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45. 새것을 담은 새 그릇

Hebrew 2023. 5. 20. 22:30

산상수훈 45번 말씀

제목 새것을 담은 새 그릇

본문 마 6: 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아멘.

 

우린 지난주에 신랑과 금식의 그 상관관계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첫 번째 신랑으로부터 받아먹어야 하는 율법이라는 양식이 있었고유월절 어린 양 고기로 제가 설명해드렸는데 그리고 두 번째 신랑으로부터 받아먹어야 하는 은혜라는 양식이 있었죠두 번째 신랑으로부터 그 은혜의 진리를 양식으로 받아먹을 수 있는 이들은 첫 번째 신랑으로부터 그 율법이라는 양식을 받아먹고 그것만그 양식만 먹어야 하는 영적인 애굽에서 반드시 뛰쳐나오게 되어 있어요그러나 그 첫 번째 양식그 유월절 고기그 율법이 인간의 가치를 향상시켜주고 상승시켜주는자기애 적 자아향상자아상승자아가치 상승 뭐 이렇게 표현해도 되겠죠그런 것들이 너무 좋아서 두 번째 양식이 필요 없는 어떤 무리들은 그 곳에 그 양식을 먹으려고 계속 머물면서 그 공허한 양식을 배터지게 먹다가 결국은 그곳에서 멸망에 처해지게 된다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와 물 포도주를 내는 두 신랑의 이야기인 거고 로마서 7장의 그 첫 번째 남편과 두 번째 남편의 이야기인 겁니다그런데 주님께서 그 신랑과 양식의 이야기에다가 이런 비유를 하나 붙여놓으셨어요한번 보세요.

 

눅 5: 34-3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너희가 그 손님으로 [여기서 아들인데 손님이라고 그렇게 번역해놨어요아들들로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아들들은 신랑과 함께 있으면 금식하면 안 됩니다.]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이제 첫 번째 남편을 빼앗기는 날이 오는 거죠?]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당연히 첫 번째 남편의 그 율법을 안 먹습니다]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이제 비유파라볼레라고 이제 그 이야기 옆에다가 뭘 하나 던져놓으시는 거예요파라 발로뭘 던져 놓는 게 비유라고 그랬죠파라볼레]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 이니라

 

 

묵은 거에 맛이 든 사람은 새것은 안 먹는다는 얘깁니까발렌타인 21년산을 먹던 사람은 17년산을 절대 안 먹는다는 얘긴가요뭔 얘기에요이게요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비유죠이게 왜 금식의 이야기에 붙어 있을까요여러분새 걸로 먹으라는 건가요이 말은 마치 격언처럼 선거 때마다 등장하고 심지어 시위현장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그런 구절입니다근데 이 말은 그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지금부터 왜 금식의 이야기에 이 비유가 붙어 있는지 제가 설명해드릴 테니까 잘 한 번 들어보세요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시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금식의 이야기가 더욱 아주 선명해질 겁니다그러면 아마 다음 주까지 하면 여러분은 그냥 이 시대의 교회들이 오해하고 있는 그 이슬람 교인들이 하고 있는 라마단 식의 그런 금식으로 지금 기독교도 금식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거든요그것이 얼마나 우매한이슬람 교인들도 하는 그런그런 우매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아시게 될 거예요주님은 무슨 금식을 이야기하였는지.

 

이 비유를 원문으로 보면 아주 중요한 세 단어가 키워드로 쓰이고 있어요첫 번째 단어가 카이노스고 두 번째 단어가 네오스란 단어고 세 번째 단어가 팔라이오스’ 라는 단어에요그 단어의 뜻을 여러분이 잘 이해를 하시면 이 비유는 뭐 아주 쉽습니다.

 

카이노스라는 단어는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냥 뉴[New] 라는 단어에요네오스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에요여기에서 뉴 New 비슷하죠새로운 뉴라는 단어가 나온 거거든요새로운요거와 대조적으로 팔라이오스라는 단어가 여기에 이제 나오는데 요 단어는 뭐 오래된묵은옛것의 뭐 이런 뜻입니다근데 이게 무슨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요 카이노스는 새로운 이란 뜻이지만 새것새로운 이런 뜻인데 어떤 새것이냐면 예전에 아주 엉터리로 살던 사람이 이제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되었다할 때에 그 새것 있죠그러니까 똑같은 사람이에요똑같은 사람인데 예전에는 막 엉터리로 개차반처럼 살다가 이 사람이 변화하고 성숙되어 새롭게 변했을 때 그걸 카이노스라 그래요.

 

반면에 네오스라는 단어는요 그냥 본질적인 그 새것’ 있죠그 새것제가 예전에 칼로스라는 단어하고 아가또스라는 단어를 이렇게 비교해서 설명해드렸는데 이거 둘 다 ()이죠둘 다 선이라는 단언데 요 칼로스라는 단어는 나타난이렇게 겉으로 나타난 선이라 그랬습니다그러니까 성전이나 성경이나 율법이나 예수나이런 것이 이렇게 나타난 선이죠눈에 보이는나타난 선그러니까 어떤 선이라는 것을 내용으로 담아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으로 준 것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것을 칼로스라 그러고 요걸칼로스 요것의 내용으로 진짜 그것을 선하게 만드는 그 내용이 아가또스라 그랬잖아요그렇죠근데둘 다 선인데 요 칼로스라는 걸 이렇게 나타내 보여준 걸 요 아가또스로 알지 못하고 그냥 나타난 그것그 성전그 예수그 성경으로 보게 되면 그것 자체가 뭐에요카코스라 그랬습니다요거를 개역성경이 악이라고 번역한다고 그랬습니다.

 

요런 개념들을 여러분이 잘 알아두시면 제가 하는 설교들이 어렵지 않아요요즘 설교들을 자꾸 어렵다고 사람들이 그러는데어떤 분들은 막 너무너무 좋아가지고 그냥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듣는 반면에 어떤 양반들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여러분들이 그런 개념들이 잘 아직 숙지가 안 돼서 그러는 거예요근데 그렇게 여러분이 이런 개념들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좀 여러분이 좀 안타까워하시고 하셔야 되는데 그냥 저 양반이 다음 주에 또 설명해주겠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아닙니다,여러분제가 언제까지 여러분 곁에 있을지 여러분 모르는 거예요ㅎㅎ그러니까 잘 여러분이 이해를 하고 계셔야 돼요.

 

요 칼로스라는 건 선이에요선인데 그러니까 이해가 안 가면 머리를 하여튼 막 굴리셔야 돼요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이해가 안 갈 때 그냥 확 포기해버리면 그 때부터 졸리는 거예요그러니까 나타난 선이에요성전도 분명히 성경이 선하다그랬고 예수도 선한 분이고 율법도 선한 거예요선한 건데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 진짜 선으로 이해되어지지 못해서 그냥 그 표피적인 것으로 그들에게 이해되어진단 말에요그러면 그건 그냥 ’ 이라니까요그게성경이 그걸 악이라 그래요.

