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Q&A

사람에게서 나오는 선한 행실이란 무엇인지요?

Hebrew 2023. 6. 8. 19:43
말씀을 들을 때마다 궁금했었지만
차차 알아지겠지 하며 지나치다가
혹 누군가가 물어오면 뭐라 답해야 되나 싶어 질문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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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다보면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악만 나오는 우리에게서 어쩌다 선한 행실이 나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 예를 드는 행실이 구제, 봉사 등의 선함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그 선한 행실이 어떤 것일까?
또 그 선한 행실이라고 인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인지,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 도덕인지요
성경 말씀이건 윤리, 도덕이건
어떻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어떤 행위를 보고
사람이 선이다 악이다 라고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요?

 

답글 1

성도에게서 나오는 선과 착한 행실이란 무슨 도덕 윤리 인간이 선하다고 인정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일을 마음으로 믿어 간직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주고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그 일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분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래서 복음은 비밀입니다.

 

답글 2

21-1.'아가도스'와'칼로스'


예수님의 비유 제7강 소금과빛 중에서....(본문요약)
 
'착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도스'와'칼로스'입니다.
둘은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칼로스'라는 단어가 훨씬 폭 넓고 깊은'선'을 가리킬때
자주 쓰이는 단어입니다.
 
(칼로스는 선과악 구조의내용을 품은 선으로 그 칼로스로 아가도스의 참 선으로
이해 되어 진다면 선도악도 아닌 그 참 선으로 하나되는 그 깊은 '선'을 의미합니다.)
 
(요10:11) 나는 선한(칼로스G2530-가치있는)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빌 1: 6) 너희 속에 착한(아가또스G18)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
* 예레미야스에 의하면 그 두단어는 서로 혼용해서 쓰였던 단어입니다.
 
성도의 착한 일,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의 선악기준에 의한 착한 일이라기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혹은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서 기인한,성도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착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그게 빛과소금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착한행실은 이 세상속에서 순종으로 비움으로 자기부인으로 십자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 바로 그 새 창조의 행위 자기부인과 순종으로 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과정
그게 하늘나라 백성들의 세상 속 착한 행실입니다.
 
(행 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바로 이 예수의 착한 일이 성도에게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빛과소금의 삶,착한 행실은 자기를 부인하고,수난의 삶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착한 행실,순종의 착한 행실,십자가의 착한 행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면,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삶 속에서 가입을 하여 세상은 도처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인내와 수고와 섬김과 순종의 삶이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세상에 증거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삶,그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고 빛과소금의 삶인 것입니다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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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

그래서 신자가 소금과 빛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을 내 열심과 여유로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시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일은 신자들 대부분이 잘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솔직히 텔레비전 방송국의 불우 이웃 돕기 모금에도 제대로 줄 서 본적이 없는 것이 우리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자가 세상 앞에 증거하고 보여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불우이웃을 돕는 것으로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착하게 살아서 자신을 선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자 하면 분명 착한 행실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칭찬을 받을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감춰지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악을 감추고 선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곧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 곧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그 속에 있는 신자라면 자신이 의롭고 착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임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또 그래서 더욱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벌거벗고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의로 악을 행하며 세상으로부터 욕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령 테레사 수녀나 김수환 추기경처럼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듣는 일을 행했다고 해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역시 속에 악을 품고 살아가는 악한 자일뿐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의가 아니면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선포하는 것이야 말로 소금으로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착한 행실입니다.

 
신자는 이미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믿는 자이지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자의 선한 행실이 세상에 감동을 줄 수는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심지어는 신자보다 더 선하게 행동할 수 있고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과 빛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짠 맛은 소금에만 있는 것이지 설탕도 짠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소금만이 가지고 있는 짠 맛이라는 특성, 빛에서만 나오는 빛이 있는 그런 존재가 신자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고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금이고 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과 사람과 사단이 우리를 흔들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그 기쁨, 즐거움, 평강, 자유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만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기에 끝까지 붙드는 모습으로 신자의 특성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신을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신앙생활은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벗겨주신 멍에를 다시 쓰려고 애쓰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자가 선행을 하고자 하는 노력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금과 빛이 되려고 하고 선행을 하려고 하는 그 이면에 과연 무엇이 있는가는 살펴야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선을 통해 자신이 신자임을 증거하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인간의 선행을 신앙의 증거물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난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이미 소금이고 빛입니다. 그냥 소금으로 살면 되고 빛으로 살면 됩니다. 뭘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고 하늘의 생명을 가진 신자로 세상이 아니라 하늘을 소망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신윤식 목사 마태복음 27 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