당당하게 준다고 했으니까 줘야지. 그거 내거 아냐? 준다! 그랬으니까.
이렇게 구하는 걸 기도라고 한다니까요. 그걸 아이테오라고 한다니까요.
자 그럼 그 빚, 우리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그 빚이 뭔가를 먼저 확인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요 4: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거야, 아니 네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이 있어. 그걸 네가 나에게 구해야 되는 건데 여기서 쓰인 단어가 아이테오에요. 네가 마땅히 나에게 달라고 그러면 나는 줄 수밖에 없는 그게 있어. 근데 니가 그걸 모르니까 나에게 못 구한다. 그러면서 구해야 할 게 뭔지도 가르쳐주죠? 뭐예요? 생수라고 그러잖아요. 너는 나에게 생수를 구했어야 돼. 그거 갚으세요, 라고. 당신이 나에게 준다고 한 거, 그거. 그럼 내가 당연히 그거 너에게 줄 거야. 그거 주러 온 거예요, 지금요. 그래서 우물가로 오신 거예요. 주님이. 그럼 그 생수는 뭐예요? 조금만 더 뒤로 가보죠.


요 7: 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여기 그 배는 성전입니다. 우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난다. 이건 에스겔서 또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흐르는 거 그리고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에서 물이 흐르는 거,강이 흐르는 걸로 이렇게 표현했죠? 다 똑같은 얘기에요. 요한계시록에서는? 역시 똑같은 모양이 나오죠? 그 이야기죠]
이는 [그 생수는 뭐예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진리의 성령, 말씀이네요? 그러면? 그 진리, 그 복음, 그 말씀 내게 주세요. 그러면 당연히 주신다고 그래요. 바꾸어 말할 게요.
하나님의 백성은 당연히 그걸 요구하게 돼 있더라는 거예요. 거기에 목마르게 돼 있더라는 거예요. 딴 거에 목마르지 않다, 라는 거예요. 그들은. 물론 처음에는 엉뚱한 거에 목말라서 자꾸 그걸 구하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야하는 곳은 이 생수를 구하는 목마름의 자리로 가는 거예요. 목마른 거예요. 자꾸 달라 그러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있는 이에게 자꾸 달라는 거예요. 자꾸 궁금해져. 자꾸 더 알고 싶어. 더 진지해져. 그게 궁금하니까 이렇게 차도 이렇게 막히는데. 요즘 차가 왜 이렇게 막혀요? 몇 주 새에, 겨울이 되면 원래 이래요? 한국이? 아 세상에 한 시간 반, 두 시간씩 걸리니까. 그래도 궁금하니까. 그죠? 궁금해요? ㅎㅎㅎㅎㅎ.
궁금하면 오백 원. ㅎㅎㅎ. 이렇게 궁금하니까, 그렇게 목마르게 돼 있단 말에요. 거기에.


자, 그렇게, 근데 ‘목이 마르거든’ 이라고 그랬잖아요? 네? 목마르거든. 그런데 목이 안 마르면? 당연히 그거 안 찾네요, 그죠?
그러면 당신의 백성은 반드시 그 물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목이 마르게 하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러는 거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말씀에 갈급해하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성도에요. 그거 때문에 아, 오늘은 또 그 우리가 받을 말씀 안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이렇게 궁금해 하고 흥미진진해하며 그렇게 말씀 앞에 오는 사람, 마르다 같은 사람들, 아니, 마리아 같은 사람들. ㅎㅎㅎ.


자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도 말씀의 기갈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던 거예요.


암 8: 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기갈이라는 것은 굶주리고 목마른 걸 한 단어로 기갈(飢渴) 그러죠? 근데 양식이 없는 거 아니고 물이 없는 거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 그거 없는 기갈. 그걸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 보내시는 거예요]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그런데, 이게 인제 이 역사의 현실이에요. 이 날들의 현실. 그런데 어떤 이들만 바로 ‘그것에’ 목마르는 거예요. 근데 어떤 이들은 이 아래의 물, 바다의 물, 율법의 물, 저주의 물로 목을 축이려고 하는 거 이걸 율법주의라고 해요. 이게 세상 종교라니까요. 아니, 아담들의 본능, 본성. 목마른지 모르는 거예요.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의 힘으로 그 목을 축일 수 있는 자원이나 그리고 인간들의 어떤 가능성, 이런 것들이 쌔고 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니까요. 해보는 거예요. 목을 축여보는 거예요.
근데 어떤 이들은 아, 없어, 이 세상엔 없어! 이 목마름을 해결할 건 이 세상에 없어. 이걸 구해야 돼. 하나님 그거 주세요! 주신다고 그랬잖아요? 그 생수. 라고 구하는 그걸 기도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마태복음의 병행구절이 나오는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바로 아래에 요런 내용이 붙어 있는 거예요. 그거는 같은 네러티브로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여기서 한 번 주기도문 가르쳐줬는데 그거 다 잊어버리고 또 저기 가갖고 또 한 번 가르쳐달라고 그래서 또 가르쳐준 거, 이게 아니라 요 이야기가 그대로 옮겨져 있는 거란 말예요. 보세요.


