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40.그 양식에 배고픈 자, 땅에서 굶어 죽다

Hebrew 2023. 5. 20. 22:26

산상수훈 40번 말씀

제목 : 그 양식에 배고픈 자, 땅에서 굶어 죽다

본문 : 마 6:11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자,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가 구해야 할 일용할 양식에 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만 여러분이 잘 숙지를 해두셔도 성경에 나오는 뭐 물, 떡, 바람, 뭐 여러 가지, 비, 모래 이런 개념들이 나올 때 이해가 아주 쉬우실 겁니다. 전부 그 이야기이거든요. 사실은.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일용할 양식은 에피우시오스, 위에 있는 양식이라고 하는 거라 그랬죠? 에피에다가 에이미 동사가 붙은 거니까. 에피우시오스 알투스 니까 위에 있는 양식, 위에 있는 양식인데 아, 고건 또 아람어로 바꾸면 내일의 양식이라고 그랬죠. 그죠? 그러니까 그 위에 있는 양식은 안식일 전날 미리 주셨던 바로 그 안식일의 양식이라는 그런 뜻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게 일용할 양식이 오늘 먹을 양식이 아니라.

고기는, 그 양식은 고기 적 양식이어서는 안 되고 떡으로서의 양식이어야 한다, 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고기는 애굽에서 나올 때 한 번 먹고 마는 거예요. 유월절은 거기서 끝나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떡을 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랬죠? 그래서 하나님은 고기를 저녁의 양식, 에레브, 저녁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시고 떡은 보케르, 아침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고 뭐 저녁의 양식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 저녁의 양식으로 아침을 깨달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아침의 양식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저녁의 양식, 그것만을 고집하면 그건 물론 율법입니다. 저녁의 양식만을 고집하면 그게 바로 죽음이다, 라는 거죠? 그런 연유에서 하나님은 고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에게 금방, 저녁의 양식이야 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걸 달라 그러니까 주고 죽여 버렸어요. 그죠? 이사이에 끼기도 전에 그냥. 그거 먹다가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죠? 여러분? 네, 그거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요. 훈련소에서 밥 먹을 때 교관이나 조교들이 식탁에 올라와서 막 목젖을 차잖아요? 아, 그 때 그냥 그 더러운 기분. 씹기도 전에 그냥 죽여 버렸어요. 하나님이. 주지를 말던가. 그거 우리를 위해서 그 사람들이 희생당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그거 알아먹으라고.

근데 우리는 예수님의 그 광야시험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떡이, 마귀가 그러죠? 요거 돌로 떡 만들어먹어, 그랬더니 그래, 떡, 돌이 떡이 되는 거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너는 그 떡이 뭔지를 모르는구나, 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지! 라고 이야기를 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떡은 말씀으로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죠? 떡에서만 멈춰서도 안 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구해야 하는 그 내일의 양식, 에피우시오스 알투스는 바로 진리의 말씀인 거죠. 그거 구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지금 주기도문에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어져야, 그거 이외에는 어떤 것도 양식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죠? 그것이 양식으로 주어져야 우리는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가 되는 거고, 그게 내게 양식으로 들어와서 내 안에 있으면. 그리고 이름이 거룩한 자가 되는 거고. 말씀, 내가 가진 말씀이 깨끗한 하기오스가 거룩한 이니까요, 그죠? 깨끗한 그런 말씀이 되는 거고 또 그 하나님의 그 섬김, 그 나라, 바실레이아가 나라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섬기다, 라는 뜻이거든요. 성경에는 통치하다, 라는 개념은 사실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섬기다, 라는 뜻이거든요. 그 하나님의 그 말씀의 그 섬김, 그 섬김을 받아서 그분이 섬기는 나라가 되는 거죠, 내가. 그분이 섬기고 그분이 통치하는 그곳이 하나님 나라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그 말씀이 나를 섬기고 나를 통치하면, 이끌어가면 내가 나라가 되는 거죠? 그래서 베드로가 너희는 거룩한 나라, 깨끗한 나라야, 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늘의 그 뜻이 ‘나’ 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앞의 그 네 가지는 상태인 거죠. 그죠? 우리의 상태. 그 상태가 바로 그 양식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다, 라는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 양식을 구해야죠. 그 양식이 있어야 앞의 그 서론의 상태가 내가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 상태가 되지 않으면 기도라는 걸 할 수 없는 거니까, 그죠?

그렇게 우리가 하늘의 양식을 올바로 받아먹게 되면 그 자리에서 이제 용서가 일어나죠. 왜냐면 아, 이 밤이 그 아침을 이야기하는 거였어? 이 죄가 그 의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어? 이렇게 인제 깨달으면 그러면 그 죄나 어두움이나 그 밤이라는 것의 개념이 우리에게 그렇게 더럽고 추악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이런 것으로 여겨지지 않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그러면 이제 용서가 일어나죠?

그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우리의 말씀오로 사하여준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사하여 주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용서가 일어나는 거죠., 거기서.

그리고 시험과 무관한 자가 되죠, 그러면 이제? 왜냐면은 죄, 밤, 성전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시험으로 떨어지는데 그것에 걸리면 죽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알았으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죠, 당연히. 하나님이 막 요거 어떻게 실수하게 만드나? 요거? 그래갖고 그냥 확 시험에 들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위의 것을 설명해주기 위해 아랫것으로 준 그것에 그냥 묶여있으면 그걸 시험에 걸린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걸 양식으로 내가 받으면 용서가 되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고 그리고 어떻게 돼요? 그게 악에서 건져지는 거야. 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거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면서 우리의 청원이 되어야 된다, 그랬잖아요. 그렇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주기도문의 핵심 키는 바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양식인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매주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양식에 관한 거고. 다 양식이고요, 이것이 말씀이.

주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바로 그 양식을 건네주러 오셨던 거예요. 내가 그래서 떡을 갖고 왔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야. 그리고 내 안에 그 진리의 말씀이 있어. 생명이 있어, 라고 하잖아요. 그 떡을 먹여야 그게 생명이 되는 거거든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진짜 생명을 위한 양식이 될 수 없어요. 선악과 따먹고 죽어있는 그 아담을 살아있는 아담, 하 아담, 하 아담은 그 아담입니다. 그냥 아담이라는 그 단어는 사람이란 뜻인데 그 뜻은 뭐냐면 붉다, 라는 뜻이에요. 아담이란 단어 자체가.

빨간 게 또 있네, 마침.

아담이란 단어 자체가 이게 붉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너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희리라, 가 뭐죠? 계시록에서 우리가 뭐 입고 있어요? 세마포 옷 입고 있죠? 그런데 계시록에서 그 옷이 뭐래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아니라 옳은 의’다 그래요. 행실이라고 번역을 해놨는데 ‘디카이오스’, 성도들의 옳은 의야! 그런데 로마서에선 그 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율법과 다른 의를 당신이 준비하셨다, 라고 하는 그 의에요. 그러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너희들은 희게 될 거야. 그런데 또 하나님은 성전을 붉게 물들이라고 그러죠? 그 덮개를? 그럼 성전도 붉은 거네요? 근데 또 나귀가 이 뜻이 뭐냐면 붉은 빛 짐승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나귀를 타고,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내가 니가 되어 , 붉은 빛 짐승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러 간다, 라는 거예요. 그럼 네가 양털처럼 희게 된다는 뜻이죠.

근데 요 아담에 요 ‘하’ 가 붙으면 하 아담이 되가지고 요거는 이 아담 [하가 없는] 하고 달라요. 그래서 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의 그 아들이 뭐예요? 헬라어로 인자라고 해요. ‘그 사람의 그 후손들’이 또 여러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인자의 라인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고 제가 전에 한 번 설명을 해드렸죠?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죽은, 저 아담을, 붉은 빛 짐승 아담을 하 아담, 흰 옷 입은 그 아담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양식은 이 세상에는 없어요. 하나님이 주셔야 돼요.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푸토코스, 주린 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 가난한 자로 살게 되는 거죠. 돈이 없어 가난한, 뭐 이런 가난 말고요. 그런 거는 성경과 아무 상관없어요.

그, 이 땅에서 나를 살리게 하는 양식은 내게도 없고 또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한 그들이 진짜 가난한 자고 주린 자라는 거죠. 그들이 바로 하나님에게 그 양식을 구하게 되는 거예요.

요 4: 32-34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분의 뜻, 하나님의 그 뜻, 하늘의 그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것이 나의 양식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내가 너희들에게 줄 양식은 내가 갖고 있는데 니들이 나를 먹일라고 양식을 갖고 오니? 이거는 니들이 양식이, 진짜 양식이 뭔지 모르는 소치야, 이야기하는 거죠. 그게 양식이에요. 근데 그분은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죠? 로고스다, 내가 로고스야. 너희들에게 먹일 떡으로 왔다, 그래요. 그리고 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진리라고도 하셨잖아요? 그 양식은 진리의 말씀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양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오늘날’의 양식이어야 돼요, 또. 그런데 그 세메론이라는 단어가 호라는 관사와 헤메라라는 단어가 이렇게 조합이 되어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 날의’ 양식 이런 말이에요. 굳이 직역을 하면. 그러니까 그 날들에 따라 그 날들의 양식 그 양식으로 나에게 주세요, 이게 이런 말인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호 헤메라.

그건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라는 양식을 부어주시는 단계가 세 단계에요.

첫 번째 단계가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그 고기로써의 양식이죠? 그 유월절 어린 양, 고기로써의 양식은 그야말로 제사의 제물로써의 그 양식이기 때문에 율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역사 속에 오신 예수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고기로써의 양식이고 그 예수가 죽어야 애굽에서 우리가 나오는 거니까.

그리고 두 번째 양식이 이제 광야에서 먹는 무교병이죠. 고기에서 이제 떡으로 바뀌는 거죠. 같은 거예요. 같은 건데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기 위해 요런 차서를 두는 거예요, 성경이. 떡이라는 양식이에요.

