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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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아르케(태초)

Hebrew 2022. 11. 7. 20:51

오늘 1절에 태초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르케’ 이고 ‘말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로고스’에요.

헬라철학에서 그 철학의 시작이 이 두가지 단어에서 시작되요.

아르케, 로고스가 헬라철학, 즉 그리스철학의 시작이였어요. 그래서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이 아르케, 로고스는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습니다.

먼저 태초라고 번역된 ‘아르케’는 헬라철학에서 원인, 근거, 근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물론 ‘시작’이라는 뜻도 있는데 원인, 근거, 근원이 있어야 ‘시작’이라는게 발생된다는 거죠. 여러분들은 살면서 한번 즘 이런 질문 던져보시잖아요?

“이 세상, 이 세계의 근원, 시작이 대체 모야? 만물의 근원이 모야? ” 이렇게.

이 질문에서 시작된게 철학이거든요. ‘난 누구야? 난 어디서 시작됐어?’ 한번은 해보거든요. 인생에서.

그게 아르케에요.

그렇게 그게 철학의 시작이였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가 헬라철학에서‘아르케’였어요.

모든 것의 시작이며 원인이고 근원이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이 태초라는건 시간의 시작이 아니라 '존재의 시작'을 말하는 거에요. 존재라는 것의 출발점. 원인.

창세기 1장 1절이 모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죠? 그런데 성경에 창조라는 단어는 총 3개로 구별되서 등장을 해요.

그게 바라, 아싸, 야차르에요.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에‘창조하시느니라’가 '바라'에요.

이 '바라'라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안에서 완료된 것들, 즉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계획, 의지, 뜻이 정해진 걸 완료라고 해요. 왜 준비완료 이러잖아요. 그 완료에요.

눈에 보이도록, 현상으로 시작,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눈에 보이는 것, 현상으로 시작하기 위해 준비되어있는 그 상태. 그건 이미 마음속에 난 이렇게 하겠어. 라는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는거잖아요. 단지 보이는 현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완료되어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게. 

그런데 그걸 인간의 완료성하고 비교하시면 안되요. 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기 때문이에요. 불완전한 존재가 낼 수 있는 건 불완전밖에 없어요.

인간은 상황이 바뀌거나 환경, 여건, 조건이 바뀌면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잖아요.

하나님은 완전 그 자체세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는거, 그 분의 마음과 뜻과 의지라는 건 인간처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하다가 계획을 변경하고 말 바꾸고 모 그런게 아니란 말이죠.

그 분이 마음과 뜻과 의지를 담았다는 건 반드시 실행되고 변개치 않으며 이미 완료되어있다. 라는 말이에요. 그건 반드시 나타나고 드러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 라고 하는거에요. 시작과 동시에 결론이 나 있는 것이에요. 그걸 바라, 창조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는 모냐하면 무엇인가 나타난 걸 창조라고들 생각을 하는거에요. 그걸 히브리어로는 ‘아싸’라고 하는 다른 단어로 창세기에 쓰여요.

창세기 2장 4절 다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바라) 때에 천지의 창조된(아싸) 대략이 이러하니라'

앞에 창조가 바라고 뒤에 창조가 아싸에요. 앞에 창조,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의지, 뜻을 말하는 것이고 뒤에 창조는 그게 나타난거에요.

그러니깐 태초라는 건 시간의 시작이 아니라 존재의 시작인거에요. ‘난 누가 만들었어? 난 대체 왜 여기태어난거야? 난 어디로 가는거야?’ 이건 시간하고는 상관없잖아요. 그런거에요. 존재의 문제. 그걸 헬라어로 아르케 라고 하는 것이고

그게 요한복음의 1장 1절의 시작인거에요.(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