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38.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면 그것이 곧 나..

Hebrew 2023. 5. 20. 22:24

산상수훈 38번 말씀

제목 :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면 그것이 곧 나라

본문 :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계속해서 우린 기도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린 지난주까지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가 무엇이며 또 그 이름, 그건 말씀이라 그랬죠? 쉠, 그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상세하게 공부했습니다.

깨끗한 말 그 깨끗한 말을 내 안에 가져서 그 말이 나를 낳게 되면은 그것이 내 하늘들, 하늘들인 내 안에 있는 나의 아버지라고 말한다고 그랬죠? 우리가 진리라는 그 생명의 씨를 마음으로 갖게 되면, 그 씨가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 자신이 바로 하늘들이 되는 거고 그 진리의 씨가 우리를 아들로 낳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말씀이 우리를 종으로 만든 율법으로 보이지 않고 종으로 만드는 율법으로 보이지 않고 아들로 만드는 진리로 깨달아질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이 깨끗한, 거룩한 말씀으로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 진리, 그 더러운 말, 거짓말은 반드시 우리를 율법의 종으로 만들어버리죠? 그러나 진리만이 오롯하게 우리를 아들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게 하세요. 라는 그 기도는 청유, 피티션이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진리를 받은 성도의 상태로 보는 게 더 적확하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가 그렇게 말씀을 거룩하고 깨끗한 이름으로 받아서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의 상태가 된 그 사람도 이 역사 속에서는 육을 입고 있기 때문에 내 안에 그 말씀이 깨끗한 말씀이기를, 자꾸 우리는 율법으로 돌아가니까 내 안에 그 말씀이 거룩한 깨끗한 하기오스, 하기스 기저귀 생각하시면 돼요. 깨끗하다, 순결하다, 이런 뜻이니까. 그 하기오스 깨끗한 말씀이기를, 나를 아들로 낳아주는 그 진리의 말씀이기를 끊임없이 청유하게 되는 거죠? 그의 인생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요.

뭐 여러분들은 이렇게 자기가 다니던 교회를 배반[?] 하고 이렇게 오셨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거기에서 무슨 기도를 하시겠어요? 제발 이 곳에서 전해지는 말씀이 깨끗한 진리의 말씀이기를 기도하겠죠? 그래야 그것이 내 안에 들어올 거 아네요?그래서 우리는 육을 입고 있는 한 계속해서 그 기도를 청유하게 되죠. 그러나 그 기도를 할 수 있는 이는 이미 그 안에 거룩한 말씀, 깨끗한 말씀이 진리로 들어와 있는 상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동사의 시제가 전부 부정과거 명령형이라고 그랬습니다. 부정과거 명령형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이제 청유하게 될 때에, 이미 이루어졌지만 자꾸 우리가 이것은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 중도에 포기되거나 실패되어선 안 된다는 그러한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그렇게 쓴다,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동사로 쓰인 그 ‘임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에서 그 임하옵시며, 그게 엘코마이거든요. 그게 ‘오게하라’에요. 오게하라. 나라가 오게 하소서. 이 엘코마이와 ‘이루어지이다’ 라고 번역이 된 ‘되게 하라’, ‘기도마이’ 에요, 이거는. 그 두 단어가 전부 과거수동 명령형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이루어진 거죠.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인제 청유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나라도 이미 온 거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그 뜻도 땅에서 이미 이루어진 상태인 거예요. 그들이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는 거죠.성도는 ‘그 나라에 임함’ 엘코마이, 임함과 ‘그 뜻의’ 델레마, 이루어짐, 그 이루어짐을 그 존재 안에서 이미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 뜻이 이미 내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요, 그죠? 진리의 말씀에 의해. 그리고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도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단 말이죠. 그것을 그 존재 안에서 이미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육을 입고 있는 자신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그 엘코마이와 그 기노마이의 현실을 두렵고 떨림으로 열심히 청유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율법의 행위를 내어놓아서 열심히 뭔가를 하지 않으면, 성취하거나 열매 맺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거야, 라는 그 공포로서의 두려움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거는요. 그 두려움은 절대 사랑 안에서 온전함을 이룬 자가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러나 진리를 안 사람이 그 진리가 아니면 절대 참 생명이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갖는 거 이거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구원을 이루라, 라는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존재의 그 거룩한, 그 하늘차원으로의 그 합류, 이걸 우리가 구원이라고 그러거든요. 연합이라고 그런단 말에요.

그 합류는 반드시 경외를 동반하게 돼 있어요. 두렵고 떨림으로 그 구원을 바라보게 돼있단 말에요. 그것이 너무 귀하고 유일무이하고 너무 큰 선물이라서 그거 아니면 안 된다, 라는 그 자각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걸 경외라고 한다, 그랬잖아요? 그걸 두려움이라고 해도 돼요. 그러니까 그 두려움은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거란 말에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어디에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러고 어디선 두려워하라고 그러고 그런 것이 바로 그런 의미에요.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반드시 하나님께 형벌 받을지도 몰라, 라는 공포의 두려움은 아니고 그 진리가 아니면 나는 절대, 어떤 율법적인 행위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 진리 그것만이 나의 구원이다, 라는 것을 꼭 붙들고 있는 그 두려움. 그 경외, 그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라와 그 하늘과 땅과 뜻>의 개념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서 그 하늘들 안에 아버지를 담게 된 그 성도에게 임할 나라, 그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자고요.

성경에서 나라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공히 바실레이아, 라는 단업니다. 뭐 통치, 다스림 주권을 생각하시면 돼요. 국가의 삼 요소. 국민 주권 영토죠?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주권이죠. 그 주권 이것이 바실레이아, 에요. 그래서 우리가 일제에 의해 삼십 육년 간 압제를 당하다가 독립을 했을 때 우리가 주권을 찾았다, 그러죠? 땅을 찾았다, 나라를 찾았다 그 말이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찾았다. 그게 바실레이아에요. 그걸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바실레이아라는 단어는 왕국, 킹덤[Kingdom] 이란 뜻도 있고요 리퍼블릭[Republic]이 아니라 킹덤입니다. 왕이 독재하는 나라에요. 킹덤이란 뜻도 있고 다스림이라는 뜻도 있죠.

근데 하늘나라의 다스림은 섬김입니다. 섬김과 다스림은 하늘나라에서 똑같은 단어로 쓰이는 거예요. 성경에선 똑같은 단어로 쓰입니다. 다스림이란 뜻도 가지고 있고 통치라는 뜻도 함께 가지죠? 주권. 그 왕이라는 의미의 바시리우스나 권력의 기초라는 의미의 그 바이스가 다 한 어근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에요.