그리고 그 양식은 오순절 이후에 우리에게 그 예수가, 그 떡이 성령으로 와서 진짜 양식으로 내 안에 들어오죠. 예수님이 내가 떡이다, 라고 했을 때 그 예수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건 내 밖의 양식이라니까요. 떡이에요, 맞아요. 떡으로 오셨는데 그걸 먹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요. 그 살과 피를. 그래서 그 진리의 영으로 그분이 진짜 하늘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고기는 떡으로 떡은 성령으로, 진리로 이렇게 완성이 돼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세 번째 날의 양식이죠? 성도는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대하며 그것을 하늘의 참 양식인 진리의 말씀으로 먹을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아니, 구약에 살던 사람은 그렇게 했을 거 아니에요? 그 때는 구원받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있다니까요. 단지 성경이 이렇게 기록된 건 성령이 오신 이후에 생겨나는 교회들에게, 그게 성경의 독자잖아요?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이제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교회들.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기 위해 그렇게 기록이 된 거지 그 때도 구원받은 사람 있었어요. 뭐로? 십자가로. 진리로. 근데 그 때는 성경도 없었어요. 말씀도 없었고 예수님도 안 왔습니다. 제사만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래! 이게 그거지, 라고 성경을 갖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 그것을 그 제물로 아는 이가 있었다니까요.

아브라함, 그 양반은 쪼갠 고기, 그걸로 그 하늘, 그 진리를 깨달았다니까요. 그 제물로. 그 땐 율법도 없었습니다, 아예. 그렇잖아요? 그리고 광야에서 쏟아지던 하늘의 만나, 그리고 그거와 함께 먹던 무교병, 그리고 성전에 진설해놓았던 진설병. 다 떡입니다.

떡, 떡, 떡. 그 떡으로 그 하늘의 떡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구? 모세. 그리고 당연히 성령이 오셨을 때는 그렇지, 그 떡 그 양식은 그거지! 그 말씀이지, 그 진리지! 라고 아는 이들이 있죠?

그럼 고기의 때, 떡의 때, 성령의 때 이 그 날, 세 때가 있어요. 그 날들에 따라 각기 떨어지는 건 다른데 그걸 진리의 양식으로 먹는 이들이 있잖아요? 그 말 하는 거예요. 그 날들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주세요. 세메론 호 히메라.

따라서 고기와 떡과 성령 이렇게 각각의 날에 쏟아지는 다른 형태의 떡을 그 완성의 떡, 진리의 떡으로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그런 말이 오늘날, 세메론 이런 말이에요. 오늘날 우리에게 그 양식을 주세요. 그날의 양식으로.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 모세 롯 이런 사람들이 다 구원받은 거예요.

행사는 형편없었잖아요. 롯 같은 사람 말이죠? 그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오면서 하나님의 사자들과 뭘 나눠먹어요? 무교병 먹고 나와요.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하는데 그 맛대가리 없는 무교병을 대접했단 말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죠? 네, 그는 형편없는 이었어요. 사위들한테 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나가란다. 라고 말을 했는데 자기도 아무런 나갈 준비를 안 하고 얘기하니까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니까요. 아니, 장인이 적어도 너무너무 황급하게 자기 짐을 싸면서 야, 빨리 나가래, 짐 싸래 이랬으면 농담으로 여겼겠냐고요? 자기도 나갈 준비 하나도 안 하고 그냥 나가란다, 뭐 이러니까 사위들이 농담인가 봐, 그랬잖아요. 자기도 농담으로 여긴 거라니까요. 그런데 그냥 하나님이 끌고 나온 거예요. 뭐 먹여서? 무교병, 떡 먹여서요.

그래서 성경은 그 세 날의 떡을 완성 떡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주님은 그 떡을 세 떡, 트레이스 알투터스라고 이야기를 해요. 세 떡.

떡 세 개가 아니라 세 떡. 성경은요 히브리어, 그 히브리 적 관점에서 신약도 이해를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히브리어, 아람어로 성경이 기록될 때만 해도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그런 숫자들은 전부 의미로 해석을 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세 떡, 그러면 떡 세 개.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이번 주일날 그 삼과 사에 관한 그 얘기, 완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 풀의 씨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설명을 해드릴 텐데 그게 완성이거든요. 그래서 셋째 날 그 풀, 그 씨가 나오는 거죠. 우리가 지금 로마서에서 공부하는 부분이 영광에 관한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베드로서에서 보면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걸 연결해서 삼[3] 이라는 것, 그 셋이 뭔지를 설명해드릴 텐데.

그 세 떡, 주님이 왜 그걸, 그 완성 떡을 세 떡이라고 하셨는지 한번 비유를 통해서 한번 보잖말이죠. 이 주기도문의 그 병행구절이 그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데 한 번 가볼게요.

눅 11: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이게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카이’로 연결이 돼 있어요. ‘또’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이 이야긴데 라고 이제 설명을 해주는 거예요.

보세요, 주기도문의 핵심은 뭐라 그랬습니까? 떡의 이야기라고 그랬죠? 양식의 이야기라 그랬어요. 그래서 바로 밑에 비유가 붙어있는데 떡, 세 떡에 관한 비유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너희들이 구해야 할 그 양식, 일용할 양식 그것이 바로 세 떡이야. 완성 떡이야, 라고 이제 이야기하는 거죠.

여기에는 세 친구가 등장하는데 여행 중에 있는 친구. 밤에, 근데 여행을 해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여정을 가고 있는 어떤 이란 말이죠. 그 밤에, 밤에 지금 살고 있어요. 여러분도 지금 여기 밤에 사는 겁니다. 이 세상은 밤이에요. 밤인데 여러분 안에 빛이 있을 뿐입니다. 밤에 여행을 하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순례의 길을 가는 거죠? 가는 친구가 나오고 그 친구에게 필요한 것이 떡이라는 걸, 그 세 떡이라는 것을 아는 친구가 하나 나오고. 그리고 그 친구, 그 친구가 받아서 전해줘야 할 그 떡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하나 나와요. 세 친구입니다.

그건,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고 구하고 전해주는 그 떡이 트레이스 알투터스, 세 떡이에요. 삼이라는 떡. 이런 말이에요.

이걸 주기도문의 맥락에서 잘 이해하셔야 돼요. 주기도문은 요 성도가 하늘의 양식인 그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그 씨를, 양식을, 떡을 받아서 친구에게 그 용서를 전하고 또 시험을 파하며 악에서 구하는 그런 프로슈코마이, 그 기도, 그것이 진리를 흘리는 거라고 그랬죠? 그 프로슈코마이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게 주기도문이잖아요.

내가 그걸 받아서 그걸 내 안에 간직하면 내가 하늘들이 되는 거고 그것이 나를 아들로 낳는 거니까 내 안의 그것이 아버지가 돼서 내가 그 하늘들의 그 아버지가 되는 거고. 그것이 내가 가진 말씀이 깨끗한 말씀이라는 증거라는 것이고 그것이 아버지의 섬김을 통치를 받고 있는 나. 내가 나라가 된 것이고, 내 안에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서 이 땅인 나에게서, 흙인 나에게서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그대로 또 누군가에게 전해줌으로 말미암아 그가 또 그런 상태가 되어 용서가 되고 시험에서 나오고 악과 상관없는 이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밤에 여행을 하는 그 사람도 나고 누군가에게 그게 필요하다는 걸 알아 그걸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구해서 그걸 나에게 주면 내가 이리로 줄게요. 라고 하는 그이도 나고 그것을 내가 갖고 있게 되면 내가 갖고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우리 그 산상수훈에서 이미 배웠잖아요? 꾸려고 하는 자에게 그냥 거저 빌려 주라가, 그냥 이자 받지 말고 뭘 줘라, 이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네, 그 상태가 되는 거죠. 그게 내 이야기란 말에요, 다. 그거는.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할 거예요. 물론 그 떡의 일차적 발원지는 예수 그리스도죠. 그런데 내가 그걸 받아서 이제 그걸 흘려주게 되면 내가 그 친구가 된다니까요. 그 떡을 줄 수 있는 그 친구.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로 일을 하게 하세요. 왜? 그리스도는 영이잖아요. 하나님도 영이죠? 영은 소리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로 소통하는 이 아래 세상의 피조물들에게 영이신 하나님의 그 진리,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들어 쓸 소리가 필요해요. ㅎㅎ 김 소리 말고 ‘소리’. 우리의 소리를 빌려서 전하시고 우리의 몸을 빌려 표현을 하세요. 따라서 그 떡을 옳게 받은 성도는 그 떡을 구하는 자에서 시작해서 그 자신이 떡을 전해주는 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

이런 거죠. 여러분 혹시 여호와라는 단어를 제가 예전에 설명해드렸나요?

여호와가 ‘소리’, ‘소리’ 거든요. 그걸 주다. 하나님의 소리를, 하나님의 뜻을 네 소리로 좀 쓰자! 이걸 여호와라 그래요. 왜냐면 여러분 여호와는 여러분이 감지할 수 없는 거라니까요. 이게 하야 동사에서 나온 단어란 말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리를 내 소리로 낼 수 있으면 그걸 하야가 뭐냐면 존재란 말에요. 그걸 존재라 그래요. 그걸 살았다, 라고 하고 그거 못하면 그건 죽은 거라니까요.

엘로힘도 마찬가지에요.