눅 11: 1-10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보세요, 여기 1절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라고 이렇게 개역성경에 번역이 돼 있으니까 아, 예수님께서 어디서 이렇게 기도를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이 그 기도가 끝날 때까지 요렇게 기다린 거죠. 그러다가 기도가 끝나니까 주님, 우리에게도 기도를 좀 가르쳐주세요.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좀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그랬더니 주님이 그래? 그럼 이렇게 기도해, 라고 기도를 가르쳐준 걸로 이렇게 번역이 돼 있잖아요? 이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이게 산상수훈의 중간에 기록돼 있는 기도문이란 말에요.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열심히 설교하다가 갑자기 기도하다가, 또 설교하다가, 이러지 않았을 거 아네요?


산 위에, 물론 그 산은 성전의 의미란 말이죠? 성전마당에서 이게 뭔지를 가르쳐주는 게 산상수훈이잖아요? 그렇게 쭈욱 하나님의 뜻, 그 말씀의 진의가 뭔지를 쭈욱 설명해주는 거죠. 그죠? 그게 뭐라 그랬어요? 프로슈코마이! 사랑을 이렇게 흘려주는 게 뭐라 그랬어요? 기도라 그랬잖아요. 기도를 하다가 잠깐 Pause, 마치다, 가 아니에요 그 단어는. 그러자 주님 우리에게도 그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기도를 우리도 할 수 있게 가르쳐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랬더니 주님이 뭐라 그래요?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이 이게 ‘알투스’ 빵이에요 빵, 떡]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보세요, 그 위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떡을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그랬어요. 그리고는 그 밑에다가 어떤 비유를 붙이느냐 하면 떡 세 덩이, 그러니까 세 떡이에요. 세 번째 떡이라고 해도 좋아요. 셋의 떡, 트레이스 알투스 그 떡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비유로 붙어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주기도문이란 이야기, 그게 생수가 그 양식, 그 떡의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까 이 떡의 이야기, 그걸 주세요, 라고 하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줄 거야. 반드시 줄 건데 그건 어떻게 받는 거냐 하면, 이라고 비유를 붙여놓은 거예요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마태복음에서는 너희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할라면은 골방에 들어가, 그리고 문 닫아, 그랬단 말에요. 골방에 들어가서 문 닫으면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안식.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은 안식하고 있어요.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벗됨을 인하여서의 이 벗이 필로스죠? 사랑이란 뜻이에요. 이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 아비와 자식, 자식과 부모, 형제 이런 게 그 인간적, 필로스의 사랑과 관계잖아요? 그 관계를 타고는 진리가 않 전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가장 먼저 진리를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이들이 누구에요? 그 가족들이죠? 그러나 그것을 타고는 못 갈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가 진짜 자기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간다, 이런 얘기에요. 왜? 하나님이 이미 주려고 작정한 자니까.이런 말이에요.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러니까 이것도 떡에 대한 이야기네요? 그죠? 아무거나 두들긴다고 열리는 게 아니에요? 아무거나 구한다고 다 주는 거 아니네요? 다 한 네러티브 속에 있는 이야기란 말에요. 그 생수, 그 떡, 그 진리에 관한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요 제자들이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문을 보면 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가르친 그 가르침과 같이 우리를 기도하게 해주세요, 이런 말이에요. 목적어에요.
우리를 기도하게 해주세요. 그럼 요한도 제자들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가르쳤다는 거네요. 그죠?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어떠한 내용의 진리를 가르쳤더라, 라는 설명이 없어요. 세례 요한은 뭐 하러 온 사람입니까? 세례 주러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에요. 그런데 세례 주면서 뭐를 예언하라 그랬어요? 세례를 막 주다 보면 어떤 이 위에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릴 텐데 너는 그를 가리켜 이가 메시아다, 하고 죽어라! 그랬단 말에요.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뭘 얘기했어요? 메시아가 온다, 메시아가 온다. 이게 선지자들이 한 이야기잖아요? 메시아가 온다. 니들 그거 그 제사, 그 제물로는 절대 구원 못 받아. 메시아가 온다! 그 성전 진짜 성전 아니야, 라고 했단 말에요. 그러면 그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완성하는 이는 누구겠어요? 이가 그이다! 라고 가리키는 이겠죠? 그래서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 요한의 때 까지다, 라고요. 그래서 요한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완성하는 구약의 선지자의 끝이에요.


