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성수 목사/산상수훈

43.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는 금식

Hebrew 2023. 5. 20. 22:29
산상수훈 43번 말씀
제목 :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는 금식
본문 : 마 6 : 14-18


다음 주에는 그 마가다락방 기도원에 제가 오전 오후, 오전하고 저녁 이렇게 집회가 있어갖고 요 자리에서는 이제 집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잘 참고하셔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산상수훈 43번째 시간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 함께 봉독합니다.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아멘.




금식할 때 금식하는 티내지 말고 머리에 기름 바르고 얼굴을 깨끗이 씻어라. 그럼 티 안나나요? 한 열흘 굶으면요 아무리 머리에 기름을 발라도 티 납니다. 주님이 그런 이야기하시는 걸까요? 우린 지난주까지 주기도문에 대해서 상세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말이 주기도문이지 우리의 기도죠? 우리의 기도를 주님이 가르쳐주신 거. 그걸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그렇게 거의 고유명사처럼 알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부르자는 겁니다. 우리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주기도문은 마땅히 우리가 되어야 할 상태, 그 되어야 할 상태임과 동시에 그래서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내용인 것이라고 했죠? 아, 그게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될 지점이구나, 라고 우리가 확실히 알게 되면 그게 바로 우리의 염원이 되는 거죠. 기도가 되는 거죠. 프로슈코마이가.


거기에는 기도의 양이라든지 횟수라든지 시간이라든지 방법이라든지 장소들에 관한 내용은 일체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요. 그건 다 나중에 우리들이 만든 거예요. 하루에 몇 번 기도해야 된다, 몇 시간 이상, 해야 된다. 뭐 산에 가서 하면 더 잘 된다. 골방에 들어가면 더 잘 된다, 이런 건 다 우리가 만든 거지 절대로 뭐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주신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이라는 건 기도라는 종교행위에 대한 태도와 자세와 방법에 대한 그런 권면이 아니라 기도라는 종교행위에 대한 재구성인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도라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기도라는 그 종교행위, 그거 자체를 구성을 부수어버리고, 부정해버리시고 기도의 그 진의와 그 내용을 다시 구성하셔서 제시해 준 게 주기도문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도하라, 프로슈코마이, 기도하라, 라고 하셨던 건 인간들 스스로 열심을 부려서 자기들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이 기도를 사용하라, 라고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미 정해져 그렇게 되어질 것에 대한 인정과 동의와 확인, 그리고 확신. 거기에 거하게 될 성도의 상태, 그걸 우리보고 확인하라는 거지 그 기도라는 것 자체를 우리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나 방법으로 그리고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얻어내는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라고 준 게 아니란 말에요, 원래요.


하늘의 뜻이 내 뜻과 그렇게 연합이 되면, 하나가 되면 당연히 그 하늘의 뜻이 나의 청원, 나의 염원이 될 거고 그 내용이 기도의 내용이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진리라는 씨가 들어와서 일을 시작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에요. 주님은 그 씨를 양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내일의 양식,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그 올바른 하늘의 양식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위대한 용서가 실현이 되고, 성취가 되고 그 용서가 우리의 것이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 있는 그 나라와 권세와[두나미스] 영광이 우리 것이 된다, 그랬죠?


네, 원래 그분 게 맞아요. 아버지 거죠 그건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 건데 그 아버지가 내 안에 들어오시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내 것이죠. 그러니까 그것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아버지께 있습니다, 라는 것을 그냥 독소로지 [Doxology], 그 송영으로 두고 싶어 하는 그런 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래요, 근데 그 아버지가 내 안에 들어온 거라니까요. 그 진리를 내가 깨달으면. 그러니까 내 거라는 거예요. 거기에 굳이 아버지라는 단어를 성경이 안 써놓고 그냥 아멘, 으로 끝내버리는 거예요. 이게 진리다. 이렇게. 히브리어를 그냥 음역한 거죠? 아멘! 이게 진리야! 이렇게요.


그러니까 성도의 기도, 그것의 핵심은 올바른 양식, 하늘의 양식, 내일의 양식이에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내일의 양식이라 그랬죠? 그 하늘의 양식. 주기도문의 핵심은 올바른 그 양식이고 그것으로 말미암게 되는 용서인 거예요. 그게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인 거예요. 그것이요. 다른 것은 없어요. 그 올바른 양식은 올바른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올바른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깨달아지면 가장 먼저 내 안에서 나에 대한 용서가 일어나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지, 이걸로 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게 아니었구나, 라고 나에 대한 그 용서가 일어나고 그 용서가 이웃에게로 이렇게 또 흘러가는 거라고 그랬죠? 그 말씀을 올바로 전해주면. 그래서 아멘! 으로 끝나는 그 주기도문에 붙여서 용서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첨언해주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아멘, 하고 끝났는데 다시 또 용서에 대한 부분이 붙어있단 말에요. 본문 14절을 보시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의 과실을 용서하신다, 라는 말씀이 주기도문에 첨언이 돼 있어요. 마치 이렇게, 이렇게 하면 너희에게 이러이러한 보상이 주어질 거야. 인과응보의 이야기인 거 같죠?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그 주기도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실 일에 대한 내용이었지 그 일이 우리에게 간절한 염원이 된다는 이야기지, 우리의 염원이 그걸 이룬다는 이야기 아니었잖아요? 우리에게서 무엇이 나오면 그것이 이루어진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실 일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며 우리의 확인이며 그것을 우리가 염원으로 갖게 된다는 이야기였잖아요? 우리가 힘써 행해야 하는 일에 관한 그런 내용이 아니란 말에요.


근데 그 주기도문에 첨언된 내용이 너희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줄 것이다, 라는 그런 보상의 내용 그런 보응의 내용이면 안 되지 않아요? 여기에서 과실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파라푸토마’ 라는 단어에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죄라는 단어, ‘하마르티아’ 와‘오페일레마’ 우리 두 개 배웠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에서의 그 죄는 오페일레마라고 했어요. 그건 빚이란 의미라 그랬죠? 빚. 하마르티아는요? 과녁을 벗어나다, 라는 말이라 그랬습니다. 근데 거기에 파라푸토마라는 단어가 이제 합세를 하는 거죠. 지금 여기에 나오는 ‘과실’, 이 죄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가 파라푸토마에요.


그 단어는 ‘파라’ 라는 전치사, 옆으로, 이런 전치사와 핖토, 이렇게 떨어지다, 옆으로 떨어지다, 옆으로 넘어지다, 제대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떨어지면 그게 넘어지는 거고 미끄러지는 거거든요.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옆으로 떨어져서 옆으로 미끄러지면 그걸 과실, 죄라 그래요. 그러니까 길에 떨어져야 되지 길 가에 떨어지면 죕니다, 그것이요. 그런 의미에요. 옆으로 떨어짐, 옆으로 넘어짐. 옆으로 미끄러짐. 이런 뜻이에요. 제대로 떨어져야 돼요. 뭐 과녁을 벗어나다, 와 별로 다른 말은 아니에요.