자, 하나님이 소리가 필요하죠? 진리를 주는데 소리가 필요해요. 그러면 요 엘로힘이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알아먹을 수 있는 그 수준으로 계시된 하나님이 엘로힘이거든요. 여기에 숨어있는 그 알레프의 하나님은 우리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엘로힘,여기에다가 자기를 담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데 이거를 어떤 식으로 주느냐면 하늘, 그 솨먀임 그 하늘들을 알아먹게 땅으로 준단 말에요. 그거를 창조로 한다, 창조라, 바라라 한다, 가 창세기 1장 1절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소리가 필요해요. 우리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영은 그걸 담는 그릇이 없을 때에 이 피조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감지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돼요. 그래서 하나님에게 성전이 필요했고 성막이 필요했고 돌비가 필요했고 율법이 필요했고 성경이 필요했고 예수가 필요한 거예요. 이 세상이 필요한 거라고요. 보이는 것이. 거기에 자기의 능력과 신성을 담아 우리에게 그걸 설명해주는 거잖아요.

자, 그렇게 이제 우리가 그 하나님의 그 소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그걸 전해주게 될 때 거기에서 용서가 일어나고 시험이 파쇄되고 악에서 건져지는 그런 역사들이 일어나는 거란 말에요. 그것이 기도다, 가 주기도문이잖아요. 그것이 기도다. 그런데 그 세 떡을 어떻게 구하라고 해요? 뭐 개역성경은 강청하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갖고 그냥 뭐 강.청.기도, 하나님과 씨름하면서도 절대 지지만 않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니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이런 의미에서 강청을 쓰는데 그 강청 아닙니다.

아나이데이아 라는 것은 뻔뻔스럽다. 마땅히 받으려고 하다, 이런 말이에요. 뻔뻔스럽게 마땅히 받으려고 친구 집에 가서 야 떡 내놔, 세 떡. 그러는 거예요, 두들기면서. 떡 내놔, 세 떡. 그럼 그러겠죠. 그거 니 거냐? 내가 달라고도 안 했는데 준다! 그랬잖아? 줘! 그런다고요. 그게 떡이니까요, 그 양식. 내가 언제 달라 그랬어? 근데 나는 너에게 반드시 그걸 먹여서 살려내고 말거야, 라고 당신이 약속했잖아요? 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 단어를 바로 밑에서 그 아나이데이아라는 단어를 여러분이 잘 아는 아이테오, 구하라로 받아요. 그 아나이데이아, 강청을 하면 줄게, 이거를 그 밑에서 그러니까 강청해! 가 아니라 그러니까 구해! 라고 이야기한다고요. 그러면 반드시 줘. 근데 그 아이테오가 뭐라 그랬습니까?

빚을 받을 게 있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내놔, 내 거, 이럴 때 쓰는 단어란 말에요. 그걸 강청이라고 그래요. 뻔뻔스럽게 마땅히 그냥 내 놔!, 라고 하는 거.

눅 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아이테오]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재테오]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러니까 성도는 마치 난민촌에, 저 아프리카나 저 중동지역에 전쟁 난 나라들 보면 다 굶주리고 있다가 식수 차나 식량차가 오게 되면 애들이 막 벌떼처럼 모여 갖고 반드시 이건 받아가야 돼, 라고 하고 그냥 아귀다툼을 하는 거 보이시죠? 그게 아이테오에요, 사실은요. 그거 없으면 나 죽어. 난 푸토코스야. 이거 없으면 난 죽어 이런 거요. 그게 구하라, 거든요. 거긴 체면 같은 거 챙길 여유가 없어요. 그건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이미 언약으로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로 언약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땅히 요구해야 되는 거예요.

마 6:8

구하기 전에 [너희들이 아이테오 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니들이 구해야 할 바로 그거, 그걸 ] 하나님 나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이 아신다는 건 작정했단 뜻이지 단순히 뭐 I know, He knows 이런 말이 아니란 말에요.

그건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목표지점만 제대로 정립하면 기도응답은 백프로에요. 엉뚱한 기도를 하니까 안 들어주는 거지. 그걸 정욕, 에피뚜미아, 두 마음으로 구하는 기도라고 하죠? 그건 안 들어준다, 그랬다고요, 성경에서도.

요 16:23-24

그 날에는 [자, 그 날, 또 나오죠?]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이건 구하지 아니하리라, 기도하지 아니하리라, 이런 말이에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진리로 진리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언제? 그 날이 되면. 그 날이 언제에요?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는 때. 그 날이 되면 너희들이 아버지께, 니 안에 있는 아버지가 너에게 구할 것을 시킬 건데 그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그 아버지가 뭘로 준대요? 내 이름으로. 이름은 뭐라 그랬어요? 이름은? 쉠. 요거는 말씀이라 그랬죠? 분석된 진리. 말씀이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구하는 건 뭘로 주어진다고요? 말씀으로 주어진다고요. 그럼 여러분 어떻게 기도하세요? 요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냥 어떤 기도를 해도 그 밑에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낙관만 찍으면 하나님이 다 들어준다는 얘긴가요?

내가 지금까지 한 이 모든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내게 주세요! 이런 말이에요.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건. 내가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니까 이건 꼭 들으셔야 돼요, 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여러분도 아들이라니까요. 그 분만 아들이에요? 아들의 대표 맏아들. 맏아들은 그 나머지 아들들, 그 아들들의 모형이란 뜻이지 그분이 최고 우리는 양아들, 이런 말 아니란 말에요.

그러니까 하늘의 양식을 진리의 떡으로 받아먹는 그 날에는 이 전에 육신적으로 구하던 것을 이제 구하지 않고 다른 것을 구하게 된다, 이게 아이테오란 말에요. 그거는 마땅하고 뻔뻔스럽게 구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주신다. 말씀으로 주신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면은 그게 진짜 양식이니까. 기쁨이 충만하게 될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진짜 기쁨. 세상은 줄 수 없는 그 기쁨. 그러니까 세상도 평강이나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예수님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걸로 준다고 그러는 거예요. 세상도 주는 그 기쁨 그 평안은 하나님이 주는 거랑은 다른 거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감정이나 여러분에게서 나타나는 어떤 그런 표피적인 것으로 자꾸 왜 나에게는 그런 것이 안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다른 거란 말에요, 그거는.

성도는 그렇게 다급하고 뻔뻔스럽고 마땅하고 간절하게 하늘의 양식을 가진 이에게 그걸 이제 구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가진 이는 그러한 구함 앞에 기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뻔뻔스럽게]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원하는 만큼 준다고 그래요. 원하는 만큼. 여러분들은 지금 너무 벅차가지고 아이고 그만, 그만 이러는 거 같아가지고 제가 좀 그런데 원하는 만큼 준대요. 여기서 벗됨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필로스에요.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의 그 친밀감, 호감, 우정 뭐 사랑 뭐 다 이렇게 번역을 하는데 복음을 깨달은 이들이 가장 먼저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죠? 그런 관계 속에 있는 사람. 내 가족 친구 이웃, 그런 분들. 근데 이상하게 그런 분들에게 전하면 잘 안 들어가죠. 그 사람이 날 되게 사랑하는데, 날 되게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거 주면 받을 거 같은데 그거로는 안 받아. 그 관계로는. 그 말 하는 거예요. 너희들이 아무리 그런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하더라도 그게 혈통인데 그 벗됨을 인하여서는 그것이 주어지거나 받아지거나 이렇게 되지는 않아. 그러나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거를 간절히 구하는 이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들에게는 주어진다.

그래서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진리라는 건요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문을 활짝 스스로 열어줘요. 말씀은. 그래서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계속 닫아버려요. 무스테리온으로 감춰요, 자기를. 신기하게도 그럽니다. 그래서 두드리는 자에게 계속 열어줘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떡으로 떨어지면 진짜 하늘의 양식인 진리로 스며들게 되어 있어요.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 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이티에서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흙을 이렇게 빚어가지고 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준다고 그러는데 그건 진짜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거죠. 근데 신기한 게 그 흙을 먹고도 살더라고요? 사람들이. 근데 여기서 누가 떡을 달라면 돌을 주며, 여기에서 아들이란 단어를 주의 깊게 보셔야 돼요. 너희들이 진짜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면 너희들이 떡을 달라 그럴 때 그 아비가 돌로 줄까? 이런 말이죠.

돌은 뭐예요? 구약에서 메시아가 온다, 메시아가 온다, 그 메시아가 온다, 너희들이 지금 믿는 이거는 너희들을 구원할 수 없는 거야. 선지자들이 그렇게 반복하여 이야기한 그것을 구약에선 돌이라고 그래요. 뭘 상징하는 거냐면 예수라는 메시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시내 산에서 돌비에 적혀서 주어졌잖아요. 그래서 돌, 그러면 율법이에요. 그 돌은 깨져야 돼요. 깨져서 어디로 들어 가냐면 조각 목에 불과한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뚜껑이 닫혀버려야 돼요. 그러면 그게 생명이 된다니까요. 그게 법궤에요. 그러니까 떡을 달라고 하는데 누가 그 돌을 줘요?

그러니까 보세요, 그 돌은 우리에게 신약시대에 떡으로 오시죠? 떡으로 오시는데 마귀의 시험에서 우리가 봤듯이 그 떡에서만 멈춰도 안 된다니까요. 그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와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니?진리로 주지. 이 말이 생략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떡 달라고 그러면 돌로 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죠? 그래갖고 그거, 그 율법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거예요. 월가의 유명한 사람, 투자자가 그랬죠?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만들면 그게 돈이다, 그랬어요.그래가지고 그 월가에 보면 갖은 루머들이 양산이 되죠? 우리나라도 그 주식시장에서 온갖 루머들이 다 생겨난다고 그러잖아요. 공포스럽게 만들어버려요, 사람을. 공포가 돈이다! 그런다니까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어, 공포스럽게 만들어. 그리고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사람들이 거기에서 돈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고기 사먹죠, 그걸로. ㅎㅎㅎ, 소고기 안 좋아요, 오리 고기가 좋대요. ** 집사님이, 소고기 절대 먹지 말라 그랬어요.^^

자, 그 돌이 신약 때 떡으로 오셨는데 주님이 자기를 하늘에서 내린 떡이라 그랬는데 그 떡을 아무도 안 먹었습니다. 십자가에다가 박아놓고 그 떡을 아주 죽여 버렸어요. 그냥. 아무도 안 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먹긴 먹는데 육신의 배를 불리는 떡으로 먹어요. 그걸 율법으로 먹는다고 하는 거예요. 육신의 배를 불린다는 건 그걸 내가 행하여 나의 가치를 드러내고 내 자랑을 삼겠다는 것으로 먹는 걸 육신의 배를 부르게 먹는다는 뜻이에요.