그런데 요한도 몇 마디 했어요. 광야에서 성전 마당에서. 뭐라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러면 지금 주님께서 하시는 이야기의 내용.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그 기도의 내용은 회개와 천국에 대한 거네요? 그죠? 그래서 제자들이 그러는 거예요. 세례 요한이 그렇게 가르친 것 같이 우리도 기도를 하게 해주세요. 우리도 그 내용으로 가르칠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했을 때 주기도문이 탁 나와서 제시된 거니까 주기도문의 내용은 회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요. 섬김, 하나님의 섬김, 하늘의 섬김에 관한 이야기란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세례 요한의 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그 말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걸 전파복음이라고 하는데 요즘 명동이나 저 종로 같은 데 나가면 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면서 무슨 되게 큰 십자가를 질질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 있잖아요? 그런데 그거 보고, 그게,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는 단초가 될 수는 있지만 그거 자체로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내용이 있어야 돼요. 가르치는 복음. 그죠? 단기 선교 같은 데 가서 그 뭐 그냥 복음 전하지 말라는데 막 가가지고 예수 믿어야 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속하셨대, 그리고 홀랑 와버리면 그게 전파복음이에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랑 다를 바가 없어요. 내용을 설명해줘야 된다니까요. 아주 깊이 장시간.


그런데 그 전파복음은 그 내용의 뼈대, 틀은 제시해 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세례 요한이 틀을 제시해주고 간 그것에 아주 짤막한 내용을 주님이 준 게 주기도문이란 말에요. 그러니까 그 내용을 잘 알면 아 세례 요한이 그거 가르치고 간 거구나? 라고 그 안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기도라는 건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들을 요구하여 얻어내는 그런 행위가 아니란 말이에요.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자, 그런데 보셨다시피 이 주기도문 밑에 비유 하나가 갖다가 딱 붙는데 이 비유를 혹자들은 강청기도의 능력을 주장할 때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쓰는 거죠? 강청하면 다 들어줘. 귀찮아서라도 들어준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아니에요, 귀찮으면 죽여요, 하나님이요.귀찮게 한다고 뭘 더 주시겠어요? 하나님이? 그 먼지 같은 것들을. 여러분이 주의해서 보여야 할 것이 주기도문에 붙어있는 이 비유에 세 떡과 그 세 떡을 필요로 하는 어떤 이와 그 세 떡을 가진 어떤 이와 그 둘을 중재하여 연결을 시키려고 하는 어떤 이가 나와요. 셋 다 친구네요, 그런데? 그리고 세 떡이 나와요. 세 떡은 조금 아까 말씀드렸듯이 세 번째 떡, 세 떡. 떡 세 덩이가 아니라. 이런 의미에요. 그럼 그 세 떡이 뭔지 한 번 볼까요?


요일 5: 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기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물, 피, 성령 이건 하나래요. 뭐요? 진리! 그걸 내용으로 담고 있는 표피적인 것들인데 그 세 개. 그 안에 들어있는 이 진리가 우리가 먹어야 할 떡이죠? 우리가 먹어야 할 말씀이잖아요? 그래서 세 떡이에요. 세 떡은 셋이면서 하나네요? 하나님이란 말에요.
그 진리의 내용이 또 하나님이니까. 자, 그 세 떡. 참 떡. 예수님이 내가 바로 하늘의 참 떡이다, 그랬을 때 그 ‘참’이 진리라는 단어에요. 알레떼이아. 내가 진리 떡이야, 그랬잖아요. 이게 그 진리가 참 떡이란 말에요.


