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아브라함 언약(3)
지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데 일방적인 체결과 그 성취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제가 편의상 아브라함이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사건은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람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봅시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부름을 받은 나이가 75세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부름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이곳에서 몇 세에 부름 받았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주도하였고, 하란에서 데라가 죽고 나서 다시 부름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창세기 15장의 언약의 체결이 있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기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크게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이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바로 왕에게서 자기의 아내 사라가 보호를 받은 것이며, 또 하나는 자기 조카 롯을 소돔과 고모라 성을 공격한 4개국왕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찾아 온 사건입니다. 이때에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하여 자기를 불러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게 되었기에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씨에 대한 약속을 받고 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때 아내 사래가 제안을 합니다. (창세기 16:1-3절입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 후였더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믿고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자식은 아직 생기기 않았습니다. 이때가 가나안에 거주 한지 십년이 되었을 때 입니다. 아내 사래의 말을 받아들여서 하갈을 취하여 자녀를 낳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씨받이를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씨를 이어가기 위하여 씨받이를 들이는 것처럼 하갈을 그렇게 취하여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지만 자식은 생기기 않고 기다리지 못하여 하갈을 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하갈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입니다. 이때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99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이 무엇입니까? 결국은 쫓겨나는, 언약 밖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인간의 행위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여 버림받는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13:8-15절입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이 1주일동안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사울 왕이 기다리지 못합니다. 적은 쳐 들어오고 백성들은 흩어집니다. 흩어짐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은혜를 구하여야 하는데 은혜를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해서 백성들이 흩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일주 일 만에 오리라고 약속한 사무엘은 오지 않습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데 너무 마음이 초조해 져서 궁리 끝에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제사를 드린 것 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후, 바로 그때 사무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사무엘이 왔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울왕의 모습입니다. 사무엘이 이러한 사울을 보고서 당신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지도자를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치 아브람처럼 이스마엘을 만들어내고, 사울처럼 스스로 제사를 드리고 있지는 않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의 약속만 믿고 살기에는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한다고 하면서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아야 하지만 시대의 문화에는 탄력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수많은 전도의 방법론과 수많은 교회성장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사울 왕이 흩어지는 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는 제사로 보입니다. 전하는 방법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여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보암직한 것으로 포장하여 내어 놓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구제와 봉사는 집사들에게 맡겼습니다. 구제와 봉사가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를 제쳐두고 사업에 바빴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전도훈련이나 방법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성장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사울의 방법과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갈라디아서 4:21-31절을 봅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기 실력으로 낳은 자식이 이스마엘이며 이것이 율법이며 육체로 난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약속으로 태어난 자식입니다. 아브람이나 사라의 모든 육체가 포기 되었을 때 나온 자식이 바로 약속의 자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수단과 방법과 모든 인위적인 것들이 포기되는 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날마다 못 박히고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 나타나는 곳이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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