 

마찬가지로 요 새것 있죠우리 ooo 집사의 일 년 전 낡은 거옛것근데 지금 새 거 됐잖아요그죠근데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죠아주 좋은 예가 하나 들어와 가지고 ㅎㅎㅎ그죠보세요사람은 똑같은 사람이라니까요그런데 그 안에 어떤 게 들어갔어요그 내용이라는 새 것이그게 네오스에요그거는 그냥 본질인 새것이게 들어가니까 어떤 이가 팔라이오스의 상태에서묵은 것옛날 것낡은 것이 상태에서 카이노스새로운 것이 되더라는 거예요근데 이 팔라이오스라는 요 단어는 팔린이라는 요 단어에서 나온 건데요 요 팔린이 뭐냐면 반복하다진동하다 씨름하다이런 뜻이에요그러니까 희생 제사는 계속 반복해서 드려야 되죠율법도 계속 반복해서 지켜야 되는 거죠영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은 율법은 계속 지켜야 되는 거잖아요그런 의미에서의 팔린이에요그러면 묵은 것이라는 건 단순히 옛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걸 계속 반복하고 진동하고 그 수고의 무거운 짐으로 씨름해야 하는 율법적인 어떤 것을 묵은 것옛날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반면에 새것은 거기에서 벗어나서어떤 것을 받아 거기에서 벗어나서 옛것이 요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버리는 거 있죠요걸 카이노스라 그래요요 차이만 잘 이해하시면 됩니다그러면 이 비유는 뭐 아주 쉽게 풀 수 있어요.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나

 

여기서는 어떤 단어가 쓰였겠어요새것이 되었으니까카이노스죠거봐요이렇게 잘 알면서당연히 카이노스에요똑같은 존잰데 새것이에요지금 여기 있는 분들그죠새것이에요새로운 피조물이죠여러분근데 겉은우중충옛날 거란 말에요똑같이그러니까 이거이게 바로 카이노스에요새것새것인데 그 본질이 변해버린 게 아니라 어떤 변화와 성숙어떤 하나님의 선물그 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그렇게 하나님께 여겨지고 평가되어지는 새것인 거예요그리고 그 팔라이오스는 구식이라는 말 정도가 아니라 반복하고 씨름하고 진동해야 하는 율법적인 언어라 그랬습니다그럼 이제 이 비유의 의미를 한 번 해석해보잔 말에요.

이 금식의 이야기에 연장으로 붙어 있는 새 술과 새 부대의 이야기를 각 절로 이렇게 분해를 해보면,

 

36절은 카이노스와 팔라이오스의 대조예요그리고 37절은 네오스와 팔라이오스의 대조예요그리고 38절은 네오스와 카이노스의 대조예요이러한 사전 분석이 이 비유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키가 돼요.

 

먼저 36절은 보시면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라고 시작이 됩니다여러분 개역성경이 좀 웃기게 번역돼 있지 않았어요어떤 미친놈이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서 낡은 옷을 깁는 인간이 있어요생각을 해보시라고이게 그 말이겠어요아니 낡은 옷이 뭐진짜 옛날에 고조할아버지나 이런 분이 뭐 의미 있는 어떤 걸로 이렇게 전해주는 것이 좀 떨어져서 그걸 기우기 위해 새것을 갖다 대고 뭐 이런 건 이해가 가지만 그런 사전설명 없이 새 옷을 찢어서 낡은 옷을 깁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근데 여기 그렇게 번역이 돼 있단 말에요.

 

여기서 새 옷이 히마티온 카이노스고 낡은 옷이 히마티온 팔라이오스에요히마티온은 여러분 우리가 겉옷 속옷 할 때 배운 단업니다그리고 조각이라고 번역이 된 에피블레마’ 라는 단어는 에피발로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건데요 그 단어가 속하다라는 뜻이에요근데 이제 여기서는 붙이다이렇게 번역을 해놨단 말에요그리고 찢어라는 그런 단어는 어디에도 없어요찢어서 뭐 어디에다 붙였다그런 말은 없단 말에요그러니까 이 구절을 직역하면 새 옷히마티온 네오스 카이노스새 옷에 속한 것을 옛날 옷에 속하도록 던져 넣는 건 원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이런 말이에요다시 요.

 

새 옷이 뭐에요여러분새 옷겉옷이죠그거요우리는 그 속옷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덧입는다고 하잖아요그게 새 옷이란 말에요그 새 옷에 속한 것을 옛 옷헌옷묵은 옷에 속하도록 던져 넣는 건 원리적으로 안 된다이런 말이에요그러면 새 옷에 속한 그게 뭐겠어요당연히 진리죠진리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새 옷을 새 옷 되게 하는 건 진리란 말에요하나님의 말씀복음밖에 없단 말입니다.

 

새 옷에 속한 그것을 묵은 옷낡은 옷에다가낡은 옷은 당연히 팔라이오스니까 율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그 율법에다가 던져 넣는 것이건 불가능이다이런 말이에요새 옷을 뭐 조각을 찢어서 헌옷에다가 기우고이런 얘기가 아니라 새 옷에 속해 있는 그것을 낡은 옷에다가 던져 넣어속하도록 던져 넣는 것은 원리적으로형용부사니까안 된다이런 말이에요당연한 거죠만일 그렇게 되면 그 새 것의 파괴다. ‘스키조란 단어가 분열하다부수다 이런 말이거든요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왜냐면 그것에그 새것에 속한 것은 옛것과거기 뭐라고 되어 있어요한글성경에는한번 보세요옛것과 합하지 아니하리라이렇게 되어 있죠?

 

그 합하다라고 번역이 된 쉼포네오’ 는요 함께 한 소리를 내다이런 말이에요사전 있는 분 찾아보세요함께 한 소리를 내다이런 말이거든요그러니까 이런 거죠왜 새것에 속한 것을 낡은 옷에다가 속하도록 던져 넣을 수 없느냐면 새것에 속한 그 말과 옛낡은 옷에 속한 그 말이 함께 한 소리를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둘은 섞일 수가 없다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금식의 이야기가 참말진리와 거짓말가짜 양식의 이야기잖아요그러니까 그거에 연결되어 지금 이 이야기가 붙어 있는 거란 말에요말의 이야기가그 쉼포네오가 쉼포네스라는 단어의 동사형이거든요그게 함께 한 소리를 내다이런 말이란 말입니다.

