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21강.새 언약 (1)

Hebrew 2022. 11. 11. 14:18

21강.

 

새 언약 (1)

 

오늘부터 새 언약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 약속입니다.

이 새 약속의 내용은 이미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나서 430년 후에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의 율법적인 행위로도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선지자들은 알았습니다.

 

물론 이런 선지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몸은 구약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모세 언약이 아니라 새 언약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 언약의 대표적인 두 곳이 예레미야와 에스겔서입니다.

 

오늘은 그 첫째로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 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전한 내용이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을 주시는 이유는 모세 언약과 같지 않다고 합니다.

모세언약은 출애굽하여 세워진 언약입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내었는데도

그들이 언약을 깨뜨렸다고 합니다.

몸은 애굽에서 끌려 나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애굽을 향한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천사의 손에 끌려 나오다가 뒤를 돌아본 까닭에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와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든지 이방인들이든지 간에 옛 언약으로는 아무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기에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며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후 40일도 지나지 않아 하나님과 피로 맺은 언약을 배반하며

금송아지를 섬기는 모습을 봅니다.

이들이 사시시대와 왕정 시대를 거치는 약 1,000년의 기간 동안 행한 일이라고는

언약을 어기는 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언약을 어겼는지 예레미야서에서 몇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4-13절입니다. “

4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 이 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성경의 지나친 해석과 적용이 오히려 성경의 본문을 가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볼 때는 말씀 자체가 무엇을 증거 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왜 새 언약을 이미 구약에서 말씀하시는지 구약의 본문들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방의 나라들도 자기들의 신을 바꾸지 않았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배반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온갖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가지 악을 행한 것인데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죄가 여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자기가 살리겠다고 나서는 것이 두 가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타력구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마치 자력구원인 것처럼 들립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스스로 생명수를 만들어 담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물을 가두지도 못할 터진 웅덩이를 만드는 모습이 팽배한 시대입니다.


예레미야 7:1-11절입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시대에는 건물로 된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안식일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을 예레미야가 가로막고 서서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곳이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라서 건물로 된 성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건물로 된 성전이 있었는데 그 성전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까?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성전에서 분노하셨습니다.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이 건물을 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3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고소를 당하지만 예수님의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13: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 언약을 예언한 것은 옛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이

이러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율법지킴이나 의로운 행위로도 하나님의 생명에 이를 수가 없음을 보이면서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이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이 되는 것이며 그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새 언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생명이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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