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노아언약(2)
노아 언약 두 번째 시간 입니다. 창세기 9:18-28절을 보시면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마시고는 취하여 벌거벗고 잡니다. 함이 이것을 보고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와 아비의 벌거벗음을 덮어줍니다. 노아가 술이 깨고 난 다음 이것을 알고 함을 저주합니다. 자기가 실수하여 놓고 왜 함을 저주합니까? 이 것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함이 저주를 받습니까? 함은 덮어줌의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방주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덮어주시는 은혜를 모독한 것이 됩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종 심판이란 율법대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십자가로 나타난 은혜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이 됩니다. 창세기 10:6-20절을 보시면 함의 아들 중에 니므롯이 나옵니다. 세상의 첫 용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의 땅이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됩니다. 시날 땅의 바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창세기 11:1-9절을 보시면 바벨탑을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거역하면서 자기들의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하늘까지 대를 쌓자고 합니다. 노아홍수의 두려움을 자력으로 막아보려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저주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도 결국 함의 후손들이 셈의 후손들의 종의 종이 되는 저주의 실현입니다. 덮어줌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25:16-22절은 언약궤와 그 뚜껑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영결할지며 /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돌 판이 있습니다. 그 돌 판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하면 다 죽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모세언약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만 노아의 언약에서도 왜 덮어주셔야 되는지를 함께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도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자가 심판 받는다는 것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벌거벗음을 하나님께서 가려주셨습니다. 이것을 수동적 의라고 아담 언약에서 보았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입는 능동적인 의로는 결코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덮어줌의 말씀에 대하여 성경 몇 곳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 78: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이스라엘을 행한 대로 갚으셨다면 다 진멸당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겔 16: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려진 계집아이로 비유하며 그들의 벌거벗음을 가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라나서 공주처럼 입혀 놓으니 더욱 음란한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우상들을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로마서 4:6-8절입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간음하고 살인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덮어주시고 가려주시는 은혜를 입었기에 이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진짜 복이란 허물과 죄가 가려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에서 다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인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의 덮어주심 아래에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26-28절 말씀입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미 아담 언약과 노아 언약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에 내가 좋은 대로만 살아가는 죄악이 관영한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가려지고 덮어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려지고 덮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무겁겠는지 너희는 생각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상 사람들도 부러워할만한 대단한 업적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처럼 노아처럼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셔야 함을 알고 예수님의 보혈 안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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