지금 이 비유가 금식의 이야기를 부연설명해주는 거라는 걸 여러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새것에 속한 양식은 절대로 옛것 안에 양식으로 들어갈 수 없다이런 말인 거예요왜냐면 그 둘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이런 말이거든요.

 

그렇게 새 옷과 옛 옷은 서로 엮여지지가 않아요그래서 율법에 보면 두 옷감을 하나로 붙여서 옷을 만들지 말라 그러죠섞지 말라 그럽니다그리고 예수님도 호지 않은 속옷을 입고 있었죠바느질을 한 흔적이 없는 옷인 거예요그거는요.

그건 그분이 그렇게이렇게 저렇게 찢고 엮어서 만든 그런 옷을 입은 분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였어요그분은 원래부터 호지 않은 옷이렇게 인간들이 이렇게 찢고 저렇게 찢어서 서로 엮어서 만든 그런 옷이 아닌 원래 그거진리 그걸 입고 오셨고 그걸 넘겨주시려고 했는데 인간들이 그걸 그대로 받지 못하고 갈가리 찢어버린 거예요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걸 그렇게 찢은 그걸 넷으로 넘겨주는 분이다가 십자가에서 그분의 옷이 넷으로 찢어지는 거예요그러나 호지 않은 그 옷은 찢지 말자그런단 말에요바로 이 넷으로 찢어서 너희들에게 준 거사실은 우리가 찢어버린 거예요그게 율법이잖아요?

 

진리는 하난데 인간들의 그 노미조하는 두 마음에피뚜미아 라는 두 마음이 그 말씀을 갈가리 찢어 버리는 거죠근데 주님은 그걸 넷으로 줘요그걸로 하나를 알으라고주일 설교에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그래서 거기에 넷으로 찢어서 주는 겉옷이 나오고 호지 않는 하나의 옷이 나오는 거례요.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서 자기들의 힘과 노력으로 이리저리 꿰매어 입는 옷 이걸 율법의 옷이라고 해요그걸 낡은 옷 히마니온 팔라이오스라고 부르는 거예요옷이 헤졌어낡았어옛날 거야구식이야 그래서 새것 또 사야 돼이런 말이 아니란 말에요여자들은 거울 앞에서면 맨날 옷이 없대옷 천진데창세기 3장 7절 보세요.

그렇게 꿰매어 자기들이 만들어 입는 옷낡은 옷옛날 옷 이게 창세기에 나옵니다.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처음으로 한 일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하고르’, 띠에요치마 아닙니다띠를 해 입은 거예요고작 부끄러움을 가리겠다고 띠를 해서 묶은 거예요상체와 하체를 겨우 분리해 놓은 거죠여러분 그 일은 선악과를 따 먹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입니다근데 일부러 성경이 나무를 계속 단수로 표기를 해요그러면 거기엔 나무가 하나란 뜻인데 선악과를 먹자마자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어디서 난 거예요성경이 의도적으로 선악과를 무화과나무로 연결을 시키는 거예요그리고 예수님이 나중에 신약에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해버리는 거거든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 이파리로 자기들이 치마를 해 입었어요띠를 해 입었습니다그리고는 그 나무’ 뒤에 숨는 거예요그 때 하나님이 아담아네가 있는 곳이 어딘 줄 알아라고 이야기한 거예요왜 율법 뒤에 숨어아담아 네가 어딨느냐?, 가 뭐 숨바꼭질하나님이 뭐 어딨어못 찾겠네그런 의미로 물어본 거 아니잖아요아담아네가 있는 데가 어디냐어딘 줄 알아왜 그 나무에 숨어있어그런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화과나무는 성경전체에서 줄곳 율법을 모형하는 나무로 등장하죠그래서 주님께서도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거란 말에요그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스스로 꽃을 피울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고 그래서 무..과에요꽃도 아닌 것이 과일도 아닌 것이고작해야 아담과 하와의 띠밖에 생산해낼 수 없는 나무에요그래서 저주하신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죠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겠다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은 거 그게 뭐 그렇게 나쁜 일인가요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해 입었다그러죠그 엮다라는 단어가 타파르’ 하는 단언데요그게 바느질하다라는 뜻이에요성경이 일부러 그런 단어를 갖다가 써요그 띠를진리의 모형띠에요그 띠를 만들기 위해 사람이 자기 힘을 동원하여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입더라는 거예요이게 최초의 낡은 옷이에요그리고 이것을 율법으로 계속 반복하여 설명해주는 것일 뿐입니다타파르그걸 율법이라고 하고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과 노력과 열심으로 진리를 완성해보려고 하는 그 모든 시도를 성경은 그걸로 계속 설명을 해줘요그게 율법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자기들의 힘으로 이리저리 재단해서 바느질을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옷을 해 입어버리면 그게 바로 히마니온 팔라이오스구약이 되는 거예요낡은 옷그래서 주님이 그 낡은 옷의 재료인 그 율법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려버린 거예요.

 

근데 그 무화과나무의 이야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라는 말이에요그 때때는 이제 여러분이 잘 아시죠그 때때가 언제에요때가 와야 돼요그 때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그 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그 때가 되면 열매가 열려요때가 되지 않으면 열매는 못 열린다니까요거기에서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죠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그래요못 딴다는 거죠근데 주님은 따셨어요가시나무와 엉겅퀴는 율법입니다근데 율법가시나무와 엉겅퀴에서 하나님께서 포도를 따시고포도는 연합된 성도이 성도를 의미하는 거예요그래서 여러 개가 붙어서 하나가 된그걸 하나님이 그냥 교포재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구약에도 그렇고 신약에도 그렇고 내가 반드시 무화과를 따겠다라는 그런 말이 여러 번 나와요근데 그 무화과는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무화과나무라는거기에서 따려고 하는 하나님의 열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그래서 그 사도행전에서요 집사일곱 집사열두 장로 다음에 일곱 집사가 나오죠그 일곱 집사를 완료하고 죽는 게 누구에요일곱 집사는 말씀으로 섬기는 자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그가 스데반이죠스데반이 포도란 뜻이에요포도를 땄잖아요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딴다니까요하나님이열매를 따신단 말에요그러니까 그 때그 때는 언제에요주님이 스스로 그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가 되셔서 그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돼서 죽는 거예요십자가입니다그것이.