그래서 그 바실레이아라는 단어는요 하나님의 나라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에요. 그 나라가 오게 하소서. 그 바실레이아가 에르코마이, 오게 하세요. 오게 해주세요. 이것이 나라이 임하옵시며에요. 그러나 성경에는 그 바실레이아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의 반대편 나라를 가리키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히 11:33

저희가 믿음으로 [저희는 성도들이죠? 믿음의 선진들]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 여기의 이 나라가 바실레이아죠. 근데 여기서는 성도들이 이겨야 할 나라에요. 땅의 나라입니다, 여기서는]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마 24:7

민족이 민족을 [여기서 민족이라고 번역된 말은 ‘에뜨노스’ 이방인이란 말이에요. 이방인이 이방인을, 바실레이아가 바실레이아를]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거 마지막 때 이야기하는 거죠? 이방인이 둘 나오고 바실레이아, 나라가 둘 나옵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이방인 위로 이방인이 에게이로, 일어나고 나라위로 나라가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전자의 이방인은 이 세상에 이방인으로 와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는 거죠? 그 위로 이방인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이 마지막 종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 그 밖의 이방인, 그것이 이 세상에 이방인으로 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위로 서게 되면 그게 마지막이고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그 바실레이아 위로 일어나면 그게 끝입니다. 종말이에요, 심판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뭐 처처에 기근과 지진 이런 것은 다 이제 뭐 말씀, 비 진리 말씀의 기근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자,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를 대적하는 그 반대쪽의 나라, 그 나라는 반드시 전쟁을 하게 되어 있어요.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전자의 바실레이아는 땅에 구현된 땅 적 차원의 지상왕국을 말하는 거고 후자의 바실레이아는 하늘 적 차원의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거니까. 그런데 지상왕국은 누가 주인공이냐 하면 인간이 주인공이에요. 그리고 인간들의 힘과 노력과 지혜, 그들의 행함, 행위로 구축되고 운영되는 나라가 지상왕국이에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바실레이아, 그 나라는 호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 하늘의 그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움직여지고 그 은혜에 의해 구축되는 나라란 말에요. 그러니까 그 율법과 진리는, 은혜는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나라와 나라가 충돌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 말씀드린 것처럼 땅 적 차원의 그 지상왕국은 선악과 패러다임 아래에 그 흙들이 주인공이에요. 하나님의 생기를 부여받지 못한 죽은 흙들은 자신들의 그 뜻과 의지로 세워지는 그 지상왕국 건설, 그 지상왕국이라는 건 흙으로 지어지는 나, 그죠? 아래의 성전이에요.그 나는요. 그러나 그것이 진리를 담는 성전이 되지 못하면 옛 성전이 되어서 그냥 멸망해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 성전으로 죽은 겁니다. 그 나, 그 육, 나의 육을 포함한 거예요. 그 지상왕국 이라는 건. 그런 각장의 지상왕국 건설이 모여지면 거대한 이 지상의 나라,땅의 나라가 건축되는 거거든요. 그 하나, 하나가 벽돌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도 그런 식으로 건설이 되지만. 그거는 선악과 따먹은 아담들의 자존심이에요. 우리가 주인공이 된, 우리를 자원으로 한 우리의 왕국을 만들자, 이게 선악과 따먹은 아담들의 자존심이죠.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건축자라고 부른 거예요. 건축자들이 뭘 버려요? 돌을 버려요. 건축자들이. 예수라는 산돌, 모퉁이 돌, 은혜의 돌을 반드시 자기들의 울타리 밖으로 던져버리게 돼있다는 거죠. 자기들도 힘이 있고 지혜가 있고 의지가 있는데 왜 은혜라는 나약한 선물을 들고 와서 자기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느냐는 거예요. 그것은 율법의 나라이고 행위의 나라죠.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게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나라라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너희들이 구축하는 그런 나라를 내가 구축하러 온 거라면 내 종들이 나를 섬기느라, 왜? 그게 땅의 왕이니까. 백성들이 그 왕을 섬겨주는 게 땅의 왕국이니까 내 나라가 이 땅에 속한 나라라면 내 종들이 나를 섬기느라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워서 내 편을 들어 내가 안 죽어도 되게끔 만들 거라는 거예요. 그게 율법주의의 나라죠? 베드로가 그랬잖아요? 당신 죽지 마세요. 내가 도와줄게요. 죽기까지 당신을 쫓아가서 보호할게요. 그랬을 때 예수님이 사탄아! 그랬어요. 내 대적아! 이랬다니까요. 니들이 그렇게 나를 만들어버리면 나는 세상 임금이 되어버리는 거야. 이 세상 나라의 왕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사탄아, 그랬단 말입니다. 그게 율법주의의 섬김이죠? 하나님의 나락 그러한 크로노스적 나라였다면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어서 열심히 당신의 종들을 만들어냈을 거예요.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이렇게 했으니까 나를 열심히 섬겨! 그리고 나를 보호해. 나의 힘이 돼, 니들이. 이렇게 가르쳤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그 나라의 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나라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종들을 섬기는 나라라는 거예요. 그러면 왕은 자기의 자원을 풀어서 그 백성들을 섬기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게 왕의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자기는 죽어야 되는 거예요. 섬기는 왕이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야. 이 땅에 속한 나라라면 내가 율법을, 내 말을 율법으로 열심히 가르쳐서 내 패거리를 만들었을 거야. 수만 명이 쫓아다녔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심지어 쫓아다녔으니까. 그러나 내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니까. 내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 충돌하는 나라지 이 땅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왜? 나는 섬기는 왕이니까. 하늘의 왕이니까. 그 나라, 그 나라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는.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말, 당신의 말, 이 세상에서 그분이 하신 말을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무도 못 알아들었죠? 그러면 그분이 진리를 담아 이야기를 했어도 그 말은 율법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진 거죠? 그러면 그분은 그 말과 함께 죽어야 돼요.

그래서 말씀이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는 거예요. 그 율법으로 죽는 거라니까요. 그리고는 진리로 오셔야 돼요.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나라의 왕이란 말에요. 우리를 섬겨주는 왕. 죽어서 우리를 살려주는 왕. 섬기는 왕. 근데 마귀는 주님에게 그 땅의 나라의 왕이 되라고 부추기죠?

마 4: 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높은 산, 높은 산은 항상 예루살렘이죠? 성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마귀, 그러면 자꾸 이상한 혼령 같은 거로 생각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나쁜 말을 가진 자. 푸뉴마 다이모니온, 뭐 르와흐 엘로힘 라아. 하나님의 말을,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바르지 않게 사용하는 거, 라야가 그 단어니까. 그것을 악령이라고 그래요. 성경이요. 푸뉴마 다이모니온, 비 진리, 진리가 아닌 것, 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죠.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 천하만국이 호 바실레이아 호 코스모스에요. 이 세상의 왕국, 그 나라. 그 나라를 보여주면서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줄게, 그래요.

자 이것을 예수님이 우리와 상관없이 그냥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아 혼자 이겨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시험에서 이겨버렸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가 되셨다, 그래서 죽으셨다, 그리고 시험받으셨다, 라는 건 우리에게도 똑같은 그 시험이 온다는 이야기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것들을 예수님이 혼자 해버리셨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그분은 내 밖에 예수가 되어버린다고 그랬죠?

그러므로 그 예수의 자리에 나를 넣어서 다시 한 번 해석해보면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분 앞에 엎드려서 예배만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아는 이들의 그 하나님은 마귀인 거고 그들에게는 천하만국, 세상의 나라가 주어진다.를 거꾸로 이야기한 거예요.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이란 분을 섬겨요. 그리고 그 앞에서 경배만 해요. 그러면 그 하나님은 나에게 마귀, 비 진리가 되는 거고 그 하나님은 나에게 세상 나라를 준다니까요. 그럼 죽는 거예요. 그 나라와 함께 멸망이란 말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세상 나라를 단호하게 거부하셨어요. 그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성도는 그 땅의 나라의 유혹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성도들이 그 나라를 믿음으로 이기기도 하였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나라를’. 그러니까 진리로 믿음이 들어오면 그 나라, 네가 주인공이 되어서 네가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어라, 라는 그 나라를 이긴단 말입니다. 그게 율법주의니까. 그렇게 되는 게 기독교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기기도 했다, 라는 건 질 때도 있다는 얘기죠? 우리는 자주 지잖아요?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서의 지향성, 방향성은 ‘그 나라’에서 빠져나와서 약속의 땅, ‘그 나라’로 옮겨지는 그 출애굽여정으로 그려지게 되어 있단 말에요. 그리고 반드시 약속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광야 속에서의 성도의 모든 여정은 실패했지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한 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하고 싸운 일밖에 더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 죽여 버렸다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성공이라고 해요. 그렇게 죽어야 네가 산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니들 선악과 먹으면 정녕 죽는다, 이게 저주였을 거 같으세요? 그 ‘죽고 죽으리라’ 가 무트라니까요. 진리의 완성. 너희는 그 선악과 율법, 그걸 먹고 죽어. 그러면 살아. 이 말이지 니들 먹으면 죽여버릴 거야. 이 말이 아니라니까요. 근데 하와가 뭐라 그래요?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고 그러죠? 죽기 싫다는 얘기죠? 그걸 죄라 그런다니까요.