자,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하마르티아 라는 게 올바른 짝이 아님, 올바른 증거를 하지 못함. 죽지 않음. 이런 뜻이거든요.
하마르티아가 죄잖아요? 여러분이 제일 잘 아는 단어죠? 그죠? 이게 이 ‘하’ 라는 부정 접두어와 ‘메로스’, 혹은 ‘하’라는 부정 접두어와 ‘마르투스’, 이거의 조합으로된 단어거든요. 근데 요게 뭐냐면 분깃, 뭐 몫, 이렇게도 하지만 ‘한 부분’ 있죠?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 의 그 단어가 헬라어로 바꾸면 요 ‘메로스’ 에요. 고 부분, 반쪽. 하나인 것의 반쪽. 그래서 이게 없으면 그 어느 쪽이라도 요 한 쪽이 없으면 온전한 것이 될 수 없는 그 부분은 요 메로스라고 그러죠. 근데 그 반쪽이 제대로 된 반쪽이 아닌 것. 그러면 이게 하마르티아, 라고 해서 엉뚱한 남편을 내가 붙들어 하나로 되는 거 있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는데 그걸 율법으로 붙들어서 내 남편으로 세우면 그걸 죄라 그래요.


그리고 이 밑에 거는, ‘마루투스’ 가 뭐냐면은 이게 뭐예요? 증거, 증인, 이런 뜻이죠? 그리고 순교자라는 뜻도 돼요. 순교. 그러니까 증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잘 못 들어서. 못 배워서. 못 깨달아서. 그리고 제대로 된 중인도 못 되고 죽지 않는 그걸 죄라고 그래요. 여러분은 반드시 그 말씀으로 죽어야 되는데 그걸로 죽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펄펄 살아서 뛰는 나를 증명하려고 하면 그걸 죄라고 한다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말씀을 항상 거기에 사용하죠? 그게 말씀으로, 성경으로 죄짓는 거예요.


자, 그렇게 잘못 된 걸 증거하고 잘못 된 남편을 내 남편으로, 로마서에서 이야기하는 율법을 내 남편으로, 죽어야 할 남편을 내 남편으로 그냥 끝까지 붙들어버리면 그걸 죄라고 해요. 그리고 그 말씀으로 죽지 않으면 그걸 죄라 그래요.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거. 그게 율법이죠? 그것이 과녁을 벗어난 거죠. 그렇게 과녁을 잘 못 잡아서 활을 쏘면 당연히 그 활은 올바른 과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떨어지겠죠? 이게 파라푸토마이에요. 다른 곳으로, 옆으로 떨어지다, 즉 제대로 된 과녁이 아닌 옆으로 떨어지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엉뚱한 목적지, 즉 우리 스스로 우리의 빚을 갚겠다고 부산을 떠는 그 오페일레마의 죄를 범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빚이라 그랬죠? 근데 그걸 갖다가 없이하는 거란 말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아, 내가 그 빚 갚는 거 아니구나? 내가 괜히 그걸 빚으로 짊어지고 있었구나? 그걸 없애주는 게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너희가 말씀을 갖고 그 빚을 네 스스로 네 안에서 먼저 없애지 않으면 너는 그 말씀 제대로 못 받은 거야, 라는 게 주기도문의 가운데 핵심, 용서의 내용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하마르티아 말을 잘 못 들어서 잘못 된 남편으로, 반쪽으로 내가 갖고 잘못 된 것을 증거하게 되면, 그게 하마르티아죠? 그렇게 되면 나는 엉뚱한 과녁을 쏘아 파라푸토마 옆으로 떨어지게 되는 거죠? 그 말씀의 목적대로 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떨어지게 되면 그것도 파라푸토마, 그게 범죄가, 과실이 되는 거고. 그렇게 과실이, 내가 그 파라푸토마로 떨어지게 되면 나는 오페일레마, 그 빚을 수고하고 무거운 빚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거예요. 그게 다 죄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파라푸토마, 즉 옆으로 떨어짐이라는 결과가 있으려면 옆으로 던짐이라는 원인이 전제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옆으로 떨어질 거 아니에요? 옆으로 던져야. 그 옆으로 던짐이라는 단어가 던지다가 ‘발로우’ 라는 단어니까. ‘파라볼레’ 비유라는 뜻이에요, 옆으로 던지다, 가. 그러니까 비유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이 말씀을 이렇게 옆으로 던져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비유 같은 거 들으면 우리가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되죠? 네, 그거에요. 옆으로 던져놓은 거예요. 그럼 옆으로 던져놓으면 그걸 올바로 깨달아 내 과녁에 맞추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냥 옆으로 던져진 채로 이해를 하면 그것이 바로 파라푸토마, 죄가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버리면.


주님이 당신의 모든 말씀을 비유, 파라볼레 라고 이야기한 거 아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말씀을 옆으로 던져놓은 거예요. 왜냐면 우리에게 직접 못 주시니까. 그러니까 파라볼레, 옆으로 던져주세요.


마 13: 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로 말씀 하신 마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담고 오신 진리를 비유로만 말씀하셨대요. 그 말은 진리를 옆으로 던져주고 그걸 진리로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하시고 그걸 그냥 비유, 파라볼레, 옆으로 떨어진 거, 옆으로 떨어짐으로만 받아들이면 그를 파라푸토마, 죄인이라 부르시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에요?


마 13: 10-16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잔느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들어서 깨달으라고 준 거예요? 아니면 못 깨달으라고 준 겁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비유로 주셨다고 하면서 이거는 구약 때부터 계속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는 말이잖아요? 너희는 내가 한 이 말을 그대로 믿잖아? 그대로 받아서 그대로 믿으면 그거에 걸려 넘어지는 거야.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걸 그대로 받아서 너희의 수준에서 너희의 실력으로 믿으라고 준 게 아니라 이걸로는 이 진의를 때려 죽여도 못 깨달으니까 내가 어떤 것을 보내어, 어떤 방법을 취하여 너희들에게 이걸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 라는 이야기였단 말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진리를 옆으로 던져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만 그분의 은혜로 진리로 깨닫고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 옆으로 던져 놓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손을 쓰지도 않았는데 보편적 인간 군상들이 성경을, 아 동서고금을 막론한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그러면서 타종교 인들도 이걸 읽고 있네? 도덕과 윤리로. 그럼 뭐예요, 그게요? 옆으로 떨어진 걸 그대로 믿는 거예요. 비유로 읽는 거라니까요. 읽으면서 눈과 귀가 막혔다, 라는 걸 스스로 폭로당하는 거예요. 그건요. 하나님은 그렇게 읽으라고 안 줬단 얘깁니다. 그러니까 다른 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야, 너희들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 왜 그 따위로 사니? 라고 여러 곳에서 많이 우리를 향하여 화살을 쏘죠? 사람들이요. 심지어 요즘은 TV에 웬 스님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말이죠. 그 양반들이 다 멘토래? 그리고 뭐 즉문 즉답인지 뭔지 해갖고 물어보면 또 제자리에서 그냥 바로바로 대답을 해줘요.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근데 그들이 성경을 갖고 우리를 가르치려고 한다니까요. 야,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 니들 왜 그렇게 살아?