 

주님은 그 율법의 무화과나무가 되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저주를 받으세요저주를 받아서 말라비틀어진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열리게 하기 위해서 그분이 친히 말라비틀어진 언약의 기둥에 매달려버리는 거죠율법의 나무에요선악과에요그것이요그런데 그렇게 율법의 무화과나무가 죽자 거기에서 생명의 열매가 맺혔잖아요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볼 건데 그 열매는 말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그 말은 영이죠이제는 여러분이 그거 다 외우셔야죠그런 구절들은그렇죠그러면 여러분이 그 진리를 받았어요그리고 여러분이 그 말을 할 때 여러분이 바로 그 열매를 맺는 분이죠그걸 누군가 들어서 따 먹으면그가 산 자가 되는 거예요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그들의 식량이 되는 거예요그러면 이 말이 이제 이해가 가겠죠내가내 살과 피가 너희들의 양식이야라고 하신 주님의 말이그죠그게 여러분이라니까요내가 이 땅의 양식이에요여러분내 안에 진리가 있다면만약에 아니면텅 빈 것을 먹은 그 자가 텅 빈 덧을 전해줘요그래서 나중에 알곡과 쭉정이를 키질 할 때 다 날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주님께서 저주의 무화과나무에 매달려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열매가 맺혔고 그 열매가 여기까지 이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의의 겉옷이 넷으로 주어진 거죠그 넷은 호지 않은 꿰매지 않은 하나의 진리를 담고 있는 거였습니다그래서 당연히 우리도 그걸 꿰매지 않은호지 않은 바로 그 하나로 갖고 있어야 되는 거고 그것으로 전해줘야 되는 거예요따라서 새 옷에 속한 것과 낡은 옷에 속한 것은 분리가 되어서 서로 엮일 수 없는 게 맞는 거죠그래서 새 옷에 속한 것을 낡은 옷에 속하도록 던지는 건 원리적으로 안 되는 거다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새 옷을 찢어서 붙인가는 얘기가 아니라.

새 사람은 낡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고 여전히 낡음에 속한 자들은 새것을 먹을 수가 없다는 그런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의 이야기로 한 번 넘어가 보죠이건 또 어떻게 그 양식금식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지?

누가복음 5장으로 다시 가보세요.

눅 5: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여기에서는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가 대조되고 있죠새 포도주는요 브이노스 네오스입니다이게네오스라는 것은 본질적인 그 새것이라고 그랬어요새 포도주낡은 부대는? ‘아스코스 팔라이오스에요그러니까 새 포도주는 본질인 새것을 가리키는 거고 낡은 부대는 여전히 이제 율법의 그릇을 가리키는 겁니다여기에서 아스코스라는 단어는 단순히 그냥 가죽부대라는 말로 해석을 하면 좀 곤란해요그 단어는 슈쿠오스라는 단어에서 온 단언데요그 단어는 그릇기명기구 이런 말이에요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한 군데만 제가 찾아드릴 게요.

 

롬 9: 21-24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이게 슈쿠오스 거든 요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로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누구래요우리라 그려죠?]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 니라

 

그러면 여기서 부대라는 건 우리를 이야기하는 거네요가죽부대하니까 뭐 옛날에는 양이 흔했으니까 양을 통째로 잡아서 알맹이를 쏙 뺀 다음에 그 네 다리를 이렇게 묶어가지고요 거기다가 술이나 물을 넣어서 마셨단 말에요그래서 아마 그렇게 여기도 번역을 한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에요그런 얘기가 아니고요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성경이 우리 얘기를이 단어는 성전의 기명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단언데요 성전의 기명이라는 건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잖아요하나하나가 다그렇죠?

따라서 우리가 우리 안에 진리를 담게 되면 우리는 새 그릇이 되는 거예요새 부대에요그것이새 부대우리 안에 담긴 것이 진리가 아니면 우리는 그냥그냥 그릇이에요질 그릇.

 

그러니까 보배를 담은 질그릇과 그냥 질그릇은 다른 겁니다여러분보배를 담은 질그릇은 깨지면 보배가 드러나지만 그냥 질그릇은 깨지면 그냥 깨지는 거예요멸망이에요그것이.

 

고후 4:6-7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게 슈쿠오스에요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면 보배가 뭐라 그러죠그 6절이 보배라는 얘기잖아요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신 하나님이게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그 말을 하신 하나님이란 말이 아니라어두움이 뭐라 그랬죠여러분이 호쉐크’ 라는 이 단어가 어두움인데 요 어두움은 반드시 오르라는 빛으로적어도 성도에게 있어서는 빛으로 이해되어지게 되어 있거든요근데 성경에서 이 어두움을 나쁘다 그러지 않아요적어도 창세기 1장에서는 이 어두움과 빛이라는 것을 뭐가 나쁘고 뭐가 좋은 것이다이렇게 구분하지를 않아요.

그냥 이건어두움은 하나님이 이렇게 [오르나타낼려고 주신 거야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에요마찬가지에요밤이 라일이죠뭐예요이게가르침을 주는 가르침밤이라는 단어 자체가 뭘 가르치기 위해 준 거란 뜻이에요낮은 뭐에요그럼진리를 주는 게 낮이에요그럼 밤이나 낮이나 뭐가 달라요이 밤으로 이 낮을이 날을 알면 되는 거예요그럼 저녁은 뭐고저녁은 뭐고 아침은 뭐에요?

 

이게 저녁이고 이게 아침인데 이 저녁이라는 말은 뭐가 이렇게 덮여 있다이런 뜻이에요원래가덮여 있는데그러니까 파자를 하면 아랫것으로 시작하는 성전이란 뜻인데 덮여 있는 거예요그 안에 분명히 무얼내용을 갖고 있어요그런데 아침은 뭐냐면 그 성전을 파괴하고 다시 세우기 시작하면 그걸 아침이라 그래요그러니까 이거 보세요어두움요 어두움을 그게 뭔지그러니까 성전을 그대로 그냥 성전으로 보면 네 눈이 어둡다그런단 말에요그걸 어두움이라 그래요그걸 호쉐크라 그래요그리고 그걸 죄라고 한다니까요이 어두움을.

 

그런데 그 성전이 뭔 줄 알았어요근데 여전히 그 성전이에요근데 어떤 이의 눈에는 그게 그냥 껍데기로 안 보이고 그렇지그게 그 내용이지라고 보인단 말입니다그 때에 똑같은 성전을 보는데 어떤 이는 그걸 어두움으로 보고 어떤 이는 그걸 빛으로 본단 말이에요빛이라는 건 그런 거라니까요다른 종류의 어떤 것이 아니에요이해가 가세요여러분그러니까 이 어두움은 이 빛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거고 이 빛이라는 건 그 어두움을 나타낸 거네요그러면 이건 뭐고 이건 뭐냐고요마찬가지에요밤이라는 건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거예요그죠그 어두움을 밤이라 하자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왜냐하면 선지서나 구약이나 아니면 신약에도 뭐유다가 밤으로 갖다니고데모가 밤으로 왔다이런 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창세기의 이야기들그 창세기에서 그 전제들을 계속 이렇게 어떤 개념들을 정의해놓으시는 거예요밤이라는 게 뭐가를 가르치기 위한그 가르침이 밤이에요근데 그 밤을 통해서 니고데모처럼 아저분이 빛이구나라고 알면 그게 뭐에요그게 낮이에요.‘’. 진리를 받는 거예요그것이그리고 그게 뭐냐면 아이고그게덮여 있던 게 부수어지고파괴되어지고 다시 세워지니까 나에게 보이네?그게 그 뜻이네라고 하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거 아닙니까그러니까 이건 다 그냥 하나라니까요뭐 이건 나쁘고 저거는 좋고 이렇게 구분하라고 준 게 아니란 말에요우리에게.