요 6: 26-27, 32-33, 48-51 지난 주에도 봤는데 다시 한 번, 군데 군데 읽어드릴 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호라호한] 까닭이 아니요 [지금 표적이라는 떡을 주면서 이걸 호라호 하고 줬더니 그냥 에이돈, 하고 이렇게 보는 거죠. 어, 떡이네? 먹으면 되겠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호라호 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엉뚱하게 찾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여기서 썩는 양식이 뭐라 그랬습니까? 멸망하게 하는 양식이라고 그랬죠? 아폴루미. 멸망하게 하는 양식, 멸망하게 하는 양식이 뭐라 그래요? 바로 위에서 그 표적을 호라호 하지 못하고 그냥 나타난 표피적인 껍데기로 먹어버리면 그게 멸망하는 양식이에요. 여러분이 성경을 보면서 그 내용을 호라호 하지 못하고 껍데기로 그냥 먹고 행해버리면 그게 여러분을 아폴루미, 멸망시켜버린다니까요]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 그 아담의 그 아들이에요, 그 사람의 그 아들]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이 인 치신 자니라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진리로 진리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그 떡이 광야에서 계속 내렸는데 그 떡은 모세가 준 떡이 아니다. 모세가 이렇게 만들어서 지급한 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모세는 그냥 율법이라고 바꿔서 읽으면 돼요. 신약에서. 그건 율법으로 준 게 아니다]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참이 알레떼이아에요. 진리 떡으로 준 거야, 이런 말이에요.]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모세로 준 게 아니라, 율법으로 준 게 아니라 진리로 준 거야. 이런 말이죠.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호 코스모스]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생명을 주는 거]

48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로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만나를 먹고 죽었다, 그래요. 그러면 만나가 뭐예요? 멸망하게 하는 떡이었죠? 그냥 그걸로 먹어버리면. 그게 뭔지를 알고 먹었어야 사는 건데 그냥 만나로 먹어버리면 멸망에 이르게 하는 떡을 먹은 거예요. 그 떡이 가진 내용을 호라호 하지 못하고 육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먹은 떡이에요]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떡은 돌로 먹으면 안 돼요. 율법으로 먹으면 안 돼요 말씀은요. 그렇게 하늘의 떡은 반드시 진리의 말씀, 성령으로 와야 돼요. 근데 그 떡을 율법으로 주면 그게 저주요 심판이에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누가, 아버지가 너희 안에 있는 게 그게 진짜 아버지가 맞다면 그 아버지가 어떻게 말씀을 돌로 주겠니? 이런 말이에요, 진리로 주지. 그러나 오늘날은 돌로 그 말씀을 전해주고 그 돌로 선악을 구별을 해서 서로 마구 돌팔매질을 해대요. 교회 안에서도. 너 왜 말씀대로 안 살어?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그 정도밖에 성숙하지 못해? 뭐 이런 식으로. 말씀은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나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게 말씀이지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선악의 도구로 주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고기, 즉 독은 떡으로 떡은 진리의 말씀으로 이렇게 완성이 돼야 되는 거예요. 흘러야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셋은 모두어

‘하나’에요. 그죠? 그래서 그 날의 양식으로 올 수 있는 거예요. 모양은 달라도. 온 역사, 크로노스의 역사 내내 하나님의 백성들은 있었다니까요. 근데 그 날들에 따라 내리는 모양은 다 달랐는데 그걸 그 날의 양식으로 받더라는 거죠. 성도들아, 그 기도해라! 이런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우리를 정결케 하는 물로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는 생수로 발전해야 되고 그리고 그 물은 성령으로 완성되어야 되는 거예요. 물론 또 셋은 하나에요. 그러나 그 전 단계에서 그냥 머물러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율법이라고 한다니까요.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자 그 피를 흘리러 오신 그분이 나는 물이야,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갈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그 배는, 여기서 배는 성전입니다]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렇게 피는 물로, 물은 성령으로 완성이 되고 그 셋은 하나가 돼야 되는 거예요. 계속 셋이 나오죠? 이게 완성입니다. 셋.

요일 5:7-8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성령은 진리라메요? 그럼 물도 진리네요? 피는? 진리네요? 그 셋은 하나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진리의 말씀으로 이해되어지지 않고 피에서 멈추고 물에서 멈추고 이래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의 피, 피! 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 피에서 멈추면 그게 바보라니까요. 물로 가야죠. 차라리 물 그러면 조금 이해를 해주겠어. 계속 피, 피 하고.

그래서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물로 바꾸는 그런 기적을, 표적을 처음에 행하신 거예요. 내가 하는 모든 게 이거다, 라고. 근데 그 기적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무슨 말이 나왔느냐 하면 사흘 째 되던 날이라는 셋이라는 단어가 또 나와요. 거기에. 셋의 날에, 이렇게. 굳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완성의 일이 일어난다, 라고 한단 말입니다.

거기에 두 사람의 신랑이 등장하죠. 한 사람은 피의 포도주를 내놓는 신랑이고 다른 신랑은 물 포도주를 내는 신랑이에요. 둘 다 신랑이에요, 아니 둘 다 예수에요. 둘 다 예순데 지금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해주시기 위한 거예요. 두 번째 신랑은 피의 포도주가 아닌 물 포도주를 만들어서 잔치집 사람들을 먹여요. 유대의 관례에 의하면 잔치집의 포도주는 신랑이 내야 되는 거예요. 신랑이 준비해야 돼요. 포도주는. 그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는 잔치가 안 돼요. 끝이에요, 그냥.

근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처음에 나왔던 포도주는 처음 신랑이 낸 거란 말이죠.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 도착하자마자 잔치 벌였죠? 그 포도주가 떨어진 그 항아리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거기에다가 물을 갖다가 부어라 그러면 피차 일하기 쉽고 깔끔하죠? 근데 예수님이 정결 예식을 하는 물 항아리에다 갖다가 물을 갖다 부으라고 했어요.

물 항아리라는 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디 나갔다 들어오면 집에 문 앞에 이렇게 항아리를 여섯 개를 해놓고요 여기에다가 물을 가득 담아 놨어요. 그리고선 손이나 발을 씻고 오는 손님들에게도 이 물을 떠서 손을 닦고 발을 닦게 했단 말에요. 근데 하필 왜 여기에다가 더럽게 물을 갖다 부으라고 했을까요? 이거는 깨끗하게 씻는 거라 그랬죠?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그 포도주는 그냥 그 피 정도가 아니라 너희를 깨끗이 씻는 물로써의 그 피야,를 설명해주기 위해 깨끗이 몸을 씻는 정결 예식을 행하던 거기에다가 물을 붓고 이게 물 포도주야, 라고 이야기했어요. 물로 된 포도주가 아니에요. 둘 다 명사란 말에요. 이게 물 포도주야. 강세는 물에 있어요. 이건 물이야! 이 피는 물이란다,를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물 포도주라고 그러는 거예요. 왜? 이 포도주라는 게 이미 어린 양의 피를 상징하고 있는 거니까 그건 물이야. 너희들을 깨끗하게 해주는 거야. 제사상에서 너희들이 잡는 그 양에서 나오는 그 피가 아니란 말이야. 그 걸로는 너희들을 구원 못해. 그러니까 물로 가야지. 그러는 거예요, 물로 가야지.

근데 갔는데 여기 물이 하나도 없네. 그건 뭐죠? 너희들이 율법으로 너희들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씻는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는데 다 사기다, 그러는 거예요. 물이 어딨니? 형식적인 거지?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다가 갖다가 물을 부었어요. 여섯 개밖에 없어요, 항아리가. 마지막 일곱 번째는 진짜 물, 생수로 오신 그분이 칠로 완성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일곱 개 항아리가 돼버리는 거거든요. 휘도르 오이노스, 물 포도주. 포도주는 죄를 씻어주는 물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성령인 거고.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풀 포도주에요 이게 휘도르 오이노스 물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는데 -

[이게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랑 비슷하죠? 성령은 소리는 들리는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러죠? 마찬가지에요, 여러분에게 지금 말씀이라는 소리가 들리죠? 근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그 마음으로 가서 진리로 박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흘러가요. 그러면 이 ‘소리’에 어떤 가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 힘이 있는 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소리는 듣는데 어떻게 돼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돼요. 권세, 하나님의 그 능력이 거기에 있으면. 그게 그 말이거든요.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어디서 났는지 알이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좋은 포도주, 이게 좋은 거네, 이런 말이에요. 이게 진짜 좋은 포도주네? 물 포도주가! 이런 말이죠. 이것이 좋은 거야!

이렇게 피는 물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 피 자체가 섬김과 칭찬의 대상으로 그냥 내 밖에 그냥 존재해버리면 안 돼요.

‘어린 양의 피’ 이렇게 존재해버리면 안 돼요. 그게 나의 목을 해갈 시키고 내 안에 들어가 내 것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이 전체의 이야기가 바로 예레미아 31장에 나오는 새 언약. 그리고 에스겔서에 나오는 그 새 언약의 이야기에요. 물 이야기, 마음 이야기, 성령 이야기, 그것이 피에 의해서 되는 거야. 이런 거, 똑같은 거죠.