자, 그건 그렇게 이 땅의 나라에서 나와서 하늘의 나라로 옮겨지는 데에 우리를 도와주는 뭐 그것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늘의 양식, 만나, 말씀, 진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을 떠나서는 절대 살 수가 없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임하여야 하는, 그 에르코마이, 그 나라가 임하게 해주세요. 임하여야 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 그 바실레이아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한 번 공부해보죠.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에서 천국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호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에요. 그 하늘들의 그 나라. 여기서도 복수입니다. 그 하늘들의 그 나라. 그 하늘들이라는 건 하늘의 진리를 선물 받아서 그 땅의 차원에서 하늘차원으로 합류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거라 그랬죠? 그들의 나라, 그들의 나라라는 건 그들이 소유한 나라. 소유격이거든요. 그들이 소유한 그 나라. 그걸 천국이라 그래요. 그런데 여기에서 쓰인 그 엔게죠라는 단어가 현재 완료형으로 쓰였거든요. 헬라어의 현재 완료는 과거에서 시작된 일이 현재까지 영향력을 갖고 이렇게 지속되고 있을 때, 그걸 현재 완료로 써요.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 천국, 회개 해! 천국이 왔어, 엔게죠, 라고 했을 때는 천국은 이미 왔으며 지금도 그 존재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말이란 말이에요 지금. 그렇게 시제를 썼단 말입니다.

자, 잘 생각해보세요. 천국은 그 하늘들의 그 나라라고 했어요. 그 하늘들은 그리스도의 영이란, 그 진리의 말씀, 그 영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탄생되는 존재라고 그랬죠? 그러면 그게 그 하늘들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진리에 의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하나가 되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진리를 품고 오셨잖아요? 그러면 그 분이 하늘이네요?

그런데 그 안에는 하나님 백성들의 이름이 가득 차 있었어요.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이 가득 차 있었단 말에요. 그러면 그 하늘들의 그 나라는, 그 하늘이라는 예수를 머리로 하고 나머지 하늘들이 지체가 되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로 완성이 되는데 그게 성전이라고 그러잖아요? 완성이 되는데 그분이 진리를 품고, 그 진리를 주어 아들 삼을 자기백성들의 이름을 가득 품고 이 땅에 내려오셨단 말에요. 그러면 그 나라, 그 천국 그 하늘들의 그 나라는 그분이, 그 진리의 현현이신 그분이 이 땅에 내려오심과 동시에 여기에 온 거잖아요? 그리고 그 때까지 지속돼 있는 거예요. 그분이 살아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니까, 그 나라가. 그러니까 그 나라는 이미 와 있고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절대 포기되거나 실패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이름을 품고 오셨지만 그 이름은 그 나라로 반드시 완성이 된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메시아, 그 그리스도로서의, 우리를 살려내시는 그 그리스도로서의 그 진리를 품은 예수니까, 그리스도로서의 그 예수의 존재성 그것을 가리킴과 동시에 성도들이 그 진리와 연합이 되어 합류하여 들어가게 되는 그 하늘차원의 그 영적차원의 영역. 그리고 미래적 최종완성으로서의 그 하늘. 그것을 함의하고 있는 개념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행위가 아닌 진리로만 완성이 되는 완전한 은혜의 나라란 말이에요. 거기가, 바실레이아가.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 인간들의 행위 도모, 열심, 노력 이건 썩은 것이라고 해요. 혈과 육, 그건 절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없대요. 거기로는 하나님 나라가 안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혈과 육이 내놓을 수 있는 건 행위밖에 없잖아요. 그러한 육적 행위로는 하나님 나라를 절대 상속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상속 받는가?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 하늘의 그 나라, 하나님 나라]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들의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 천국도 그 하늘들의 그 나라에요. 그 하늘들의 그 바실레이아, 그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래요. 그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뭐라 그랬어요? 푸토코스. 페네스는 상대적 가난이라고 그랬죠? 그거는 그 가난 속에서도 살 수 있는 가난이에요. 쟤는 오백 원 버는데 나는 왜 이백 원밖에 못 벌어? 근데 그 이백 원으로 내가 충분히 살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오백 원에 비해 가난한 나 때문에 상실감, 박탈감 이런 걸로 아픈 거죠? 그걸 페네스라 그래요. 근데 심령이 가난한 자에서의 푸토코스는 그거 없으면 곧 죽을 사람이에요. 그 생명, 그 진리 없으면 곧 죽을 그 사람. 그게 푸토코스란 말에요. 근데 심령이, 이 말도 그 성령 안에서예요. 그러니까 그 말씀 안에서 그 말씀이 너무너무 갈급해. 그것만이 내 생명이야, 라고 그걸 자각하고 있는자들을 푸토코스라고 그래요.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라고 했을 때에 그것도 푸토코스고 너 니가 가진 거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와, 라고 했을 때 그 가난한 자도 푸토코스에요.

그렇게 그 진리 안에서 그 진리가 바로 내 생명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그 진리가 그 안에 씨로 들어가 있는 자잖아요? 그들에게 그 하늘들의 그 나라가 주어진다, 이런 말이에요. 그들이 그 하나님의 그 하늘의 그 나라다, 이런 말이란 말에요.

다시 한 번, 나라, 바실레이아라는 건 생명차원의 그 유일한 길인 그 말씀의 화육체인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킴과 동시에 그 나라로 존재 화된 그 그리스도로서의 그 예수. 그 예수의 그 거대한 생명차원의 그 신비 안에 영적 현현체로 함께 거하는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그 그리스도, 진리와 하나 됨, 연합된 그 상태, 요걸 나라라고 한단 말이에요. 바실레이아.

그러니까 어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 있는 그 공간적인 천국, 이런 거를 생각하시면 안 돼요. 물론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그 하나님의 그 나라가 ‘그 나라’에요. 거기가 천국이에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역사 속에서 그 나라는 감히 추측하거나 상상하거나 그려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거기는 ‘그 나라’ 가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 나라가 있다고 아느냐 하면 이 땅이 있기 때문에 아, 땅이 있으면 이거의 원형인 어디가 있겠네? 로서의 거기를 하늘이라고 그런다니까요. 그걸 나라라고 한단 말에요, 하나님 나라.

거기를 천국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거 미루어 추측하지 마. 그런 의미에서 땅을 만들어놓고 하늘은 텅 비어놓은 거예요. 검게. 맘대로 추측하지 마, 이렇게. 거기가 이 은하계의 저 밖에 뭐 어딘가에, 우주 어딘가에 하나님이 지금 맨션으로 가득 채워놓은 어디라면 인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켓트를 만들어서 거기 간다니까요. 그런 나라가 아니란 말에요. 감히 우리가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러니까 천국에 갔다 왔더니 거기에 뭐 누가 있더라, 누가 없더라 뭐가 있더라, 무슨 집이 뭐 마이클 잭슨이 사는 집이 내 집이더라.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백프로 거짓말. 하도 정신병자들이 많으니까, 그죠? 교회 안에 특히 많은 것 같애.