 

근데 뭐라 그러시냐 하면 바로 그 어두운 것에서 그걸 빛으로 아는 어떤 이들이 있어라라는 그분이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껍질에 그게 프로소폰이죠그게 얼굴이라고 번역됐단 말에요맞아요얼굴이란 단어가 얼꼴이니까영의 모양이니까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춘 그걸 보내다그러는 거예요지금 여기서그러니까 그 보배를 마음에 갖고 있으면그 사람이 보배를 질그릇이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란 말에요그죠이 이야기가근데 그게 없으면그냥 질그릇이에요깨지는 거예요여기서 쓰인 단어도 스키오스에요그릇이에요그릇기명기구.이런 뜻이란 말에요내용을 담는 그릇.

 

그러니까 새 포도주브이노스 네오스새 포도주그 본질그 진리그 새 포도주는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를 이야기하는 거겠죠그죠그리고 낡은 부대는진리와 상관없는 율법의 그릇진노의 그릇로마서의 표현대로 바꾸면진로의 그릇멸망 받을 그릇그걸 상징하는 거예요낡은 부대그 안에는 율법이헛된 양식이 가득 담겨져 있어 그 새 포도주진리가 담길 공간이 없다는 뜻이에요못 담는 다는 뜻입니다그러니까 당연히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담길 수가 없어요팔라이오스의 그 그릇에 담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그 어구를 직역하면 이래요.

 

새 포도주는 옛것이 담겨져 있는 그릇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이런 말이에요반드시 옛것이 먼저 비워지게 되어 있어요만일 새 포도주의 진리가 낡은 그릇에 담겨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요새 포도주가 낡은 그릇을가죽 부대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린다고 그러죠찢는다그러는데 이거는 조각조각 부수어지다이런 말이에요우리가 율법을 모래라고 하고 부스러기라고 하고 조각조각 깨진 것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율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조각조각 부수어버린다새 포도주가 낡은 그릇을 그리고

 

37절 후반부를 보면 그 결과 낡은 부대가 아폴루미’ 완전히 멸망한다그래요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새 포도주그 물 포도주를 내시는 새 신랑그 신랑예수라는 돌에 오히려 걸려 넘어지는 자오히려 그 예수라는 올무에 걸려 멸망에 이르는 자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여전히 율법의 그 헛된 양식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에게 진리가 가면 그 예수에 의해 그들이 멸망한다고 그러잖아요그죠그 이야기 하는 거예요그들을 완전히 산산이 율법으로 조각조각 내어 아폴루미완전히 멸망시켜 버리는 거예요누가진리가요절대 안 받아들이니까그래서 주님이 그래요너희들은 그 말에 의해 심판 받을 거야말에 의해서.

 

바꾸어 말하면 낡은 그릇이 그 가죽 부대낡은 그릇이 진리를 받아낼 수 없기 때문에 그 진리를 모래와 부스러기로 산산이 부수어버려요그러니까 율법주의자들에게 진리를 주잖아요복음을 주면 그걸 율법으로 산산조각 낸다니까요그러면 그 진리는 그들을 산산조각 내버려요바다의 모래로그렇게 되면 그 새 포도주그 네오스그 새것이 어떻게 된다고 그래요땅으로 흘러버린다고 그러죠.

 

그 생명그 진리피는 곧 뭐다생명이다그랬습니다그러면 그 피를 땅으로 계속 쏟아내는 일을 뭐무슨 병에 걸렸다고 그래요유출 병에혈루 병에 걸렸다고 그러죠그들은 부정한 자다라고 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주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려서이건 참 생명이잖아요그 피는 곧 물이고 물은 곧 성령이고 그 성령은 곧 진리니까그것을 흘려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죠왜 줘요그걸 니들이 받아 마시고 니 마음으로 가지라라고 주는 거잖아요그런데 그걸 Keep 하지 못하고 흘려버리면그는 멸망이에요그가 부정한 자란 뜻이에요그래서 혈루 병이 부정하다고 하는 거예요그리고 율법에도 여자가 월경 때는 부정하다고 한 게 바로 그런 의미한 말입니다그 피를 땅에 흘리면 안 되는데 율법주의자들에게 그 진리가 가게 되면 그들은 이 진리를 부수어버리고 진리도 그들을 부수어버려 그리고 완전히 멸망케 해요그리고 그들에게서 그 새 포도주가 담길 공간이 없이 때문에 계속 흘러땅으로 그러면 저주다이런 말이에요그래서 메케오’ 쏟아진다이렇게 이야기를쏟아진다새 포도주가 쏟아진다.

 

따라서 새 그릇은 반드시 그 새 포도주를 마음으로 담아야 되는 거예요그러니까 낡은 그릇은 절대로 진리의 양식을 먹을 수 없다이런 말이에요그래서 금식의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붙어있는 거예요똑같은 이야기잖아요그러니까 그들은 매일 엉뚱한 양식이나 먹는 거죠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그릇에 담겨져야 돼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팔라이오스라는 그릇에 담겨 있으면 안 된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새 그릇에 담긴 새 포도주를 창세기의 언어로 바꾸면 자칼과 레케바인 거예요.

 

레케바라는 그릇그 단어 자체가 제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홈이란 뜻이에요그리고 그 단어가 구멍을 뚫다이런 뜻도 있어요그러니까 홈구멍이 뚫려진 어떤 것에거기에 들어가야 할그러니까 보석이 뭐라 그러죠이거 거미손이라고 하나뭐라 그래요이걸보석을 이렇게 잡는 그 금뭐 이런 거 있죠요런 홈이런 거를 레케바라 그러고 그 안에 담기는 것을 자칼이라고 그런단 말에요근데 이게 담겨져 있지 않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생각해보세요알 빠진 반지 끼고 다니는 여자 같이 추한 여자가 어디 있어요근데 그 자칼이 없는 그 그릇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근데 이 보석이 보배이 자칼은요 레케바다 없으면 이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그냥 구슬이에요이거는요다마 치기 할 때 쓰는 다마라니까.

