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25강.새 언약(5)

Hebrew 2022. 11. 11. 14:21

25강.

 

새 언약(5)

 

 

 

오늘은 말라기를 통하여 새 언약의 예언을 보려고 합니다.

구약 전체가 다 새 언약을 예연하고 있습니다만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말라기서에서만 본 것입니다.

 

먼저 말라기 1: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구약 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성전 문이 닫혀 버리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로부터 용서 받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말라기 1장을 보면 크게 두 가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며 무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내 백성이 망한다고 호세아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로 아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입니다.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두 가지가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말라기 1:2-5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가난하나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라고 하면서 항의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라는 연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모습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면,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셔서

오히려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다스려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답변은 "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는 말씀을 하십니다.

야곱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바로 왕 앞에 섰을 때에 뭐라고 합니까?

자신의 나그네 세월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 합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을 고생하고 자기 재산을 위하여 6년을 불철주야 고생합니다.

얍복강에서 천사에 의하여 환도 뼈가 위골되어 평생을 장애인이 되어 지팡이를 의지해야 했습니다.

아들이 계모를 범합니다.

딸이 강간당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자기 아들들의 손에 의하여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야곱은 들짐승에 찢겨 죽은 줄 알았습니다.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야망을 끊어내시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이런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지금 말라기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 하였느냐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에서는 아무런 고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병이 318명인데 에서는 무려 400명입니다.

아브라함보다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에서가 훨씬 더 부자입니다.

에서가 고생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심지어 강대한 민족으로 세워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버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제사장들조차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예물을 눈속임으로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1:6-9절입니다.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첫 번째 오해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 이름을 멸시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우리가 어떻게 멸시하느냐고 항의합니다.

이들이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먼 희생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도 안 주는 하나님께 뭘 좋은 것으로 드리겠느냐는 식으로 하나님의 제단을 멸시하면서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깨어진 모습입니다.

부자 관계나 부부관계가 형식적인 것만 남은 경우는 사실상의 관계는 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멸시를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받지 않으시겠다고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방인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라기 1:11절입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가 됩니다.

 

이렇게 이방인이 주께로 돌아올 것을 이미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4:5-6절을 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요엘서에서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이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크고 두려운 날이 바로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하여

먼저 엘리야를 보낸다고 하십니다.

죽은 엘리야가 어떻게 옵니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셨습니다 (마11:14).

그러므로 모든 옛 언약은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절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성전을 통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물성전의 문을 닫아버리시고

자기 몸으로 성전을 만들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옛 언약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모든 성경이 나에 대하여 증거 한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옛 언약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 > 언약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강. 십자가(1)  (0) 2022.11.11
27강.새 언약(7)  (0) 2022.11.11
24강.새 언약(4)  (0) 2022.11.11
23강.새 언약(3)  (0) 2022.11.11
22강.새 언약(2)  (0) 202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