겔 36:21-3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이름, 이름이 뭐죠? 쉠, 말씀. 바꿔서 읽으세요. 내 말씀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세상에서 더럽혀진, 율법으로 더럽혀져버린 그 진리, 그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땅에 데리고 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이름을 깨끗하게 하겠다고 해놓고 너희를 씻어버리겠다, 그런다고요]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로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깨끗이 씻을 거야. 물로 씻을 거야, 라고 해놓고 그건 이런 방식으로 되어지는 거야. 새 영, 르와흐, 그걸 네 안에 넣을 거야. 진리를 성령을 네 안에 넣을 거야.]-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또 르와흐]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마음으로 지켜 지키게 하리니, 갖게 하리니, Keep 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 안에 아버지로 들어오겠다는 거죠]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보세요, 갑자기 물로 씻을 거야, 너희들 안에 내 신을 둘 거야. 내가 아버지로 들어갈 거야, 라고 해놓고 그것이 양식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그것이 너희들이 이 세상의 기근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이야, 라고 이야기한다니까요.]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 어떻게 된다고 그래요?]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 르와흐, 진리로 임해버리면 일차적으로 일어나는 게 야, 이건 자랑할 몸뚱이가 아니라 이건 미운 존재구나, 원수구나! 이렇게 여겨지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했던 게 나를 위한 거였구나 미운 일이었구나. 하나님 앞에서. 그래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창세기 첫째 날을 원문으로 볼 때 하나님이 수면 위에서 운행하신다, 라는 그런 어절을 봤었죠? 르와 엘로힘 알파님 마임. 그죠? 우리 집사님이 이거 해오셨는데 늦게 오는 바람에 다시 옛날 거를,, 이거 한 번 틀어줘보세요. 다음 시간부턴 제가 보다 선명하게 원문성경을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릴 텐데 한 번 보세요.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를 하시죠? 레시트죠? 바라, 창조를 하세요. 엘로힘, 요것이 우리 안에 되게하기 위해서, 그죠?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그 하나님을 진리로 담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어떻게? 솨마임, 하늘들, 에레츠, 땅 그랬어요, 여기서 요 땅 아래 것으로 요 거기에 이름이 있다. 거기에 물이 있다, 라는 요 하늘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라는 것을 하셨다 그러는 거예요. 창조라는 것을 하셨다. 근데 그 땅이라는 건 이제 하늘은 우리가 모르는 거고 그 땅이라는 건 뭐냐면, 해서 2절에 에레츠가 나오고 땅은 토후,혼돈하고 보후.공허하고 그것이 뭐냐면 호세크라고 해요, 어둠이야, 흑암이야 그러죠?

호세크 알파님 태훈 그랬어요. 요게 깊음이라 그랬습니다. 깊음. 자, 그 깊음이라는 건 뭐냐면 이 아래의 것들로 그 위의 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나타낸 어떤 것들을 깊음이라고 그러는데 자, 그 깊음의 파님, 나타난 것을 우리가 요 알이라는 전치사가 나오면 이건 보이는 것, 이런 것 앞에 쓰이는 거죠.

그것을 우리가 흑암이라 하자, 이런 말에요. 어둠이 나쁘다, 여러분 이렇게 선악 이원론에 빠져서 자꾸 그냥 갈라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선악과, 거기에 악자가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뭐 무트타무트, 죽으리라, 이렇게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진의는. 이런 우리가 싫어하는 단어들이 들어가니까 그건 그냥 나쁜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이렇게 자꾸들 생각하시는데 그거 안 먹고 어떻게 생명의 나무를, 실과를 먹어요? 열매는 그거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자, 그렇게 그 깊음이라는 것으로, 그것이 이제 나타난 게 어둠인데 그 어둠으로 그 아래 것, 그 땅, 이 땅으로 혼돈과 공허뿐인 그 땅으로 요 하늘의 것을 알게 하는 게 창조의 목적이다, 그랬단 말에요. 그러면 그걸 알게 하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되죠? 존재라고도 말 할 수 없지만 하여튼 그게 르와 엘로힘, 성령이에요. 성령이 어떻게 한다, 그래요? 라하프, 운행하다, 그러죠? 수면 위에. 그죠? 그게 암탉이 이렇게 알을 품는 형국이라 그랬죠? 왜? 한번 낳은 걸 다시 진짜 생명으로 닭으로 낳게하기 위해.

라하프 뭐예요? 마임, 파님. 그 진리의 그 물, 그 물에 나타난 거. 그것이 이렇게 세상 것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그 진리를 알려주려고 아래 것으로 나타난 게 파님, 마임이잖아요? 그것으로 그 위의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뭘 했다고 그래요? 라하프, 요렇게 품어 안고 이제 그것이 뭔지를 창조해주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러면 그 아래 땅으로 이 솨마임을 알게 되면 그게 뭐에요? 거듭남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그것이 구원이라는 거죠. 그러면 뭐와 뭐로 거듭나야 돼요? 마임, 물과 르와 엘로힘, 성령으로.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지,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물이 없으면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납니까?

물의 나타남, 파님 마임이 없으면. 그리고 그 피가 없으면 어떻게 물이 뭔지를 알아요? 그러니까 피, 물, 성령은 다 같은 거지만 그건 반드시 이 르와 엘로힘, 진리, 성령, 말씀으로 이해되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냥 그게 다 하셨대! 이러고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니까요. 그래서 주님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지, 물은 반드시 성령이 되야지.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떡이 돌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물이 피가 되어서도 안 되겠네요? 그러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근데 하나님이 그러한 율법의 세상, 이 아래의 세상을 대표하는 어떤 나라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당신의 백성들을 그리로 보냈다가 거기서 뽑아내거든요. 어디에요? 애굽이죠?

거기에서 제일 처음 일어났던 재앙이 뭐예요?

물이 피가 되는 거. 애굽의 성격, 애굽의 실체가 이런 거다, 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 나머지 재앙들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것은. 보세요, 물이 피가 되면 그게 뭐에요? 그건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게 아니죠? 그 걸로는 해갈도 안 되죠?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재앙들이 다 뭐예요? 메뚜기 뭐 우박, 이게 다 뭡니까? 농작물을 박살내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개구리 소리야. 와글와글, 와글와글. 어느 기도원에 가면 그냥 와글와글, 와글와글 하는 거 있잖아요? 며칠 전에도 들었는데 개구리 소리야. 그게 애굽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건져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면 그게 아닌 거. 그 열 재앙이 있는 거기에서 끄집어낸 다음에 이스라엘에게 그게 아닌 어떤 걸 가르쳐줘야 되잖아요? 그럼 뭘 줘야 돼요? 거기서는 이게 표적으로만 나타났지만 이제, 그걸 말씀으로 줘야 되죠? 그래서 열 재앙 다음에 바로 열 개의 계명,계명의 십이란 말에요. 그건요. 열 개의 계명이라는 건. 거기서도 열 ‘개’ 라는 그런 숫자는 없어요. 계명의 십, 완성. 그 계명이라는 게 뭔지를 내가 이걸로 이제 설명해줄게, 에요. 그런데 그 걸로도 못 알아먹으니까 그러면 내가 성막으로 만들어서 한 번 보여줄게. 그래도 못 알아먹으니까. 말 하는 성전이 와서 또 말 해줘. 그래도 못 알아먹으니까 그걸 또 글로 다시 적어 줘. 이게 성경이에요.

자,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 열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가면 되는 거예요. 그게 뭔지. 근데 그걸 그냥 법으로 계속 받아서 짐처럼 어깨에 얹어버리면 그게 죽음입니다. 그걸 깨달아 안자들이 약속이 되어 그 약속의 실체 뜻이 이루어진 땅이 되어서 그가 약속의 땅이 되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가나안이라는 땅 이름이 원래가 그게 어두움이란 뜻이에요. 그리고 장사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거 좋은 말입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거 함의 아들이잖아요? 애굽은? 미스라임. 가나안의 형제에요. 그럼 함의 자손의 땅에서 나와서 함의 자손의 땅으로 가네요? 그게 우리에요, 우린데 그 열을 그냥 표적으로, 계명으로 알아버리면 그게 그냥 애굽이고 가나안이고 어둠의 땅이고 그것으로 그 약속 그 언약이 뭔지를 알아서 약속의 땅이 되어 들어가는 그들이 서 있는 그곳이 약속의 땅이에요. 요기가 약속의 땅이에요. 그리고 그 말씀을 갖고 있는 이 흙들이 약속의 땅이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래요. 너희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도 애굽의 것을 버리지 못하면 그 땅이 미스라임이야. 미스라임이 애굽이에요. 그 땅이 미스라임이야.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어디에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중요한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물이 피가 되는 표적 앞에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서 애굽 술사들의 그 지팡이가 변한 뱀들을 먹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율법을 먹어버리고 진리의 아들로 낳는 그런 형국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라는 표적이었던 거예요.

그 율법을 주어, 열로 주어서 너희들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너희들을 반드시 여기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갈 거야. 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광야에서 난 2세, 교회에서 거듭난 2세들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거란 말에요. 그래서 뱀이 뱀을 먹어버리는 거예요. 애굽의 뱀을.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뱀이다, 그랬다고요. 내가 놋 뱀이 돼서 달려야 돼. 난 뱀으로 왔어. 니들 먹을라고. 죽일라고. 죽여서 다시 살릴라고. 그런 말이죠. 그래서 뱀이 뱀을 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은 전체가 다 한 이야기에요.

그러한 연유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애굽에서 나온 이들이 유월절 고기와 함께 무교병, 그 떡을 같이 먹는 거죠. 그리고 칠[7]의 날 동안 무교병, 떡만 먹어야 돼요. 고기는 먹으면 안 돼요. 그 칠[7]의 날이 광야 전체를 모형 하는 거예요. 유월절 고기죠. 어린 양의 피는 떡으로 먹어야지 고기로 먹어서는 안 돼. 그래서 이렇게 연결시켜 놓은 거예요. 그래서 양 잡는 날, 고기 잡는 날에 무교절이 시작된다니까요. 그건 떡 이야기야, 거기서 머물면 안 돼. 이렇게.