 

그렇잖아요이 자칼은 영이잖아요영이라는 개념은 그걸 담는 그릇인 이런 육신이 없으면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영을 뭐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영은 비로소 담길 그릇과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그 때부터 의미가 발생하고 가치가 생기는 거예요안 그러면 그게 담길 그릇이 없을 때 영은 그냥 허깨비라니까신기루라니까요그거는그러니까 이 둘은 반드시 연합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38절이 쉰테레오’ 로 끝나죠이게 함께 완성하다함께 일하다둘 다 보존되다이런 말이거든요개역성경에는 뭐라고 번역 돼있죠? 38마지막이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이렇게 돼 있는데 그냥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반드시 쉰테레오함께 완성돼야 된다둘이 함께 공존해야 돼이런 말이에요새 포도주는 새 그릇에 담겨 있어야 둘 다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쉰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께니까요.

 

그렇게 새 포도주성령을 양식으로 먹은 자들은 이제 성경과 예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이제그 나타난 표피로 육체대로 보지 않고 영으로 보겠죠영으로 본다니까 뭐 대단한 거 같은데 진리로 본단 말이에요그 육체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선악으로그게 고린도후서 5장의 이야기에요. 15절 보세요.

 

고후 5:15-17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산 자들은 새것이네요다시는 저희 자신을 [이거는 옛것이네요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가 누구죠영입니다다시 사신 자는 그 예수’ 아닙니다그리스도의 영이에요.다시 산건새 남편이에요새 남편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보세요메시아예수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안다니까요사람들은요그 보배그 진리를 못 받으면그런데 그 진리를 안 이들이 어떻게 보느냐 하면이제부터는 이간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옛날 것이에요근데 옛날 것이 여기서 이전이라는 게 뭐냐면, ‘아르케’ 라는 단어가 쓰였어요베레시트의 그것그 옷은 지나갔다나는 거예요그 옷이 뭐죠무화과나무 그 옷.]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어요그걸 낡은 옷묵은 옷이라고 했잖아요팔라이오스히마티온 팔라이오스라고그런데 여기선 아르케라고 쓴단 말이에요태초의 그 옷그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 것이 왔다새 것이 되었다라고 이야기한단 말이에요그 새것카이노스우리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럼 이제 그 그리스도도 우리에게는 육체대로 아는 그리스도면 안 되잖아요십자가에 매달아놓고 열심히 비나이다비나이다하는 그 예수그건 나와 아무상관 없는 예수죠그 복음은 그냥 내가 소문으로 들은 복음이지 내 거가 아니라니까요나와 아무 관계없는 그 십자가가 나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냐고요그래서 이제는 육체대로 알지 않아요영으로 알아요근데 영은 어디 있어요여기 있단 말에요.

 

그러면 그 2천 년 전의 그 골고다의 십자가는 이제 사르르 녹아 이리로 들어와 있단 말에요그러면 더 이상 그것은 나에게 찬양의 대상이 아니란 말입니다감격의 대상이 아니란 말에요그거 보고 눈물 콧물 짜고 하는 그런 일을 그칠 수 있다니까요그런 사람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라고 부르고 그들은 더 이상 묵은 것에 매이지 않는다이런 말이에요그들은 이제 새 포도주만을 원하죠그게 그들의 참된 양식참된 이라는 건 진리아가또스알레떼이아에요진리의 양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새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여전히 묵은 포도주인 율법만을 먹고 마시고 있는 이들은 절대로 새것을 원하지 않아요이 진리를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그 율법내가 내 열심으로 내 가치 챙기고 내 만족 챙겨 갖는 그 신앙생활이 너무 좋아사실은 그게 보람 있고 할 맛도 납니다여러분힘들지만 애써 헌금하고 힘들지만 정말 매일 새벽에 나가갖고 새벽기고 하고 하는 거 보람 있다니까요그리고 인간들은 그렇게 할 때에요 그 때만큼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해져요그래서 그것을 열심히 시키는 교회는 다 부흥해요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벽기도 끝까지 안 할라고.ㅎㅎㅎ집에서 해요집에서새벽잠 없으면그래서 마지막 39절이 이렇게 끝나요.

 

눅 5: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보세요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자들은 절대로 새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묵은 것이 인간들의 구미에 맞아요그래서 이 인간들은 전부 묵혔다 먹어요ㅎㅎㅎ된장도 묵혔다 먹고 술도 묵혔다 먹고 치즈도 묵혔다 먹고 그리고 오래 묵힐수록 비싸요조니워커 불루가 제일 오래된 거거든요조니워커 레드보다 배나 더 비싸요배가 뭐예요옛날 전적이 다 나오네ㅎㅎ뭐든지 묵혔다 먹어그리고 오래 묵힐수록 가치가골동품 보세요오래 묵혀두면 묵혀둘수록 비싸성경은 근데 새것네오스카이노스가 되라 그래요네오스를 받아서근데 인간들은 전부 묵혀뭐든지그게 그냥 우연히 아닌 거예요인간들의 그 본성심지어 싱싱한 회도왜 초밥에 식초를 뿌려먹는지 아세요그걸 오래 묵히면 시거든요근데 성질이 급해갖고요 새것을 갖다놓고 묵은 것으로 자기들이 만들어먹는 거예요그래서 식초를 뿌리는 거예요다 묵혀.

 

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카이노스의 새것들은 이제 본질이 바뀐 게 아니라 신분과 그들에 대한 평가가 바뀐 거란 말이죠그러니까 낡은 그 피조물과 새로운 피조물이 눈에 보이는 어떤 차이를 가지는 게 아니라 낡은 것이 그 진리 안에서 새것으로 여겨지는 것일 뿐인 거예요그러니까 뭐가 대단하게 크게 변화가 없을 수도 있는 거란 말입니다단지 그것의 누림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다른 게 아니라 묵은 포도주가 담고 있는 그 새것이라는 내용을 알게 되면 그게 새 포도주가 되는 거예요말씀은 어때요성경이 율법으로 보이면 그게 묵은 것이에요그러나 진리로 보여지면 그 자체로 새것이에요성경이 그 사람들은 딴 거 갖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똑같은 성경인데 어떤 이들에겐 묵은 것으로 가고 어떤 이들에겐 새것으로 보여져요그래서 새 언약신약이죠새 언약에 쓰인 단어가 네오스가 아니라 카이노스에요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이건 그냥 구약그 내용을 그대로 갖다 옮겨놓은 거야이런 말이에요구약도 이 말이었어이런 말이에요그래서 새 언약이 카이노스에요카이노스.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여기서 의문이나 영이나 똑같은 말씀을 가리키는 거죠의문은 율법이고 영은푸뉴마말씀이에요진리의 말씀의문의 말씀이 따로 있고 영의 말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란 말에요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의문의 말씀즉 율법으로 보고 열심히 행하고 육체의 일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영으로 보고 열심히 살리는 일을 하더라는 거예요살리는 일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워서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하는 거예요영으로 보고그래서 주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시면서 이것이 바로 새것의 모형이야이렇게 이야기하신 거예요이것이 바로 새것의 모형이야.

