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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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참 빛이 세상에 와서 어둠을 비춘다. 어둠에게는 빛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의 기회가 되지만 정작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빛을 알지 못한 어둠 그대로 살아간다. 인간이 자기 가치를 위해 빛이 되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빛을 깨닫지 못한 것은 어둠을 빛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바르고 선한 행실을 빛으로 알았기에 외부에서 빛이 와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이것이 빛으로 인해 드러나는 어둠의 정체다. 빛은 어둠이 깨닫지 못할 것을 알고 어둠을 비춘다. 그 말은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세상을 비추는 빛 된 삶을 기대하신 바가 없다는 것이다..

◈복음 나눔 2024.10.0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마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 21:19)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라고 말하고, 사람들은 자기 구원을 위해 예수를 믿는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니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자기 믿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행함에 시선이 향한다.  그리고 산 믿음을 증명하는 행함이라면 일반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경건성과 도덕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준 높은 행함에 열심을 낸다. 이것을 믿음의 열매로 알고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 현대 기독교인의 ..

◈복음 나눔 2024.09.24

십자가를 아십니까? (김성수목사)

인간들은 살면서 이 인간 세상들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추악한지 본인들도 깨달아 알아요.하물며 성도는 이 인생과 역사의 실체를 분명히 알아야 돼요.  왜 이렇게 안 변하나?  나는 왜 이렇게 예수가 안 믿어지나? 그런 걸로 고민할 때가 아니라니깐요. 그건 그냥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건데 그러한 지향성이 이 지옥을 경험하면서야, 인간들이 이렇게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삶이 지옥이구나!... 그러니까 아 제발 이렇게 나만을 위해 사는 이 삶은  나에게서 좀 떠나갔으면 좋겠다라는  그 현실을 알면 알수록 그러한 지향성과 바램이 커지잖아요.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잘 분별하셔야 돼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지혜의 눈이 띄었다고 하는데 뱀이 그랬잖아요. 너희들이 밝아질 거라고.... 밝아졌는데 어떻게 밝아졌냐..

◈복음 나눔 2024.09.09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7)  현대교회가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욕망을 성경에 막무가내로 연결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 결과로 성경이 증거하는 의미와 목적은 상실되고 인간의 뜻이 복음이라는 옷을 입고 진리인 척 행세한다. 여기에 자기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열심이 믿음으로 강조되는 현실이다. 이 열심 또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도에게는 열심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종교적 열심과는 다르다.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고, 인간으로 행할 수 없는 열심이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에게 있는 열심을 자기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성령의 행함으로 믿는다. 자신의..

◈복음 나눔 2024.07.27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시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시 81:10)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으로 보였다는 것 자체가 사탄의 뜻에 합류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형상으로서의 욕망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망에서 벗어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성은 자기를 위해 뜻을 세우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대항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대항하는 존재로 말하는 것이 옳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욕망이 작용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입을 크게 열면 필요로 하는 ..

◈복음 나눔 2024.07.24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8)  한국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출생의 비밀이다.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서 처지와 상황이 역전되는 이야기는 분명 진부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재다.  그런데 모든 인간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다. 이것을 예수님이 폭로하시는데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라는 말씀이 그것이다(요 8:44). 그리고 ‘피는 속이지 못하고 씨도둑은 못한다’라는 말처럼 마귀 자식이라는 증거를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는 것으로 말씀한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인..

◈복음 나눔 2024.06.27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 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 14:28)  이스라엘의 종교적 우월성은 그들만의 고유한 역사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을 경험한 조상들의 이야기와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그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들의 역사 속에 오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왜 자신들의 역사에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고귀한 역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하여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존재하지만 그 역사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역사 가치가 무시되고 손상되는 것을 ..

◈복음 나눔 2024.06.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롬 11:26)  성경은 역사가 아니라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물론 성경에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존재부터 그들이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개입 없이 순전히 그들의 의도와 힘으로 되어진 것이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정착하여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이나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 모든 역사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일도 이스라엘의 역사이긴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

◈복음 나눔 2024.06.22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창 27: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4)  인간이 죄를 모른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취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만약 인간에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었다’라는 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우리가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열매를 먹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벗은 것이 두려워 숨었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죄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벗었다는 자신의 상태를 책망받을 죄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잘못된 죄 인식은 지금도 아담에 속한 우리가 자기 상태를 돌아보며 믿음을 판단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죄를 알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복음 나눔 2024.06.19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6) 우리는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을 만난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구원에 대해 낱낱이 증거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무지하다’라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이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세상에는 예수님을 아는 자가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모든 지식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무지하다’라는 ..

◈복음 나눔 2024.06.10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은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관계로 되어 있다. 목사를 성경을 가르치고 교인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교인은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가르친다는 것이 목사의 권위로 작용하여 교인과 차별적 관계에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생각에 성경이 제동을 건다.  성경은 성도를 ‘주께 받은 기름 부음이 안에 거하는 자’로 말하면서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

◈복음 나눔 2024.06.07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 5:28)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정확한 실체이고 실상이다. 그래서 인간을 패역하고 거짓말하며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존재로 말씀하신다면(사 30:9) 그것을 나의 현실로 간주해야 한다. 그것이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듣기 좋은 말만 자신에게 적용하려는 악한 습성이 있다. 패역하고 거짓말하는 인간 됨에서 자신을 제외한다. 나 아닌 다른 악한 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선별하여 들으며 자신을 구별한다. 이것이 성령 받지 않은 자가 말씀을 듣고 대하는 태도다. 한마디로 말해서 말씀을 들을 귀가 없고 믿지 않는다. 여호와의..

◈복음 나눔 2024.05.07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  당연한 말이지만 목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교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심각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교회는 위험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의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하고 교회 생활을 즐긴다. 교회의 실상을 바라보고 파악할 수 있는 시각과 지혜가 없어 자신이 듣고 있는 설교가 십자가를 전하는 복음인지 마귀의 사고방식에 일치한 말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목사가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성경이라 믿을 뿐이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모른 채 교회를 찾고, 교회 또한 교회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목사가 알면서 감추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당초 교회가 무엇인가를 모른다고..

◈복음 나눔 2024.05.0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우리에게 무서운 현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모르는 것이다. 죄를 모르면 죄와 선을 구별할 수 없고 죄를 선으로 착각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알고 행하는 선한 일들이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를 멸시하고 주의 원수로 행하는 죄로 심판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죄를 모르는 것은 분명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도는 무엇이 참된 현실인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피로 구원될 자로 부름 받은 성도에게 참된 현실은 자기를 향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 존재를 하나님의 사랑이 하루하루 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현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현실을 마음에 두고 성경에 감정이입을 한다. 자신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죄의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카테고리 없음 2024.04.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4) 인간은 죄 아래 있기에 선을 행할 수 없고 의인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이가 있다면 이들의 의는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다른 의다. 이처럼 세상에 없는 다른 의가 주어지고 그 의를 근거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들을 성도라고 한다. 우리가 인간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심판이 당연한 죄인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아 의인 된 것은 놀라운 은혜고 영광이며 상이다. 그래서 성도라는 신분에 담긴 내막을 알게 되면 자기에게 의의 가능성을 두지 않고 다만 의가 되셔서 모든 죄를 덮으시고 의롭다는 선언을 받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

◈복음 나눔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