근데 밤에 여행을 하는 친구가 하나 찾아와요. 근데 굉장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에요. 떡 좀 줘. 그랬단 말에요 와가지고. 그러니까 그 친구가 그 떡이 있다, 라고 확신하는 어떤 이에게 그 떡을 가지러 가는 거예요. 그 세 떡, 그걸. 여기에서 여행하다, 라고 번역이 된 ‘포유오마이’는 어떤 사람이 그 A 지점이라는 데서 B 지점으로 옮겨갈 때 반드시 여기에 그는 들어간다, 라는 걸 전제하는 단어에요. 예를 들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들은 여기에 들어가야 되죠? 이게 전제가 된 이 광야 생활 전체를 포유오마이라고 그래요. 여행. 이 신앙의 여정. 이게 포유오마이에요. 그 단어를 갖다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진리의 여정, 신앙의 여정에 있는 어떤 이에요. 어떤 인데 아직 밤에 있네요. 그 사람이. 그래서 밤에 니고데모가 밤중에 찾아오고 유다도 밤에 나가죠? 성경이 말하는 밤은 바로 ‘그 밤’이에요. 진리가 아직 없는 그 밤.
와서 나에게 떡이 필요해, 라고 했어요. 뭐가 필요한지 알았어요. 그죠? ‘구하는’ 거예요. 구하라,에요. 여기가. 그랬더니 이가 그 떡을 달라고 하는 이가 찾아오자 그 떡은 어디에 있어, 그리고 그 떡의 주인은 누구야, 라는 걸 알고 있어요.


자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 하면 그 율법, 살인 간음 거짓증거 이걸 사랑으로 알아서 그거를 흘려주면 이게 하나님 사랑이야,를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걸 구제 기도의 항목으로 설명하고 있고 거기에 붙어 있는 게 주기도문 이니까. 그걸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데 누가복음에 가봤더니 그 병행구절에 이 비유가 붙어있단 말에요. 그러면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고 맥락 속에서 요 비유를 이해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면 보세요.


누가, 그 떡이 필요한 자가 왔어요. 그럼 얘한테 떡을 줘야 되네. 그런데 그건 내 떡 아니잖아요? 그 떡 가지고 있는 그 떡 주인이 있잖아요? 그 세 떡의 주인, 진리의 성령. 지금 우리에게 친구로 오신 주님이 너희들 나한테 그거 달래야 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란 말에요, 지금. 그러니까 그 떡을 갖고 닫힌 문 안에서 아이들과 안식하고 있는 이는 누구? 진리의 성령! 예수님이란 말에요. 근데 누가 와서 두드리네요. 보세요, 그 밑에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는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누가 와서 두드린단 말에요. 마치 떡 맡겨 논 놈처럼. 뭘 알은 거예요? 자기가 구해야 할 바가 뭔지 알았어요.
그리고 그건 내가 아이테오하면 당연히 그분이 줘야 된다, 라는 걸 안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그러니까 주기도문은 이런 거야, 라고 지금 비유로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와! 나에게 와. 생수, 그 떡 내가 준다니까. 너희의 결핍은 그거잖아? 내가 준다니까. 왜 엉뚱한 걸 구하려고 해? 그거 구하러 오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찾아갔는데 뭐라고 그러면서 찾아가느냐 하면 내 친구가 나에게 떡을 달라고 찾아왔는데 내가 그를 먹일 떡이 없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먹일 떡이라고 표현을 한, 번역을 한 그 단어는 파라티데미라는 단어거든요.
근데 그거는 내가 그에게, 티데미가 뭐라 그랬어요? 성전에 이렇게 기명이나 아니면 그 기구들을 횡으로 이렇게 진열하고 진설해놓으면 그렇게 세워놓으면 그걸 티데미라고 한다, 그랬죠? 그럼 그걸 잘 이해해서 그 티데미 되어 있는 걸 이해해서 아, 그게 그거야? 라고 깨달으면 그걸 이스테미라고 한다, 그랬어요. 똑바로 서다. 거기에서 스타오로스, 십자가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그랬어요. 언약이에요, 그것이.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먹일 떡이 아니라, 진설할 떡, 진설병이네요, 그러면. 진설병이라는 건 백설기가 아니라 진설해놓은 떡이란 뜻이라고 하거든요. 그게 티데미, 알투스에요. 티데미 되어 있는 그 떡. 그거 나에게 없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에게 주세요, 내가 전해줄게요. 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여러분, 그 기도하다, 프로슈코마이, 이 단어, 아이테오, 요런 단어에 비슷한 말, 비슷한 용례로 쓰이는 말이 ‘휘페렌틴카노‘라는 단어에요 헬라어에. 근데 그 말이 뭐냐면은 중재하다라는 뜻입니다. 중보하다.
로마서 8장 마지막쯤에 가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강구한다, 기도한다, 라고 할 때 그 기도는 휘페렌틴카노에요. 프로슈코마이가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 뭐 하신다는 거예요? 중보하신다는 거예요. 진리의, 묵시의 그것과 이 세상의 것을 중보하여 그걸 하나로 만들어주는 거. 아, 이게 그거였군요? 라고 하는 거. 그러니까 받아서 이리로 전해주어 이걸 하나로 만드는 걸 휘페렌틴카노라 그래요. 그걸 기도라고 한단 말에요, 그것이. 그게 프로슈코마이고 그것이 아이테오란 말입니다.