 

마 26: 27-29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건 포도주에요유다가 나간다음에 포도주를 지금 따라주시는 겁니다]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피에서 포도주로 왔습니다]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포도주죠?]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제 그 아버지의 그 나라가 완성이 되면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뭐로 마셔요새것으로 마신단 말에요내 안에 그 그리스도가 영으로 들어오시면 나와 그 그리스도는 함께 새것으로 마시는 거죠근데 이 새것이 뭐냐면 카이노스에요그러니까 지금 카이노스는 그전의 어떤 것을 내용으로 보았을 때 카이노스니까 그 포도주가 사실은 새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단 뜻이란 말에요그러면 이제 그 새것을 내가 마셨다면여러분 다 마셨죠성령을 마셨단 말이에요주님이 그게 생수라고 했고 그게 바로 성령이다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여기선 새것이라고 한단 말에요주님과 함께 마시는 새것그러면 여러분이 성찬식 때 마시는 그 포도주가 이제는 뭐 마셔도 되고 안 마셔도 되는 거죠뭐 굳이 다른 대다수가 그거 합시다그러면 우리도 할 겁니다당장 다음주부터 하자고요그 진짜 포도주로찰랑찰랑 넘치게 내가 줄게한잔씩 꾹꾹 눌러서 드릴게마셔도 되고마시면서 그렇지이게 새것이지이게 성령이지라고 해도 되고그거 뭐 그까짓 거 다 알았는데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거 안 하면 큰일 나는 게 로만 가톨릭이죠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열심히 다니면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건 도대체 무슨 배짱이냐고여러분 잘 이해하셔야 돼요그거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젠데 그렇게 그냥 선배들이 그리고 혹 내 옆에 있는 이들이친한 이들이 다 그렇게 간다고 이게 맞는 거겠지라고 하면 다 죽어요.

 

그 포도주는 피고 그 피는 물이고 그 물은 그 진리고 그 진리는 성령이며 그 성령이 바로 새것이에요다 같은 겁니다그래서 요한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요일 5: 7-8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보세요성령진리 다 그걸 증거 하는 거라네요같은 거죠이게 뭐예요이게 새것이잖아요이게 뭔지를 알면그게 바로 새것이잖아요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 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라고 얘기 해놓고 탐내지 말라라는 말로 그 죄를 다시 받아요이게 에피뚜미아거든요그러니까 율법이 그 내용이라는 걸 내가 몰랐으면 나는 계속 탐심을그 내 욕구 육체의 욕구를 따라 그 율법을 그냥 행해버렸을 텐데 그걸 죄라 그래요난 계속 죄를 지을뻔 했구나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그렇다면 율법의 내용이 뭐라는 거예요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거죠탐심이 무엇인지 가르쳐서 그거 하지마그건 안 돼,를 가르쳐 주는 거라는 거잖아요근데 바울이 자기는 그걸 열심히 행했죠열심히 행했는데 율법이 그거 열심히 행하지 말라는 거였다는 얘기 아니에요지금그럼 그 열심히 행한 게 뭐예요하나님의 말씀을 내 육체로 육신으로 그냥 열심히 해해버리면 그게 에피뚜미아요 그게 죄다라고 말씀하는 거 아닙니까근데 그게 뭔지를 알았으면?더 이상 그 율법은 나에게 있어서 죄도 아니고 내 육체의 욕망을 이루는 그런 것도 아니란 말에요.

 

그 때 그 율법은 나에게 빛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렇게 먹으라는 거예요그래서 십계명의 맨 마지막이 그 전체를 정리하는 탐내지 마로 끝나는 거예요그래서 주님은 그걸 딱 빼고 그건 전체 주제니까살인 간음 거짓 증거 사랑이렇게 네 개만 주는 거란 말입니다.

 

갈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성령과 육체의 욕심이 대조됩니다성령은 푸뉴마에요호 푸뉴마말씀입니다말씀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말씀을 좇아 이루어라이래요말씀을 이루어라 이런 말이에요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육체의 욕심이 에피뚜미아입니다그러면 말씀과진리와 육체의 욕심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거예요그러니까 육체의 욕심은 율법인 거예요노미조하는 우리의 생래적 그 본성.

 

17 육체의 소욕은 [이것도 에피뚜미아에요탐심이라고 번역된 그 단어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소욕육체의 소욕이러는데 소욕이라는 게 뭐냐 하면 에피뚜미아인데 예수님이 내가 너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할 때에도 에피뚜미아거든요그러니까 그냥 어떤 존재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데 성령의 소욕은 이 육체의 소욕우리의 그 율법의 두 마음 뭐든지 선악으로 나누어서 그렇게 이것저것으로 나누어서 자기들이 가치 있다 생각하는 걸 추구하는 그것과 반대되는 게 성령의 에피뚜미아란 말이에요.

 

주님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 푸뉴마티코스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버리면 우리 안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에피뚜미아는 육체에 있을 때의 그 뭐든지 노미조해버리는 그 에피뚜미아와 다른 거라는 거예요주님이 자연스럽게 내어놓은 그 에피뚜미아 그것을 우리가 갖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주님은 그렇게 나누어서 안 봤다니까요.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이 너희를 인도해간다면 너희는 절대 그 율법아래에 있지 않지이런 말이에요근데 왜 모든 말씀을 자꾸 그 율법으로만 보고 그걸 그냥 네 육체로 자꾸 행하려고 그래그런 말이에요그걸 그렇게 행해놓고 그냥 이게 다 이겠거니 하고 그렇게 있는 거큰일 나는 겁니다여러분.

 

이렇게 에피뚜미아를 금하는 율법을 그냥 에피뚜미아로 행하게 되면 그게 멸망의 양식이 되는 거고 그 에피뚜미아를 금하는 율법을 통해 그 에피뚜미아를 하지 않게 되었다면 나는 이제 그걸 금식하는 자가 되는 거잖아요그렇죠그러면 그것이 바로 나의 생명의 양식이 되는 거예요왜냐하면 그 에피뚜미아가 죽어버린 저주의 무화과나무에서 열린 그 진리의 말을 나는 이제 따먹는 거니까그래서 그 새로운 포도주 그 새 양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말씀그 율법그 예수그 성전을 올바른 내용으로 아는 겁니다그래서 요한사도가 새 계명을 설명하면서 이건 뭐 다른 게 아니라 어두움인 그 옛 계명을 그냥 내가 드러낸 거야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새 계명이라고 다른 거 대단한 거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옛날 거 그거 그냥 써 준거야근데 그걸 내용으로 알면 돼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볼까요?