이렇게. 그들이 본 그건 비유라니까요. 하나님은 그 내용으로 읽으라고 그거 준 게 아니란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표피 그대로 받아들여서 육신으로 행해버리면 그게 옆으로 미끄러짐인 거예요. 파라푸토마. 근데 마지막 절에 뭐라 그래요? 어떤 이들은 그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들이 있대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들이라는 존재들의 그 보편적 속성이 옆으로 던져진 그것을, 왜냐하면 자기들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 최선의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옆으로 던져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기들 스스로가 옆으로 떨어진다고요. 그러면 멸망이란 말에요. 주님은 그러한 것에서 떠나라! 라고 그러세요. 그 용서하다, 는 단어 ‘아피에미’가 떠나다, 버리다, 용서란 뜻도 있지만 그런 뜻이에요. 거기서 떠나야 그게 용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야 네가 진정 아버지의 용서를 아는 자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그렇게 번역한 거예요. 너희가 그 과실을, 사람의 과실이라 그래요. 보편적 아담들, 호안트로포스 호파라프토마, 보편적 아담들은 반드시 거기에 빠지게 돼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그 과실, 거기에서 떠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가 그 아버지의 용서에서 먼 자다, 이런 뜻이에요. 그걸 내가 주기도문으로 가르쳐준 거야, 라고 반복해서 첨언하는 거예요. 지금요.
그렇게 해서 그 파라볼레를 그냥 그 비유 그대로 받아서 그 내가 그걸 행해버리면 그게 파라푸토마, 옆으로 떨어지는 거고, 그게 죄에요, 과실입니다. 그렇게 옆으로 떨어지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그 말씀을 법으로 여겨 오페일레마, 빚을 평생 짊어지고 낑낑대다가 거기에 깔려죽어요. 그 사람에게 어떻게 용서가 가당하겠느냐?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자 그 과실 그 파라푸토마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깨달아서 그 진의로 내가 가지면 되는 거죠? 그걸 새 마음이라고 그래요.
내가 마음으로 가지면 되는 거예요. 아, 이게 그거구나! 이렇게. 그러면 용서가 된다는 거예요.


성경전체는 바로 그 용서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처음부터 하나님이 등장하고 그게 진리의 원천입니다. 거기에서 이제 증거가 되어질 거 아니에요? 근데 그걸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마.르.티.아에서 시작이 돼야 된다니까요. 내가 증거를 잘못 받아. 그러면 잘못 전해주게 되겠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자, 아담이 처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저거 먹지 말래. 잘못 받아, 하마르티아,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잘못 된 짝으로, 법으로 받아서 다른 이에게 야, 이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 라고 전하면? 그게 하 마르투스, 잘못된 증거죠? 잘못된 증인이죠? 그러면 이게 어떻게 돼요? 잘못 떨어지겠네요? 옆으로. 그럼 파라푸토마가 되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그 파라푸토마의 상태에서 오페일레마, 빚을 그냥 뒤집어 쓰고 죽을 때 까지 가는 거예요. 이 전체가 바로 선. 악. 과 라는 거예요.


선악과 사건을 통하여 고걸 설명해주는 겁니다. 선악과가 율법이라면서요? 그러면 그거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담이 제대로 말을 듣고 그 하마르티아를 해결을 하면 파라푸토마가 해결되겠네요? 그죠? 제대로 듣고 하마르티아가 아니라 참된 그 진리의 마르투스가 되어서 전해주면 파라푸토마가 아니라 길에 떨어질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성경은 처음부터 무슨 이야기냐면 너희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올바로 깨달으면 그 때 죄라는 건 너희와 전혀 무관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거란 말입니다.


자, 그렇게 우리는 그 하마르티아, 잘못된 증거를 해결해서 파라푸토마에서 해방이 되는 거고 오페일레마를 멀리 던져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럼 그걸 용서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옆으로 떨어진 비유로써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바로 선악과가 되는 거고 그 말씀이 진의로 깨달아지면 그게 바로 생명나무 실과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건 그거 먹고 그걸 먹는 게 뭔지를 깨달아 알아서 안 먹는 자가 되라, 라고 준 거잖아요. 근데 ‘먹지 마’를 그냥 파라볼레, 옆으로 떨어진 비유로 받게 되면 어, 나 먹었는데 어떡하지? 여기에 평생 묶여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 말씀으로 오신 예수가 비유만 말씀하신 거예요. 그 예수라는 존재 자체, 그분이 파라볼레로 오신 거라니까요. 그러면 그 파라볼레, 말씀으로 오신 그 예수에 의해 어떤 놈은 걸려 죽겠네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나로 인하여 실족하는 자들이 있어. 근데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그가 복된 자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근데 대부분 실족한다는 거예요. 누구 때문에? 예수 때문에. 마귀 사탄 때문에가 아니라. 자, 그분은 진리로 오셨죠? 생명이에요, 그게. 내가 생명이다, 내가 진리다. 그랬단 말에요. 내가 말씀이다, 그랬단 말에요. 그분은 생명, 진리로 오셨어요. 생명나무 실과로 오신 거란 말에요.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따먹으면 사는 거죠? 그런데 그걸 그냥 법으로 따먹으면? 예수를 그냥 내 밖의 예수로 섬겨버리면? 그게 선악과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하나네? 하나라니까요.
그 예수를 본질로 알아먹지 못하고 그냥 표피로 따먹어버리면 선악과로 먹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즉 말씀에 의해서 내가 죽으면 그것이 생명이 되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신 거예요. 너 이거 먹어. 먹고 무트 타무트, 말씀으로 완성 돼. 죽어! 그랬단 말에요. 먹으면 정년 죽으리라, 이 말이 먹으면 죽여 버릴 거야, 이 말이 아니라 먹고 죽어야 산다, 는 뜻이라니까요. 그래서 거기에 무트라는 단어를 쓴 거예요. 말씀의 완성. 근데 그걸 따 먹고 내가 얼마나 훌륭한 존재인가를. 얼마나 펄펄 살아 숨 쉬는 자인가를 증명하려고 하면 그게 진짜 죽는 거예요.


