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이장우 목사(늘푸른 교회)/언약을 따라서

32강. 십자가(5)

Hebrew 2022. 11. 11. 14:25

32강. 십자가(5)

 

골로새서 1:20절입니다.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1:21절)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잠언 4:23절에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말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런 상태를 흑암의 권세에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원수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십자가의 피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1:22-23절입니다.)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런 것은 이미 기초라서 다 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복음의 내용이 기초만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이며 결론입니다.

이것을 놓쳐 버리면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의 일과 건물들과 역사는 남을지 모르지만

복음의 소망에서는 멀어지게 됩니다.

 

 

왜 그러한지 (골로새서 2:6-8절)을 봅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고 그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이기에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2:12-13절입니다.)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세례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묶이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함께 죽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은 우리를 어떻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함께 살리신 것입니까?

 

 

(골로새서 2:14-15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역시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율법입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인간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법조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복음을 자꾸 기초로 말하면서 빨리 졸업하게 만들고

사역자로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나타납니다.

대한민국의 빨리 빨리 문화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는 교회마저 세속화 되어버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교회들이 몇 년 만에 수 백 명에서 수 천 명으로 부흥하였다는 성공스토리들이 인기가 있고 그런 강의들에 사람들이 달려갑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3년의 과정만 마치면

주의 군사로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 중심으로 가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를 붙들기 보다는 자신들의 행위를 붙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골로새서 2:16-18절 입니다.) '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이미 새 언약이 완성이 된 신약시대에 아직도 그림자를 붙들게 하고

세상의 철학을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케팅 원리로, 때로는 심리학으로, 때로는 경영의 원리들이 도입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꾸며낸 겸손,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머리를 붙들지 않게 합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하는 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스스로의 자구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 책망을 오늘 이 시대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전문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또 취미이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지금까지 계속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기초이며 중심이며 결론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처음에만 십자가를 언급하고 나중에 십자가가 빠져버린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말씀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대로 나아가라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완전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빛을 받고 은사와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함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엄청난 은사와 능력을 행하였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전함을 믿지 않는 것이 타락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2절)은 이렇게 증언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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