 

요일 2:7-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그죠옛 계명이에요다 똑같은 거라는 거예요창세기 1장부터 말라기 끝까지 그 이야기도마태복음 1장에서 요한계시록 끝까지의 그 내용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거예요그래서 새 계명을 카이노스라고 한다니까요.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참된 것은 진리라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 이니라

 

이제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어두움이 지나가고 그 어두움이 나에게 빛으로 보이네 그러면 그게 나에게 새 언약인 거예요새 계명인 거예요이제 십계명이 무슨 말인지 금방 알겠네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알고 나니까 위의 다섯 계명까지도 다 나에게 해결이 되었네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그거는 어두움이 아니라 이제 빛이잖아요그래서 요한이 그러는 거죠내가 뭐 대단하게 새 거 어디서 갖고 와서 너희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옛날 거 그거야근데 그 어두움을 빛으로 볼 수 있는 너희에게 이것이 주어지니 이것이 새 계명이 되는 거 아니냐이런 말이죠카이노스그러면 그게 우리에게 양식이 되는 거예요.

 

정리를 하면 이러합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말씀이라는 양식을 참 양식으로 먹고 살아나야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에요근데 그 하늘의 말씀은 이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그 제한된 이성 속으로 내려야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아래 것이라는 그릇에 담겨 내려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껍데기로 보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만 진의로 보이게 되어 있어요.

 

전자는 그렇게 하늘의 말씀을 쭉정이로 보고 쭉정이로 먹는 자들이고후자는 그 말씀을 참된 알곡으로 먹고 살아나는 자들인 거예요이게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요그 양식의 이야기어떤 걸로 먹을 거냐는 말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부터 이 양식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다음 주에 설명해드릴 건데 오늘 이걸 다 할라고 그랬는데 하도 힘이 들어서 안 되겠어요.

 

창 1:29-31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채소 아닙니다이거는 풀이에요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단수]를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양식]. -여기 양식의 이야기가 나오죠너희에게는자칼과 레케바가된 이들에게는 내가 온 지면의 그 씨 맺는 모든 채소씨를 씨 뿌리는 자에게는모든 채소를[모든 풀과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근데요 여기 나무가 단수에요모든 이라는 단어가 앞에 콜이 붙어 있는데 나무는 단수에요모든하면 복수로 써야 되는 거 아니에요선악과와 생명나무창세기에 두 나무밖에 없어요근데 그것도 하나라는 얘기에요그래서 모든그러면서 그냥 나무’.

그 나무를 너에게 식물로 줄 거야양식으로 줄 거야그거를 생명나무 열매로 먹으면 된다는 얘기에요.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우글우글 거리며 땅에 기는 모든 것공중의 모든 새성전땅의 모든 짐승진리가 되지 못한 그러한 네페쉬들이들에게는 뭐를 줘요?] 모든 푸른 풀. ‘푸른’ 이라는 단어가 텅 빈이란 뜻이에요텅 비어 있는 쭉정이 줄 거야양식으로그런 말이에요.

그럼이거 먹으면큰 일 나는 겁니다.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건 이것이 정당하다이런 말이에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 이니라

 

성경에 나오는 모든 양식의 이야기 금식의 이야기는 다 여기서 출발하는 거예요이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여 풀어주는 거예요그러니까 이 양식의 이야기를 알면 다른 그 어떤 개념들괜히 막 복잡하게 성경이 이렇게 해놨는데 뭐 그것들 몇 개 알았다고 해가지고 뭐 그냥 논문 쓰고 사람들한테 뭐 내가 그냥 성경에 무슨 통달한 사람인 양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그거 몰라도 돼요여러분이것만 그냥 제 양식으로 먹어버리면 됩니다몇 개 안 거 그냥 추측하고 상상하여 이거 아니에요이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어가지고그런 거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이 양식을이 말씀을 이렇게 그냥 제대로 먹어버리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그것을 당연히 이렇게 금하게 되어 있어요당연히 금하게 되어 있어요물론 그것을 먹지 않는 게 육신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참 힘듭니다그걸 안 먹는 게 우리의 육이 지금 굶어 죽어가는 거거든요왜냐면 육신은 그걸 먹어야 된단 말에요근데 나는 육신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걸 먹지 말라는 거예요그거 금식하라는 거예요그걸 금식하는 게 새것으로 먹는 거니까.

 

그래서 제가 이거를 요즘 너무 해이해진 거 같아서 우리 저 총괄팀장 이하 우리 팀장들이 저를 말씀만 이렇게 전할 수 있게 너무 그냥 잘 해줘가지고옛날에는 뭐 이런 설교할 때는 막 고민하고 실지로 정말 몸으로 제가 경험해보고 막 이러고 하고 그랬거든요.

열심이 특심이라그래갖고 제가 주일 저녁부터 한 사흘을 한 끼도 안 먹고 굶었어요이 금식을 설명하려고옛날에는 이게 막 몸에서 우러나왔는데 밥을 안 먹는 게 내가 육신이 원하는 걸 안 먹는 게 어떤 건지를 너무 그냥 와이프가 밥을 잘 차려주니까맨날 배터지게 먹다보니까 감각을 잃어버렸어요그래서 오늘 오전까지 꼬박 사흘을 그냥 굶었어요그리고서 아이렇게 뭘 안 먹는다는 게 이게 미치겠는 거구나.

 

근데 하나님이 먹지 말란단 말에요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금식을 한 번씩 해보시려고 한다면 Any time OK! 해보세요여러분그걸 안 먹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 율법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되는 곡기란 말에요그거를 먹지 않고 하늘의 그 양식으로 우리가 진짜 이 역사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이건 불가능인데 우리가 살아있다니까요아니사흘을 굶고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이 기적이 어딨어ㅎㅎ살아 있잖아요?

그래서 은혜라는 게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게 맞는 거예요그러니까 그렇게 한 번 열심히 끌려가보세요여러분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납니다그 진리가 뭔지 글로말로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그냥 마음으로 이렇게 알아요그래서 제가 ’ 해도 아그거! ‘’ 해도 아그거이렇게 알아먹는다니까요그게 뭔지 그거 하나만 가지시면 됩니다기도하겠습니다제가 다음 주에 창세기 부분은 자세하게 설명해드릴 게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먹으라 하신 것과 먹지 말라 하신 것이 분명히 이렇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도 알고 보면 그냥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육은 우리의 육이 편하고 또 우리의 육이 추구하고 우리의 육이 필요로 한 것만을 선택하여 하나님이 원치 않는 그것을 열심히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이끄사 이렇게 새로운 것으로 먹여주시고 몸은 힘들고 육신은 고통스럽지만 이 세상이 유일한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금하게 해주시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나님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끌려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