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복음 나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민 14:8)

Hebrew 2024. 6. 27. 20:03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8) 

 

한국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출생의 비밀이다.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서 처지와 상황이 역전되는 이야기는 분명 진부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재다. 

 

그런데 모든 인간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다. 이것을 예수님이 폭로하시는데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라는 말씀이 그것이다(요 8:44). 그리고 ‘피는 속이지 못하고 씨도둑은 못한다’라는 말처럼 마귀 자식이라는 증거를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는 것으로 말씀한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욕심대로 행한다는 점에서 유대인과 한통속이며 마귀의 자식으로 출생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이처럼 마귀 자식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인간이 과연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을 마귀 자식인 인간이 아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믿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좀 더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거짓이다. 

 

마귀 자식인 인간에게서는 믿음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믿음의 성공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사람은 비관적인 메뚜기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성령은 긍정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긍정의 신앙에 승리를 선물로 주십니다’라는 말도 거짓말이다. 

 

마귀 자식인 인간을 저주의 존재로 보지 않은 믿음은 거짓말이며 사랑도 거짓말, 복도 거짓말, 다 거짓말이다. 약속의 땅을 정탐한 열두 명 가운데 열 명은 그 땅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강하여 능히 이길 수 없다고 악평한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 땅을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다가온다. 이것을 교회가 긍정적 사고의 믿음으로 가르친다.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한 것에 시선을 둔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적 사고와 긍정적 사고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인다. 이 모든 것이 아비가 마귀라는 인간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오해다.

 

약속의 땅을 악평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보고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다. 수십 년의 광야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이 신장이 장대한 가나안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하나님이 도우시고 되게 하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자기 생각을 고치는 것이 소위 긍정의 믿음이고 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인가? 

 

이것은 심리학에서 나오는 ‘마인드 컨트롤’일 뿐이다. 운동 경기나 경연에 참가하는 사람이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나는 할 수 있다’라며 자기 마음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현대 교회가 이러한 심리학과 믿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한다는 것이다. 

 

설교 듣고 은혜받았다는 것이나 말씀으로 위로받고 평안을 얻고 힘이 된다는 모든 것에 심리적 요소가 깊이 박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현대 교회는 철저하게 심리학에 장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긍정적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자신을 믿고 숭배하게 하는 마귀의 술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은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짚어야 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 죽고 사는 비밀이 담겨 있다.

 

만약 여호수아와 갈렙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니’라고 말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악평한 자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자로 단정 짓고 받을 혜택을 생각하는 불신앙이다. 

 

그런 점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에 관한 판단과 일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된다. 자신들에게 약속의 땅의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고 광야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니’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할 자격이 있는 자로 자기의 미래와 운명을 자신이 정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된다. 긍정적 신앙이 이러하다는 점에서 마귀의 사고방식이고 약속의 땅에 대한 악평은 이러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기에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재앙으로 죽여서 나타내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도 그 땅의 실제 상황과 모습에서 벗어나 이해해야 한다. 물론 정탐꾼이 그 땅의 과일을 보이며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한 것을 보면 곡식이 풍부한 땅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이 과연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기뻐하셨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기뻐하신 근거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에 있다. 어린양의 피로 인해 장자 재앙에서 살아난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까지 어린양의 피의 효력이 그들에게 함께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를 기뻐하신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서 얻는 모든 것은 어린양의 피를 근거로 한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이라는 점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를 생명의 근거로 하는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기에 예수 안이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한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피의 효력에 의한 은총이다. 

 

이 은총에 감사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백성이며 이 믿음에 있다면 그 믿음 또한 성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피를 근거로 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뿐이다.

 

-신윤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