막 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무교병, 떡을 먹어야 하는 첫날, 그 날이 양 잡는 날이다, 는 거예요. 그 양은 뭐라는 거예요? 그 이후로 칠 일간 먹어야 되거든요. 떡은. 양은 그 날 먹고 남은 건 전부 소화시켜야 돼요. Digestive 가 아니라 태워버려야 되는 거. 없애버려야 되는 거예요. 유월절의 내용이 바로 무교절이다, 이런 말이에요. 발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뭉뚱그려 유월절이라고도 하고 무교절이라고도 하는 거예요. 둘은 같은 내용을 하고 있는 다른 절기다, 이런 말이죠. 아니, 모든 절기가 다 그냥 한 이야기만 해요. 절기가 뭔지 그런 건 알 필요도 없어요. 복잡하기만 하지.

유월절은 무죄한 어린 양이 피를 흘리고 죽는 날이고 그 양의 고기를 먹는 날이에요. 그리고 무교절은 사흘간 땅에 묻어두었던 누룩 없는 그 떡. 무교병을 사흘간이 아니라 삼[3] 이라는 기간 동안에 삼[3] 이라는 떡을 먹는 거예요. 삼이 된 떡. 삼으로 완성된 떡을 먹는 거예요. 그게 무교절이에요. 그것이. 사흘간 땅에 묻어뒀던 걸.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그 둘이 정확하게 같은 내용이죠. 그리고 이건 단순히 어린 양 그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대, 이게 유월절이래가 아니라 내가 죽어야 그 죽음이 넘어간다, 라는 패스 오버한다, 라는 그 이야기라는 거예요. 우리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걸 예수님이 대표로 보여준 거뿐이라니까요. 근데 전부 그냥 예수가 하신 일로 끝내버리면 여러분은 뭐냐고요? 그래서 맏아들이라니까요. 맏아들은 다 그냥 희생하고 다 하고 둘째, 셋째는 그냥 거저먹으려고 하는 거가 아니란 말에요, 그 말이.

그 무교병은 광야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에 내려진 만나를 대표하기도 하죠. 떡이니까. 그리고 그 두 절기는 성령이 강림하는 오순절과도 그 내용을 같이 합니다. 진짜 양식이 오는 거예요. 그럼 이제 그 떡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번 잘 들어보세요.

성경은 무교절 그 떡을 먹는 그 기간, 그걸 지켜서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출 12: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하크 함마짜트]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보세요. 너희 군대, 라고 그러죠? 원문으로 보면 너희 애굽에서 나온 군대, 라고 그래요. 애굽 군대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그 홍해에서 빠져죽은 걸 단순히 나와 상관없는 애굽군대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그 애굽이 군대로 죽은 거, 라는 의미지. 우린 항상 그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그냥 똑 떨어져갖고 홀리 홀리야 나만. 그리고 못된 것들만 다 죽고 벌 받아가지고.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건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 지니라

무교병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그러죠? 너희가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이제 애굽 고기 아닌 광야의 떡을 먹어라, 이런 거예요. 너희는 애굽에서 나왔잖아. 그럼 이제 떡을 먹어야 해, 라고 해요. 근데 다시 애굽의 고기로 돌아가면? 그게 죄에요. 하나님이 내가 이 광야에서 딴 고기 줘서 죽이면 죽였지 너희들 절대 애굽의 고기로 못 돌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홍해도 닫아버리고 그냥 아예 죽여 버렸어요, 거기서. 그 고기로 못 돌아가게. 그게 죄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누룩의 떡, 그게 애굽의 고기잖아요.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무교병 먹어, 그럼 유교병은 누룩 들어간 떡이니까. 그게 애굽의 고기라니까요. 그게 죄라니까요. 그게 율법이란 말에요. 그래서 그거 먹으면 너희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하나님의 백성, 그 라인에서 다 끊어버릴 거야,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하세요.

출 12:15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 날에 누룩을 너희 입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무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그래서 오늘날도요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교절에 절대 집이나 가게에 누룩을 두지 않아요. 심지어 가정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누룩 들어간 밀가루 떡 같은 거 찾아오면 상금을 주어서 사그리 다 찾아내요. 땅에 묻어버립니다. 가게에 있는 건 버릴 순 없으니까 하얀 천으로 칠일 간 싹 덮어놔요. 아무도 못 만지게. 그런데 하나님이 그러라고 이렇게 얘기한건 아니거든요, 사실은. 하여튼 그만큼 철저하게 유대인들은 누룩을 제거하는 의식을 행해요. 그 누룩은 애굽의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거기서 나왔다, 라고 이야기한단 말에요. 근데 그들은 애굽이 진짜 뭔지를 영적의미의 애굽이 뭔지를 몰라요. 애굽의 것은 다름이 아닌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그 율법을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마 16:11-12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울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냐? 계속 떡, 떡 그래놓고. 그리고 떡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냐? 라고 또 이야기하세요]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울 깨달으니라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떡도 뭐예요? 교훈, 말씀이라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은 뭡니까? 율법주의자들의 그 해석, 말씀을 율법으로 갖는 그들의 해석. 그것이 누룩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거 먹지 마. 왜? 그게 고기야. 애굽의 고기야. 그리로 가면 안 돼, 라고 하는 거죠. 거기에서는 반드시 자랑이 터져나오게 돼있습니다.

고전 5:6-8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어디 너희를 자랑해? 너희 안에 생명 신 그 르와흐가 들어가면 너희를 미워한다, 그러는데, 너희 스스로를 미워하는 게 시작인데 뭘 자랑을 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유월절 양은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에 이른 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행위로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살아난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산자들이. 이렇게 누룩 없는 떡은 자기자랑을 몰수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떡을 먹는 자는 그 육이 그 떡과 함께 죽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맛이 없어요. 먹어보셨죠? 여러분. 무교병, 정말 맛없어요. 거기에다가 뭐 샌드위치 해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이스라엘 식이라고 그 안에다가 토마토랑 뭐 이렇게 넣어가지고 나물 같은 거 넣어서 해먹기도 하거든요, 미국에서. 근데 정말 맛없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걸 일부러 먹이시는 거예요. 성도의 이 크로노스의 인생이 그렇게 맛없고 재미없다는 거예요. 너희들은 근데 그거 먹으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유교병, 누룩이 들어가야 인간들의 보편적 자존심도 높여주고 인간들의 가치도 사람들이 이렇게 인정해주고 그러거든요. 그걸 먹어야. 율법으로 먹어야. 그리고 행해버리면 근데 이게 진리로 받아서 내가 안에 갖고 있으면 사람들이 안 알아줘요. 그게 맛없는 떡이에요. 근데 그 떡, 그 고기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유교병.그래서 무교병을 고난의 떡, 그래요. 성경이. 고난의 떡. 그래 여러분의 인생이 고난이라는 거예요. 말씀을 받아먹으면 먹을수록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고난이라는 거죠.

신 16:3-4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희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너는 나왔으니까 맛없는 거 먹어, 고기 먹지 마!]

4 그 칠일 동안에는 네 사경 내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그죠? 고기 싹 치워버려. 누룩하고 같이. 고난의 떡. 그런데 그 고난의 내용이 애굽에서 나옴이에요. 애굽에서 잘난 척하면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이 니는 아니야, 라고 자꾸 그러니까 고난인 거예요. 애굽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고난의 떡. 누룩 없는, 맛없는 떡.그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럼 왜 이 광야에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고난의 떡이 되는가?

유대인들이 무교절에 먹는 그 무교병이요 히브리어로 맛짜거든요. 그러니까 ‘하크 맛짜오트’. 그러는데 그냥 기본형으로 쓰면 맛짜에요, 무교병.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뭐 이런 뜻이에요. 그 단어는요 맛짜라는 단어 자체가 유월절 잔치라는 뜻이에요. 무교병이라는 떡 이름이 유월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니까요. 그냥. 그러니까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무교병이라는 떡을 먹는 게 니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는 거야, 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똑같은 단어에요. 맛짜라는 단어가.

그 단어는 어원을 추적해 올라가보면 빨다, 흡수하다 묻어두다 장례를 지내다, 이런 말이에요.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유대인들이 무교절에 사흘간 그 떡을 땅에 묻어두었다 먹는 건 예수라는 유월절 양이 유월절에 죽임을 당한 뒤 사흘간 땅 속에 갇혀 있다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부활하실 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하는 거죠. 내가 그 어린 양을 장사지내서 땅에다가 묻으면, 땅이 어디에요? 나! 여러분을 흙으로 지었다 메요? 그래서 예수님을 무덤에 묻었다고 하지만 땅에다가 묻었다고 얘기하는 데가 많아요. 근데 예수님 땅에다가 안 묻었거든요. 유대인들은 이렇게 파가지고요 그 안에다가 무덤을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아버지, 뭐 할아버지, 자식, 손자 이렇게 차곡차곡 갖다가 시체를 쌓아놓고 다시는 안 가요, 거기는.

근데 굳이 땅에 묻었다, 장사 지냈다, 이런 말을 한단 말이죠. 거기다가 그리스도가 들어와 버리면 땅에. 예수가 죽어 장사지내다. 이게 맛짜트라는 단어가 무교병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이죠? 뜻이거든요. 그렇게 장사지내서 땅에다가 묻으면 묻다, 이것도 맛짜트에요 무교병이에요. 묻으면 그게 빨아들여 뭐를? 땅의 땅 됨을 그리고 나와 버리는 거예요. 삼으로 완성한 뒤에. 그래서 예수님은 사흘 밤낮을 있어야 돼요. 왜? 밤으로 아침이 되게 만들어야 그게 삼이거든요. 계산해보면 사흘 밤낮도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쓴다니까요. 예전에 신학교 때 그거 계산하느라고 진짜, 시간으로 계산해야 되는데,,아무리 봐도 사흘 밤낮은 아닌데 성경에 보면 전부 사흘 밤낮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 글자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우리를 삼으로 완성해내기 위해 그분이, 삼이신, 완성 체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땅에 들어가 우리를, 땅의 죄를, 땅의 땅 됨을 빨아들려, 흡수하여 우리 안에 영원한 떡으로 들어와 버리시는 거.

