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김영대 목사 (주성교회) 25

5.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본문은 둘째 날에 대한 말씀이다. 창조에 대한 본문을 읽어가면 갈수록 많은 논란이나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모든 주장은 창세기 1-2장을 창조에 집중하여 창조 자체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구절부터 일차 독자, 즉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창조에 쓰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계속 확인해 왔다. 그런 점에서 본문도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독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살펴본 앞의 구절들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6절)라고 하였다. 본문을 직역..

4.창세기 1:3~5 빛과 어둠

창세기 1:3-5 빛과 어둠 성경이 창조에 대한 기록을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성경 전체의 비중에 비하면 창조의 기록은 창세기 1-2장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창조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창조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정형, 법칙, 원리로 만들어 그 속에 넣어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간격설이라든지 점진적 창조설 등 오늘 본문부터 나오는 계속 반복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용어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한다든지 “날”(히, 욤)에 대한 정의를 신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어떻게 접..

3.창세기1:2 깊음의 물과 그 물

창세기 1:2 깊음의 물과 그 물 창세기 1:1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위대한 선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창조 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의도하신 것이 근원이시며 머리요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임을 우리는 지난 강론을 통해 확인했었다. 이제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언급한다. 이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본문이 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는 창세기의 처음 몇 장을 통해 창조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다 해결하려는 시도로 성경을 대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창조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빠짐없이 설명하려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2. 창세기 1:1 태초에

창세기의 첫 선언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처음 나오는 말이 히브리어로 ‘베레쉬트’인데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70인역을 번역하면서 헬라어 ‘게네시스’(기원, 근원)라고 썼기에 영어로 Genesis로 번역하였고 그 이름을 따서 우리 성경에서는 창세기(創世記)라고 붙였다. 우주 혹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인류 역사 이래로 오랫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문제다. 수 많은 철학자들의 논쟁거리가 ‘세상의 근원이 무엇인가?’ 또는 ‘사람의 기원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며 토론해 왔지만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 중에서는 우주의 기원이나 세상의 ..

1.창세기 이해를 위하여

창세기 이해를 위하여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혹은 언약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자신을 드러내신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啓示)라고 한다. 계시란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고 덮혀 있던 포장을 걷어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을 볼 때 우리의 관심사를 가지고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시고 어떻게 성취하며 ..

10.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10 요한계시록 2:12-17 버가모 교회 요한 사도를 통해 계속해서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절)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사는 곳의 지리적인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씀한 것으로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 즉 사탄의 보좌이고 곧 “사탄이 사는 곳”으로 ‘사탄이 왕으로 군림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버가모 교회에 대한 말씀에서 십일조를 얼마나 하였는가? 주일성수를 잘하였..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우리는 땅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의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를 안다고 떠벌린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것이 끝없이 허상을 좇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라고 하였다.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위의 것은 영원하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고 하늘의 것이 실상..

08.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강론 08 요한계시록 2:1-7 에베소 교회 일곱 교회에 대한 본문의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일곱 교회를 시대적으로 나누어서 보는 것이다. 일곱 교회는 일곱 시대를 나타낸 역사적 교회의 모습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서머나, 버가모로 해서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이른다고 본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시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이런 식으로 시대적 상징성의 교회로 나누어서 이해하고자 한다. 또 교회를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서 보는 이들도 있다. 세상의 교회들을 일곱 가지로 분류하여 각 특징들이 나타나는 에베소형 교회, 혹은 서머나형 교회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 어떤 교회든지 이 일곱 가지 유형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해석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모든 해석들의 가장 큰 오류는 지금..

07. 요한계시록 1:17-20 살아 있는 자

요한계시록 1:17-20 살아 있는 자 영생이란 단순히 내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는 뜻이고 그분의 십자가에 내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나 그분과 연합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머리였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리로 바뀌어 그분의 몸, 즉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내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요한계시록의 표현대로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도들과 함께 지금도 늘 오고 계신 상태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2,000여년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이해하여 십자가를 세워놓고 그 앞에 모여보라고 요구하시는 표시가 아니다. 완전한 새 생명으로의 창조이다. 그러므로 현실..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요한계시록 강론 06 요한계시록 1:11-16 등잔대 가운데 인자 요한계시록 첫 번째 강론을 시작할 즈음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요한계시록을 풀어 놓은 책인데 그 내용을 대충 보니 태양계가 움직이는 것, 세계정세와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오늘날 유행하는 코로나까지 연결시켜 종말이 왔고 하나님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기 구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요한계시록을 소위 말해서 기발하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또 최근에 저의 블로그에 댓글을 자꾸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아이디로 하는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영상을 좀 봤더니 요한계시록 4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