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제13장성령(Ⅳ), 성령훼방<마12:15-32>

Hebrew 2022. 11. 10. 11:55
제13장
성령(Ⅳ), 성령훼방
<마12:15-32>
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18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22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예수께서 저희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27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우리는 성령하나님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령세례, 성령 충만,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본 장에서는 성령훼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을 훼방하는 것은 절대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지옥 간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교인들 협박하는 목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유명한 부흥사들이 많았고 그 분들이 인도하는 부흥회가 참 많았습니다. 그 부흥회에서 종종 듣던 레퍼토리가 “목사가 하는 일 방해하면 성령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 죄는 절대 용서 못 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목사가 하는 일이 비록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꼭 순종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곤 했습니다. 아마 그런 설교를 듣고 자란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이 있기에 그토록 목사가 하는 말이라면 껌뻑 죽는 것 같습니다.
특히 출석교인이 기천명이 넘는 교회 목사는 가히 황제 대접을 받습니다. 비서는 물론이요, 고급 승용차에 기사까지 딸려 있고,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목사가 나오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왕왕 있습니다. 도대체 목사가 무엇이 무서워서 경호원까지 데리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호사를 누리며 삽니다.
목사의 말을 어기는 것이 정말 성령을 훼방하는 죄일까요? 성령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성령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이해시키시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구원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몇 사람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소수의 선택된 목사들을 통해서만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거하십니다. 절대 목사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성령훼방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얼마나 겁을 먹고 있는지, 목사가 라스베가스에 가서 교회 헌금으로 수 억 원씩 도박을 해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헌금을 가지고 교회의 재정을 도울 목적으로 도박을 했다고 말합니다. TV 뉴스에까지 보도가 되었는데도 그 교회 교인들이 여전히 수만 명에 육박합니다.
교인들은 강단에서 목사가 성경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바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게 교인도 살고 목사도 살 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일개 목사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두려워하면, 목사 하나가 잘못 가면 전체가 잘못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기독교가 예수 믿으면 복이나 받고 병이나 낫고 하는 저급한 종교가 되어버렸습니까? 목사가 존경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청중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마치 자기 말만 잘 들으면 하나님께 말 잘해서 그런 것 줄 수 있다고 공갈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 좋게 몇 차례만 들어맞으면 그 목사는 뜨는 것이지요. 그렇게 인기 있는 목사가 되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죄인들의 속성입니다.
<마12:15>
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칠병이어로 먹여주고 했을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좇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인기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기에 오히려 거기를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지도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인기를 끌고 싶어 하니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LA에 요즘 신종 사기단이 등장했습니다. 일정한 사례를 하면 교회를 부흥시켜주는 이인조 사기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의 담임목사와 일정한 액수의 거래를 한 후 그 교회 교인인척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그 담임 목사가 자기의 불치병을 고쳐 주었다는 둥, 어려운 사업을 목사의 안수기도로 회복했다는 둥 소문을 퍼뜨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전략은 거의 백발백중 적중한답니다. 그 교회는 짧은 시간에 크게 부흥하게 된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자기 교회가 커졌다고 자랑하는 어느 노 목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건 코미디도 아니고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으로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자들이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을 잊지 마십시오.
본문 16절에서처럼 주님께서 왜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계하셨다고 했습니까? 엉터리 복음이 전해질까 봐서 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병자들이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며 장님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천국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일으키신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죽음이 있기도 전에 병이나 낫고 오병이어로 먹을 것이나 만들어 주고 하는 것으로 기독교를 잘못 전할 까봐 예수님은 절대 나가서 나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신 그 핍박과 고난 그리고 죽음, 부활에 동참하는 것인데 엉뚱하게 기적과 이생의 복만을 전할까봐 예수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이 말하지 말라고 한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병고치고 귀신 쫓는 것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성령하나님을 무슨 능력이나 행하고 신비를 체험케 해주는 분으로 저급하게 취급하고 마치 자기가 성령을 쏟아 부어 줄 수 있는 것처럼 “성령 받아라.”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오시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12:18-19>
18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본문은 성부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께 성령하나님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성령하나님이 성자하나님이신 예수 안에 내주하시게 되면 예수님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시고, 즉 복음을 전하시고 다투지도 않으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야단스럽게 떠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신 주님의 사역은 자기를 감추시는 겸손한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사역은 그렇게 야단스럽게 인기나 끌면서 사람이나 모으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지 절대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는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마12:28>
28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구절에서 ‘임하였다’라고 번역이 된 ‘에프따센’은 “오다”라는 의미의 ‘프따노’라는 단어의 과거시제 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의 본질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는 기적과 표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왔음을 설명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했고 유대인들이 지금도 기대하는 메시아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이 땅에서 왕 노릇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광분했지만 자기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자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고 전하면 교인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목사를 외면하고 떠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 원하는 것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원했던 것과 똑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난과 수난과 십자가의 예수는 오늘날 교회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복이나 주는 예수를 우리는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예수를 믿고 있습니까?
