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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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12강.아브라함 언약(5)

Hebrew 2022. 11. 10. 12:14
 12강.


아브라함 언약(5)




오늘은 로마서 4장으로 아브라함 언약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4장입니다.


1.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범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1-3절입니다.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바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이 믿어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아브라함언약을 통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음이란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라 선물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솜씨와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4-6절입니다.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데
그 첫째가 아브라함이고 두 번째로 거론하는 사람이 다윗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을 설교할 때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다윗의 믿음과 영웅적인 행위들을 이야기하는지
우리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쫒아올 때에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자신이 복수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 하나님의 성전을 준비하려고 하는 마음 등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윗을 믿음의 용장이요 심지어 성군이라고 말하는 것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 자신이 자신을 고백하는 모습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성된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고 알리바이를 조성하기 위하여 휴가를 주어
아내에게 가게 하여도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아내에게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왕궁 막사에서 잡니다.
 다음 날에 술을 잔뜩 마시게 하여 보내는데도 여호와의 전쟁에 충성된 우리아는 술에 취하여서도
아내에게로 가지 않고 막사에서 자는 충성스러운 여호와전쟁의 용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를 죽인 다윗이 그 당시는 자신의 죄를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다윗 언약에서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왜 마태복음 1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는지 잠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유다지파의 혈통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다윗도 믿음이 없는 죄인이었는데,
어떻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보여주는 것인지에 대한 족보의 이야기입니다.
그 결국은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임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다윗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구약입니다.




7-8절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인용 구절이 시편 32편입니다.
또한 시편 51편을 보시면 다윗이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죄악 가운데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간음하고 살인하기 전까지 성군 다윗의 행위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자신의 선행으로 의에 이르지 못하고 오직 그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아야만 된다는 것을
다윗을 통하여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기 전에는 자신의 간음과 살인의 죄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윗이었습니다.
죄인의 특징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세상의 왕들은 남의 아내를 차지하고 몇 사람을 죽이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을 섬기기 위한 왕이지 군림하는 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행한 일은 그 시대의 다른 왕들과 다를 바 없는
똑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과 다윗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나도 그들처럼 부자가 되고 높은 권세를 차지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면 성경을 근본적으로 잘 못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죄인 됨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면 그제야 자신의 죄를 알고 무엇이 진짜 복인지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소떼 양떼에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에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것을
성경은 이들의 실제적인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복이 누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9-11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무 할례 시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 할례 시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다는 것을 인친 것이라고 합니다.
할례는 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도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 자체를 자신들의 행위와 공로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를 받은 자나 받지 않은 자나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조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다룰 모세언약에서도 언급을 하겠습니다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것은 왜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속한 자가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이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로 파기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임을 모세 율법은 확증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 이후에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1400년의 역사를 통하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여주고 있음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15-16절입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자들은 어떤 신앙고백이 나옵니까?


로마서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느니라”

이삭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없는데서 있게 되었습니다. 사라의 태가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또 모리아산에서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것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인과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홀로 이루어내심을 믿었습니다.
신인협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언약대로 이루어내십니다.
성경의 모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아래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면서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
“다 이루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다 이루심조차 우리가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알게 하시고 믿도록 까지 하십니다.
이런 것이 믿음이 없는데서 생기고 죽은데서 살아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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