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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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23강.새 언약(3)

Hebrew 2022. 11. 11. 14:20

23강.

 

새 언약(3)

 

 

지난 시간에 에스겔서에서 새 언약의 내용을 보았습니다.

 

새 언약이란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새 마음이란 새 영을 부어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시는지 에스겔서 36장을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15절까지는 멸망하여 이방나라들의 조롱거리가 된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조롱한 이방나라는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회복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죄에 대하여는 밝히 드러내십니다.


에스겔 36:16-20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 함으로 그 땅을 더럽혔습니다.

언약의 땅은 백성들이 범죄 하면 백성들을 토하여 내쳐 버립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사로잡혀간 여러 나라에서 거룩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면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했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 됩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그들이 잡혀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어느 나라가 이기면 그 이긴 나라의 신이 강해서 이겼다고 보기에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 무능한 하나님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포로로 잡혀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 언약에서 우상을 섬기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신 모습입니다.

반면 이방 나라의 우상들은 언약의 신들이 아닙니다.

가짜 언약을 만들어 내어도 그 언약을 지켜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알고 믿는 자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사사시대의 룻입니다.

 

룻기서를 보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이민을 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곳에서 두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고 과부만 세 명 남게 됩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려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두 며느리가 따라가겠다고 하자 나오미는 자기를 따라 오면 아무런 소망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재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잘못하였을 때에 치시는 하나님임을 알고 따라온 것입니다.

즉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전도할 때에 예수 믿고 성공한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실패 이야기도 하지만 그런 실패보다 더 크게 성공한 이야기들만 간증을 하는데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에스겔 36:21-23절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함으로 여러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힌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제는 그들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흩어진 나라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셔도

그들은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까?


에스겔 36:24-28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들임이 옛 언약으로 여실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은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부터 회개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31-32절입니다.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구원받은 자들은 자기의 죄악과 가증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를 밉게 보고 부끄러워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언제 이루어진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아직 그림자입니다.

실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새 마음과 새 영이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이 부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기반성을 하게 됩니다.

왜 포로로 잡혀갔는지 자기반성을 하면서 율법을 보니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일어난 운동이 율법을 지키자는 바리새 운동입니다.

그럼에도 나라는 여전히 미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약속한 메시아가 왔습니다.

이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실 분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을 누가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였습니까?

율법의 기능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켜온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언약의 줄기를 보면서 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인 은혜 언약을

먼저 주시고 나서 모세에게는 상호언약을 주셨는지 보았습니다.

모세 율법으로는 의에 이를 수가 없기에 새 언약을 약속하셨는데

그 새 언약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신 분을 옛 언약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배척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 입문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율법을 흠 없이 지킨다고 한 자들의 결국이 새 언약의 완성 자를 죽였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에 새 언약의 어떠함을 알고,

모든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믿고 새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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