자, 선악과를 먹고 그 사람, 아담과 하와가 숨은 곳이 어디에요?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들이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리고 숨었어요. 어디로 갔겠어요? 동산 중앙에 나무 하나 있었다면서요? 단수잖아요. 선악과나무 뒤로 숨었다니까요.
모든 인간이 그래요. 내가 선악의 주체가 되면요 하나님은 항상 내 밖의 개체가 돼요. 그리고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대상이 되거든요. 그러면 그분은 어찌 됐든 나보다 힘이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 두려움의 대상이 돼요. 그러면 우리는 항상 어디로 숨느냐면 내가 이렇게 잘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날 벌주겠지? 라고 항상 그 선악 페러다임 뒤로 숨어버린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아담아! 사람아! 니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그러는 거예요. ‘아담아, 네가 어딨느냐?‘ 가 하나님이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라 네가 서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딘지 알라는 거예요. 내가 언제 너보고 선악과 뒤로 숨으라 그랬니? 누가 너보고 벌거벗은 거를 네 스스로 그렇게 선악과로 율법으로 도덕으로 가리라고 그랬어? 내가 언제 그게 부끄러운 거라 그랬어? 그랬으면 옷을 입혀서 만들었겠지. 근데 왜 니들 스스로 선악과 뒤로 숨어서 니들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라고 그래? 그게 진짜 벌거벗은 거라니까.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성도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른 생명의 양식으로, 진리로 먹지 못하면, 율법으로 먹으면, 선악과로 먹어버리면, 생명나무로 못 먹고 선악과로 먹어버리면 용서의 자리에 절대 설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올바른 과녁에 당도하여 하나님과 연합이 되지 못하고 옆으로 떨어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되는 거예요. 이를 간다, 라는 건 양식인 줄 알고 먹었는데 이게 공갈빵이야. 그래갖고 이빨끼리만 부딪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를 가는 거예요. 억울해서 이를 가는 게 아니라. 가짜 양식을 먹는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이 용서의 이야기에 금식의 이야기가 붙어있는 거예요. 주기도문이 성도가 오해하고 있는 그 기도라는 종교행위의 그 재구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이 금식의 이야기도 인간들이 곡해하고 있는 종교행위를 올바른 내용으로 다시 전해주고 있는 거란 말에요. 하나님이 너희들 이걸 올바르게, 이 율법을 올바르게 이렇게 이해를 해서 사랑으로 완성해야 돼. 그래놓고 그럴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뭔지 알아? 구제할 때 이렇게 해. 기도할 때 이렇게 해. 금식할 때 이렇게 해. 이렇게 지금 설명해가고 있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이건 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금식도 같은 이야기일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용도 사용되는 단어들도 거의 비슷해요.


금식이라는 건 밥을 굶는 걸 이야기하죠? 금식. 양식을 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을 굶어서 자기의 정성을 표시하고 자기의 애씀과 노력을 표시하는 데에 그걸 사용하죠? 밥을 굶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이 정성을 이 치성을 기쁘게 보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도대체 그 먹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굶는데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실까? 이 정성을, 정말 정성으로 봐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금식이라는 행위를 종교행위로 사용해버리죠? 오늘 날도 마찬가지에요. 오늘 본문도 얼핏 보면 그러한 종교적 행위로써의 금식을 티내지 말고 해, 라는 권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야, 티내지 말고 해. 뭘 그걸 뭐 나 며칠 굶었어요, 이렇게 나 지금 금식해요, 이렇게 태나게 해? 티내지 말고 해. ‘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근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받아버리면 옆으로 떨어진 걸 받는 거라 그랬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버리면.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해서 너희들은 내일의 양식, 올바른 양식을 구하라, 그랬단 말에요. 근데 바로 밑에다가 굶어라, 그러겠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금식해. 굶어! 그 대신에 티내지 않게 굶어. 그러겠냐고요? 바로 위에서는 그거 구해서 꼭 먹어야 돼. 그런 분이? 생각을 해보시라니까요.
자, 그렇다면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금식은 무엇에 관한 금식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너희는 엉뚱한 율법의 양식을 금하고, 그거 먹지 말고 제대로 된 진리의 양식을 먹어야 된다, 라는 권고인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그래요. 너희들 금식해! 이 말은 올바른 것으로 먹어! 라는 말이었어요. 너희들 희생 제사 드려! 이 말은 너희들은 그 영 단번의 예수로 드려지는 그 희생 제사가 뭔지 알아야 돼. 그러면 이 희생 제사 안 드리게 될 거야, 라고 말씀하신 거란 말이에요. 근데 그걸 파라볼레, 옆으로 떨어진 그대로 받아버리면 파라푸토마, 우리는 그냥 과실에 머물게 되는 거예요. 죄인이 된다니까요.


성경은 성도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될 것을 이렇게 구분해줍니다.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신령한 자들이라는 것은 푸뉴마티코스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가진 자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들과 같이 너희들을 대할 수 없었어. 왜? 너희들은 싸르티코스,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단단한 음식을 못 준대요. 뭘 준대요? 젖을 준다고 그러죠? 그럼 푸뉴마티코스가 안 된 분들, 진리가 그 마음이 되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뭐밖에 없어요? 율법밖에 없어요. 근데 끝까지 그걸 먹으면 안 된단 말에요. 우리도 처음에는 성경을, 아니 지금도 그 성경은, 그 자체는 율법이라니까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도. 그러나 우리는 그걸 단단한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거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도 그냥 그대로 그렇게 그대로 율법으로 행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간디도 그랬고 법정도 그랬고. 그들이 제일 즐겨 읽었던 게 산상수훈 아니었습니까? 근데 그걸 몸으로 행해버렸다니까요. 그러면 그게 뭐예요? 율법이에요. 그들에게 있어서의 그 성경은.
그걸 뭐라 그래요? 젖이라 그래요.


히 5:11-14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그 말을 너희들에게 전해줘야 되는 거야. 내가. 뭐에 대해서? 멜기세덱이 뭔지에 대해서. 근데]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너희는 내가 멜기세댁을 설명해줘도 못 알아들을 거야.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는]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그 초보, 시작이 뭐예요? 율법이란 말에요]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를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없어요? 못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멜기세댁이 뭔지도 모르는 거고 그들은 어린 아이라 칭함을 받는 이들이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선악이 뭔지 그걸 하나로 아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누구는? 장성한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걸 끝까지 둘로 나누어서 자기들이 그 선악의 주체가 되어 그, 이 세상의 그 아담들의 수준, 보편적 아담들의 수준으로 그걸 분별할 거라는 거죠. 그러나 장성한 자들은?그 선악이 뭔지 그들은 하나로 알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젖을 먹고 있는 자들은 말씀을 감당할 수도 없고 듣는 것이 둔하여 그 말씀을 의의 말씀으로 경험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근데 사도가 젖을 금하지 않아요. 심지어 자기도 그 젖을, 말씀을 젖으로 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렇게 주죠. 저도 지금 이 성경을 이 아래의 말로 전한단 말에요. 사실은 이것도 그냥 젖일 뿐이에요. 그걸 들을 귀가 있는 이들이 단단한 음식으로 받아들여 먹는 것일 뿐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그 젖을 떼야 돼요. 말씀을 떼야 된다는 게 아니라 젖의 수준에서 이제 그것의 진의를 단단한 식물, 밥으로 먹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젖을 떼는 거예요.


그럼 젖은 율법이고 단단한 식물은 진리네요? 그죠? 그래서 성경이 밥을 먹지 못하는 자, 젖만 먹는 자는 어린 아이다, 그러는 거예요. 그 단어가 ‘네피오스’ 에요. 그 ’네‘ 라는 부정어 하고 에포라는 단어가 텔리거든요. 말하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이 뭐냐면 ’그 말‘ 을 하지 못하는 자란 뜻이에요. 그 말을 하지 못하는 자. 왜? 그게 뭔지 모르거든요. 젖만 먹어서. 그냥 율법으로만 먹어 율법으로만 말 하는 걸, 그 말을 하지 못하는 자, 라 그래요. 그걸 어린 아이, 라 그래요. 그 말을 하지 못하면. 그건 장성한 자가 아니죠? 장성한 자는 반드시 그걸 진리로, 밥으로 먹고 ’그 말‘을 해야 돼요. 그걸 장선한 자라 그래요.
그걸 그리스도의 영을 자기 안에 가진 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고 하는 거예요.