자, 그렇게 그 나라가 된 이들 그들은 이 역사 속에서 푸토코스로 갈급해 한다는 거예요. 그 말씀, 그 진리를 갈급해한다는 거죠.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땅의 존재들은 땅의 양식이 아닌 하늘의 양식으로 다시 살게 되는데, 요건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할 건데요, 그 하늘의 양식으로 다시 살게 되는데 그 나라, 그 나라의 형국을 잘 그려준 게 요한복음 15장에 나와요.

요 15:3-7

너희는 내가 일어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나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하기오스, 거룩하게 깨끗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이에요.]

4 내 안에 거하라 [네가 그 말로 깨끗해졌다면 네 안에 내 말 들어있고 네 안에 내 말이 들어가 있다면 내가 네 안에 있는 거고 네가 내 안에 있는 거야.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는 내가 그 말로 너를 살릴 게, 가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에요. 내가 너 살린다, 이거.네가 나 섬기는 거 아냐, 내가 너 섬기는 거야. 내가 너 말로 섬기는 거야 진리로 섬기는 거야. 내 생명력으로 너희 주는 거야, 이거 내 안에 거라하]

-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이 말은 내가 저희 안에 저가 내 안에 있으면 그거는 그 상태에서 이제 어떤 열매를 많이 맺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생명열매야, 이런 말이에요. 그게 많은 열매,큰 열매야. 이런 말이에요. 그 상태가 열매라니까요 그리고 그 상태가 되면 또 이런 생명나무 실과를 먹은 열매들을 또 만들어 낼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상태가 바로 그 열매란 말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Nothing]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심판이죠]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게 주기도문 아니에요?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하게 되었네요. 그럼 그 나라는 나에게 임한 거고 그 상태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당연히 다 들어주지’ 이게 그 말 아닙니까? 진리의 영이 가지로 흘러들어가서 그 가지를 참 생명으로 살리는 형국, 이게 하나님 나라 바실레이아란 말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하게 되면 그 안에 품은 그 생명의 씨를 다른 이에게 이렇게 전해줄 수 있게 되겠죠? 그걸 프라우스, 온유라고 해요. 그리고 그걸 겸손이라고 해요. 온유와 겸손은 같이 막 혼용해서 써요. 그게 온유에요. 이렇게 뭐 그냥 유하고 부드럽고 성품이 뭐 응? ,, 그게 온유가 아니라니까요. 그냥 성격이에요, 그건요. 성품. 근데 날 때부터 아닌 걸 어떡해?ㅎㅎㅎ. 근데 그런 온유를 연습해서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그게 벼르는 거죠. 그건. 그러한 자들은 반드시 땅을 기업으로 상속 받는다, 고 했죠? 우리 배웠잖아요?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조금 전에 함께 읽었던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그 상속 받을 수 있는 것, 그 클레로 오메오, 똑같은 단어에요, 이게요. 그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은 혈과 육은 절대 아니다, 그랬습니다. 영이다, 그랬어요. 영. 살리는 것은 영이지 그랬단 말에요. 영이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진리의 영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클레로 오메오, 상속 받을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 똑같은 단어가 등장하는데 온유한 자들이 땅을 유업으로 클레로 오메오, 상속 받는다, 그래요. 그렇다면 온유한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 진리를 씨로 가진 자들이고 그 땅, 호계라는 그 땅이 바로 땅에 속해 있지만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 적 차원으로 합류한 거, 요걸 호계, 그 땅이라 그래요.

온유한 성품을 가지면 부동산을 많이 허락해준다는 말이 아니라니까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무슨 땅을 줘요? 호계 그거는 이 땅 적 차원에 있지만 그것으로 하늘 적 차원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을 때에 그 땅. 그러면, 그게 나에게 주어지면 나를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 세상, 땅의 것이 하늘 적 차원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 땅에 묶이게 되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 땅을 나에게 주어버리면 내가 그걸 정복하고 장악하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는 거예요.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놓고 땅을 정복해! 그러는 거예요. 뭐 어떻게 정복하라는 거예요? 내가 너에게 줄 테니까 그걸 하늘 적인 것으로 깨달아 알라는 거예요. 그게 땅을 정복하는 거예요. 온유한 자는 그 땅 준다는 거예요. 왜? 진리를 이미 씨로 내 안에 갖고 있으니 그 땅에 묶일 리가 없잖아요? 사람들의 시선, 가치, 평가, 도덕, 윤리 이런 것에 안 묶일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땅을 받은 거예요. 온유한 자는.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떻게 쉬게 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랬으니까 진리로 쉬게 한단 말이죠? 그러면 이분은 지금 진리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쉬게 할게. 자유케 할게. 왜? 내가 진리야, 내가 진리를 갖고 있거든]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걸 온유라고 해요 주님이요. 내가 진리를 갖고 있어 그것으로 너희를 쉬게 할 수 있어 안식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너희를 자유케 할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이를 온유한 자라 그래요. 프라우스, 온유하고 겸손하니] -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멍에라는 거. 히브리사람들의 멍에는 항상 소 두 마리가 한 멍에를 진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진리로 오셔서 하나님이라는 소와 우리를 하나로 연합하여 항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거 요거를 형상화하여 쓴 글이 에이레네, 평강이란 뜻이에요. 요게.그러니까 요 평강을 만들어줄 수 있는 자. 무엇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요 에이레네, 평강을 만들어줄 수 있는 자. 멍에를 나와 함께 지고 저 방향으로 가자! 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 그 자, 그 자를 온유한 자라 그래요.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해요.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율법의 짐, 율법의 멍에 이런 거와 비교해서 진리는 쉽고 가벼운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지 그래도 짐은 짐이다, 이런 말이 아니에요. 대조하는 거란 말에요. 가벼운 짐도 짐은 짐이잖아요. 그 짐 아니라는 얘기에요, 그런 짐. 가볍다. 율법의 짐에 비해서 가볍고 율법의 멍에에 비해 쉬운 거야, 내 거는. 은혜 안으로 들어오면 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국어사전의 개념, 우리가 갖고 있는 그 국어사전의 그 정의로 온유와 겸손이라면 예수님은 그런 분 아니잖아요? 열두 살 때 랍비들하고 성전 안에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토론했다니까요. 이거 겸손한 거 아니죠? 열두 살이면 어른이 말하면 그냥 겸손하게 그렇죠, 뭐. 이래야지요. 그리고 성전 마당에 가갖고 남의 장사 그거 다 때려 엎었다니까요. 그걸 온유라고 그럽니까?

아니, 어머니, 형제가 저 멀리서 아들 보겠다고 왔는데 문 밖에 내놓고 누가 내 어머니냐? 이게 온유에요? 겸손입니까? 이게? 자기 아버지 장례 치르고 쫓아오겠다고 그러니까 야, 죽은 자는 죽은 자한테 가서 장사 치르라고 그래. 이게 온유입니까? 무섭지 않아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바리새인들에게 이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다니까요. 그럼 온유한 거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수시로 화를 냈어요. 제자들한테도 그냥 화를 내고 말이죠.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울었다니까 막 화내다가.ㅎㅎㅎ. 그런 온유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오랜 세월을 흘러내려 오면서 그 진의가 왜곡되고 변질된 언어를 갖고 성경을 읽고 있는 거예요.