우리가 친구,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친구는 뭐라 그랬습니까? 어떤 이가 위급한 상황에 빠져있을 때 그를 가서 도와 그를 건져내면 그거를 형제라고 그랬죠? 근데 그에게 그가 필요한 것들을 내가 주어 나와 동일한 것을 갖게 만드는 것, 동일한 마음, 한 마음으로 갖게 만들면 히브리사람들은 그걸 벗이라고 해요. 친구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햐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 이니라
그럼 뭐다? 친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빌리러 간 떡은 뭐예요? 아버지가 주신 말씀이란 말에요. 그 진리. 그게 뭔지 알고 그것이 없으면 이가 죽는다는 걸 알고 그리고 그것의 주인은 누군지를 알고 그리고 그건 구하면 반드시 준다는 걸 아는 니가 와서 내 문을 두들기는데 내가 안 주겠니? 필로스? 그런 인간적인 관계, 그거로는 안 줘. 그러나, 혈통으로 육정으로는 안 줘, 그러나 네가 와서 진심으로 그것이 뭔지를 알고 그것이 널 살린다는 걸 알고 그것이 네 형제를 살린다는 걸, 네 벗을 살린다는 걸 알고 구하면 내가 왜 안 주겠어? 그걸. 그건 반드시 준다는 거예요. 그 기도는 그 울타리 안에서 하는 거예요.


눅 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런 말씀 때문에 천일기도, 무슨 백일 철야기도, 그런 거 잘못하면 죽어요. 그리고 회사에 가서는 꾸벅꾸벅 졸고. 그런 거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건 여러분의 시간을 그 사람들한테 판 거예요. 그럼 최선을 다해서 일 해줘야 된다니까요, 나가서. 괜히 가갖고 뭐 나는, 내 이 일하는 시간을 쪼개어 나는 성경을 읽어.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일 하시라니까. 그건 도둑질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고 때 뭐 짧게 읽어봐야 머리에 뭐 들어와요? 들어오지도 않는 거 괜히 나는 읽었다, 자부심 챙기려고 그냥 하는 거지. 새벽에 진짜 그렇게 읽고 싶으면 새벽에 일어나셔서 조용한 데서 진짜 정성껏 읽어요.


여기에서 ‘구라하’ 가 아이테오에요. 구해! 그러면 디도미, 넘겨줄 거야 그래요. 구하라 그럼 주실 것이요, 가 구해 그럼 넘겨줄게.
빚 갚으세요, 라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말해봐. 넘겨줄 게. 당연히 넘겨줄게 찾아라, 재테오, 에요. 어떤 감추어진 것을 그 껍데기를 벗겨내어 찾는 거죠. 그래서 오, 찾았어? 이거네? 라고 하면 그걸 ‘휴리스코’라고 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거야. 찾으려고 해봐, 그러면 찾을 거야.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복음은, 진리는요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찾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열어줍니다. 근데 아무런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자기를 감춰요. 그래서 말씀을 살았다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를 감춰요. 한 번 해보세요. 여러분이 진지하게 그 말씀 앞에 서서 찾고 구하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자기를 열어줘요. 찾아봐, 그럼 휴리스코, 반드시 찾게 돼.
근데 구해야 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내용을 찾니? 바꾸어 말하면 그런 말이에요. 구해야 할 게 뭔지를 알아야 그 내용을 찾을 거 아냐? 그리고 그 내용을 찾기 위해 그 양의 문, 진리의 문을 두드릴 거 아냐? 거기 가서. 그 말씀을 두드릴 거 아냐? 그게 뭔지를 알아야. 그런 말이에요.