엡 4: 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아들로, 에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온전한 사람이 된다, 그러죠? 그게 온전한 사람이에요. 아니면? 반쪽이 없는 자. 엉뚱한 반쪽을 갖고 있는 자. 하마르티아, 죄인이란 말에요, 아니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어 비슷하게라도 살아라, 란 말이 아니라 너희들이 믿고 아는 거,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아는 것을 하나로 믿게 되면, 갖게 되면은 그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거고 그건 그리스도의 영, 그걸 마음으로 가졌다는 얘기네요? 그죠? 그러면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죠? 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장성하다는 게 그거였잖아요. 어린 아이의 반대, 그 말을 가졌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란 자가 그자란 말에요. 그것이요. 예수의 흉내를 내어서 뭐 온유와 절제와 사랑과 이런 걸 하면서 사는 게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게 아니라.]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이게 뭐예요? 젖이죠?]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어린 아이 때는? 항상 그 궤술, 그 유혹에 빠져요. 왜? 그게 우리가 하기 쉬운 수준의 것이거든요, 그것이. 모든 보편적 인간들이, 아담들이 가치라고 여기는 거니까. 근데 어린 아이가 아니고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된다고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성도는 율법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그 말씀, 그 젖을 진리의 밥으로 먹고 어린 아이, 네피오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그것을 전하는 자의 자리로 옮겨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그걸 전하는 자가 되면, 그.리.스.도.인. 이 되면 그걸 ‘멜키싸데크’, 멜기세덱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건 고유명사가 아니에요. 일반명사란 말입니다.


자, 그 멜기세덱이 뭐냐면요 창세기부터 나오잖아요? 그건. 근데 어떤 주석서에도 그걸 설명해놓은 데가 없어요. 그냥 두루뭉술하게 읽어도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게.
이게 말라크라는 단어와 짜다크라는 단어의 조합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에다가 하나만 더 넣으면 말라키, 말라기 있죠? 성경? 그 말라기에요, 이게. 이 말라크가 뭐냐며는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죠? 대언자, 말라크. 짜다크는 여러분이 잘 알잖아요? 의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 전해주는 이가 되면 멜기세덱, 말라키 짜다크가 되네요? 그런데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자는 절대 이게 뭔지 모르겠죠? 전할수 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 창세기에 나타난 멜기세덱은 뭐예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조상인데 그가 의가 뭔지 몰랐어요. 그리고 씨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분은 하나님이었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삼백 열여덟 명인가, 하여튼 데리고 4개국 연합국을 쫓아가서 이기고 옵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아니, 집에서 키우는 그 가솔들, 종들, 호미 뭐 지팡이 이런 거 들고 가서 전차를 갖고 있는 아수르를 비롯한 그 어마어마한 그 사개 국 연합군을 물리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죠? 기드온의 삼백 용사, 똑같은 거예요. 십팔만 오천 앞에 삼백명이 어떻게 말이 되냐고요? 그게? 발로 꾹 밟아도 그냥 다 죽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전쟁은 너희들의 능력과 너희들의 힘, 너희들의 지혜를 사용하여 하는 게 아니다, 라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하나님이 다 잘라버리고 삼백 명만 남긴 거예요. 그리고는 아브라함에게 삼백열 여덟 명 데리고 쫓아가라고 한 겁니다. 이겼어요. 전리품을 갖고 왔어요. 근데 멜기세덱이 나타나더니 포도주와 떡을 들고 나타납니다. 뭡니까?


예수의 살과 피, 진리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니가 승리를 한 유일한 근거는 바로 그 진리의 말씀에 의한 것이라는 거예요. 니가 뭘 갖고 가서 싸웠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그 말을 알아듣는 믿음의 조상의 모형으로 거기서 행동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십을 하나로 드리죠? 그걸 성경이 뭐라고 쓰느냐 하면 ‘마 아쉐르’ 라고 쓰는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쉐르가 십[10]입니다. 그리고 이거는 진리의 말씀이죠? 자, 이 십[10], 열이라는 그 계명이잖아요, 이거는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7이라는 안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십을 주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십계명을 주신단 말에요. 안식이 뭔지를 설명하기 위해. 율법을 젖을 먼저 주신다니까요.


근데 이 십, 이걸 진리로 완성을 해버리면 그걸 뭐라 그래요? 마 쉐르, 십일조라 그래, 나는 한국말 십일조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이렇게 십분의 일을 내는 거, 이런 뜻으로 쓴 거 같은데 십일조가 그런 말이에요? 진짜로요? 근데 원어의 뜻은 뭐냐면
십을 [10] 그가 진리로, 하나로 [1] 알았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걸 받으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뭐냐면 그 진리를 율법 안에 담아 있는 그 진리를 깨달아 그걸 전달해주어 그 십이라는 율법을 하나로 그가 깨닫게 만들어 그를 하나님 것으로 취하는 자들을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젖만 먹는, 율법만 아는 그들에게 어떻게 이 멜기세덱을 설명하느냐는 거예요.
그게 히브리서 5장의 이야기라니까요.


그러면 그 십일조라는 걸 아,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리고 또 야곱이 십일조 했죠? 그렇게 한 거처럼 우리도 우리의 소유의, 소득의 십분의 일만 드리면 되는 거구나! 하고 그거만 열심히 드리면 그게 뭐에요? 그걸 파라볼레라고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한국 교회에서 이 부분을 건드리면 금방 파르르 떨고 여기저기서 난리가 나요. 전 세계에서 십일조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커진 거예요, 한국교회가. 그 돈으로. 성경은요, 너희들 그런 식으로 십일조를 하면 내가 너희에게 화낼 거야,라고 이야기한다니까요. 오히려.