난 나중에 인제 개혁, 개정, 개정판 나오면, 몇 십 년 후에 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삼? 이렇게 써있을 거 같애, 나중엔. 지금은 애들이 그 말밖에 안 쓰잖아요? 우리는 그 말을 몰라요, 그죠? 예수님이 탄식하사, 이거는 그냥 헐! 이렇게 쓸 거 같애, 그냥, 한 마디로. ㅎㅎㅎ 응? 그럼 다 알아들어요. 애들은. 그렇게 바뀌어간다니까요. 말들이. 그런데 그러한 단어들, 그러한 언어들을 갖고 우리는 그 때의 진리를 오늘날의 그 정의로 해석을 하려고 해. 그러니까 율법으로밖에 못 보는 거예요. 문자적으로밖에 못 보는 거란 말에요.

언어라는 건 인간들의 필요와 편리를 따라서 그들의 수준으로 변질이 되고 왜곡이 되게 되어 있어요. 중국어 보세요. 지금 전부 약자가 되고, 일본어도 마찬가지. 우리 국어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문자를 갖고 우리는 그 때의 그 진의를 절대 밝혀낼 수가 없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그 온유, 프라우스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진리로 가진 이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그것을 주어서 그들이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걸 프라우스라 그래요. 온유라 그래요. 그럼 구약시대에 온유의 대명사 모세죠? 모세가 뭐 그렇게 온유했어요? 성질 부리다가 가나안에도 못 들어갔잖아요. 반석 쳐가지고. 그런데 그 사람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혼자 받아 그걸 배워 광야 내내 이스라엘에게 던져줬던 사람이에요. 그걸 온유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모세가, 그 모세의 온유가 지면에서 최고였다고요. 그 때는 진리를 안 사람이 그 사람 하나밖에 없었다니까요. 그걸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그래서 모세가 온유하다, 하는 거예요. 무슨 모세가 성품이 좋아요? 안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그 온유, 그 말씀을 가진 그 이는 그 호계, 그 땅,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를 상속 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온유한 자는 그 땅을 상속 받는다, 그런단 말이에요. 이 나라의 이야기가 아주 이해하기 쉽게 그려져 있는 에피소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좌우에 달린 강도들의 이야기에요.

눅 23: 37-43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이게 바실리우스, 바실레이아 뭐 같은 어근이에요. 그리고 막 같이 쓰기도 해요. 왕이어든]

-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은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37절과 38절에 나오는 그 왕이 바실리우스라고 했습니다. 그 왕의 통치, 그 왕의 섬김을 바실레이아라고 하는 거죠. 주님은 바울의 말처럼 표면적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의 왕이라고 그랬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은 율법주의 안에 갇혀있는 유대인들을 이야기 하는 거죠. 이면적 유대인은 그 유대인 아니란 말에요. 그러니까 오늘날 국가로 독립해있는 저 이스라엘, 그거는 성경과 아무런 상관없어요. 거기에서 무슨 무화과나무 꽃이 피든 말든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그거는 성경과 아무상관 없다니까요. 그건 세대주의자들이 심심하니까 성경을 진리로 풀지 못하니까 자꾸 역사와 인물들을 거기에 대입시켜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지 절대 그 사람들은 아무상관이 없어요. 뭔 유대인이에요? 그게? 유대인이 뭐 원래 그렇게 생겼어요? 다 백인들처럼? 아니라니까요. 오사마 빈라덴같이 생겨야 유대인이에요, 원래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퍼런 눈을 가진 그런 사람처럼 그렇게 되어버린 그들이 무슨 민족적 유대인입니까?

자, 표면적 유대인의 왕은 율법주의의 왕이에요. 그 왕은 백성의 섬김에 의해 왕이 되는 자기중심의 왕이에요. 모든 이 세상 아담들이 다 그 왕이에요. 그러나 이면적 유대인의 왕은 섬기는 왕입니다.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백성의 섬김을 요구하는 왕이 아니라, 자기중심이 아니란 말에요. 자기의 백성을 위해 자기 것으로, 자기생명을 주는 게 하늘의 왕이잖아요? 거기에 강도가 등장합니다. 좌편 강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해요. 좌편 우편은 성경에 안 나와 있지만 좌편 강도가 나쁜 놈이 맞아요. 왜냐면은 성경에서 바른 쪽 ‘엑시오스’, 헬라어로는 엑시오스고 히브리어는 야빈인데 그게 데코마이, 야만 이런 단어에서 온 단어거든요.

그게 뭐냐면 바른, 올바른 확고한, 영접한 받은,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진리를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올바른 편에 선 그들을 오른 편이라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물을 오른 편으로 던져야지 그래야 거기에 내 백성이 있지. 그래야 잡히지 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 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오른 편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 왼편은 없어요. 왼편은 물리적 세계 속에서나 있는 거죠. 영의 세계에서 왼편 오른 편이 어디 있어요? 보좌는 어디 있고? 그런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바른, 똑바로 선, 확고한 진리를 영접한 그 씨를 받은 이런 게 오른 편이란 말에요. 그러니까 왼편에 있는 강도가 나쁜 놈인 거죠. 그래서 좌편에는 염소, 오른 편엔 양, 이렇게 이제 이야기하는 거란 말에요.

그가 뭐라 그러느냐 하면 네가 그리스도잖아? 그러니까 너와 우리를 구원해! 그래요. 이게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보고 그 안에 있는 예수에게 하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자기와 아무상관 없는 예수, 자기 밖에 있는 예수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 메요? 그러니까 나를 구원하세요. 어떻게? 죽지 말고 살아서 나를 구원해 달래니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그래서 그들의 예수는 안 죽었어요. 열심히 섬겨줘요. 죽은 예수를. 그러니까 안 죽은 거예요. 십자가에 달린 율법의 대표로서의 예수는 그 자리에서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리스도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 분은 아직 안 죽었단 말에요. 죽어야 그리스도의 영으로 들어가 그가 사는데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 율법의 대표로, 죄인으로 죽은 그에게 너가 그리스도잖아? 예수가 그리스도 라메? 그러니까 죽지 말고 나를 구원하라니까? 그리고 왕이 왜 죽어? 니가 너를 구원해야지 너 메시아 라메? 왜 죽어? 왕이? 니가 죽으면 니 나라는 망하는 거 아냐? 이거! 이게 율법주의지 뭐예요? 그게 강도에요.

그리스도는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승천이란 말이 하늘들 안으로 들어갔단 뜻이에요. 그 하늘들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올라갔다, 고 안 써있다니까요. 위의 것, 위의 것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부활하고 승천을 해야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십자가에 매달린 그 보고 네가 그리스도잖아? 여기서 나를 구원해! 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렇게 구원하면 육적 구원밖에 안 된다니까요. 그렇다고 안 죽어요? 곧 죽어요.

요즘 같은 경우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말이죠.

제가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커피를 뽑거든요, 이렇게. 근데 난 매일 거기 서 있는 거 같애. 눈만 뜨면 거기 그렇게 서 있어요. 어젠가? 이게 오늘이야? 내일이야? 시간이 그렇게 가요.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왔다 할지라도 그는 곧 거기 또 달린다니까요. 하나님은 그런 구원주려고 우리에게 온 분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메시아도 아니라니까요. 죽지 말고 우릴 구원해. 너를 구원해! 그게 왕 아니야? 이거.