요 5:44-47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이게 재테오에요. 어찌 니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겠니? 이런 말이에요. 야, 니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진리가 아니라 사람의 영광, 율법이에요. 율법 안에 묶여 있는데 어떻게 나를, 내 안에 있는 그 진리를 니들이 찾을 수 있겠니? 이런 말이에요. 피스티스가 아니라 재테오란 말에요, 어떻게 니들이 날 찾아? 못 찾아, 니네는 니네는 날 못 찾아]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이 세상이 묶여 있는 건, 여기서 모세라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얘기하는 거예요. 너희들을 고소하는 건 그 율법이야.]
모세를 믿었더면 [니들이 율법으로 믿음을 가졌다면 당연히 그 율법으로 온 나를 통해 믿음을 가졌겠지. 46절이요.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을 거야. 내가 그 율법으로 왔으니까. 근데 내 말을 못 알아듣잖아? 그러니까 너희는 모세도 못 알아들을 거야, 그래서. 그래서 계속 희생 제사만 지낸 거야.]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 모세의 율법이 예수에 관한 기록이란 말에요]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그 율법도 믿지 아니하거든, 그것으로도 믿음을 못 가졌는데 어찌 니들이 내 말을 믿겠니? 어찌 니들이 내 말을 듣니? 그러니까 율법에 묶여 있으면 니들은 나 못 찾아. 니들은 진리 못 찾아, 그러는 거예요.]


요 7:34-36
너희가 나를 찾아도 [재테오]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유대주의 속의 그 유대인들은 예수 안에 담겨 있는 진리를 절대 못 찾는다. 너희는 절대 나 못 찾아. 그러는 거예요.


눅 12: 29-32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이게 재테오에요, 그런 거 찾지 마]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여기서 세상 백성들이 호 코스모스 에뜨노스에요. 이 세상의 이방인들 이런 말이에요. 그들이 구하는 게 너희들의 육, 먹고 마시는 거. 육신이 먹고 마시는 게 뭡니까? 이 땅의 것으로 우리의 이 기갈, 갈증을 해갈하려고 하는 거, 율법주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단순히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어떤 물질적인 어떤 것을 구하는 거 그 정도가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늘의 떡을 먹고 하늘의 생수를 마셔야죠. 그러나 이 세상의 율법으로 먹고 율법으로 마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율법은 반드시 근심을 갖고 오잖아요? 여러 번 설명해드렸잖아요?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심하지 마, 그걸로 구하면, 재테오 하려고 하면 너희들에겐 근심밖에 안 생겨.]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울 아시느니라
[그런 거는 너희들이 진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절대 너희 안 죽여,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진짜 먹고 마셔야 할 거는 아버지가 아는 그거야, 라는 말이에요. 아버지가 아는 그거. 그 결핍, 그거 먹고 그거 마셔야 되는 건데 그런 거, 율법적인 그런 거 구하면 어떡해?]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이게 통치에요. 섬김.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섬김이라고 그랬죠? 바실레이아. 너희들은 그분의 섬김을 구해. 그런데 뭐로 섬겨요? 말씀으로 섬긴단 말에요. 진리의 말씀으로. 그 진리 구해, 이런 말이에요]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너희들을 말씀으로 섬기기를 기뻐하셔. 그러니까 그거 달라고 해. 주신다니까. 그거 달라고 해. 주신다니까.


마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감추어져 있으면 찾아야 되겠네요? 재테오, 누군가가 찾지요? 구하라, 이제 찾아요]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찾았습니다!]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성경에서 밭이란 단어가 나오면 항상 그냥 성전이라고 바꿔 해석하세요. 밭, 막벨라 굴이 밭에 있었죠? 그리고 피 밭, 하겔다마, 밭, 성전 이야기하는 거예요. 옛 성전. 자기의 소유, 소유라는 건 부자 청년의 이야기, 뭐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에서도 제가 여러 번 설명해드렸지만 인간들이, 아담들이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 자기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이 육신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 것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기의 소유에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네가 가진 소유 다 팔아서 ‘가난한 자’ 들에게 주고 오라고 했죠? 그게 푸토코스거든요. 니가 율법 다 지켜서 너 굉장히 많은 걸 니가 열매로 맺고 있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데, 너 다 지켰다고 그랬잖아? 나한테? 그럼 그거 푸토코스한 이들에게 한번 줘보고 올래? 그랬더니 아, 그거를 어떻게 해서 내가 모은 건데 그들에게 나눠줘? 그 말은요 그 푸토코스한 자들에게 나누줄 것도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소유, 그게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그 부자들의 소유란 뜻이에요. 율법적 행위. 나 율법 다 지켰어요, 라는 그거. 그런데 진리를 성전에서 발견하고 나니까 그 성전은 진리를 담고 있는 거니까, 발견하고 나니까 자기의 소유, 그걸 다 팔아서 그 밭, 성전의 그 진리를 사는 거예요. 이건 다 필요 없는 거구나! 라고. 찾으면, 찾으면.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재테오]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것도 재테오에요]