오죽하면 한국의 문화부장관을 지낸 어떤 분이 신문에 “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라는 글을 썼는데, “2,000년 전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원했다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교회에서도 그 고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지금 그 손바닥에서 고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교회를 만난다면 난 당장 예수를 믿겠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라는 집단이 얼마나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사람을 모아 세력을 불리는 데에만 급급했으면 불신자들이 이런 치욕적인 말을 함부로 신문지상에 내 뱉는가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로 상징되는 사람들이 자식이 많고 재물이 많고 건강하게 표현이 된 것은 아직 예수님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가장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을 하신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벌써 오시고 성경이 완성되었음에도 아직도 구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이 땅에서나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소리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자들이 성도입니까? 주님께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는 세례 요한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마11:2-6>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가 오시면 일어날 일을 기록한 것을 들어 내가 바로 그 메시아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서 35장에 명확히 기록된 구절의 인용입니다.
<사35:4-6>
4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처럼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참 메시아이심을 설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절대로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들을 놀라게 해서 하나님을 믿게 만들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성경이 밝히 말합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제발 저 나사로를 세상으로 다시 보내어 내세가 있다는 것을 자기 형제에게 알리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아브라함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모세와 선지자 즉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정말 지옥이 있더라고 말해도 절대 안 믿는다고요. 왜 그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서자마자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기적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마11:25>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네피오이스’라는 말은 작은 자들, 남들이 업신여기는 불쌍한 자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작은 자들, 어린 아이 같은 자들에게 나타내어진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하고 잘난 사람들을 위한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교회가 지향하는 것이 “예수 믿고 잘난 사람 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목사도 베스트셀러 하나쯤은 내야 인기 목사가 되어 교인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목사가 중들한테도 박수를 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최근에 어떤 유명한 목사가 동국대학교에서 많은 불교인들을 모아 놓고 강연을 한 후 기립 박수를 받았다지요? 세상 사람들이, 타 종교인들이 목사의 어떤 면을 존경하여 박수를 보내겠습니까? 세상적인 면밖에 더 보겠습니까?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뿐이라는 진리를 설파한 목사가 과연 중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했겠지요. 목사는 하나님께만 칭찬 받으면 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인기 없이 돌아가셨는데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종들이 어떻게 예수님보다 더 인기를 얻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열심을 부리고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27절에 보면 그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훌륭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죽여 버리지 않았습니까? 기독교를 세상적인 것으로 포장해 버리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령님의 사역을 단순히 세상적인 것을 얻어내는 것으로 설명을 해 버리는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해서 모두 진짜가 아니란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성령하나님은 그 분 자체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일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시지 어떤 능력을 행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소원을 성취해 주는 요술램프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서 성령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란 것을 말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성령을 훼방한다.”에서 훼방한다는 말 ‘블라스페미아’는 하나님에게 대해서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참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블라스페미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성령하나님에 대해 그 단어를 쓰심으로 예수님과 성령하나님은 모두 하나님이심을, 즉 삼위일체 교리를 그 단어 하나로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은 너희에게 그런 능력이나 힘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러 오신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해시키시고 깨닫게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구원을 적용시키시는 일을 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럼 그 일을 훼방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혹자가 말하는 목사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 성령훼방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례 받고 그 이후에 짓는 죄가 성령훼방 죄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세례 늦게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어거스틴도 그랬으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면 순복음 쪽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을 성령훼방 죄라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교인이 모두 성령훼방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훼방 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예수께서 지금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시던 끝에 성령훼방 죄를 언급하십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천국을 전하러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 예수로 말미암은 하나님 나라를 거부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들에게 성령훼방 죄에 대한 언급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성령훼방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로 말미암아 선물해 주신 그 구원을 세상적인 것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성령훼방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부자 되게 해주고 기적적인 것이나 체험케 해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도 예수 안 믿는 사람 중에 더 많고 신비한 체험도 다른 종교에 더 많습니다. 힌두교나 밀교 같은 곳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기적과 신비들이 많습니다. 절벽에서 공중 부양을 하며 설교를 하는 힌두교 교사들도 많습니다. 그럼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만 올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 천국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화려한 열매에 관심 없으십니다. 아무리 훌륭한 수천 만 불짜리 예배당을 지어놓는다 해도 마지막 날에 모두 불타 없어질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처럼 이 땅의 것들 중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와, 참 멋지게 지었네, 이것 천국에 가져가자” 하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참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참 성전은 우리자신, 즉 하나님의 백성 자신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 말고는 아무 것도 천국에 못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런 불타버릴 것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는 뭔가 더 크고 깊은 것입니다.
올해로 90세 되신 조앤 정 권사라는 분이 한번은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기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대답은 “하나님 내가 지금 하나님 잘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 믿고 있는 것인지 잘 분별해서 예수님 잘 믿고 천국가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라 했습니다. 나이 아흔이 되어 이제 죽음이 눈앞에 오니 정말 걱정이 되는 것은 “내가 정말 예수를 잘 믿고 있는가?”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로 믿고, 올바로 분별하여 천국 가야합니다.
우리는 바로 믿고 있는지 잘못 믿고 있는지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자신을 추스려서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에 매진해야 합니다. 세상 것에 너무 눈 두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성령훼방 죄를 짓게 됩니다.
성령훼방 죄는 사람을 영원한 지옥에 가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를 잘 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