반대로 오른 편 강도는 어느 순간에 그 예수와 십자가의 내용을 알아버려요. 예수와 십자가, 그리고 자기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안다니까요 40절에 보시면 그 오른 편 강도는 예수와 자신이 동일한 정죄, 그러니까 사형선고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요. 나도 죽어야 되고 저도 죽어야 되는데 중요한 건 저는 죄가 없이 죽어 이걸 안다니까요. 이 사람은 그 예수를 마음으로 갖게 돼요. 내용으로 갖게 된다니까요. 그가 오른 편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사는 거예요. 그 사람이 뭐라고 부탁해요? 당신의 나라, 바실레이아 임할 때에, 에르코마이, 오늘 본문에 그 단어가 그대로 여기에 쓰이고 있네요?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세요, 그래요. 당신의 나라는 당신이 그렇게 죽어야 세워지고 이 땅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에르코마이, 올 때에 나를 기억하세요, 라는 건 당신이 그 나라로 올 때 내가 그 나라로 들어가게 해주세요, 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리로 말한다. 아멘, 아멘, 그래요. 내가 진리로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구절을 잘 이해 하셔야 되는데. 여기에 나오는 ‘오늘, 세메론이라는 단어와 에쎄, 라는 단어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돼요. 그 무선 마이크 하나 주실래요? 그 오늘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할 오늘의,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라고 할 때 그 오늘, 똑같은 단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세메론이라는 단어는 호 라는 관사하고요 헤메라, 라는 요 단어가 합쳐진 단어에요. 근데 이걸 그냥 오늘이라고 그래요. 근데 이건 오늘이라는 게 아니라 요게, 헤메라가 날, 낮, 세대 이런 뜻이란 말에요. 그러니까 ’그 날, 이날, 그 세대, 이 세대 이렇게 번역하는 게 오히려 맞죠.

그리고 그 에쎄라는 단어도요. 이게 에이미의 미래형이란 말에요. 에미 동사의 미래형인데 이날, 오늘이란 단어와 요 미래형의 시제가 어울리지 않죠? 조합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요거는 앞부분과 뒷부분을 나누어서 해석을 해야 된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한 번 고거를 염두에 두고 다시 번역을 한 번 해보자고요.

‘오늘 나와 함께’, 가 한 문장이고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가 또 한 문장이 있어야 돼요. 한 문장이 돼야 돼요. 그 앞 문장을 먼저 해석해보면 이래요. 거기서 나, 라는 단어 앞에 붙어있는 그 메타, 라는 전치사가 함께, 라는 뜻도 있지만, 함께 맞죠. 연합, 결합 이런 뜻이에요. 메타. 그걸 감안해서 다시 번역해보면 <이 날에, 그 날에, 이 날에, ‘이 날‘이라는 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그 이 크로노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관여를 하면 그 접촉점이 카이로스가 된다고 그랬죠? 그 날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이 날에 네가 나와, 나와 함께 이렇게만 번역이 됐는데, 네가 나와 연합됐네, 결합됐네! 이런 말이에요.

세메론, 이 날에 내가 메타, 나와 결합됐다. 왜? 네가 지금 나를, 나는 지금 니 옆에 여기 달려 있는데 이 나를 내용으로 네 마음으로 가져가 있네? 그럼 너와 나는 메타, 결합됐다. 이런 말이죠.

뒷 문장 해석의 키는 엔이라는 전치사인데요 그 엔이라는 전치사를 (?)식으로 헨이라고 발음하게 되면 그건 하나, 라는 뜻이에요.

무엇, 무엇 안에서의 하나 됨. 이런 말이에요. 그걸 감안해서 뒷부분을 번역하면 네가 그 나라,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그랬잖아요? 고거를 낙원으로 받았어요. 낙원, 천국, 나라 같아요. 그 낙원 안에서 헨, 네가 그 나라와 하나가 되리라, 이런 말이에요.

다시오. 네가, 나는 여기에 있는데, 이 밖에 있는데 어떻게 나를 그 내용으로 알아 네 마음으로 가지고 가 있지? 너와 내가 메타, 하나로 결합됐네? 연합됐네? 그러면 네가 그 나라 안에서 그 나라와 하나가 될 거야. 네가 그 나라야! 이런 말이에요.

당신이 오늘 밤에 그 나라 갈 때에 꼭 나를 데리고 가세요, 이런 말이 아니라 당신이 나라가 되어 그 나라로 그 통치, 그 섬김으로, 그 다스림으로 이곳에 올 때에 나에게도 임해주세요, 에요. 그러니 주님이 그래, 네가 나와 하나가 됐잖아. 그러니 내가 그 나라로 올 때 너는 나와 하나지.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공부한 내용이 거기에 다 들어 있잖아요?

그 예수, 그 말씀 그 진리를 내 안에 그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갖고 있게 되면 나는 이미 그 나라에요. 그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는 자에요. 그 말씀에 의해 통치되는 자에요. 그 말씀으로 섬김을 받는 자가 되는 거예요, 나는.

정리를 하면 이러합니다.

성령과 상관없이 예수와 십자가를 역사 속 구원수단으로만 보는 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해요. 왜 왕이 죽느냐는 거예요. 강도도 그러고 군병들도 그러고 죽지 마! 네가 너를 구원해. 네가 왕이 라메? 그게 세상 왕이잖아? 그렇게 이야기한다고요.

너는 섬김을 받아야지. 그러면 너를 섬기는 종들이 너를 못 죽게 너를 지켜야지. 주님은 그걸 사단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사단의 나라에 법칙이에요. 왕이 죽으면 그 나라도 망한다, 라는 것이 이 역사 속 아담들이 논리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왕을 추궁하는 거예요. 죽지 말고 살아서 너도 살고 나도 살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을 선물로 받은 어떤 이가 등장합니다. 조금 전까지도 그는 예수를 조롱하고 욕하던 자였어요. 그런데 세메론, 호 헤메라, 어떤 시점이 되니까 그에게 선물이 확 쏟아져버렸어요. 그래서 어디에서는 두 강도가 전부 예수님을 욕했다고 그러고 어디에서는 이렇게 하나는 돌아서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나오는 거예요. 어떤 분은 그래서 성경은 잘 못된 거라고 저한테 질문을 하셨던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그가 선물을 받아요. 성령을 받자 예수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요. 그리고는 나라이야기를 해요.나라. 강도가 뭐했던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말을 비 진리로, 거짓말로 사용하면 그걸 절도요 강도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의 대표로 지금 강도가 서는 거예요. 율법주의의 세상이에요. 그 세상에 성령이 임하자 그들이 알더라니까요. 어떤 이들이.

어, 그 나라는 아니네? 우리가 건축하던, 인간들이 중심이 된, 율법의 그 행위로 세워지는 그 나라는, 거기는 바벨탑인 거네? 바벨인 거네. 거긴 뭐 탑이란 말도 없어요. 거기가 바벨이네? 바벨이란 단어가 섞이다, 는 뜻이에요. 혼잡스럽다, 섞이다. 그게 바벨이네, 우리가 나가야 할 바벨론이네? 그러니까 내가 여태까지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는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강도짓 하면서 살아왔던 이 삶, 그리고 그렇게 구축했던 이 나라, 이 나라는 아닌 거니까 저이가 세우는 저 나라, 나는 반드시 그 나라에 들어가 살아야 돼.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가 알았네, 이제? 네가 나와 하나 됐네. 그러면 네가 그 나라야. 그래요.

이제 그 하늘들의 그 나라, 천국이라는 건 이 땅에 생명의 씨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존재성을 가리키는 거고 그 생명 씨를 받아서 하늘들이 된 하늘 적 차원으로 합류된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둘이 하나가 되어서 연합한 상태로, 영원을 살게 되는 그런 영적 영역 미래적 최종 완성으로서의 그 나라, 거기를 가리키기도 하는 거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그 나라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미래적 최종 완성으로서의 그 영적 영역인 그 하늘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 하늘’로 못 들어가면 미래적 최종 완성으로서의 ‘그 나라’,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절대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은 반드시 이 땅에서 완성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오늘 두 번째 이야기에요. 그 뜻은 반드시 땅에서 이노마이, 되어져야죠.이루어져야죠. 이런 말이에요. 그럼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습니까? 그 뜻을 이루러 내려온 분이 누구에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루어졌어요? 그 뜻이?

