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삶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11:32)

나는 날마다 죽노라(로마서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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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는데(마10:16) 이는 우리 삶의 지식이나 처세를 말하는 것인지요? 아니면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다릅니다. 세상의 지혜는 자신을 지키고 유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만 하늘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의 말씀은 전체 문맥을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양같이 자기를 보호 할 능력이 없는 제자들을 아무 보호장치도 없이 이리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양이 이리 가운데 보내진다는 말은 양은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보낸다는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Q&A 2023.02.25

11.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을 잘 보면 19절만 칭찬이고 26절 이하에서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을 제외하고 20-25절까지 여섯 절이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할 때도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하였길래 책망과 경고를 이토록 많이 받았는가 하는 관점이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과 교회 아닌 모습이 어떤가를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네게 반대할 (일, 어떤 것..

야곱

얍복강 사건 창32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

◈Hebrew 2022.12.13

태초에 창1:1

★ 베레쉬트(히) = 엔 아르케(헬) = 태초에 파자 :베이트(성전, 집)+레쉬(시작, 머리)+알렙(하나님, 사람)+쉰(되새김, 분석)+요드(편손)+타우(완성의 표)의 합성어이다. 의미: 성전의 시작(머리)인 하나님을 잘 분석해서 시간 안의 존재들에게 손을 펴서 넘겨주는 완성의 표라는 뜻. 성전의 머리= 예수그리스도 ★ 엔 아르케 엔=뵈(베잍 :고대 히브리어)=성전,집 아르케=시작=레쉬트(어원:로쉬=머리) 뜻:성전의 머리=예수 그리스도→엘로힘이 왜 복수로 되어 있는지 알수 있는 부분. 성전= 성도 성도의 머리= 예수 그리스도 성전의 시작인 예수 그리스도안에 이미 성도를 품고 있다.(임마누엘) ★ 성경은 성령이 머리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여 참 성전이 되는 그 묵시속 교회의 하나님과 실체를 설명..

◈메모장 2022.12.12

자기가 포기 됨으로 해방 되는 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 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은 그 자식이 뭐라 해도 그것을 받아 주는 관계가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것 입니다. 적어도 내가 울고 불며 부를 수 있는 분이 내 아버지라는 것이지요. 그 아버지가 우리가 진토임을 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잘못된 종교에서는 우리의 수준을 넘는 고도의 영적 삶을 하나님이 끊임없이 요구하신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갈망하는 그런 거룩한 삶이 가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시..

◈마가묵상 2022.12.12

나의 구원은 없다.

나의 구원은 없다(강구만 장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왜 교회를 다니냐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럼 왜 구원받아야 하냐고 물으면 내 죄를 씻고 천국가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바꾸어 말하면 지옥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런 분은 천국 못갈 가능성이 더 많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겠다고 목사란 자들이 하는 설교는 더 가관입니다. 기도를 더 열심히 해라, 성경 공부에 빠지지 말라, 교회 봉사에 충실해라... 한번 살펴봅시다. 천국 가려는 건 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려는 것이지요? 반대로 지옥 가면 안 되는 것은 내가 고통당하지 않으려는 것이잖아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내가 하고, 성경 공부도 내가 하고, 결국 구원(믿음)의 ..

8.창세기 1:20-23 바다 짐승들과 하늘 날개

창세기 1:20-23 바다 짐승들과 하늘 날개 넷째 날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두 광명으로 빛을 담는 그릇(등잔대) 또는 빛이 비춰지는 장소(성소)을 나타내주셨다. 중요한 광명으로는 귀하게 여기시는 빛을 담는 그릇으로, 중요하지 않은 광명으로는 하찮게 여기시는 빛을 담는 그릇으로 나누어져 있다. 큰 광명은 낮을 통치하는 영역에 속하고, 작은 광명은 밤을 통치하는 영역에 속하도록 각각 구별되어 땅을 비추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신 창조의 뜻은 두 광명을 통해 빛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역할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 별을 지으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별은 낮과 밤을 주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즉 빛의 세력이든지 어둠의 세력이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음..

7.창세기 1:14-19두 광명체와 별

창세기 1:14-19 두 광명체와 별 처음 창조하신 땅은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에 있는 깊은 물과는 대조되어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고 생수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셔서 어둠과 구별을 하신 후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칭하신 것이 첫째 날이었다.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드셔서 아래의 물과 위의 물로 나누시면서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다. 궁창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마른 땅이 드러나도록 하신 후 마른 곳을 땅,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시고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게 하신 것이 셋째 날이었다. 이렇게 셋째 날까지의 창조를 통해 혼돈, 즉 형태가 없는 상태에서 형태를 이루신 것이고 그다음 세 날은 공허, ..

6. 창세기 1:9-13바다와 땅

창세기 1:9-13 바다와 땅 창세기 1-2장이 창조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지만 오늘 본문의 셋째 날 내용을 보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창조를 하신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을 나누시고 땅이 식물을 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창조가 없다는 점에서 셋째 날은 창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꼭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드신 것만 창조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있는 것을 나누고 조성하시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실 창조를 보여주신다는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셋째 날에는 식물들을 만드셨는데 식물이란 태양에 의한 광합성 작용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넷째 날에 태양을 만드시기 전까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

5.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창세기 1:6-8 아래의 물과 위의 물 본문은 둘째 날에 대한 말씀이다. 창조에 대한 본문을 읽어가면 갈수록 많은 논란이나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모든 주장은 창세기 1-2장을 창조에 집중하여 창조 자체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구절부터 일차 독자, 즉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창조에 쓰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것을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계속 확인해 왔다. 그런 점에서 본문도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독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미 살펴본 앞의 구절들과 연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6절)라고 하였다. 본문을 직역..