그걸 구원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먹게 되는 진리의 말씀이란 말에요.

그렇다면 칠의 기간 동안에 무교병을 먹는다는 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다, 라는 걸 인정하는 거고 그것 자체가 자신의 육신을 부인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래서 오니, 고난이라고 하는 거예요. 고난의 떡.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에서의 그 애통이 뭐라고 했어요? 팬태오가? 패싸흐, 유월절이라고 했잖아요. 성도는 애통하게 되는데 그들이 복 있는 자들인데 그 애통이 어떤 애통이냐면 유월절 패싸흐, 팬태오가 패싸흐에서 나온 단어에요. 그게 우리의 유월절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의 떡을 먹어버리면 그 떡이 곧 우리를 유월절 어린 양으로 만들어버리는 패싸흐, 떡이 되기 때문에 그게 우리에게 애통으로 온다는 거예요. 근데 그들이 복 있다! 그게 내가 사흘간 묻어두었던, 삼으로 묻어두었던 그 예수라는 떡, 그 떡을 말씀으로 먹는 거예요. 그럼 내가 부정되고 부인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난의 떡이라고 하는 거죠.

마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인자, 그 사람의 그 아들, 그 아담의 그 아들은 우리도 그 라인 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우리 이야기이기도한 거예요. 삼이 되기 위해 여러분은 밤이 되고 낮이 되는, 왜 하나님이 밤낮을 뒀겠어요? 네? 반씩 나누어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그 구원의 현실을 너희들이 역사 속에서 이렇게 보고 깨달으라고 준 거예요. 밤낮은. 사계절도 마찬가지에요. 씨를 뿌리고 농사짓고 추수하는 그 구원의 원리를 니들이 사 계절을 통하여 알아라. 삼으로 완성되면 그 다음에 우리가 사[4]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창세기 넷째 날에도 바로 거기에 ‘그 일을’ 하는 빛을 비추는 자들이 나오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괜히 거저 막 준 거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밤이 되면 이 밤 속에서 그 아침을 깨달아 알으라는 거. 그래서 사흘 밤낮 여러분은 땅 속에 있는 거예요. 땅에 묶여서 사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이 사는 이유인 거죠. 근데 그게 힘드니까, 우리 자신이 부정되어놓으니까 애통한 삶을 사는 거예요. 파싸흐, 우리의 유월절. 죽는 겁니다. 고난의 삶. 그래서 애굽에서 광야로 나오는 길에 홍해가 갈라지는 상징적 사건이 삽입되어 있는 거예요. 홍해사건은 뭐죠? 우리의 애굽이 죽는 거예요.

출 6:26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로 애굽에서 끌어내라. 뭐하려고? 홍해에서 죽일라고. 출애굽기 13장 보면은 하나님이 일부러 그리로 끌고 가셨다고 그래요. 지름길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일부러 그리로 끌고 가셨다고, 홍해 앞으로. 뭐 하러? 빠져죽게 하려고요. 단체로 몰살시킬라고. 우리 안의 애굽을.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죽이시는데 말씀의 물을 터트려서 죽이죠? 로마서 시간에 배웠잖아요? 여러분. 하늘의 그 깊음의 샘이 터져서 홍수가 일어나 기식하는 게 다 죽죠? 그 터지다, 라는 단어, 바카, 라는 단어가 홍해가 갈라지다,에서 그 단어와 똑같은 단어라고 그랬잖아요? 물이 터지고 물이 갈라지고 이게 다 같은 말이란 말에요.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사건도 그 깊음을 터트려서 그것으로 우리를 죽여 그 위에 뜨는 물을 위의 물로 알아먹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만들어내기 위한 사건이고 홍해사건도 마찬가지로 거기서 우리를 죽여 그 물로 우리를 죽여, 그 바다로 우리를 죽여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리기 위한 거란 말에요. 그거를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새 언약 이런 데서는 그 물로 씻어, 이렇게 이야기해요. 물로 씻어. 그리고 그것을 또 거슬러 올라가면 양식을 먹여, 이런 말이에요. 다 똑같은 말이에요. 성경을 찾아보면. 양이 많으니까 여러분 가서 여러 번 들으세요. 듣고 잊어버리지 말고.

자, 그렇게 이 땅에서 말씀이 우리에게 쏟아지는 건 우리의 육을 죽여 진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명 있는 자로, 하늘의 생명이 있는 자로 살려내기 위함인 거예요. 근데 그것은 쉽지 않다, 라는 거 꼭 알아두십쇼, 명심하십쇼. 그러면은 하박국에 나오는 그 물이 그 바다를 덮음 같이 이러죠? 그죠? 그 덮다, 라는 말이 사실은 옷 입다, 란 뜻이거든요. 바다가, 얌이라고 해요 거기서는. 바다가 마임, 그 물로 옷을 입자 그 바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 물이 되자, 그 물로 이해가 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비로소,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더라, 이런 말이에요.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말이 그 말이에요. 그러면 바다도 우리에게 사실은 유용한 거죠. 아래 것이 없으면 위의 물을 어떻게 알아요?

누룩은 어때요? 마찬가지에요. 율법도 사실은 우리에게 그 하늘의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거란 말에요.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 그래서 예수님이 그랬어요. 천국은 가루 서 말 속에, 셋이 나오죠. 거기에 또? 그죠? 가루 서 말 속에 여자가 갖다 부은 누룩 같다. 그러니까 천국 그러면 그냥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의 섬김.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말씀이 우리를 어떻게 섬기냐면 누룩을 부어, 누룩은 아까 뭐라 그랬습니까? 바리새인들의 교훈이라 그랬어요. 율법이죠. 율법으로 주어 삼으로 부풀게 하는 거. 그런 거예요. 바다는? 당연히 바다도 우리에게 있어야죠. 그 바다가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늘의 물을 알아요? 그건 사실 그 물도 아닌데. 그래서 나중에 레위기나 이런 데 보면은 그 오순절 땐가요? 그 때는 누룩 넣어서 떡 먹어라, 그래요.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누룩이 뭐 그렇게 나쁜 거겠어? 그거 넣어서 너희들이 생명의 떡으로 먹을 수 있으면 그게 은혜야. 그럼 된거야. 그렇게 이야기한다고요.

고전 10;1-3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게 지금 홍해 건너는 사건이에요]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죽은 거죠? 그죠? 그걸 뭐라 그래요?]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그 신령한 양식, 그 떡을 진리로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바다에 빠져 세례 받게 되는 거예요. 죽는 거예요.

골 2: 12-15

너희가 세례로 [그 세례를 뭐라고 그래요? 여기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이 신답토가 함께 묻히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러면 홍해를 건너 말씀에 의해 죽은 것. 그것을 경험한 이는 그 주님과 함께 땅에 묻힌 거라네요. 삼으로. 함께 묻히고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 이 이야기를, 너희들이 그렇게 해서 묻혔다, 라는 이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있어서 그 율법, 의문에 쓴 증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파기되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율법은 파기되었어. 너희들은 애굽에서 나왔어. 그러니 너희는 세례 받은 거야. 그게 바로 땅에 묻힌 거야. 그것이 사흘간 묻어뒀던 그 무교병, 그 떡 먹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렵지 않죠? 그러니까 이거에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여러분이 이제부터 읽으면은 아, 그거!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떡, 떡 그러니까 그냥 그게 무슨 떡인가? 그랬잖아요.

롬 6:3-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럼 앞에서, 고린도서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 라는 건 그들이 모세와 함께 죽었다는 얘기네요? 뭘로? 애굽의 군대로. 여기서도 마찬가지죠.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게 바로 홍해 건넌 사건이네요. 뭘로? 그 마귀의 군사로. 군대로 죽은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런데 그렇게 죽어 하나님이 당신의 겉옷을 진리로 벗어주자 그 아래에 있는 그 군대가 그 옷을 넷으로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이야기에요. 십자가의 이야기도. 옷을 네 조각으로 자르면 그걸 어떻게 입냐고요? 근데 성경이 굳이 그렇게 표현을 한다니까요. 넷으로 준다고 그래요, 넷으로. 누구에게? 군대에게.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에스겔서에서도 그 죽었던 것들이 살아나자 군대가 되는 거예요.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죄에서 벗어났고 죄의 몸도 멸해졌다. 근데 또 어디에 묶여 있니? 이런 말이에요. 니네는 세례 받았잖아. 죽었잖아, 떡 먹었잖아. 근데 어디에 묶여 있어? 이런 말이죠. 굳이 그렇게 율법으로 너희들을 자랑스런 존재로 자랑해야겠니? 이런 말이죠?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의롭다 인정받은 자들이니까 그 세상 사람들과의 경주에서 빠져나오라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주신 하늘 양식은 값없이 선물로 주는 양식이에요. 우리가 경주해서 얻어내는 양식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양식은 말씀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 마음의 기름인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구원을 받는 거지 우리의 열심과 수고와 노력에 의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들이 아닌 거란 말입니다.

사 55: 1-3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어디로 오래요? 물, 마임, 진리로 오라는 거예요. 물로 나와]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근데 돈 없이 사 먹어, 그래요.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너희들의 그 율법적 행위는 너희들의 양식이 안 돼. 이 땅에서 너희들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그거 너희가 먹고 그걸로 너희를 구원할 수 없어]

- 나를 청종하라[ 나를 들어! 그래요. 나를 들어!]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기름이 될 거야, 이런 말이에요. 기름은 뭐에요? 진리에요. 기름도.]