요 19: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뜻이 다 이루어졌죠?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 그러잖아요? 나는 내 뜻을 행하러 온 거 아냐.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어. 그것만 하러 오신 분이에요. 근데 그분이 다 이루었다! 그랬어요.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뜻이잖아요?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어졌어요. 그렇게 다 이루어지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머리를 숙이시고, 그러는데 머리, 호 케팔레, 요게 인제 내가 머리 둘 곳 없다, 했을 때 고 머리에요. 케팔레. 머리가 클리노 숙이다, 가 아니라 사실은 멀리 보내지다. 머리가 멀리 보내지고 영혼, 호 푸뉴마, 성령이 파라디도미 넘겨졌다. 이런 말이에요. 그 뜻을 이루러 오신 그 하늘의 아들이 ‘다 이루었다’ 하자 그 머리가 머리 둘 곳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그 머리가 어딘가로 보내지고 그 말, 그 호 푸뉴마, 그 영, 성령이 파라디도미 누군가에게 넘겨졌다. 이런 말이에요.

그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러니까 교회로 보내진 거예요. 클리노. 멀리 보내졌어요. 교회로. 그 성령은? 호 푸뉴마? 어디로 넘겨졌어요? 파라디도미? 교회에게! 여러분에게 넘겨진 거잖아요. 하늘들에게. 그러니까 그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머리가 교회의 머리로 보내지고, 앉고, 클리노 그 말, 그 진리 그 성령이 파라디도미, 교회에게 성도들에게, 하늘들에게 넘겨진 거예요. 그래서 그걸 받은 이들은 하늘들이라고 그러고 그 안에 넘겨진 그 성령을 아브, 아버지라 그러고 그 말, 그 진리를 깨끗한 말, 하기오스 거룩한 이름이라 그러고 그렇게 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나라, 천국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 나라가 여러분에게 임했잖아요.

이건 여러분들이 이미 그 정죄에서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너무너무 귀하니까 그거 아니면 절대 나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 꼭 이건 절대로, 실패되어지지 않고 포기되어지지 않는다는 거 알지만 이게 너무나 소중하기에 내가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이 세상에서 가치라고 생각하는 건 이거밖에 없기 때문에 나의 프로슈코마이, 기도는 이거밖에 없는 거예요.

요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델레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 이니라 [요 마지막 날이라는 게 호 에스카토스, 헤메라, 에요. 그러면 에스카토스, 마지막, 종말 이것만 빼버리면 쎄메론,오늘, ‘네가 오늘’ 이라는 그 말이에요. 호 헤메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나라가 되면 사는 거예요]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들이 어디로 내려왔어요? 율법주의 안으로 왔잖아요. 말씀을 주어서 이것으로 생명이 뭔지, 구원이 뭔지 아들이 뭔지 알으라고 줬더니 그걸로 그걸 진리로 깨닫는 게 아니라 그냥 열심히 몸으로 행해버리고 있네? 이스라엘이? 거기에 아들이 내려가서, 말씀으로 내려가요. 그리고는 그들에게 보여요. 말씀이에요. 그 말씀을 보고 행하는 게 아니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거. 그것이 아버지의 델레마, 뜻이다! 그런단 말에요. 그럼 그게 하늘에서 이루어졌잖아요? 그게 하늘의 뜻이잖아요? 하늘에서 내려온 뜻이니까. 그럼 그게 땅에서 이루어져야죠.

바꾸어 말해볼까요?

그렇게 그 진리의 실체이신 하나님, 그 분이 육적 현현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게 예수 그리스도니까. 그분은 하늘입니다. 그럼 뜻이, 하나님의 뜻이 그 하늘에게서 이루어졌어요. 어떻게? 육은 삭제당하는 거고, 아니지, 죽어서 사는 거지, 라고 영으로 부활시킨 게 그 하늘에서 이루어졌네요? 그러면 그 뜻은 땅에서 또 이루어지게 돼있는 거예요. 당연히 여러분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겁니다. 근데 그렇게 죽어야 산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나님, 이게 맞아요. 죽이세요. 그 기도를 한다니까요. 행위가 아닌 은혜, 하나님의 선물. 그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아들에게 담아서 세상에 내려 보내면서 너 내려가서 니가 보기에 성화를 최고로 잘 성취한, 이룬 그 사람들을 일 번부터, 하여튼 선착순으로 다 차등을 멕여서 요기까지만 구원하고 와, 그렇게 뜻을 담아준 게 아니라니까요.

너를 보고 아들로 깨닫는 자들이 있을 거야. ‘아들’을 보는 자가 있을 거야. 그들에게 생명주고 와!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았어요. 사람을. 속을 보신다는 게 그거라니까요. 그 속에 말씀이 있나? 이거.

그렇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나라가 되고 아들이 되고 하늘들이 되고 거룩한 이름이 된 이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게 뭐겠어요?

감사죠, 기쁨이죠, 그리고 그래요 하나님 이게 옳습니다. 이거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깨달아 알아 그걸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을 흘려주죠? 그럼 그건 기도네요? 그럼 하나님의 뜻은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는 거네요?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로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델레마] 뜻이니라

그러니까 이 뜻을 제대로 깨달아 안 자, 아니 이 뜻이 그 땅에서 이루어진 자들은 그냥 범사가 이게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지. 모든 것은 합력 되어서 선이 되는 거지, 라고 감사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감정적인 기쁨, 감정적인 감사라는 게 아닙니다. 그거는 기질에 따라 다 달라요. 우울질인 사람한테 늘 기뻐하라고 그러면 그거 안 된다니까요. 그런 기쁨이 아니라, 그거는 무슨 수면유도제인가? 프로포플 이런 거 한 방 맞으면 그냥 된다니까요. 자연스럽게. 마약을 한 번 하든가. 그런 식의 기쁨 감사하라는 거 아니에요. 진리 안에서의 그 감사. 그 기쁨.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거.

세상 율법은 줄 수 없는 그거. 그리스도가, 진리가 주는 그거. 그러면 그들은 인생 자체가 기도, 프로슈코마이가 되니까 항상 기도하는 거예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뜻이 그 기도가 계속 그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나의 기도도 그 기도를 쫓아가게 될 거니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거죠.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도 설명해줍니다.

마 11: 25-26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인간들의 지혜와 슬기는 부정해버리고 도대체 자격 없고 무능력한 그런 자들인 것 같은 자들에게 쏟아지는 은혜. 세상은 부정하고 은혜만 오롯이 드러나게 하는 것, 이걸 아버지의 델레마, 뜻이라고 한단 말에요. 그 뜻이 하늘에서 발출이 되어서 땅에서 성취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 나라의 그 씨, 그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면 내가 하늘들이 되는 거고 그 내 안에 그 진리가 나를 아들로 낳는 아버지가 되는 거고 그 상태가 되면 내 안에 있는 그 말씀은 깨끗한 말, 하기오스, 로고스가 되는 거고. 그러면 그 하나님 나라가, 통치가, 그 말씀의 섬김이 내 안에 이미 임한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은 그 하늘에서 기노마이, 되어진 그 뜻,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되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그 말이에요.

성경에 보면 하늘이라는 걸 여러분이 자꾸 만화나 영화나 소설이나 그런 데에서 본 것으로 자꾸 추측하고 그러기 때문에 제가 설명을 좀 해드리면.