그 마 쉐르라는 건 그 십을 진리로 깨달아 알아 넨가 십일조, 하나님이 받는 바로 마 쉐르가 되는 거지 그냥 그거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냥 니들이 갖고 있는 것의 십분의 일을 나한테 계속 드려버리면 너희들이 그 희생 제사 드려, 라는 말을 듣고 그냥 Every day 희생 제사만 드리는 그거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단 얘기에요. 근데 그 제사는 지금 하나도 안 하면서 마 쉐르는 계속 해. 왜? 여기서 그렇게 계속 가르치고 있거든요. 그게 없으면 교회는 운영이 안 돼.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거 보다 좀 더 하세요, 우리는요. 내가 요렇게 까지만 얘기했더니 헌금이 반으로 뚝 떨어졌어.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을, 이에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도적질, 하나님을 도적질 하는 게 뭔지 한 번 보세요.]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나를, 나의 것이 아니에요, 나를]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주를]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나 [근데, 내가 말해줄게, 너희가 나를 도적질 한 게 뭐냐면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헌물이라는 건 제사 때 드리는 제물이란 뜻이에요, 이게요. 하나님이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해요. 말라키, 그 ‘의를 전하는’, 그 ‘사자’의 말을 빌어 하나님이 말을 하신다니까요. 구약의 마지막에. 화났다, 나. 너희가 어떻게 나를 도적질 하니? 우리 산상수훈에서도 도적질 하지 말라! 있었잖아요. 십계명에도 도적질 하지 말라, 있고. 그 도적질을 뭐라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이, 너희가, 우리가 언제 주를 도적질 했습니까? 라고 이야기할 텐데 내가 가르쳐줄게.
도적질, 너희가 나를 도적질 했다는 게 뭐냐면 마쉐르 하고 헌물이야. 십일조라는 것과 헌물이 너희가 행하는 그것이 지금 나를 도적질 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하세요.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를]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나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참 된, 진짜 십일조를] 창고에 들어 [그 십일조가 뭔지를 올바로 깨달아서 그걸로] 나의 집에 [집을 채워봐, 그러면 나의 집이 진짜 양식으로 가득 찰 거야. 이런 말이에요. 나의 집에, 그거 성전이죠?]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 십의 일의 소득을 드리면 내가 너희에게 몇 배나 챙겨서 복으로 줄 거야, 이 말이 아니라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가 뭔지를 알아 마쉐르가 되어 그것으로 내 성전, 내 집을 채워버리면, 지금은 엉뚱한 십일조로 내 집을 채운다는 거죠? 근데 거기엔 양식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지금요. 그건 내가 너희에게 먹여주려고 하는 그 양식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율법을 지킴은. 니들이 진짜 내 집을 양식으로 채우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뭐가 양식인 줄 알아? 그 십일조, 마쉐르가 갖고 있는 그 진의를 너희가 알고 그게 너희가 그것이 되어서 나에게 오면 그것이 바로 양식으로 내 집이 가득 차는 거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바로 복이다! 라는 뜻이에요. 아니, 복음 그거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왜 황충을 내리겠느냐? 황충? 메뚜기죠? 메뚜기는 곡식을 전부 먹어서 기근을 오게 하는 곤충이란 말에요. 그렇게 되면 너희들에게 왜 메뚜기가 내려가서 너희의 양식을 먹어치우겠냐는 거예요. 너희의 양식은 풍성해질 거라는 것입니다. 그게 너희의 양식이니까.]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포도나무는 뭐예요? 여러 개가 하나가 된 게 포도잖아요? 포도는 한 송이, 하난데 그 안에 여러 개를 갖고 있죠? 율법을, 여러 개의 율법을 하나로 가지면 포도나무 과실이에요, 그것이요.]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 이니라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이게 뭐예요? 도적질이란 말이에요, 완악한 말, 율법이에요. 잘못된 말. 다이모니온, 너희가 나의 말을 완악한 말로 받아서 그렇게 엉뚱한 것만 그렇게 행하는 게 나를 대적하는 거라는 거예요. 그렇게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라고 한다는 거예요.]


이게 율법의 결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키를 마지막으로 구약이 닫히는 거예요. 그래놓고 그 어둠이 이제 빛으로 드러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일을 하시는 거예요. 진리이신 그 분이 오셔서. 그게 십일조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뭐 십일조 못했다고 너무 부담 갖고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그 십의 하나가 되어서 내게 오면 난 그걸로 족해.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의 금식이라는 건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먹는 그 보편적 아담들의 그 영민한 의지와 노력을 중단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먹으라, 라는 그런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의 그 젖을 뗀 자들, 그들의 상태를 ‘다맘’ 고요하다, 그치다, 멈추다 이렇게 쓰셔요. 보세요.


시 131: 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젖을 떼면 애들이 평온해요? 젖 떼면 애들이 불안해가지고요 어쩔 줄 몰라 하죠? 그래서 엄마들이 애들 젖 뗄 때 젖에다가 쓴 거를 발라놓죠? 떼려고요. 안 떨어지려고 한다니까요. 근데 젖 뗀 자의 평온이 뭐에요? 젖을 뗀 자들은 그 때에서야 자기들이 열심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행하던 것을 ‘다맘’, 그친다는 거예요. 그걸 평온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삭이 젖 뗄 때 잔치를 벌인 거예요.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손이 젖을 떼면 잔치인 거예요, 그것이. 젖을 뗀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잔치를 벌였겠어요? 그 말을 써놨겠어요? 거기에다가?


자, 그걸 그치게 된 자들. 그 율법의 행위를 그치게 된 자들을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자, 신령한 자, 푸뉴마티코스 등으로 호칭하는 겁니다. 그들이 그 율법의 젖을 더 이상 안 먹는 금식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이, 16절이 금식 할 때 슬픈 기색을 띠지 말라, 라고 한 거예요. 금식하면서 아, 괴로워~ 이런 표정 짓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 슬픈 기색이라고 번역 된 단어가 ‘피드로포스’란 단어인데요, 그 스퀴드로스라는 헬라어와 옾타노마이라는 단어의 조합이에요. 그런데 스퀴드로스가 무슨 말이냐면 어두움, 그림자, 덮여진 이런 뜻이에요. 그 단어가 쓰인 곳을 한 군데 보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텐데.


눅 24:15-17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며 서더라


요게 똑같은 단어에요. 근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났더니 못 알아봤어요. 그러면 부활하기 전의 예수는 알아봤을까요? 못 알아봤을까요? 당연히 알아보죠. 이들은 지금 눈이 어두워서 육으로 죽고 진리로 산 그 분을 못 알아보는 자로 나타나는 거예요. 지금 이들이요. 이들이 삼년 반 동안 같이 다녔던 그 예수를 왜 못 알아봐요? 지금 예수님이 여기에 뭐 깨끗이 장동건처럼 변해갖고 나타나서 못 알아본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면 그동안 못 씻고 다니다가 깨끗이 씻고 와가지고 못 알아본 게 아니라.


육으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아나신 다른 존재. 그렇게 부활하셨기에 육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그 진리를 못 알아본단 뜻이에요. 이게. 그래서 그들이 상태가 뭐라 그래요? 저희가 눈이 어두워서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많은 제자 중에 정말 지독한 근시 두 명이 여기에 나타난 게 아니라 볼 눈이 없어서 그 예수를, 이제 진리로 살아나신 예수를 알아볼 수 없는 그들, 그들에게 예수님이 당신이 하신 말씀을 플어 줬다, 그러잖아요. 그랬더니 마음이 뜨거워져 그들이 비로소 알아봤다, 그런다니까요. 근데 그걸 알아보기 전에 그 어두운 상태의 그들을 스퀴드로스라고 그래요. 어두운 자들, 슬픈 기색.
그러면 너희들 금식 할 때 그 금식이라는 걸 스퀴드로포스로 보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진리로 보지 못하고 너희들 그걸 표피적으로 껍데기로 보지 마, 이런 말이에요. 슬픈 기색을 띠지 마, 이게 아니라 너희들, 금식이라는 걸 스퀴드로포스 적인 것으로 보면 안 돼!이런 말이에요. 근데 그걸 스퀴드로포스 적으로 보면 엄한 밥만 굶는 거예요. 외식하는 자들은 그 금식이라는 걸, 외식하는 자들은 앞에 구제에서도 나오고 기도에서도 나온 거예요. 그들은 금식이라는 걸 스퀴드로포스 적, 어둡게, 그리고 표피적으로만 본다는 거죠. 너희들은 그렇게 그걸 보면 안 된다, 이런 말인 거예요. 다시 본문 16절 보세요.