찾아라, 찾으면 값진 진주가 발견된다고 그래요. 값진 진주는 뭐예요? 성경에서 그 진주는 만나, 말씀이라고 그러잖아요. 여러분 성경에서 소유라는 말, 돈이라는 이런 말이 나오면 그냥 인간이 자기 육의 욕망, 욕심으로 갖고 싶어 하는 재물,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안 돼요. 그 맘몬이라는 건 인간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팔아서 돈으로 환산해낼 수 있는, 가치로 환산해낼 수 있는 모든 걸 맘몬이라고 해요. 거기에는 생각, 지혜, 노동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그 맘몬이라는 단어에 영어 명사형이 Money에요. 그래서 돈이라고 하는 거지 여러분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 돈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인간의 행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적인 것. 육적인 것. 은혜의 반대편 쪽의 것. 그런데 진주를 발견하니까 그 소유를 다 팔더라는 거예요. 이건 아니네? 이렇게.


주님이 부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것, 다 팔아서 주고 와, 라고 하는 건 그거라니까요. 그럼 그걸 판다는 건 뭐예요? 주님, 저는 죄인 중의 괴수네요. 저는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되는 자네요, 라고 자기부인의 자리로 내려가는 그게 바로 소유를 다 파는 거잖아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네요, 라고. 그 얘기하는 거란 말에요.


민 11:7
만나는 [말씀은]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그 내용으로 깨달아 알아진 진리가 진주에요, 진주.
그것을 발견한 이는 그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다 팔아요. 그 어떤 것으로도 이걸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요.


마 16: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이게 호코스모스에요. 율법을 성전을 다 얻었다고 치자. 그러고도 지 목숨을 잃으면? 그거 얻으면 죽는다는 뜻이에요]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건 뭐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어도 목숨 끊어지면 그냥 죽는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아담들아 선악과 먹은 아담들아 니들이 그 선악의 패러다임 아래에서 너희들의 그 열심히 온 세상의 그 율법을 다 니들이 니들의 수준으로 성취한다고 해도 니들은 그걸로 죽어! 그러는 거예요.


자, 그토록 소중하고 값진 것이 진리의 말씀인 건데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기독교에게 그 은혜의 이야기, 은혜의 복음, 진리의 복음을 이야기하면 그들이 그걸 갖고 어떻게 해요? 그걸 준 이에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해하죠?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 그랬어요? 돼지에게 진주 던져주지 마, 그런 거예요. 어떻게 한다고요? 그들이 그걸로 너희를 해한다, 그래요.


마 7: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며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그러니까 진리를 전하는 이, 그들은 반드시 이런 경험을 해야 된다니까요. 찢김을 당해봐야 돼요. 그리고 그건 현재진행형이 돼요. 그의 인생 속에서. 뭔 소리 하냐? 그게 무슨 복음이야? 99.9%가 다 손에 손을 잡고 다른 길로 가는데 너만 잘났냐? 이런 소리 듣는다니까요.그러니까 돼지 앞에 던지지 마세요. 몇 번 얘기하다가 안 되면 먼지로 떨어버리고 그냥 오세요, 그럼 돼요.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을 올바로 잘 깨닫고 잘 구하라, 너희의 결핍을 니들이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아신다, 라고 말씀해주셨고 그렇게 구하는 게 뭔지를 아는 이들은 반드시 그 떡을 받아 찾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그 떡을 찾기 위해 양의 문,예수, 성경, 성전을 두들기게 돼있는 거예요. 그럼 그 문은, 성경은 반드시 열려요. 뭘로? 진리로 열리게 돼있는 거예요.
그 얘기 하는 거예요.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그러면 줄게 디도미, 찾게 될 거야, 열릴 거야.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그 진리가 열린 거예요. 그래서 이 기도의 내용은 바로 이러한 진리의 울타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면 안 되는 겁니다.