3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그게 값없이 사는 포도주와 젖이에요.]

여기 보세요, 젖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하바르’라는 단언데 그게 헤레브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그 헤레브가 최상의 기름이란 뜻이에요. 그 젖이라는, 그냥 기름의 성질을 띤 것이지 어미에게서 나오는 기름의 성질을 띤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헤라브라는 단어를 쓴 거지 ‘그 젖’ 아닙니다, 여러분. 애기들이 먹는 그 젖. 성경에서는 그거는 어린 애가 먹는 거라 그래요. 근데 성숙한 너희들이 아직도 그거 먹고 있으면 어뜩하냐고 야단치지 좋은 거라고 하지 않아요. 그 젖은. 근데 여기에서 나오는 이 하라브는 기름으로서의, 어머니가 주는, 어머니가 뭐에요? ‘엠’, 이게 어머니잖아요? 어머니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럼 이 어머니가 주는 게 뭐에요? 기름이에요, 기름. 그럼 어머니가 주는 기름, 어머니에게서는 근데 젖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젖이라는 번역을 하지만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그 기름. 그리고 포도주 값없이 너희에게 주어지는 이걸 가져가! 그래요.

근데 너희가 수고해서 지금 다른 어떤 것들을 구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건 너희 양식 아니라는 거예요. 값없이 주어지는 것만 너희 양식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것도 거기에서의 젖도 이 헤레브거든요. 어미가 주는 최상의 그 기름으로서의 그것, 이라는 뜻이에요. 꿀은 뭐에요? 여러분 제물에 반드시 넣어야 될 게 뭐죠? 물, 기름 포도주 소금. 고기에다가 그거 뿌리면 뭐에요? 대빤야끼 아니에요? 그거? 철판 스테이크? 그래서 요리사의 복장이 제사장의 복식과 비슷한 거예요.

하나님께 맛난 요리를 해서 바친다, 라는 의미거든요. 그게. 그게 양념이란 말에요. 기름 물 소금 포도주. 넣지 말아야 할 거? 꿀 누룩이죠?

그러면 기름과 꿀 그것이 흐르는 땅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름으로 받으면 거기가 약속의 땅이 될 것이지만 꿀, 너희들의 입을 달콤하게 하는 그것으로 받으면 거기는 가나안, 암흑의 땅이 될 거야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슨 젖과 꿀이 흐르는 무슨, 무슨 제과 이거는 잘못 써도 한참 잘못 쓴 거예요. 그거 먹으면 죽는 거, 이런 말인데.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젖 뗀 자의 평온, 그러죠? 시편 131편인가요? 젖을 떼야 평온한 거예요. 그걸, 내 상태가 그래, 라고 이야기한다니까요. 그거 쓴 사람이. 그리고 이삭이 젖을 떼자 잔치를 벌이죠? 율법에서 벗어나면 잔치가 일어나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그 꿀, 누룩 이걸 좋아해요. 입맛에 맞아, 그게. 그거는 반드시 어떤 것에 섞여 혼합시켜버리는 그런 뜻이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기름 섞인 과자라고 만나를 소개했더니 사람들은 꿀 섞인 과자? 이렇게 받더라니 까요. 진주로 줬더니 꿀 섞인 과자? 이렇게 받아. 그러니까 돼지에게는 진주를 던지만 안 되는 거예요. 꿀 섞인 과자로 받아서 먹고 죽어요. 그래서 이사야서에서도 독사 굴에 손을 넣는 건 젖 뗀 아이라고 그래요. 굳이. 그냥 애기, 그래도 되는데 젖 뗀 아이라고 해요. 그들이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말씀을 거치는 돌로 받지 않을 수 있다, 라는 뜻이에요. 안 그러면? 젖에 머물면 그 독사에 물려 죽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마지막 심판의 때에 아직 낳지 못한 자, 임신한 자, 그리고 젖 먹이는 자 너희들은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직 젖을 먹고 있으면 어떡해? 율법으로 먹고 있는 거지.

그 젖 떼다, 라는 말이 ‘가말’ 이라는 단어거든요. 가말이라는 말이 성숙된 말씀으로 가르치다, 이런 말이에요. 그럼 성숙된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 그것 자체가 젖을 떼는 거네요? 그러면 성숙한 말로 그 말씀을 못 받으면? 젖 먹는 아이에요. 그래서 바울도 니들이 아직 젖이나 먹고 있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내가 단단한 거 못 준다, 이래요. 히브리서에선 이렇게 이야기해요. 한 번 읽어볼게요.

히 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실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여기서 네피오스, 어린 아이란 말은 말을 못하는 자, 이런 말이에요. 말을 못해. 말이 없어. 그 안에.]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잘 설명해주네요. 그죠?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 이니라 [이게 카코스와 칼로스가 뭔지를 안자들이다, 이런 말이에요. 거기에 묶이지 않는 자들이다. 그게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들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값없이 포도주와 그 기름을 사! 라고 해야지 젖을 사! 그럼 안 된단 말에요. 그래서 그 젖, 그 기름 어미에게서 나오는 기름으로서의 그것, 그걸 값없이 사라, 그러는 거예요. 그게 너희의 진짜 양식이야.

신 14:2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뭐라 그랬어요? 이거? 지난 주일 날 배웠죠? 스스로 죽은 거? 만지지도 마라, 이 시체. 주검. 예수밖에 없다고 그랬습니다.]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그 예수는 이방인에게나 주어라, 먹고 죽으라고 그러면서 뭐라 그래요?]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여기 보면 스스로 죽은 것과 어미의 젖이 대조되고 있어요. 어미의 젖은 먹어야 되는 거고 스스로 죽은 것은 먹으면 안 돼요. 괜히 이거 뭔 말이에요? 이거? 어떤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 논문을 썼는데 야, 이건 하나님이 사람들의 그 양심과 인도주의 이런 거에 호소한 것이다. 어떻게 아무리 맛있게 먹고 싶어도 어미의 젖에다가 삶냐? 딴 젖에다 삶아야지. 이렇게 썼더라고요. 아이, 삶아도 돼요. 어디에다 쪄먹어도 되고, 그런 말이 아니라, 여기에서 염소 새끼라는 게 ‘가드’ 라는 단언데 이게 바벨론의 신의 이름이에요. 행운의 신. 우리의 육을 유익하게 하는 신. 염소 새끼.

무슨 말이냐 하면 너희가 어미의 젖이라고 그러죠? 어미에게서 나오는 그 기름으로서의 그것으로 어떻게 너희의 유익을 위하는 바벨론의 신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이런 말이에요. 그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미의 젖, 말씀으로 자신의 양식인 풍요와 행운이라는 신을 만들어내지 말아라. 그게 율법 먹는 거야.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이 현실 속에서 살게 되는 천국을 이렇게 설명해주세요.

신 11:9-12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애굽이라는 곳은 너희들이 열심히 해서 너희들의 먹을 것을 챙겨 너희들의 생명을 삼는 곳이야 근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그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그냥 흡수하여 받아먹는 땅이야. 그러니까 우리의 몸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열심히 일하는 땅 애굽. 그 비를 그냥 흡수하는 땅, 뭐 비를 흡수하여 거기에서 무슨 많은 열매를 맺어 곡식을 만들어 먹어라 그러시지 않아요. 비를 흡수하면 돼. 이런다고요. 그렇게 그냥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의 비를 진리로 흡수하면 좋은 땅, 약속의 땅이 되는 거예요.그렇게 이 땅에서 진짜 하늘의 양식을 받아먹은 이들은 그 떡을 나누어주는 자로 살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사람이 사실 진짜 왕인 거예요. 왜? 그 사람이 진짜 생명을 쥐고 있잖아요. 그 사람이 왕이라니까요. 그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렇게 삼으로 완성이 되고 이제 사[4] 그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의 인물로 요셉이 등장해서 그 사람이 이 땅, 애굽의 왕이 되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가 양식을 쥐고 있는 자에요.

창 41:55-57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 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양식은 누가 갖고 있어요? 사[4]로 완성된 요셉만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거 갖고 있으면 사람들이 떡 주세요, 세 떡 주세요, 라고 빌리러 오겠죠? 그럼 전해주고 흘러가고 이게 반복되는 게 역사에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어떤 이 그가 그 떡 받고 더 이상 흘려줄 사람이 없으면 이 역사는 그냥 끝나버리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래서 구약 때에도 말라기 이후에 사백 년간 암흑기를 한 번 줘보신 거예요. 그리고 신약이 열리죠? 그래 신약이 요렇게 끝날 거야. 보여주는 거예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말씀을 전부 율법으로 곡해하고 있었죠? 이스라엘이.

그 때에 빛이 또 오시는 거예요. 창세기 1장이 다시 시작되는 거죠. 오시더니 이제 그 빛을 또 비추는데 아무도 못 알아먹어. 그럼 이렇게, 이렇게 생겨나겠죠? 또? 그리고 말라기처럼 딱 끊길 거예요. 어떤 때에. 그 때 끊기면은 이제 진짜 끝인 거예요. 아무도 없으면. 그 흘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제가 이렇게 전하다가 뭐 사고로 꼴까닥 죽으면 누군가가 또 흘리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지속되는 거죠. 계속해서. 많이 있을 거예요 세상에. 그러니까 그들이 지구를 지키는 거예요. 독수리 오형제가 지키는 게 아니라.

그러면 여러분에게 이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진짜 양식을 소유한 하늘의 왕으로 살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이 세상 다른 걸로 배부른 세상 부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늘의 왕으로? 그럼 무슨 기도해야 돼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 기도 하라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뭔데 우리에게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십니까?

어떻게 우리에게 그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까?

어떻게 우리를 이 애굽의 왕으로 삼으십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은 이 현실을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 그러니까 기죽지 말게 하시고 이 현실에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