마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슬픈 기색, 스퀴드로포스 적인 것으로 보지 말아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건 사람에게 자랑하려고, 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편적 아담들이 그냥 인식하는, 나타난 것으로, 이런 말이에요. 나타난 것으로]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얼굴, 프로소폰은 파님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역본이라 그랬죠? 그죠? 그러니까 파님은 뭐죠? 하나님의 그 보이지 않는 진리를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나타내 준 것을 파님이라 그래요. 그래서 그걸 얼굴이라고 그러잖아요. 얼굴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꼴이라는 단어죠? 얼, 영의 꼴, 모양. 그걸 얼굴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파님이라는 건, 영이라는 것을 어떤 모양으로 나타내주면 파님이라 그래요. 그걸 헬라어로 바꾸면 프로소폰인데 요걸 얼굴이라고 번역했단 말에요. 그 얼굴을 여기서 흉하게 하다, 파니조, 이게 알아보지 못하게 하다, 라는 뜻이에요. 사전 있는 사람 클릭해보세요. 알아보지 못하게 하다, 가치 없게 만들다 이런 말이에요. 흉하게 하다, 라는 게 아니라. 그러면 너희는 그 말씀을, 그 금식이라는 걸 표피적으로만 보아 그걸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진짜 그 가치를 없게 만들어버리는 거야. 이런 말이에요. 금식할 때 얼굴울 흉하게 하지 마, 이런 말이 아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들은 이 역사 속에서는 좋은 것, 자기들이 원하는 걸 상으로 받지만 그게 자기만족이고 자기 자랑이고 뭐 그런 것들이에요. 자기 성취감. 상으로 받지만 그 나사로의 대척점에 있던 부자가 너는 살았을 때 역사 속에서 좋은 거 받았잖아. 그게 상이에요. 인간들이 추구하는 상. 그러나 하늘의 상과는 아페코, 아주 무관한 멀리 떨어진 자가 되는 거야, 이런 말이에요. 상을 미리 받았다, 이 말은. 니들이 원하는 상으로 받을 거야. 그러나 하늘의 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가 되는 거야, 이런 말. 하늘의 상은 생명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올바른 금식을 할 수 있는가? 17절이 그 얘기에요.


마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기름 없는 사람은 어떡해? 얼굴을 씻어도 그냥 그 모양인 사람도 있잖아요? 조금도 깨끗해 보여지지 않는 그런 분들. 자 얼굴, 역시 프로소폰이에요. 그 얼굴. 말씀의 표피적인 부분. 그걸 어두운 상태로 보지 말고 깨끗이 씻어 봐. 이런 말이에요. 깨끗이 씻어 봐.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머리에 기름을 바를 수 있대요. 그걸 금식이라 그래요. 그럼 그 머리는 뭐예요? 머리카락이라고 안 그랬습니다. ‘머리’ 라 그랬어요. 아니, 머리카락은 머리털이라고 쓴다니까요. 성경에서도. 너희들의 머리털을 세신바, 이렇게 얘기하죠? 여기에선 머리에요, 그냥 머리. ‘팔레’. 그럼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건 뭐에요?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진리에요]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 아시죠? 그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란다, 라는 건 네피오스의 그 자리에서, 말을 못하는 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 그리스도의 말을 하는 자가 되는 거니까.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머리는 누구?] 곧 그리스도라
눅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그러면 그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게 뭐예요?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에요. 분명히, 이제.


막 14:3, 8-9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기름입니다]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함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케팔레, 똑같은 단어에요]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 [그럼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는 건 그 예수를 장사지낸다는 얘기네요? 빨리 죽으세요, 이렇게. 당신이 죽어야 일곱 귀신, 그 일곱, 완전한 그 악인 나! 죄인 중의 괴수, 당신이 죽어야 내가 살아요,이런 말이에요, 이거는 요.]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기억하리라]


이 여자가 행한 일이 복음이기 때문에 그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이 여자가 기억되리라, 이런 말이죠? 그러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게 뭐죠? 성도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구원한 나의 예수 그게 내 머리로 붙어있으면 안 돼요. 잘 이해하셔야 돼요. 그 예수가, 기름이 뭐에요? 진리죠? 항상 기름으로 덧입혀진 분으로 나에게 붙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걸 뭐라 그래요? 그리스도라 그러잖아요. 여기서. 그 머리가 그리스도라니까요. 그러면 내게 붙어있는 그 육적인 예수가 장사지내지고, 죽고 기름,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기름부음 받은 자니까. 그죠? 기름 발리다, 이런 뜻이란 말에요. 그게 그리스도로 나에게 붙어버리면 나의 육도 그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는 거네요?


그러면 금식이라는 게 뭐예요? 그 율법, 선악과 페러다임 아래에서의 노예 생활하던 내가 그 예수와 함께 죽고 그 진리가 나의 머리가 되어, 기름 발린 그 예수가 나의 머리가 되어, 나의 메시아, 나의 그리스도가 되어 내 삶에 주관자가 되면 그걸 금식이라 그래요. 그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 진리가 들어온 거라 메요? 네? 그러면 그게 올바른 음식으로 먹는 거고 율법으로 안 먹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금식이라 그래요. 주님이 그래서 금식은 머리에 기름 바르는 거고 그 프로소폰을 깨끗이 씻는 거야. 그 어두운 그것으로 그냥 보는 거 아니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엉뚱하게 밥 굶고 그런 거 하지 말아요. 그냥 다이어트 한다, 그래요. 솔직하게. 꼭 여자들 보면 저녁 금식한대. 다이어트 하려고 안 먹는 거지 그게 뭐가 금식이에요?


렘 14:10-14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걸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번제와 소제가 금식이에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이 칼이라는 ‘헤레브’ 라는 단어 자체가 물이 없어 양식을 생산 할 수 없는 상태, 기근이란 뜻이에요. 이것이요 가뭄, 가뭄이란 뜻이에요 그리고 기근은 말 그대로 그냥 물이 없어 양식을 내지 못하는 거 염병은? ‘데베르’ 라는 뜻인데요 그게 다바르 있죠? 아마르가 진리, 레오 레마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다바르는 표피적으로 하나님이 말로 주는 것들 있죠? 그걸 다바르라고 그래요. 그 내용이 아닌 표피적인 것으로 말해지는 것, 이라고 써놓고 그걸 염병이라고 읽는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진리를 내용으로 알지 못하면 그게 너희를 죽이게 되는 건데 그게 바로 칼, 헤레브, 가뭄이고 기근이고 그게 껍데기, 데베르, 염병이야.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뭐라 그런다고 해요? 아니야, 그 칼이 너희 안 죽여, 걱정하지 마. 그 기근이 너희 안 죽여 걱정하지 마. 그런다는 거예요.]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하나님이 안 보낸 자들이 이 땅에 와서 내가 선지자고 내가 하나님이 보낸 자다, 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이 그래요. 나는 그들 안 보냈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에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자기 마음은 두 마음이죠. 뭐. 선악의 마음. 에피뚜미아. 그거에 속으면 너희들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망한다는 거예요. 데베르에 망한다.