골 4:2-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되면 이제 관심이 그 위의 것을 향하게 되어 있어요. 그죠? 그걸 아이테오, 구하게 되고 그걸 재테오, 찾게 되고 그걸 두드리게 돼 있단 말에요, 끊임없이. 그리고 이 온 세상이 다 산천초목이 성경이네요, 또. 다 말씀이에요, 하나님이에요, 또. 여기에 또 진리가 있어. 그러면 이 호 코스모스의 세상에 살지만 나는 또 그 떡, 그 진리 그것을 여기에서 흘려받아요.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내가 무슨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있건 없건 아니면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건 아니건 상관없이 나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또 계시하시네요. 그러면 이게 다 뭐예요? 기도! 받아서 흘리는 거. 그러면 나는 뭘 하게 되는 거예요?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거예요, 그게. 밥 먹을 때도 기도, 잘 때도 기도, 목욕할 때도 기도, 이런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애쓰라는 게 아니라 니 인생 자체가 기도잖아? 그러는 거예요. 니 인생 자체가 프로슈코마이네! 그게 ‘항상 기도’에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요, 바울이. 네, 맞아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니까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게.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거죠.]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 전도할 문이 아니라, 여기서 이게 로고스란 단어거든요. 말씀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일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우리와 함께 기도하되, 에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기도하자. 그 말씀의 문이 열리도록.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가감 없이 기도로 전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거죠.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라고 말을 해놓고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끌고 간다고요, 사도바울이. 그리고는 너희도 기도하라, 라고 하면서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소금은? 언약입니다. 언약으로 고르게 해. 그러면 니 안에서 그 언약의 말씀, 그 진리의 말씀이 나갈 거 아냐? 그게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거야.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 그게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의 삶 속에서 하나님 쌀이 떨어졌어요. 쌀 좀 주세요. 이것도 진리입니다. 근데 그게 전제되지 않고 무조건 병 고쳐주세요. 쌀 떨어졌어요, 쌀 주세요. 아파트 평수 큰 걸로 옮기게 해주세요, 이거는 아니라는 거예요.


아무튼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진리로 읽어내야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말하고 그것으로 흘려주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성전을 가리켜, 그 성전은 우리의 모형입니다. 기도 집, 이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집이 아니에요. 기도하는, 이라고 번역해도 상관없는데 기도 집이에요. 집. 직역하면. 기도 집. 기도만 있는 집. 기도만 꽉 차있는 집. 기도만 하는 집. 받아서 흘려주고 받아서 흘려주고 받아서 나타내고 받아서 밝히고 그래서 기도 집이에요, 성전은.


사 56:7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이 기도하는 내 집이 ‘베이트 테피라’에요. 기도 집. 베이트가 성전이잖아요? 기도 성전. 기도 성전. 기도하는 내 집. 기도 성전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기도 집, 기도 성전이다,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걸 예수님이 이렇게 받아서 사용하십니다.


막 11: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나 하시매


기도 집이야. 그 진리가 그대로 전해져 거기에서 흘러나오고 그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 곳이 성전이다. 그런데 너희는 강도의 굴혈, 비 진리의 굴혈. 성전, 가짜 성전. 강도는 뭐죠? 하나님이 주지도 않은 말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서 그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지 맘대로 써버리는 게 강도에요, 도적. 너희들은 어떻게 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니? 이거 봐, 다 가짜 말이잖아? 이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가짜 말, 비 진리잖아. 하나님이 오늘날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에요, 이게. 내 집은 기도 집이야. 그 생수, 그 하늘의 떡, 그 진주만, 그것만으로 소통이 일어나야 하는 곳이 내 집이야. 그게 기도 집이야. 근데 왜 여기서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너희들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어? 이게 강도의 굴혈이야. 주님이 그렇게 말씀 안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요구나 우리의 원함이나 그런 것이 우리의 강청함으로 성취되고 응답되는 그런 곳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교훈되고 그것이 우리의 구함이 되고 찾음이 되고 두드림이 되는 그런 곳 그것을 참 교회라 그래요. 그게 여러분 각자가 바로 그러한 기도 집, 기도 성전이 되는 거예요.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그 기도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 다음 주에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의 주기도문 강해를 쭉 읽고 오세요. 그래서 거기에다가 제가 좀 붙여서 설교해드릴 테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그 동안 하나님은 절대 듣지 않으시는 엉뚱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제자들에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너희들은 내게 한 번도 구한 적이 없다, 아이테오 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기뻐하시는 그 기도 우리로 하여금 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