이게 호 오라노스가 이게 하늘이라는 단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 단어는 호 호로스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그랬죠? 그건 산입니다. 그 산.

이거는 호 호르니스 새. 새 날개. 이런 뜻이에요.

성전, 성막의 네 면에 새의 날개를 부조합니다. 새기라고 해요. 그래서 성전은 멀리서 보면 새가 이렇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그러면 무조건 성전이에요. 그 성전.

그럼 호 호로스, 예루살렘은 그냥 가나안은 쭉 다 평지에요. 평진데 예루살렘만 요렇게 산입니다. 그래서 타이토스가 여기를 공격을 못했다니까요. 워낙 이게 요새라서. 그래갖고 여기에다 나중에는 이렇게 똑같은 높이의 성의 쌓아서 올라갔더니 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 나중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AD 70 년에, 이 안에서 사람들이 애 잡아먹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홀랑 망했어요! 여기 서요 지들이. 이거는 율법주의의 그 세상 나라 건축, 세상 왕국의 건축은 결국은 지 아들을 잡아먹고 살해하는 것으로 끝장난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게 뭐 율법 지키고 도덕 윤리, 야, 저 성전을 모독하려면 나를 죽이고 가라! 그러더니 배고프니까 자식을 다 잡아먹었다니까요. 요세푸스의 역사서를 보면. 다리를 잡고 돌려서 성벽에다가 확 던져가지고 머리가 깨지면 그걸 삶아먹었다고요.

그 산, 이게 율법주의의 예루살렘이란 말에요.

새, 성전이에요. 이거를 히브리어로 ‘하 에렉스’ 라 그래요. 땅, 그 땅이라 그래요. 그럼 요게 땅이에요. 성전. 하나님이 아래의 것으로 우리에게 그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주신 것이 이 성전이에요. 호 호로스, 호 호르니스. 요것으로 요것의 진의를 알았을 때 그걸 그냥 하늘이라고 하는 거지 어떤 공간적인 개념이 아닌 거예요, 이건요. 아, 그것의 진짜 내용? 그거? 이렇게. 그걸 우라노스라 그러지. 그리고 이것을 알아서 그 진리가 되어버린 이 사람들을 그냥 호 호르니스, 하늘들 이라고 복수로 쓰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늘들이 아니라 그냥 이 하늘,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의 그 하늘은 단수에요. 이 하늘은 그 하나님의 그 근원적인 그 뜻 그것이 발출된 거기 그거!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그거. 거기를 그냥 하늘이라 그래요. 그럼 그 뜻이 여기에서 발출되어 내려왔어요. 예수님도 여기에서 왔어요. 나는 하늘에서 온 떡이야, 그랬을 때도 단수에요, 여기라고요.

그 하늘, 거기에서 나는 왔어. 그 하늘에서 내려온 그 뜻이 이 땅에서 아, 이게 그거구나! 이게 그거야? 라고 이루어지게 되면 이것이 그 내용으로 보여지게 되었을 때 그 땅은 여기에 의해 정복되는 거예요. 이 하늘에게 (단수) 땅이 주어진다, 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상속으로 주어진다. 그럼 더 이상 우리는 여기의(땅) 종으로 안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율법이고 진리란 말에요. 은혜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어려운 거 아니에요. 다 그게 그 얘기에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요, 여러분이 그냥 그 진리를 알게 되면 나중에는

그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자 이런 것도 사실은 소용없어져요. 거기서도 자유로워져요. 뭐 매주 이렇게 모여 성경공부 안 해도 돼.

지금은 물론 해야죠. 여기서. 지금은 해야 되는데 나중에는 그냥 그게 그거야. 어떻게 봐도 돼.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시비를 거는 게 뭐냐면 왜 문자를 설교하면서 문법대로 안 하냐? 또 왜 어떤 때는 이런 얘기로 풀고 어떤 때는 왜 이런 얘기로 푸냐? 어떤 얘기로 풀어도 그게 진리로 풀려지면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아요. 성경은 물론 한 가지 이야기만 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없어요. 그 말은 진리라는 이야기만 한다는 얘기지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주인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요. 그리고는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너무너무 기뻐서 그 양을 데리고 와서 집에서 잔치를 벌인단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아, 하나님은 그렇게 나는 잃어버린 자가 아니야, 나는 하나님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자가진단을 그렇게 내리고 있는 이 유대인둘, 바리새인들 얘네들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와서 잃어버려진 자. 어, 이거 어디야? 나 길을 잃었네? 라고 자각할 수 있는 그자, 그자를 찾아가서 그 자가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그걸 메타노이아, 회개하고 한다, 고 하고 그 때 하나님은 천군천사와 가장 행복해한다, 기뻐하신다. 맞아요? 제가 그렇게 비유 때 설교했으니까 맞다고 해야지 여기서 틀리다고 그러면 맞죠. 그 이야기죠. 그래서 그게 드라크마의 비유, 두 아들의 비유 이렇게 이어져 내려간단 말에요. 그리고 그거를 한 비유라고 한단 말에요. 거기서. 같은 이야기니까, 회개 이야기니까.

근데 제가 어느 날 이렇게 풀었어요.

아, 이렇게 진리를 안자들은 그 수많은 재물 성전 마당에서 드려지는 그 희생 제사의 그 제물, 그 양들이 아닌, 진짜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려진 양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양을 마치 진주를 찾듯 열심히 찾아가서 찾았을 때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나귀가 양을 어깨에 멘 것이 십자가니까. 나귀라는 단어 자체가 레위기에 보면 나귀를 너희들은 제물로 드려라 그러나 그 대신 드릴 양이 있으면 양을 죽이고 나귀를 살려라, 그런단 말에요. 예수님께서 왜 나귀를 타고 갔느냐 하면 나귀라는 단어 자체가 히브리어로 붉은 빛 짐승이란 말에요. 붉은 빛 짐승은? 성전을 붉게 물들이라 그랬죠? 포장을? 성전, 율법, 죄인을 상징한단 말에요. 아담이란 단어 자체가 붉다, 란 뜻이란 말에요. 그게 요. 그러니까 그 아담은 반드시 그 양을 찾아 어께에 얹고 가서 잔치를 벌여야 돼요. 무슨 양을 잡아야 돼요? 그 때는? 내 어깨에 멘 이 양을 잡아야 된다니까.

그러면 제가 어느 날 그건요 이런 이야기에요. 열 드라크마, 예, 열 개는 그 하나로 찾아져야죠, 나한테. 라고 얘기를 했어요. 제가 전자에 해석을 했을 때도 그 진리를 이야기하고 후자에 해석을 했을 때도 그 진리로 이야기를 했어요. 누가 그걸 틀렸다고 이야기합니까?아니, 왜 어디서는 찾아다니는 게 하나님이라고 그러더니 왜 거기서는 어깨에 얹혀 와서 죽는 게 하나님이라고 그래요? 누가 그렇게 말 할 수 있냐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시비 거는 건 항상 고 수준이라니까요. 여전히 거기에 묶여 있어서 그래요.

진리는 심플한 거예요. 그게 여러분을 자유케 하면 된다니까요. 율법에도 묶일 필요 없고 그런 해석에도 묶일 필요 없어요.

그냥 그 사랑, 그 은혜, 그 아들 알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도대체 뭔데 이런 진리를 깨닫게 해주십니까?

아무도 동의하지 않고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것만이 우리를 자유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에 우리는 다른 것을 붙들 수가 없습니다.

주님 만나는 그날 까지 이 길을 올곧게 잘 갈 수 있도록 이 광야 인생길, 하늘의 만나, 참 말씀으로 우리를 먹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