슥 7:5-6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진짜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6절.


6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그들이 금식했는데 하나님은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마셨다, 그래요]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너희가 오월과 칠월에 금식했다. 나를 위하여 금식한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 나를 위하여 한 거야? 아냐, 너희들 위하여 한 거야. 그래놓고 그걸 먹고 마셨다, 그래요.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마셨다.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니들의 금식은? 엉뚱한 걸로 먹는 거죠, 그죠? 그러니까 밥 굶어 배터지게 먹는 거예요.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그래서 주님이 광야 사십일 간 금식을 하셨던 거예요. 이 역사 속에서는 아들이, 하늘의 아들이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라는 걸 모형으로 보여주신 거예요.
그리고는 당신의 양식을 너희는 알지 못하는 양식이라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내게는 그거 있어. 그렇게. 난 그거 전해주러 왔어. 너희에게 그걸로 먹이고 마시우게 하려고 왔어.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예요. 그래서 내가 떡이다, 내가 물이다, 그런 거예요. 내겐 그 양식이 있어.


주님께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뭐라 그러죠?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는 신부들이 금식하면 안 되지. 그 신랑이 주는 걸 먹어야지. 내가 신랑으로 왔거든. 근데 신랑을 뺏길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이 땅엔 더 이상 그걸 줄 존재가 없어. 그러면 그 때는 금식하게 될 거야. 세상은 율법만 붙들 거거든. 그 때 그들은 금식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이 세상이 모르는 음식으로 소통하게 될 거야.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먹고 마시는 거 그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반복하여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오죽하면 별명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 주님이 뭘 그렇게 대단히 먹었겠어요? 포도주를 마셨으면 얼마나 먹었겠냐고요? 나 같은 사람은 진짜 예전에 저 잠실 수영장만큼 먹었을 거 같은데. ㅎㅎ. 아니, 예수님이 뭘 그렇게 먹었겠냐고요? 근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느냐 하면 예수님은 먹이고 마시우게 하려고 오셨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저 놈은 입만 열면 먹고 마시라는 얘기만 하네? 사람들이 이야기한 거예요.
그거 안 먹으면 죽거든요. 아무도 안 받아먹었어요. 하나님은 이사야를 시켜서 진짜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사 58:1-1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 [하는 것 같지? 이런 말이에요] 하며
[날마다 나를 찾아오고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는 것 같지? 그렇게 보이잖아? 그리고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는 것 같지? 이런 말이에요. 그렇게 했다, 가 아니라.]
3 이르기를 [내가 얘기할게]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너희는 금식을 한다고 하면서 그걸 즐긴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금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거죠?]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어떻게 풀어줘요? 진리의 말씀으로, 그러면 젖을 끊고 진리를 먹어야 되는 거네요? 그게 진짜 금식인 거네요?]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그 멍에, 율법의 멍에를 끌러주려면 역시 젖을 금식하고 진리로 먹어야 되는 거네요?]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마찬가지죠?]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아까 말라기에서 진짜 식물이 뭐라 그랬어요? 진짜 양식. 진리의 말이지. 너희들의 완악한 말, 그거 아니고.]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뭘로? 진리의 옷으로, 겉옷으로]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골육을 피하여 숨으면 그들이 죽는데 왜 숨어요? 그죠? 그러나 율법을 갖고 있으면 그들을 피하여 숨는 것이 된다는 거예요.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당연하죠. 밤이 그들에 의해 아침으로 빛이 되는 거예요.]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그게 치료하는 거죠?]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보세요, 여기도 말의 이야기에요. 비 진리의 그 말을 제해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진짜 양식으로 주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빛이 뭐예요? 오르라는 단어 자체가? 어둠이 뭔지를 나타내면 그걸 빛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주일 날 말씀 드렸잖아요? 어두움의 빛. 빛이라는 것을 내용으로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어두움이 낮이 된다는 거예요.]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대어진 동산이 어디에요? 하늘의 물, 그 물 그 진리가 대어진 동산, 흙, 우리 이야기하는 거예요.]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은 것이라


우리의 배 안에서 생수가 끊이지 않고 흘러난다, 그러죠? 그리고 하나님이 그걸 뭐라 그래요? 진리야, 성령을 내가 이야기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어렵지 않죠? 그죠? 그러니까 이 금식의 이야기를 아, 금식 할 때에 얼굴 흉하게 하지 마. 머리에 기름 발라. 그리고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해. 그러면은 상 줄게. 이런 말로 보면 안 되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는, 그죠?


진짜 금식은 진리의 물을 흘려주고 식물을 나누어 주며 벗은 자를 진리의 옷으로 입혀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를 꺾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놓아주는 거래요. 그게 젖에서 해방된 하늘의 아들들의 모습인 거예요. 은혜의 지평 안에서 그, 내 육신을 포함한 물리적 시공을 그 앞에 헌납하는 거예요. 함몰시켜서. 그래서 여기와 무관한 자로 사는 겁니다. 그걸 진짜 금식이라 그래요.
그래서 본문 17절에 뭐라 그러느냐 하면 그게 사람에게 보이는 금식이 아니고 은밀한 곳에서 보시는 아버지가 보는 금식이라 그래요. 그러면, 뭐라 그러느냐 하면 고 뒤에서 아버지가 너에게 은밀한 곳으로 디도미, 넘겨줄 거야. 그래요. 진리로 넘겨줄 거라는 거예요. 그 금식의 진의 그 내용을. 그렇게 금식 해!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양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카라’ 라는 단언데요 요거 하나만 하고 마칠게요. 이 아카라라는 단어가 뭐냐면, 요게 콜이죠? 여러분이 잘 아는 단어 그죠? 헬라어로 바꾸면 ‘파스’, ‘모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할 때 그 모든 것. 콜, 그죠? 근데 이 모든 것이 뭐냐면 우리의 것으로 전환하여 가르치기 위해 준 것들을 다 아래의 것으로 하나님이 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주신 것을 전부 콜, 파스, 모든 것 그래요. 근데 앞에 알레프, 하나님이 붙었네요. 하나님이 그 아래의 것으로 그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준 그 모든 것.그걸 소리로 주면 그것이 바로 양식이라는 거예요. 근데 어떤 이들은 이걸 율법의 양식으로 먹고 어떤 이들은 이걸 진리의 양식으로 먹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걸 이 아래에서 진리의 양식으로 여러분이 먹으면 여러분은 이 호코스모스, 율법의 세상에서 금식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다음 주에 조금 제가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는 금식을 하는 분입니까? 아니면 슬픈 기색을 띠며 얼굴을 흉하게 하고 가짜 금식을 하는 분입니까? 전자죠? 예, 그 금식 하세요. 밥 굶지 말고. 가면서 맛있는 저녁을 드시고 가십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린 이렇게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먹을 것이 있는데
정작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배터지게 먹으며 먹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슬픈 기색으로 금식하지 말게 하시고
그 머리, 그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 얼굴을 깨끗이 씻어 버리는 그 참된 금식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